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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2013. 12. 14. 02:38
  • 잠드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은데 깨는 것이 어렵다. 매일 아침 눈을 뜨는 일이 매우 '우연적인' 것으로 느껴진다. 아침잠이 늘어난 정도의 문제가 아니다. 내겐 어렸을 때부터 가진 한 가지 이유 없는 공포가 있다. 죽어서 영원한 어둠에 처해지는 것에 대한 무서움. 정말로 영원히 영원히 어둡고 아무 감각이 없는 것. 내겐 그것이 공포였고 지금도 아주 해결된 것은 아니다. 이 공포가 어디서 유래한 것인지 나는 모른다. 하여튼 그래서 지금까지는 어두컴컴한 밤이 무서웠다. 그런데 요즘 내가 아침에 우연하게 눈을 떠 휴대폰을 들어 각종 알림을 제거하면서 소스라치게 놀라는 것은, 내가 어젯밤에 잠들 때는 "내일 아침에 이러저러한 알림들이 올 테지, 그걸 꺼야지" 하고 잠들었는데, 지금 일어난 나는 전혀 그걸 기억하지도 대비하지도 못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냥 습관으로 행동한다.) 이러다가 어느 날부터인가는 "내가 왜 일어났는지" 알 수 없는 때가 오겠구나, 그러다가 어느 날 아침부터는 그냥 안 일어나겠구나, 싶다. 그렇다면 그때부터는 화창한 아침이 무서울지도 모르지.
  • 내가 현대인이 되었다고 느낀다. 미칠 듯이 바쁘다. 무엇보다 마음이 바쁘다. 마음심 변에 없을 망 자를 써서 바쁠 망이라고 읽는데, 마음이 없어진다는 기분이다. 닳는다. 소모가 된다. 오늘 희정과 이정 씨가 수뇌부를 은퇴했고, 그래서 잊고 있었던 캠퍼스워십을 가는 날이라는 것을 기억했을 때는 정말 예배를 기다렸는데, 정작 예배때 나는 반 이상 잘 잤다. 사람들에게 다가가자는, 우리의 사마리아에 머무르지 말고 성령의 충만과 인도에 전적으로 의지해서 광야 길로 나가자는 도전을 받아, 그리고 희정에게 정말 무슨 말이든 따로 긴히 한 마디 해 주고 싶어서 예배 끝나고 뒷정리도 나몰라라하고 성령의 취기를 빌어 간신히 한 통 보냈다. 읽었는데 답장이 없다. 고맙다. 여튼, 현대인이 돼 가고 있다. 여러 사람에게 고백했는데, 내가 이렇게 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좋은 점도 있다. 그전까지 이해하지 못했던 종류의 삶―어떤 모임에 대해서도 선뜻 가겠다는 말을 하지 않고 항상 미안하다는 표정부터 짓는―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어렵고 괴롭다. 요즘 현대인들은 낮을 빼앗겼기 때문에 밤을 지새우는 듯하고, 나도 점점 그리 되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잘 자고 싶다. 그런데 이제 그것은 돈이 많은 사람 혹은 돈이 전혀 없는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복락이 되었다.
  • 바로그찌라시가 나의 삶의 상당 부분이 되었다. 연필로서의 나의 고정적 쓰임새 중 하나를 찾은 기분이다. 그러나 다시 한 번 not a fan.을 대출받아 읽으며 되새긴다. 하나님은 나의 컨설턴트가 아니시다. 그분의 일에 내가 어떻게 가담할 수 있는지를 따져야 한다―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것'은 사실 백점짜리 제자도는 아니다. 일의 주체는 언제나 내가 아니다. 바로그찌라시는 내 삶의 최우선순위는 아니다. 그러나 스케줄의 상당 부분인 것은 사실이다. 이렇게 따지고 보니 명확해지면서도 심란하다.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일이 가장 중요하지 않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충실하지 않겠다는 것은 천에도 만에도 아니다. 다만 이런 삶―대다수 직장인들이 겪는 삶이겠지―을 잘 모르겠다는 것뿐이다.
  • 필기구를 쥐고 종이에 글을 쓰는 것을 동경만 하고 있고 실제로는 전혀 하지 못하고 있다. 내 안의 무언가가 "제발 이렇게 중량감 없는 글과 그림은 그만 만들어"라고 외치는 것 같다. 사실 나뿐 아니라 거의 대부분 현대의 창작물들이 뭔가 전혀 무게가 없다는 기분이다. 속이 비어 있는 것 같다. 분명히 거대한 물체를 표현한 것인데 3D CG로 잘 만들어진 그 모든 거대한 것들이 그렇게나 빠르고 가볍게 여기저기로 날아다닌다. 분명히 미소녀 일러스트인데 상반신과 하반신은 이질감이 극심하고(마치 바스트 샷까지만 연습하고 그 이하는 상상으로 그려낸 것 같다) 전체적으로 '저런 몸과 복장으로 저런 자세를 한 걸 그리면 정말 저렇게 나올까' 싶은 그림들 투성이다. 모두가 상상으로, 컴퓨터로, 깔부림을 한다. 아무 기본기도 찾아볼 수 없다. 소녀를 제대로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미소녀 그림을 그리고, 공룡이나 거대 비행기가 빌딩에 부딪치는 걸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대충 컴퓨터가 렌더링해 주는 시뮬레이션 결과대로 최종판을 작업하고, 자기가 뭘 패러디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오만 잡다하게 아무 데나 고객감사를 갖다 붙여 맹랑함을 넘어선 허무맹랑함을 작성한다. 그런 글은 공책에 연필로 썼더라면 결코 쓸 수 없는 종류의 글이다. 마구 잡다하게 튀어나오는 생각들이 분무기로 물 뿌리듯이 뿌려져서 화면 위에 널브러진 모양이 글이나 그림 따위에서 너무 자주 목격된다. 그리고 그것들을 참아주기가 어렵다. 이건 아닌데, 이게 정공법이 아닌데 싶다.
  • 사람들이 재미있는 일에 목이 말라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생각해 보면 자연스럽게 자명하다. 인구통계학을 배워 보라. 세상이 얼마나 재미없는지 아는가? 당신이 지극히 평균임을 알고 나면 세상이 그렇게 허무하게 재미없다. 이걸 어렴풋하게나마 눈치챈 사람들이 바로그찌라시 모집공고에 그토록 반응하고 달려들었다. 재미. 대체 재미란 무엇일까. 모름지기 사람은 사는 재미가 없으면 죽어 버리는 것이다, 자살이든 자연사든, 라고 나는 생각한다. 재미란 좀더 큰 차원이다. motivation이다. 재미가 있어야 뭔가를 한다는 말은 일반적인 통찰이다. 하지만 여기까지는 누구나 다 알고 있고 말하는 이야기고, 그 다음이 문제다. 그렇다면 재미를 일상화할 방법은 없을까? 롤러스케이트가 유행하던 시절 그때의 10대들은 롤러장에서 댄스음악에 맞추어 연애와 낭만을 즐겼고 그분들은 지금 30~40대가 되어 아이들을 영어 유치원에 몰아넣고 있다. 롤러스케이트와 같은 것, 새로운 스포츠, 한 장짜리 잡지를 만드는 매커니즘 등, 재미있게 살 수 있는 또 하나의 해볼만한 일, 그런 것을 만들고 싶다.
    요즘 API라는 개념에 꽂혀 있다. 스크립트는 중앙 서버에 있고 여기에 입력값을 제출하여 출력값을 되돌려받아 나름대로 이용할 수 있게 해 주는 (맞겠지?) 규격, 개발자가 제공하겠다고 맘먹고 개발해서 공개하면 되는 것. 기존의 재미 개발자들은 API를 공개하지 않았다. 그냥 통짜 콘텐츠를 갖다주었다. 이제 그건 좀 아닌 것 같다. 앤디 워홀은 스크린톤이라는 API를 개발했다. 이렇게 이렇게 색을 고쳐 넣으면 그럴싸하다는, 뭐 그런. 용어는 자의적이라 문제가 있겠지만 여튼 그런 걸 요즘 깊이 생각하고 있다.
  • 여전히 싫은 것이 세상에 너무 많아 견딜 수 없다. 학교 후문 쪽 사거리 모퉁이에서 운영하던 돈까스 집이 홀랑 망하고 파리바게트가 들어왔다. 오늘 오후에 보아하니 신장개업을 했다고 이벤트 도우미 불러다가 시끄럽게 떠들면서 홍보를 하는 꼴을 보이고 있었다. 가뜩이나 기분 안 좋고 섭섭한 일 있던 차에 굉장히 기분이 나빠서 화를 낼 뻔했다. 하지만 화를 내지는 않았다. 화를 내면 내 입만 더러워질 것 같다.
    일베충들에 대해서 내가 느끼는 것도 그렇다. 그냥 싫은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이 우리 학교부터 적지 않은 듯하다. 자기를 심리학과라고 소개하는 멀쩡하게 생긴 남자가 '거리로 나온 넷우익'이란 책을 쓴 저자에게 질문을 하다가 "그러면 당신은 다양성이 존중돼야 한다고 생각합니까?"라고 되물어보는 질문에 "그거는, 배제가, 돼야 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대답하는 걸 보며 혀를 끌끌 차는 수밖에 없었다. 정말 많구나, 세상에는 자기가 본 것만이 세상에 존재한다고 철석같이 믿는 사람들이 많구나, 그들에게 세상은 그저 자기 눈앞에 우연하게 전시되어 있던 일부의 존재들뿐이었음에도, 그게 그 사람들의 사고를 구성해 버렸고, 그 이상의 다른 생각은 시도조차 되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 그렇게 이 세상에는 싫은 것들이 차고 넘친다. 다들 너무 나르시스트들이다. 자기밖에 모른다. 자기가 모든 걸 다 보여주고 설명하고 해결하고 있으면서 "내 프라이버시는" 운운하고 "왜 저 인간은 저러고 사는지" 운운한다. 싫은 것들을 배양하는 무관심과 자아 과잉에 금방이라도 까무러칠 것 같은 혐오를 느낀다.
  • 돈이 없지는 않은데 쓰질 못하고 있다. 항상 현금이 조금씩 나갈 일이 생긴다. 주로 카드값을 막기 위한 것이다. 소니 넥스5 중고가 35만원으로 나온 게 있는데 충동구매 한번 못해보고 죽을 성싶다. 내가 자주 하는 말 '돈 많이 벌어 성공하면'이란 말에는, 사실은 돈에 대해 완전히 자유로워지면 이라는 의미가 깔려 있다. 그런 날이 안 올 성싶다. 아이고 주여
  • 보시다시피 학업이 가장 내 관심사 밖이다. (...) 그래도 금융경제학이나 국제정치경제학 같은 것은 꽤 유용하다. 논리학은 더 이상 이런 식으로 배우고 싶지 않다...
  • 떠오르는 생각들은 그때그때 많지만 일일이 적지 않으려고 한다. 어떤 생각들은 내면에서만 process되어야 한다.

