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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facebook.com/mindFULL.creative/posts/10200155824190968

아까 아이폰으로 구글에서 서울 중구청장이 누구인지 검색했는데 안드로이드에 있는 Google Now에서 서울 중구청까지 가는 길이 어떻게 되고 몇 분 걸린다고 뜨는 거 보고 소름돋았다.

좋아서가 아니라 무서워서. 이건 기술의 혁신이 아니다. 재앙이다.




그러나 그 재앙은 오지 않을 것이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 이 세대에게 catastrophe라는 것은 인지되지 않을 것이다. 애당초 이 단어를 알기는 알까 싶은 마당이니.


사전을 찾아보면 catastrophe는 손실을 일으키거나 사태를 파국으로 이끄는 갑작스럽고 급격한 변화를 일컫는데 수시로 일어날 수 있는 disaster와는 다른 의미로서 '대단원적' 재앙이고 이것이 우리가 겪는 재앙이다. 우리는 갑작스럽고 급격한 변화를 신물이 나도록 겪고 있고, 그 가운데서 손실 역시 엄청나게 겪고 있다. 불과 105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는 OECD 국가중 최장 노동시간과 최악의 노동강도를 버티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50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는 89년생과 94년생이 서로 세대 차이를 느끼게 될 것이라고 추측조차 하지 못했으며, 5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는 차도 1차선을 쌩쌩 달려오는 버스가 몇 분 뒤에 도착하는지를 차도 한가운데에 떡하니 세워진 버스정류장에 설치된 전광판과 주머니 속 스마트폰으로 체크하게 될 거라고는 꿈도 꾸지 못했다. 그런데 우리는, 분명히, 그 5년 동안 유난히 더 많이 지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일을 많이 하면 경제가 강박적으로 활황으로 돌아서고 노동력이 구매력으로 전환되어야 하고 삶의 질이 좋아져야 할 것 같지만 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혁신이란 뭔가에 새로이 변화가 일어나서 혜택을 보게 되는 또는 감동이 일어나는 어떤 것일 것이다. 그런데 이 세대가 우리에게 주고 있는 것은, 사실 대부분의 경우 재앙이지 혁신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눈이 멀어서 새롭고 변화하는 '양상'에만 주목하느라 그것이 진짜 혜택인지 아니면 단지 손실과 파국의 다른 '양태'일 뿐인 것인지에는 아무 관심이 없게 (또는 관심을 갖지 않기로 결정하) 되었다. 구글이 내가 묻는 것과는 전혀 별개의 너무나 완벽하고 정돈된 정보를 제공한다는 사실은 혁신일까 재앙일까? 이 질문은 사실 다음 질문으로 바뀌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일단 나에게) 유익인가 해악인가, 그리고 혹시 그것이 실상은 어떤 더 큰 규모의 궁극적 실패와 패망으로 치닫는 일부인 것은 아닌가.


그리고 이 세대는 재앙을 알아보는 안목이 없다. 말이야 바른말이지, 우리가 이 따위로 살게 될 거라고 행여 꿈이나 꾸었는가? 지금의 삶을 '이 따위로 산다'라고 표현하는 게 맞는지조차 갸웃갸웃하지 않은가? 애매한 걸 딱 정해주자면, 우린 지금 이 따위로 사는 게 맞다. 우리는 생명복제니 광과민성 발작이니 생화학무기니 주가 폭락이니 하는 것들을 모른 채 살아갈 수도 있었단 말이다. 그렇게 변화가 만연하고 갑작스러운 사태의 양적 완화가 자행되자, 하도 나쁜 일이 흔해져서 이제는 뭐가 재앙이고 뭐가 변화이고 뭐가 혁신인지 알아보지 못하는 시절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 그거 아는가? 그것들이 변화인지 혁신인지 재앙인지 서로 헷갈린다지만, 거의 예외 없이, 한꺼풀 벗겨놓고 보면, 거의 대다수가 재앙이라는 사실이다.

예를 들기는 어렵지 않다. 보통 2년 할부 계약으로 구입하는 스마트폰들 중 한 브랜드의 3차 기종이 나온 지 6달이 지나지 않아 4차 신기종이 발매되는 것은 혁신인가 재앙인가? 그냥 정답을 말해 주겠다, 이것은 재앙이다. 그러나 어느 초등학생에게 물어보아도 이것이 재앙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 초등학생들의 평균 학원 등록 수가 3곳이라고 한다면 이것은 혁신인가 재앙인가? 정답은 재앙이다. 우리나라의 핵발전 원자로가 21기라고 한다면 이것은 혁신인가 재앙인가? 4대강은, 여성가족부는, TED 컨퍼런스는, 전자파는, 유로화는, 석유와 플라스틱은?


이쯤 되면 제기되는 질문이 있다. 그럼 대체 재앙이 아닌 것이 뭐가 있단 말이냐? 바로 그 지점이다. 바로 그렇게 여겨질 만큼 재앙이 만연해 있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이 시대에는 아무 재앙도 일어나지 않는다. 아무리 더 큰 사태가 벌어지더라도 이제 더 이상 우리는 그게 재앙인지조차 모른 채, 그저 트위터에서 욕하고 다음 아고라에서 서명을 주고받고 그 와중에도 자기 살 길부터 먼저 찾는 비루하고 지난한 삶을 영속하는 데 골몰할 것이다. 너무나 광범위하고 흔한 멸망들. 망할 대로 망한 것에 대한 전혀 새로운 종류의 무감각 내지는 감각 증발. 이 시대가 겪고 있는 실로 거대한 인지부조화다. 재앙은 어제 일어났고 오늘 일어난다. 그런데 재앙이 어디 있느냐고 되묻는다. '충격'과 '경악'으로 가득한 오늘 조간뉴스를 보긴 보고 이런 반응을 하는 것일까? 그런데 사실 이 반응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길들여졌고 훈련되었다. 이것은 재앙이 아니다. 하나의 놀랍고 뛰어난 인류의 새 도전이고, 전혀 새로운 방식의 새 세계이다, 운운.


졸려서 결론을 짓지 못하겠는데 하고 싶은 말은 대략 다 했다. 재앙이라, 대체 얼마나 더 큰 일이 일어나야 "이건 아니구나, 뭔가 단단히 잘못되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될까? 아무리 더 큰 일이 일어나더라도 사람들은 정상적인 반응을 하지 않을 것이다. 이미 그런 시대로 오지 않았는가 싶기도 하다. 이 지독한 나르시시즘과 무구조 탈권위 몰계몽의 사회. 자기의 반응과 속내와 밑천을 다 쏟아내어보여주면 손해와 패배가 따르고, 당연하고 건강한 것을 묵묵하게 하자는 캠페인 대신 나쁜 것을 나쁘게 팔아야 관심을 받으며 판매되는 세계. 사실은 이것―대재앙이 오는지 마는지도 모르고 있다는 바로 이 상태―야말로, 언급할 가치가 있는 오늘날 유일한 최악의 재앙(the only remarkable worst catastrophe today)인지도 모른다.




P.S. 이런 인식의 토대를 깔고 지구멸망 __일째 트윗봇을 찬찬히 즐기시면 좋다. 사실 이 봇은 이 생각을 심어주자는 의도로 만든 것이기도 하다. 세상은, 노아 이후로, 이미 한 번 망한 세계이며, 그리스도께서 직접 미리 말씀해 주신 이후로, 멸망이 정해져 있는 세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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