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언부언 방지를 위해 최대한 짤막 짤막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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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는 대규모 회귀예측 수단이고 이것의 응용은 많다. 그러나 이를 둘러싼 유일하게 가장 뜨거운 화두는 인간 노동 대체 가능성 문제다. 가장 언급되지 않는 것은 지구적 난제 해결 문제다. 초창기 '머신러닝'은 암도 없애고 기후위기도 고치고 할 것처럼 마케팅되었는데, 이세돌이 알파고에게 "진" 이후로 이 "희망"은 거짓말처럼 증발해 버렸고 인류는 맹렬히 자기 비관에 몰두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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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무자들의 도태 공포는 크게 두 가지에서 오는 듯하다. 하나는 모델들의 압도적인 스케일("모르는 것이 없음"), 다른 하나는 자기가 비교적 열등하다는 사실("이제 개발 배울 이유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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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한 타협/대응책은 크게 2가지로 보인다. 전자/컴퓨터/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의 본령에 더 천착하기, "코딩"이 그 자체로 사업이 아니었음을 인정하며 기꺼이 사업가적 마인드셋의 노동력으로 변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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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명백히 '타협' 전략이고 좀 비웃기는 이유는, 상황이 이제 와서 급변한 것이 전혀 아니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코딩을 위해 코딩하는 코더들은 언제나 도태 대상이었으며, 자본은 노동자가 자본가적 마음가짐으로 스스로를 착취할 방안을 찾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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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시점에서 급변한 변수는 하나다. 자본이 기술에 접근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자본이 스스로를 조금 착취해 보니 대충 되겠더라, 그러니 너희도 해라, 너희는 돈을 받는다는 사실을 유의해라, 하는 으름장이 이런저런 신화에 동봉되어 항간에 범람하고 있다. "쇼피파이 사장님이 쇼피파이 개발자들의 비효율적 쿼리를 개선하라고 AI에게 지시해 놓고 자러 갔다더라" 따위의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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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하이프"가 유난히 시끄러운 이유는 이 접근성에 있는 듯하다. 메타버스, 빅데이터, 블록체인, 노코드/로우코드 따위 과거 하이프 사례들은 "아는 척"을 하고 싶어 죽으려던 (예비)자본가들이 정작 실제로 그걸 알고 쓰고 행하지는 못해서, 그래서 "알기만 잘 알아서" 속 터져 죽으려고 하던 것들이다. "챗GPT"는 다르다. 말귀를 알아듣고, 그럴듯한 실물이 나온다. 드디어 마침내 그 허영심을 채워줄 '이야기 노예'가 등장한 것이다. 자본 입장에서는, 그간 그토록 하고 싶어 죽을 거 같던 무언가를 하나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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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력시장 불황, 기존 노동력의 업무 가중 등은 바로 이 "그토록 하고 싶어 죽을 거 같던" 착취행위의 일환에 지나지 않는다. 자본은 원래부터도 최소한의 노동력으로 최대한의 초과이윤을 뽑아내고 싶어했다. 적당한 핑계가 없었을 뿐이다. 직전까지만 해도 "단기 대량해고"가 거의 유일한 방법이었는데, 이제 드디어 빌어먹을 수단 하나가 더 나온 것이다. "이 돈을 토큰에 태울 바엔 사람을 뽑지" 싶은 상황에서도 차라리 '토큰을 태우기'를 마지않는 것은 오직 이런 가치 가중치 연산의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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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불만은 크게 세 가지. (1) 왜 이것이 착취의 문제임을 말하지 않는가? (2) 왜 노동자들은 자기가 임노동자임을 외면하려 하는가? (3) 왜 더 가치 있고 큰 문제를 생각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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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취의 문제. 