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4
=633,928

이제 비가 좀 덜 내리게 되었으므로 그제야 그들은 거길 가볼 생각이 났다. 간밤에 그들이 사람을 죽인 곳을. 숫자로 말하자면 일가족 총 세 명을, 행정적으로 말하자면 관악구 어딘가의 반지하에 세들어 사는 세 명을, 언론 보도를 인용하자면 '모 노동조합 지부장 모씨와 그의 언니인 발달장애인 모씨 그리고 그의 10대 딸 모씨'를 죽인 그곳을.

이동 중 그들이 보인 굳게 닫힌 입과 별다른 표정이 없는 그 얼굴은 언뜻 보면 최소한의 염치를 가진 일반인, 혹은 그 죽음에 대해 송구함을 표해야 할 입장인 정치인을 연상시키는 면이 있긴 했다. 하지만 그때 그들이 창문 밖을 바라보며 그렇게 근엄하게 생각했던 것이란 실은, 근데 관악구가 어디쯤이었지, 아 모르겠네 안 간지가 오래 돼서, 따위의 것이었다. 그들은 사람을 죽여 놓고도 그렇게나 태평했다. 아니지. 어떤 종류의 살인은, 제 몸과 제 정신을 완전한 거짓으로 둘러입고 사는 자만 할 수 있는 법이니까, 고쳐 말하건대, 그들은 그렇게 내내 태평할 생각으로 사람을 죽이기도 했다.

오와 윤은 거의 동시에 그 자리에 도착했다. 둘 다 같은 검은색 신사용 대형 우산을 직접 들고, 노란색 윗옷을 입고 현장으로 조심조심 다가갔다. 그 자리에 가까워올수록, 안 그래도 축축한 골목에 비가 다 마르지 않아 더욱 질척거리는 듯한 땅과 공기, 그 사이를 분주하게 오가며 현장을 보존하고 수습하기에 여념이 없는 일선 경찰과 공무원들, 그 모든 갑자기 낯설어진 주변을 걱정스럽게 구경 나온 주변 주민들, 그들이 뿜어내는 인열 등등에 대해서, 윤도 오도 거의 동시에 이맛살을 찌푸렸다. 반사적으로, 그 어떤 악의도 없이, 받은 메스꺼움을 그대로 뱉지 않고는 못 견디는 그들의 평소 습관대로.

서성이던 윤과 오는, 그 주변에서 상황을 설명하던 공무원에게 다가가서 가만히 경청하는 것으로, 그 심리적 알리바이 형성 작업에 착수했다. 그 설명은 이미 익히 알고 있는 내용들뿐이었다. 하지만 그걸 모른 체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기실 바로 그것, 모르는 체하기야말로 그들의 유일한 천부적 재능이었다. 그들이 그간 이런저런 직업을 전전하며 그 나이가 되도록 이렇달 굴곡 없이 출세가도를 타고 오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 재능을 십분 발휘하여 기득권층으로 편입한 덕분이다. 계획적인 살인범은 공모자를 반드시 필요로 한다. 그들은 다른 살인범들이 꼬드겨 세운 공모자였고, 이제 그들 자신도 경력 살인범이 될 참이었다. 차라리 그 자리는 자격 시험에 가까웠다. 할 수 있는 가장 탁월하게 모르는 체를 해야 했다.

오는 그래도 비슷한 걸 몇 번 해 본 입장이었지만, 윤은 이런 종류의 시험이 처음이었던지라, 아무래도 그렇게 속단했던 거 같다. 이거 너무 쉬운 거 같은데. 그냥 적당히 걱정해 주는 말이나 해 주고 혀나 좀 차 주고 명복이나 빌고 가면 되겠구만. 속단한 것은 속결 처리해야 직성이 풀리는 윤이었으므로 그는 그 주변에 나와 있던 다른 주민들에게 아주 자연스럽게 넌지시 혼잣말처럼 말을 걸어 물었다. 근데 여기 어떻게, 여기 계신 분들은 미리 대피가 안 됐나 모르겠네. "미리 대피한다는 게 가능한 줄 아느냐, 15분도 지나지 않아서 순식간에 모든 게 급변한다, 순식간에 땅이 꺼지면서 삽시간에 물이 불어나는 걸 모르느냐" 같은 말이 들려왔지만 윤은 전혀 듣지 않았다. 자기가 말했고 상대방이 반응했다. 그러면 대화는 성립한 것 아닌가. 더 들을 필요가 없었다. 오는 그걸 옆에서 바라보며 내심 걱정했다. 이러다가 우리가 범인인 걸 들키는 건 아닐까 하고.

