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는다는 말도 너무 쉽게 합니다. "당신 죄인입니까?" 물어봐도 너무 자연스럽게 "네, 저 죄인입니다, 예수님이 저 구원하시려고 죽으신 거 압니다"라고 너무 편이하게 말하고 있단 말입니다. 전도를 할 때는 그 믿는다는 고백을 받아내고 싶어서 막 추궁을 하지요. 자꾸 "믿습니까?", "당신이 죄인인 것을 믿습니까?" 묻는데 그 사람이 또 착한 사람이어서 싫다고 거절은 못 하겠고 계속해서 "어차피 밑져야 본전인데 그냥 믿는다고 하십쇼" 하면 '천국이 있는지 내가 죄인이라는 게 뭔지 잘은 모르겠지만 뭐 그렇다고 하니까 그런가 보다'하고서 얼떨결에 "예 예 믿습니다 네" 대답 한번 해 주지요. 그러면 그 자리에서 "우리에게 새신자가 왔습니다, 당신 구원 받았습니다" 하면서 좋아하고 환영하고 그러죠. 그러니까 아 이게 좋은가보다 하고 주일날 하루 이틀 오는데 복음은 잘 몰라도 '아 말씀이 좀 좋은 것 같다' 하면서 한 해 두 해 있다 보면 집사도 하고 권사도 하고 장로도 합니다. 교회에선 집사고 장로고 목사인데 죽어서 천국 문 앞에 섰을 때 주님이 모른다 하시면 어쩌려고 그러십니까? 정말 자기가 죄인인 줄 아는 사람이 되느냐 말입니다.
요즘 사람들 스마트폰 많이 쓰지요.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이런 사람들에게는) 마치 스마트폰 속 수많은 앱 프로그램 중의 하나인 '기독교'라는 앱 하나 받아서 쓰는 것 같다 이 말입니다. '문제 있으십니까? 작정기도 좀 해 보십시오, 이 앱 써 보십시오. 사업 잘 안 됩니까? 이거 실행해서 쓰십시오. 다른 거 뭐 '가톨릭'이나 '불교' 앱보다 이게 훨씬 좋습니다!' 그러는 것 같단 말입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OS를 바꾸는 것입니다. 오퍼레이팅 시스템 아시죠, 체제를 바꾸는 거란 말입니다. 윈도우 쓰던 사람이 맥킨토시 쓰면 처음에 버벅거리고 잘 못 다룹니다. 지금껏 써 왔던 것들을 쓸 수가 없게 되지요. '이 프로그램은 호환이 안 돼서 못 써요, 현실이 이래요', 그렇게 다른 OS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해서 포기해야 할 게 많아집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건 그런 것입니다. 체제가 바뀌어 있느냐 말입니다.
체제 정도가 아니라 사실은 저장장치만 뽑아서 아예 하드웨어 기계까지 통째로 바꾸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을 했지만 그건 신학적으로 문제가 있는 관점 같으니 패스. 여하간 오랜만에 블로그에 말씀 본문 포스팅은 오랜만인 거 같다.
특이한 사람의 고충 중에는 이런 게 있는데, '쟤는 뭔가 다르게 살 것이다'라고 기대를 잔뜩 받는다는 것이다.
기대'만' 잔뜩 받는다.
지원도 못 받고 격려도 못 받고 이해도 받지 못한 채 그냥 온갖가지 기대만 받으며 살아야 했을 그 특이한 사람에게는 평범한 인생이 되는 것만이 최선이 된다. 그런데 그렇게 그가 평범한 인간을 달성하면 또 그때에 와서는 다들 몰려나와 혀를 차고 고개를 젓고 한숨을 쉰다. 어쩌다 쟤가 저렇게 됐을까, 저럴 애가 아니었는데, 난 쟤 진짜 '잘 될 줄' 알았는데 하면서.
