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MBC 파업투쟁에 크게 관심 없다가 뉴스타파가 터지고 제대로 뉴스데스크와 "으랏차차! MBC"가 개최되고 리셋KBS가 나오고 YTN도 들어와서 3단합체 행사를 열고 저런 영상까지 만들어지는 지경이고 보니 관심을 갖지 않을 수가 없는데...
모르겠다. 뉴스타파와 이들은 좀 달라 보인다. 그러니까, 안 좋게 달라 보인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뉴스타파와 딴지라디오 등의 해적 미디어들이 '우린 어차피 망했고 방법도 없으니 우리 식대로 간다'라는 자세라면, 이들은 '우린 조만간 복귀할 테니까 잠시 이 시간을 즐긴다'라는 애티튜드가 느껴진다. 정말 꼭 그렇다. 그리고 그것이 내 트윗 타임라인을 채우는 수많은 다른 투쟁현장―당장 강정부터 시작해서―을 깔보고 비웃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들이 미디어 노동자고 그래서 투쟁할 때 미디어라는 생산수단으로 투쟁하는 것까지 뭐라 할 수는 없다 하겠다. 맞다. 그런데 문제는 뭐냐면, 첫째 너무 즐겁다. 다들 이 상황을 마냥 즐기고만 있고 그런 것처럼 보이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그래, 질기고 독하고 당당한 것 좋다 이거야. 문제는 무엇인가? 재미있기만 한 연출과 엄청난 동원력을 가지고 전달하는 내용은 결국 별로 전달이 되지도 않을 뿐더러 애당초 별 내용이 없게 되고, 무엇보다 진짜 연대의식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한마디로 그냥 또 하나의 스펙터클이 될 뿐이란 뜻이다. 비단 여기서만 그런 것이 아니다. 장충체육관에서 열렸던 "으랏차차! MBC" 행사에서도 그들은 추운 2월 어느 금요일에 칼바람 맞아 가며 그들이 대학생 때 배웠을 노래패 문예를 춤추며 시키지도 않은 생고생을 하고 있었다. 물론 그들은 즐기고 있었다. 그런데, 사실을 말하자면, 내가 보기로는, 체육관 밖에서 4열종대로 길게 늘어져 줄 서고 있던 입장객들이 그들을 지켜보면서 정말로 그들과 같이 즐겼느냐 하면,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진이나 찍기 바쁘고 구경이나 하고 있을 뿐, 흔한 시위현장에서 주최측과 일반 시민의 연대는 찾기 어려웠고 어디까지나 철저하게 관객과 연기자의 이분법이 드러나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이건 노조 그들에게만 재미있는 파업 이벤트기 때문에.
나는 이것을 절박함의 부재라고 본다. 급하지가 않은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변변한 카메라 하나 없이 가족의 생계가 걸린 투쟁을 하는데 이들이 때깔 좋은 사옥에서 뮤직비디오 촬영 연습이나 하고 있을 수 있는 것은, 절박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은 원래 정말 목숨이 왔다갔다할 만큼 혹은 모든 게완전히 망가질 만큼 절실한 일이 생기면 자처해서 더 치열하고 아프고 표정 관리 안 되고 (그래서) '재미없는' 짓들을 하게 되어 있다. 지금 그런 게 방송노조에게서는 안 보인다. 그러나 그들의 웃음이 정말 웃으면서 싸우려고 짓는 웃음인지 그냥 웃기는 짓을 하면서 시시덕거릴 뿐인지 헷갈리는 시민들은, 슈퍼맨 망토에 엠빅 마스코트 가면을 쓴 그들을 보고, 의구심을 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둘째로는, 남아도는 여력을 너무나 자기들 중심적으로만 안일하게 소모한다.
파업하는 동안 그들은 남아도는 취재력을 가지고 자기 회사 사장 까기에 바쁘다. 물론 까야 한다. 이런 정보야말로 언론노동자들이 제시할 수 있는 팩트라는 점에서 과연 톱으로 내보내도 된다. 그런데 문제는 뭐냐? 그것뿐이라는 거지.
