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왜 그렇게 서둘렀어? 도대체 뭐가 그렇게 바쁜데?”
그러게나 말이다. 지난 며칠 아니 몇 주 동안 마음이 바쁘고 뭔가가 계속 조바심이 났다. 뺨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 되어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 지금 초조하다.
두번이고 세번이고 기말 리포트 제출이 어디로 언제까지 어떻게인지를 묻고 있질 않나, 코드이그나이터 자습서를 빌렸으면 빌린 것이지 당장에 시작이라도 할 것처럼 그 두꺼운 넷북이며 책까지 꾸역꾸역 들고 다니다 괜히 종이가방이나 찢어먹지를 않나, 도서관 자리 없어질까 모바일 학생증을 두번 세번 찍고 있질 않나, 심지어 아직 오려면 멀었을 학교 토익 개강날과 대출도서 반납일과 아무도 재촉하지 않은 당첨자 발표에 바짝 쫄아서 신경을 쓰고 있질 않나… 이젠 이번 뻘짓이 이 정도이길 다행이란 생각도 살짝 든다.
문득 노후화를 생각한다. 지금 이 초조함은 내가 늙어버렸다는 신호일까? 왜 그런 말 있잖은가, 잘못 늙으면 조급함과 괴팍함만 남는다고.
왜 그럴까, 조급함이란 뭘까 생각해 봤는데… 이 초조함은 ‘늦으면 안 된다’라는 강박에서부터 비롯하지 않는가 싶다. 실제로 나날이 뭔가가 단단히 늦어가고 있다고 느낀다. 연애경험이, 사회진출이, 철드는 속도가, 내가 기획하고 진행해야 한다고 나 혼자 믿은 이벤트의 당첨자 발표가, 졸업이, 숙제 제출이, 전공 이해 속도가, 그밖에 내가 인지조차 하지 못하는 무엇인가들이 기한이 임박했거나 이미 지나간 것 같은 것이다.
분명히 지금은, 물론 과제를 두 개 제출해야 하는 미묘한 기간이긴 하지만, 엄연히 방학 기간이다. 그리고 오늘 나는 방학 중의 내가 으레 그렇듯 뭔가를 다운받고 뭔가를 읽거나 보고 뭔가를 막 혼자 만들면서 잘 놀았다 그런데 정말이지, 유례 없이, 혐오스러울 정도로 불편한 맘으로 놀았다. 그 이유가 비단 엄마가 친정 가고 없어서 집에 강아지 콩돌이랑 나뿐이라는 데만 있는 건 아니었다. 통합진보당 해산이 헌재에 의해 선고되었다는, 내 인생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만큼 허탄한 일이 있어서만도 아니었다. 다만, 그냥 있지 못하는 나 자신을 본 하루였다. 꾸역꾸역 먹고 놀고 누웠는데, 그래도 되는 것이었는데, 나 혼자서 그걸 제풀에 견디지 못했다. 그래서 단독 판단을 내리고 뭔가 덜 초조해질 것 같은 일을 만들어서 했다. 정신이 들었을 때는 이미 늦었다.
우선 내일 잘 대답하고 잘 혼나고 잘 수습하는 것이 급선무다. 그리고 하여튼 해야 하는 일들에 즉시 착수를 해야겠다. 죽이든 밥이든 되겠지. 그것들이 일단락 되면 하루를 딱 정해서 정말 맘 편하게 놀겠다. 근데 지금 내 상태에서 그게 바로 될지는 모르겠다. 난 내 머릿속으로 이런저런 일들을 컨트롤할 줄 알게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그저 초조함의 숯불만을 머리 위에 쌓고 있었다. 지금도 일단은 그렇지만 화요일부터는 확실히 ‘먹고 대학생’이다—근데 어쩌다 나는 그토록 내가 좋아하고 선망하며 잘 하기도 했던 그 신분 역할조차도 제대로 못 하는 노심초사 얼간이가 되고 말았나? 다만 그것을 도저히 모르겠다. 졸업반이 되면 다들 이러나 싶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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