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08 동기 결혼한다길래 국수 먹으러 가서 새로 바꾼 폰으로 첫 동영상을 촬영하고 대충 국수 먹다가 오랜만에 대학 선배님과 얘기를 좀 할 일이 있었다. 따로 커피 마시러 나가서 이런저런 얘기가 나오다가 대충 이런 질문이 나왔다.
근데 요즘은 유튜브로 사람들이 (정보를) 다 접하잖아. 근데 유튜브는 되게 직관적이니까, 사람들이 앞으로는 이런 철학적인 얘기는 잘 안 하고 이해도 못 하고 그렇게 되지 않을까?
아 맞아요 그럴 거 같아요 바보상자 유튜브 나빠요 같은 맞장구나 치고 넘어가면 좋았을 걸 그 와중에 그래도 성심껏 앞에 앉은 이의 질문에 의견을 내드리겠다고 잠시 생각하고 나서 답변을 했다. 음, 글쎄 그럴 거 같지는 않다. '어린이 학습만화' 같은 걸로 유년 시절을 보내고 비싼 등록금 부어서 철학 공부 찔끔 한 다음 이 나이 먹도록 별볼일없이 살면서 매주 유튜브를 찍어 올리고 있는 입장에서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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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유튜브가 "직관적"이라는 건 좀 뭉툭한 서술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유튜브는 매우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매체인데, 그렇다고 해서 직관적인 매체인 것은 아니다. 둘은 다르다. 직관적이라는 것은, 뭔가가 너무나도 함축적이고 복합적이고 고문맥적인 나머지, 부연 설명이 구구절절 따라오지 않더라도, 그걸 한 번 보기만 하면 그걸로 이미 설명이 충분히 제공될 때 그런 걸 직관적이라고 한다. 예컨대 "빨간 버튼"이 그렇다. 그런 걸 회원정보수정 화면 어딘가에 붙여 놓으면, 심지어 그 버튼에 '눌러도 별일 없습니다'라고 써있을지라도 (그리고 실제로 눌렀을 때 별일 없더라도) 사람들은 그걸 함부로 누르지 않는다. 그 버튼을 위험한 버튼이라고 직관해 버리기 때문이다.
유튜브가 시각적으로 직접적이기 때문에 그걸 문자로 써서 '직관(直觀)'의 매체라고 생각할 수는 있겠지만 사실 그렇지는 않다. 어느 쪽이냐 하면 유튜브는 텔레비전이 갖고 있던 "바보상자"의 악명을 계승하는 중인 매체이다. 유튜브는 말초적이고 즉각적이며 단편적인 시각적/지적 자극을 제공하는 매체로서 이해되고 있고, 그런 점에서 사람들을 종합적 판단, 비판적 수용, 주체적/메타적 사고로부터 이격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실로 21세기의 텔레비전이라고 할 수 있는 상황이다. "마윈이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같은 퀴즈가 마윈 얼굴보다 더 크게 박혀 있는 섬네일을 눌러, 10분짜리 영상을 보고 나면, 확실히 마윈의 성공 비결에 관한 팩트 몇 가지는 대충 기억이 나지만, 그밖의 내용은 며칠 뒤에 잊혀지고, 그 영상에 대한 '감상'은 있었는지도 모르게 없어지고 만다.
선배님이 의문(또는 걱정)하고 계시던 부분은 이런 맥락이었다. 확실히 기독교는 변증과 서사의 종교고 사람들에게 뭔가를 구구절절 설명해야만 한다. 하지만 요즘은 유튜브 시대다. 사람들은 5분 안에 명쾌하게 시각적으로 주어지는 정답을 원한다. 이런 시대에 과연 우리가 뭘 말할 수는 있을까? 나는 없다고는 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할 수 있다. 랄까 해야 한다. 유튜브 때문에 변증 못하겠다는 소리를 해선 안 된다는 말이지.
그러면 지금 시대에 기독교는 어떤 변증을 해야 하는가? 동시대적이고 성경적으로 정확한 '도식'(diagrams, schema)을 개발하고, 그걸 과감하게 침투시켜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도식"의 성질에 의해 자명한 바) '직관적'인 그림을 그려 보여줘야 하는데, 그 내용은 성경 진리를 충분히 소화해 압축한 것이어야 하고, 그 제재와 전개는 요즘 사람들의 일상에 밀접하게 가닿는 것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예컨대 나는 프로그래밍 드립들 중 기독교 진리의 도식에 도움이 되는 게 꽤 있다고 생각한다. 대표적인 것이 자바스크립트의 삼위일체이다.
