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리뷰는 순전히 영화를 본 직후의 기억이 휘발되기 전에 적어놓으려는 의도이고 따라서 해석/표현상의 균열이 많을 것 같습니다. 그러고보니 영화리뷰 블로그글 무지하게 오랜만에 쓰네. 돼지의왕 두개의문도 (고의반 무심결반으로) 안썼는데...
- 기왕 볼 거면 GV의 기회를 타서 보자 싶어서, 전날 자정을 넘기도록 치맥과 노래방을 달린 몸을 아침 여덟시에 일으켜, 시간을 잘못 알고 있었다는 걸 확인하고, 탱자탱자 놀다가 대충 아무거나 주워 입고 '무슨 질문을 해야 할까', '버스를 타고 간다는 계획은 잘못된 게 아닐까' 초조해하며 인디플러스에 가까스로 상영 15분 전에 도착, 미리 편의점에서 밥을 먹어놓고 표를 끊고 극장 내 정수기에서 식수를 받아 들어갔더니 관객이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 (정말 너무하더이다... 심지어 이소선 어머니 다큐보다도 사람이 없더라는) 그래서 감독님께 "<두 개의 문>이랑 경쟁하게 되어서 아쉽습니다" 했지요. (돌아오는 답은 역시나 "그게 더 흥행해야지요.")
- 안 먹던 알콜을 사람들 오랜만에 본 기분에 취해 몇 잔을 마신 걸까? 전 제가 오늘 아침 못 일어날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극장에서도 꾸벅꾸벅 졸 줄 알았죠. 첫번째 껀 아니었는데 두번째 껀 영락없이. 중간의 아까운 10~15분을 결국 꼴깍 잠들어버린.
- 이 리뷰에서 큰따옴표("")된 것은 전부 오늘 GV때의 김경만 감독님 발언입니다. 아 참고로 감독님 생긴게 실제와 사진이 똑같습니다. 이렇게 인상이 평범한 독립영화 감독은 처음 봐요. (...)
- 영화는, 감독이 의도한 바는 아니겠지만 관객 입장에서 간편하게 기억해 보자면, 크게 2부로 나뉩니다. 역사 시간과 사회 시간. 1교시엔 지루한 흑백화면과 요즘의 자료화면을 알기 쉽게 교차로 보여주며 처음의 차이코프스키 음악을 빼고는 시종일관 <대한늬우스> 식의 팡파레 BGM이 일관되는(팡파레에 대해 한 번도 부정적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약 50여 분간 팡파레만 울려퍼지는 자료화면을 보고 있으면 짜증이 나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미국에 가서 머리 조아렸다는 뉴스를 시간 순서대로 보여줍니다. 그렇게 쭉 이어지다가 영어마을 이야기로 넘어가면 그때부터 2교시가 시작되는데 여기서는 영어 얘기, 기독교 얘기가 비슷한 비중으로 집요하게 다루어집니다. 그렇게 두 개 교과는 하나의 학습목표를 달성케 합니다. '미국이 성명학적으로는 아름다운 국가일지 모르되 과연 실증적으로는 무엇으로 분석되는가를 자기만의 대답으로 대답할 수 있다.'
- 영화의 카메라워크는 좋게 말하면 지독하게 끈기있고 나쁘게 말하면 지독하게 비타협적입니다. 감독이 직접 찍은 footage들을 보고 있으면, 잘만 하면 CCTV로도 다큐멘터리를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 정도입니다. 제 기억에는 딱 한 번, 활빈단 할아버지가 앵글에 다 들어오지 않아서 잠깐 오른쪽 아래로 움직인 그 정도. 그나마 그 후에 할아버지가 사라진 뒤에도 원위치로 돌아오지 않아요.
