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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내기 친구 안녕? 정말 반갑다. "이 모든 입시제도와 고등교육은 망한 것이다. 대한민국 학교 다 지옥가라 그래"를 속으로 몇십 번 외치면서 결국 끝내 시험을 쳐서 여기 들어온 게 자랑스럽겠지. 서강고등학교에 온 걸 환영한다. 수업 종이 울리는 6교시의 학교 생활은 아마 익숙하게 적응할 수 있을 거야.


사물함 배정공고. 정하상관 3층


사물함 배정은 받았니? 그래, 좋겠다. 네가 자주 수업을 듣는 정하상관, 그것도 가장 편리한 1층에 배치를 받았구나. 나는 한 번도 이용해 본 적 없는 사물함. 편리하지. 귀한 책과 노트북과 무릎담요를 넣어놓고 유용하게 쓰길 바랄게.


음? 왜 그래? 무슨 문제가 생겼어? 아, 너의 사물함이 자물쇠로 잠겨 있단 말이지? 저런, 어떡하니? 네가 어렵게 신청해서 어렵게 마련한 소중한 너의 수납 공간을 누군가가 침범하고 있으니. 아무래도 주변 눈치를 잘 봐서 너도 예전의 사물함 사용자를 위한 포스트잇을 하나 붙여야겠지?


퇴거 요청이 붙은 사물함. 정하상관 1층


그래, 마음이 불편한 거 나도 잘 알아. 옆에 붙은 쪽지들을 보니 다들 "강제철거", "자물쇠 자르겠습니다", "꼭 빼 주세요" 등등 굉장히 부담스러운 말들로 반 공갈협박을 하고 있다는 거. 그걸 따라하는 건 좀 양심에 걸렸지만, 어쨌든 그 사물함은 너의 자리이니 그렇게라도 해서 너의 사물함을 이용할 수 있도록 수순을 밟는 게 맞을 거야. 뭔가 미안하니까 '죄송해요ㅠㅠ 꼭 빼주세요ㅠㅠㅠ' 같은 문자라도 주고받을 수 있는 너의 연락처도 적어야 할 테고.


자, 이제 전 주인이 사물함 자리를 내어줄 것을 기다리며 밥을 먹으러 가야겠지? 어디 갈까? 엠마오관이 깨끗하고 좋다는데 마침 가까우니 거기로 갈까?


구 삼민광장 자리. 최양업관에서 내려다봄


응? 저 네모난 유리상자들은 뭐냐고? 아, 저거? 아직 곤자가 플라자는 안 가봤구나? 저 유리상자는 사실, 저 아래 지하층에 있는 곤자가 플라자라는 지하상가의 천창(天窓)이야. 원래 곤자가 플라자가 지어지기 전에 방금 네가 지나온 저 이상한 공간은 삼민광장이라는 곳이었대.

왜 우리 학교에는 대학의 상징인 잔디밭 하나가 없을까 궁금하지 않았니? 있었어. 08년도가 오기 전만 하더라도 말이지. 내가 입학할 때쯤에 온통 잔디밭이었던 저 공간을 갑자기 공사장으로 만들었대. 그리고 '민자사업 유치 기숙사' 건설과 함께 지하상가를 만들고 그 위에는 미묘한 공터를 만들었어. 그게 방금 네가 지나온, 아무 이름도 없는 공간이야. 길이 좀 불편하지? 저 비좁은 길로만 다녀야 하는 이유, 사실 그건 나도 잘 모르겠어.


옛 삼민광장.


그곳에서 우리는 원래 이렇게 앉고 모이고 드러눕고 공부하고 놀고 기타 치고 햇빛 쬐고 할 수 있었대. 청춘의 공간이지. 아무 의미 없어 보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함부로 없앨 수 없었던 공터였던 거야. 솔직히 너도 이렇게 좁은 학교에 변변한 광장 하나 없는 게 얼마나 갑갑하니?

하지만 경영학을 전공하신 전 총장님들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나 봐. 이윤을 창출하지 않는 토지는 산업화 내지는 토건 개발의 대상일 뿐이었던 것 같아. 어쨌든 방금 막 들어온 총장님 당신에게 있어서는 그곳도 방금 당신이 물려받은 자기가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었으니까. 마치 네가 지금 막 사물함을 배정받은 것 같이 말이야. 빨리 국가에 신청서를 내서 개발 계획을 배정받고 몇 월 며칠까지 사람들을 치우지 않으면 강제로 철거하겠다는 안내도 붙여서 말이야.


북아현 재개발 구역 현장 사진.


우리 학교에서 2km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지금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어.

