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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기타 들쳐메고 피켓은 직접 만들어서 아무 소속도 없이 5시부터 9시까지 돌아다녔다. 사진은 조만간 동영상으로 편집해 올리고, 그 때쯤 이 글은 1 내>ㄹ 영상이 되어 있겠다.

 (출처)
↑이 구석에 찍힌 곱슬머리가 나다...

소감 한 마디는... 우리는 또 실패했다는 것이다. 패배감이 밀려온다. 다른 시위 방법을 생각해 보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최대한 빨리 서울역에서 시청으로 가겠다고 하고 간 거였는데, 지하철 한 정거장 거리를 가기도 전에 내 눈앞에 나타나는 것은 닭장차의 벽이었다. 청계천 광장 그 협소한 곳만을 딱 둘러싸고 벌어지는 하이서울페스티발...
내가 멘 통기타를 보고 날 합류시킨(그리고 분명히 아까 단체로 모여서 티셔츠 팔고 있었던) 소위 시민악대 중 한 명이 기자들 틈바구니에 서 있던 내 눈앞에서 연행되어갔다. 나는 거기 끼는 척하면서 어물거리다가 빠져나왔을 뿐인데, 전경들은 내가 있었을 수도 있었던 자리를 15겹으로 욱여싸고 진압을 했던 모양이다.

또한 시청역 5번 출구 근처에서 체포돼 강서경찰서로 연행된 신아무개씨, 김아무개씨, 박아무개씨, 장아무개씨는 변호사들에게 "시민악대인데 서울하이페스티벌이 끝난 뒤 현장에서 즉석공연을 하다가 잡혀왔다"고 밝혔다. 출처

그것은... 불과 네 시간 전만 해도 전경과 시민의 대치상황 한가운데 휩쓸려서 "재밌구나!"를 외쳐 버린 내겐 대단한 공포였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실패하고 있다. 지고 있다. 용산참사 추모하러 모였을 사람들은 독재 타도 명박 퇴진을 외치고 있었고, 국풍81은 고스란히 하이서울페스티발로 재현됐다 그리고 전경들은 무시무시한 기합소리를 지르며 더욱 강력하게 덤벼든다... 절망이 닥쳐온다. 이제 촛불은 없는 것이다. 그 사실이 날 절망케 한다. 다른 방법은 없는 것인가, 한국이기 때문에, 이명박이기 때문에 우리는 아직도 아무 죄 없을 게 뻔한 그리고 아무 상관도 없는 전경들을 향해 허탈하게 몸을 날려야 하는 건가... 이건 뭔가 너무 아니지 않나...

P.s 사회당 덕후위원회 위원장 블로그인듯→ http://stcat.egloos.com/
이 위원회에 대한 촌평: 약간 더 위험한 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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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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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쓰고 싶었던 주제인데 여울바람님의 글을 보고 지체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