  • 가장 최근에 듣는 노래는 6월 전국 모의고사 세트, 철이와 미애의 "너는 왜", 문명4 주제곡이라는 바바예투, '박명수의 어떤가요' 노래들, 삼성전자가 갤럭시 시리즈에 넣어놓는 Over the Horizon 시리즈 등이다. 난 이 음악들이 재미있다거나 우습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노래들은 네타성으로 소비되는 그 이상의 내재적 의미와 더 큰 시공간적 맥락이 확실히 있다고 느끼고, 실제로도 더 진지하게 듣게 된다.
    사실 엽기송이라고 통칭되는, 소리바다가 유효하던 시절 사람들이 주고받던 뻘한 리믹스 음악들 같은 것들이 다 그렇다. 음악 파일 제작 작업은 어쨌든 시간이 걸리고 어려운 일이다. 그걸 굳이 해낸 결과는, 아무리 우스꽝스럽고 네타성이 짙다 하더라도, 언제나 그 이상의 존재이다. 내가 열심히 그런 음악 파일들을 끌어모아 왔던 것은, 지금 가능한 설명 방식으로 설명하자면 언제나 그런 이유였다.
  • 굉장히 늦거나 아예 따라가질 못한다. 진격거를 3분도 안 봤다. Only My Railgun과 Sisters' Noise를 이제 받아 듣는다. 이제 좀 좋다고 느낀달까. 최근에 경동케이블이 방학 시즌을 맞아 얼마 전의 신작애니들을 무료로 풀었는데, 덕분에 바시소 2기를 다시 보며 누가 뭐래도 히메지가 모에한 캐릭터라는 것과 츠치야 코타가 의외로 매력있는 인물임을 새삼 깨닫는다. 마리아홀릭2기 와 이국미로의크로와제 는 교양필수고. 아무튼지간에 '최근', '최신' 이런건 예전에도 못따라잡았지만 지금은 더더욱 어렵다. 무엇보다, 그렇게 하려면 돈과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 컴퓨터 전문가 분야에는 트러블슈팅이라는 것이 있다. 문제의 해결이 핵심으로, 주요 관심사로는 크게 원인 찾기와 문제 없애기(또는 Plan B 만들기)의 두 가지가 있다. 무슨 프로그램을 쓰면 된다든가 레지스트리를 건드려야 한다든가 explorer 프로세스를 종료한 뒤에 새로 실행시켜준다든가 하는 것을 주로 연구하고, 근본적인 원리나 고차원적 스킬―바이오스 조작 등―에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없다.

    생각해 보면 나의 창작 활동은 트러블슈팅인 경우가 많았다. 해결해야 할 문제와 해명해야 할 의문 그리고 표현해야 할 재밌는 생각이 있었고, 그걸 어떻게든 해내는 과정으로서의 창작을 해 왔다. 백수의 하루는 플래시 애니메이션을 잘 하지 못해서 사인펜으로 공책에 그렸고, 인쇄용 폰트를 만들지 못해 직사각형의 조합으로 웹폰트를 대충 만들었었고 얼마 전에도 이런 문장들을 표현할 픽토그램이 필요하다는 것 같아서 그걸 어떻게 해낼 수 있는가 하는 트러블을 슈팅해 보려고 했었다.

    1. Fundraising should not be based on exploiting stereotypes.

    Most of us just get tired if all we see is sad pictures of what is happening in the world, instead of real changes.


    2. We want better information about what is going on in the world, in schools, in TV and media.

    We want to see more nuances. We want to know about positive developments in Africa and developing countries, not only about crises, poverty and AIDS. We need more attention on how western countries have a negative impact on developing countries.


    3. Media: Show respect.

    Media should become more ethical in their reporting. Would you print a photo of a starving white baby without permission? The same rules must apply when journalists are covering the rest of the world as it does when they are in their home country.


    4. Aid must be based on real needs, not “good” intentions.

    Aid is just one part of a bigger picture; we must have cooperation and investments, and change other structures that hold back development in poorer countries. Aid is not the only answer.

    [출처: 노르웨이에 난방기구를 원조하는 아프리카 단체 radi-aid]

    문장들을 보는 순간 '이걸 픽토그램으로 표현해야 하는 TTL 디자인팀도 고생이겠구나' 싶었다. 얼마나 민감하고 디테일한 의미 전달인가! 지금껏 보았던 명랑만화와 '이원복'류 교양만화들을 생각했다. 그들이라면 이걸 어떻게 그려낼까? 먼나라 이웃나라, 어릴 적 보았던 각종 학습만화 등에서의 만화적 표현들이 생각났고 그걸 좀 유용(流用)했다. 물론 세 번째와 네 번째에 대한 그림 표현은 좀 어렵긴 했다. 첫번째를 표현한 것 역시 사실 100점짜리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뭐, 디자이너 분들이 보시고 "내가 이거보단 더 잘하겠다"라는 자극을 받으면 그걸로 족하다 싶었다.

    그래 난 그걸 스캔해서 팀 드롭박스에 올려놓고 세상모르고 자는 동안 디자이너들은 그걸 보고 극찬을 했다고 하더라. 문제가 일거에 해결이 됐다고, 천재인 것 같다면서.

    난 절대 천재가 아니다. 그냥 트러블슈터일 뿐이지. 그리고 이번 일은 내가 유용할 수 있었던 몇 안 되는 재료와 스킬이 딱 적시에 크리를 터뜨려 준 희귀한 케이스일 뿐이다. 나는 내 스킬이 부족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기본적으로 넓지 못하다. 최소한만 하면 된다는 안이하고 무례한 자기과신 아래 오랫동안 남들이 갖은 고생 들여 쌓는 스킬을 가지고 제대로 된 설계와 구축을 하는 게 아니라, 문제가 있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할 줄 아는 것 몇 가지를 가지고 냉큼 해결해 버리는 것으로써 나의 역할을 몰래 어필하려는 속셈이 없잖아 있다. 예컨대 포토샵을 할 줄 모르는 채 paint.net이란 프로그램의 간단한 플러그인 가지고 눈속임을 하려는 것이다. 나도 스스로 알고 있다. 그렇다면 이것은 트러블슈팅이라기보다 차라리 자기 자리/밥그릇 지키기의 일환이라 해야 하며, 천재성 발휘 따위는 더더욱 아니다. (히트맨이라는 칭호는 혹시 여기에 어울릴까?) 다들 "어진이 니가 가진 것을 충분히 발휘하게 해주고 싶다"라고들 하는데, 가진 게 없어서 발휘할 것이 없다, 라고 말하면 무안을 주는 것밖에 안 되기 때문에 그저 무안하게 웃을 뿐이다.

    세상의 천재들에게 미안해지는 날이었다. 트러블슈팅. 그거 잘 하기 위해서라도 더 쌓아야 할 최소 스킬의 범위가 확장을 자극받고 있다는 느낌은 있다. 예를 들어, DSLR 카메라는 못 사더라도 국비지원 앱 개발 교육 같은 건 받아야 되지 않을까 싶다. 나에게 부족한 건 물자가 아니라 기술이라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 최근에는 서태지를 리뷰해보고 있다. 문화대통령은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울트라맨이야>는 그 예전에 뭣모르고 들었을 때보다 더 강한 곡이었다. 울트라맨은 일본의 슈퍼맨이다. 외국에도 서태지의 위치에 있는 존재가 나라마다 있을까? 저작권 개념 확립과 힙합, 뉴메탈의 국내 도입에 공헌했다는 그다. 그의 스타덤이 쇠해 가는 지금 우리는 누구에게 기대를 거는가? 그는 "솔직한 해답을 갖자 영웅이란 존잰 없어 이미 죽은 지 오래 영웅은 바로 너야"라며 바톤을 넘겨버렸다.

