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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리뷰는 순전히 영화를 본 직후의 기억이 휘발되기 전에 적어놓으려는 의도이고 따라서 해석/표현상의 균열이 많을 것 같습니다. 그러고보니 영화리뷰 블로그글 무지하게 오랜만에 쓰네. 돼지의왕 두개의문도 (고의반 무심결반으로) 안썼는데...



- 기왕 볼 거면 GV의 기회를 타서 보자 싶어서, 전날 자정을 넘기도록 치맥과 노래방을 달린 몸을 아침 여덟시에 일으켜, 시간을 잘못 알고 있었다는 걸 확인하고, 탱자탱자 놀다가 대충 아무거나 주워 입고 '무슨 질문을 해야 할까', '버스를 타고 간다는 계획은 잘못된 게 아닐까' 초조해하며 인디플러스에 가까스로 상영 15분 전에 도착, 미리 편의점에서 밥을 먹어놓고 표를 끊고 극장 내 정수기에서 식수를 받아 들어갔더니 관객이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 (정말 너무하더이다... 심지어 이소선 어머니 다큐보다도 사람이 없더라는) 그래서 감독님께 "<두 개의 문>이랑 경쟁하게 되어서 아쉽습니다" 했지요. (돌아오는 답은 역시나 "그게 더 흥행해야지요.")

- 안 먹던 알콜을 사람들 오랜만에 본 기분에 취해 몇 잔을 마신 걸까? 전 제가 오늘 아침 못 일어날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극장에서도 꾸벅꾸벅 졸 줄 알았죠. 첫번째 껀 아니었는데 두번째 껀 영락없이. 중간의 아까운 10~15분을 결국 꼴깍 잠들어버린.

- 이 리뷰에서 큰따옴표("")된 것은 전부 오늘 GV때의 김경만 감독님 발언입니다. 아 참고로 감독님 생긴게 실제와 사진이 똑같습니다. 이렇게 인상이 평범한 독립영화 감독은 처음 봐요. (...)


- 영화는, 감독이 의도한 바는 아니겠지만 관객 입장에서 간편하게 기억해 보자면, 크게 2부로 나뉩니다. 역사 시간과 사회 시간. 1교시엔 지루한 흑백화면과 요즘의 자료화면을 알기 쉽게 교차로 보여주며 처음의 차이코프스키 음악을 빼고는 시종일관 <대한늬우스> 식의 팡파레 BGM이 일관되는(팡파레에 대해 한 번도 부정적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약 50여 분간 팡파레만 울려퍼지는 자료화면을 보고 있으면 짜증이 나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미국에 가서 머리 조아렸다는 뉴스를 시간 순서대로 보여줍니다. 그렇게 쭉 이어지다가 영어마을 이야기로 넘어가면 그때부터 2교시가 시작되는데 여기서는 영어 얘기, 기독교 얘기가 비슷한 비중으로 집요하게 다루어집니다. 그렇게 두 개 교과는 하나의 학습목표를 달성케 합니다. '미국이 성명학적으로는 아름다운 국가일지 모르되 과연 실증적으로는 무엇으로 분석되는가를 자기만의 대답으로 대답할 수 있다.'

- 영화의 카메라워크는 좋게 말하면 지독하게 끈기있고 나쁘게 말하면 지독하게 비타협적입니다. 감독이 직접 찍은 footage들을 보고 있으면, 잘만 하면 CCTV로도 다큐멘터리를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 정도입니다. 제 기억에는 딱 한 번, 활빈단 할아버지가 앵글에 다 들어오지 않아서 잠깐 오른쪽 아래로 움직인 그 정도. 그나마 그 후에 할아버지가 사라진 뒤에도 원위치로 돌아오지 않아요.

이것은 집념 내지 똥고집인가? 저는 그렇게 보지 않았습니다. 이 캡쳐에서도 어느 정도 느낄 수 있는데, 아주 신기하게도, 감독이 의도한 결과인지는 모르지만, 특히 이 씬은 배경의 관중과 거리, 군악대의 행렬 그리고 이 할아버지라는 세 개의 서로 다른 존재를 합성시켜 놓은 것 같은 착각을 줍니다. 심지어 영상으로 보아도 정말 그렇게 보입니다. (상상해 보세요. 저 멀리 길 건너에 사람들이 조그맣게 여러 명 서 있고 아무 것도 없다가 일정한 속도로 끝없이 이어지는 군악대가 왼쪽으로 지나가고 있는데 뒤이어 저 할아버지가 카메라 뒤에서 전혀 다른 속도로 등장합니다. 야 이건 진짜 연출을 해도 얻기 힘든 장면인데.)

이것은 좀더 과대해석해도 좋은 지점인 것 같았습니다. 첫째 이 신은 감독님 본인이 직접 말하듯이 배경의 대로변으로 대표되는 '이 세계는 사실상 내용적으로 공허'하고, 다만 그렇기 때문에 우악스럽게 잘 연주하지도 못하는 군악대를 합성시켜 넣었더니 '수은불망'을 들고 나오는 할아버지가 부가 생산되더라는 한국 사회의 다이나믹스를 보여준다고 여겨지고, 둘째로는 그렇게 합성된 (듯한) 이 나라의 풍경이 '합성이네'가 절로 튀어나오리만치 괴이하고 낯설기만 한 "이상한 것"임을 좀 확인하라는 뜻으로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 이상하게도 미스 유니버스 이야기 부분이 기억에 남질 않습니다. 영화가 대비를 시키는 방법으로서는 동시대에 일어난 극명하게 엇갈리는 두 사건을 배치하는 기법을 쓰는데, 이 부분을 보면서는 거대한 옛날 코미디를 재구성한 무대를 보는 것 같아 볼 만했는데, 희한하게도 막상 보고 나니 뭐랄까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것을 그냥 한 번 더 확인했다는 기분만 남아 있습니다. 이 영화는 그러합니다. 스스로 장면들의 짜임을 기억하지 않으면 서본결이 기억이 안 나요.

- 미리 리뷰를 읽고 갔었는데 리뷰들이 하나같이 엄중하게 경고하고 있었습니다. "오디오와 비디오는 단 한 번도 온전히 합치되지 않은 채 맞물리며 비틀어진다." 거의 그렇습니다. 1교시에나 2교시에서나 이 소리를 발생시키는 화면이 이것이다라고 보여줘야 하는 신에서는 여지없이 오디오와 비디오가 싱크로되지만, 나머지는 거의 대부분 감독이 이것을 가지고 장난을 칩니다. 또 그런 연출을 즐기는 것 같습니다. "좋아하는 장면 중에 하나가 그거에요. 그 사람 나와서 막 얘기하는데 갑자기 줄어들고 애들 떠드는 소리로 넘어가면서 영어 입학식으로 넘어가는 장면. 거기가 좀 에코를 걸기도 했었는데..."

- 그렇게 영화는 다큐멘터리와 자료화면 어딘가의 중간점에서 모두에게 열려 있는, 심지어 잘 안 들리거나 외국어인 육성에 대한 번역 자막 말고는 자막조차 단 한 줄도 없는 (심지어 영화 맨 끝에 나온다는 <믿음이 우리를 구원하였는가>라는 자막도 실제로는 없었습니다. "아 그거는 오보에요. 오보.") 극단적으로 중립적인 외형이었습니다. 뭐 감독 본인이 "어떤 식으로 메시지가 좁혀져서 전달이 되어 버리면 그건 영화가 아니지 않나 그렇게 생각합니다"라는 개념을 갖고 있는 한 이것이 최선이었겠다는 납득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다 좋은데 효용론적 관점에서 '잘 만들어 팔면 상당히 대중적으로 먹혀들어갈 수 있는 미국의 탈우상화라는 소재를 이렇게나 객관적으로' 다루어서는 정작 봐야 할 사람에게까지 다가가지 못한 채 끝나 버리는 것일 수 있다는 점이 문제지요. <도가니>가 fictional trigger를 잔뜩 장착하고 관객들을 흥분시킨 것은 공지영씨와 감독이 돈과 명예에 눈이 멀어서라기보다는 '적(타격대상)'을 더 알기 쉽게 만든다, 그래서 더 많은 이들에게 어필한다는 의도였을 것 아니겠어요. 이 작품은 그런 욕심이 전혀 없고 "그냥 이 나라의 이런 상황을 불편해하시는 분들이 극장에서 봐 주시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 홍보물과 각종 리뷰기사와 소개글에서 설명하는 것들은 정작 스크린으로 목격하기가 사실 전혀 용이하지 않습니다. 지금 화면에 나오는 게 이승만이다 지미카터다 하는 안내자막조차도 전혀 없고 내레이션도 없고 해설자도 없고 뭐 알아보는 사람만 알아보는 그림(과 내러티브)이니까요. 그러나 사실은 "3초 정도의 기억력을 갖고 계신 분들이라면 방금 전에 나온 그림과 함께 이어서 보게 되기 때문에, 웬만해서는 이게 이상하다는 걸 알 수가 있을 거라고 봅니다." 그렇게 이상하다고 느껴지는 것들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군사적 경제적 대미의존, 영어 콤플렉스 그리고 기독교적 반공.

- 감독이 의도적으로 그런 것만 골라서 보여준 것인지 모르지만 하여간 1교시 전반부는 오로지 미국의 신무기를 홍보해 주었던 우리의 뉴스 화면을 보여주는 데 아낌없이 할애합니다. 그런데 거기서 나오는 도량형들은 순 '피트', '마일', '야드' 일색이고, 외국인의 발언은 잠시 원어 그대로 들려주는가 싶다가 해설자가 끼어들어 자기가 그 사람인 양 일인칭 주어로 통역해 줍니다. 시청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답이 나오지요. "저 미국 미싸일들이 몇백 마일을 나른다 카이! 마일이 뭐꼬? 니는 마일도 모르나? 4리가 1마일이라 안카나?", "와 직이네, 저 솰라솰라 하는 말이 저런 뜻이가, 내도 영어 몽창 배워가 저래 솰라솰라 해야긋듸". 물론 이런 사소한 것 때문에 모든 것이 이 지경이 되었다고 말하면 안 되겠습니다. 제 얘기의 핵심은, 이 영화가 1교시에서 2교시로 넘어가는 데 부족한 요소는 없다는 것입니다. 각종 소개 기사에서 말하는 것처럼 딱 떨어지는 설명으로 나타나지는 않지만, 행간과 균열을 읽어 보면 읽을 수 있고, 그것을 글로 쓰면 이런 별볼일없는 식상한 것으로 바뀌어 버린다는 겁니다. 이 영화의 가치는, 바로 그 식상한 말을 전혀 식상하지 않게, 사실은 아주 골치아프고 다층적이고도 직접적으로 '제시'하기만 함으로써 아주 새삼스럽게 학습시킨다는 데 있습니다.