이것은 집념 내지 똥고집인가? 저는 그렇게 보지 않았습니다. 이 캡쳐에서도 어느 정도 느낄 수 있는데, 아주 신기하게도, 감독이 의도한 결과인지는 모르지만, 특히 이 씬은 배경의 관중과 거리, 군악대의 행렬 그리고 이 할아버지라는 세 개의 서로 다른 존재를 합성시켜 놓은 것 같은 착각을 줍니다. 심지어 영상으로 보아도 정말 그렇게 보입니다. (상상해 보세요. 저 멀리 길 건너에 사람들이 조그맣게 여러 명 서 있고 아무 것도 없다가 일정한 속도로 끝없이 이어지는 군악대가 왼쪽으로 지나가고 있는데 뒤이어 저 할아버지가 카메라 뒤에서 전혀 다른 속도로 등장합니다. 야 이건 진짜 연출을 해도 얻기 힘든 장면인데.)
이것은 좀더 과대해석해도 좋은 지점인 것 같았습니다. 첫째 이 신은 감독님 본인이 직접 말하듯이 배경의 대로변으로 대표되는 '이 세계는 사실상 내용적으로 공허'하고, 다만 그렇기 때문에 우악스럽게 잘 연주하지도 못하는 군악대를 합성시켜 넣었더니 '수은불망'을 들고 나오는 할아버지가 부가 생산되더라는 한국 사회의 다이나믹스를 보여준다고 여겨지고, 둘째로는 그렇게 합성된 (듯한) 이 나라의 풍경이 '합성이네'가 절로 튀어나오리만치 괴이하고 낯설기만 한 "이상한 것"임을 좀 확인하라는 뜻으로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 이상하게도 미스 유니버스 이야기 부분이 기억에 남질 않습니다. 영화가 대비를 시키는 방법으로서는 동시대에 일어난 극명하게 엇갈리는 두 사건을 배치하는 기법을 쓰는데, 이 부분을 보면서는 거대한 옛날 코미디를 재구성한 무대를 보는 것 같아 볼 만했는데, 희한하게도 막상 보고 나니 뭐랄까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것을 그냥 한 번 더 확인했다는 기분만 남아 있습니다. 이 영화는 그러합니다. 스스로 장면들의 짜임을 기억하지 않으면 서본결이 기억이 안 나요.
- 미리 리뷰를 읽고 갔었는데 리뷰들이 하나같이 엄중하게 경고하고 있었습니다. "오디오와 비디오는 단 한 번도 온전히 합치되지 않은 채 맞물리며 비틀어진다." 거의 그렇습니다. 1교시에나 2교시에서나 이 소리를 발생시키는 화면이 이것이다라고 보여줘야 하는 신에서는 여지없이 오디오와 비디오가 싱크로되지만, 나머지는 거의 대부분 감독이 이것을 가지고 장난을 칩니다. 또 그런 연출을 즐기는 것 같습니다. "좋아하는 장면 중에 하나가 그거에요. 그 사람 나와서 막 얘기하는데 갑자기 줄어들고 애들 떠드는 소리로 넘어가면서 영어 입학식으로 넘어가는 장면. 거기가 좀 에코를 걸기도 했었는데..."
- 그렇게 영화는 다큐멘터리와 자료화면 어딘가의 중간점에서 모두에게 열려 있는, 심지어 잘 안 들리거나 외국어인 육성에 대한 번역 자막 말고는 자막조차 단 한 줄도 없는 (심지어 영화 맨 끝에 나온다는 <믿음이 우리를 구원하였는가>라는 자막도 실제로는 없었습니다. "아 그거는 오보에요. 오보.") 극단적으로 중립적인 외형이었습니다. 뭐 감독 본인이 "어떤 식으로 메시지가 좁혀져서 전달이 되어 버리면 그건 영화가 아니지 않나 그렇게 생각합니다"라는 개념을 갖고 있는 한 이것이 최선이었겠다는 납득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다 좋은데 효용론적 관점에서 '잘 만들어 팔면 상당히 대중적으로 먹혀들어갈 수 있는 미국의 탈우상화라는 소재를 이렇게나 객관적으로' 다루어서는 정작 봐야 할 사람에게까지 다가가지 못한 채 끝나 버리는 것일 수 있다는 점이 문제지요. <도가니>가 fictional trigger를 잔뜩 장착하고 관객들을 흥분시킨 것은 공지영씨와 감독이 돈과 명예에 눈이 멀어서라기보다는 '적(타격대상)'을 더 알기 쉽게 만든다, 그래서 더 많은 이들에게 어필한다는 의도였을 것 아니겠어요. 이 작품은 그런 욕심이 전혀 없고 "그냥 이 나라의 이런 상황을 불편해하시는 분들이 극장에서 봐 주시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 홍보물과 각종 리뷰기사와 소개글에서 설명하는 것들은 정작 스크린으로 목격하기가 사실 전혀 용이하지 않습니다. 지금 화면에 나오는 게 이승만이다 지미카터다 하는 안내자막조차도 전혀 없고 내레이션도 없고 해설자도 없고 뭐 알아보는 사람만 알아보는 그림(과 내러티브)이니까요. 그러나 사실은 "3초 정도의 기억력을 갖고 계신 분들이라면 방금 전에 나온 그림과 함께 이어서 보게 되기 때문에, 웬만해서는 이게 이상하다는 걸 알 수가 있을 거라고 봅니다." 그렇게 이상하다고 느껴지는 것들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군사적 경제적 대미의존, 영어 콤플렉스 그리고 기독교적 반공.