    ------------- 이상 13.06.07까지 -------------

  • 웹 애플리케이션 개발을 할 줄 알았으면 좋겠다(이젠 한층 더 진지한 이야기). tailer 홈페이지 때문에 php를 알아보다가 알게 됐는데 DB와 페이지가 어떻게 연동하는지만 알면 나머지는 다 함수와 알고리즘의 문제인 듯. 여기까진 허세고, 실제로는 폼메일 php 하나를 성공시키지 못해 끙끙 앓고 있는 코드맹 신세. ㅋㅋㅋㅋ
  • <사이비>를 봤다. 연상호 감독은 영화에 대한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 언짢음을 무릅쓰고 자신 역시 "교회를 다닌다"는 것을 밝혀 주었다. 그걸 알고 나서 본 터인지 더욱더 작품에 몰입할 수 있었고 이런 걸 만들어 개봉해 준 다다쇼에게 고마웠다. 저토록 리얼하게 혐오스럽고 패악한 아버지, 항상 기겁하는 어머니, 도망갈 길을 찾는 나약한 여자아이. 장로와 목사 캐릭터는 약간 덜 익었지만, 김민철 가족만큼은 제작진들이 알고 있는 이 땅의 가족들 그대로였다. 그리고 다다쇼 특유의 일그러진 표정은 전체를 추에서 미로 넘길 만큼 충분한 끔찍함을 보여줬다.
  • 원고 작성 관련 교육을 받는 중이다. 문장이나 착상 그 자체, 문장들의 구조적 긴밀도, 단락들이 있어야 할 이유, 글이 전체 매체에서 갖는 맥락과 '톤', 점점 시야를 확대하는 중이다. 잘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두세 번 생각하고 쓸 수 있는 글도 이 모양인데 즉흥적으로 인터뷰어가 묻는 질문에까지 말로 차분히 답해야 하는 인터뷰 같은 건 오죽할까? 시니어 피처의 역할을 못 하고 있다. 이러다 한 방에 훅 가지. 결국 이번주는 휴가를 받아 버렸다.
    사실 "just"에 대한 압박이 있다. 진짜배기 정기간행물을 만들게 되면 그땐 장타 안타 도루 가릴 것 없이 지면을 채우며 분초를 다투는 생활이 되겠지. 그걸 하기 전에 각자의 스윙으로 홈런을 한 번씩 쳐 보고 선수입장하자는 계산인데, 아직은 조금만 변화구가 들어와도 볼을 내 주는 상황이다. 이러다 포볼되면 아웃인데.
  • 안목의 문제. 취향이랄 만한 것을 가진 지 오래 되지 않았다. 그 좋다는 일본 애니메이션조차 고등학교 들어와서 PMP를 가진 뒤 차근차근, 그것도 처음엔 숫제 을뀨라는 네임드의 공신력에만 기대어 쌓아 왔던 것이니까. (따지고 보니 군대 빼면 기껏해야 7년!) 어찌 보면 나의 애니메이션 라이프 큐레이팅은 을뀨 님의 것이었다. 그 이후로 각종 괴작으로 빠지면서 이 지경이 됐지만. 애니가 이 정도니 연예계, 음주가무, 스포틱 아웃도어 따위에 조예가 있을 리가 없다. 큐레이터도 없었고 그런 것들을 알 이유나 의지도 없었다. 그쪽으로 엮어 써먹을 일이 있든 없든 일단 아는 것은 중요한데, 얕고 좁게 파 온 나날이다. 말씀, 상식, 메타논리 등을 가지고 호오양악을 이론적으로 분간하는 수밖에 없는 지금이다. 이제 와서 막 여기저기 들쑤신다고 알아질 것도 아닌 줄 알지만, 곱게 늙지 못한 이의 성마른 초조함 같은 것이 대책 없이 몰아칠 때가 있다.

  • ------ 이상 13.11.23까지, 이하 13.12.13부터 ------

    12월 첫 주부터 동네 학원 알바를 시작했다. 월~금 5시부터 10시까지, 주로 문제집 작업을 한다. 하루하루 언제 잘릴지 몰라 괜히 혼자 속으로 벌벌 떠는 나날이다(계약서까지 썼는데). 오전에는 좀있다 일하러 간다는 스트레스에 뭘 해도 손에 안 잡히고 오후에는 일하고 오고가고 쉬느라 다른 걸 손에 잡지 못하고 있다. 정말 되도 않는 변명이지만, 사실은 그래서 글이 안 풀린다. 1주 넘겨서 theveryepics를 썼는데 두 번 생각하던 것을 한 번 생각하고 허겁지겁 작업해 올렸더니 웬걸 당장에 형편없는 바이럴이 되돌아온다. 뭐 한번쯤 그럴 수도 있는거지 싶으면서도 속이 쓰리다. 이번에 확실히 배웠다. 어떤 일은 마감 늦는 것보다 질 낮은 것이 더 나쁠 수도 있다. 홈런이 불확실한데 승부수를 내야 한다면 차라리 데드볼을 맞아라. 적어도 에픽스 시리즈는 터진다는 확신이 있기 전까진 시작도 하지 말아야겠다. 뭐야 이 쓸데없는 장인정신
  • 진은진현(眞隱眞顯)이라는 말을 배웠다. 군자란 모름지기 치세에는 나서서 뜻을 펼치고 난세에는 숨어서 때를 기다린다더라. 그런데 누가 보아도 명백하게 지금은 난세다. 관상이 유행하고 고리대금업이 판을 치고 젊은이들이 맥이 없고 정치 경제 사회에 일말의 기강이 없달까 하여튼 국운이 기울 대로 기울어 있다. 그렇다면 지금의 군자는 숨어야 된다는 얘기가 되는데, 대체 뭘 어째야 하는 걸까. 하필 이런 시기에 마치 트위터 따위의 SNS가 우리를 구원할 것처럼 짹짹거리는데 말이다.
    태환어 크루[각주:1]가 간만에 모여 차이나팩토리에서 런치코스를 처묵처묵할 일이 있어 거기서 좀 거들먹거려 볼 셈으로 이 얘기를 꺼냈다가 뜻밖의 대답을 들었다. 소위 21세기의 진은이라 할 것이 있다면, 그저 남들 하는 일 똑같이 하며 숨죽여 지내는 것 아니겠느냐며. 같으면서도 다르다는 말을 하려다가 생각이 꼬여 말하지 못했다. 지금도 생각이 헷갈린다. 형가는 푸줏간에서 개를 잡았고 고점리는 축을 숨긴 채 일당 알바로 먹고살았다 한다. 백이와 숙제는 수양산에서 주려 죽었고 장량은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이 뭔가? 이게 진은인가? 그들의 시대로부터 좀 지난 때의 죽림칠현도 결과적으론 진은이 못 되었는데, 하물며 "요즘 시대에 그럼 진짜 산에 가서 숨어 사는 게 되겠냐"라던 친구 말이 생각난다. 글쎄? 그럼 요즘 시대에는 어디에 가야 숨어 사는 것인가?
    하여튼 지금이 몸을 사려야 할 난세라는 것 하나는 확실하다. 그러나 한 가지 더 확실한 것은 형가의 칼, 고점리의 축, 백이와 숙제의 군신지의는 그 숨어사는 삶 동안 낡아빠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시퍼렇게 팽팽해졌다는 것이다. 대체 뭣 때문에 사마천을 위시한 중국의 대학자들은 이딴 이야기를 굳이 기록해 놓았나? 대체 이게 지금 우리에게, 나에게 말하고 있는 게 뭔가? 고우영 십팔사략을 처음 읽었을 땐 그저 그림에 취해 훌훌 넘겼는데, 이번에 읽었을 땐 반고부터 시황제까지의 이야기가 얼마나 차원 높은 레토릭한가 하는 그것 때문에 나머지 대여섯 권의 그 잡졸한 역사가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애당초 난세 치세의 개념이 안 먹히는, 세(世)가 성립하지 않는 시절 아닌가! 일개 학원 알바생으로 웅크리고 있으면서 촛불집회 하나 못 나가보고 있는 나로서 생각이 몹시도 헷갈린다.
  • 액션펌프라는 것이 엎어질 위기에 있다. 생각을 좀 가다듬을 시간을 달라고 해야겠다.
  • 최근 또 한 가지 문득문득 떠오르는 화두가 바로 후삼국 시대다. 생각거리가 없어지거나 사람들의 정치 성향을 가만 지켜보다 보면 정말이지 없던 바퀴벌레 튀어나오듯 튀어나오는 생각이다. 꽤 예전에 자칭 레이니걸 이모 씨는 천상 백제 사람, 친한 형 김모 씨는 천상 신라 사람이라는 직관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 이후로 이 직관이 수시로 떫게 떠오른다.
    현대한국사에서 그다지 오랜 전통도 못 가진 그놈의 지역감정이라는 것은 왜 하필 전라도와 경상도로 나뉘었을까? 난 그것이 행정구역의 문제라고 보지 않는다. 그것은 훈요십조에서부터 내려오는 바 이것은 백제와 신라의 싸움이다. 나는 후삼국시대 자체를 믿지 않는데, 이렇다 할 역사적 근거는 전혀 없으며, 다만 지금의 한나라당-민주당 구도를 보며 저것이 다만 10세기 한반도에서 꼭같이 일어났던 것뿐은 아닐까, 그리고 당시 민초들의 눈에는 그게 나라 싸움으로 보였던 것뿐 아닐까, 뭐 그런 되도 않는 억측을 할 뿐이다.
    백제는 문화 감각이 있고 온순한 듯하면서도 할 땐 하는 기질이고 자기를 드러내기보다 자기의 성과로 인심을 사고 싶어한다. 신라는 무엇보다 자기 사람들과 좋게 좋게 가는 것에 최대 관심이 있으며 문화는 다소 떨어져도 풍요와 권력을 잘 다룬다. 고구려는 천하를 상대하겠다는 기백과 과감함이 큰 대신 가장 문화적으로 척박하며 경제적 여유나 싹싹함도 부족하다. 나는 내가 천상 탐라인이라고 생각하는데, 삼별초와 4.3의 섬 제주는 오래 전부터 나라 아닌 나라로 육지와 서먹한 관계를 애써 지속해온 귀양살이 섬이었다. 탐라는 육지 어디와도 근본적으로 시야가 다르고 언어가 남다르며 나름 자족할 줄 아는 대신 어리숙해 보이거나 고지식해 보인다. 그밖에도 삼국에 속하지 못한 사람들이 나는 있다고 보는데, 가야, 옥저, 동예 등이 그렇다. 이런 지역들은 오늘날 선거를 해 보면 항상 예측 불가 지역으로 뜨고, 역사를 살펴보자면 항상 이 나라였다 저 나라였다 하면서 심경 복잡하게 소속이 바뀌어 왔다.
    이 셋이 땅따먹기를 했을 때, 첫 판을 이긴 건 신라였고 다음 판을 이긴 건 고구려 내지 동예였다. 이게 7차 교육과정의 중고교 국사 과정이 내게 가르쳐 준 삼국이다. 한국 정치인의, 한국인의 정치적 입장의 대강은 백제 사람인가 신라 사람인가, 혹은 고구려 사람인가로 나뉘는 것 같다는, 내가 생각해도 비상식적인 통찰이 현재까지의 결론이다. 어떤가, 각각을 민주당계열, 자유당계열, 북한정권으로 보면 그건 이제 슬슬 유사 역사학의 수준인가?
  • (글이 너무 길어져서 문단을 자름.) 여튼 그래서, 후삼국은 거대양당 및 양대체제의 권력투쟁이라는 외형을 빌어 한반도에서 여전히 진행되고 있고, 그것은 애당초 후삼국이라는 시기 자체가 허구이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것이 그냥 내가 막연히 하고 있는 생각이다. 역사를 고증과 사고와 견학 없이 암기식으로 배우면 이렇게 된다. 모르겠다. 그저 이게 나만 하고 있는 생각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누군가가 저도 왠지 그런 생각이 얼핏 들었는데 부끄러워서 말 못하고 있었어요, 라고 알려주기만 한다면 기쁘겠다. 이 정도로도 충분히 만족이 될 만큼 황당무계한 생각을 요즘은 안 하고 사는데, 그나마 이런 것 정도? 이것마저도 정치놀음에 동원되는 것 같아 입맛이 쓰다. 그저 백제 신라 고구려 캐릭터를 잘 연성하여 한바탕 백합 놀음으로 만들 수 있으면 그게 이 망상의 가장 좋은 용도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역사가 갑자기 이렇게 들이닥치는 건 나로서는 곤란하기도 하니까.