윤은 내친김에 사건과 관련해서 자기가 할 수 있는 다른 말도 더 해 볼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침 "...대피하고 싶어도 수압 때문에 문이 안 열리게 되기 때문에 못 나간다" 하는 누군가의 고성이 끝나가고 있었어서, 그걸 요령 좋은 반말로 뚝 부러뜨리고, 거기에 제 말을 찔러넣었다. 아 문이 안 열려서? 아니, 어제 엄청났던 것이, 서초동에 우리 제가 사는 그 아파트가, 전체적으로는 좀 언덕에 있는 아파트인데도, 거기가 1층이 지금 물이 들어와가지고 침수될 정도니. 제가 퇴근하면서 보니까 벌써 다른 아파트들도 아래쪽에 있는 아파트들은 벌써 침수가 시작이 되더라고. 그러니 뭐. 제가 있는 아파트가 약간 언덕에 있잖아요. 그런데도 그 정도니. 그건 분명, 제깐에는 최선을 다해서, 보아하니 참 힘들어 보이던데 당신들도 참 힘들었을 거 같고 여기 사셨던 분도 참 힘드셨을 거 같다, 하는 소리를 한다고 한 셈이었다. 무식해 보이리만치 무모했을지언정 틀리지는 않은 연기였다. 어떤 비전문가가, 살인범이, 자기가 죽인 사람을, '힘들었겠다'고 공감해 줄 거라고 믿겠는가.

오는 이쯤이면 됐으니 적당히 다시 자리를 뜨고 싶었다. 적당한 곳에 숨어서 뉴스를 지켜보며 자기가 다시 나서도 되는 시점을 골라야 했으니까. 하지만 윤은, 자기의 범행 현장에 처음 와 본 살인자답게, 현장에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다시 가 보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어느샌가 그의 발걸음은 그 반지하로 이어지는 계단을 향하고 있었다. 주민들이 말렸다. "여기는 아직도 여전히 사비로 양수기 써서 물을 퍼올리고 있다. 지하에 6가구가 살고 있다. 당신을 들여보내도 좋은 상황이 전혀 아니다." 그제야 그는 마지못해 층계참을 좀 지난 애매한 위치에 엉거주춤 주저앉아서는, 뭐라도 한 마디 할 생각으로 그 계단 너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거기서 그는, 보통 사람은, 아니 그 자리에서 그 사건의 범인이 아닌 이상에는 누구도 결코 느껴볼 일이 없는 대단히 특별한 감정에 휩싸였다. 아 그런가. 이게 여기가 이렇게 됐단 말이지. 그렇군. 여기가 지금 저 사람들 눈에는 이렇게 보이는군. 그런 거군. 그러면서, 그는 별 말 없이 그 자리에 잠시 쪼그려 앉아 있었다.

이 이상 현장에 다가갈 수는 없다는 공무원의 제지를 받으며 윤은 끌려나오다시피 그 계단을 벗어나 건물 밖으로 인도되었다. 사실 이제 용건은 더 없었지만, 아직 그들은 정말 보고 싶은 것을 보지 못한 상태였다. 특히 윤의 입장에서는, 그 세 사람이 실제로 죽어가던 그곳의 정취를 아직 제대로 느껴보지 못했기 때문에, 다소 무리를 하더라도 그 반지하방 안을 볼 방법이 있는지 찾고 싶었다. 아마 윤이 '창문으로 탈출 못하나?' 같은 멍청해 보이는 질문을 해서 유도를 받았던 것 같은데 아무튼 그렇게 오와 윤은 그 창문 앞으로까지 안내를 받았다. 그들의 얼굴이 그 창문 앞에 다다랐다. 그들은 눈을 크게 뜨고 그 어둠을 들여다보려고 했다. 들여다보여지는 저편 방향에서는 역광에 비친 그들의 몸뚱아리 그림자가 불쑥 나타났고, 그 속에서마저 그들의 퍼런 안광이 번뜩였을 것이다.