- GV때 질문하며 언급한 장면이 셋 있는데, 사람이 찍혀 있지 않은 부동자세의 영어마을, 미국 대통령 앞에서 한복과 합창단 제복을 입은 소년 소녀들이 미국 말로 노래를 불러주자 당시 영부인이 그걸 같이 흥얼거리는 장면, 그리고 6.25 60주년 평화기도회가 끝나고 참석자들이 줄지어 월드컵경기장을 빠져나가는 장면. 셋 다 너무나 낯선 광경인데, 첫째 껀 경험해 보지 않은 곳의 예상했던 그림 그대로가 나와서 놀라웠고 두번째 껀 경험해보지 않았지만 뭔가 근본적으로 논리가 이상해서 (하지만 저게 당연한 거 아니냐고 하실 분들에겐 씨알도 안 먹히겠지 왜 우리가 한복을 입고 남의 나라 대통령 앞에서 영어로 재롱을 떨어야 되냐며...) 놀라웠고 셋째 껀 비슷한 경험을 하긴 했지만 지금까지 지나간 장면들을 본 게 있는 다음이어서 놀라웠습니다. 놀랍게도 맨 처음 보았던, 한 명 한 명 포착되어 있는 한국전쟁 피난민 여성들의 그림이 (감독이 겹치지도 않았는데) 머릿속에서 오버랩됩니다. 사실은 같은 상황과 조건이 아닌데 왜 그들은 서로 같아 보이는가? 이쯤에서 저는 감독의 의도대로 영화를 봐 버린 것이지요. 그리고 마지막에 미군 항공기의 폭탄 투하가 한 번 더 등장하고 암전되면서 영화는 수미상관 구조로 할 말은 다 했음을 알려주고 끝납니다.

- 상대적으로 '기독교적 반공', 그러니까 우리가 구원받은 족속이고 그 구원은 예루살렘에서 왔으며 그 구원의 최종 필수요건으로는 대적자와의 대적과 완전한 승리가 제시된다는 서사가 이데올로기적으로 복합작용하는 과정, 그것에 대해서는 사실 약간 설명이 빈약하기는 합니다. 굳이 장면들을 꺼내 와서 이해해 보자면 미국=미군=떠나가면 나라 망함=떠나가면 내가 망함=적으로부터 지켜줌, 북한=빨갱이 북한군=쳐들어오면 나라 망함=쳐들어오면 내가 망함=멸절의 대상이라는 알기 쉬운 두 구도가 강변을 일삼고 비판적 사회적 사고가 모자란 목사님들 그리고 이를 교묘하게 이용해서 기도회와 예배 자리에 나가 정치적 발언을 섞어 말하는 미 대통령에 의해 대규모로 공작되었다, 뭐 그 정도로 이해할 수 있겠지만, 사실 이는 좀더 심층이해가 필요하기도 합니다. 가장 직접적인 부분이 부시 대통령의 "I believe, I believe that you believe." 설교(?!) 한 마디 정도일 뿐이니, 메인 카피가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에 대한 우리의 믿음은 마치 기독교 같았다"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정작 본편 내에서는 좀 부족하게 제시됩니다. GV때도 "바람과 불이라는 게 워낙 표상하는 대상이 많고" 한데도 정치, 경제, 군사 얘기는 나왔는데 종교 얘기는 거의 안 나왔거든요. 사실은 저도 제가 믿는 믿음이 있고 보니 '믿음이 우리를 구원하였는가'도 결코 최선의 카피는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종교가 다뤄질 때 좀 씁쓸했습니다. 참고로 그 카피는 감독님이 직접 지은 건 아니라고 합니다.


- "저도 미국은 사실상 끝나가고 있다고 봐요." 그러나 그 미국과 우리나라를 굳이 다시 확인해야 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나중에 사람들에게 '야 그거는 <미국의 바람과 불> 보면 거기 다 나와 있어'라고 말할 수 있는 맥락은 어떤 때 발생하는가. 안타깝게도 아직은 없습니다. 그것은 이 영화가 어떤 작용을 일으키겠다는 의지보다는 표현을 해내겠다는 의지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그래서 마케팅은 상대적으로 쉽지 않았을 터인 반면 정작 관람하기 시작하면 꽤나 좋은 걸 봤다는 생각이 나게 됩니다. 저는 이것이, 마치 감독님이 60여 년 전의 자료화면을 가져다 이 영화를 만들었듯이 60년쯤 뒤에 누군가가 가져다 쓸 자료화면으로서 이 영화를 따 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또는 훗날 정말 제대로 된 교육이 들어서면 '오늘은 한미관계에 대한 영화를 보고 토론할 거에요.' 할 때 보여줄 영화로 쓰면 적절할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 별점 다섯 개 만점에 세 개 반. 재미있지는 않고 흥미롭습니다. 긴박하지는 않고 끈질깁니다. 인내심이 좋거나 실험영화 혹 다큐멘터리를 좋아하시면 한번 보시고, 그냥 궁금해서 보시려면 반드시 리뷰와 근현대사 교과서를 읽고 가세요. 그리고 내가 저기 나오는 저 정도의 영어도 못 알아듣는 수준이었나 싶어집니다. 그리고 김경만 감독의 차기작과 차차기작을 궁금해하게 됩니다. "다다음 작품은 편집이 필요없는 것을 만들어보려고 합니다. 아니, 차기작에 대해서는 너무 인터뷰를 많이 해서요."

- 지금은 이 리뷰 올리고 나서 감독님의 전작 콜렉션 <하지 말아야 될 것들> DVD를 마저 보려고 합니다. 뭔가를 훔쳐보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 좋아요!

Posted by 엽토군
:

이 영화를 성남시민회관 소극장까지 가서 봤습니다. 첫째는 무료고 시간도 얼추 들어맞는다는 이유, 둘째는 알고 보니 성남시 최대 현안이 시립병원 건립이라는 이유.


생각해 보니 중학생 때 여기서 웅변대회를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다시 찾은 소극장은 너무 좁았습니다. 한 시간쯤 미리 도착해 보니 상영 테스트 중.
 


이때만 하더라도 흑백인 데는 이유가 있겠지, 하고 그냥 넋 놓고 보고 있었습니다. 사진은 의료보험증 나오는 장면 때 찍음.


성남시 공동체상영을 주관한 주최측이 포스터를 붙이고 있었습니다.


잠시 대기를 탄 다음 들어가서 자리를 잡고


사회를 보시는 분이 잠시 소개를 한 뒤 상영을 시작하려는데


이게 웬걸 DVD 재생환경이 어째 흑백인 듯해서 불안불안했습니다. 그리고 그래서 그랬습니다. 그냥 흑백으로 볼 수밖에 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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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분을 비롯한 현직 의사들은 내가 왜 가운을 입고 있어야 하는지 정말로 고민이 많이 된다고 얘기합니다. 그래도 여기는 사람 살리는 곳이니까 죄책감 내지 불쾌감이 덜하다는 자위.

 

(삭제)


이 할아버지는 받아야 할 치료를 돈이 없다는 이유로 포기합니다. 미국 이야기 아닙니다. 우리나라 이야기입니다. 흑백으로 나온다고 해서 과거 이야기냐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영화를 흑백으로 본 것이 차라리 더 나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젊은이보다는 노인들을 보여주는 이 영화는, 좋은 카메라로 생생하게 찍힌 컬러였다면 더욱더 구역질 날 만한 것이었겠다고 생각합니다. 아주 가끔 나오는 수술 장면이나 지저분하기 짝이 없는 등장인물들의 방구석들을 보면 말입니다.

(삭제)


이 할머니는 관절염이 도졌습니다. 역시 비싼 병원비 앞에서 뾰족한 수도 없이 그저 하루를 살아갑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이 분은 관절염이 의료보험 제외 대상이어서 제대로 된 혜택도 받지 못하고 비싼 병원을 쳐다볼 뿐입니다. 감독이 묻습니다. "근데 할머니, 의료선진화라고 아세요?" 할머니가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즉시로 대답합니다. "몰라, 그게 뭐야." 그 대답, 모르기 때문에 망설이지 않는 비참한 대답은, 적어도 한국환자단체연합회 회원이 아니고서는 다 똑같습니다.


모르는 게 당연합니다. 의료선진화 같은 건 없으니까요. 있다면 아무개 동료 의사가 오늘 외래진료를 몇 건 처리했다는 문자나 보내고 있는 기업형 영리추구형 대형병원들로 대표되는 '의료산업'(그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것이지만)의 신자유주의일 겁니다. 이 산업은 공장(병동)을 커다랗게 지어 놓고 전문 의사(인력)들을 닥치는 대로 들여와 로봇 수술기 따위의 고정자본을 들여놓고 그 자본의 투자금이 회수될 때까지 로봇 수술기를 이용하도록 의사들에게 유무형의 압박을 가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3분에 한 명씩 환자를 받고, 그들에게 불필요한 시술도 함께 '구매'하도록 팜플렛까지 만들어 가며 '영업'하고, 일반병동과 VIP병동의 구분을 확실하게 하는 '가격차별' 전략을 구사합니다. 그리고 아픈 사람은 느닷없이 소비자, '고객님'으로 과분하게 격상되어 동네 병원에서 '무조건 쎄게' 처방받으려고 애를 씁니다. 돈이 없으면 "안 가면 될 것 아닙니까?" 국회 발언 말마따나. 아니면 <사랑의 리퀘스트>에 나가서 구걸 아닌 구걸을 하든지 말이죠.