X세대가 지금은 '개성시대'라고 선언하면서부터 개성이란 정말이지 현대사회의 소시민이 가져야 할 대단한 미덕으로 아무 의심 없이 긍정되는 모양이다. 나는, 일평생 평범한 인간의 축에 들어본 적이 거의 없는 인생으로서(그리고 모범적인 N세대로 규정된 듯한 여세를 몰아) 감히 말하겠다. 긍정되는 개성이 있고 부정되는 개성이 있다.
사회 제반 분위기에 무난하게 수렴될 만한, 혹은 극소수 쿨 메이커에 의해 공인된 개성만이 (어쩌면 앞에서 말한 두 가지 개성은 사실 한 종류인지도 모른다) 긍정성을 확보하며 그러므로 표출될 권리를 갖는다. 한편 누군가가 기존의 긍정된 개성과 어떤 연계가 느껴지지 않는(즉, 아주 순수한) 개성 아니면 아니면 자신의 계급적 지위에 불일치하는 개성을 추구할 때 이 개성은 아주 완강하게 회의되고 거부되어 개성으로 공인받기 어려워지며 그것을 내어보이는 것도 자꾸만 사위스러워진다. 내가 예수님 믿는다고 말하기 어려운 이유는 무엇인가, 왜 하루카는 자기가 애니 오타쿠임을 말할 수 없었는가, 나는 어째서 평소 별로 관심도 없던 대스타의 헤어스타일을 따라해 보고 마는 것인가는 이것으로 설명된다.
부정되는 개성이 긍정될 수 있는 방편은 크게 세 가지가 있다. 하나, 그 개성이 사회에 의해 쿨한 것이 될 때까지 기다린다. 둘, 자기기만과 타협적 변형을 통해 부정된 개성을 긍정된 개성으로 왜곡한다. 셋, 부정되거나 말거나 그 개성으로 일관한다. 대부분의 경우 부정된 개성들은 긍정되는 메이저 쿨에 굴복하여 둘째 경로로 우회하며, 첫째 방법은 매우 드문 경우이고 셋째는 결국 개성을 위한 개성이 되어 본래 표현하고자 했던 자기동질성에게 소외를 당하는 결과를 부를 수 있다. '퀴어'와 '고스'는 <프란체스카> 이전까지는 한국에 존재조차 없었던 문화 코드인가? 왜 나는 장기하를 많이 듣지도 않으면서 기타를 치고 노는 후배들 앞에서 되거나 말거나 '달이 차오른다'만 죽어라고 치고 있는가? 왜 개량한복만 입는 그 교수는, 신해철은, 쿠메타 코지는 마냥 외곬으로들 그러는가? 부정되는 개성은 그렇게밖에는 긍정되지 못하는 것이다.
어차피 자기만의 개성인데 스스로 만족하고 합당하게 느끼면 그걸로 그만 아니냐고 묻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글쎄, 여러분은 잔디밭 언덕을 굴러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 개성이란 자기완결이 되지 않는 성질의 것이다. 남들과 달라지고 싶어서 개성을 찾는 것이지만, 그 다름은 어쨌든 긍정적이어야만 한다. 남들보다 안 좋아 보이려고 노력하는 인간이 어디 있겠나? 그런데 개성의 긍정성은 내부가 아닌 외부에서 부여된다. 잔디밭을 굴러 보고 싶어져서 구르는 건 나다. 나는 이미 내 개성을 잠재적으로 긍정한다. 그러나 실컷 어린애가 된 기분으로 잔디밭을 구르고 나면, 바지와 옷에 묻은 진흙보다 더 신경쓰이는 것은 비웃는 듯한 일행들의 시선과 말투다. 스스로 만족해하는 것만으로는 개성의 긍정성이 확보되지 못한다. 오히려 이미 부정되고 있는 개성이 방어의 수단으로 자기를 기만하고 있다고 보는 게 잔인하지만 옳은 표현인지도 모른다.
개성은 무조건 긍정되지 아니한다. 실제 그렇지도 않으면서 괜히 특이한 것을 갖고 싶다던가 돌+I가 되고 싶다고 꿈꾸는 것은, 참 미안한 이야기지만, 물정을 모르는 순진한 발상이다. 진짜로 개성이 있다는 것은 차라리 위험하고 고된 삶이며, 그것이 긍정되지 못할 때는 더더욱 협착한 길이 된다.

P.s 라온누리에서 주최하는 F4강의, 5월 12일 김진혁PD 강의 들으시는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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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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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徒会役員共 #16(c)氏家ト全/講談社
0123

번역소감
"절망했다! 절망선생 3기 결정에 절망했다!
그것도 나 군대 가기 전에 12회를 다 보고 갈 수 있게 9월에 개시한다니!"

