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벌써 엊그제다. 수요일 저녁 7시 반에 시청 옆 프레스센터 20층에서 뉴스타파 1주년 기념행사가 무료로 개최된다기에 가 보았다. 너무나 완벽한 기술적 지원들, 도대체가 교양없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너무나 안심이 되는 고평준화된 참석자들, 군더더기 없이 매끄럽게 움직이는 서투른 사람들의 능숙한 태도들. 모든 것이 완벽했다. 사회를 보고 계시던 이근행 PD님이 유머를 잠깐 섞어서 다음 순서로 넘어가려고 하는데―
―여기 카메라 있다고 말씀해 주신 분 누구세요? 제가 지금 몰래카메라 관련해서 지금 생체실험을 당하고 있거든요? 저 여기로 오면 된다고 하신 분 누구에요?
좌중의 모두가, 무대에서 보았을 때 우측 벽면(뷔페는 좌측 벽면에 준비되어 있었다)을 집중했다. 물 끼얹은 것처럼 조용해졌다. 그 앙칼진 목소리는 상아색 코트를 입은 30대 초반 외모의 여성이었다. 외견은 매우 단정하고 깔끔했다. 어투도 대단히 이지적이고 교양 있는 사람이 화난 것 같은, 별 문제 없는 억양이었다. 다만 그 말이라는 것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말 아닌 말의 연속이었다. 다시 잘 배열해 보자면 자기는 몰래카메라로 계속 주시당하며 오랫동안 피실험자가 되어 있었는데, 지금 이곳―시청광장 바로 옆의 20층짜리 빌딩 꼭대기 대연회장―으로 오라는 지시를 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니 책임자가 나와서 이 모든 걸 설명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런 이야기를, 조금은 급하지만 또박또박하게 주워섬기고 있었다. 처음엔 모두가 무슨 문제가 생겼는가보다 했다가, 그 주목이 황당함으로 바뀌어서 그만 헛웃었다. 사회자는 당황스러워서 헛웃으면서 받아넘겼다. "예, 행사 끝나고 말씀 듣겠습니다." 그러자 적막 속에서 그녀는 외친다.
지금 이게 웃겨요?
순간 나는 빡칠 뻔했다가, '상대하지 않는 게 상책이다' 싶어 눈을 정면 무대로 되돌렸다. 좌중은 예의상 웃음을 조금 거두었을 뿐 변함이 없었다. 뒤에 있던 관계자들 몇 명이 그녀를 설득하여 데리고 나갔다. 그 다음 우스갯소리를 이어서 해야 했던 이근행 PD님의 유머는 정말 진땀이 뻘뻘 흐르는 것이었다. 얼마 뒤에 뉴스타파 후원회원 자격으로 무대에 선 양혜진 님의 기타 연주가 시작되었을 때도 그녀는 들이닥쳤다. 이번에는 한층 더 앞뒤가 없어 못 알아들을 몇 가지 항변을 하던 그녀는, 그때는 제대로 끌려나갔다. 그 다음 행사장 뒤에서 어떤 일이 있었기에 그 이후로 그녀가 행사장에 난입하지 않게 되었는가에 대해, 나는 아는 바가 없다.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그런 날 저녁에 그런 곳까지 찾아와서 헛소리를 하는 화성인녀가 있다는 것이 아니다. 거기가 뉴스타파의 장소였다는 것이 내가 얘기하고 싶은 것이다.