(삭제)


감독은 교회에 다니는 사람으로서, 의사로서, 의료생협에 몸담은 남자의 아내로서 그리고 <사랑의 리퀘스트> 시청자로서 인맥과 정보망을 총동원하고 있습니다. 병원 광고가 범람하는 현실을 보여주는 초반부에서, 오로지 병원 간판으로만 즐비하게 도배된 빌딩가를 지나가며 보여주는 장면은, 감독이 얼마나 이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들며 오랫동안 이 하얀 정글을 보아두었느냐를 여실히 보여주었습니다. 자료 조사도 꽤나 간담 서늘합니다. 자료화면이 TV에 나가고 있는 걸 카메라로 찍어서 인용한 효과도 전 개인적으로 좋게 봤고, 특히 SERI 보고서와 기획재정부 내부문건 내용이 글자 그대로 똑같은 장면은 가관이죠. 내부에서 지켜본 사람이 아니면 절대 잡지 못할 촬영앵글.


다큐멘터리로서는, 일정량 이상 사용된 교차편집이나 음악의 활용, 약간의 페이크나 연출 장면 등이 보여 전형적인 포스트 다큐멘터리 저널리즘을 보여줍니다. (이 자리를 빌어 감독님께 사과합니다. 그때 뻔히 다큐인 걸 공짜로 봐놓고서 다큐는 될 수 없다고 말한 건 말실수였어요.) 한국판 <앓던이(SiCKO)>라는 명성에 걸맞게 유머감각도 적당히 삽입되어 있습니다. 장기려 선생님은 그래도 근대사의 인물이신데 좀 너무했지 않습니까?ㅋㅋㅋ 하여간 웃음 포인트도 가끔 있고, 그러다가도 "해 아래 압박 있는 곳 주 거기 계셔서" 찬송가를 삽입하는 등 대체로 꽤나 진지하고, 그러면서도 마지막 컷은 자전거를 타고 골목을 나가며 그저 웃는 웃음을 보여주는 등 끝까지 긍정적입니다. 사실 세세한 내용 자체는 어쩐지 그럴 것 같았다는 대목이 많아(그리고 어째선지 집중하기가 어려워서) 잘 기억나지 않아요. 영화 상영 후 가진 제 일생 최초의 감독과의 시간에서 들은 대로라면 "다른 것보다 현 실태를 알려주는 데 가장 큰 힘을 들였다"고 하니... 그 정도면 될 거 같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대안을 제시해 주지 못한 것은 아쉽고 또 아쉬운 대목. (의료생협 하나 솔깃한 게 있었는데 그마저도 말이 좋지 영 쉽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질문해 보았습니다. 영화에 일관되게 삽입된 '천장에서 떨어지는 낙숫물'은, '의료혜택'으로 이해해도 되겠느냐고. 그것도 맞고, 무엇보다 트리클다운 이론을 부정하고 싶었다고 합니다. 그제서야 뭐가 깨달아졌습니다만, 그 뒤로 이어지는 설명들은 역시 2% 부족했습니다. 낙숫물을 간신히 손으로 받아낼 수밖에 없는 지금, 그 손을 털어버려라, 그리고 물을 떨어뜨려 준다는 천장을 부셔버리자. 그리고 쏟아지는 물세례를 받아보자. 염원의 서정성을 담고 있기는 하지만, 리얼리스틱한 서사는 담보하지 못한 채 끝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설명을 해야 하는 순간 삽화라는 건 의미가 많이 없어지거든요. 그것까지도 총합하여 참말로 현직 의사가 바라본 냉엄한 현실(과 현실적 제작여건). 그리고 그렇기에 더더욱 부정하고 싶고 내부고발하지 않을 수 없는 저 멀겋게 허연 밀림.

평점은 매기지 않습니다.
11월 초에는 이 영화가 제대로 배급되는 걸 보실 수 있을 듯합니다. 무조건 가서 돈 내고 보십쇼. 제작비 7천만원이었다 하니 독립다큐 손익분기 넘겨서 이슈를 만드는 걸 기어코 한번 보고 싶어요. 근데 저는 참 <앓던이> 번역도 그렇고 어째선지 의료복지 문제를 자꾸 접하게 되네요. 나중에 이 바닥으로 절 돌려막기 하실 일이 있으신가요...?



P.s 사정상 사진을 지우게 된 얼굴들은 극장 개봉관과 공동체상영을 찾아가셔서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근데 여러분 주변의 어르신들, 의사들, 환자들, 간호사들을 예상하시면 대략 맞습니다.
Posted by 엽토군
:


- 원래 개봉일에 보려고 했는데, 원래 개봉 날짜에는 사정이 안 좋았고 해서 그 다음 날 적당한 시간에 느긋하게 가서 보고 와야지 했습니다. 근데 웬걸 개봉이 하루 앞당겨지더군요-.-;; 그래서 웬만한 한애갤 햏들보다 무려 이틀이나 늦게, 시끄러운 단체관람 초글링들 속에 파묻혀서 관람. 시끄러워!


- 영화의 줄거리야 여러분 아시는 대로입니다. 씨암탉들이 노니는 마당을 바라보며 양계장 축사에 고개만 내밀고 모이만 쪼며 살던 감수성 풍부한 암탉 잎싹이 어느 날 드디어 폐사한 체해서 양계장을 탈출합니다. 나그네 청둥오리의 도움을 받고, 늪의 공인중개사 달수 수달을 만나고, 나그네가 첫만남 때부터 싸우고 있던 외눈박이 족제비 때문에 배우자를 잃고, 그녀가 남긴 알을 통해 자기 알을 품어보고 싶다던 잎싹이 드디어 알을 품게 되고, 나그네는 떠나고, 알이 깼는데 웬걸 병아리가 아니라 청둥오리 새끼입니다. 나그네 말대로 늪에 와서 살게 되었지만 아들은 엄마와는 다르게 하늘을 날고 싶어하게 되고... 하여간 한 시간 45분이 너무 짧은 그런 영화입니다. 정말 눈이 행복할 새도 없이 모든 게 순식간에 지나갑니다.


- 본론부터 말할게요.
이 이야기는 한 여자가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가는가를 가감 없이 보여줍니다. 그런 의미에서는 차라리 아동용이라기보단 페미니스틱하다 하겠습니다. 마당에만 나오면 될 줄 알았던 그녀의 앞에 마당은 없고 (이 부분이 전체 비중상으로는 매우 적게 나옵니다. 그런데 거기서도 잎싹의 감수성을 보여줄 건 다 보여줍니다. 여기서 여고생의 삶을 연상해버리면 이상한가요?) 닭을 파묻는 구덩이가 있고 빗물 새는 찔레덤불이 있고 늪이 있고 천적이 있는 야생이 나타납니다. 자식은 자기가 생각했던 마냥 귀엽기만 한 삐약삐약 병아리가 아니었고, 어느 새 머리가 커서 배냇머리가 자라고 보니 자기와 같은 벼슬이 달렸지 않음을 확인해야만 하죠. 게다가 본의 아니게 아비 없는 자식이 되어버렸고. 늪의 주민들은 냉담하고, 초록이가 따라가야 할 새떼에 초록이를 들여보내려면 그가 혹독한 순위경쟁을 해야 함을 알기에 미친 닭처럼 그의 발에 묶여 있던 리본을 끊어줍니다. 그리고 마침내는 피차일반 새끼 딸린 입장인 외눈박이에게 자기까지 내어줘 버리죠. 실로 이 땅의 20~30대 여자들, 어머니들, 고모들, 할머니들이 살아오는 방식에 다름없습니다. 그렇게 이해하면, 저는 <친절한 금자씨>를 제대로 본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만, 논란이 되었던 금자씨 포스터가 왜 나오게 되었는지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친절하다는 금자씨가 실은 결코 친절하지 않고 또 되도 않게 친절하려 애쓰는 모습 전혀 보여주지 않으면서 "너나 잘하세요" 으르는데다가 좀 '미친년' 같듯이 잎싹 또한 꼭 그러합니다. (게다가 두 여성 다 섹시해요 누구 말마따나) 그것은 아동용 애니메이션이라는 범주가 강요하고 자승자박을 해 온 여성상, 모성상, 주인공의 개념형에 전혀 매치하지 않는 것입니다. 여성이라면 일정량 이상의 매력을 뿜어주면서 독보적으로 돋보여야 하고, 어머니라면 자기 새끼에게 지극정성의 관심을 쏟으며 자기 새끼에게 자신을 헌신해 줘야 할 것 같고, 주인공이라면 스크린 위에서 죽어버려서는 안 되는 겁니다. 전부 다 배반해요. 그냥 잎싹이는 마음은 만년 소녀인 그런 여자예요(나만 그렇게 본 건 아니었어). 마치 금자씨가 영화제목(과 금자씨의 주변인물들의 기대)을 배반해 버리듯이.


문제는, 금자씨에게 그러했듯이, 이야기의 그 배반에도 당위가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아닌게아니라 영화를 따라가면서 생각해 보자니까 또 그게 오히려 말이 맞아요. 제 태에서 안 나온 자식을 키운다는 게 공익광고나 일일연속극에서처럼 마냥 극복되어 즐겁기만 한 생활은 아닐 거고, 세상에 좋은 놈과 나쁜 놈이 OX퀴즈 하듯이 딱 갈리는 것도 아닐 테고, 모성이라는 건 자기가 낳은 새끼를 사랑한다기보다 그냥 세상의 새끼들을 사랑하는 마음일 수도 있는 거고, 모든 등장인물들이 착한 애들로 돌아와서 대화합을 이룩하는 결말이 아니어도 되는 거예요. 물론 정말 기본적인 모자간의 애틋함이나 이야기가 주인공 위주로 돌아간다는 점 등의 룰은 기본적으로 지켜지지만, 그 외의 것에 대해서는 꽤나 불편하고 낯설 수 있습니다.