북아현이라는 곳이야. 재개발을 명목으로 사람들이 강제 철거되고 안내문이 나붙고 자물쇠를 자를 줄 아는 용역이라는 이름의 깡패들이 끊임없이 출동하는 곳이지. 누가 그러는 거냐고? 누구일까? 생각해 보자. 누가 사물함 철거를 원할까―원래 주인 아니면 새 주인? 새 주인이지. 누가 북아현 철거를 원할까―원래 주인인 주민들 아니면 새 주인인 건설자본과 모피아 관료들? 그분들 입장에선, 마치 네가 방금 배정받은 '너의 권리가 있는' 너의 사물함을 빨리 사용하길 원하고, 전 총장님들이 방금 배정받은 '당신들의 권리가 있는' 당신들의 삼민광장을 빨리 유용하게 이용하길 원한 것처럼, 북아현도 그런 곳일 뿐이야. "죽어도 이 사물함을 빼 줄 수 없다, 나는 이 사물함을 이용해야겠다"라고 박박 우기는, 말귀를 못 알아듣는 사람들이 저기서 살고 있어. 그래서 아직도 이곳은 개발이 되기는커녕 서울시장님도 풀지 못하는 문제 지역으로 남아 있는 건데...


아, 미안해. 너랑은 관계없는 이야기야. 네가 잘못한 게 아니야. 자, 밥도 먹었으니 다시 강의실로 가 볼까?


곤자가 플라자 위 가로수


무슨 수업 들어? 철학 산책? 음, 좋은 수업이지. 맘 편하게 듣고 족보 꼭 찾아보고. 그 교수님이 기독교 얘기 많이 하실 텐데 불편하면 그냥 흘려 듣고. 흠, 이 가로수들은 완전 반토막이 났네. 뭐? 왜인지 아냐고? 나야 모르지! 내가 가로수를 심어봤어야 알지.

근데 참 저 나무들은 참 불쌍해. 지리산이나 중국이나 아니면 핀란드, 하여튼 우리가 알지 못하는 다른 어딘가에서 잘 자라다가 어느 날 느닷없이 뜯겨져 온 거지. 그리고 사람들은 다짜고짜 자기들을 여기에 꽂아넣었어. 일단 흙과 물과 빛이 있으니 살 수는 있다고 생각했겠지. 하지만 지금 보니 자기들이 뿌리내릴 수 있는 깊이가 한정이 돼 있었던 거야. 아까 뭐랬어, 이 밑에 지하상가가 있다고 했지? 나무 뿌리가 지하상가까지 뚫고 들어가면 안 될 거 아냐? 그래서 아마도 저 나무의 뿌리 끝은 견고하고 두꺼운 콘크리트 벽에 가로막혀 있을 거야. 게다가 사람들이 자기들의 뿌리를 둥그렇고 조그맣게 말아서 오랜 시간 운반해 온 바람에 깊고 웅장하게 오래오래 뿌리내린다는 게 뭔지 잊어버리기 시작해. 그리고 어느 날인가에는 자기의 목 언저리가 잘려 나가도 이렇다 할 항변 한 번 하지 못하고 생을 지속해. 그나마 다시 뿌리뽑혀 내어버려지지 않은 것에 감사하면서, 고작 지하 1층 깊이도 되지 않을 그 몇 줌 안 되는 흙의 영양분을 빨아먹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면서. 대학생들, 현대인들, 자기라는 하나의 생(生)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는 영영 모른 채, 그저 비좁디비좁은 그 한 평 땅뙈기에 잠시 얕은 뿌리나 찔끔 내려 놓고 그걸로 뭘 빨아먹어야 '서바이벌'할 수 있을지에만 목을 매달게 된 존재들.


어휴, 너무 철학적인 얘기를 해 버렸나? 안 되겠다. 빨리 수업 가자. 계단으로 가는 게 빠를 거야.


1층~2층 층계참. 정하상관


저기 얼룩덜룩 붙어 있는 게 뭐냐고? 동아리나 학회나 각종 콘서트 같은 거 홍보하는 전단지 붙어 있던 자국이야. 지금은 다 철거를 해 버렸네. 완전 깨끗하다. 너도 동아리 할 거야? 하는 게 좋아. 대학생쯤 됐으면 행사도 개최해 보고 선배들도 만나고 저렇게 전단지도 붙여 봐야지, 안 그래? 근데, 전단지를 붙일 때는 '자진철거를 언제 하겠다'라는 내용을 전단지에 적어서 붙여야지, 안 그러면 청소하시는 노동자 어머니들이 저렇게 가차없이 떼 버려. 오래 붙어 있어봐야 소용이 없거든. 저 자리에 전단지를 붙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너무, 너무, 너무 많단 말야. 그게 현대 사회야. 별로 넓지도 않은 공간을 자기가 차지하겠다고 덕지덕지, 남의 것 위에 자기 것을 붙여 가면서, 자진철거 기간이 지난 것은 담당자가 떼기 전에 자기가 우드득 뿌드득 찢어 뜯어버리면서, 자긴 영영 붙어 있을 작정으로 갖은 애를 쓰는 저 지하 1층 깊이도 안 되는 땅, 또는 저 좁디좁은 층계참 벽 같은 것 말이야.