재미있게 놀라운 사실은, 이 그림의 왼쪽과 오른쪽이 각각 자기 세계의 진리를 매우 정확히 도식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심지어 삼위일체론의 해괴망측함도 닮았고, 전체적 교리 이론에서 핵심이 된다는 점도 빼다박았다. 그래서, 이렇게 정확한 도식이 우리에게 있으므로, 적어도 프로그래머들에게는 삼위일체론을 소개하기가 수월하다. 일단 이 그림을 보여주고, "이처럼, 이게 왜 이렇게 되는지 우리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성부, 성자, 성령은 타입도 서로 다르고 실질도 다르지만, 성부는 하나님이시고 성자도 하나님이시고 성령도 하나님이 되신다"라고 설명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프로그래머들은 갸웃거리면서도 일단은 알겠다고, 그거 참 희한하다고 납득하고 지나간다. 오히려, 이런 정확하게 직관적인 도식이 없으면, 이런저런 말장난이 늘어벌려지면서 양태론이니 성부우월론이니 하는 요설로 빠지고 만다.
물론 이런 도식적 변증을 개발하고 발전시켜 보급하기 위해서는 신학적으로 가장 정확하기 위해 애써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필요에 따라서는 그 변증이 굳이 시각적이고 즉각적인 것일 필요도 없다. 실질 내용이 정확하고 온당한 게 더 먼저니까. 그럴 때는 '역설'로 치고 들어가는 것도 방법이다. 첨 들었을 때 당장은 "그게 무슨 개소리야?" 싶지만, 동시에 뭐라는 건지 들어나 보자 싶어지는, 그래서 듣게 되고, 듣고 나면 "그런가?" 싶어지는 그런 방식의 설명 말이다.
오늘 선배와 얘기하다가 들은 신학 난제가 대표적인 예다. 자기 군생활 때 어떤 선임이 "근데 하나님은 사람을 왜 만들었어?" 물어보길래 예배받으려고 만드셨다 했더니 당장 돌아오는 답이 "그게 말이 되냐?"였다고 한다. 유구무언이 되고 말았다지. 지금 나보고 이 선임에게 대신 답해주라고 한다면 이렇게 말해줄 것이다. "말이 되죠, 인간을 만들어야 그 신은 진짜로 신이 되니까요." 딱히 궤변은 아니다. 우주와 자연은 신을 신으로 알아보지 못한다. 인간은 신은 신으로 대접하고 추앙할 수 있는 존재다. 기독교에서 신이 만든 것은 그런 존재이고, 그게 바로 인간인 것이다. (그리고 사실 이게 "예배받기 위해"의 세속적 번역이다. 대예배당의 상자 밖에서 생각해본 적 없는 동료 기독교인들이 이해할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얘기를 하는 이유는, 오히려 이게 소위 "유튜브 시대"의 응전 전략일 수 있기 때문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유튜브 시대"라고 해서 사람들이 꼭 짧고 쉬운 것에만 집중하지는 않는다고 나는 믿기 때문이다. 당장 '뉴스공장' 같은 거만 하더라도 김어준 혼자서 몇십 분간 저 혼자 떠들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한 마디나 놓칠세라 경청을 하지 않는가. 왜 그러겠는가? 그게 아무튼 귀에 쏙쏙 박히고 뭐라는 건지 들어나 보자 싶어지고 들어 보니 앞뒤가 맞는 거 같기 때문이다. 우리 기독교인들 모두가 김어준 같은 달변가가 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뭐라는 건지 들어나 보자' 싶은 말은 할 수 있다. 지난 몇백 년간 선배님들이 관련 신학적 업적을 다 이뤄 놨으므로, 그 성과를 성경과 함께 씹어먹고 실용적으로 재가공해, 자기만의 오늘날의 언어로 번역하기만 하면 된다. 기독교는 진리에 한없이 가까우므로, 정확하게 잘만 전달하면, 인류의 대부분은 그게 무슨 개소리냐고 따지면서 귀를 기울이지 않을 도리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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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컨대, 적절한 도식 및 역설적 설명을 가지고 요즘 사람들이 알아들을 만한 톤 앤 매너로 전달하면, 딱히 유튜브 시대건 포스트 유튜브 시대건 삼위일체론이건 간단한 설명이건 기독 신앙 변증 자체는 할 만한 일이라는 이야기다. 겁먹을 필요 전혀 없다. 일본 만화가 개방되면서 "폭력적인 상업만화 성인만화가 청소년들 정서 함양에 해악을" 어쩌구 할 때도 누군가는 과학과 역사를 잘 요약해 놓은 좋은 학습만화 보면서 잘만 자랐고, TV와 인터넷이 호환 마마 전쟁보다 더 무서웠던 시절에도 누군가는 그걸로 배울 거 다 배우고 깨우칠 거 다 깨우친다. 그런 의미에서, 언제나 그랬듯 앞으로도, 중요한 건 좋은 설명과 충분한 설명력 그리고 동시대 매체에 대한 과감한 장악이다. 가면 갈수록 매체의 발전은 '그런 걸 제공하지 않아도 인기를 얻을 수 있는' 쪽으로 나아가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말이다.
뭐야 이게 다 무슨 소리지? 누가 요약 좀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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