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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금요일 오후 6시 40분쯤인가였고, 기본적으로 사무실은 텅 비어 있었으며, 아직은 퇴근을 못 하고 있는 사람들이 각 팀별로 한두세 명 있는 상태였다. 나는 그 중 개발팀 당번이 된 꼴이었고, 기획팀에서는 내 등 뒤 저쪽 자리 아이맥 앞에 앉은 모 과장님이 그랬던 모양이다. 나야 지난 몇 주간 무슨 되도 않는 초등영어 라이브방송 관련 기획 구현하느라고 상습 야근 중이었으니까 그렇다 치지만, 저 과장님은 요즘 뭐가 바빠서 갑자기 야근을 하시지? 하고 좀 궁금해하고 있으려니까, 마침 그 과장님이 내가 안쓰럽다는 듯이 등 너머로 물어본다. "엽토군 씨… 왜 퇴근 못 하고 있어요…?" 이걸 진지하게 답하고 싶지 않아서 되물어봤다. "과장님은 왜 퇴근 못 하고 계시는데요?" "몰라요… 엽토군 씨 일 많이 힘들죠…?" 힘들다고 답할 힘도 안 나서 그저 잠자코 있었더니, 머쓱하다는 듯이 뒤늦게 덧붙은 말 한 마디.

다 뜻이 있으셔서 그러실 거에요 그쵸? 엽토군 씨 교회 다니잖아요.

유일신의 의지를 믿는 종교에 우호적인 입장을 가지고 그런 신앙의 관점을 존중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 여기엔 당연하게도 대다수 멀쩡한 기독교인이 해당되고 ― "신의 뜻"에 대해 가장 많이 잘못 이해하는 것 두 가지는, 첫째 우리 인간이 당하고 있는 각종 곤란과 고통이 그 자체로 신의 뜻에 포함된다는 것이고, 둘째 결국 그 모두가 "합력하여 선을 이루"리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곤란과 고통에 대해 "다 뜻이 있으셔서"라고 주억거릴 수 있게 된다.) 둘 다 신의 뜻을 원천적으로는 잘못 이해하고 있는 관점이다. 그래서, 서로를 직접 알아가려 하지 않는 커플들이 기계처럼 주고 받는 기호화된 성애적 상호작용이 바로 그러하듯이, 이러한 신정론적 결론 역시 덮어놓고 쌓아올리며 생활해 나가다간 어느 순간 반드시 그간 쌓였던 오해를 터뜨리며 믿음의 관계를 망가뜨리는 주범이 된다.

우리 인간이 당하고 있는 각종 곤란과 고통이 그 자체로 신의 뜻이라면, 그건 그 신에게 너무나 무례한 소리이다.

그게 무슨 신이냐 말이다. 기본적으로 신은 인간의 곤란과 고통을 가여이 여기고 해결해 줄 존재로 이해된다. 신이 그 본질상 인간을 초월하는 전지 전능 전선의 인격체이기 때문에 그렇다. 이는 논리적으로도 필연이며, 그래서 실제로 세계 어디의 어느 시절 종교관이든지 이 부분에서는 딴소리 없는 것을 볼 수 있다. 오직 중간에 뭔가 아주 단단히 잘못 이론화되어 전파된 청교도식 기독교만이 이런 영적 구속구를 차고 있다. 잘 생각해 보라고. 이건 정말이지 여호와 하나님 입장에서도 민망한 얘기다. "오 주님! 저는 지금 너무나 아프고 힘들고 괴롭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당신의 뜻이라고 생각하면 힘이 생기고 웃음이 납니다! 자! 저에게 더 큰 고난도 능히 감당할 힘을 주사 저의 믿음이 증명되는 것을 똑똑히 보아 주시옵소서!" 음, 써놓고 보니 별로 변태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각종 수련회와 기도굴에서 오늘도 쩌렁쩌렁 울리는 통성 기도들이 생각나서 그런 것일까?