잘린 사물함 자물쇠. 정하상관 1층


잘린 자물쇠 보여? 저렇게 부질없이 잘려 나간다니까. 아무리 튼튼한 자물쇠를 사다 놓고 네가 너의 사물함 자리를 영영 쓰고 싶다고 하더라도, 기껏해야 한 학기야. 다음 학기에 졸업이나 휴학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매 학기 사물함을 바꿔. 그때마다 저렇게 처참하게 잘린 자물쇠와 가차없이 철거된 사물함들을 볼 수 있어. 사물함 속의 교재와 무릎담요와 귀중품들은 쓰레기처럼 내버려지지. 그게 뭐나 된다고, 결국 마지막엔 그렇게 내다버릴 거면서 다들 악착같이 자물쇠를 자르고 예전 주인을 내쫓고 재개발을 하고 민자사업을 유치하고 사람을 철거한단 말이야.

그러니 이걸 꼭 기억해. 누군가가 다음 학기에 너의 귀한 것이 가득 들어 있는 "너만의 사물함"을 갑자기 강제철거하더라도 너무 화내지 마. 그날 너는 네가 왜 철거되는지 모를 테니까. 사실은 서로가 서로를 철거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철거당하는 게 이 사회에 의해 왜곡되고 강압된 모순적 존재양태라는 이야기를, 너는 내가 얘기해 주지 않았다고 기억할 테니까. 난 간다. 수업 잘 들어! A+ 많이 받고. 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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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
한국어 자막 있습니다. CC 버튼에서 Korean을 찾고 보세요. (물론 영어 실력이 괜찮다면 그냥 보셔도 좋습니다.)


(Sure you're never an another #fallingplates?

Take a look, you every Korean stud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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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

https://www.facebook.com/mindFULL.creative/posts/10200155824190968

아까 아이폰으로 구글에서 서울 중구청장이 누구인지 검색했는데 안드로이드에 있는 Google Now에서 서울 중구청까지 가는 길이 어떻게 되고 몇 분 걸린다고 뜨는 거 보고 소름돋았다.

좋아서가 아니라 무서워서. 이건 기술의 혁신이 아니다. 재앙이다.




그러나 그 재앙은 오지 않을 것이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 이 세대에게 catastrophe라는 것은 인지되지 않을 것이다. 애당초 이 단어를 알기는 알까 싶은 마당이니.


사전을 찾아보면 catastrophe는 손실을 일으키거나 사태를 파국으로 이끄는 갑작스럽고 급격한 변화를 일컫는데 수시로 일어날 수 있는 disaster와는 다른 의미로서 '대단원적' 재앙이고 이것이 우리가 겪는 재앙이다. 우리는 갑작스럽고 급격한 변화를 신물이 나도록 겪고 있고, 그 가운데서 손실 역시 엄청나게 겪고 있다. 불과 105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는 OECD 국가중 최장 노동시간과 최악의 노동강도를 버티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50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는 89년생과 94년생이 서로 세대 차이를 느끼게 될 것이라고 추측조차 하지 못했으며, 5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는 차도 1차선을 쌩쌩 달려오는 버스가 몇 분 뒤에 도착하는지를 차도 한가운데에 떡하니 세워진 버스정류장에 설치된 전광판과 주머니 속 스마트폰으로 체크하게 될 거라고는 꿈도 꾸지 못했다. 그런데 우리는, 분명히, 그 5년 동안 유난히 더 많이 지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일을 많이 하면 경제가 강박적으로 활황으로 돌아서고 노동력이 구매력으로 전환되어야 하고 삶의 질이 좋아져야 할 것 같지만 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혁신이란 뭔가에 새로이 변화가 일어나서 혜택을 보게 되는 또는 감동이 일어나는 어떤 것일 것이다. 그런데 이 세대가 우리에게 주고 있는 것은, 사실 대부분의 경우 재앙이지 혁신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눈이 멀어서 새롭고 변화하는 '양상'에만 주목하느라 그것이 진짜 혜택인지 아니면 단지 손실과 파국의 다른 '양태'일 뿐인 것인지에는 아무 관심이 없게 (또는 관심을 갖지 않기로 결정하) 되었다. 구글이 내가 묻는 것과는 전혀 별개의 너무나 완벽하고 정돈된 정보를 제공한다는 사실은 혁신일까 재앙일까? 이 질문은 사실 다음 질문으로 바뀌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일단 나에게) 유익인가 해악인가, 그리고 혹시 그것이 실상은 어떤 더 큰 규모의 궁극적 실패와 패망으로 치닫는 일부인 것은 아닌가.


