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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그릇된 일인데 너무 뻔뻔하게 활개를 치면, 사람들은 그 죄목을 찾지 못한다.

나는 내게 철학을 가르치던 신부가 기공식용 미사 집전 된 것에 분노하여, 그 가설 무대 뒤에 누가 남겨둔 군만두를 집어먹었다. 그리고 조만간, 우리는 우리가 공부하는 교실 바로 밑에서 50% 할인 행사가 웬말이냐는 불평과 함께 카트를 두어 대 끌고 다니며 MT 준비를 하고 있을 테다.

그른 일이 왜 그른지 알 수 없는 건, 자기가 그르기 때문이다.

왜 메가스터디가 인문관을 짓지 않는 걸까? 그러면 사탐이나 논술 과목 알바가 대거 공급될 텐데. 왜 교보문고가 로욜라를 경영하지 않는 걸까? 그러면 돈 낸 사람에게 무제한 대여를 해 주는 편리한 시스템이 가능할 텐데. 왜 공모전으로 조별 발표를 대체하지 못하는 걸까? 그러면 일석이존데. 학교에 홈플러스가 들어오는 게 뭐가 나쁜가? MT 준비하기 쉽고 좋은데. 가브리엘관에 CGV가 들어오면 왜 안 되나? 그러면 졸업하자마자 취직할 수 있을 텐데.

내 감상을 말하자면 오늘의 대학생들에겐 누구나 마음 속에 자기만의 홈플러스 인문관을 짓고 있다는 느낌이다. 교양이라는 적금을 부어 가면서 커리어를 쌓아 괜찮은 길목에 입주한, 그래서 적당히 배운 것도 있고 적당히 돈도 잘 버는 쾌적하고 합리적인 주상복합의 안전한 구조를 갖춘 인간으로 자기를 짓고 싶어하는 것 같다. 그건 하나도 나쁜 일이 아니고 오히려 너무나 권장되는 모델하우스다. 모두 다 그렇게 사는 건 절대 불가능함에도. 이 세상에 위층엔 강의실, 아래층엔 생활가전 매장이 있는 건물만 세워지는 것은 결코 아님에도.
그러니 진짜로 눈앞에서 홈플러스라는 괴물 같은 크기의 상업시설이 들어온대도 지금처럼 평온하게들 숙제하고 졸면서 지낼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 사실 우리는 대학교에 돈 벌러 다닌다. 그러므로 우리 학교에서 돈 좀 벌겠다고 들어오는 홈플러스 앞에서 다만 반대하는 흉내밖에 내지 못한다.

우선 자기부터 청문하자. 우리가 공부하러 대학을 다녔던가? 거기에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안의 홈플러스 인문관을 때려부수고 나서야 누구든 붙잡고 따질 수 있고 그때에야 얘기가 진행될 것이다. 그리고 서강대학교는, 안타깝게도, 나를 비롯한 수많은 창의적이고 비즈니스 프렌들리한 소시민 청년들 덕분에 이것이 거의 불가능하겠다.[각주:1]

아, 복장 터진다...

  1. 천만다행으로 그러나 학생들의 힘이라기보단 주변 주민들의 힘으로 홈플러스는 입점하지 못하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는 이번 사건의 교훈을 기억할 수 있을까? [본문으로]
Posted by 엽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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