뉴스타파는 절대 자기들이 해고당한 경위를 설명하는 데 스토리보드의 대부분을 할애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언론 노릇 한번 해 보겠다고 과로를 해 가면서 특종거리를 취재해 오고 있다. MBC는? 오로지 김재철 찾는 것이 제일이자 유일되는 과제다. 다른 것 다 필요없는 모양이다. (아마 김재철이 나타나면 그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제대로 뉴스데스크 업로드를 그만둘 거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고 괘씸하다. 첫째 그간 데스크에서 잘려나간 비판 특종이 많을 텐데 왜 그런 걸 안 올리고 맨날 김재철 타령만 하는가(물론 해야 하겠지만)? 둘째 지금 카메라가 필요한 투쟁 현장이 한두 군데가 아닌 줄 잘 알 텐데 왜 그들은 자기들이 가진 수단과 기술과 노하우를 가지고 <나는 가수다> 비슷한 그림의 때깔 좋은 뮤직비디오 찍어 자화자찬하기 바쁜가?
파업콘서트 동영상이 유행이다. 어제 있었던 여의도공원 방송3사 행사에서 성금 접수받던 방송인이 울먹이며 "선배님, 사람들이 돈을 너무 많이 줘요" 했다는 감동 사연도 들려온다. 여기서 나는 묻고 싶다. 강정마을은, 재능교육은, 다른 파업현장과 다른 투쟁현장은 뭐 그런거 할 줄 몰라서, 싫어해서 안 하는 줄 아나? 방송사들은 자기네 정보력과 사회적 위치를 이용할 수 있었고 그래서 엄청난 동원력을 별 노력 없이 가지고 있는 것뿐이지, 그들의 투쟁이 다른 투쟁들보다 훨씬 대단하고 중요하고 훌륭해서 주목받는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천만에. 장충체육관을 빌리고 그 게스트 라인업을 갖춘다면 KBS YTN 아니라 바둑TV라도 후원될 거라는 게 내가 장담하는 바다.
모르겠다. <나는 꼽사리다>에서 언젠가 그런 말이 나왔다. 방송사들이 저번에 정권 바뀔 때 파업 한 번 했었다고. 원래 이런 쪽으로만 눈치가 좋아서 때 되면 잘 갈아타는 게 방송사들이라고. 뭐 MBC는 내가 알기로도 이전에 한두 번 파업을 했었으니까 양보한다 해도, 그래도 여전히 뒷맛은 개운치 않다. 그들은 여유롭다. 너무 가진 것도 많다. 카메라도 많고 편집기도 다룰 줄 알고 영상과 홍보물들을 볼 시민들을 '시청자'로 생각해서 '연출'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가면 갈수록 강하게 받는다.
KBS 노조가 김진숙 씨를 공개초대하여 강연을 듣는다길래 뒤늦게 쫓아가서 마지막 10분 정도만 들었던 적이 있었는데... 그녀가 마지막으로 강조한 것은 "제발 정규직들이 비정규직과 연대하라, 복직 투쟁하는 비정규직 보면서 '저러니 비정규직 신세지' 운운하는 동지들도 봤다, 그래선 안 된다"였다. '철의 여인'을 세워 놓고 라디오 공개홀의 안락한 의자에 쭉 기대고 앉아 무심하게 그녀를 구경하던 노조라는 사람들은, 아마도 정규직이었겠지. 그리곤 아무도 아무 질문도 안 하더니 연단을 내려가는 그녀를 다시 불러일으켜서는 거기 세워 놓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더라...
아마 그때부터, 방송노동자들의 요즘 투쟁양상이 시원치 못하고 싫고 찝찝하고 기분 나빠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상황을 모두의 것으로 승화시키기는커녕 순전히 거대한 쇼의 일부로 만들어 버리고, 자기들은 크게 다치지 않을 거라는 듯 절박함은 전혀 찾아볼 수 없고, 수많은 다른 열악한 환경의 투쟁 노동자들에 비해 자신들이 얼마나 유리하고 복받은 조건과 위치인지 모를 리 없을 텐데도 철저히 모르는 척 누릴 건 다 누리다가 기념촬영 몇 번 하고 자기들끼리 노는 동영상을 찍어 HD로 올리는 사람들, 그걸 또 자기들이 보도하는, 그래서 누군가가 투쟁 흉내만 내는 반쪽짜리 투쟁이라고 욕해도 할말없을.
한마디로 말해서, MBC 노조를 보면, 싸우는 것 같지가 않고 잠깐 노는 것 같다. 그래서 이 땅의 진짜 싸움을 피 터지게 싸우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들은 무례를 범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파업 물론 절대 찬성한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불편한 뒷맛을 남기면서 하면, 좋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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