그리고 이 세대는 재앙을 알아보는 안목이 없다. 말이야 바른말이지, 우리가 이 따위로 살게 될 거라고 행여 꿈이나 꾸었는가? 지금의 삶을 '이 따위로 산다'라고 표현하는 게 맞는지조차 갸웃갸웃하지 않은가? 애매한 걸 딱 정해주자면, 우린 지금 이 따위로 사는 게 맞다. 우리는 생명복제니 광과민성 발작이니 생화학무기니 주가 폭락이니 하는 것들을 모른 채 살아갈 수도 있었단 말이다. 그렇게 변화가 만연하고 갑작스러운 사태의 양적 완화가 자행되자, 하도 나쁜 일이 흔해져서 이제는 뭐가 재앙이고 뭐가 변화이고 뭐가 혁신인지 알아보지 못하는 시절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 그거 아는가? 그것들이 변화인지 혁신인지 재앙인지 서로 헷갈린다지만, 거의 예외 없이, 한꺼풀 벗겨놓고 보면, 거의 대다수가 재앙이라는 사실이다.

예를 들기는 어렵지 않다. 보통 2년 할부 계약으로 구입하는 스마트폰들 중 한 브랜드의 3차 기종이 나온 지 6달이 지나지 않아 4차 신기종이 발매되는 것은 혁신인가 재앙인가? 그냥 정답을 말해 주겠다, 이것은 재앙이다. 그러나 어느 초등학생에게 물어보아도 이것이 재앙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 초등학생들의 평균 학원 등록 수가 3곳이라고 한다면 이것은 혁신인가 재앙인가? 정답은 재앙이다. 우리나라의 핵발전 원자로가 21기라고 한다면 이것은 혁신인가 재앙인가? 4대강은, 여성가족부는, TED 컨퍼런스는, 전자파는, 유로화는, 석유와 플라스틱은?


이쯤 되면 제기되는 질문이 있다. 그럼 대체 재앙이 아닌 것이 뭐가 있단 말이냐? 바로 그 지점이다. 바로 그렇게 여겨질 만큼 재앙이 만연해 있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이 시대에는 아무 재앙도 일어나지 않는다. 아무리 더 큰 사태가 벌어지더라도 이제 더 이상 우리는 그게 재앙인지조차 모른 채, 그저 트위터에서 욕하고 다음 아고라에서 서명을 주고받고 그 와중에도 자기 살 길부터 먼저 찾는 비루하고 지난한 삶을 영속하는 데 골몰할 것이다. 너무나 광범위하고 흔한 멸망들. 망할 대로 망한 것에 대한 전혀 새로운 종류의 무감각 내지는 감각 증발. 이 시대가 겪고 있는 실로 거대한 인지부조화다. 재앙은 어제 일어났고 오늘 일어난다. 그런데 재앙이 어디 있느냐고 되묻는다. '충격'과 '경악'으로 가득한 오늘 조간뉴스를 보긴 보고 이런 반응을 하는 것일까? 그런데 사실 이 반응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길들여졌고 훈련되었다. 이것은 재앙이 아니다. 하나의 놀랍고 뛰어난 인류의 새 도전이고, 전혀 새로운 방식의 새 세계이다, 운운.


졸려서 결론을 짓지 못하겠는데 하고 싶은 말은 대략 다 했다. 재앙이라, 대체 얼마나 더 큰 일이 일어나야 "이건 아니구나, 뭔가 단단히 잘못되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될까? 아무리 더 큰 일이 일어나더라도 사람들은 정상적인 반응을 하지 않을 것이다. 이미 그런 시대로 오지 않았는가 싶기도 하다. 이 지독한 나르시시즘과 무구조 탈권위 몰계몽의 사회. 자기의 반응과 속내와 밑천을 다 쏟아내어보여주면 손해와 패배가 따르고, 당연하고 건강한 것을 묵묵하게 하자는 캠페인 대신 나쁜 것을 나쁘게 팔아야 관심을 받으며 판매되는 세계. 사실은 이것―대재앙이 오는지 마는지도 모르고 있다는 바로 이 상태―야말로, 언급할 가치가 있는 오늘날 유일한 최악의 재앙(the only remarkable worst catastrophe today)인지도 모른다.




P.S. 이런 인식의 토대를 깔고 지구멸망 __일째 트윗봇을 찬찬히 즐기시면 좋다. 사실 이 봇은 이 생각을 심어주자는 의도로 만든 것이기도 하다. 세상은, 노아 이후로, 이미 한 번 망한 세계이며, 그리스도께서 직접 미리 말씀해 주신 이후로, 멸망이 정해져 있는 세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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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

※ 현재 이 서비스를 지원하는 메조미디어가 서비스를 일시중단한 상태입니다.


dok.do라는 URL shortener(긴 주소 짧게 만드는 페이지)가 있습니다. (스팸문자 보내는 사람들이 악용하는가 보더군요.)

http://dok.do



웹으로 들어가서 줄이고 싶은 원래의 긴 주소를 입력하면 바꿔 주는데, 대부분의 URL 단축기들이 지원하는 북마클릿(bookmarklet)이 없길래 실망스러워하다가, 조사해 보니 만드는 게 어렵지 않다는 것 같아서 시도해 봤습니다. 난 자바도 소스 살짝 수정하는 것밖에 모르는데...