현재의 AI 하이프는 극소수 독점 자본이 정보를 중앙 집중하고 독점적으로 가공하여 인간 노동력의 "대체제"로 광고되는 무언가를 막대한 규모로 초과 공급하는 수작이다. 이는 사회경제학의 측면에서 자본가들이 임금을 덤핑해 노동력을 착취하는 일이며, 환경의 측면에서 물과 전기의 남용이며, 공동체 안보의 측면에서 공적/사적 데이터의 남획 오용이다. 아예 금하지는 못하더라도 "작작 좀 해라" 할 여지가 차고 넘치는 바 혐오스러울 정도의 노골적인 탐욕이다. 버니 샌더스가 데이터 센터 모라토리움을 요구하는 것은 바로 이 맥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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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엄으로서의 노동자성의 문제. 속되게 말해서, 노동자들은 시키는 일을 하라고 고용되었지, 사장님들처럼 생각하라고 고용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의 AI 하이프는, "프롬프트"며 "에이전트 하네스" 따위가 누구든지 할 수 있는 일인 양 선전되고 있다 보니,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AI를 활용해야 한다는 식의 으름장이 나오고 있다. 이 부분이 계약 위반 수준의 착취다. 당신은 인생을 팔아서 시키는 일만 하면 되며, 응당 그래야 한다. 물론 자본가는 전가의 보도를 휘두르며 "시키는 일만 하지 말고 '에이전트 오케스트레이터'가 되어야 한다" 따위를 윽박지를 것인데, 그러거나 말거나 당신은 엄연히 피착취자, 피고용인, 임노동자이며, 그에 맞는 요구를 할 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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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복을 사 입고 입대하는 군인은 없다. 그렇다면 AI와 사무직 노동자라는 도식에 있어서도 그렇지 않을 이유가 있는가? 전통적으로 '회사'는 업무를 교육했다. 어떤 이유에서든지 사장은 직원이 하는 일을 할 줄 아는 사람이었고 그래야만 했다. AI에 대해서도 왜 그러지 말아야 하는가? 무슨 AI를 (안) 쓸지, 어떤 프롬프트가 허용/금지되는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 재해/상해/피해 발생 시 책임관계는 어떤지, 인력이나 임금의 부족에 대해 협상할 방안은 무엇인지, 역량 교육과 정당한 평가는 제공되는지, 이런 것들을 AI 사용을 바라는 현재/미래의 고용주들에게 묻고 따져야 하지 않을까? 이런 구체적인 계약 없이 무작정 24시간 돌아가는 기계에 24시간을 맞추라는 것이 19세기 방직 기계의 요구였고, 러다이트 운동은 바로 그런 부당 개악 계약의 착취를 거부한 행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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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사의 문제. "AI로 대체되지 않을 분야" 따위의 소문들을 보고 있자면, 오히려 바로 그 분야들이야말로 지금 당장 AI든 뭐든 써서 조금이라도 더 진일보시켜야 할 분야들이다. 돌봄 노동, 청소, 운송, 의료 등등 인류 관심사의 어떤 영역은 몇천 년에 걸쳐 유구하게 구태로우며 도태되어 있다. 모종의 위계를 창출 유지하기 위해 이런 '하찮은' 일들을 의도적으로 방기하고 있는가 싶던 혐의는 지금의 AI 하이프에 와서 더 짙어진다. 자본과 관심의 초점이 조금만 몰려도 희귀병이니 기후위기니 따위는 해결하고 남음이 있을 텐데, 이 문제가 완전히 묵살되다시피 망각되어 있는데 실로 환멸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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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빌 게이츠가 깨끗한 화장실 만드는 벤처에 투자하던 시절도 있었고 일론머스크며 제프베조스 등의 우주여행 놀이에조차도 '우주식민지 개척' 따위 이런저런 미사여구가 붙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아무도 만들어달라 한 적 없는 무언가를 너도나도 똑같이 만들어서 각자 잘난 척만 하고 실제로는 아무 사회적 기여도 하지 않기' 잔치가 원래도 너무 많이 열렸던 것이 지금은 이루 말로 할 수가 없다. 다들 설거지 방청소 병수발은 하기 싫고 모니터 앞에 앉아 "딸깍딸깍"만 하고 싶은 것이다. 인류는 기어이 재미없고 돈도 안 되지만 누군가 해야 하는 일을 안 할 방법을 찾아내고야 마는 것이다. 여기서 오는 절망은 어떻게 거두어야 할지 모르겠는 그런 종류의 절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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