둘은 그 안을 들여다보면서 당장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 안을 바라보기 바빴다. 겉으로야 티가 안 났을지 모르지만 속으로 그들은 더할 나위 없는 은밀한 흥분을 감추며 그들이 살인을 자행한 곳의 진짜 광경을, 그것도 낮밤을 바꾼 시간대에, 어떤 고소, 고발, 탄핵소추, 주민소환, 용의선상 조사 취조도 받지 않는 자유인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그런 순간 정도에만 진실로 감각하고 경탄할 수 있었다. 자기가 안전하고 정당하며 우월하고 결백한 존재라는 것을. 자기는 저 자리에서 죽어나간 사람도 아니고, 저런 어둡고 지저분하고 쿰쿰한 곳과 관계 있는 사람도 아니고, 저곳에서 죽을 만한 사람을 죽여 줬을 뿐이라는 것을.

한동안 그런 비정상적인 감각에 도취돼 있다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정신이 들었다. 아마도 그들이 우산을 받쳐들고 쪼그려앉아 그 안을 들여다보느라 다리가 저려 와서 그랬을 것이다. 이제는 정말로 이 현장을 뜨자는 뜻에서, 서로 간단한 눈빛만 주고받은 그들은 마지막으로 그 창문 앞에서 시바이를 하기 시작했다. 정말로 이건 남 일이라는 듯이, 내 일이 아니라는 듯이,  잘은 모르겠지만 참 안됐고 그러니 이건 절대로 내가 죽인 건 아니라는 듯이.

야 이거 참, 왜 대피를 못 했을까. 그러니까요. 왜 대피를 못 했을까요. 햐 참 진짜 이거 반지하가 문제야. 여기는 지대가 낮으니까 이게 다 직격탄 맞잖아. 서울시가 반지하가 너무 많아요. 이거 다 이제 금지시키든가 해야지 이게 무슨 일이야 그래. 우리는 저기 그런 거 없나? 강수량 측정해서 국민들 알려주는 앱 같은 거 없어? 그런 거 좀 만들라고 해봐.

'1 내 > ㄴ 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도  (0) 2017.05.09
너에게 지옥을 보여줄게  (0) 2014.12.31
책가방의 초코파이  (0) 2014.09.29
외주(?)작업들  (0) 2013.08.20
김의기  (0) 2013.07.17
Posted by 엽토군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일부 교회들이 오늘을 어린이주일로 섬기는 모양이다. 우리 교회는 공예배에서는 쇠지 않고 어린이부만 어린이주일로 쇤다. 사실 이것만으로도 웃기는데, 광고 시간에 그런 소리가 나온다. 아 지금 전 교단이 문제에요. 저출산이다 코로나다 하면서 전국적으로 어린이부가 줄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 어린이부를 "부흥"시키고 싶은가? 교회 외벽 제일 잘 보이는 곳에 커다랗게 예스키즈존 이라고 써붙여 보시오. 다음 주부터 교회가 미어터질 것이다.

아니 진짜로 해보라고. 모든 물건이 어린이 손에 닿을 때까지 높이를 낮추고, 뾰족한 것 딱딱한 것 무거운 것 뜨거운 것 다 치우고, 마이크 볼륨을 좀 줄이고, 대예배당에 어린이들이 어디든 앉게 해 주고, 우는 애 내쫓지 말고, 나이에 관계없이 세례교인 전부에게 같은 성찬을 주고, 모자실을 폐쇄하고 대예배당을 모자실로 써라. 그리고 여기 앉은 어느 어른에게 어떤 장난을 쳐도 절대 화내지 않겠다고 잼민이들에게 약속해 보시라. 장담하건대 그날부로 그 교회는 기적의 대부흥이 일어날 것이다. 단지 어린이가 주께 오는 것을 허락하고 금하지 않을 뿐인데도.