- 잎싹뿐 아니라 이 이야기 자체가 모든 전형성에 대한 관객의 일말의 기대를 단칼에 거절하고, 그것에 나름의 앞뒤 사연이 있음을 설득하면서, 가공되지 않은 삶은 그러면 어떻게 굴러가는가를 반추하게 만듭니다. 바로 그 점이 원작과 그 애니메이션 영화의 성과라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이 이야기를 디즈니가 받았다면 누구 말마따나 "둘이 행복하게 오손도손" 산다는, 오히려 더욱 말이 안 되는 그림으로 마무리지어 버렸을 수도 있고, 지브리가 받았다면 그림만 예쁜 판타지로 전향시켜 버렸을 수도 있는 거예요. 바로 그런 점에서 한국 애니메이션의 희망을 봤습니다. 일본도 미국도 하지 못할, 나쁘게 말해서 암울하고 좋게 말하자면 현실과 동떨어지지 않는 그래서 더욱 선명하게 다가오는 서사를 우리만의 어조와 색채와 허구적 움직임으로 보여줄 수 있으리라는 것.


- 비주얼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영화 본 직후에 간단히 쓰긴 했지만 잎싹과 달수로 대표되는 캐릭터 디자인도 웬만한 거물 스튜디오 못지않았고, 영상은 우포늪을 바라보며 그려서 그런가 더 칭찬할 말이 딱히 없을 지경이고 비행대결 씬은 모두가 극찬하듯이 작살납니다. 게다가 꼭 아름다운 것만 보여줄 이유는 없다는 듯 축사나 마당 등 사실 그렇게 아름답지만은 않은 곳에 대해서는 정말 지저분하게 보여줄 정도로 정직하기도 합니다. 연출은... 아까도 적었지만 사실은 좀 급해요. 어린이용이었다는 점이 이 점에서 너무 아쉽습니다. 조금만 더 생각할 여유를 줘 가면서 진행시켜도 좋았을 테지만... 뭐 다시 생각해 보면 이 정도도 적당한 길이인 건 맞습니다.


- 성우 문제는 사실 잘 모르겠어요. 솔직히 우리나라 더빙 업계에서 제대로 된 '아들래미' 연기란 게 있어본 적도 없다고 생각하고. 문소리 씨의 신음소리는 지병을 골골 앓는 소녀 돋는 암탉에게 의외로 잘 맞아떨어지면서 굉장히 섹시했습니다. 박철민 씨야 뭐 더 말할 것이 없고.
- 별점 다섯 개 만점에 다섯 개 반. 꼭 봐라 세번 봐라. 나중에 한국 애니메이션의 전환기를 상징하게 될 명작을 극장에서 못 봤다고 두고두고 한탄하고 싶지 않으시다면, 지금, 극장으로 달려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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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스크린샷들에 나와야 할 등장인물은 다 나온 듯(두더지 강도단과 박쥐들과 시장 빼고)

  • 내일 휴가복귀해야 되는구나, 하는 참담한 심정으로 혼자 수요일 낮 네 시에 강변CGV 8관 D05에 앉아서 봤습니다. 민간인일 땐 그렇게 서글픈 일이 아니었는데, 군인이고 솔로고 휴가복귀고 하니 이거 참 씁쓸하네요(...) 리뷰가 늦는 이유는 예약글을 해놓고 휴가복귀했기 때문이죠.(...)
  • 솔직히 좀 기대를 했었습니다. 토요일에 틀어주는 영화소개 프로그램에서 아주 잠깐 보고 국방일보에서 잠깐 봤을 뿐인데도 기대를 하게 만들었습니다. 예고편도 그다지 허풍을 떨지 않고 그냥 평범하게 보여주는 정도였는데도 이상하게 기대가 됐었습니다. 픽사가 아닌 곳에서 캐리비안의 해적 팀이 모여 만드는 조니 뎁 주연의 이야기는 대체 뭘까?
  • 그래서 영화의 시작 역시 다름아니라 기대에 부풀어 있는 관객들의 물음에 대답합니다. 올빼미 악단이 "랭고~ 랭고~"할 때 직감적으로, 아 이 이야기는 설명을 잘 해 주겠구나, 보기에 따라서 아주 유치하게 볼 수도 있겠는데, 하고 불안 반 안심 반이었습니다.
  • 주인들이 던져 준 장난감을 가지고 혼자 어항 속에서 수많은 촌극을 만들어 놀며 지루해하던 한 마리 카멜레온. 그래서 그는 '내가 누구냐고? 나는 아무나(anyone)다'라며 자랑스러워하다가도 왜 이렇게 액션이 없어? 하고 불평하다가... 사고로 미 대륙 황야의 고속도로 한복판에 내동댕이쳐집니다. 액션 시작.
  • 일단 영화 자체는 서부극에 대한 tribute로 느껴집니다. 일대일 권총 대결, 각종 소품과 복장과 건물들, "그럼 이제 달려야지"라며 황야를 말달리는 장면도 두세 번이나 나옵니다. 여기에 대수층 탐험, 비행 장면, 인간들의 세계와 무시무시한 속도의 불빛들이 횡행하는 고속도로와 그 너머 다른 세상(the another side)에 대한 묘사까지, 배경 설정 담당자는 이 모든 것을 그때그때에 충실하게 건설하고 있습니다.
  • 스토리는 생각하기에 따라서 대단히 상투적일 수도 있는 영웅의 탄생을 아주 모범적으로, 혹은 아주 독자적인 줄거리로 따라가게 합니다.
    처음 이 카멜레온에겐 이름도 없었습니다. 누굴 만나도 '당신 누구야?'라는 질문에 답할 말이 없어 그저 얼버무리지요. 마을에 도착해 멋모르고 처음 들어간 선술집에서 세 보이려고 '나는 아무나 될 수 있다'라는 생각에 술병을 흘깃 보는데, 'Durango'라는 이름이 적혀 있어서 그는 'Rango'가 됩니다. 그래서 스스로 허풍을 친 대로, 또 마을 사람들이 알아서 착각하고 소문을 부풀려주는 대로 그는 순순히 영웅, 보안관이 되어 갑니다. 처음 그는 실제로는 영웅이 아니었고 사실 뭣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하나의 막연함입니다. "Anything means nothing"이라는 말도 있는데 과연 그렇습니다.
    그러나 진짜 힘있는 독사가 나타나자 그는 무릎꿇는 자세로 내동댕이쳐지고, 보안관 뱃지는 떨어지고, 뒤도 돌아보지 못한 채 다시 황야를 걸어나가야만 합니다. 이제 그는 고속도로 건너편 저 세상으로 체념의 발걸음을 옮기며 스스로 대답합니다. "내가 누구냐고? 나는 아무도 아니다(nobody)." 이제 그 막연함은 정면으로 맞대면이 되고, 이 카멜레온은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이 고속도로 저편으로 건너가자마자 쓰러집니다. 그리고 거기서 서부의 수호신을 만나고, 해야 할 일을 깨닫고, 왜 그걸 굳이 또 하려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합니다. "이게 제 팔자니까요(that's what I'm gonna be)." 영웅이 되려는 자 아니 누군가가 되고 싶어하는 자는 반드시 이 질문에 대답하라는 감독의 메시지는 여기서 들립니다.
  • '물'이 절대적으로 모자라지만 예전엔 '물'이 넘쳐났다던 황야 마을을 바라보며 거북이 시장은 랭고에 말합니다.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려면 뭔가를 믿게 해야 하고 그래서 '물'을 통제하는 것이 곧 모든 통제를 뜻한다... 뚫린 수도관 아래서 마을 사람들은 다시 한 번 '물'이 콸콸 쏟아지길 바라며 종교의식 같은 것을 치릅니다. 시장이 뭔가 숨기고 있다고 의심하는 노처녀 콩스 양의 말을 듣고 다시 시장을 찾아갔을 때, 그는 쥐며느리 골프를 치며 마을 근처의 한 재개발 지역을 가리킵니다. "저게 미래라는 거야, 랭고. 따라오려면 따라오고 아니면 남들처럼 뒤처지게." 랭고가 고속도로 너머에서 보았던 것은 인간들이 만든 레저타운. 그 귀한 '물'을 스프링클러로 탁탁 뿌려 가며 광활하게 길러 놓은 그린 사이로 카트를 몰고 다니는 골퍼들, 그 너머로 재개발 지역과 똑같은 인상의 거대한 빌딩의 숲.
    이 영화에서 물은 '자본(자연자원이든 통화든 그때그때마다 의미를 겸임하는데)'을 의미합니다. 그렇게 읽으면 딱 들어맞습니다. 보면서 전율에 몸서리를 쳤습니다. 아, 이게 니켈로디언의 힘이고 미국이라는 문화강국의 힘이다, 전체이용가 작품에서 이런 이야기를 이렇게 쉽고 중심적으로 풀어줄 수 있나? 나는 왜 이런 걸 못 하지? 스토리텔링을 배워야지 않을까? 하고 제 눈이 저한테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것뿐 아니라도 수시로 보이는 전통극 같은 연기와 이따금 튀어나오는 상징적인 대사들이 '우리도 배울만큼 배웠어'라고 투덜거리는 각본팀의 불평을 그대로 전달해주고 있습니다.
  • 생쥐 소녀 진짜 귀여워요. 좀더 출연이 많았다거나 랭고와 관계가 더 깊었더라면, 솔직히 콩스 양은 별로였음. ㅋㅋ 로맨틱한 장면은 간혹 있지만, 전체이용가라 그런가 로맨스는 거의 없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 올빼미 악단은 생각보다 별로 안 웃겼음. 너무 극에 개입해버렸어요;; 초반부에 매를 피해 숨는 두 신이 있는데 그게 제일 재밌었던듯. 뒤로 갈수록 아주 진지한 영웅담이 되어버립니다. 아닌게아니라 나중에는 진짜로 총알 한 발로 건수를 해결하기도 하고요.
  • 별점 다섯 개 만점에 다섯 개. 월-E 이후로 적당히 진지하고 적당히 재밌고 적당히 부담없는, 좋은 전체이용가 3D 애니메이션 영화. 이런 걸 아무렇지도 않게 해내는 미국이 참말 부럽습니다. 고어 바빈스키, 기억해 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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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연못 포스터

얼굴 참 많다...