그러면 그 특이한 사람은 말이 막힌다. 욕도 하려다 접는다. 그리고 그저 지금 누리게 된 평범한 삶이 주는 아주 약간의 유익을 쓸쓸히 바라보며 입을 닫고 고개 숙인다.
이번 학기 휴학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꼬박 한 달 동안 희망했던 것을 가족들과의 대화 한 시간에 다 그만두었다.
사실 개인적으론 처음에 되게 실망스러운 결말이구나 싶었는데, 주변에서는 잘 했다고들 한다. 이건 정말 잘 된 일일까. 정답을 고르는 것만이 정답일까. 역시 내게는 일탈이랄까 예외적 생활이 별로 처절하게 필요하지는 않은 걸까. 나도 어쩌면 재미없는 삶을 살게 될지도 모르지만, YWAM 리더생활이라든가 바로그찌라시라든가 기타 여러 생활을 하면서, 내가 휴학하지 않는다는 것이 여러 사람에게 잘된 결말이라는 것이 의외였다... 그럴 수도 있구나. 아직은 잘 모르겠다. 사실 오늘도 늦게까지 잠들지 않고 있는 매우 안 좋은 생활습관 가운데 있다. 슬슬 이거 고치고 제공기록지도 제대로 만들고 사무실도 찾아가 보고 수강신청 준비를 해야 할 텐데. 나는 여전히 방학을 보내고 싶어한다. 하긴 휴학하면 어 이것도 방학인가본데? 하고 놀다가 어영부영 12주가 가 버리겠거니 싶어지기도 했다.
대한민국의 진보진영, 사민주의자들 및 상식적이고 자유롭게 행동하고 싶어하는 무릇 모든 이 나라 사람들에게 차꼬가 되고 걸림돌이 되고 주홍글씨가 되는 칭호가 있었다. '빨갱이'가 그것이다. 단순히 지난날의 공산 정권이 적색을 많이 사용했다는 이유로 그리고 북한이 적색을 주로 사용하며 그래서 국군이 '적'이란 글자를 표기할 때 반드시 그 글자만 빨간색으로 표기한다는 원인으로 인해, 빨갱이란 이름은 과연 그 누구의 자유와 인권과 발언권도 깡그리 소멸시켜 버리는 무시무시한 낙인이곤 했다. 발음도 무섭고 연상되는 이미지도 너무나 괴기한 그 이름, 빨갱이.
언제까지 빨갱이라고 불리기만 할 것인가. 정말 우리들의 머릿속은 빨간가?
색깔은 너무나 치명적이다. 적색은 위험하다는 인상을 아주 손쉽게 심어준다. 그러나 소위 '빨갱이'들이 주장하는 것이 그렇게나 원색적이고 노골적인 것이 아니기도 하다는 점에 좀 주목해줘야 할 텐데, 그러기 싫다는 의도를 가득 담아, 무슨 조금만 '덜 자유시장자본주의적인', '더 사회민주주의적인', 더 '급진적인' 생각만 갖고 있다 하면 바로 빨간 놈들, "빨갱이"라고 이름붙여 버림으로써 더 이상의 인격적 대화를 차단해 버린다. 사실은 그 생각들이 그다지 빨갛지만도 않은 생각들인데도 그렇다.
그렇다면 이쪽에서 반격을 하면 어떨까. 그러는 당신네들은 노랑이라고 말이다.
국어사전에서 노랑이를 찾아보면, 노란빛을 띠는 물건이라고도 하지만, 속이 좁고 인색한 사람을 가리킬 때 쓰는 말이기도 하다. 노랗다는 것은 무엇인가? 몇 날 며칠을 햇빛 받는 자리에 내내 고정시켜 두어 빛이 바래서 나오는 색깔이 아닌가? 마음씨 넓게 쓸 줄 모르고 그저 아무것도 새롭게 하려고 하지 않을 때의 색깔, 그러므로 돈의 노예가 물들어 버리는 색깔은, 과연 노란색이 맞을 것이다.