현실은, 한국 교회야말로 한국 경제문화사상 가장 유구하고 능숙한 노키즈존이다. "모자실"이란 소싯적이나 지금이나 참말 부끄러운 것이다. 애와 애엄마를 방음 잘 되는 한쪽 구석에 처박아놓고 테레비 하나 연결해서 대머리 목사의 근엄한 말씀을 중계하는 것은, 그 안에서 애가 울건 말건 그저 나 하나만 대예배당에 근엄하게 앉아 설교나 들으면 그만이라는 대머리 장로들의 탐욕 덕분 아니었던가? 그 탐욕을 생각하다 보면, 무슨 식당 무슨 카페 주인이 어쨌다더라 하는 심술은 하찮게 느껴질 지경이다.

우리 중에 누가 크니이까? 라고 다 큰 어른들이 물어보는 꼴 역시 예수님 눈에는 세상 하찮게 느껴졌으리라 생각된다. 그래서 예수님은 인류 사상 최초의 예스키즈존을 설치하며 꾸짖으신다. 니들이 크긴 뭐가 커 얘네들이 크면 컸지 그러니까 허튼소리들 말어. 그로부터 이천 년쯤이 지났고 우리는 노키즈존 매장 출근 전 1부 예배를 드리며 애와 애엄마를 모자실에 처박아두는 어른들이 됐다. 뭐라고? 어린이부가 줄었다고? 그야 그럴 테지 니들이 줄였잖아. 교회가 노키즈존인데 어린이부가 어떻게 부흥해.

진짜 이제 이런 소리는 페북에 그만 쓰고 기독교인 스탠드업 코미디 클럽에나 가서 해야겠다 그런 게 없어서 문제지만.

Posted by 엽토군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 사실 엄청나게 간단한 얘기다. 개발자는 특수한 직군이지만 특권을 가진 직군은 아니다. 그나마도 내 생각엔 개발자가 특수한 직군인 것도 지금 한때나 그러고 말 것으로 보인다. 애초에 개발자건 다른 어떤 직군이건 어떤 직군이 타 근로자와 일반 공동체로부터 '이해 불가한 영역으로 남을 권리'를 자동으로 획득하지는 않는다. 그런 시도는 무력화돼야 하며 그런 욕망은 제압되어야 한다. 수단이 목적을, 사익이 공익을, 엘리트가 일반 대중을 압도하도록 내버려두면 안 된다. 이렇게 서본결이 완벽한 간단한 아젠다가 어째서 거듭 되풀이 성토되고 있는지 그게 오히려 희한하다.

- '불가해한 영역으로 남을 권리', 바로 이것이 쿨타임만 차면 돌아오는 바 '일부 짜증나는 개발자들에 대한 짜증'을 유발하는 근본 원인이 아닌가 생각된다. 현시점의 현업 개발자들은 (또는 블로그와 유튜브로 코딩하는 "개발자"들은) 의식적으로건 무의식적으로건 자신들이 '개발자'로 라벨링되는 과정을 즐기고 있거나 최소한 의식적으로 거부하지 않고 있다. 사실 뭐 그건 개발자뿐 아니라 의사, 변호사, 교수 등등 전문 지식으로 먹고 사는 직군 종사자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사회 자본에 대한 욕망의 발로로서 충분히 그럴 수 있는 것이지만.

- 개발 직군이 전문 직종들 중에서도 유난히 이런 차원에서 튀는 것은 두 가지 요인이 더 있다고 생각된다. 하나는 업계의 미성숙이다. 다른 글에서 한 번 슬쩍 건드려본 적이 있긴 한데 개발이라는 분야는 현재 매우 초기 단계에 속하고 그래서 법령/표준 도입, 정량적 능력/성과 측정, 표준 근로 프로세스 등이 존재하질 않는다. 그러다 보니 어떤 기업/서비스/종사자도 명쾌하게 평가되지 않으며 어떤 성공/실패도 필연적이지 않다. 이러므로 실제로 이 분과는 현재 어느 정도는 실제로 이해 불가한 영역이며 제3자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객관적 접근 시도가 (주로 당사자에 의해) 무산된다.

