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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어떻게 살고 있느냐면 주중에는 매일 오전에 어느 유학원에 출근해서 홈페이지 관리하는 일을 하고, 끝나고 돌아와서는 조금 쉰 다음에 Lucy Liu라는 식당의 디시워셔로 일한다. 이 식당의 근무표(roster)가 좀 대중이 없어서 일요일 저녁에도 근무가 거의 항상 들어가는데, 그러면 나는 일요일에는 새벽같이 일어나 아무도 시키지 않은 RWBY Chibi 2기 자막을 치고 박스힐 한빛교회 성가대를 한 다음 식당으로 가 일을 하고 콜라와 잔반을 좀 챙겨서 집에 가는 것이다. 보통 1주일에 4~5일 디시워셔 일이 있는데, 그런 날은 보통 아침 8시~9시에 일어나고 밤 1시~2시에 잔다.

디시워셔 일 자체는 어렵지 않은데 식기들이 다양하고 무겁고 세척기의 물이 뜨겁다 보니 육체적으로 힘든 부분이 있다. 이번에 처음 안 사실인데, 몸이 힘들 때면 내 머릿속에서는 뭔가 랜덤한 게 재생이 된다. 보통은 옛날에 봤던 재미난 것들이고, 그래서 그걸로 버틴다. 아무튼 그래서 지지난 주쯤, 아마도 Lucy Liu 출근 19일차인가 18일차에 식당에 출근해서 일을 좀 하다가 살짝 한가해질 때쯤 원래 매일 해야 하는 위층 창고 정리를 하려고 배운 대로 걸레통에 물 받고 세제 풀고 몽당빗자루를 쥐고 계단을 올라 아무도 없는 식자재 창고 바닥에 쪼그려 앉아 바닥을 쓸고 있었는데, 뭔가가 떠올랐고, 몸이 그걸 입 밖으로 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몸이 그걸 한 박자도 쉬지 않고 외는 동안 머리는 벙쪘다. 너 뭐하냐? 지금 요한복음 1장 14절을 암송해서 어쩌자는 거야? 그리고 하필 이렇게 어려운 말씀을 떠올려? 청소하러 왔으면 청소에나 집중할 것이지... 그러다가 문득 머리가 그 말씀을 잠깐 다시 생각해 본 모양이다. 그때는 움직이던 손발도 잠시 1초 정도 멈추고 허공을 보아야 했다. 이 말씀에 대해 내가 그 순간 묵상한, 여태껏 와서 처음으로 깨달은 바는 이것이다.

와 그거 진짜 피곤하셨겠다.

말씀이 육신이 되다니? 태초부터 “말씀”이셨던 분이 어느 날부터 육신을 입고 살게 되면 세상에 그 얼마나 피곤할까? 생전 느낄 필요가 없었던 배고픔, 지침, 더위와 추위, 똥오줌 마려움과 더러움을 느끼셨어야 할 테고 그걸 또 지극히 평범하게 인간적인 방법으로 해결해야만 했을 것이다. 얼마나 피곤하셨을까? 아버지 따라서 목수일 하고, 언제 독립할 거냐고 잔소리 듣다가, 광야에 나가서 40일 금식을 하고, 매일같이 언덕바치며 고깃배 갑판에서 목청 높여 설교하고, 병자들 고치고, 한입거리도 안 되는 하찮은 율법쟁이들과 굳이 싸우고, 허구헌날 누가 크네 작네 다투기 바쁜 제자들 붙잡고 먹이고 재우며 비유 풀어 가르치고, 그 와중에도 최소한의 신성을 잃지 않기 위해서 새벽마다 일어나 따로 기도까지 하셔야 했을 것 같으면…!

그리고 무엇보다도, 죽음을 감당해야 했다면 말이다. 불교가 말하는 도일체 고액이란 사실은 인간성에 육체성이 필연적으로 수반된다는 공통 진리에 대한 서술이며 따라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위대하심에 대한 참고가 된다.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기도는, 오밤중 회당에서의 날치기 구형은, 다음날 아침 빌라도 앞에서의 선고는, 십자가를 지고 가는 길은, 끝내 못박혀 매달리는 순간은, 아, 도대체 얼마나 끔찍하게 피곤한 일이었을까. “열두 군단이나 되는 천사”를 부를 수 있는 분이 “내 마음이 피곤하여 죽게 되었”다고 애걸해야 하는 그런 피곤함은, 꽤 피곤하게 살고 있는 지금의 나조차도, 도저히 상상할 수가 없다.