노랑이도 좋고 노랭이도 좋다(물론 표준어로는 틀렸다). 문제는 프레이밍이다.
그저 모든 판단 기준이 자기에게 이득이 되느냐, 지금의 기득권과 사회구조가 지켜지느냐, 내 돈 내 집 내 새끼가 피해를 안 볼 수 있겠느냐에만 관심이 있는 구두쇠들. 그래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국가유공자가 어떻게 굶고 지내든 영세한 사람들이 얼마나 불행하든 자기 집 대문 밖에서 헐벗고 갈데없어 쓰러져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든 관심이 없는 저 초고층 아파트와 빌라마을 속의 노인들, 아줌마들! 그들을 '기득권'이니 '일부 5060'이니 '1%' 등으로 부르는 것은 그들의 진짜 속성을 드러내지 못하는 너무나도 객관적이고 그래서 불공평한 호칭이다. 그들은 우리를 빨갱이라고 부르는데, 왜 우리는 저들을 노랭이라고 부르지 못하는가? 야 이 돈독 올라서 얼굴 노랗게 뜬 노랑이들아! 왜 그렇게 부를 생각을 못 하고 살았을까? 누군 누구를 색칠놀이하는데 왜 누군 누구를 색칠놀이할 수 없단 말인가?최상위 1%라는 이름은 절대 노랑이라는 이름이 갖는 엄청난 편견 선물세트를 제공할 수 없을 것이다. 아마 이 이상 그들에게 더 노골적이고 인신 비하가 되는 표현은 없지 않을까?
노랑이들!그들의 색은 노란색이다. 수전노의 색깔이다, 스크루지 영감의 금전출납부의 색깔이다, 금괴의 색깔이다, 친일파들이 그토록 받고 싶어했던 무슨무슨 작위며 농토의 소유 증명서의 색깔이다, 주식과 어음과 은행 수표의 색깔이다 그리고 똥의 색깔이다! 빨갱이들 중에 정말 빨간 생각만 하는 사람들이 있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노란색밖에 모르는 놈들은 노랑이라고 불러 줘도 되지 않겠는가? 노란 놈을 노랗다고 부르는 게 뭐가 나쁘단 말인가? "노랭이, 노랭이" 놀려 주자! 돈밖에 모르는 놈들! 누리끼리한 놈들!
프레이밍을 시작하자. 지목하자! 이건희 회장은 노랑이다! 이완용은 노랑이다! 김재철은 노랑이다! 이동흡은 노랑이다! 이근안은 노랑이다! 전두환은 노랑이다! 이명박은 노랑이다! 너희 노랑이들아 빨갱이들의 색칠놀이를 받아라! 이 나라의 모든 돈밖에 모르는 거지같은 놈들에게 외치자, "노랑이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장차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내가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임이라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개인 약속의 말씀: 고후9:8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뭔가를 하고 있다는 걸 트위터로 알리는 일군의 아마추어 제작자분들이 있습니다. 바로그찌라시, Project REMU, Team Progressive 등등. 이런 분들은 일단 무조건 팔로하고 보는 편인데(랄까 바로그찌라시는 내가 만드는 거잖아 ㅋㄹㅋㄹ) 최근에 알게 된 게 바로 이 게임을 만든 팀 알레그레또. 뭔가 했는데 선거 독려 게임이라길래, 그리고 제 평생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텍스트 어드벤쳐―절대다수의 미연시가 취하는 장르―라길래 바로 팔로하고 관심글 알티를 몇번 하다가, 드디어 12월 18일 밤, 그야말로 폭풍의 (실제) 선거 전날 밤에 플레이해보고 리뷰를 합니다.
밤을 새서라도 모든 엔딩을 다 보고 말겠다(그게 몇가지나 됐든 간에)는 일념의 각오를 다잡고 경건한 마음으로 압축파일을 풀어 놓으면 이렇게 됩니다. 이 게임 영문명이 rainbow일 리 없다는 생각에 설치 폴더명은 제 맘대로 지정해 봤습니다. 시키는 대로 readme도 읽어보고 바로 실행합니다.