- 군부대 안에 있을 때도 소식을 접해듣고는 아, 이건 봐야 해, 하고 기억만 해뒀다가 나왔는데 개봉이 끝났다는 것 같아 시무룩하고 잊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자칭 지식외판원이라는 김PD님이랑 점심 먹을 스케줄이 파토난 차에 희한하게도 CGV에서 재개봉하는 걸 확인했습니다. 상영시간도 참 절묘하게 맞아요. 그래서 대신으로 질렀습니다. 그러고 나선 대학로 가서 디맥 테크니카 2를 해보다가 돈만 날리고 어슬렁어슬렁, 모과장님 만나서 짬뽕 먹고 크리스피 먹으면서 중얼중얼. 뭐 요즘 제가 그래요. 작년에 왔던 군바리 죽지도 않고 또 왔네.
- 90년대 어느 날부터인가 전해져 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깊은 산 오솔길 옆에 자그마한 연못이 하나 있는데요, 옛날엔 거기에 붕어가 두 마리 살더랬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둘이 서로 싸웠답니다. 한 마리는 결국 물 위로 떠올랐지요. 여린 살이 썩어들어가니 물도 따라 썩어들어가고, 결국 연못 속에선 아무 것도 살 수 없게 되었죠. 깊은 산 오솔길 옆 자그마한 연못엔 지금은 더러운 물만 고이고 아무것도 살지 않는다고. 지금은 이 이야기를 전해 주는 것이 그리 문제가 되지 않지만 예전엔 문제가 됐다고 하네요.
- 70년대 어느 날부터인가 전해져 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깊은 산에 대문바위골이란 마을이 있었는데, 전쟁중에 이 마을에서 쌀 모자라서 보도연맹이란 데 가입하고 쌀 받아간 한 가족이 산으로 도망갔더랍니다. 그랬는데 며칠 뒤에 미군들이 와서는 마을 사람들더러 전쟁이 벌어질 테니 다짜고짜 피난을 가라고 합니다. 뒷산 피난길에 오르려니까 다른 미군들이 와서 뒷산에 짱박혀 있지 말고 나가랍니다. 짐 싸서 나가고 있노라니까 다른 미군들이 와서 트럭 지나가야 하니까 비키라고 합니다. 철길로 비켜서 마냥 기다리고 있노라니까 다른 미군들이 와서 짐 열어보라고 하고는, 잠시 후에 명령을 받은 미군들이 저 멀리서 대민폭격을 실시합니다. 그거 피해서 바로 옆의 쌍굴다리 밑으로 피신해 있으려니까 밤새도록 무차별 집중 사격을 실시합니다. 산모가 몸 풀고 애를 낳는 마당에. 지금은 이 이야기를 전해드리는 것이 그리 문제가 되지 않지만, 예전엔 문제가 됐다고 하네요. 2005년까지만 해도.

- 명대사는 역시 "모르믄 가서 물으봐, 빨개이들헌티"와 "사람들이 왜 노래를 부르는지 알어?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는 건 싸우지 말자고 하는 거여." 아ㅅㅂ 보는내내 촌놈들의 동질감이 느껴져서 웃겨 죽을 뻔하다가... 비참해지더군요. 어쩜 그렇게 다들 컨트리들 한지;;;
- mofac studio가 참여했습니다. 어쩐지 폭격장면에 무게감이 없다 싶더니 CG를 생각보다 많이 넣은 거 같습니다.
- 음악은 별로 안 깔립니다. 대신 김민기의 노래들을 많이 깔아서 그걸로 감동을 전해요.
- 처음 상영하기 직전에 100명의 명단이 나옵니다. 필름 사주기 운동이 이렇게 진행이 되는구나! 대단하다고 느꼈습니다.
- 의외로 상영시간은 짧(게 느껴졌)습니다. 사람들의 얼굴이 많이 나옵니다.
피난중인 노근리 사람들

주인공도 엑스트라도 따로 없는 영화. 별로 많지도 않아요.


- 맨 위에 붙인 사진의 장면에서 전 처음부터 다리는 안 보고 하늘 쪽을 보고 있었는데, 아니 웬걸, 저쪽에서 이상한 그림자가 점점 다가옵니다. 잉 뭐지? 디지털 필름에 에러가 났나? 3D로 그린 고래가 막 다가오고 있지 않겠습니까? 저게 뭐야? 저게 뭐다냐? 그러다가 영화 다 끝날 때쯤에 또 저녁놀 지는 하늘에 고래가 날아다녀요. 저거 또 뭐다냐? 뭐라냐? 인터넷 리뷰들을 보고 아, 그런 거겠구나, 하고 모범답안을 알아 버렸지만, 제가 처음 받은 감상을 적도록 하지요. 하여튼 이 고래는 상투성과 일상성을 깨 보려는 대단히 의도적인 갑툭튀입니다. 이 이야기를 리얼로 느끼는 사람들에게는 예술적 허구성을, 실제 사건을 차용했을 뿐인 가공의 영화로 느끼는 사람들에게는 갑작스런 3D 그림을 보여줌으로서 그 밑의 시간을 실제적 기록으로 느끼도록 해줬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물론 이 영화에 작은 연못은 안 나옵니다(대문바위는 나오죠). 이 영화의 배경인 대문바위골과 노근리, 거기가 작은 연못인 거겠죠. 근데 또 원래 수사법에 있어서 별로 연관 없어 보이지만 관련을 지을 수는 있는 어떤 다른 딴 소리를 하는 것도 한 가지 기교이고 보면... 그냥 여러분 생각하시는 게 정답입니다.
- 이 영화가 슬펐던 건 사람들이 다 죽어나갔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들이 "어디루 가란 말유?"라고 묻고 있을 때 아무도 대답해 주지 않았다는 것과, 살아남은 사람들이 그래도 있었다는 것이 지독하게 슬펐습니다. 맞아요. 역사는 영화 시나리오 같지 않아서 고통이 한 시대의 막에서 한꺼번에 퇴장하지 않아요. 누군가는 살아남아서, 홀로 서서, 그 뼈가 찢어지는 듯한 기억을 되새기고 살아가지요. 저게 뭐야, 왜 다 안 죽었어, 저 사람들은 왜 안 죽은 거야, 이 씨바 도대체 이 땅의 역사란 건 우리한테 무슨 짓을 한 거냐, 거기서 왈칵 하고 눈물 뿜을 뻔.
- "나서지 말라." 제가 시위 좀 나가볼라치면 울 아부지가 하는 인삿말은 여기서부터 나왔던 모양입니다.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 중에 영웅은 없습니다. 다 고만고만한 사람들이고 "아 니가 나가봐" 서로 미루기 바쁩니다. 그게 촌놈들이거든요. 도대체 이 세상에선 왜 촌놈이 살질 못합니까? 두 눈 부라리고 비판하든지 아니면 두 눈 부라리고 영합하든지 해야만 좀 먹고살거나 좀 떳떳해질 수 있는 세상. 그냥 촌스럽게 무식하게 살다가는 쌍굴다리 밑에 쪼그리고 앉아 총이나 얻어맞는 세상. 씨바.
- 만약에 저였다면 다르게 연출했을 겁니다. 노근리라는 곳을 아무 생각 없이 취재 나간 다큐멘터리 제작팀이 이 전쟁에 휩쓸려서 노근리 사람들과 함께 죽어나가고 그게 무삭제판으로 공개되었다는 뭐 그런 컨셉의 가짜 다큐처럼 해 봤을 겁니다. 영화가 너무나 다큐멘터리의 관점을 취해요. 상업영화에서 볼 수 있는 극적인 요소는 쭉 빼고 CG를 동원해서 꼭 보여줘야 할 것만 보여줍니다. 기록영상의 기능을 하게 하려고 했던 것 같은데, 그럴 거면 좀더 '실제 있었던 일의 당시 기록' 같은 느낌이 나도록 했더라면 어땠을까, 한국전쟁의 비극을 아주공갈로 만들 셈이냐고 두드려 맞겠죠. 그래서 포기.

- 별 다섯 개 만점에 네 개 반. 나머지 절반은 무성의한 편집과 일관성 없는 그래픽이 깎아먹었습니다. 명배우 여러분, 수고 많이 하셨어요. 아무튼 나는 노근리 양민학살사건을 이 영화로 기억할 생각.

Posted by 엽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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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감상평 포스팅은 실로 오래간만에 쓰는군요. 감상평 못 올리고 그냥저냥 밀린 영화가 한둘이 아닌데 어떡하지? 옛날에 쓰다 만 소설이나 써야지(...)

스틸컷

한판 경기라는건 무슨 경기가 됐든 역시 잔뜩 모여야 재밌죠.