- 개발 직군이 다른 전문 직종들보다 유난히 더 스스로를 신비화/특권화하려고 하는 현재의 경향의 다른 추가적 요인으로 내가 생각하는 것은, 그 직군이 갖는 인구통계학적 편향이다. 절대 다수가 남자이고 상당수가 2030이며 이념 스펙트럼상으로는 대체로 가운데-오른쪽에 쏠려 있다. 하루 종일 코드만 쳐다보고 사는 그들의 사상은 결과적으로는 목적 지향적이며 단순한 계량적 공리주의로 쏠리고, 그들의 윤리는 (반사회적이진 않더라도) 비사회적으로, 상대적으로 매우 정밀하게 취사선택적인 쪽으로 기울고 있다. 게다가 사회가 "4차 산업 혁명 고액연봉 개발자 우대 전쟁" 운운하며 떠받들어 주니, 이 과정에서 이들은 알게 모르게 사회와 동떨어지는 엘리트주의적 동조 집단을 형성하고 만다.

- 이런 식으로 특정 전문직군의 특권계급화가 시도되려고 하는 시기에 공동체 사회가 해야 할 일은, 그 생산 수단 및 생산물을 최대한 공공화하는 작업이다. 거시적으로는 (그 빌어먹을 놈의) "AI"를 사용하는 기업마다 회원 가입 약관 및 정례 보고서를 통해 그 기술의 작동 원리 및 작동 현황을 공개하도록 규제하자는 얘기까지도 해 볼 수 있겠지만, 미시적으로는 "저는 개발자라서", "근데 개발이라는 분야는"으로 시작하는 '야부리'를 금지시키는 데서부터 시작하면 될 것이다. 그런 '썰'을 수시로 제지시키고, 알아들을 수 있는 설명을 요구하고, 설명된 사실에 근거한 객관적 평가로만 그들을 다시 엄격하게 측정해 줌으로써, 자기의 중량을 과대 평가하려는 시도 일체를 저지해야 한다.

- 우리말에 '감 놔라 배 놔라 한다' 하는 말이 있다. 기백 년 전 조선에도 "홍동백서 조율이시" 운운하는 복잡한 전문 지식은 존재했고 그에 대한 당시 언중의 사태 파악도 진작에 끝났던 것 같다. 우리도 슬슬 상황 파악을 했으면 좋겠다. 오늘날 개발자들의 갖은 장광설과 자기 변호성 웅변들은, 결국 한마디로 요약하면 '파이썬 놔라 슬랙 놔라' 하는 소리에 불과할 수 있으니까.

'4 생각을 놓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어진쇼에 관하여  (0) 2018.10.09
탈-세트장 예능의 종언: <무한도전> 종영에 부쳐  (0) 2018.04.01
포주 레진  (0) 2018.01.31
장르로서의 이생망  (0) 2017.10.31
텍스트  (0) 2017.01.10
Posted by 엽토군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이런 시사평론(?)을 쓴 적이 있다.

 

자살률이 '갑자기' 늘어난 이유 하나

언제부턴가 우리 주변에서 이상스러울 정도로 누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자주 듣는다. 연예인은 고사하고 심지어 주변인의 주변인조차 자살하기 일쑤다. 옛날엔 그나마 '자살사이트'가 사회문제

blog.yuptogun.com

벌써 14년 지난 글인데 아직도 네이버에서 '자살률 원인' 따위를 검색해 자살률 증가의 원인을 알아내려고 하시는 분들 덕분에 간간이 조회가 되는 모양이다. 다시 읽어 보니 고등학생 특유의 좁은 시야와 어휘력 부족이 절실하게 느껴져서, 안 되겠다 싶어 개정 보론을 적어볼까 한다. 그때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이 뭐였는지 요약 정리를 좀 해서.