기독교에만 한정해서 얘기하자면, 우리가 당하는 고통과 고난은 궁극적으로는 아담을 조상으로 갖고 태어난 우리의 잘못이다. 그리고 아담을 빚은 하나님의 뜻은, 아담 옆에 선악의 나무를 두시던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한결같이 딱 두 가지다. 인간들이 하나님을 버릴 수 있을 때에도 하나님을 선택하기를, 그리고 자기들끼리는 좀 사이 좋게 불화 없이 잘 지내기를.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베어물고 '부끄러움'을 느끼기 시작한 ― 말하자면 수오지심이라는 게 생겨난, 즉 인간들이 하나님이 주신 적 없는 관습과 제도와 행동 양식을 구성하기 시작한 ― 그때부터, 인간사에 일어난 일 중, 정말로 그 하나님의 뜻 두 가지가 실현되었던 순간은 눈물겨우리만치 드물었다. 그래? 다 뜻이 있으셔서 내가 근무 시간 다 끝나고도 테스트 결과 기다리며 야근하고 핫픽스 올리는 인생을 살고 있다 이거지? 솔로몬과 로마 황제와 트럼프를 다 지켜보신 하나님은 그런 발상에마저도 애써 동의하려고 노력하고 계실 것이다.

내가 야근하고 있는 건 그냥 일이 많아서다. 내가 일이 많은 이유는 그냥 이 회사가 이래서 그런 것이다. 이 회사가 이 모양인 이유는 그냥 오늘날 이 나라 경제 돌아가는 꼴이 이 꼴이어서다. 그렇다면 내가 야근하는 것은 누구의 뜻이랄 것도 없고 굳이 말하자면 이 체제를 이렇게 굴리고 있는 인간들의 더 큰 죄악에 의해 아래로 캐스캐이딩 되어 우리 회사 내 자리까지 내려온 악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걸 한 번도 의도하신 적이 없다. 굳이 따지자면, 주님은 그런 우리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애쓰시는 분이다. 보아라! 사탄이 심지어 너희를 밀 까불듯이 까불게 해 달라는 이슈 티켓까지도 열어 놨다. 그러나 나는 너희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위하여 기도하였나니… 그러므로 우리도 기도하자. 우리의 믿음이 더 정확해지고 성숙해지고 완전해지기를. 체념하듯이, 잘 이해하지 못했다는 듯이, 별로 깊이 들여다보고 싶지 않다는 듯이 우리가 자초한 이 모든 곤란과 고통을 신 덕분이라고 결론짓는 습관을 그만둘 수 있기를 말이다.

신 덕분이라고? 신의 탓이 아니고? 그렇다. 잘못된 관념 그 두 번째에 의하면, 우리가 자초한 이 모든 환란과 고난은 신 덕분에, 결국 다 좋게 좋게 끝난 해피 엔딩으로 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야 물론 해피 엔딩으로 가겠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 입장에서야 하여간 언젠가 우리 주님은 반드시 다시 오시고, 더 이상 눈물과 고통과 아픔과 헤어짐이 없는 세상이 오고야는 마니까. 근데 말이지요, 결국 어찌저찌 해서 다 좋게 좋게 되었더라 하는 이야기라고 뭔가를 요약하는 건, 그 이야기를 지은 사람에게 얼마나 모욕 또는 수치가 되는지 압니까요들? 좋은 서사일수록 뿌려진 떡밥들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음이 밝혀지며 훌륭하게 회수된다. 애초에 정말 잘 지은 이야기라면 필요 없는 떡밥은 절대 아무렇게나 흩뿌려지지 않는다. 반대로 나쁜 전개일수록 이것도 했다 저것도 했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알 수 없는 일들만 일어나다가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등장하여 막을 떨어뜨리고 도망가는 법이다. 19세기에 세계 대전쟁을 하고 20세기에 세계 대전쟁을 또 하고 21세기에 세계적 유행병이 또 퍼지는 이 인류 역사가, 정말, 주님 재림과 휴거 한 방으로 모두 갓띵작 해피엔딩 된다고? 그게 무슨 뻔뻔스러운 궤변인가 말이다.