  • 돈도 없어 빌빌거리는 주제에 CGV왕십리까지 원정 나가서 봤습니다. 청소년 표로 끊었는데 티켓팅해 주는 직원분들은 그거 확인도 안 하시더구만요... 좋아 제대해서도 이대로 가는거야. (※그러면 못씁니다.) 의외로 어린이가 별로 없었고 의외로 화면이 7:4 정도의 애매한 비율이었습니다. 아니 왜! 혼자 간 바람에, 다른 사람이 왜 저러나 쳐다보는 것도 아랑곳않고 오그라드는 손발 다 오그라뜨려 가면서 봤습니다.
  • 자막 현상한 필름이었습니다... 디지털로 보고 싶었는데... 그것도 화면 오른쪽 끝에 아까부터 계속 비가 내리는 필름으로... 지못미 매드하우스. 근데 그렇다 하더라도 상관하지 않기로 한 것이, 정말 제작진이 무지하게 고생했겠더군요. 특히 막판 고스돕 때리는 장면은... "와, 이 정도는 되어야 극장에 가서 돈 내고 애니를 보는 거로군"의 깨달음을 주더이다.
  • 역시 동화 하청작업은 한국입니다. 이건 진리입니다. 특히 이렇게 움직임 강력한 애니라면 더 그렇죠. 근데 역자의 번역은, 아 얘가 시간이 모자랐나 왜 이럴까 싶은 번역... 누가 했더라? 아나 까먹었어 OTL 알면 저 좀 알려주세요
  • 캐릭터가 너무 많아서 이름은 절대 못 외우겠고 그냥 얼굴만 대강 익혔습니다. 근데 성이 실제로 진노우치인 분들한테서 양해는 구하고 시나리오 제작했겠죠? 뭐 일본이니까. 아 그리고 오프닝 음악이 전투적이어서 좋았네요. 오프닝 음악만 구해볼까.
  • 줄거리 곳곳에 대한 딴죽을 좀 걸죠. 서강대 철학과의 자의식과잉적 의무...
    - '무엇인가를 알고자 하는 욕구'를 인공 프로그램으로 돌린다면, 이 프로그램을 파괴하는 법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넌 뭐냐, 너는 너 자신에 대해 아느냐고 물어보면 됩니다. 인간도 이 질문 때문에 망가지는 사람 많은데 하물며 프로그램된 이성이라면 십중팔구 자폭합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다만 처음부터 등장하는 최종보스 캐릭터가 왜 있는지를 "뭐 그런 겁니다" 정도로 슬쩍 설명하고 넘어가려고 한 얘긴 거 같습니다. 전개에 문제 없으니 무효!
    - 결국 일본 애니메이션의 최대 맹점 중 하나가 세계의 중심이 일본이라는 발상인데 여기서도 여실히 나타납니다. 터져나오는 시스템적 문제는 일본에 국한되고, 전세계적 네트워크는 막판에 판돈 모자라니까 동원하는 정도고 말이죠. 일본어를 직역한 외국어 말풍선들도 대체 뭐부터 뭐라고 말해야 할지 감이 안 오는 발번역들 천지삐까리였고... 하다못해 고딕/명조 통일 정도는 해 달란 말이야!
    - '모든' 통신망이 OZ 하나로 통합되어 있어서 이런 만화 같은 소동이 벌어졌다는 설정에 대하여, 현실적인 관점에서 심각하게 문제를 제기하는 바입니다. 그럴 리 없습니다. 리스크는 당연히 분산하는 것이고, 회선 설계하시는 공학자들과 시장을 나눠먹어 보려는 제2군 기업들이 둘 이상의 네트워크 체계를 그렇게 간단히 단일화할 리 없는 것입니다. 뭐 근데 그래야만 다음 얘기가 진행이 되므로 무효.
    - 아직도 안 풀리는 의문인데 슈퍼컴퓨터는 고장 안 났나요? 하다못해 얼음들 다시 옮겨세우는 장면을 2초라도 보여 줬더라면 이런 거 안 적어도 되는데. 그리고 언제부터 통화가 가능해졌더라? 뭐 할머니의 전화기는 수동식이니 계정이 필요없다고 치더라도.
    ...이거 뭐 인젠 철학과가 뭔 상관이냐 싶은 딴죽들밖에 없으니 그만할께요. 세계 위기가 닥친다는 얘기에서 사실 되게 쫄았는데(과연 어떻게 가상현실을 예찬해줄 것가 하고...) 이 정도면 봐줄만하게 그럴싸하네요.
  • 이 영화가 주는 교훈은 아래와 같습니다.
    1. 친척 좋아하지 말자. 나중에 졸래 창피하다.
    2. 인맥과 아날로그와 가위바위보와 고스톱은 인생에 있어 중요하다. (그러고 보니 닌텐도의 입김이 느껴지는군요. 화투짝도 그렇고 대놓고 등장하는 DS도 그렇고.)
    3. 남자라면 코피가 나는지 마는지 모르도록 눈 부라리고 덤벼들 수 있는 일이 있어야 한다.
    4. 사실 이 애니메이션은 각종 통신사들이 앞으로 사회를 어떻게 쥐락펴락할 수 있게 되는지에 대한 계몽영화다.
    5. 세상에서 제일 비참한 것은 배가 고픈 것과 외톨이가 되는 것이다.
    6. 누군가가 암호를 보내 오면, 아무리 쉬워도 함부로 풀지 말고 우선 발신자부터 확인하자.
  • 영화 캐릭터들 중 무려 세 명(켄지, 와비스케, 카즈마)이나 '뭐가 되려다 안 된' 사람들이 나옵니다. 제 멋대로의 해석이지만 그게 이 영화의 주된 곁가지 주제 중 하나라고 봅니다. 그것은 한없이 필연적이지만 어쨌든 가족만이 메꿔줄 수 있는 현대인의 영원한 한구석이라는 이야기. "당신 할 수 있잖수."라며 전화를 돌리는 할머니, "우리가 붙어 있으니 쫄지 말어! 너밖에 못 푸는 거잖아?"라고 격려하는 남의 집 가족들.
  • 명대사? "뭐, 일단 다들 좀 침착해라." 뭘 어떻게 침착해, 이렇게 텐션 높은 얘기에!
  • 한동안 애니메이션 작품이 뜸했더랬습니다. 방학 시즌을 기다렸던 걸까요. 암튼 UP도 보고 이것도 봤으니 일단 해소는 했고, 만족스럽게 봤습니다. 이제 동인 팬아트와 소장용 rip만 기다리면 되는건가요. (※그러면 못씁니다.)
  • 평점을 매기겠습니다. 개노가다 뛰었을 CG에 1점, 진노우치 가족의 스펙터클함에 0.5점, 겐지에게 0.5점, 나츠키와 그 아바타에게 1점, 킹 카즈마에게 1점 그리고 이케자와 카즈마에게 1점, 도합 5점 만점에 5점. 일본 애니를 싫어하지 않으시는 모든 분들을 위하여 감히 추천!
  • P.s: 594929405. 8*34533292027*66813283397*661705*292*3. (힌트: 청록색 단문)
Posted by 엽토군
:

예고편에 나가는 음악은 Aquarela do Brasil이라네요. SiCKO 예고편에서도 같은 게 쓰였죠. 정확히 어느 아티스트 껀진 모르지만...
  • 혼자 봤습니다! 결국 봤습니다! 그렇게 재밌다길래 벼르다가 끝내 봤습니다! 내가 왜 팝콘 대짜를 CGV포인트로 샀지? 왜 그런 짓을 했지?
  • 전체이용가인데도 불구하고 애들이 없는 건 제가 아침 시간대를 골라서였을까요? 덕분에 E08 자리에서 시원스럽게 어른 관객들 틈에서 재미나게 봤습니다.
  • 이 블로그에 Presto를 올린 적이 있습니다. 불찰이었습니다.(...)
  • 처음 이 영화를 알게 된 건 티저광고였습니다. 월-E가 진공청소기를 보고 이게 뭐냐 하다가 야단을 내는 그림이었지요. 그걸 보고 직감한 건―이 영화 말 안 하겠구나.―였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초반 상황설정을 보여주는 5분간의 조용한 세상과 홀로그램 스크린. 훌륭한 무음의 광경에 감탄했습니다. 과연 어떻게 무언극을 펼쳐줄까? 기대했는데 결국은 사람들이 나오는군요. 괜찮아요! 그 정도면 모든 연령대가 이해할 수 있을 거예요(...)
  • 5년 동안 항해할 계획이었던 순양함이 무슨 그런 세월을... 월-E는 날짜 감각은 있었을까요? 하긴 있었더라도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을 테지요.
  • 월-E는 신기하고 이브는 예쁩니다. 각종 메카닉 디자인이 역시 미국 전체이용가 그래픽답습니다. 나중에 광고지를 다시 보니 월-E가 장난 아니게 녹슬어 있던데, 그 디자인 최종컨펌 낸다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밤낮 매달렸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브는, 단순 탐사용으로 쓰기엔 너무 보기 좋게 만들어놨군요. 근데 생각해 보니 갈수록 감정이 확확 드러나는 게, 츤데레?(...)
  • 제일 웃겼던 장면은... 월-E가 모의 이마빡에 때를 비벼주는 장면. 관객 일동이 다 웃었어요.
    제일 로맨스다웠던 장면은, 음 아마도 이브가 보안카메라 영상을 뒤늦게 보는 장면.
    제일 눈이 행복했던 장면은 역시 우주를 날아다니는 시간들. 액시엄(우리말로는 '공리호'쯤 되겠군요)까지 가는 길, 월-E와 이브의 자유활공(?) 등이 기억이 나네요.
  • 이 영화를 보면서 이디어크라시를 떠올리면 지는 겁니다(이거 온가족 오락영화라니까요). 물론 영화의 마지막까지 등장하는 BnL이라는 초거대 기업이 강력한 영향을 행사하고 있긴 하지만. 정말이지 보고 있노라면 실소가 나올 정도로 어마어마한 기업입니다. 그런 게 이 영화의 풍자겠죠.
  • 자본과 이기심이 지구를 망친다는 기본개념을 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픽사는 인류를 끝까지 긍정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BnL이라는 비인간적 거대 기업의 순양함에 무슨 이유로 지구에 대한 각종 백과정보가 입력되어 있는지 이해할 길이 없습니다. 섭리와 아름다움으로 찬란하게 영광을 드러내는 우리의 지구는, 몸만 큰 아기들처럼 아둔해진 인간을 마침내 두 발로 서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전체이용가 영화가 말해야 하는 것이기도 하고요.
  • 그런 맥락에서 좀더 살펴보자면, 월-E는 우리의 터전 지구의 명령어를 입력받은 친구입니다. 대기업의 회장은 비디오를 여러 장 찍어둡니다. "축하하네! 이제 지구에서 살 수 있어!"라고 반갑게 말한 뒤 "귀환 게획은 포기한다, 항해를 계속하게, 뭣들 해? 빨리 가자고"라며 마스크 끼고 나가는 그런 인간이 있지만, 월-E는 그 세월을 견디며 끝없이 땅을 정화해 나갑니다. 그래서 제일 먼저 신발 속의 싹(식물)을 찾아내는 것도 월-E지요.
  • 기왕 말 나온 김에 막말을 더 해보죠. 신발은 인간의 노동을 의미합니다. 흙을 밟고 굳게 서서 다 낡아빠질 때까지 힘써 일하는, 인류의 오랜 직무의 상징입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지구는 인류의 존재를 긍정하고 싹을 틔워준 것이지요. 크레딧에서 하필 신발과 싹이 한 번 더 나오는 이유는 그걸 말하고 싶었기 때문 아닐까요.
    어린이도 보는 영화를 보며 이런 상징이니 뭐니 하는 건 웃기는 얘깁니다. 위에 쓴 거 다 잊어버리시고 그냥 한번 보세요.
  • 엔딩크레딧. 기가 막히는 재치였습니다. 인류 역사가 다시 시작된다고 말하는군요. 그걸로 에필로그를 대신하다니. 크레딧롤 끝까지 보도록 하세요. 끝까지.
  • 별점 다섯 개 만점에 다섯 개. 객석에서 일어나면서 "아, 좋은 영화 봤다"라고 칭찬이 저절로 나옵니다. 다시 보고 싶어집니다.
  • 아래는 음악선물 하나. 엔딩크레딧 노래입니다.