-

이 글을 쓰던 시절 내게 관찰됐던 것은 '자살'이라는 엄청난 사건이 보편화되려는 흐름이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정확히는, 그건 '표면화'였는지도 모른다. 삼국 시대부터 "IMF"에 이르기까지 과연 극단적 선택을 했던 가장과 집안이 정말로 그 수가 그렇게 적었을까. 하지만 어느 시점까지만 해도 그런 죽음은 항상 놀랄 만한 일이고 비상한 사건이었으며 아무튼 끔찍한 비극으로 간주됐다. 그러던 것이 새천년 이후로, 굳이 따지자면 뉴스를 접하거나 뉴스거리를 접하는 경로가 TV며 신문 외에도 더 생겨나기 시작하던 시기쯤부터, 자살이란 것이 더 다양한 계층에서, 더 많은 종류의 (그리고 더 허망한) 이유로, 우리가 알던 것보다 더 자주 발생하는 사건임이 두루 체감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이 이상은 객관적 증빙 자료가 없으니 각설하고…

아무튼 자 그러면 어쩌다가 자살을 선택하는 이들이 이렇게나 보편적으로 많아졌을까? 그건 다시 말해서 '왜 자살률이 늘었을까?'라는 질문일 텐데 이 질문은 사실 잘못됐다. 옳은 질문은 이것이다. "자살이 일반인의 보편적인 '선택지'란 말인가?" 생각해 보면 새삼 소름끼치게 이상한 일이다. 어째서 하나뿐인 목숨을 버리는 것이 '옵션'일 수 있는가? 그래서 오랜 세월 자살은 자연스러운 금기였고 애초에 물망에 올라갈 수 있는 선택지가 아니었다. 아무리 시궁창 같은 상황일지라도 살아서 뭔가를 해야지, 그냥 죽어버린다는 건 너무나 이상하고 잘못된, 생각할 수 없는 어떤 것이었고, 그래서 보통 오답으로 간주됐다. 원래 글에서 장광설을 늘어놓으며 서술하려고 했던 "지금껏 우리가 지녀 왔던 통념"은 바로 이걸 가리킨다.

그렇다면 질문은 바뀐다. 어떻게 자살이 하나의 '옵션'이 되었는가? 내 생각에, 딱 이 맥락에만 한정해서 보면, 여기에서 '자살'이란 '살아서 이걸 한다', '살아서 저걸 한다' 운운하는 기존 선택지들에 대한 "위 보기 중 정답 없음"이라는 새로운 선택지라고 봄이 타당하다. "죽는다"를 의미하는 게 아니라, "안 산다"를 의미하는 것이다. 14년 전의 고딩이 당연히도 몰랐던 바 전세계에 심각하다고 소문난 우리나라의 '노인 자살률'은, 오직 이 논리로서만 설명이 된다. 산업 사회의 부속품으로서만 가치를 인정받으며 줄곧 착취당하다가 하루아침에 정년이랍시고 퇴직금 몇 억과 함께 세상에 던져진 뒤 대책 없이 십몇 년을 여기저기 전전하고 나면, 그때 선택 가능한 보기는 '살아서 창업한다'도 아니고 '살아서 은퇴를 즐긴다'도 아니고 '자식들에게 얹혀 산다'도 아니다. 오직 '위 보기 중 정답 없음'만이 유일한 선택이 된다.

여기서 질문을 한 번만 더 덮어써 보자. 요컨대 '살아서 ~를 한다' 하는 선택들이 주어져 있음에도 '그 보기들 중 정답 없음'을 선택하는 이들이 많아진 것처럼 보인다는 건데, 그것 하나가 나머지 선택들을 압도하게 된 것은 웬일일까? 여기서 원문이 "편한 삶에의 추구"라고 잘못 묘사한 사태가 문제가 된다. 그 사태는 정확히 어떤 사태인가? '정상적인 삶의 첨예화'다. 확실히 어느 시점부터인가 '남부럽지 않은' 삶이 생각보다 어려운 (객관적으로는 더 어려운) 목표가 됐다. 그건 분명 중산층이 붕괴한 IMF 이후였고, 이때부터는 암만 열심히 산들 정상 가족의 불안 없는 생활에 도달하기가 점점 쉽지 않아졌다. 그래서 그런 이들의 그런 삶은 불필요한 각광과 조명을 받았다. "최근 편하게 사는 사람이 갑자기 우대받기 시작했다"고 쓴 것은, 이 간단한 생각을 뒤집어 입은 꼴이었던 셈이다.