- 감독이 의도적으로 그런 것만 골라서 보여준 것인지 모르지만 하여간 1교시 전반부는 오로지 미국의 신무기를 홍보해 주었던 우리의 뉴스 화면을 보여주는 데 아낌없이 할애합니다. 그런데 거기서 나오는 도량형들은 순 '피트', '마일', '야드' 일색이고, 외국인의 발언은 잠시 원어 그대로 들려주는가 싶다가 해설자가 끼어들어 자기가 그 사람인 양 일인칭 주어로 통역해 줍니다. 시청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답이 나오지요. "저 미국 미싸일들이 몇백 마일을 나른다 카이! 마일이 뭐꼬? 니는 마일도 모르나? 4리가 1마일이라 안카나?", "와 직이네, 저 솰라솰라 하는 말이 저런 뜻이가, 내도 영어 몽창 배워가 저래 솰라솰라 해야긋듸". 물론 이런 사소한 것 때문에 모든 것이 이 지경이 되었다고 말하면 안 되겠습니다. 제 얘기의 핵심은, 이 영화가 1교시에서 2교시로 넘어가는 데 부족한 요소는 없다는 것입니다. 각종 소개 기사에서 말하는 것처럼 딱 떨어지는 설명으로 나타나지는 않지만, 행간과 균열을 읽어 보면 읽을 수 있고, 그것을 글로 쓰면 이런 별볼일없는 식상한 것으로 바뀌어 버린다는 겁니다. 이 영화의 가치는, 바로 그 식상한 말을 전혀 식상하지 않게, 사실은 아주 골치아프고 다층적이고도 직접적으로 '제시'하기만 함으로써 아주 새삼스럽게 학습시킨다는 데 있습니다.
- GV때 질문하며 언급한 장면이 셋 있는데, 사람이 찍혀 있지 않은 부동자세의 영어마을, 미국 대통령 앞에서 한복과 합창단 제복을 입은 소년 소녀들이 미국 말로 노래를 불러주자 당시 영부인이 그걸 같이 흥얼거리는 장면, 그리고 6.25 60주년 평화기도회가 끝나고 참석자들이 줄지어 월드컵경기장을 빠져나가는 장면. 셋 다 너무나 낯선 광경인데, 첫째 껀 경험해 보지 않은 곳의 예상했던 그림 그대로가 나와서 놀라웠고 두번째 껀 경험해보지 않았지만 뭔가 근본적으로 논리가 이상해서 (하지만 저게 당연한 거 아니냐고 하실 분들에겐 씨알도 안 먹히겠지 왜 우리가 한복을 입고 남의 나라 대통령 앞에서 영어로 재롱을 떨어야 되냐며...) 놀라웠고 셋째 껀 비슷한 경험을 하긴 했지만 지금까지 지나간 장면들을 본 게 있는 다음이어서 놀라웠습니다. 놀랍게도 맨 처음 보았던, 한 명 한 명 포착되어 있는 한국전쟁 피난민 여성들의 그림이 (감독이 겹치지도 않았는데) 머릿속에서 오버랩됩니다. 사실은 같은 상황과 조건이 아닌데 왜 그들은 서로 같아 보이는가? 이쯤에서 저는 감독의 의도대로 영화를 봐 버린 것이지요. 그리고 마지막에 미군 항공기의 폭탄 투하가 한 번 더 등장하고 암전되면서 영화는 수미상관 구조로 할 말은 다 했음을 알려주고 끝납니다.