그리고 5분만에 해냈습니다!!!

-.-;;




Dok.do 즐겨찾기로 사용하기



1. 다음 자바스크립트 전체를 복사합니다. java 부터 text') 까지입니다.


javascript:void(location.href='http://dok.do/api/shorten?longUrl='+location.href+'&format=text')



2. 사용하고자 하는 브라우저에서 아무 페이지나 일단 즐겨찾기(북마크)합니다.


예를 들면 이렇게 1



3. 즐겨찾기 수정으로 들어가서 방금 즐겨찾기한 페이지의 URL(주소)를 방금 복사한 자바스크립트로 바꿔치기합니다. 페이지 타이틀도 원래의 제목에서 'dok.do로 줄이기' 같은 걸로 바꾸면 좋겠죠.


예를 들면 이렇게 2



4. 이제 앞으로 주소를 줄이고 싶은 페이지에서 수정한 그 즐겨찾기를 누르면 이렇게 작동이 됩니다.


예를 들면 이렇게 3



원래는 goo.gl을 가장 많이 썼는데, 이 방법을 직접 찾아낸 이상에는 저도 dok.do를 좀더 많이 써보려고 합니다. 작동 원활하게 잘 됩니다.

이 단축URL 서비스가 오래 가면 좋겠네요. dok.do의 about에 들어가 본 외국인들이 독도가 한국령인걸 좀 알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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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

Gyuhang Kim, “Gurus

We've already known the hundreds of wise gurus who'd enlightened the human history. However there have been much more gurus who are closely connected to the ordinary daily lives, not so great nor famous. They are the “nearby gurus”―who seem to be ones of the normal neighbor forks but have stocked a bunch of wisdom and sagacity derived from the human life. They've been named grandfather, sir, madam, brother or whatever to be there giving some clues and ways to the realization of the troubled world and the problems on daily living. What tragedy our society has is the fact that we have no more nearby guru. Capitalism, I mean the maximized Capitalism today, has always controlled and maneuvered the people living in their living field to find no prudence nor insight, which eventually would reveal that it's only the silly, slavish, subjective-to-capital living for many of them to consider nothing but the pleasure of their own self and family and to work day and night producing some productions which is finally consumed by themselves for the pursuit of pleasure. That is how the Capitalism has deleted the wisdom, perspicacity, and the gurus.


“Seoul Fireman”'s tweet

The “before & after” photos on the plastic surgery hospitals' ADs. Found something in common; every single different faces on the before side and all exact same on the after one.


Kimpoong's tweet

Was just an April fool in advance for you guys who never be fooled on the day! lol kkkk WTF twitter is the wasting of life huh? Goddamn here I come motherfucking wasting my whole life to blow up your mind make you never think its a waste! hahahahahaha lol


“Pato in DDanzi”'s tweet

No matter how the world is freaked up I care not to be haunted by the anger and hatred for the sake of it. It'll never go long; besides, who knows if my madness and dislike would possibly harm the world?




그냥 복사 붙여넣기로 퍼오기는 뭐해서 영어로 번역해 올려놓습니다. 오역이라고 생각되는 데가 있으면 알려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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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

Today's Ride

2013. 3. 24. 20:02

2013년 3월 24일 18:20~19:50

생애 네 번째 자전거 주행. 나름 시가지 훈련. 좌/우회전 연습 어느 정도 됐고 여전히 U턴은 어렵다. 정말 위험한 코스도 많았음. 신장초사거리는 "나는 자유인이다!!"를 외치며 사선으로 가로질러 달려버렸다. ㅋㅋㅋ;;; 그야말로 발길 닿는 대로 정처없이 가 보고 싶은 곳에 비집고 들어가볼 수 있었던 r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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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

ellif, <전시회를 합니다.> (현 시점에선 진작에 다 끝났음.)