요컨대 중산층의 도산 이후 '정상적인 삶'에 도달할 가능성이 희박해지면서, '삶 자체'를 계속 선택할 지구력이 바닥난 이들이 탈락하게 됐고, 그 상황이 모종의 제반 변화에 의해 최근 들어 더 분명하게 가시화되었으며, 그게 2000년대 이후 자살률이 급증한 것처럼 보이는 이유라는 게 내 생각이다. 사실 여기까지는 14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생각이 변한 것은 없고, 다만 14년 전의 나는 이걸 이렇게 간단히 말하질 못해서 중언부언을 늘어놨으며, 그나마 대책 내지 제언 부분에서는 불일치를 보인다. 14년 전의 나는 사회 풍토를 탓하고 있다. (과연 대입 논술 앞에서 끙끙 앓던 인간답다.) 지금의 내게 물어본다면 차라리 나는 법률과 제도를 탓하겠다. '그래도 한 몇 년만 더 살아볼까? 그래도 안 되면 그만둘 때 그만두더라도'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지원금, 할당제, 재교육 프로그램, 정책 토론회, 교육과정 개편, 조세율 조정, 보증, 보험, 시행령, 개정안, 전문 인력과 전담 기구를 내놓으라고 말이다. 왜 흔히들 농담으로마저 그러지 않는가. 힘든 사람에겐 격려를 해줄 생각 말고 그저 곁에 있어 주면서 고기를 먹이고 돈을 주라고.

-

마지막으로 이 주제 자체에 대해서만 조금 감상적으로 되어 보자면... 그간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모르겠다. "비정규직 철폐 투쟁 결사 투쟁"이라는 구호는 노무현 때 끝날 줄 알았던 것이 아직도 쿠팡이니 배민이니 하는 곳을 기준으로 '현재 진행형'이고, 서민들이 "정선카지노"에서조차 희망을 찾지 못해 "바다이야기"로 몰리던 줄거리는 스케일만 "떡상"한 채 주식과 '잡코인'을 통해 고스란히 재현되고 있다. 여전히 부동산은 위세가 등등하고 강남은 불패이며, "남들 다 사는 만큼 살고 싶다"는 사람들은 정작 이미 통계상으로는 남들 다 사는 만큼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절대 그 위치에서 행복하지 못하고 있다. 모든 걸 자본의 뜻에 맡겨놓으면 자연히 그려지는 어떤 2차원 포물선의 정점을 향해 가는구나 하고 덤덤하게 받아들여지다가도, 아니 근데 진짜 어떻게 사람 사는 세상이 이럴 수가 있어 이 씨팔, 하고 소스라치게 놀라고 만다. "자살마렵다"는 최근의 유행어를 생각할 때와 비슷한 느낌으로.

Posted by 엽토군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일단 EZ2DJ라는 브랜드 자체에 대해서 조금 느낀 바를 적자면… 1st부터 2021년(!)까지의 모든 수록곡이 일단은 다 실려있는데, 처음의 인싸 감성은 어느 순간부터 완전히 씹덕후 느낌으로 싹 전환되고 있는 게 새삼 보였다. 사실 EZ2DJ는 모두가 킹오파나 보글보글, 펌프 등을 하고 있던 그 시절에도 좀 아싸 느낌이 있었지만 그 정도는 아니었는데, 뒤로 가면 갈수록 BGA도 오타쿠스러워지고 음악도 뭔가 시대와 동떨어져 가고 있었다. 마치 막판에 '일코'를 포기하고 책상에 피규어를 올려놓기 시작한 말년 개발자처럼 보인달까? (모르긴 몰라도 EZ2ON 개발자들은 그랬을걸?) 이 브랜드가 왜 뒤로 갈수록 처지고 맥빠졌는지 알 것 같았다. 감을 잃어버린 거지.

