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안녕? 엽토군 형이야.
잊을 만하면 이런 글을 써서 잘난 체하기 좋아하는 불쌍한 어른이지.
불쌍하니까 불쌍한 사람 얘기 좀 들어 줘.
형은 어제 오늘 어떤 청소년수련관의 진로박람회라는 곳에서 일했어.
하루 5만원 받고 9 to 6로 일했지.
어떤 국립과학관의 상담 부스에서 짐을 나르고, 여러분 같은 중고딩들을 자리에 앉히고,
출결과 상벌점에 반영되는 것 같던 '도장'이란 걸 찍어주는 일이었어.
정말 많은 친구들이 '도전! 나도 K팝스타', '△성SDS', '구강위생사', '수도방위사령부' 등 다양한 직업 및 진로 소개 부스를 돌아다니며 어디에서 도장을 받아야 할지 몰라 어려워하더라고.
물론 그건 단순히 "도장 4개까지는 벌점이고 5개부터 상점이다"라고 윽박지르던 여러분의 선생님들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더 크겠지만.
다들 고생했어.
그리고 여전히 여러분의 마음 속엔 진로가 결정되지 않았겠지.
대학생 멘토링도 해 보고 사회 각계 업종 현직 종사자들과의 1:1 상담 코너도 가 봤을 테지만 말이야.
형은 친구들의 표정을 봤어. 자기가 뭘 찾는지도 모른 채 뭔가 찾기는 찾는데 찾지 못해서 사방으로 흩어져 사라지는 그 힘없는 눈빛들. 그래서 치마라도 짧게 잘라 보고 귀에 뭐라도 달아 본 여러분의 겉모습들.
형도 고딩 때 ‘진로와 적성’이라는 과목이 제일 싫었어.
그게 왜 과목이고 일주일에 두 번 수업을 들어야 되는 건지 이해하지 못했어.
둘 중 한 타임은 아무도 좋아하지 않는 선생의 시간이었고 한 타임은 모두가 좋아하는 교목님의 시간이었지.
그야말로 “시험에도 안 나오는” 교과 내용과 실습들.
수많은 적성검사를 받으면서 코웃음쳤어.
이게 다 뭐람. 대학도 못 갔는데 업무니 적성이니 하는 게 다 무슨 소용이야.
그리고 그거 아니?
이 나이가 되어 보니까 느끼는 건데,
그때 형의 생각은 옳았어.
사람이 자기 적성을 살려서 살아갈 확률은 정말 극히 적어. 나도 그렇고 여러분도 그래.
그리고 형이 좀더 약을 팔아볼게.
형 말이 맞다 싶으면 카카오스토리나 페이스북에 퍼날라 줘.
첫째, 자기 적성을 살린 일을 하면서 살아간다고 치자. 그게 행복할까?
형은 지금 농담을 하자는 게 아니야.
여러분의 인생을 몇십 년 앞까지 시뮬레이션해 보자는 거야.
자, 여러분은 이제 마흔셋이 되었어. 월요일 아침 6시 40분에 알람을 끄겠지.
그 다음엔 “와, 오늘도 쩔어주는 아침이군, 내 적성에 딱 맞는 일을 하러 갈 시간이야! 퐈하하!”라고 웃으며 일어나겠지?
개뿔 그럴 리가 있냐? 월요일 아침 6시 40분에 어떤 사람이 웃으면서 일어날 수 있겠어?
그것도 가족의 생계가 달린 일을 시작하려고 일어나는 그 시간에?
그때 여러분은 문득 수십 년 전의 자기 자신의 꿈을 기억하게 되겠지.
이 일만 하고 살게 해 주면 밥 안 주고 돈 안 줘도 행복할 거라고 꿈꿨던 그 어린 시절 말이야.
그때 여러분의 감정은 무엇일까? 보람일까, 후회일까? 만족일까, 배반감일까?
후회는 몰라도 배반감은 크지 않을까?
‘너 지금 이 일이 싫다는 거야?’라고 자문하며 스스로에게 화를 내게 되지 않을까?
형이 말하고 싶은 것의 핵심은 이거야.
어쩌면 “적성” 개념이란 허구일지도 모른다는 거지.
있지도 않은 ‘적성’이라는 것이 사람마다 딱 꼬집어서 존재한다는 그런 개념 자체가 공갈일 수도 있다는 말이야.