그녀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할 바도 아니다. 생각해 보라. 아무도 주목해 주지 않는 혼자만의 싸움을 계속해 왔다. CCTV가 자기를 몰래 계속 촬영하고 있었다지 않나. 오죽했으면 (아마도 생전 처음 들어와 봤을) 이런 빌딩까지 와서, 12층에서 20층만 가는 엘리베이터를 골라 타서, 그때까지 조용히 있다가, 적당한 때를 보아서, "시민들의 알 권리를 위해 정권과 재벌을 두려워하지 않는 해직 기자들의 양심 있는 최첨단 언론"의 행사장에 들어오기까지, 치밀하게 움직였겠는가? 그녀의 이름도 모르고 몽타주도 정확히 기억나지 않으나(혹시 팩트TV로 생중계를 보신 분들은 봤을지도 모르겠다), 여하간 본인 입장에서는 절박하고도 분개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더 충격적인 것이 있지 않은가. 세상 모든 방송사가 기만하더라도 뉴스타파만큼은 자기를 믿어 주고 들어 줄 것이라고 생각했을 텐데, 이건 웬걸 관계자는 자기 팔을 붙잡고 사회자는 나중에 듣자면서 웃고 있고 좌중은 무시하지 않나. 이거 정말 깨어있는 시민들이 맞나 싶지 않았을까? 그녀의 "지금 이게 웃겨요?"만큼은 진심이었다. 논리적 오류가 없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나는 바로 그 점 때문에 인내심의 한계를 맞을 뻔했다. "이보세요 옴파로스 증후군 아주머니, 당신을 몰래 촬영하는 비밀 집단 따위는 없다고! 그렇게 비밀 집단이 필요하다면 알려 주지, 그래, 내가 배후다! 내가 당신을 여기까지 조종했어! 자 어디 한번 날 어떻게 해 보시지?" 운운 미친짓에 미친짓으로 맞받아쳐 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곳에서 가장 불청객 축에 속하는 나로서는 꾹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시 정면을 쳐다보았다가, 사방을 다시 둘러보았다. 굳이 더 설명할 필요도 없다. 뉴스타파 제작진이 준비한 행사장이다. 국내 메이저 방송사와 언론사에서 온갖 비싼 세계를 다 보고 겪은 사람들이 자기들만의 힘으로 자기들 마음에 쏙 들게 준비한 곳이란 말이다. 얼마나 말쑥하고 깔끔하며 정서적으로도 완벽한지 모른다. 그런데 그것이 저 미친 여자에게는 한없이 폭력적이고 기만적이며 그래서 더욱 기득권스러운 어떤 것이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주로 돈 많은 자들을 상대한 싸움, 그리고 가끔 권력 있는 자들을 상대한 싸움이 쉽지 않은 것은 바로 이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에게 우리는 미친놈이고 미친 여자다. 전직 대통령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생일잔치에 난입하고, 방송인의 날 행사에 난입하고, 후보자 공개 토론회에 각본에 없던 방식으로 난입하고, 대사관 앞과 송전탑과 크레인과 성당 종탑과 광화문 광장에 난입하는 것이다. 이렇게 분위기 좋고 온전하고 아무 잘못도 없고 오히려 이 나라와 시민들을 위하는 장소에서 좋은 일로 좋은 행사 열고 있는데, 자기 사정 좀 안 좋다는 이유로 도저히 못 알아들을 항변을 뭐라고 씨부렁거리면서 미친짓을 하는 것이다. 그러니 쫓아내고 무시하고 외면하고 경비를 불러서 말리고 때려서 뜯어내 내쫓을 수밖에 없지 않겠나. 거기가 어떤 자리인데, 말을 할 거면 좀 알아들을 수 있게 적당한 때를 봐서 잘 말하든가. 그나마도 그 말이라는 것이 뭐? 최저임금?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몰래카메라 생체실험? 일본군 위안부? 단체교섭의 원상회복?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인지, 말을 하면 다 말인 줄 아나?
"지금 이게 웃겨요?"
한때 약자와 소수를 위해 가장 강력하게 싸워 줄 것 같던 민주당은 이제 허수아비 정당으로 지탄받게 되었다. 그러고 있으니까 이번엔 뉴스타파라는 언론사가 신입 1기를 9명이나 공개 채용한다. 뉴스타파는 보고 있으면 분노가 치밀기도 하고 웃음이 나기도 하는 악마적이고 자유로운 편집, 그리고 핸드헬드 위주의 초고급 취재 내용으로 해적방송의 모범을 달성하며 성공적인 대안 언론이 되었다. 그리고 뉴스타파가 기여한 공도 크다. 하지만, 이 모든 힘있는 대변자들의 세계가 어떠함과 상관 없이 지금도 어디에선가는 지금 이게 웃기냐는 미친 여자의 발악이 있고, 그 발악을 웃어넘겨 버리는 수많은 교양 있는 사람들이 있으며, 이 모든 현상은 마치 계단과도 같이 위에서 아래에서 그렇게 대하거나 당하는 형태로 오늘 이 땅에서 지속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글쎄, 모르겠다. 그 미친 여자의 말이 사실이라는 걸 뉴스타파 제작진들이 차분히 듣고 납득해 주었다면, 그걸 뉴스타파가 취재해서 탐사보도를 했더라면 그 미친 여자는 만족하고 더 이상 울부짖지 않게 되는, 그래서 '상아색 코트에 핸드백에 아주 단정한 세미롱 생머리'에 어울리는 현대 여성이 될 수 있었을까? 너무나 정당해 보이는 (그리고 실제로도 분명히 정당한) 수많은 투쟁의 구호가 고함과 발악의 모양으로 분출되어야만 하는 것은, 그런 이유―우리는 그들에게 있어 그저 그들만의 행복한 세계에 쳐들어와 헛소리를 쏘아 대는 미친 여자와 미친 남자일 뿐이라는―가 아닐까? 그것은 섬뜩하다. 그것은 전혀 우스운 이야기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