  • ------ 이하 14.02.25부터 ------

    수많은 오지랖퍼들의 추태를 보면서 간단히 오지랖이 넓다고 말하고 끝날 만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관심의 방향의 왜곡이고, 이는 훨씬 심각한 문제일 수 있다. 우리는 아주 집요하게, 구조적으로, 다층적으로, 자의와 타의의 혼합 속에서 관심을 뒤트는 법을 터득하고 있다. "관심을 가지지 않아야 할 대상"과 "관심을 가져도 되는 대상"을 구별하거나 임의로 지정하고, 거기에 충실하게 행동하는 능력을 기르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바닥에 저렇게 더럽게 널브러져 쏟아진 팝콘과 콜라를 보고도 어쩌면 이렇게도 다들 태평하게 지나치는가? 거기가 영화관 복도이기 때문이다. 도대체 어떻게 생판 남인 사람을 향해 "연아야 고마워", "저 러시아감독 샹놈의 가이스키" 운운할 수 있는가? 하루 온종일 TV와 네이버 뉴스에서 그들에 대해 집중해서 들려주기 때문이다. 특정 집단이나 권력을 들먹이고 싶지 않다. 이것은 그냥 우리가 동경하는 모델하우스식(式) 현 사회의 실체인 것이다. 순진한 사람이라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장면들을 지나쳐야, 사양지심이 있다면 마땅히 적정한 타이밍에 입다물고 지나쳐야 할 일에 쓸데없이 한껏 나서야 ‘촌티’를 벗고 쿨하고 냉철한 현대인의 삶이 되는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우리가 가만히 있기를 참지 말자고 말하고 싶지만, 그건 쉽지 않다. 아직은 결론이 나지 않는다. 이걸 쓰고 있는 곳이 학원이라서 그런가 보다. (...)
  • 보그 1월호를 다시 읽어 봤다. 크리틱 기사가 있다는 걸 몰랐는데 다시 보니 역시 하향 조정된 수준의 비평들이었다. 성형 광고가 성행하는 이유는 비단 광고 심의 기준의 변경 때문만은 아니다. 성형 광고를 포함하여 온갖 보기 싫은 광고가 얼마나 성행하느냐는, 기실 그 광고를 소비하는 사회 구성원의 내면적 허영심이 얼마나 크냐에 따른다. 자본주의란 요컨대 이론화의 탈을 쓴 허영심이고, 그렇기에 필연적으로 항상 침체해 있을 수밖에 없다. 그 빌어먹을 간극은 결국 숱한 머리와 손이 체제에 복속하며 생산하는 좀더 자극적이고 정교한 생산된 아름다움들인데, 마케팅이라든가 브랜딩이라든가 제품디자인 같은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 것들이 바로 그것이다.


  1. 앞으로는 고태사 이환희 김어진 이 셋을 내 맘대로 약칭해서 태환어 크루라고 부르겠다. 여러분이 앞으로 이 이름을 기억해 두셔야 할 것이다. [본문으로]
Posted by 엽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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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explorer 설치기념 extrac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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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메뉴: A Butterfly by CRO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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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드 폴의 "평범한 사람" 가사 전문을 일본어로 번안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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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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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2013, Kohji Kumeta and Kodansha Inc.

해냈다 해냈어! 드디어 쿠메타가 컬러를 받아냈어! (...)


012


1화 번역 및 식자를 하고 있습니다. 다 되는 대로 이 글 지우고 다시 올립니다.


제목 및 주요 개념에서 せっかち를 '성마른'으로 번역하도록 주장하고 싶어 일단 올립니다.

(성마르다=참을성이 없고 성질이 조급하다. 게다가 "생제르맹"이라는 이름과 뭔가 비슷한 발음이어서 가장 적절한 번역어로 대응한다고 생각합니다. 제발 이게 표준으로 채택되기를 ㅎㅅㅎ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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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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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사당에서 상일이랑 도현형이랑 얘기했던 것을 시작으로 좀 개인메모.

크리에이티브에 있어서, 무엇이 좋은가?


  • 안목이 없는 사람에겐 단순한 재미, 안목이 있는 사람에게는 세부적인 재미.
  • 최소한의 교양. 세계와 사회와 역사와 원리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와 존중.
  • 겉멋과 '깔부림'으로 승부하지 않는 태도.
  • 정공법으로 승부하기. ←내 취향
  • 제작의도의 선량함과 충실성. 2차 목적이 없는 크리에이티브는 욕먹지는 않는다.
  • Fantasy. 허구성을 지적하는 것이 무의미해지도록 하는 설득력.
  • Reality. '그럴 만하다'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것들.
  • '네타'와 감상자에 대한 분명한 관심.
  • 써야 하는 순간에 적절한 스킬과 트릭을 쓰는 것.
  • "타이밍"의 깔끔한 분배.
  • 감상자들을 토끼몰이하지 않는 열린 메시지.
  • 동종업계에 대한 존중. 독단과 독보는 한끗차이.
  • 전체이용가 아니면 12세 이용가. 중간점 혹은 전체집합을 찾으려고 애쓴 결과들.
  • 분명히 드러나는 특정한 취향과 일관된 개성. 무색무취는 소구하지 못한다.
  • "~는 척"하지 않는 그림들. CG를 떡칠할수록 보기 싫어지는 이유.
  • 추가바람


Posted by 엽토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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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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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안녕? 엽토군 형이야.

잊을 만하면 이런 글을 써서 잘난 체하기 좋아하는 불쌍한 어른이지.

불쌍하니까 불쌍한 사람 얘기 좀 들어 줘.


형은 어제 오늘 어떤 청소년수련관의 진로박람회라는 곳에서 일했어.

하루 5만원 받고 9 to 6로 일했지.

어떤 국립과학관의 상담 부스에서 짐을 나르고, 여러분 같은 중고딩들을 자리에 앉히고,

출결과 상벌점에 반영되는 것 같던 '도장'이란 걸 찍어주는 일이었어.



정말 많은 친구들이 '도전! 나도 K팝스타', '△성SDS', '구강위생사', '수도방위사령부' 등 다양한 직업 및 진로 소개 부스를 돌아다니며 어디에서 도장을 받아야 할지 몰라 어려워하더라고.

물론 그건 단순히 "도장 4개까지는 벌점이고 5개부터 상점이다"라고 윽박지르던 여러분의 선생님들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더 크겠지만.

다들 고생했어.

그리고 여전히 여러분의 마음 속엔 진로가 결정되지 않았겠지.

대학생 멘토링도 해 보고 사회 각계 업종 현직 종사자들과의 1:1 상담 코너도 가 봤을 테지만 말이야.

형은 친구들의 표정을 봤어. 자기가 뭘 찾는지도 모른 채 뭔가 찾기는 찾는데 찾지 못해서 사방으로 흩어져 사라지는 그 힘없는 눈빛들. 그래서 치마라도 짧게 잘라 보고 귀에 뭐라도 달아 본 여러분의 겉모습들.


형도 고딩 때 ‘진로와 적성’이라는 과목이 제일 싫었어.

그게 왜 과목이고 일주일에 두 번 수업을 들어야 되는 건지 이해하지 못했어.

둘 중 한 타임은 아무도 좋아하지 않는 선생의 시간이었고 한 타임은 모두가 좋아하는 교목님의 시간이었지.

그야말로 “시험에도 안 나오는” 교과 내용과 실습들.

수많은 적성검사를 받으면서 코웃음쳤어.

이게 다 뭐람. 대학도 못 갔는데 업무니 적성이니 하는 게 다 무슨 소용이야.


그리고 그거 아니?

이 나이가 되어 보니까 느끼는 건데,

그때 형의 생각은 옳았어.

사람이 자기 적성을 살려서 살아갈 확률은 정말 극히 적어. 나도 그렇고 여러분도 그래.


그리고 형이 좀더 약을 팔아볼게.

형 말이 맞다 싶으면 카카오스토리나 페이스북에 퍼날라 줘.


첫째, 자기 적성을 살린 일을 하면서 살아간다고 치자. 그게 행복할까?

형은 지금 농담을 하자는 게 아니야.

여러분의 인생을 몇십 년 앞까지 시뮬레이션해 보자는 거야.


자, 여러분은 이제 마흔셋이 되었어. 월요일 아침 6시 40분에 알람을 끄겠지.

그 다음엔 “와, 오늘도 쩔어주는 아침이군, 내 적성에 딱 맞는 일을 하러 갈 시간이야! 퐈하하!”라고 웃으며 일어나겠지?

개뿔 그럴 리가 있냐? 월요일 아침 6시 40분에 어떤 사람이 웃으면서 일어날 수 있겠어?