키비주얼과 함께 뜨는 타이틀. 작화는 꽤 좋은 편입니다. 글쎄 제 인생 최초로 플레이해 본 텍스트 어드벤처라서 업계 수준은 모릅니다만 뭐 제 눈에 안경이라고, 괜찮았네요.
프롤로그입니다. 뭐야 이게 ㅋㅋㅋㅋ 색깔론 자중ㅋㅋㅋㅋ
이런저런 설정도 깔아줍니다. 저게 왜 창피할까...
이 게임의 메인 히로인, 지수아입니다. 국회의원이 되겠다는 꿈을 진지하게 꾸는 전교 순위권 엄친딸이지요. 제가 남자라는 게 여성 1인칭 시점에 몰입하기 어렵게 하는 요소가 될 줄은 몰랐네요. 뭔가 비커밍 프린세스 볼 때의 기분이 많았음...
지수아는 이런저런 감정표현이 풍부한데 비해 다른 캐릭터들의 표정이나 포즈 변화는 영 없습니다. "너무 완벽해서 싫다"라는 감정을 가지고 이지후를 대하는 수아입니다. 이번 학생회장 선거에서도 라이벌로 만나지요.
제 생각에 이 게임의 최고 셀링 포인트는 이렇게 간간이 나와 주는 SD삽화가 아닐까 합니다. 다들 짱긔요미
그랬구나_제작진이_프린세스메이커를_하는구나.jpg
사실 아무 변화 없이 마네킹처럼 서 있는 다른 등장인물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상황을 '상상'하기가 쉽지 않은데 이렇게 간간이 삽화가 나와 주니 좀더 이해하기 쉬워집니다.
왼쪽이 우아미, 오른쪽이 채한서입니다. 키비주얼에서 지수아의 어깨에 매달려 있던 인형 같은 게 아미였던 모양입니다... 왜! 아미쨩(의 슴가)을 생략하지 말라능!! 오덕!!!
여튼 이런 소리를 퍼뜨리는 음해공작이 교내에서 나돌더라는 얘기를 수아가 아미와 한서로부터 전해 듣습니다. 근데 아직까지는 선택지가 안 나오네요. 좀만 더 기다려 볼까요.
중학교 때 기술선생이 비슷한 사람 있었는데. 아직도 기억나네 이재철이라고
가운데 나온 엑스트라는 서유진이라는 애입니다. 왜 나왔더라. 저 대사 해 주려고 나왔던가?! 지금 남자 캐릭터들 표정 보이세요? 이건 남성 게이머들을 농락하는 연출 같은데요?! (하지만 난 빈유 취향이 아니지.)
얼굴도 나오지 않는 반 친구 1입니다. 그래도 대사는 서유진보다 많습니다. 이게 어찌된 거야!!
A) 조용히 있는다 B) 항변한다 C) 통곡한다
이제부터 선택지 고르기가 중요해집니다. 잘 선택해 나가야 합니다. 안 그러면...
이 트루엔딩이 나오는 게 아니라...
이 기본 엔딩으로 느닷없이 끝나 버립니다. 그러니 잘 플레이해야 합니다. 꽤 잘 만들었더라구요.
이 이상은 실제로 게임을 플레이해 보시면서 즐기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것저것 더 소개하고 싶은 깨알같은 재미를 갖춘 씬들이 많은데, 그걸 일일이 다 올릴 순 없잖아요?
다운로드는 맨 위의 공식블로그 링크를 타고 가시면 됩니다.