0. 이 리뷰는, 등록 시각을 보시면 알겠지만, 일단은 현장에서 폰으로 써서 올린 겁니다. 세상 참 좋아졌죠
1. 안내가 불친절하다. 전시 내용이 “약 160여점 이상의 사진”이라는 사실이 직접 와야만 확인할 수 있어야 할 정도로 exclusive한 정보인가 하는 의문, 주최자는 길 안내를 하느라 전시 안내를 하지 못하는 모습.
2. 디스플레이의 몇 가지 아쉬움. 최소한의 전시 관람 방향이 없다. (“해석하기 나름”이라지만 정말 제멋대로 해석해 버리면 그것도 곤란하지 않겠는가?) 다과는 필자가 접시 위에 정돈해 놓기 전까지는 비닐봉지에 담긴 채 다과탁상 위에 방치돼 있었으며 변변한 쓰레기통 하나 없이 전시 동선 한복판에 대형 비닐봉투가 흉물스럽게 놓인 상태였다. 몇몇 사진은 화환, 데스크 등에 가려 다가가기 어렵다. 전시물들에 대한 최소한의 정보(촬영년도라든가 작품명 등)가 주어지지 않음.
3. 분위기 세팅의 불일치. 지나치게 격식 있고 과장된 ‘작가의 말’과 그로부터 기대되는 의도에 비해 현장은 작가와 관객이 돗자리 위에 앉아 컵라면을 끓여먹는 진풍경. 이것은 ‘우회전복된 전시회’가 아니라 ‘세미/쁘띠 전시회’에 가깝다(그렇다면 처음부터 작가의 말 따위가 사실은 ‘컨셉’임을 암시하는 시사를 해 주었어야 했는데 액면상으로는 기저 의식만이 지나치게 강조되어 일반적 개인전을 기대한 관객의 매너를 교체 준비시키는 데 실패하고 ‘설마 이렇게 당황하는 일반인으로서의 나조차도 전시와 퍼포먼스의 일부인가’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는데 이 지점이 패착이라고 본다). 그리고 정말 나중에 보니 사실상 코스어들 번개 '하우스'였음. 이 시점에서 이미 이런 비평 따위는 모든거시 숲으로 돌아갔다...
4. 전시 아이템 자체는 나름의 구성을 갖추고 편성되어 읽는 재미를 확보한다. 개인 내면(여기서 작가는 종종 관객의 시선을 180도로 뒤집을 것을 요구한다), 코스튬플레이 세계(사진 1을 보면 ‘코스프레는 지치는 일’이라는 인상을 준다), 손 프로젝트(최근 손이 주목되는 이유는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한다), 철도 출사(개중에는 사진 2가 가장 이해하기 쉬우며 그래서 마음에 듦) 등의 크게 네 가지 테마로 구성됨.

사진 1사진 1


사진 2사진 2


해석상의 지나친 오픈됨을 문제시하지 않는다면, 개인 처녀전으로서 내용은 양호하다. 한 개인이 목격한 것들을 비율에 맞게 전시하였다는 인상.
5. 코스튬플레이가 전시회장에서 자연스럽게 진행되었는데, 평생 처음으로 목격한 코스프레 출사 현장이었음에도 필자 스스로의 예상과 달리 필자는 놀라지 않았음. 전시회 자체가 엘‘리프’라는 인간의 삶(‘라이프’)을 전격 제시하며 그 모습 그대로를 보아 달라고 요구하는데, 그런 자리에서 코스프레를 실행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주제의식을 부각한다: 「이건 그냥 이런 거니까 이런 대로 그냥 봐 달라.」
6. 말은 이렇게 해도 잘보고갑니다. 왜 날 쀍
7. 생초콜릿 맛있었습니다. 육개장 잘먹었습니다. 입장료 및 다과가 무료였습니다. 전시장 1층의 그라찌에 와이파이가 무료였습니다. 처음 가 본 인하대는 생각보다 작아 보였습니다.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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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

최근 신앙생활 하면서 고민하고 공부하고 듣고 배우고 말씀 받는 뭐 그런 것들입니다. 기독교적으로 노골적인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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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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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hymes도 하나도 안맞고 그냥 일단 의미번역 위주로 했습니당.

내 기억이 맞다면 작년 한글날에 버스인가 지하철을 타고 산울림 Reborn 앨범으로 이 노래 들으면서 트위터로 조금씩 번역해 올렸던 거. 찾는데 고생좀 했지라




P.S. 자기가 지금까지 트위터에 올린 트윗들 다운로드 하는 방법

자신의 Twitter Archive를 Request하는 방식인데, 이번에 옛날트윗 찾아보면서 알게 됐다. 최근에 한국어 트위터에서도 지원한다.

1. 컴퓨터를 켜고 웹브라우저를 켜고 다운받고 싶은 트위터 계정에 로그인한다.

2. 오른쪽 위 톱니바퀴 버튼 눌러 설정으로 들어간다.

3. 아래로 스크롤을 내려 이런 것을 찾는다.

4. 이 트위터 등록에 사용한 이메일에 로그인해서 메일함을 열어 눈치껏 링크를 따라가 눈치껏 다운로드를 실시한다.

5. zip파일 하나가 다운로드되는데, 압축을 풀고 index.html을 열면 이런 페이지를 볼 수 있다.