...뭐, 그 기념으로 뭐라도 하나 번역해서 올립니다. 3기 자막 잘 부탁해요. 그냥 이쪽의 자의식과잉적 희망사항입니다만 일이 크게 잘못되면 엔딩자막에 제 이름 나갈 수도 있습니다. (←근거 없음)

P.s 이 만화 이래봬도 오는 15일에 단행본 2권(아마도 #30까지)을 찍는 인기만화라능.
절망선생 3기 스타트 전까지 이거랑 나루에를 디벼볼까.
Posted by 엽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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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천호역 계단을 오르면서였다. 매일 오르는 계단이지만 너무 멀었다. 나도 모르게 '멀다!'라고 새삼스럽게 외쳐 버렸는데, 생각해 보니 정말 먼 거리를 매일 아무렇지도 않게 다니고 있더라. 따져본 결과 편도로만 37km를 다니는 데 1300원을 내고 있다. 1300원! 이 싼지 비싼지 애매한 요금으로 불과 100년 전만 하더라도 하루 안에 갈 엄두도 못 내던 거리를 가만히 앉아서 혹은 서서 가끔 자습까지 하면서 익숙하게 다닌다. 교통의 발달이란 대단하다. 사실을 놓고 말하건대 37km는 짧지 않다. 일직선 도로를 시속 100km로 달려도 20분 넘게 달려야 37km를 간다. 그런데 이 현실적인 거리, 심리적 거리를 점점 희미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바로 교통수단인 것이다.
천호역에서 버스를 타고 자리를 잡으니까 생각나는 또 하나는 GS마트다. 한때 하남시 신장동 일대를 평정했고, 심지어 개점 당시엔 신장시장에서 보이콧 운동 비슷한 결사 조짐까지 보였던 LG마트인데, 요즘은 어째 예전같지 않게 사람이 뜸해졌다. 왜? 풍산지구가 들어서면서 하남시에 드디어 이마트가 들어온 것이다. 얼마 전에 드디어 구길(온조로)에도 이마트 가는 마을버스가 생겨서 한창 재미를 보고 있는 모양이다. 중심지 이론에 따르면 고위 중심지는 상대적으로 그 수가 적고, 다른 저위 중심지들을 수렴할 만큼 큰 구역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제 이 이론은 아주 알기 쉽게 현장에서 학습된다. 이마트 가는 버스가 생기면 생겼지, 이마트가 주거지역에서 좀 떨어져 있다고 금세 망해버리는 일은 없는 것이다. 망하는 것이 있다면, 들어가자마자 인기척 없는 냉랭함이 확 끼쳐오르는 신장시장 공판장과 점점 어둑어둑해지는 시장 골목뿐이겠지.
내가 느끼는 것은 이것이다. 그 모든 중심지―쇼핑몰, 공연시설, 대학...은 어쩔 수 없다, 학교가 내게 올 수는 없으니까―는 사실상 대단히 먼데, 우리는 그게 먼 줄 모르고 다닌다. 아무리 이 이론이 실제 생활을 잘 설명해 준다 할지라도, 이 현상의 방치는 경제적 불균형, 근본적 위험, 그리고 정치적 불온함만을 낳을 것이다. 경기도에 사는 대학생들 대부분이 서울 혹 강원도 소재 학교에 다니기 위해 편도로만 한 시간 반 가량을 길바닥에 버리고 있다. 하남시 사람들은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려면 반드시 버스를 타야 한다. 심지어 지하철 한 정거장을 가려 해도 버스를 타고 강동구로 들어가야 한다. 모든 것은 내가 사는 동네에 없다. 그래, 서울이라는 초고위 중심지는 그만한 수용량이 되는 모양이다. 문제는 자유방임의 차후 결과다. 전국이 서울로 수렴되는 광경을 상상해 본 일이 있는가? 한반도대운하를 파든 지하철의 전국화를 진행하든 이는 정치적으로 불온하며 근본적으로 위험한 생각이다. 무엇보다 상식적으로 불합리해 보일 정도로 많은 것이 희생된다. 일단 너무 멀지 않은가? 중심지와 주변지가 기술적으로 가까워지면, 그래서 중심지는 중심지 본연의 역할을 위대하게 해내면 그것은 정말 잘 된 일인가? 만약 그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우리 집 앞에서 가능하다면, 내가 왜 이 시간, 이 돈, 이 발품 다 들여 가면서 그곳까지 가야 하는가?
나는 이제 신장사거리 정류장에서 내려서 집으로 간다. 집 코앞에 농협이 있는데, 간혹 보면 시민들을 위해 재개봉관 수준의 영화 무료상영을 하는 모양이다. 아직 한 번도 가 보지 못했지만, 조만간 기필코 가 봐야겠다. 어느 날 문득 깨달아지는 것인데, 영화를 보기 위해 버스에 타고, 버스에서 내려서 극장으로 이어지는 10층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영화를 보고 나와서 다시 에스컬레이터로 내려와 버스를 타고 꼬박 40분을 달려갈 생각을 하면... 영화관 처음 다니던 시절의 감동은 이제 잊혀지고 다만 피로감이 몰려오는 것이다. 그래, 좀 후지겠지. 근데 집 앞에서 공짜로 영화 한 편 보고 아이스크림 하나 입에 물고 집으로 걸어가는 경험도 나쁘지는 않을 거 같다.
로컬리제이션? 지방의 세계화? 분권자치? 탈서울화? 대형할인점 보이콧 및 지역 경제 활성화? 골치 아픈 말 백 마디로 말장난을 하느니 이 몇 마디를 물어보자. 너무 멀지 않나? 꼭 거기까지 가야만 하나? 왜 우리 동네에선 이걸 할 수 없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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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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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생각해 보자