P.s
9월 개봉한다는 '살아있는 지구' 극장판 함께 보실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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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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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프리카가 토키타와 히무로를 구하기 위해 그들의 꿈으로 들어가는 장면

그 유명한 스틸샷. 이 한 장면을 잊지 못해 찾아서 보게 되었습니다.

- 결국 OST까지 구하고 말았네요. 몽환적 분위기를 일부러 연출한 기계음임에도 불구하고 다운받아 버리는 건 역시 영상의 힘.

- 뇌파 분석을 통해 남의 꿈을 공유한다는 아이디어를 실현시킨 사람들. 그걸 이용해 정신치료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그들, 그러나 그걸 문제삼는 이사장과 히무로. 그리고 소장님부터 시작해서 꿈과 현실을 완전히 헷갈리는 사람들이 속출!? 뭐 그런 이야기입니다.
- 줄거리를 꼬치꼬치 쓰고 싶진 않네요. 귀찮고, 꿈 같으니까. ;;;

- 첫 부분, 스텝롤 나가는 장면이 아주 좋았습니다.
오프닝 시퀀스

영사기로 쏜 것처럼 글자들을 보여 줍니다. 이런 효과 좋아요

- "욕망을 분출한다는 점에서 인터넷이나 꿈이나 비슷하지 않아요?"라는 대사가 있는 작품입니다. 그런 영화의 공식홈페이지는 어떨까요? 이하는 공식사이트를 200%로 즐기는 공략법입니다.
radioclub.jp로 처음 들어가면 "DC미니가 없음 못 봐"라는 페이지가 뜹니다. 아무 링크나 누르면 소니 배급사에서 마련한 공식사이트 인덱스가 뜨는데요, 메인으로 들어가 줍니다. 스토리에서 DCミニ라는 빨간 글자를 눌러 줍니다. 그 다음 캐스트의 네 번째(토키타)로 들어가서, 반짝이는 DC미니를 누릅니다. Yes 누르면 드디어 진짜 radioclub.jp로 들어갑니다. 이것저것 즐겨 보세요.(파프리카 갤러리나 꿈 진단 등이 있습니다. 나중에 언제든 다시 입장할 수 있습니다. 쿠키를 구워주나 봅니다.) 그리고 창을 닫고 나면 공식사이트가 미쳐 있습니다. 이것저것 뒤죽박죽된 것을 즐기신 다음엔 캐스트로 들어가서 두 번째 캐릭터(이사장)의 머리에 붙은 DC미니를 눌러 그걸 뺏습니다. 또 마지막 캐릭터의 머리에 붙은 DC미니도 빼앗습니다. 그러면 각성 OK 창이 뜨는데 OK를 눌러주세요. 3초 기다리면 다시 멀쩡한 공식사이트가 뜹니다. 다만 이번엔 '배경화면 다운로드' 보너스가 열려 있지요.
파프리카 공식사이트의 엄청난 이스터에그, 정말 감탄의 연발이었습니다. 영화의 줄거리를 아주 제대로 반영했더군요. 한번 해보세요.
- 화면이 전체적으로 빨갛습니다. 캡쳐한 것과는 다르게, 꿈이 들어가는 본격적인 이야기의 장면들에서는 시종일관 붉은 색조입니다.
- 맨 마지막 영화관 포스터들, 사토시 감독의 마지막 장난이었냐! 어쩐지!
- 작화가 극장용이라서 그런지 끝내줍니다. 꿈의 그림을 어떻게 그려낼까? 엄한 걸 아무렇지도 않게 그려요. 다 꿈이라는 전제 하에서 온갖 재미난 연출들을 해 보는 매드하우스.
소장 영감의 폭주 후 혼자 걷는 아츠코

왼쪽이 치바 아츠코, 오른쪽이 파프리카. 성우는 동일인물(하야시바라 메구미).

- 원작소설은 놀랍게도 라디오 클럽의 두 직원들이 꾸는 꿈이라는 설정이고, 그래서 그 둘 중 점장 역에 콘 사토시 총감독, 웨이터 역에 츠츠이 야스타카 원작자가 목소리 출연했다나 봅니다. 자기들이 만든 세상이라 이거지? 대단하다.
- 극장에서 봤더라면 정말 좋았을 텐데. 그랬다면 아주 열심히 썼을 텐데.

- 스토리 전체적으로 말하고 있는 꿈이란 시어로서의 꿈이기도 하지만 프로이트가 말하는 꿈이기도 합니다. 게다가 나중에 가서는 과학적인 어떤 실현으로까지 확장되지요. 다만 '세상'에 대해서는 별로 확장하지 않습니다. 별다른 캐릭터 추가도 없이 이야기를 그 안에서 끝냅니다.
- 그림자에겐 빛, 꿈에겐 현실, 남자에겐... 여자!? 약간 매운 맛을 쳐서... 파프리카!? 그 말이 하고 싶었던 거냐?!
- 도라에몽 같은 명랑만화에선 '다른 사람의 꿈을 같이 꾼다'라는 상상을, 말썽을 부리다 엄마한테 야단맞는 딱 그 선에서 멈추지요. 실제로 토키타도 개발은 해놨지만 뒷일이라든가 책임 같은 어른의 얘기엔 관심 없는 애어른으로 나오잖아요? 하지만 그 상상을 멈추지 않고 본격적으로 틀면, 영화 안에서도 보여주듯이, 이런 엄청난 사태가 되어 버립니다.
- 영화 안에서 나비가 많이 나옵니다. 호접몽이라는 말이라도 하고 싶은 건가? 그건 안 하더군요. 그냥 벽에 걸려 있던 스핑크스 그림 등, 일종의 상징물로만 알고 있겠습니다.
- 꿈이 보통 완결이 나지 않는다는 데에서 이야기 마무리의 착상을 지었던 거 같습니다. 코나카와의 이야기에서도, 꼭 '다음은 어쩔 거야?'라는 물음과 함께 끝나는 그 미완의 꿈을, 어쨌든 끝을 내고, 그 뒤로 친구의 박수갈채를 받고 결말을 짓지요. 그게 필요한 거 같아요. 결말을 짓는다. 그게 이 땅에서 꿈을 깬 사람들이 해야 할 일.
코나카와 형사가 혼자 보고 있는 '그 녀석'

「嘘から出た真じゃないか、大事にしろよ」

- 꿈이라는 단어는 말이 많습니다. 뻑하면 아무렇게나 결말을 내느라고 꿈을 가져다 쓰고, 어른들은 애들한테 꿈과 희망을 팔아치우고, 자칫하면 꿈을 가장한 허황된 욕망으로 변절할 수도 있고.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꿈을 꾸는 것을 영 막지 못할 이유는, 혼자만의 해방이 가능하기 때문이고 어떤 계시가 내려올 수 있기 때문일 겁니다. 무슨 잠꼬대야...?

- 별점 다섯 개 만점에 네 개 반. 매드하우스 완전 용썼네. 언젠가 다시 그리워질 한 편의 꿈. 인터넷을 뒤져 보니 츠츠이 씨가 이것저것 베끼지 않았느냐는 의혹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괜찮아요! 전 원작은 보지 않으니까요(...)
- 볼 만한 애니를 찾아다니는 시즌이 또 돌아왔어요. 흑흑...

Posted by 엽토군
:
패스트푸드의 제국(2006)에서

퀴즈 하나. 오른쪽의 아이들은 장차 어떻게 될까요? 리뷰를 읽으시면서 아실 수 있습니다.

- 닥갤에서 추천받아서 받았습니다. 광고문구는 '화씨9/11 이래로 미국에 가장 큰 돌풍을 일으킬 문제작'이라고 하더군요. 화씨9/11이랑 대질 않나, 닥갤러가 권해주질 않나, 해서 일단 다큐겠거니 하고 받았습니다. 웬걸, 아주 멋진, 논픽션보다 더 심각한 픽션.

- 크게 세 줄거리가 있습니다. 순전히 영업의 차원에서만 미키햄버거를 먹어 왔던 영업사원 라울은 햄버거 고기에 관한 소문을 듣게 되고 진실을 찾기 위해 가축농장, 공장, 그 주변에 사는 고기 제조 경험자들 등을 만납니다. 다른 줄거리는, 남쪽에서 월경을 해서 미국으로 들어오는 라틴아메리카계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살던 동네에서보다 돈을 더 준다는 이유로 햄버거 공장에서 일을 하죠. 실비아와 코코라는 두 여성이 주된 등장인물이고요. 나머지 하나의 줄거리는, 햄버거 가게에서 일하는 젊은이들의 이야기입니다. 각종 위험과 비인간적인 대접에 눈뜨고 점점 어떤 행동을 취하기 위해 노력하죠.