그리고 그 피곤을, 죽음을, 육체성 일체를 사람으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 주님께서 감당하시고 이기셨기 때문에 나는 그를 믿는 신앙이 참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것은 실로 인간적인 구원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태어나면 피곤하고 지치며 병들고 죽는다. 그러나 이것은 이성을 가진 인간에게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실존의 양태이지, 그 무슨 미신적 신앙으로 도망하여 잊거나 피상적 일상을 이용해 외면할 특이상황으로 취급되어서는 안 된다. 애초에 피곤하다는 것은 무엇인가? 할 필요 없어 보이는 일을 하느라 느끼는 감정 아닌가? 그렇다면 인간 이성에게 살고 병들고 죽는 일은 그저 다 피곤한 일이다. 이성은 불멸할 것만 같은데 이 빌어먹을 육체 때문에 자야 하고 아파야 하고 죽어야 하지 않는가. 보통 피곤한 것이 아니다. 한데 불교는 아무도 보장해주지 않는 탈자아의 승리를 말하고, 힌두교는 엉뚱하게 인간 관점에서 설계된 계급을 내세우며, 이슬람은 오직 알라의 위대함에만 의탁하고 있지 않은가.

다만 말씀(logos)이신 그리스도만이 그 어느 것도 아닌, 오히려 인간성의 기초로서의 육체성을 완전히 수용하는 부활의 믿음을 완성하셨다. 하나님이신 그분께서 사람이 되셔서 우리 가운데 오신 것이다. 오직 신이고 이성(logos)이기만 하신 그분께서 우리처럼 낮고 힘들고 지저분하게 사는 사람들 가운데 함께하셔서, 정말로 우리처럼 돌아다니고 일하고 고생하고 죽으셨으며, 그것으로 모든 율법 조항을 갈음해 버리시고, 우리가 따라갈 수 있는 첫 번째 부활자가 되어 주셨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제자 요한이 ‘도대체 내가 누구와 뭘 하며 뭘 본 것인가’를 한평생 곱씹은 끝에 내려 준 답이었으며, 알고 보니 그분의 성육신(incarnation)이란 세상 어디에도 없던 기쁜 소식,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진리, 기상천외한 은혜였던 것이다.

말씀이 굳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피곤하게 거하여 주셨으매 우리가 그 영광을 알아볼 수 있었으니, 그야말로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였더라.

내가 디시워셔 잡을 좋아하는 이유는 두 가지인데, 힘든 만큼에 대한 보수가 적정해서 “일을 해도 좋고 안 해도 좋은” 딱 그 수준이라는 점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어쨌든 일이 끝난다는 점이 가장 좋다. 지금껏 해도 해도 안 끝나는 가늘고 긴 “트랙”들의 연쇄에 치여 살아 와서 그런지 몰라도, 하다 보면 ‘사람이 이런 일을 하고 살아야 말이지’ 싶어진다. 접시가 막 밀려들어오는 걸 보고 있으면 아 올 게 왔구나 하고 막막해지면서도, 시계 볼 시간에 미친 듯이 물 뿌려서 팔레트에 올리고 세척기 돌려서 잽싸게 닦아 제자리에 갖다놓다 보면 결국은 모두 다 끝난다. 적어도, 아무도 안 들어오는 사이트에 아무도 안 누르는 배너를 유치하겠답시고 영업을 빙자한 구걸 전화와 메일을 돌리며 “앉아서 돈 버는” 헛꿈을 안 깨게 도와주는 것보다는 백배 낫지 싶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도 그러셨을까. 한가할 때 잠깐 광야에 나가 쪼그리고 앉아서 사역 정리 좀 하고, 어쨌든 자고 일어나면 피로가 좀 풀릴 테니까 다시 공생애 사역 잘해보자고 스스로를 다독이고, 유월절이 되어 유다와 대제사장들이 움직이는 낌새를 보며 아, 바빠지겠구나, 이제 어떡하지, 하던 대로 하면 되나 하는 막막함을 느끼고, 십자가 위의 육체가 사망하는 시점에 와서는 아, 이 일이 드디어 끝났네, 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그러신 것일까.

그러셨을 것 같다. 그건 무슨 어마어마하게 신성하고 진중하며 엄숙한 장면들이었다기보다는, 그저 육신이 되신 말씀이 — 육신을 입고 살며 어딘가에 쪼그려 앉아 빗자루질을 하는 우리처럼 — 고생하시고 구원을 이루신 그런 차원의 장면들이었음에 틀림없다. 그렇지 않다면, 애초에 말씀이신 그분이 ‘죽어야 할 필요’는 어디에 있었을 것이며, 그전까지 디시워셔 일을 하면서 한 번도 머릿속에 재생해본 적이 없는 그 말씀을 내 머리는, 내 영혼은 왜 하필 그 자리에서 토해내야 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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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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