게임플레이에 대해 논하자면, 쇼에서도 했던 얘기인데, 고인물들을 위한 리듬게임이라는 느낌이다. 게임의 판정에 자기를 맞출 수 있는 사람, 이미 EZ2DJ의 띵곡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십분 즐길 수 있는 콘텐츠가 주를 이루고 있다(랄까 그런 것들뿐이다). BGA만 감상할 수 있게 해금을 하는 미션 같은 것도 없고 그냥 순전히 예전의 스킨을 가지고 예전의 BGA와 음악을 깔끔한 퀄리티로 다시 보는 게 핵심인 게임이다. 좀 이상한 기분이다. 확실히 나는 이걸 기대하고 돈을 냈으므로 그건 아깝지 않은데, 과연 나 아닌 다른 아무라도 2021년에 딱 이것을 얻기 위해 그 돈을 지불해야만 한다고 하면, 그건 글쎄올시다 말이지.

여기서부터는 쇼에서 하지 못했던 얘기인데, 요즘 불어닥치고 있는 '리부트'와 '리메이크'의 바람 아닌 바람에서, 이 게임은 좀 아쉬운, 나쁘게 말하면 실패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고 하는 편이 적절할 것이다. 애초에 리부트 붐 자체가 2021년의 콘텐츠 업계(그리고 이 사회)가 맞부딪힌 상상력의 절벽을 반증하는 것이므로 그건 좀 감안해야겠지만, 그럼에도 EZ2DJ는 그저 철저히 사용자의 기존 취향과 향수를 자극할 뿐 거기서 더 나가지 않고 있다. 아직 이렇달 업데이트가 없어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으나, 한마디로 "싸이월드 부활" 같은 걸 보는 기분이다. 딱히 모두가 애타게 찾던 것도 아니었고, 있으니까 반갑긴 한데, 그렇다고 그게 21세기 지금에 대체 불가하게 필요한 위치에 있느냐 하면 또 그건 잘 모르겠는.

그래도 아직 PC방이 드물던 한때 시절에는 수준 있는 다양한 음악 스펙트럼을 소개했던 명색의 EZ2DJ였는데, 지금은 그저 판권과 명의와 소스 코드들만 누더기로 남은 채 여기저기 굴러다니며 근근이 명맥을 잇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어 그게 좀 안쓰럽다. 유튜브 댓글에 반농담으로 달았던 말이지만, EZ2ON은 상업화 -- 그러니까, 요즘 시대 맥락에서 이는 곧 다시 '인싸' 감각을 되찾는 걸 의미한다 -- 에 성공을 해서, "20000000000의 매출을 올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건 기존 팬들에게서 십시일반 받고 팔아서는 절대 달성할 수 없는 매출이고, 일반인을 끌어들일 수 있어야 가능한 수익이며, 어디 사운드클라우드나 좀 돌아다녀야 겨우 들을까 말까한 오타쿠식 트랜스코어를 최신곡입네 가져오는 지금의 센스에서는 언감생심 그림의 떡일 뿐이라는 점에서.

'3 늘어놓은 > 메타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평범한 인물에 관하여  (0) 2019.10.06
<찬양이 노래라고 생각하는 당신에게> (2019, 곰도와니)  (1) 2019.07.18
애국청년 변희재 (2017)  (5) 2018.02.22
싱잉앤츠  (4) 2018.01.21
워드프레스  (0) 2015.04.23
Posted by 엽토군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796)
0 주니어 PHP 개발자 (6)
1 내 (326)
2 다른 이들의 (252)
3 늘어놓은 (37)
4 생각을 놓은 (70)
5 외치는 (74)
9 도저히 분류못함 (30)

달력

«   2022/1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