그것도 가족의 생계가 달린 일을 시작하려고 일어나는 그 시간에?

그때 여러분은 문득 수십 년 전의 자기 자신의 꿈을 기억하게 되겠지.

이 일만 하고 살게 해 주면 밥 안 주고 돈 안 줘도 행복할 거라고 꿈꿨던 그 어린 시절 말이야.

그때 여러분의 감정은 무엇일까? 보람일까, 후회일까? 만족일까, 배반감일까?

후회는 몰라도 배반감은 크지 않을까?

‘너 지금 이 일이 싫다는 거야?’라고 자문하며 스스로에게 화를 내게 되지 않을까?


형이 말하고 싶은 것의 핵심은 이거야.

어쩌면 “적성” 개념이란 허구일지도 모른다는 거지.

있지도 않은 ‘적성’이라는 것이 사람마다 딱 꼬집어서 존재한다는 그런 개념 자체가 공갈일 수도 있다는 말이야.


솔직히 사람 전자제품이 아니잖아. 어떤 용도에 최적화해서 생산할 수가 없어.

설령 그 적성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하더라도, 모두가 그 적성에 맞게 살아간다는 건 불가능, 불필요 혹은 비윤리에 가까워.

최근의 인사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적성과 인성은 기본적으로 유전이라고 해.

그렇다면 지난 수백 년간 ‘가업’을 이어 왔던 옛날 사람들의 전통은 바보짓이 아니었다는 거야.

게다가 “적성”이 하나의 의무적인 생계 수단으로 전환되어 자발성과 자아실현성을 상실할 때,

적성의 허구성은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날 것이란 말이지.

“어떻게 내가 이 일을 지겨워하게 됐지? 나는 이거 말곤 할 줄 아는 게 없는데 그럼 이제 어떡하지?”

이런 생각에 이르러 멘붕에 빠지고 갑자기 사표 쓰는 어른들이 없을 것 같니?


둘째, 자기 적성과 전혀 안 맞는 일로 먹고산다고 치자. 그게 왜 불행할까?


너네 프란츠 카프카라는 소설가 아냐?

어떤 사람이 자고 일어났더니 거대 벌레 괴물이 되어 버려서 가족한테 버림받았더라는 소설을 써서 현대 소설계의 10대 유명 작가가 된 사람이야.

이 사람이 평소 직업이 뭐였는지 아니?

우체국 직원이었어.

상대성이론 만들어낸 아인슈타인은 특허청에서 꼬붕으로 일했고 스피노자라는 철학자는 안경 가게에서 유리 깎아서 안경알 만들던 사람이었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알겠니?

한 사람의 탁월성이 결코 직업을 통해서만 실현되는 것은 아니다 이거야.

오히려 고도화, 분업화, 파편화, 단순화된 현대 산업 노동 사회에서는 직업 외의 생활 요소가 자아 실현의 결정적 장소가 될 확률이 높고, 시대를 앞서갔던 사람들은 이미 그렇게 살았더라는 거야.


그리고 어쩌면 그게 정답인지도 몰라.

일이라는 건 어원상 ‘하기 싫은데 해야 하는 것’이거든.

적성이라는 건 ‘이 사람이 하기만 하면 제일 잘 할 수 있는 것’이고 말이지.

그렇다면, 일에 적성을 살린다는 건 ‘하기 싫은 것을 꼭 해야 한다고 하니까 자기가 제일 잘 하는 방법으로 하는 것’이 된단 말이야.

전혀 낭만적이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잖아.

차라리 이런 게 어떠냐는 거야.

“하기 싫은데 해야 하는 것은 어떻게든 후딱 해치우고, 남는 시간에 제일 잘 하는 걸 하고 싶은 방식대로 하기”.

이게 우리가 살고 싶은 인생 아닐까?


그래서 형이 하는 말인데,

차라리 진로 선택을 그냥 아무거나 해 버리자는 거야.

어른들의 기대를 맛깔나게 저버리는 거지.

‘다 돈 때문에 하는 거지’를 외치면서 그냥 아무거나 닥치는 대로 결정해서 일단 먹고사는 거야.

서해에 있는 대교(大橋) 관리소에서 일하면 뭐 어때? 군바리가 되면 뭐 어때? 노가다를 하면 뭐 어때? 어차피 직업으로 할 일이라면 ‘정말 지겨워 죽지 않을 만한 걸로’ 아무거나 골라서 대충 하고,

일 자체 대신에 일과 여가의 틈새 이곳저곳에서 너의 적성과 성격과 취향을 드러내면서 살 수 있다면, 그게 대체 뭐가 나빠?


이제부터 여러분의 진로 적성 고민 해결법을 말해 줄게.

꿈이 없다고 말해.

그 꿈이 이루어져 버리고 나면 곤란하니까 일부러 꿈을 안 꾼다고 대답해.

가족 먹여 살릴 수 있고 한 달에 7일 이상 놀 수 있는 직업이면 아무거나 할 거라고 얘기해.

어차피 일이란 건 내 소질 같은 거랑 상관없는 거니까 진짜 “일 같은 일”을 골라서 빡세게 일하고,

일 안 할 때는 완전히 내 맘대로 살 거라고 말씀드려.

어른들은 아마 기가 막혀서 ‘너 생각이 있는 거니?’라고 역정내실 거야.

웃으면서 대답해. “아 그럼요, 이게 21세기를 즐기는 방법이거든요, 전 산업역군[각주:1]이 될 생각은 없어요.”


절대 자포자기하라는 말이 아니야!

실제로 일을 찾아야 해, 그리고 열심히 일해야 해!

하지만 그 일이 꿈을 이루거나 소질을 살리는 것이어야만 할 필요는 없다는 게 중요해!

왜? 불가능하거나 불필요하거나 비윤리적이니까!


이 얘기만 하고 그만할게.

형은 고등학교 수학을 풍산자라는 책으로 했어.

짱이지. 바람산 선생님은 수포자가 될 뻔했던 형을 곁에서 응원해 줬고, 형은 그 책을 리뷰한 글로 이벤트에 응모해서 PMP를 선물받았었어.

그 책에서 풍산자 님은 말씀하셨지.

“벗들에게 한 가지 제안. 꿈이 없는 벗들은 선형 계획만 열나게 파라. 선형 계획만 잘 해도 밥 먹고 살 수 있다. 대학교는 산업공학과.”

선형 계획은 정말 재미없는 부등식 계산이야.

근데 풍산자님은 (한 번도 하지 않던 ‘제안’이란 걸 하셨다는 점에서) 진지하게 제안하셨어.

이걸 열나게 해라.

이거만 해도 밥 먹고 살 수 있다.

그거 아냐? 산업공학과라는 전공은 지방 전문대에 있거나 서울대에 있어.

꿈이 없는 친구가 정말 선형 계획만 열나게 해서 밥 먹고 살려고 해도, 서울대라는 도전 과제가 있더라는 거지.

풍산자 님은 꿈 없이 대충 살 수 있는 법을 제안하신 게 아니야. 우리가 실제로는 꿈이 없다는 걸 일깨워주신 거야. 그리고 그게 나쁜 게 아니니까, 차라리 선형 계획 같은 거라도 열나게 해 보면 어떠냐고, 형이 위에서 제안한 것과 비슷한 제안을 해 주셨던 거야. 이게 고1때의 형에게 얼마나 큰 가르침과 위로가 됐는지 몰라. 수학책이 줄 수 있는 최고의 통찰이 아닐까?


진로나 직업에 대해 너무 걱정하지 마.

살아 있는 사람은 입에 거미줄을 치지 않아. 때 되면 다 하게 되어 있어.

세상엔 여러분 같은 사람들이 많아. 다들 비슷비슷하게 먹고살게 되어 있거든? 너무 걱정하지 마.

그렇잖아도 생존을 위해 모든 걸 내던져 노동해야 하는 이 인간소외의 시장주의 사회에서 생계 해결과 자아 실현을 한번에 다 해내는 것만이 행복이라고 공갈 협박하는 이 사회의 패러다임 앞에, 웃으면서, 보란 듯이 일할때 팍 일하고 쉴때 푹 쉬면서 살면 될 뿐이야.






P.S.

Re: 

가장 큰 문제는 '꿈', '적성', '성취'와 같은 단어는(혹은 개념은)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 정상임에도 불구하고, 사회 혹은 시대의 수요를 섣불리 대입시키는데 있다고 봐요 당장 서점가서 '꿈을 이룬 사람들'에 대한 책을 살펴보면, 스티브 잡스같은 대기업 CEO라든가, 국내에서 공부한 끝에 스탠퍼드, 하버드 같은 명문대에 합격한 학생의 이야기라든가(솔직히 어릴 때부터 그래 이 사람이 뭔가 이룬 것은 알겠는데, '성공 신화'로까지 미화될 만한 것인지 정말 의문이었습니다.. 당장 세계적 수준의 명문대라고 해도 다니는 학생 수만 만단위인데다가, 입학 자체로 보장될 수 있는 것은 그 무엇도 없으니까요)..그야말로 뻔한 성공의 자화상만 가득한 것이 현실이죠 밥을 굶어 가며 등단한 시인의 시집을 찬양할 망정, 진심으로 그의 일생을 동경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또.. 실제로 적성을 살려 직업을 구하는 사람은 흔치 않습니다 본인이 '가장 잘 하는 것'이 실제 직업 상황에서도 '특출난'재능인지는 부딪혀 봐야 아는 것이고, 실제로 그렇다고 하더라도 '잘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은 엄연히 다른 범주니까요.. 될 수 있으면 '하고 싶은 일'을 찾아 갈 수 있도록 무한한 기회를 제공하는 사회가 바람직한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또, 설령 해당 분야에서 실패했다고 하더라도 빠르게 재기할 수 있도록 돕는 것, 나아가 지극히 이상적인 발상으로 비춰질 수 있겠습니다만.. 직업적 여건이 갖춰지지 않은 상황 속에서도 최소한의 생계는 해결할 수 있는 사회 구조가 갖춰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연금 제도의 확장이라고 할까요? 그런 여건이 갖춰진다면, 최소한 입에 풀칠할 일이 걱정되서 꿈을 놓아버리는 사례는 많이 줄지 않을까 싶어요 '입에 풀칠한다'는 말의 정의가 실제로는 단순히 생계만을 놓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면 또 다른 문제가 되겠지만요. 자원 분배의 문제가 효율적으로 해결된다면 그저 이상론에 그칠 담론만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인류 전체에 진정한 풍요를 가져올 가능성이 높은 제안이라는 점에서 시도할 가치도 있어 보이구요.