- 라울의 이야기를 하자면... 진실을 알고 싶어하는 아주 평범한 교양인을 대변하는 인물입니다. 하지만 그에게 견학되는 고기 공장은 다 만들어진 고기를 검사하고 포장하는 곳뿐이죠. 그 공장에서 일한 적 있는 노인이 그에게 기가 찬다는 듯이 묻습니다. "무릎 높이까지 차는 피 속에 들어가 본 적이 있소?" 물론 햄버거를 소고기 덩어리와 바닥에 잠깐 떨군 식재료 일체 그리고 '알바생이 뱉는 침'으로 생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는 일반인에게 있어 그건... 직접 다가오지 않는 하나의 막연함일 뿐입니다. 다만 이건 좀 안 되겠다는 생각만 어렴풋이 하고 말죠.
-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하자면, 그들도 공장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현장에서 패스트푸드 나라에 근부하면서 그들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를 목격합니다. 감시 카메라가 달려 있고, 자기들 스스로가 너무나 비위생적인 음식을 팔고 있고, 가게 문 여는 아침때 강도가 들이닥칠 걱정을 해야 하고... 급기야 일 잘 하던 카운터 여학생은 별다른 이유 없이 일을 그만두고, 사회문제를 고민하는 클럽에 들어갑니다. 노상 토론하고 궁리하고 마침내 어떤 작은 행동까지 벌입니다. 그렇지만... 자세한 건 말하지 않는 게 좋겠네요.
- 가장 큰 줄거리인 라틴계 사람들 이야기를 해야겠습니다. 목숨을 걸고 지루한 시간을 거쳐 국경을 넘습니다. 어떤 어린아이는 허허벌판을 걸어가다가 버려진 신발 한 짝을 발견하고 갖고 싶다고 조릅니다. 길잡이인 어른은 그냥 가라고 한 뒤, 따로 그 신발을 향해 십자가를 그립니다. 아무튼 이렇게 월경을 하고 나면 호텔방 한 칸에 열몇 명이 수납됩니다. 젊은 여자들도 돈을 벌기 위해 근처의 햄버거 고기 공장으로 들어갑니다.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험하고 역겨운 일이 기다리는 그 생산라인에서, 여자들은 급기야 몸을 팔아 일자리를 얻기에 이릅니다.

- 이 영화 보는 내내 18세겠다 18세겠다 했는데 정말 18세. 하지만 괜찮아요! 필요해서 넣은 선정성 및 참혹성이라면 참겠어요! (...)
-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찾아보니 웬걸 영화리뷰 사이트에 광고가 뜨네요. iMDB 보니깐 우리나라에서 7월 10일 개봉이라네요. 하지만 괜찮아요! 적극 추천해서 더 많은 사람들이 보게 만들 거니까요(...)

- 안전도구를 착용하는 장면이나 공장 내부를 꽤나 긴 시간을 할애해서 보여 줍니다. 관광자가 아닌 노동자들이 보는 광경을 보여주고 싶었던 거겠죠.
- 세 이야기는 전혀 엮이지 않습니다. 라울은 기껏해야 그 카운터 여학생과 처음 만나 잡담을 좀 했을 뿐이고, 공장 그것도 맨 뒤꽁무니 가장 깨끗한 곳만 한 번 휙 둘러보고 말았을 뿐입니다.
-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지극히 현실적인 전개와 대화만을 넣어놓아서 오히려 더 참담하기만 합니다. 원작자는 다큐멘터리가 더 논리적이니까 그런 걸 만들고 싶었지만 결국 필봉을 휘둘러 원작을 썼다고 하죠. 영업사원 라울이 고기 공장 중역 대머리 아저씨에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식으로 질문하자, 그 중역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우리가 먹는 것엔 뭐든지 아주 조금씩이지만 똥이 들어가 있을 수도 있어요. 교통사고가 얼마나 많이 나는 줄 알아요? 이건 아무것도 아니요."
그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거지요.
- 현실적인 건 젊은이들의 행동 역시 마찬가집니다. 노상 노가리만 까요. 아니면 기껏해야 항의서한만 쓰겠다는 정도고. 물론 과격파도 있죠. 그래서 결국은 소떼를 가둬놓은 울타리를 부수러 갑니다. 그렇지만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 장면에서 우리는 이상(적인 소)과 현실(의 사육된 소)의 괴리를 볼 수 있습니다.
- 무엇보다 과장되었으리라고 생각하기 힘들어지는 건 라틴계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사고로 다리를 잃어버리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앞에서 이미 노인이 말한 바 있습니다. "거기선 사람들이 예삿일로 다쳐요." 또 여자들은 조금만 예쁘장하다 하면 감독직 남자의 트럭으로 불려갑니다. 그것이 결코 좋지 않음을 알면서도, 나중에는 "내가 그를 한 번 만나 보면 아마 너한테 일자리를 줄 거야"라며 이용하려는 자세까지 보입니다. 물론 그건 철저히 이용당하고 있는 것일 뿐이지만요.
- 가장 감명깊었던 장면은 역시 도축장 장면일 겁니다. '왜 쇠고기 공장을 다루는 영화에서 도축장 같은 명소(?)를 안 보여줄까' 했는데, 그건 점층법 때문이더군요. 피가 끝없이 튀기는 그 역겨운 공간에서 한 여자는 콩팥을 제거하는 일을 하게 됩니다. 근무처까지 지나가며 보는 광경들은 백색의 공간 속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시뻘건 선지를 쏟아내고... 고참은 '몸으로 익히면 별로 어렵지 않다'라고 아무렇지 않게 말하지만, 여자는 자꾸만 흘러들어오는 내장들을 큰 눈으로 바라보며... 말없이 눈물을 흘립니다.

- 세 이야기의 갈래가 전혀 엮이지 않는 것은, 그것이 또 하나의 현실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노동자, 사용자, 제3자가 서로에 대해 전혀 상관하지 않고 독자적인 세상을 꾸려나가고 있고, 그래서 세상은 점점 즉석식품의 나라가 되고 있노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 맨 마지막, 먼저 건너온 라틴계 사람들의 자식들로 보이는 아이들과 어른들이 함께 또 월담을 합니다. 그들을 맞는 운전사가 이번에도 총을 보여줄 건가 했더니, 미키 빅원 햄버거를 내밉니다. "미국에 온 걸 환영한다"라며 그 어린이들이 알고 있는 미국, 미키 빅원 햄버거를 내밉니다. 그 아이들이 장차 배울 미국은 어떤 나라일까요? 그렇죠. 패스트푸드 네이션입니다.

- 별점 다섯 개 만점에 네 개. 픽션이면 약간 재미도 넣어 줘야지 이건 뭐 보는 내내 다큐 보는 기분이었으므로. 학생들 가르치기엔 딱 좋은 영화지만, CGV 같은 멀티플렉스에서 개봉하기엔 솔직히 무리가 있습니다.
- 다음 리뷰는 슈퍼사이즈미가 될 거 같습니다. 요새 햄버거 관련 작품만 봐서 그런지 햄버거 하나쯤 사먹고 싶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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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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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OCN에서 틀어준걸 이제야 봤다. 감동이다.

"우리 집은 돈이 필요해요."
"찰리, 이리온."
"네."
"찰리, 돈은 세상에 아주 많단다. 매일같이 찍어내지. 하지만 그 황금 티켓은 세상에 5장밖에 없어. 그 흔한 돈 때문에 그렇게 귀한 걸 포기할 사람은 바보밖에 없지. 너 바보냐?"
"아뇨."
"그럼 가서 이 닦고 바지 털어! 갈 준비를 해야지!"

당연한 이야기를 당연하게 그린다. 마루카와 선생님도 한 말이지만 전체이용가(흔히 말하는 어린이용) 작품들은 그렇게 되어야 할 일이다. 잘 만든 전체이용가 하나가 대히트 상업영화 열 편이 못 말할 것을 말한다.
개인적으로 윌리 웡카에 많은 시선이 갔다. 웃고 싶어하고, 세상 모든 개념을 초콜릿과 연관짓고, 몸이나 마음이나 아주 자유분방하다. 하지만 여전히 찰리의 많지도 않은 몇 마디 말에 자신이 놓친 것에 대해 되돌아보고 만다. 포스터에서 본 조니 뎁의 이미지는 여자 같았는데(...)

스틸샷

제일 오른쪽의 지리선생님 생긴게 완전 우스이다ㅋㅋㅋ

찰리, 평범함의 미덕을 지닌 바른 소년.
초콜릿 공장, 뭐든지 다 이루어지고 별 문제도 일어나지 않는 머릿속 같은 세상.
윌리 웡카, 과거를 뒤로하고 꿈만 보고 달려온 사람, 그래서 꿈에 대해선 천재지만 다른 것에는 늘 어색한.
찰리를 뺀 네 어린이들, 무한한 상상 같은 그 공장에서마저 무언가에 완전히 갇혀 있는 애늙은이들.
그 넷의 부모들, 사실은 자기 아이들을 잘 모르는 사람들.
그리고 소년 시절의 대부분이 우울했다는 팀 버튼, 그 표현은 지식채널e 작가가 기획안 쓸 때 의도적으로 넣은 표현일 뿐.

별 네 개 반. 의외로 다른 사람들의 평은 짜다. 듣고 보니 다섯개까지 가긴 좀 힘들겠더라. 동화가 숫제 아이들만 위한 거라는 생각, 사실 아주 옳기만 한 건 아니다. 어린이들에게 동화를 읽어주려면 우선 어른이 그 이야기를 동화로가 아니라 어엿한 '이야기'로 읽을 줄 알아야 하고, 동화를 쓰는 것 역시 어른이다. 권정생, 최규석, 김규항 세 사람이 공통으로 하는 말이 있다. '어린이들에게 뭔가를 감추려고 해서만은 안 된다'.
원작동화가 베스트셀러라는 거지? 원작은 좀 기괴하다는데 왜 이 영화는 살짝 우스울까. 개인적으로 공장 문 열리고 인형들 타죽는 장면이 좀 웃겼다. 혹자는 괴기라고 표현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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