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다가 지리산휴게소 저 아래쪽에는―내가 차마 내려가서 눈으로 확인하고 싶지 않은―무슨 전승 내지는 반공, 참전, 순국 과에 속하는 기념 조형물 1이 설치되어 있는데, 그것은 박정희시절에 무수히 제작된 기념 조각의 전형으로 삐죽 솟은 20여 미터의 기념탑 아래쪽에 철모 쓴 군인들이 돌격하는 동상인 것이다. 특히 이 기념탑은 약 80˚를 이루는 예각의 첨탑으로 삐죽 솟아 있고 위 모서리도 사선으로 마감함으로써 날카로움을 극대화시켰는데 그것이 바로 앞산 지리산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이 조용하고 한적한 산골에 저처럼 생선회 치는 긴 칼 2 모양의 조형물을 세워놓는 아이디어, 이것은 단군 갑자 이래 20세기 후반의 인간들 3 아니고서는 5천년 역사 속에 없었던 일이다. 우리는 이런 엄청난 시절에 살고 있는 것이다. 4
- 600고지 전승탑. 조사해 보면, 이 부근을 간단히 답사할 때 으레 코스로 지정되는 모양이다. [본문으로]
- 일본어로 刺身包丁(さしみぼうちょう), 우리는 흔히 사시미라고 부르는 그거. [본문으로]
- 현재 1권을 얼마 읽지도 않았는데 끊임없이 경멸스러운 어감으로 등장하는 단어가 바로 '20세기'이다. 유홍준은 20세기 특히 그 후반 격동기를 문화유산의 흑사병 기간으로 보고 있는 것 같다. [본문으로]
- 이상하게도 이 책은 문화유산에 대한 설명을 적으려는 책인데, 그가 시종일관 한탄하는 문화유산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 폭력과 무개념에 대해서만 기억하게 한다. 그것이 이 책의 성공비결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확실히, 여전히, 우리는 터무니없이 엄청난 시절에 살고 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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