왼쪽에 월별로 역정렬된 트윗들(아래로 갈수록 옛날 트윗들이다), 오른쪽에 간략한 분석. 인터넷에 연결이 안 돼 있으면 트윗 글자만 읽을 수 있는 모양. 적당한 곳에 저장해놓고 심심할 때 읽어본다.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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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

미친 여자

2013. 2. 15. 13:04

그게 벌써 엊그제다. 수요일 저녁 7시 반에 시청 옆 프레스센터 20층에서 뉴스타파 1주년 기념행사가 무료로 개최된다기에 가 보았다. 너무나 완벽한 기술적 지원들, 도대체가 교양없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너무나 안심이 되는 고평준화된 참석자들, 군더더기 없이 매끄럽게 움직이는 서투른 사람들의 능숙한 태도들. 모든 것이 완벽했다. 사회를 보고 계시던 이근행 PD님이 유머를 잠깐 섞어서 다음 순서로 넘어가려고 하는데―


―여기 카메라 있다고 말씀해 주신 분 누구세요? 제가 지금 몰래카메라 관련해서 지금 생체실험을 당하고 있거든요? 저 여기로 오면 된다고 하신 분 누구에요?


좌중의 모두가, 무대에서 보았을 때 우측 벽면(뷔페는 좌측 벽면에 준비되어 있었다)을 집중했다. 물 끼얹은 것처럼 조용해졌다. 그 앙칼진 목소리는 상아색 코트를 입은 30대 초반 외모의 여성이었다. 외견은 매우 단정하고 깔끔했다. 어투도 대단히 이지적이고 교양 있는 사람이 화난 것 같은, 별 문제 없는 억양이었다. 다만 그 말이라는 것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말 아닌 말의 연속이었다. 다시 잘 배열해 보자면 자기는 몰래카메라로 계속 주시당하며 오랫동안 피실험자가 되어 있었는데, 지금 이곳―시청광장 바로 옆의 20층짜리 빌딩 꼭대기 대연회장―으로 오라는 지시를 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니 책임자가 나와서 이 모든 걸 설명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런 이야기를, 조금은 급하지만 또박또박하게 주워섬기고 있었다. 처음엔 모두가 무슨 문제가 생겼는가보다 했다가, 그 주목이 황당함으로 바뀌어서 그만 헛웃었다. 사회자는 당황스러워서 헛웃으면서 받아넘겼다. "예, 행사 끝나고 말씀 듣겠습니다." 그러자 적막 속에서 그녀는 외친다.


지금 이게 웃겨요?


순간 나는 빡칠 뻔했다가, '상대하지 않는 게 상책이다' 싶어 눈을 정면 무대로 되돌렸다. 좌중은 예의상 웃음을 조금 거두었을 뿐 변함이 없었다. 뒤에 있던 관계자들 몇 명이 그녀를 설득하여 데리고 나갔다. 그 다음 우스갯소리를 이어서 해야 했던 이근행 PD님의 유머는 정말 진땀이 뻘뻘 흐르는 것이었다. 얼마 뒤에 뉴스타파 후원회원 자격으로 무대에 선 양혜진 님의 기타 연주가 시작되었을 때도 그녀는 들이닥쳤다. 이번에는 한층 더 앞뒤가 없어 못 알아들을 몇 가지 항변을 하던 그녀는, 그때는 제대로 끌려나갔다. 그 다음 행사장 뒤에서 어떤 일이 있었기에 그 이후로 그녀가 행사장에 난입하지 않게 되었는가에 대해, 나는 아는 바가 없다.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그런 날 저녁에 그런 곳까지 찾아와서 헛소리를 하는 화성인녀가 있다는 것이 아니다. 거기가 뉴스타파의 장소였다는 것이 내가 얘기하고 싶은 것이다.


