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사교활동을 너무 안 한다 싶어서 잡히는 대로 아무거나 골라 "크리스천 비전 커피챗"이라는 모임에 어제 저녁 참석해 보았다. 알고 보니 무슨 멘토링 업체 주관의 세미나와 네트워킹이 느슨하게 결합된 형태의 정기 모임이었다. 커피챗이라더니 커피는 지급되기는커녕 마시는 사람도 별로 없었으며, 크리스천이라는 자부심과 자기애가 넘쳐나던 그 자리에 막상 그리스도는 계시지 않았다. 그러니까, 제대로 요약하자면, 그 기독교인 비전 커피챗이라는 행사는, 실은 그저 '교인 비전 챗'인 셈이었다.
행사는 4시부터 5시 반쯤까지 이런저런 자기계발 강좌가 이어졌고 남은 시간은 조별 모임 2회와 저녁 식사로 구성돼 있었는데, 모인 사람들은 하나같이 교양과 재능이 차고 넘치며 착하고 바르기가 짝이 없고 심지어 자기 꿈과 남을 도우려는 의지까지 충만한 사람들이었다. 어떻게 보아도, 비전이니 자기계발이니 하는 도움이 더 필요하지 않은 사람들뿐이었는데, 이상하게도, 그런 '완성도'가 더 높아 보이는 사람들일수록 그 모임의 고참들이었다. '나는 무슨무슨 가치를 기반으로 교육가적 뭐시기가 되겠다' 운운하는 선언을 명함에 새겨놓은 사람들도 여럿 있었다. 그런 걸 읽고 그런 걸 주는 사람들을 관찰하면서는 한 가지 의문뿐이었다. 그럼 가서 그거 하면 되지, 부러 여기 또 출석을 해야 된담? 글쎄 아무래도 그 출석은 필요했던 모양이다. 나 빼고 모두가, 지난번에 본 사람을 반가워하면서 서로가 서로의 근황을 묻고 서로만 아는 농담으로 즐거워하고 있었다. 그렇다. 그 광경은 일요일 낮에, 수요일이나 화요일 혹은 목요일 저녁에, 다르지만 같은 여러 장소에서 그토록 자주 보았던 광경이다.
지급받은 "워크지"의 질문들은 이런 식이었다. 10대부터 50대까지 당신 인생에 점수를 매기고 BEST/WORST 키워드를 선정해 보세요. 일을 고르는 나만의 기준이 뭔지, '의미가 없지만 돈 많이 버는 일'을 하고 싶은지 등의 질문을 서로 주고받아 보세요.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것 3가지, 받고 싶은 3가지를 적고 나누어 보세요. 심지어 이날의 활동을 위해 주최측이 구성한 조 편성은 노골적으로 직군 중심이었으며, 우연히도 같은 조에 '대학생 선교 동아리' 출신들이 상당히 많았다. 어떤 왈츠를 추어야 하는 무도회인지가 민망하리만치 분명했다. 말은 아니라고들 했지만, 다들 모종의 모범답안을 훈련한 대로 주고받는 것처럼 들렸다. 예컨대 나는 그날 거기 처음 간 사람이었고 내 인생에 내가 매긴 점수는 같은 조 안에서 최저점이었다. 반면 최고참 중 한 명은, 이제 막 서른이 되었다면서도, "40대는 10점 이상일 거고 50대는 그보다 더 높을 거라고 적어 봤습니다"라고 답을 했다.
그 왈츠를 엉금엉금 따라 추면서 차츰, 그 자리에서는 복음, 구원, 천국이 암시조차도 되고 있지 않음을 알아차렸다. 4시부터 5시까지의 이런저런 '강의'들은 내가 놓쳤으니까 논외로 하더라도, 그 이후 3시간 동안 내가 읽고 들은 글과 말 가운데서 크리스천 된다는 것, 기독교인 된다는 것, 그리스도를 본받는다는 것에 관한 고찰은 절묘하리만치 회피되고 있었다. 오죽하면 한번은 왠지 울컥해서 도발적 농담을 해 보았다. 나도 40대쯤이 되면 좋든 싫든 안정적인 삶을 추구하게 될 거라고. 그렇지 않냐고. 무릇 크리스천이라면 이 땅에서 열심히 재물 쌓고 벽돌집을 짓고 곡식 쌓을 창고를 지어서 재물을 쌓아야 하는 것 아니겠느냐고. 다들 '뭔 말인지 모르겠어서 웃는' 웃음만 웃을 뿐, 그게 '농담으로라도 하지 말아야 할 말'임을 알아차리지는 못한 낌새였다. 그 도발이 불발되는 꼴을 보아하니, 여기서는 이 이상 속 있는 진담을 할 필요는 없음을 알았다. 그 다음은 쉬웠다. 일회용 발언과 맞장구를 늘어놓고, 한솥도시락을 받아먹고, 납부했던 보증금 2만 원을 현찰로 돌려받아 1등으로 퇴장했다.
그래 아무려면 예수님이 너네 비전 따위나 되어 주실라고 골고다까지 가서 그 개죽음을 하셨겠니 이 개것들아?