평생 처음 해 본 미연시 스타일 게임입니다. 보아하니 여성향인 모양이고, 글쎄요 아주 골치 아프거나 아주 시사적이고 소재 위주로 가지도 않았습니다. 그냥 어느 흔한 고등학교에서 선거를 치르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재밌게 즐기시면 됩니다. 제작진은 쇠고랑을 찰까봐 겁이 나서 많이 자중했다고 하는데, 글쎄요, 좀더 난리를 피워도 좋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어차피 제작진의 간담의 크기를 보건대 아무리 난리를 친대야 진짜로 리얼하게 은팔찌를 찰 짓은 안 할 듯싶고, 웬만해선 커버가 가능하니 실드를 쳐 줄 파워트위터리안들은 많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쫄지마! ㅆㅂ!
게임의 목적이 투표 독려였다는 차원에서 리뷰하자면, 일단 게임의 시점이 투표로 자기 존재를 확인받아야 하는 '후보자' 중심의 1인칭으로 제시되고 있고, 투표를 왜 안 하겠는가에 대한 고민도 약간은 부족해 보입니다. 진지 먹고 선거 참여를 독려하는 작품이 되고자 했다면 유세전이나 여론조사, 일반 유권자들과 후보자가 만나는 장면들, 각종 정치공학적 사건 등이 복잡하게 엮여들어갔을 테죠.
하지만 그러지 않았잖아요. 거기엔 무슨 이유가 됐든 이유가 있겠죠. 그 이유가 뭘까 하고 다시 생각해 보니, 이 게임은 차라리 현재 대선에서의 여론판을 풍자 내지는 은유한 것에 가깝습니다. (물론 전혀 그렇지 않다고 봐도 충분합니다.) 정말 아닌게아니라 누군가의 사주로 온라인상에서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는 알 수 없는" 여론을 조성한 일이 벌어졌고, 그게 동원선거였던 것으로 드러난 사건이 터져버렸으니까요. 한때 문화상품권 일련번호를 동원한 금권선거를 하던 누군가가 이번에는 온라인 여론 조작을 시도하고, 막판에 "선거란 건 어차피 될 놈만 되는 거야!"라고 분노에 차 빈정거리는 모습은 글쎄 어떤 당 내지는 당수를 생각하게 합니다. (물론 생각이 안 나도 좋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러스트가 귀여우니 용서한다! 그리고 투표독려를 위해 벼락치기로 불철주야 애썼다고 하니 그 정신 때문에 유효! 이렇게 좋은 무료 게임 하나가 세상에 나오다니 참 보기 좋습니다. 어떤 이유로든, 열심히 노력한 게 모두에게 선보이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별점 다섯 개 만점에 세 개 반. 그림 덕분에 기본점수에서 많이 먹고 갑니다. 이런 류의 메시지는 게임이라는 형식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더욱 잘 전달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열심히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놀았어요!
P.S. 생각해보면 이건 텍스트 어드벤처라기보다는 비주얼 노벨에 가깝지 않나요? 자고 일어나 보니 생각이 난 단어인데.
P.S.2 추워 죽겠지만 누워서 트위터를 보고 있자니 좀있다 투표하러 갈 사람더러 자꾸 투표해라 투표해라 하는거같아 짱나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소위 기획이라는 걸 하고 있다 보니, 몇 년 전 어렴풋하게 생각했던 것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본격적인 'concept/idea development'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TxS라고 하는 행사에도 다녀 왔고, 여기저기 인터뷰도 다니고 벼룩시장에도 참석하고 처음 보는 사람들과 기획회의를 하기도 하고 어떡하면 찌라시를 재밌게 뿌릴까를 고민하고 뭐 그러고 산다. 단체로 명함을 팔 때 creative director라는 직책명이 너무 부담스러워서 feature director로 바꿔 달라고 했었는데, 바꾸지 않았을 때의 직책명이 내 진짜 일을 더 잘 설명해 주는 것 같아 약간 후회된다. 그건 뭐 사소한 이야기고, 오랜만에 영적인 얘기를 몇 자 적어 보려고 한다. 읽는 사람에 따라서는 이게 무슨 개소리일까 싶을 만한 이야기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아이디어는 그 자체로 선한가.