그녀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할 바도 아니다. 생각해 보라. 아무도 주목해 주지 않는 혼자만의 싸움을 계속해 왔다. CCTV가 자기를 몰래 계속 촬영하고 있었다지 않나. 오죽했으면 (아마도 생전 처음 들어와 봤을) 이런 빌딩까지 와서, 12층에서 20층만 가는 엘리베이터를 골라 타서, 그때까지 조용히 있다가, 적당한 때를 보아서, "시민들의 알 권리를 위해 정권과 재벌을 두려워하지 않는 해직 기자들의 양심 있는 최첨단 언론"의 행사장에 들어오기까지, 치밀하게 움직였겠는가? 그녀의 이름도 모르고 몽타주도 정확히 기억나지 않으나(혹시 팩트TV로 생중계를 보신 분들은 봤을지도 모르겠다), 여하간 본인 입장에서는 절박하고도 분개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더 충격적인 것이 있지 않은가. 세상 모든 방송사가 기만하더라도 뉴스타파만큼은 자기를 믿어 주고 들어 줄 것이라고 생각했을 텐데, 이건 웬걸 관계자는 자기 팔을 붙잡고 사회자는 나중에 듣자면서 웃고 있고 좌중은 무시하지 않나. 이거 정말 깨어있는 시민들이 맞나 싶지 않았을까? 그녀의 "지금 이게 웃겨요?"만큼은 진심이었다. 논리적 오류가 없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나는 바로 그 점 때문에 인내심의 한계를 맞을 뻔했다. "이보세요 옴파로스 증후군 아주머니, 당신을 몰래 촬영하는 비밀 집단 따위는 없다고! 그렇게 비밀 집단이 필요하다면 알려 주지, 그래, 내가 배후다! 내가 당신을 여기까지 조종했어! 자 어디 한번 날 어떻게 해 보시지?" 운운 미친짓에 미친짓으로 맞받아쳐 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곳에서 가장 불청객 축에 속하는 나로서는 꾹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시 정면을 쳐다보았다가, 사방을 다시 둘러보았다. 굳이 더 설명할 필요도 없다. 뉴스타파 제작진이 준비한 행사장이다. 국내 메이저 방송사와 언론사에서 온갖 비싼 세계를 다 보고 겪은 사람들이 자기들만의 힘으로 자기들 마음에 쏙 들게 준비한 곳이란 말이다. 얼마나 말쑥하고 깔끔하며 정서적으로도 완벽한지 모른다. 그런데 그것이 저 미친 여자에게는 한없이 폭력적이고 기만적이며 그래서 더욱 기득권스러운 어떤 것이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주로 돈 많은 자들을 상대한 싸움, 그리고 가끔 권력 있는 자들을 상대한 싸움이 쉽지 않은 것은 바로 이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에게 우리는 미친놈이고 미친 여자다. 전직 대통령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생일잔치에 난입하고, 방송인의 날 행사에 난입하고, 후보자 공개 토론회에 각본에 없던 방식으로 난입하고, 대사관 앞과 송전탑과 크레인과 성당 종탑과 광화문 광장에 난입하는 것이다. 이렇게 분위기 좋고 온전하고 아무 잘못도 없고 오히려 이 나라와 시민들을 위하는 장소에서 좋은 일로 좋은 행사 열고 있는데, 자기 사정 좀 안 좋다는 이유로 도저히 못 알아들을 항변을 뭐라고 씨부렁거리면서 미친짓을 하는 것이다. 그러니 쫓아내고 무시하고 외면하고 경비를 불러서 말리고 때려서 뜯어내 내쫓을 수밖에 없지 않겠나. 거기가 어떤 자리인데, 말을 할 거면 좀 알아들을 수 있게 적당한 때를 봐서 잘 말하든가. 그나마도 그 말이라는 것이 뭐? 최저임금?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몰래카메라 생체실험? 일본군 위안부? 단체교섭의 원상회복?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인지, 말을 하면 다 말인 줄 아나?




"지금 이게 웃겨요?"


한때 약자와 소수를 위해 가장 강력하게 싸워 줄 것 같던 민주당은 이제 허수아비 정당으로 지탄받게 되었다. 그러고 있으니까 이번엔 뉴스타파라는 언론사가 신입 1기를 9명이나 공개 채용한다. 뉴스타파는 보고 있으면 분노가 치밀기도 하고 웃음이 나기도 하는 악마적이고 자유로운 편집, 그리고 핸드헬드 위주의 초고급 취재 내용으로 해적방송의 모범을 달성하며 성공적인 대안 언론이 되었다. 그리고 뉴스타파가 기여한 공도 크다. 하지만, 이 모든 힘있는 대변자들의 세계가 어떠함과 상관 없이 지금도 어디에선가는 지금 이게 웃기냐는 미친 여자의 발악이 있고, 그 발악을 웃어넘겨 버리는 수많은 교양 있는 사람들이 있으며, 이 모든 현상은 마치 계단과도 같이 위에서 아래에서 그렇게 대하거나 당하는 형태로 오늘 이 땅에서 지속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각주:1] 글쎄, 모르겠다. 그 미친 여자의 말이 사실이라는 걸 뉴스타파 제작진들이 차분히 듣고 납득해 주었다면, 그걸 뉴스타파가 취재해서 탐사보도를 했더라면 그 미친 여자는 만족하고 더 이상 울부짖지 않게 되는, 그래서 '상아색 코트에 핸드백에 아주 단정한 세미롱 생머리'에 어울리는 현대 여성이 될 수 있었을까? 너무나 정당해 보이는 (그리고 실제로도 분명히 정당한) 수많은 투쟁의 구호가 고함과 발악의 모양으로 분출되어야만 하는 것은, 그런 이유―우리는 그들에게 있어 그저 그들만의 행복한 세계에 쳐들어와 헛소리를 쏘아 대는 미친 여자와 미친 남자일 뿐이라는―가 아닐까? 그것은 섬뜩하다. 그것은 전혀 우스운 이야기가 아니다.

  1. 당장 하나 생각나는 것은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에 대한 어른들의 태도와 입장에 대한 것이다. 그들에게 진지하고 심각한 국가(사회) 차원의 모순이 대다수 어른들에게는 그저 어릴 때의 철없는 투정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본문으로]
Posted by 엽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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