  1. 산업역군 패러다임에 대해 간단히만 설명해 줄게. 압축적 고도성장이라는 방식밖에 못 겪어본 한국 사회에서 특히 심한 집단 고정관념 중에 '산업화에 대한 강박'이 있어. 번듯한 직장에서 연봉을 받아 사회에 쓸모있는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지. 60~70년대에는 “중고교에서 소양을 갖추고 대학에 가서 고급 인력으로 전환되어 직장에서 후임자로서의 최고 생산성을 달성하고 사회에 기여할 사람들”이 아주아주 많이 필요했어. 그런 사람들을 산업역군이라고 불렀지. 오직 이 사람들이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냈으며, 그러므로 이런 인생이 우리가 살아야 할 삶이고, 그렇기 때문에 닭장 같은 공장이나 무섭게 도외시되는 농어촌에서 묵묵히 노동하는 사람들은 뒤떨어졌거나 능력이 없는 것이라는 아주 반사회적이고 싸가지없고 역사의존적인 집단의식이 생겨났지. 그리고 더 이상 회사에 가는 것이 사회에의 기여도 되지 않고 자아 실현도 안 되고 집안 자랑거리도 안 되고 고도성장을 가져다주지도 않는 이 시대에까지도 먹혀들어가는 사고방식이 바로 이 산업역군 패러다임이야. 여기서 이 패러다임을 결정적으로 시중들고 있는 것이 ‘소질’, ‘적성’ 개념이라는 게 형의 생각이야. 요즘의 대다수 직업적성검사가 단순노무를 결과로 추천해주지 않고 대신 3차 직종 위주로 추천해 준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야. 그건 어쩌면 1만 가지 이상의 직업만큼이나 다양할 것 같고 또 그래야만 하는 ‘인간 적성’이라는 것이 사실은 그렇게까지 면밀하게 분석되어 제안될 필요가 없이 그저 21세기형 산업역군 양산에 수단적으로 동원만 되면 되기 때문에 잔존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거야. 이해 안 되지? 미안.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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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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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ial Unicode MS

2013. 10. 11. 12:18

와 내가 이거 알아낸다고 오만 삽질을 다 했네... 시간이 아까워서 올린다.


유튜브 동영상 중에는 한국어 자막을 지원하는 비디오들이 있습니다. TED가 대표적이고, 유명 기업체가 전세계적인 프로모션을 위해 만드는 영상의 경우 Closed Caption이 지원되기도 합니다.

거기서 볼 수 있는 그 특유의 글씨체는 무슨 폰트일까?



Google Drive의 문서 기능 중에는 PDF 만들기가 있습니다. 파일 > 다른 이름으로 다운로드 > PDF를 선택하면 되지요. 그런데 이렇게 할 경우, 편집기에서는 시스템 폰트(굴림 등)로 나오던 한글이 PDF에서는 갑자기 웬 괴상한 고딕체로 나오게 됩니다.

이 글씨는 대체 무슨 폰트일까?



잊을 만하면 보게 되는 저 끝없이 못생긴 괴짜 고딕!

대체 뭘까? SM고딕인가? 근데 SM고딕도 못생기긴 했지만 자꾸 보다 보니 뭔가 그래도 이 정도로 조악하고 난잡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문체부 돋움이나 아니면 다른 옛날 고딕폰트, 북한 폰트인가? 역시 아닙니다.

Adobe std gothic을 가장 유력하게 의심했지만, 이 폰트는 bold(굵게)말고는 없다고 하네요.


그럼 대체 뭘까? 답은 의외로 쉽게 찾았습니다. 구글 문서도구가 변환해 준 PDF의 속성에서 사용된 글꼴 목록을 보니 한번에 알 수 있었습니다. (그때의 허탈함이란.)

그건 바로 Arial Unicode MS였습니다.


폰트명에서 알 수 있듯이 기계적으로나마 모든 언어를 지원하기 때문에 Google docs의 PDF 변환이나 YouTube의 자막 등에서 빈번히 볼 수 있습니다.

이미 여러분의 컴퓨터에 설치돼 있을 확률이 높고, 경우에 따라서는 한글 입력시 선택할 수 없는 서체일 수도 있습니다(한글 스크립트 설정 삽입이 안 돼 있는 것 같습니다).


다운로드 링크는 따로 제공해 드리지 않습니다. arial unicode ms download라고 아무 데서나 검색하시면 되기 때문이죠.

근데 자꾸 보다 보니 이 특유의 조악한 무작위성이 또 재미있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특히 '있' 같은 글자는 참 우습습니다. 거짓된 / 번역된 / 출처가 불분명한 / 시스템이 자동으로 만들어낸... 등등의 느낌을 줘야 할 때 쓰면 좋은 타입페이스인 것 같습니다. 이 서체는 희한하게 어느 언어 사용자가 사용하더라도 못생겼다고 느끼는 모양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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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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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캠워나 together집회 등에서 자꾸 홍보하길래 뭘까 하다가 결국 충동적으로 압구정CGV에 가서 봤습니다. 15시 20분에 맞춰서 못 가면 강남 구경이나 하다가 19시 표 보고 집에 가야지... 했는데 어쩜 그렇게 칼같이 15시 17분에 티켓박스로 갈 수 있었는지!


- 이 영화는 아무래도 리뷰가 부족할 터이니 잡설 빼고 바로 본론부터 들어가겠습니다.



일단 다큐멘터리 형식을 취하고 있는 이 영화는, 엔터테인먼트는 거의 포기하고, 대신 남북 분단과 통일을 어떤 관점으로 봐야 하는지에 대한 introduction을 숨가쁘게 진행합니다. 토마스 선교사 덕분에 한국과 인연이 있게 된 영국 웨일즈에 잠깐 다녀오고, 판문점과 칠골교회를 잠깐 방문하고, 가명(이게 기억이 안 나는데;;;)을 주고 얼굴까지 숨겨 가면서 탈북자 기자를 찾아가 '고난의 행군' 시기에 대한 인터뷰를 받아냅니다. 물론 타임라인 상에서만 그렇다는 이야기지 각각이 사실은 상당히 긴 여정이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감독은 그 여정 하나하나를 일일이 다 소개하기를 포기하고 자료화면과 인터뷰 형태의 강의에 더 집중합니다.



- "교회사를 배워 보니 '십자가의 역사'와 '십자군의 역사'가 있더라." 감독은 인터뷰에서 그렇게 말합니다. 그리고 영화는 두 역사가 한반도라고 하는 오만가지 정치사회 갈등의 첨단에서 극적으로 마주친다고 말하고 있지요. 분단 이전에는 오히려 복음에 있어 먼저 되었고, 분단 이후 주체사상 아래 고난을 겪으며 초대 교회처럼 '주여 속히 오시옵소서'의 기도만 반복한다는 남아 있는 신앙인들의 북녘. 그리고 북녘 신앙 선배들의 덕과 국제 정세의 가호 아래 풍요는 얻었지만 그 결과 "어쩜 그렇게 탁월하게 두 주인을 섬기게 됐는지" 알 수 없는 남녘. 이제 북한의 문호는 열리고, 남한의 신앙도 탈북민들을 사랑으로 품는 동안 개혁될 텐데, 그렇게 되면 인류 복음화 역사도 걷잡을 수 없게 될 텐데, "너희는 준비가 되었니?"



- 압구정CGV같은 세속적인(?) 스크린으로 예배당에서나 뵙던 분들을 만나보는 것은 매우 큰 즐거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솔직하게 말하죠. 네, 이색적이고 유쾌한 경험이었습니다. 대천덕 신부님과 고형원 목사님을 고화질 대화면으로 접한 것은 좋았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 영화의 한계부터 말해 볼까요. '통일한국을 준비하라'라는 메시지는 명확하지만, 사실 그것을 위해 실무적으로 필요한 것들(기구나 체제, 국가 상징 등의 결정, 통일 과정과 방법 등)은 거의 다뤄지지 않고 있고, 오히려 남한 위주의 흡수통일론을 암암리에 깔고 가는 느낌을 줍니다. "(탈북자) 2만 명도 품지 못하는데 어떻게 2천만을 품겠어요?" 그리고 이것은 국제 정세를 조금이라도 객관적으로 보는 사람들에게라면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낡았거나 안일해서 곤란한 패러다임인 것이 분명합니다. 막판에 결국 "백 투 예루살렘"[각주:1]까지 언급되면서 번복할 수 없게 된 바, 영화는 단지 남북통일을 구원사적 관점으로만 보아줄 것을 요청함으로써, 통일에 대한 보편적 이해와 공감을 끌어내기를 그만두고 있습니다. 대다수의 기존 리뷰들이 '비기독교인은 끝까지 보기 힘들 것'이라고 말하는 이유, "남한 선교단체들 자꾸 사워요(싸워요)"라는 증언이 등장하는 이유 둘 다 여기에 있고요.



- 그럼에도 이 영화는 볼 가치가 있습니다. 특히 대한민국에서 기독교인 노릇 할 마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전부 다 극장으로 달려가서 봐야 합니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 첫째, 이 정도 역사인식과 사회의식은 가져 주셔야 한다는 겁니다. 사실 초반의 신사참배 부분은 저도 처음 듣고 놀란 대목이었습니다. "신사참배는 국가의식이요 종교의식이 아닌 것으로 한다". 그것에 대해 인터뷰이들은 칼같이 단정합니다. "곧 올 하나님의 나라를 못 보고 잠깐의 고난에 그렇게 굴해 버린 거예요." 이것은 한국교회의 쓰라린 회개거리가 아닌가? 그렇지만 솔직히 이때까지 저는 이런 내용을 어디서도 들어 본 적이 없고, 이런 역사가 한국 교회사와 선교 역사의 중요한 과실(過失)로 남아 있다면, 정확하게 알고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하는 것 아닌가 이 말이죠.