내가 한 낙서 보고 내가 뿜겼음ㅋㅋ 참고로 이 캐릭터는 웹에는 처음 공개하는 바 내 (희망사항) 자화상 캐릭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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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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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log.naver.com/dicebookbug/100064205423

언젠가부터 클럽에 올라온 기도제목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시험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공부 열심히 할 수 있도록"
"많이 나태해졌는데 시간관리를 철저히 하도록"
"감기에 걸렸는데 몸조리 잘하도록" 하는 식의 기도제목으로 포화상태다.

철저히 자신의 행위에 대한 도움을 구하는...
하나님의 인격이나 의지 따위는 도외시한,
100% 자신의 안락함과 평안함에 하나님을 이용하는...
차라리 비비디바비디부를 외우지, 생각대로 이뤄진다는데...

이걸 어떻게 좋은 방향으로 이끌고 가야 하나...
여러분, 보채지 말고, 결단합시다.

...네, 그런 기도 안 빌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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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
내가 요새 (기초과정 정도나) 배우고 있는데, 정말이지 배운 놈들이 더하다는 말은 백 번 옳다.

못 배운 사람들은 주저하지 않는다.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 반면 배움이라는 건 자꾸만 On the other hand를 써야만 한다. 반론은 늘 존재하며 논의는 끊이지 않아 왔다는 거지. 못 배운 사람들은 그 꼬라지를 보며 무슨 개소린지는 모르겠는데 어여 안 가느냐고 채근하고, 배운 사람들은 망치를 들고 갈 건지 펜을 들고 갈 건지부터 고민만 많다.

배운 놈들이 더 하겠더라. 그건 어쩔 수 없다. 방법은 하나뿐이다. 얼마나 많이 배우든 늘 '못 배운 놈' 자세로 살아야 한다. 그게 옳다.
Posted by 엽토군
:
spec1 [spek] vi.
(학생속어) 요행수를 바라고 암기하다.

