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쏟아지기 시작하던 오늘 아침의 일이다. Another 6화를 일단 다 보았다. 마지막이 느닷없이 아주 불길하길래 볼까 말까 하다가 지하철 안에서의 시간이 많이 남을 듯해 7화를 곧이어서 봤다. 그렇지 않아도 아침밥을 급히 먹어 속이 불편했는데, 정말 오랜만에 진짜로 구역질 나오는 것을 본 터라 5분도 채 보지 못하고 정지하고 왕십리역을 기다려 내렸다. 화장실로 갔다. 대변기는 네 칸이 다 사용중이었다. 내 뒤에 들어온 할아버지가 어쩔 줄 몰라하더니 바지를 벗고 변실금을 했다. 나는 그냥 일이 다 터져버렸구나, 소용없겠구나 싶어서 이제 막 자리가 난 화장실 칸으로 들어가려다, 이 할아버지가 아직도 참고 있는 것임을 알고 퍼뜩 놀라 부끄러움에 어쩔 줄 몰라하며 들어가시라고 보내드렸다. 더는 거기 있을 수가 없어서 왕십리역 내 다른 화장실로 뛰어가 좌변기 위에 앉았다. 문에는 '이반분환영'이라고 적힌 5만원짜리 남성맛사지사 출장 광고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화장실을 나오니 실제로 눈앞에서 시체를 본 사람처럼 진땀이 쭉 솟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가야 할 길은 가야 하므로 이대역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두 정거장 지나 내리려는데 시계를 보니 열 시 26분이다. 등교길 중에 화장실에 다녀왔으므로 당연히 지각하리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부터 정말 열심히 뛰면 지각하지 않을 시간이라고 생각하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결국 5분을 지각했는데 그나마 좌석을 조정하는 중이어서 체크가 되지 않았다. 근대 정치 사상가를 배우는 수업에서 발표수업 조를 짜더니 교수가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는 책이 나왔죠, 각자 흔들렸던 경험을 이야기해봅시다"라고 제시한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흔들린 경험'을 모두가 나름대로 이것저것 얘기한다. 교수는 급기야 조별로 두어 명씩 나와서 발표해 보자고 제안하며 칠판에 '리얼 디테일 힐링'이라고 적었다. 한 발표자가 자기 군 생활 중 부대에서 만난 병사 한 명이 자기 형의 존속살해를 극복한 사연을 늘어놓으며 마지막에 자기도 치유가 됐다는 운을 달고 박수를 받았다.
그 직후 예수전도단 동아리방으로 들어갔다. 선배, 후배, 동기 등 날 포함해 무려 여덟 명이 이 날 점심을 같이 먹었다. 거기서 사람들과 함께 있다 보니 좀 안정되었다. 물론 문제의 7화를 중단한 직후 급하게 Shout to the LORD Kids! 1집을 틀어 귀에 꽂는 응급처치도 했고, 버스에서 내려 학교로 들어갈 때도 "그러나 저는 여전히 주님을 찬양하겠습니다."라고 고백하기도 했다. 이제 한 시간쯤 뒤면 캠퍼스워십에 간다. 거기 가서,
이 개쓰레기같은 것들 다 토해버리고 싶다.
이게 지옥이지 뭐가 달리 더 지옥인지 모르겠다. 토악질이 나온다. 이 세상에 진짜 좋은 것, 참 평안, 진정한 '힐링'은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는 것은 모순, 죄악, 죄악에의 선망과 관음증, 비웃음, 절망, 무관심, 권태, 모든 것의 피상화 그리고 이 모든 게 오해라고 수작 부리는 거짓말로 가득하다. 지옥은 땅 밑에 있어서 지옥일 수도 있지만, 이런 지평에서만 평생 살면 갇히게 되는 곳이라는 의미도 들어 있음에 틀림없다. 여기는 아니다. 여긴 우리가 살 곳이 되지 못한다. 여기는, 또는 예수님이 그렇게나 강조한 지옥은,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는다. 치료는 하나님께 속해 있고 '힐링'은 복음과 성령으로만 가능하다 그런데 이 세상은 아주 교묘하게 복음이 빠진 힐링의 거짓말을 늘어놓는다. 사실은 끝없는 구토와 폭식의 연속에 지나지 않음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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