- 한기총과 대형교회에 대한 비판도 마찬가지입니다. 불과 10분 전까지만 하더라도 북한 지하교회 예배 현장을 몰래몰래 촬영한 footage를 보여주다가 남한 일간지들의 교회 파행 보도 지면들을 보면 낯부끄럽기 짝이 없게 됩니다. 대단히 정당한 비판 논지가 아닐 수 없지요. 왜 너희들의 신앙에는 고난은 없고 세습이니 확장이니 하는 것만 있느냐? 북한의 신앙 동지들 보기 부끄럽지도 않으냐? 영화의 인터뷰이들이 내고 있는 이 정도의 혼쭐은 다들 한 번쯤 맞아야 합니다. 그래야 이 지나치게 편리해진 신앙 생활에 진짜 힘이 생기고, 우리의 행실이 하나님 나라 역사에 가담하게 될 겁니다.

- 둘째,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는 남한에서 '풍요에의 경쟁'을 신앙의 고난인 줄 알고 열심히 싸워 온 '사모님들'과 '사장님들'에게, 혹은 "북괴=사탄"의 공식밖에 모르는 분들께 보여드려야 할 좋은 영화로 남게 된 것입니다. 일요일에 교회 지하주차장에서 차 꺼내 큰길로 나오자마자 택시기사에게 욕을 하고, 집에 돌아와서는 굳이 일요일에 인터넷으로 대형마트 홈배달 서비스를 부려먹는 무슨 캐슬 무슨 뷰 무슨 하이츠 주민 어른들은 이 영화를 보며 불편함을 감추지 못할 겁니다. 그리고 북괴에 대한 무한한 증오심으로 불타는 무슨 전우회 무슨 향우회 분들의 잘못된 복음주의(자유자본주의=자유민주주의=하나님의 뜻=복음=교회=천국) 역시 이 영화는 조금도 옹호하지 않고 선교와 사랑과 연합에 대한 관심을 촉구합니다.

- 그리고 사실 그것은 여의도의 큰 교회나 강남의 큰 교회가 지금껏 열심히 디자인해 온 바 '교회 다니는 집안 사람'의 '성공상' 혹은 '바람직한 이념'으로 악랄하게 제시되어 왔습니다. 그렇기에 초대 교회는 고사하고 우리 동포들조차 생각지 않는, 주님께서 자기 사업과 자기 자녀와 자기 주식과 부동산에 복 주시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없으신 분인 양 믿는, 미국이 최고고 북한은 돌로 쳐야 할 주적이니 북한과 사회주의에 조금이라도 수긍하는 사람들은 전부 이단 사이비인 줄로 믿는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정치가 어떻고 통일이 어떻고 따위 생각도 하기 싫은, 그래서 "원수를 사랑하라" 같은 말씀은 죽었다 깨나도 절대 이해하지 못하는, 그래서 대신 자기방어 주문처럼 "여호와는 나의 목자"와 "근신하라 깨어라 마귀가 삼킬 자를 찾나니"만 염불처럼 외고 다니는 분들이 사실은 정말 많단 말입니다. 이 영화는 그런 분들에게 가장 뜨거운 머리 위 숯불이 될 것입니다. 그런 분들을 억지로라도 권해서 상영관에 앉히는 것이 이 영화의 가치를 최대로 끌어올리는 사역이 된다, 저는 그렇게 봅니다. 물론 평생을 그렇게 살아오신 분들의 사고가 90분도 채 안 되는 영화 한 편 때문에 하루아침에 바뀔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 열심히 쓰고 보니 정작 줄거리를 자세하게 쓰려고 했던 시도는 실패했군요. 하지만 제가 본 것은 거의 대부분 적었습니다(항상 그랬듯). 직찍을 좀더 많이 하고 싶었는데, 의외로 관객이 많아서 실패했습니다! (자랑이냐...)


-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에게는 별점 다섯 개 만점에 두 개 반. 시간이 정말 많고 다양한 관점을 수용할 자세가 충분히 돼 있다고 생각하신다면 자기 자신을 테스트해 보기에 알맞은 영화가 됩니다. 보고 나면 아마 주변의 기독교인들에게 일침을 놔줄 수 있는 레벨이 될 겁니다. 그리고 NL이신 분들은 보지 마세요. 굉장히 굴욕적인 기분이 들 겁니다.

- 기독교인에게는 별점 다섯 개 만점에 다섯 개. 당장 가서 보세요. 생각나는 모든 성도님들을 다 초청해서 극장에 가세요. 불법 파일 다운받아 볼 생각 하지 마시고 네이버 영화나 다음 영화에서 검색해서 상영관을 찾으시고, 들리는 것과 보이는 것들을 가슴 속에 꽉꽉 담아 오세요. 우리의 믿음은 고작 칠십 평생 적당한 집 적당한 차 적당한 직장 적당히 누리다가 천국 가려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우리의 역사는 고작 그런 적당한 삶을 유지하기 위해 흑백으로 쫙 찢어서 바라봐야 할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오히려, 지금은 다급하게나마 준비를 해야 할 때라는 말이지요.


- 이번 리뷰는 도움이 되었으려나 모르겠네요.

  1. 세계 선교에 대해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간단히 설명해 드리죠. 놀라지 마세요. 정말 많은 선교단체들이 '북한, 중국, 서남아시아와 중앙아시아, 무슬림들의 중동을 거쳐 예루살렘'의 순서로 십자가 복음을 전해야 예수님 재림하신다고 믿고 있습니다. 정말입니다. 이 기획을 백 투 예루살렘이라 부릅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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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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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가만히 보고만 있기엔 이 꼴불견은 너무 심하다.

http://www.seednovel.com/pb/module/board/list.php?code=writerfree



지금부터 쓴소리 들어간다. 정론만 말해줄 테니까 똑바로 앉아서 들어.


1. 니들의 "설정"에 독자는 관심이 없다. 이것은 사실이다. (좀 어려운 말이지만 지나가는 말로 해 주자면,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독자들이 설정 생각 안 하고 재밌는 이야기 재밌게 읽다가 언제부턴가 그 설정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마는 것이 니들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만렙 굇수들은 어떤 꼬락서니의 설정을 가지고도 이 목표를 달성할 줄 아는데, 이런 분들은 보통 애니메이션이나 예능프로의 제작감독이라는 일을 해서 먹고산다.) 독자가 관심있어하는 건 어떤 캐릭터가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반응하는지, 그게 얼마나 그럴 법한지그 둘뿐이다. 이론의 여지가 없는 이 지극히 당연한 사실 하나를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놈들이 무슨 글을 써서 독자의 관심을 끌겠다는 건지 모르겠다. 게다가 이 두 평가기준은, 못 믿겠지만, 자가진단이 가능한 기준들이다. 안 물어봐도 된단 말이다! 못 믿겠다고? 평가받고 싶은 글을 열심히 써 놓은 다음 서랍에 넣어 놓고 딱 27일 뒤에 꺼내서 다시 봐라. 내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게 될 거다.


2. 니들의 "설정"이라는 게 정말 창의적인 건 한 개도 없고 사실은 니들이 며칠 전, 몇 달 전에 보았던 기존 작품에서 다 어렴풋하게 짜깁기해 온 것이라는 걸 제발 좀 인정했으면 좋겠다. 증거가 뭐냐고? 너네들이 설정을 설명하는 걸 들어 보면 알 수 있다. 어쩜 그렇게 다들 하나같이 모두가 다 알고 있는 것을 자기 방식으로 다시 말하는 것처럼 말하는지! 장님이 코끼리를 만져 보고 설명하는 것처럼 더듬더듬 지엽적이나마 구체적이고 물적 사실감이 느껴지는 설정 설명은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다. 그저 "You know what I'm saying"이 행간마다 꾸역꾸역 삽입되어 읽힐 뿐이다.

아무것도 참고하지 말라는 말이 절대로 아니다. 너의 상상력이 그 정도라는 걸 인정하라는 소리다. 철저하게 독자적인 세계 설정은 불가능하다는 거 모르는 사람 없고, 그거 가지고 작가를 뭇매놓을 독자도 없다.


3. 니들은 "설정"결정론자들인 것처럼 보인다. ㅆㅂ 내 글이 안 팔리는 건 설정이 ㅄ같아서야! 라고 생각하고 그놈의 설정이란 걸 고치고 바꾸고 뒤집고 짜깁고 베끼고 자위하며 언젠가 완벽하고 흠결 없이 재미를 보장해주는 평행세계를 구축하고 싶은 모양이다. 그딴 거 없어 미친놈들아. 오백 번에 한 번 정도 있는 특수 케이스가 아니라면, 설정은 재미의 본질을 조금도 배가해 주지 않는다. 대부분의 대히트 게임들이 중력 알고리즘이나 몹 캐릭터 따위에 설정을 거의 부여하지 않다. 이유가 뭔지 모르지? 게이머들이 찾는 재미는 중력이나 몹 따위에 있지 않아서거든!


4. 다시 말하지만 독자들이 기대하는 것은 캐릭터의 고유한 판단과 움직임(이걸 '인물'이라 부른다), 그리고 캐릭터의 판단과 움직임이 납득 가능하다는 일말의 개연성(이걸 '줄거리'라 부른다), 크게 그 두 가지다. 따라서 설정이 아무리 황당하더라도 그 두 가지를 깨끗하게 풀고 가기만 하면 '작가 특유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수작으로 칭송받는 것이고, 설정이 아무리 구체적이고 세세하더라도 그 두 가지를 잡는 데 실패한다면 '설정만 많고 이야기와 캐릭터가 빈곤한' 나쁜 사례로 전락한다 이 말이다.


