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두 번 생각해 주는 문화가 없는 곳에서는 괜히 댓글 다는 게 아니다. 이걸 봤는데 정말 요만큼도 반응이 오지 않았다. 악플 받고 '이 뭔 개소리지' 하고 무시해 버렸다는 이야기를 간혹 듣긴 했는데, 이번에야 그 심정이 좀 이해된다. 정말 이 정도의 비논리와 몰이해와 열악함이면 차라리 무시를 하게 된다.
다만 이 512번 자유인 님을 위해 어떻게 그런 사고방식이 나왔는가는 한번 썰을 풀어보겠다. 1
나는 사실을 말했다. 그 사실은 해석되고 종합적으로 판단된 사실이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이 댓글은 "아이패드 미니 뜯어봤더니 국산부품 LGD 선명" 어쩌구저쩌구 하는 기사 내용 자체보다는, 이런 류의 '정말 아무래도 좋은' 뉴스가 다시 생산되어 재차 소비되는 전체적 사회현상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그 사회현상―내가 관찰하고 일반화한―이란 이렇다. 이 나라의 첨단 부가가치 생산 산업이라는 것은, 내가 TxS 행사에서 시찰한 바, 실제로 어떤 부가적 가치를 생산해내고 있다기보다는, 관행과 사적 방편으로 처리해선 안 될 일을 관행과 사적 편법으로 처리하고, 2 사람이나 사람의 입장이나 그 사람이 낸 아이디어 그 자체보다는 그것들을 투입한 결과로서 실제로 돈을 벌어다주고 겉으로 드러낼 수 있는 성과와 결과물만을 거의 집착에 가깝게 요구하며, 이 두 가지가 섞여서 나오는 초과야근이니 부당한 갑을관계니 하는 것들 때문에 일과 일이 함유하는 가치에 대한 열의와 성찰을 삭제한 채 결국 살가죽과 뼈만 남은 크리에이티브만 내놓거나 아니면 그냥 하청 납품만 죽어라고 좋게 만들어주고 있을 뿐이면서, 이 모든 실상을 기만하고 포장하기 위해 "세계에서 가장 잘 나가는 물건 중 하나가 우리의 부품 없이는 제작되지 못한다" 운운하는 주기적인 자기분석을 통해 정작 자기들이 "세계에서 가장 잘 나가는 물건" 그 자체를 만들어내지는 않고 있음을 드러내는 전혀 자랑이 안 되는 자랑을 하고 있는 자가당착의 생리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3 나는 이 현상 인식이 크게 비타당하거나 비논리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감정적이거나 주관적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으며, 실제로도 그렇지 않다. 일반적으로 나와 남의 여러 경우를 종합하여 내리고 있는 결론이다. 4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사실을 제시하면 열등감을 드러낸다.
자기가 그런 측면을 몰랐거나, 그런 걸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스스로가 불쌍해지거나, 왠지 그 사실이 옳다고 말하면 자기가 '쪽팔리게' 되거나 할 때 그들은 "세상을 그렇게 바라보고 싶나요? 그냥 뒤지세요"라고 열폭한다. 글쎄, 내가 뒤지는 건 내 팔자소관이지만, 상술한 현실에서 이 나라가 아이패드 같은 빌리언셀러를 절대 내놓지 못하리라는 종합판단은 그냥 연역의 결과로 도출된다. (실제로도 그렇지 않은가? 가격경쟁과 마케팅을 써서 굳이 팔지 않았는데도 세계의 사람들이 스스로 사고 싶어했던 '국산품'이 과연 존재하였는가?) 그런데 사실을 말했더니 다짜고짜 어떻게 그런 사고방식이 나올 수 있느냐고 묻는다. 내가 묻고 싶다. 어떻게 사실을 얘기한 사람한테 어떻게 그런 사고방식이 나오는지를 묻느냐고. 하도 심하게 틀린 질문을 받으니 얼척이 없어 대답을 못 하겠다. 뭐 자유인512님이 이 블로그 글을 보면 다행이요 못 보면 그만이다. 5
우리 사실관계 앞에서는 좀 태연해지자.
왜 이러이러하다는 얘길 하면 갑자기 사람 보고 나가 뒤지라고 하나? 자기 귀 어둡단 표를 그렇게 내면서 버럭하면 멋진 줄 아나? 하나도 안 멋지다. 가엾고 우습고 꼴사납다. 그게 진실이다. 일베충 여러분 보고 있나?
담대함, 혹은 당당함이라는 것은 원래 정직한 양심에서 나와야 진실된 것이고 그럴 때 진정한 힘을 갖추게 된다. 즉, 쫄지마라는 말의 근거는 자신이 바르고 정직한 길을 가고 있다는 “떳떳함”이어야 한다. 진실된 신앙의 위대한 힘은 여기서 나온다. 하지만, 이것을 망각하고,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자존심을 지키기위해, 혹은 자신이 지지하는 이념이나 사람들을 열정적으로 추종하면서 타인의 비판으로부터 이를 방어하기 위해 양심의 소리에 귀기울이기를 거부하는 당당함으로 바뀔 때, 사람들은 사이비 신앙적 사고를 하기 시작하고 이성적 판단이 결여되기 시작한다. [출처] 6
- '자유인'이라는 자가 굳이 그 이름 뒤에 일련번호의 혐의를 지닌 512라는 숫자를 달고 있는 이유가 문득 궁금하다. 음, 5월 12일생인가? [본문으로]
- 아니 근데 이걸 내가 굳이 이렇게 정밀하고 구차하게 설명을 해야 하나? 정상적인 국어 교육을 받았다면 이 정도 논리추론과 맥락 파악은 가능하지 않나? [본문으로]
- 이 나라 갑을관계의 문제점을 논하는 사람치고 열등의식에 사로잡힌 사람을 못 봤다. 그럴 수밖에 없다. 자기인식이 있으니 자기객관화를 시켜서 갑을관계 토론도 할 수 있는 것이고 남과 자기를 딱히 비교하지도 않는 것이다. 이런 형태의 현실인식을 열등의식이라고 거짓되이 이해하는 인식을 일컬어, 오래 전 맑스는 '허위의식'이라고 부른 바 있다. [본문으로]
- 삼성 직원들이 연습삼아 쓴 사직서를 받아 본 적이 있는가? 나는 있다. "우리의 열정이 반복되는 야근과 초과근무는 아닙니다." 이것은 그들의 육성이다. 대체 어떤 증언을 더 제시해야 내가 파악한 이 현실인식이 귀납적으로 강하게 타당하다고 인정받겠는가는 도무지 모르겠다. [본문으로]
- sum_(x=1)^n 부품_x = 제품 의 공식밖에 모르고 산다거나. [본문으로]
- 사실 이 인용은 이 글과는 여러모로 논점도 다르고 그냥 딴 글이다. 근데 마침 읽던 글이면서 뭔가 마음에 들어서, 우발적으로, 여기 퍼다 싣는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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