말은 똑바로 해야지. 그 해피엔딩이란, 모든 일이 협력해서 선을 이루는 장면이란 언젠가 지금이 아닌 미지의 나중에 한방에 빡 하고 오는 대사건이 아닌, 지금 이 순간 우리 주님의 함께하심으로 인해 수시로 발현돼야 하는 상태인 것이다. 내가 왜 지금 이 시간 야근을 하면서 결제 테스트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가? 이 결제 테스트가 잘 돼야 결제가 잘 될 거고 그래야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잠재 고객들이 우리 상품을 이용할 거고 그래야 그들의 삶의 질이 올라갈 거고 그래야 경제가 살아나고 나라가 살아나고 가정이 살아나고 '나인 프론티어즈'의 비즈니스 영역에 푸르고 푸른 그리스도의 계절이 올 거라서? 아니 그 정도까지는 아니다. 그냥, 실제로 결제에 오류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결제 테스트를 해보자는 것이고, 그러니까 그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거다. 그게 다다. 일은 일일 뿐이다. 내가 무슨 새마을 운동이며 실업 선교사 하고 있는 게 아니란 말이지. 그리고 결과만 말씀드리면, 결제 자체는 문제가 없었는데 그 다음 처리가 이상하다는 리포트가 들어왔고 실제로 보니 내가 놓치고 지나간 부분이었어서 앗 죄송합니다 하고 그 부분을 고치고 퇴근할 수 있었다. 그런 거다. 갖은 일이 결국 선을 이룬다는 건, 결국 그 정도로 충분한 것이다.

랄까 사실은 언제나 딱 그런 정도까지만이었던 게 아닐까 싶다. 요컨대 거창해지지 않고 너무 멀리 허황되이 바라지 않고 지금 이 광야와 땅끝에 필요한 게 뭔지 생각하며 주님의 마음으로 그곳을 개간해 나가는 것이다. 초기 선교사들은 그렇게 했다. 물론 처음에야 빌리 그레함 같은 파송자들이 "가라! 주 영광 위하여" 하니까 "가야겠다" 하고 왔겠지만, 와서 살아보니 이건 내가 예수님을 전하고 어쩌고 그 이전에 병원부터 학교부터 좀 있어야겠다고 정신이 드는 거지. 그래서 예수님 전하는 건 나중에 하더라도 일단 그 지역 그 영혼들의 필요를 채우며 열심히 손해를 보다가 죽은 것이다. 그 삶이 고스란히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저렇게 손해 보다 죽었을까' 하는 감동이 되어 그 지역을 기껏 복음화해 놓았더니, 그 후손들은 어째서인지 "주 영광 위하여" 어쩌구 하면서 세습하고 부동산 놀음하고 태극기 흔들며 광화문과 국제분쟁 지역으로 밀어닥치는, 거창하게 하찮은 삶을 살고 있다. 아니면 정반대 방향으로, 이를테면, 노조를 결성하고 법을 바꾸어서 해결해야 할 수많은 문제들을 수요기도회의 침묵 속에 유야무야 떠내려보내는 온순한 기독교인들이 되어주고 있다. 그 부조리마저도 주님의 선한 뜻을 이루는 데 이용될 거라는, 지배 계급이 좋아하는 한숨 섞인 믿음으로.

그 과장님께는 이렇게 길게 대답하지 못하고, 그냥 그렇게 대답했다. 그런 생각 하지 않으려고 해요. 일은 일로 해야지요. 이런 일 하나하나에 하나님 뜻이 있을 거라고 믿는 사람치고 제대로 된 일 하는 사람 없단 말이에요. 그마저도 맨 끝의 요지는 적당한 예시가 생각이 안 나서 헛소리처럼 뭉그러지고 말았다. 나는 그 금요일 퇴근 직전에 동생에게 전화하여 오늘 퇴근하면 치킨을 먹자고 했고 그 약속을 지키려고 저녁을 굶었고 8시 좀 넘어서 퇴근해 기어코 치킨을 시켜 동생과 먹고 잤다. '내가 이렇게 힘들어 뒤지겠는데 하나님 너 이 새끼는 빨리 튀어나와서 내 문제를 해결하고 나 빨리 퇴근시켜서 선을 이뤄줄 것이지 대체 뭐 하느라 코빼기도 안 뵈십니까?' 같은 소리를 하지 않고, 대신 그냥 약속을 지키고 할 일을 한, 그래서 나쁘지 않은 편이었던, 그런 저녁이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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