5. "완벽했기 때문에 걸작이 되는 것이 아니다. 결함과 문제점과 비합리가 있음에도, 그 모든 부족함을 압도하는 설득력이 있었기 때문에 걸작이 되는 것이다."

어디서 주워들은 말인데, 누가 한 말인지는 찾을 수 없었지만 여튼 이 말은 백번 옳다. 니들의 설정이 완벽하길 바랄 시간이 있으면 설정을 개발하는 게 아니라 캐릭터에게 리얼함을 더 부여해라.


6. 이런 식이다. 너라면 니가 만든 설정 세계에서 살고 싶냐? 솔직히 너는 살기 싫다고? 그럼 너의 설정은 이미 ㅈ나 틀려먹었다. 밑바닥부터 다시 해라. 너라면 니가 만든 설정 세계에서 살 때 어떻게 살아갈/행동할 것 같냐? 너는 그렇게 살 거면서 왜 니가 만들어낸 애들은 그렇게 안 살고 꼭 그렇게 힘들게 사냐/행동하냐? 지금 후달리면 넌 망한 거다. 변명 지어내지 말고 0부터 다시 해라. 가차없이 다 둘러엎어 치우고 처음부터 말이다. 너의 공상이란 결국 그렇게 니 생각보다 백배 천배 허황되고 유치하고 빈곤하기 때문이다.


7. 그런 식으로 하면 자유로운 설정 창작이 가로막힌다고? ㅅㅂ 내가 지금 니네들보고 설정 창작 하지 말라고 했냐? 쌩기초에 해당하는 자문자답부터 해 보라고 했지. 그거 하나 제대로 못 하면서 돈 주고, 혹은 연재란을 클릭해서 없는 시간 쪼개어 글을 읽으며 일말의 재미나 모에캐를 찾으려고 애쓰는 독자를 현혹할 수 있겠냐 이 말이지. 난 허황되지 말라고 말하고 있는 게 아니다. 허황될 거면 설득력 있게, 밀도 있게, 자신 있게 허황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절대 다수의 니네들은 그 정도 경지까지는 못 간다. 그러니까 허황된 설정 몇 개 깔아 독자를 후리겠다는 얄팍한 개수작일랑 집어치우고 기본기부터 갖춰 오라 이 말이다. 독자를 물로 보냐?


8. 제발 부탁이니 어디 가서 배경 설정 성의없이 주워다 누벼 넣지 마라. 학원도시. 마법세계. 특수목적고등학교. 알고리즘 구축도 안 끝난 프로그램에 이런 화려한 쉘부터 갖다 씌우는 이유는 대체 뭐냐? 장담하는데 그런 배경 다 지워 놔도 너의 그 단순한 용가리통뼈 서사 골격은 충분히 성립 가능하다. 이야기의 본질과 궁극적인 접점이 없는 타 작품 배경 설정을 좀 있어보인다고, 유행이라고, 남이 쓴 거면 나도 쓸 수 있겠다는 심산으로 막 갖다 씌우지 마라. 독서실에 벅스뮤직 힙합차트 틀어놓는 짓과 하등 다를 바 없어서, 아무도 그딴 건 반기지 않는다.


9. 캐릭터 만들면서 설정놀음 하는 거 아니다. 인간이라면 인간에 대한 예의를 좀 갖추고 이성을 되찾아라. 내가 이 글을 쓰게 만든 결정적인 뻘글을 하나 발췌해서 보여준다. 출처는 일부러 뺀다.

한 놈은 잘못된 기억으로 어릴때 주인공에게 독을 먹이거나 (그러나 살았다.) 칼빵을 놓거나.(살거나.) 하다가 원래 기억 찾고 얀데레가 되버린 히로인,(그러나 행동이 죽지 않음.)

마력으로 몸이 언제 폭발 할지 모르는 히로인 근데 졸 활발하고,

위선적이고 가식적인 히로인에(지 잘못을 남에게 덮어 쒸우는 히로인)

츤데레인데 안에 수술로 인해 쌍둥이 언니가 몸에 있어서 이중인격으로 흑화하는 히로인, 그것도 얼마 없으면 튀어 나오는 히로인, 쌍으로 츤데레이다가 폭력성이 도을 지나침

ㄴㅁ ㅅㅂ 야 말을 해 봐라 이게 사람이냐? 이게 제정신을 가진, 그래서 독자가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히로인"으로서의 한 인간 구실이 되겠냐? 츤데레니 가식적이니 하는 걸 보고 모에를 느끼기 전에 ㅆㅂ 방금 먹은 거 다 토할 거 같다. 자기도 "개인적으로 짜고나서 이상한 히로인"이란다. 왜 "개인적" 같은 비겁한 접두사를 갖다붙이냐? 이상해! 그냥 ㅈ나 이상하다고!

캐릭터 설정 짤 때 제발 벌벌 떨면서 짰으면 좋겠다. 나는 지금 제2의 존나세를 만들고 있는거 아닌가 하고 말이다. 자존심도 없냐? 너는 니 자식이 어디 가서 근본도 없고 생각 없는 초딩 작가가 하룻밤 몽상으로 싸지른 장애인 같은 캐릭터라고 욕 먹으면 좋냐?


10. 왜 인물 설정 가지고 이렇게 ㅈㄹ하냐고? 한 인간의 인격이란 니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다층적이고 심도 깊게 조올라 오랜 시간 동안 복잡다단한 과정을 거쳐 형성되는 것이라서 그렇다. 니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길고 깊고 엄청나다. 사소한 일 하나가 인격의 사고방식에 영향을 줄 수 있으면서도, 십년 이십년 계속된 인간관계나 버릇, 생활 패턴 등이 인격의 세계관을 구성하기도 하는 식이다. 귀신도 모르는 그 인성 매커니즘이라는 걸 너네는 아냐?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최근 일본 만화에 나오는 무슨 데레 무슨 모에 속성 가졌다는 여자애들 보면, 이게 무슨 여주인공 역이냐 마분지 인형 아니면 정신병자지 싶다. 미친년들을 풀어놓을 거라면 미친년들이 날뛰어도 되는 철조망 같은 작중세계를 똑바로 세워 놓든지 아니면 좀 납득 가능한 선에서 꼭지를 돌리든지 해야지 이건 그냥 단지 지면상 가상 인물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한 인간을 창조해 놓고 731마루타로 사용하고 버리는 것 같아서 어떨 땐 비명을 지르고 싶어질 정도다. 그런 혐오스러운 것의 정상에 "얀데레"가 있다. 니미 씨부랄 내가 그냥 말해줄게. 얀데레는 정신병이야. 그것도 존나 희귀한 정신병이라서 한 작품에 한 명 등장시키는 빈도도 지랄발광이라고. 그러니까 제발 그런 것 좀 진흥(進興)하지 마. 있을 리가 없는 인물군이 당연하다는 듯이 판을 치니까 어디 가서 나 이런 거 좋아한다고 말할 수 없는 거지 않냐? 비현실이라는 바로 그 점이 좋다고? 현실 비현실 운운하기 이전에 정상적인 인간 이성을 가지고는 이 서사의 앞뒤가 납득이 안 된다고, 납득이!

인격이라는 거 함부로 막 만들지 마라. 인물을 대하는 작가의 태도가 고작 이것밖에 안 된다고 자랑하는 꼴밖에 안 된다. 요즘 만화에 나오는 정신 나간 비정상 계집애들 쳐다보지 말고 인간 연구 좀 해라. 이렇게 애걸복걸 부탁한다.


11. 설정 검토 받지 마라.

괴테가 설정 검토 받고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쓴 줄 아냐? 헤르만 헤세가 설정이 좋다고 칭찬받고 나서 《데미안》 쓴 줄 아냐? 니들은 그냥 ㅈ나 자위가 하고 싶은 것일 뿐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나아지지 않는 설정에 대한 미련을 버린 다음 그 설정으로나마 그래도 읽는 보람이 있을 만한 줄거리와 인물과 사건 타임라인을 구성한다는, 바로 그 각고의 노력만 쏙 생략하고 싶은 것처럼 보인다. 사람들이 그 어설프고 줏대 없으며 어디서 많이 본 "설정" 덩어리를 보며 알아서 상상해 주기를, 그래서 과대평가 받을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어떠신가요", "검토해 주세요", "설정을 하나 짜 봤습니다" 따위 제목의 글을 써올리고 자빠진 거 아니냔 말이다, 이 게으름뱅이들아.

설정 평가 받을 시간이 있으면 인물 연구 좀더 하고 사건 짜고 줄거리 짜고 상식적인 전개와 대사를 짜라. 진짜 고수들은 설정을 검토받지 않는다. 그걸 납득시킬 방법을 찾을 뿐이다. 알아듣냐 쪼렙 허접들아?


12. 지가 뭔데 설정 가지고 아는 체를 하나 싶지? 어디 그럼, 니들은 군대 막사 정수기가 몸 파는 여자라는 '설정'을 짜 본 적이 있냐? 그런 설정을 2만 자로 밀어붙여서 《정숙이와 온숙이의 파업》이란 제목까지 달아 병영문학상에 내 본 적이 있냐? 그딴 창피하고 허접한 3류 모에화 소설로 입선 트로피를 받아 본 적이 있느냔 말이다. 없는가? 없으면 아가리 닥치고 1부터 다시 읽어라.




13. 니네들이 설정 검토를 받아선 안 되는 이유를 하나 더 말해주마. 사실은 니네 설정 봐 주는 애들도 다 쪼렙이다. 돈 안 받고 남의 글을 봐 주는 지나가던 네티즌들이 제대로 된 직언과 도움이 되는 충고를 해 줄 무슨 이유가 있을 거라고 기대하시나? 평범한 독자의 입장을 듣고 싶은 거라고? 너의 글을 훑어보고 댓글까지 달아주는 한두 명의 네티즌들이 평범한 독자일까, '우호적이고 열성적인 열독자'일까? 어쩜 그렇게들 순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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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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