스펙을 쌓는다는 건 요행수를 쌓는다는 것.
Posted by 엽토군
:
(전략)
그리고 토론이나 일상회화는 단어와 숙어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질문(혹은 제시)과 대답(혹은 반응)으로 이루어지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더욱이 전공과목 토론이라면 단어 몇 자, 표현 몇 줄 틀리는 건 정말이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가, 지금 이 토론장에서 어떤 용어(혹은 개념)들이 어떤 어감(혹은 관점)으로 사용되는가, 나는 얼마나 그것들을 잘 이해하고 있으며 또 쉽고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가를 진짜로 걱정해야 되는 것입니다. 대화에서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하고 싶은 말을 알아들을 수 있게 열심히 하면 되고, 들어야 하는 최소한의 내용을 성의 있게 들어 주려고 노력하면 됐지, 거기에 3300개의 어휘집이 필요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중략)
국제선 타 본 적도 없는 사람이 건방지게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닙니다. 우리말, 아니 말을 배우시기 바랍니다. '나는 이 말을 어떻게 하고 싶은가?', '사람들은 무엇을 이야기할 때 어떻게 이야기하는가?' 등등의 고민, 즉 말하기와 듣기라는 것은 언어를 막론하고 다 비슷비슷한 것입니다. 외국어로 많이 말해 보고, 외국어를 많이 들어 보는 것도 물론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 최적의 환경이 외국인 것도 물론 맞습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엔, 모국어로 경청하지 못하고 발언하지 못하는 사람이 외국 말을 배워서 유창하게 리스닝을 하고 스피킹을 한다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 것입니다. 상식적으로 그렇지 않은가요?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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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
시청률엔 사실 레벨(계급, 단계)이 존재한다. 10%이하, 10~15%, 16~19%, 20~24%까지와, 22~24%(critical point) 그리고 30~32%, 34%~가 그것이다. 현재 미니에선 22% 정도로 알려져 있는데 저 지점은 시청률 임계점이라고 불린다. 발화점이라고도 하는데 간단하게 말하자면 입소문이 본격적으로 퍼지는 단계라는 의미이다. 그 이하에서 입소문이 천천히 흐른다면 22% 선에서 입소문은 본격적으로 풀리고, 그 지점이 넘어서면 30%에 오른다. 30%를 대충 넘어서면 어떤 세대에서는 폭발적인 지지를 받는다고 볼 수 있는데, 이쯤 되면 그 세대에서는 그 드라마를 모르면 안 된다는 문화가 형성되는 상황이다. 보통 드라마는 6회를 넘어서면 시청자를 유혹하는 매력이 사라지고 (시청률의) 레벨이 거의 정해진다. 지금까지 방영됐던 횟수는 진입장벽으로 작용[각주:1]하기 시작하며 6회 이전에 22%~24% 밴드를 넘으면 입소문이 폭발할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그 이전의 진동폭에서 진동하던지 대체로 하락세로 돌아서게 된다. (드라마의 진행이) 정말 좋으면 1레벨 정도 오르지만 그 상승률은 급감한다. 다만 그 레벨에 정착되어 해당 구간 안에서 진동할 따름이다.
시청률을 평가하는 데 있어 시청률을 단순히 절대치로 보기엔 무리가 있는 것은, 30% 시청률 드라마 하나가 20% 시청률 드라마 셋보다 호응이 크기 때문이다. 특히 OST 관련 음반 판매량 등의 각종 드라마 효과를 보면 시청률 효과는 시청률 %p 그대로가 아니라 %p의 제곱에 가깝다. 대략 30%대의 드라마라면 그 인지도나 효과는 900을 볼 수 있고, 20% 드라마면 작품당 400 정도의 효과를 볼 수 있다. 그런데 '애국가 시청률', 즉 기본 시청률이란게 있어서 대략 5%는 기본적으로 확보하게 된다. 그러므로 30% 시청률의 체감 인지도 및 효과를 따지자면 (30-5)^2 정도의 계산이 합당하다. 여기서의 계산값은 625 정도가 되겠다. 20% 시청률의 체감 인지도는 (20-5)^2=225쯤이 된다. 이상이 시청률을 읽는 방법과 그 의미를 해석하는 방법이라 하겠다.
출처는 S드갤이고 내 맘대로 정돈했음
  1. 내가 이 표현 때문에 이거 퍼와서 다듬기까지 하고 쟁여두는 거다. 그럴싸하지 않나. 사실 돌지매 못본게 13회쯤 되니 공감해 버렸다능ㄷㄷㄷ [본문으로]
Posted by 엽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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