아이디어를 내고 그 아이디어의 기발함을 즐기고 그것을 구체화하고 눈앞에서 해나가는 것, 발상과 그에 수반되는 일련의 행위들은 마냥 좋고 바람직한 것인가.
아닌 것 같다. 그 분명한 예로 두 개의 빌딩 사진을 보여 드리겠다. 사진만 보고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어할지 예상하실 수 있는 분들은 아래의 "더 보기"를 누르지 않으셔도 좋겠다.
이 세상에는, 아무 가능성도 없어 보이는 이 재미없는 세상에서 뭔가 거창한 아이디어를 내어 뭐가 됐든 굉장한 것을 해보자는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진영이 존재한다. 그들은 생각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고, 따라서 세상에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자원이나 더 많은 노동[각주:1]이 아니라 더 신선하고 더 재미있는(entertaining) 아이디어의 제시와 설계(design)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아니면 그 아이디어를 발현할 '하위 아이디어'로서의 기술(technology)이 더 필요하거나. 오늘날 이 진영의 베이스캠프 같은 것이 되고 있는 TED가 "Technology", "Entertainment" 그리고 "Design"의 첫머리를 딴 것이라는 데는 이런 이유가 있다.[각주:2]
나는 이런 사람들의 그룹이 프리메이슨이니 무슨 기사단이니 하는 식으로 존재한다는 음모론을 말하고 싶은 게 아니다. 이것은 하나의 이념 체계이다. 게다가 이것을 기술지상주의라 부를지 혁신주의라 부를지조차도 사실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내가 최근 우려하기 시작하고 대단히 조심스럽게 접근하기 시작한 이 이념의 함정은 이런 것이다: "생각만 있으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그리고 그 생각은 다름아닌 우리가 한다."
먼저는 이것이다. 생각만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 대답은 다음과 같다. 하나,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둘, 생각도 생각 나름이다.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나는 지금 순환론적 역사관을 주창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기술과 예술과 계몽과 새로운 생각과 신문물이 정말로 무엇인가를 바꾼 사례는 역사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설명이 더 타당할 것이다: 세상은 생리와 구조는 그대로 둔 채 외양만 변동된 것이며 그에 맞추어서 기술이 고안된 것이지, 결코 기술이 세상을 먼저 바꾼 사례는 없다. 아니면, 그저 한때는 세상의 이런 면이 부각되고 한때는 다른 면이 부각되고 할 뿐이다. 요컨대 이 사회는 옷을 점점 좋은 것으로 갈아입고 있을 뿐, 여전히 털 없는 원숭이의 세계일 뿐인 것이다. 지구촌이 페이스북으로 하나가 되고[각주:3] 아시아인들의 페이스북 점유율이 엄청나게 되자 페이스북 안에서 인류 평등이 달성됐는가? 천만에. 지금 페이스북 세상은 미국 유머를 번역해 전세계가 구독하고 있는 실정이다. 왜? 미국이 더 굉장한 개그 센스를 가지고 있어서인가? 그저 미국으로부터 외국에 전파된 천편일률의 생활양식(월요일에 출근한다거나 대다수가 대학에 간다거나 사건사고를 트윗한다거나...) 덕분에 그 유머가 외국인들에게 소화될 수 있게 되었는데 그 때 마침 페이스북이란 것이 나타났기 때문일 따름이다. 그런가 하면 지금처럼 성의 문란이 심각한 적이 없었다고 하는데, 사실 맘먹고 찾아보면 과거 숱한 문명들이 망해 가던 시절에서 이보다 더 심한 시절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그 시대의 기술보다 지금의 기술이 더 우월하고, 그 시대의 아이디어보다 지금의 아이디어가 더 우월할까? 전자의 대답은 예스이다. 그러나 후자의 답은 not sure가 된다. 기술이 세상을 바꾼 적은 없었으며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그렇게 수월하고 평화로우며 합리적으로 바뀔 세상이었다면 진작에 바뀌었지 않았겠는가?
