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결국 'real'한 것이 중요하게 인식되고 사람들의 생각을 주름잡는다. 리얼하다는 것은 생생하다는 것이 아니라 '앎과 겪음의 일치'를 의미한다. "Really?"라고 되물을 때 이것은 "내가 알고 있는 그게 맞느냐?"라는 의미가 된다. 왜 영화관에서 그래픽으로 범벅이 된 장면을 볼 때 우리는 '리얼하다'고 느끼는가? 우리 머릿속에 있는 간접 경험들은 훨씬 과장되어 있고(앎), 영화의 장면 또한 그만큼 과장되어 있다(겪음)는 점에서 두 가지가 일치함으로써 리얼하다고 느끼는 것이다(실제로는 '생생함', '진짜 현실'의 수준보다 훨씬 더 부풀려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자유주의적 세계관 특히 IMF 이후 더욱 심각해진 '현실적인' 경제관 또한 이러한 관점에서 재고해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경제문제는 그만큼 심각한가? 과장되어 있지는 않은가? 현재 사람들 사이에서 신자유주의적 현실주의가 real한 것이 되어 있는데, 과연 그것은 현실주의가 현실이어서 그런가, 우리의 real이 이 미쳐 돌아가는 세상만큼 미쳐 있어서 그런 것인가 하는 질문이 가능하지 않은가?
아무튼 '리얼' 논의는 해볼 만한 것 같다. 무엇인가가 우리에게 지나칠 정도로 리얼한 것으로 다가온다면 이것은 앎의 지나침 혹은 겪음의 지나침에서 오는 오류일 가능성이 크다. 실제는 real과 틀리다. 앎과 겪음은 모두 주관의 것이다. 완전히 객관화 가능한 주관적 판단은 불가하겠지만, real의 문제는 좀더 복잡하고 세세하게 다뤄볼 필요가 느껴진다. - 우리는 모든 것을 좀더 노골적으로 말할 필요가 있다. 멋진 개념어로 너무 꾸며놓으면 그것이 죄, 일탈, 잘못, 허물, 불의, 이상함, 오류, 무지, 무책임, 무의미라는 게 감각되지 않는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주변에 널려 있다. 뭔가 멋진 말과 구실을 갖다붙이고 있다. 프레임의 문제인가. 아무튼 좀더 노골적인 표현을 써서 문제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물론 그 문제를 건설적으로 비판하고 해결하려면 노골화를 그만두어야 하지만 말이다. 형질이 빈빈이니까.)
- 모든 사람을 위한, 모두가 공감하고 수용하는 '이론'은 없다. 있다면 그것은 이미 이론이 아니라 방법론적인 의미에서의 '사실'일 테지.
- 작은 일에 충성하지 못하면 큰 일에도 충성하지 못한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변하는 건 그 사람의 행실뿐이다. - 난 이승훈 선수 팬 할 꺼야. 어떻게 만 미터를 달리지
- TV의 기능은 크게 두 가지인 것 같다. watching과 showing이다. 시청자에게 뭘 보여주는 기능이 있고 시청자가 뭔가를 보게 해 주는 기능이 있다. 전자는 예능이고 후자는 교양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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