- 상대적으로 '기독교적 반공', 그러니까 우리가 구원받은 족속이고 그 구원은 예루살렘에서 왔으며 그 구원의 최종 필수요건으로는 대적자와의 대적과 완전한 승리가 제시된다는 서사가 이데올로기적으로 복합작용하는 과정, 그것에 대해서는 사실 약간 설명이 빈약하기는 합니다. 굳이 장면들을 꺼내 와서 이해해 보자면 미국=미군=떠나가면 나라 망함=떠나가면 내가 망함=적으로부터 지켜줌, 북한=빨갱이 북한군=쳐들어오면 나라 망함=쳐들어오면 내가 망함=멸절의 대상이라는 알기 쉬운 두 구도가 강변을 일삼고 비판적 사회적 사고가 모자란 목사님들 그리고 이를 교묘하게 이용해서 기도회와 예배 자리에 나가 정치적 발언을 섞어 말하는 미 대통령에 의해 대규모로 공작되었다, 뭐 그 정도로 이해할 수 있겠지만, 사실 이는 좀더 심층이해가 필요하기도 합니다. 가장 직접적인 부분이 부시 대통령의 "I believe, I believe that you believe." 설교(?!) 한 마디 정도일 뿐이니, 메인 카피가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에 대한 우리의 믿음은 마치 기독교 같았다"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정작 본편 내에서는 좀 부족하게 제시됩니다. GV때도 "바람과 불이라는 게 워낙 표상하는 대상이 많고" 한데도 정치, 경제, 군사 얘기는 나왔는데 종교 얘기는 거의 안 나왔거든요. 사실은 저도 제가 믿는 믿음이 있고 보니 '믿음이 우리를 구원하였는가'도 결코 최선의 카피는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종교가 다뤄질 때 좀 씁쓸했습니다. 참고로 그 카피는 감독님이 직접 지은 건 아니라고 합니다.
- "저도 미국은 사실상 끝나가고 있다고 봐요." 그러나 그 미국과 우리나라를 굳이 다시 확인해야 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나중에 사람들에게 '야 그거는 <미국의 바람과 불> 보면 거기 다 나와 있어'라고 말할 수 있는 맥락은 어떤 때 발생하는가. 안타깝게도 아직은 없습니다. 그것은 이 영화가 어떤 작용을 일으키겠다는 의지보다는 표현을 해내겠다는 의지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그래서 마케팅은 상대적으로 쉽지 않았을 터인 반면 정작 관람하기 시작하면 꽤나 좋은 걸 봤다는 생각이 나게 됩니다. 저는 이것이, 마치 감독님이 60여 년 전의 자료화면을 가져다 이 영화를 만들었듯이 60년쯤 뒤에 누군가가 가져다 쓸 자료화면으로서 이 영화를 따 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또는 훗날 정말 제대로 된 교육이 들어서면 '오늘은 한미관계에 대한 영화를 보고 토론할 거에요.' 할 때 보여줄 영화로 쓰면 적절할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 별점 다섯 개 만점에 세 개 반. 재미있지는 않고 흥미롭습니다. 긴박하지는 않고 끈질깁니다. 인내심이 좋거나 실험영화 혹 다큐멘터리를 좋아하시면 한번 보시고, 그냥 궁금해서 보시려면 반드시 리뷰와 근현대사 교과서를 읽고 가세요. 그리고 내가 저기 나오는 저 정도의 영어도 못 알아듣는 수준이었나 싶어집니다. 그리고 김경만 감독의 차기작과 차차기작을 궁금해하게 됩니다. "다다음 작품은 편집이 필요없는 것을 만들어보려고 합니다. 아니, 차기작에 대해서는 너무 인터뷰를 많이 해서요."
- 지금은 이 리뷰 올리고 나서 감독님의 전작 콜렉션 <하지 말아야 될 것들> DVD를 마저 보려고 합니다. 뭔가를 훔쳐보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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