그리고 '생각'도 '생각' 나름이다. "돌로 건물을 만들지 말고 벽돌을 만들어서 건물을 만들자." 이것은 굉장한 technology가 아닌가? "도시를 세우고 그 안에 탑을 하나 크게 짓자." 이것은 꽤 매력적인 도시건축 design이 아닌가? "그 탑을 정말 크게 짓는 거죠. 그러면 모두가 그 탑을 보고 모일 수 있을 테니까, 얼마 전 있었던 그런 사건이 또 일어난다 해도 아무 걱정 없을 거에요! 그러면 우리는 세상에서 제일 유명해지는 거지!" 이 얼마나 흥미진진한 entertainment인가? 2700여 년 전의 TED 프로젝트는 그렇게 바벨탑을 쌓았다. 그리고 그 탑은 보기 좋게 공사가 중단됐고, 사람들은 "흩어짐을 면하려"고 했다가 천하 사방으로 흩어지게 되고 말았다. 건전한 발상 또는 생산적이고 건강한 아이디어만이 매력있는 것은 아니다. 사실을 말하자면 대부분의 "매력 있(다고 하)는" 아이디어들은 대단히 불손하고 불량하며 불건전하다. 그리고 그것은 차라리 '재미의 기본규칙' 같은 것이 되어 있다. 만화에서부터 시사 프로그램, 웹사이트, 동인지에서 농담에 이르기까지 생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분야에서 그렇다. 상스럽거나, 욕망에 충실하거나, 해도 너무하거나.[각주:4] 그렇다면 생각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을지는 모르되 그것이 과연 우리가 처음 어렴풋이 기대했던 의미의 변화이겠느냐는 것이다. 분명히 아닐 것이다. 더 선정적이고 더 천박하며 덜 건설적인 것을 위해서라도 얼마든지 기발한 아이디어를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그리고 이보다 더 중요하게, 신앙적 차원에서 우려를 표하고 싶은 지점은 바로 이것이다. '세상을 더 좋게 만들 수 있는 어떤 혁신적인 생각을 제시할 수 있다면, 그 주체와 주인은 바로 우리 자신들일 것이다'라는, ideation의 핵심 아이디어.
나는 아이디어의 주체 내지 소유자가 우리 인간들일 수 있다는 발상을 경계한다. 그런 식의 사고방식을 이용하여 원수 마귀가 취할 수 있는 전략 노선은 이런 것이 될 게 뻔하기 때문이다: "바로 그렇다. 너희가 생각해서 만들어낸 것만이 이 세상의 변화로 남을 것이다. 왜냐하면 너희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전지전능하다는 하느님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 세계는 어차피 아무 의미도 없이 그저 주어져 있을 뿐이다. 너희들 또한 진화가 잘 된 동물일 뿐 그 이상의 특별한 의미는 없다. 다만 당신들이 당신들 생각에 옳은 대로 행할 수 있다는 것만 빼고 말이지. 그러니 당신들이 지금 욕망하는 바로 그 멋진 아이디어를 실행으로 옮겨라. 그렇게 해서 너희들의 이름을 사방에 널리 떨쳐라. 왜냐하면 어차피 한 번 살고 죽으면 그만이니까. 당신들의 아이디어만으로 이룩해내는 세계가 바로 당신들이 입성할 유일한 지상 낙원이 될 수 있지 않겠는가? 당신들의 아이디어는 당신들의 빼어난 생각 능력과 운으로 만들어낸 오로지 당신들만의 것이다. 그러니 그 아이디어의 생존권을 철저하게 주장해야 한다. 그 아이디어들이 존재 자체로 옳고 무조건 아름다우며 다양성을 위해 존중받아야 함을 끝까지 외치고 우겨라."