초인적인 의지와 바리새-헬레니즘적 지성을 동력으로 활동했던 바울 사도를 제외하면, 절대 다수의 초기 교회 제자들은 비전이니 소명이니 따위를 따라 움직이지 않았고, 하나같이, 삶의 한가운데에 불쑥불쑥 되살아오시는 예수님과 성령님을 따라 움직여 살았다. "물고기 잡으러 가" 있다가, 어디 숨어 있다가, 삶을 살고 있다가 문득 상대했던 웬 낯선 사람이, 나중 돼서야 뒤늦게 고찰해 보니 아차 그게 예수님이셨더랬구나, 하는 줄거리는 성경 안팎으로 적지 않게 반복된다. 요컨대, 만유의 주이신 주님께서는, 심지어 그 제자들의 사명에 대해서도 주권을 갖고 행사하시는 주님이셨던 셈이며, 그 "사명"이라는 것은 일방적으로, 신적 권위로, 심지어는 그들이 원치 않았던 것일지라도, 강제로 (혹은 "예정대로") 부여되는 성질의 것이다.
그렇게 따지면 그들의 사명은 종잇장 몇 쪽에 빈칸 몇 개 채워서 "사명 선언문" 따위로 엮어 완성 가능한, 작위적이고 자의적이며 private한 무언가일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건 실은 그저 나사렛 예수의 지인 된 도리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 해내야만 하는 증명/증언, 생존자로서의 부채의식이라는 차원이었을 터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목숨마저도 초개처럼 버릴 수 있었던 것이다 — 오늘날 현대인들의 낯간지러운 '비전' 따위로는 할 수도 없고 알 수도 없는 차원으로. 그렇다면 오늘날 이들이 말하는, 목숨을 바칠 가치까지는 없는 바 그 비전이니 소명이니 따위의 실질은 무엇인가? 별거 없고 그저 거룩한 포장을 한겹 둘러서 도덕적 불쾌감을 덜어 놓았을 뿐인 "춤추고 노래하는 예쁜 내 얼굴"에 불과하다. "텔레비전에" 그게 "나왔으면 정말 좋겠"는, 가히 태아적(embryonic)이라 할 만한 자아상.
그러나 바울 사도의 공로 덕에 완전히 바티칸 체제 내 헬라 철학의 한 분파로 편입하는 데 성공한 기독교는 그 이후로 그런 자아상을 유지하는 것이 가능하여 이를 권장하게 되었는데, "소명"이니 "사명"이니 따위의 앞뒤를 뒤집고 목적을 완전히 비틀어 놓은 덕분이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전체 서사의 핵심 용건에서 이야기 첫머리의 재미있는 도입부로 고꾸라져 있으며, 그 거룩한 이름은 이런저런 빈칸과 제단 위를 채우는 비콘으로만 기능하고, 실제로는 그 빈칸과 제단이 숭상을 받게 된 것이다. 어제 참석한 모임의 주최측이 홍보하는 강의 중에는 "자본으로 선교하기"라는 것도 있었다. 차포 다 떼면 결국 좋은 곳에 돈 쓰라 뭐 그런 말일 텐데, 그걸 선교라고? "자본으로 복지사회 이룩하기"로 강의 제목만 바꾼다고 했을 때, 과연 이 강의는 스데반처럼 돌을 맞을 선포가 될 것인가 아니면 KBS 아침마당에 의젓이 진출 가능할 것인가?
아마도 후자일 것이다. 비전을 탐하는 오늘날 자칭 크리스천들의 실제 은밀한 속내는 그저 여의도일 뿐이기 때문이다. 내 실력을 인정받아 돈을 벌고 싶다, 기왕이면 유명해지고 싶다, 기왕이면 남을 돕는다는 평가를 받고 싶다, 기왕이면 나의 종교적 정치적 의지와 견해를 관철하여 강요하고 싶다, 이것저것을 "하나님께 봉헌"하고 싶다, 그 성공을 축하하거나 기원하는 자리를 정기적으로 열어 나와 비슷한 사람들을 모아 놓고 먹고 마시며 즐거워하다가 주님 부르실 때 천국까지 안전하게 직행하고 싶다! 바울과 비잔틴 그리고 어떤 "크리스천"들의 그리스도교는 그런 야심의 종교다. 예수님이 믿고 전하고 제자들이 듣고 전하고 실천하고 그러다가 잘 안 되다가 부활하신 주님의 은혜로 다시 실천할 수 있게 되었던 라이프스타일이 그딴 야심과 하늘땅 차이가 있건 말건 아무 상관 없이 그러하며, 만유의 주님이신 주님께서 또한 인간의 꿈과 목표와 의지에 대해서도 전권을 가지고 계시다는 진리에 대해서마저 아랑곳없이 그러하다.
그런 모임을 하루 경험해 보고 나와서 느낀 게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어떤 모임이 그렇게까지 겉껍데기뿐이 되면 오히려 생각만큼 '기가 빨리지'는 않더라는 발견이었고, 다른 하나는 이미 내가 알고 있는 내 지인들하고나 더 사교하려고 노력해야겠다는 결심이었다. 몇 달이고 몇 년이고 저들끼리 모여서 "크리스천 비전이란 뭘까요? 우리 크리스천 비전 이루는 크리스천이 되어 볼까요?" 하는 꾀꼬리 소리나 늘어놓는 자리에는 그런 꾀꼬리들이나 출석하면 좋을 테고, 나는 그냥 이미 있는 내 이웃들에게나 관심 가지러 가야 되겠다고 새삼 다시 깨닫는 시간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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