이것은 결코―단 하나도!―진리가 아니다. 문제는 이것이 현대의 과학, 학문, 예술, 산업, 경제, 종교(각종 정신적 활동들을 포함) 등에 널리 퍼져 있는, 사실은 바벨탑의 때로부터―아니, 하나님과 같이 되리라고 하와가 선악 열매를 따먹은 그 날부터―매우 구구하게 전해져 내려오는 거짓말 선물세트라는 데 있다. 그리고 인류는 시대의 연말연시가 찾아올 때마다 그걸 넙죽 받아들고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그렇게 로마 제국이 세워졌고 십자군이 나타났고 히틀러가 설쳤고 북한 정권과 팍스 아메리카나와 롯데슈퍼타워123의 세상이 왔다. 이것들이 전부 다 악의 세력에 들어 있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이 모든 것들이 가능했던 이유―우리 인간이 주체이다―가 다분히 사탄적인 것이고 결코 진리가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한 시대의 주인이 되려고 애쓰던 역사상의 모든 군주들은 하나같이 뭔가 절대로 무너지지 않거나 절대적으로 높은 어떤 것(주로 돌비석)을 세우고 싶어했다.
대안(또는 내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방향성)에 대해 말하자면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길게 말하자면, 아이디어란 무조건 옳고 선하지 않으며 따라서 아이디어와 그것을 건전하고 생산적이며 도덕적/윤리적으로 나쁘지 않은 것이 되도록 아주 세밀하게 검사하고 도정(搗精)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아주 간단히 말하자면, 아이디어의 주는 하나님이심을 인정해야 한다. 누가, 누구의 발상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보다 더 세상을 크게 바꿀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그 사건으로 휘장은 찢어지고[각주:5] 잠자던 성도들이 많이 일어났으며[각주:6] 율법과 선지자의 예언이 "다 이루었다". 아이디어를 내려면 이 정도는 해야 한다(그리고 아무도 사실 이렇게는 할 수 없다). 그렇게 못 하겠으면, 그저 입을 다물고 온 천하를 말씀으로 지으신 만군의 야훼 앞에 조아리고 있어야 마땅할 터이다.
"거짓을 예언하는 선지자들이 언제까지 이 마음을 품겠느냐? 그들은 그 마음의 간교한 것을 예언하느니라. 그들이 서로 몽사를 말하니, 그 생각인즉, 그들의 열조가 바알로 인하여 내 이름을 잊어버린 것 같이, 내 백성으로 내 이름을 잊게 하려 함이로다(렘23:26-27)"
P.S. 황당함을 가득 담아 "기승전신(아마도 '神')"이라고 평해 주신 분이 있다. 일단 읽어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그거 아세요? 저도 쓰면서 아 이거 어그로가 될텐데 쓸까 말까 고민했더랍니다. 현재까지는 제가 이 '비약적인' 전개를 어떻게 더 촘촘하게 풀어나갈 필력이 안 되네요!
이런 물질적인 것들이 모자라기 때문에 발생하지 않는 변화란 없다는 것이 그들의 주된 생각이다. [본문으로]
이것이 TED의 공식 입장일 리 없다는 것조차 예상하지 못하는 fact idiots들은 그냥 이 글을 이쯤에서 그만 읽어 달라. 말이 통할 것 같지가 않다. [본문으로]
이런 류의 사고 역시 대단히 허구적이고 허점이 많다. 페이스북이 있었기 때문에 세계가 더 가까워진 게 아니라, 세계가 더 가까워졌기 때문에 페이스북이 외국어를 지원하게 된 것뿐이다. [본문으로]
이런 것들을 가리켜 선정적(sensational)이라고 한다. "강남스타일"에 크리에이티브나 새로운 아이디어가 전혀 없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고, 이런 게 센세이션(선풍적 인기)이다. 선정성은 욕을 먹지만 선풍적 인기는 문화관광부 장관상을 탄다. 이 얼마나 우스운 현상인가? 그러나 사실 이런 현상은 아이디어라는 것의 본질에 관련된 것일 뿐이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