솔직히 사람은 전자제품이 아니잖아. 어떤 용도에 최적화해서 생산할 수가 없어.
설령 그 적성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하더라도, 모두가 그 적성에 맞게 살아간다는 건 불가능, 불필요 혹은 비윤리에 가까워.
최근의 인사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적성과 인성은 기본적으로 유전이라고 해.
그렇다면 지난 수백 년간 ‘가업’을 이어 왔던 옛날 사람들의 전통은 바보짓이 아니었다는 거야.
게다가 “적성”이 하나의 의무적인 생계 수단으로 전환되어 자발성과 자아실현성을 상실할 때,
적성의 허구성은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날 것이란 말이지.
“어떻게 내가 이 일을 지겨워하게 됐지? 나는 이거 말곤 할 줄 아는 게 없는데 그럼 이제 어떡하지?”
이런 생각에 이르러 멘붕에 빠지고 갑자기 사표 쓰는 어른들이 없을 것 같니?
둘째, 자기 적성과 전혀 안 맞는 일로 먹고산다고 치자. 그게 왜 불행할까?
너네 프란츠 카프카라는 소설가 아냐?
어떤 사람이 자고 일어났더니 거대 벌레 괴물이 되어 버려서 가족한테 버림받았더라는 소설을 써서 현대 소설계의 10대 유명 작가가 된 사람이야.
이 사람이 평소 직업이 뭐였는지 아니?
우체국 직원이었어.
상대성이론 만들어낸 아인슈타인은 특허청에서 꼬붕으로 일했고 스피노자라는 철학자는 안경 가게에서 유리 깎아서 안경알 만들던 사람이었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알겠니?
한 사람의 탁월성이 결코 직업을 통해서만 실현되는 것은 아니다 이거야.
오히려 고도화, 분업화, 파편화, 단순화된 현대 산업 노동 사회에서는 직업 외의 생활 요소가 자아 실현의 결정적 장소가 될 확률이 높고, 시대를 앞서갔던 사람들은 이미 그렇게 살았더라는 거야.
그리고 어쩌면 그게 정답인지도 몰라.
일이라는 건 어원상 ‘하기 싫은데 해야 하는 것’이거든.
적성이라는 건 ‘이 사람이 하기만 하면 제일 잘 할 수 있는 것’이고 말이지.
그렇다면, 일에 적성을 살린다는 건 ‘하기 싫은 것을 꼭 해야 한다고 하니까 자기가 제일 잘 하는 방법으로 하는 것’이 된단 말이야.
전혀 낭만적이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잖아.
차라리 이런 게 어떠냐는 거야.
“하기 싫은데 해야 하는 것은 어떻게든 후딱 해치우고, 남는 시간에 제일 잘 하는 걸 하고 싶은 방식대로 하기”.
이게 우리가 살고 싶은 인생 아닐까?
그래서 형이 하는 말인데,
차라리 진로 선택을 그냥 아무거나 해 버리자는 거야.
어른들의 기대를 맛깔나게 저버리는 거지.
‘다 돈 때문에 하는 거지’를 외치면서 그냥 아무거나 닥치는 대로 결정해서 일단 먹고사는 거야.
서해에 있는 대교(大橋) 관리소에서 일하면 뭐 어때? 군바리가 되면 뭐 어때? 노가다를 하면 뭐 어때? 어차피 직업으로 할 일이라면 ‘정말 지겨워 죽지 않을 만한 걸로’ 아무거나 골라서 대충 하고,
일 자체 대신에 일과 여가의 틈새 이곳저곳에서 너의 적성과 성격과 취향을 드러내면서 살 수 있다면, 그게 대체 뭐가 나빠?
이제부터 여러분의 진로 적성 고민 해결법을 말해 줄게.
꿈이 없다고 말해.
그 꿈이 이루어져 버리고 나면 곤란하니까 일부러 꿈을 안 꾼다고 대답해.
가족 먹여 살릴 수 있고 한 달에 7일 이상 놀 수 있는 직업이면 아무거나 할 거라고 얘기해.
어차피 일이란 건 내 소질 같은 거랑 상관없는 거니까 진짜 “일 같은 일”을 골라서 빡세게 일하고,
일 안 할 때는 완전히 내 맘대로 살 거라고 말씀드려.
어른들은 아마 기가 막혀서 ‘너 생각이 있는 거니?’라고 역정내실 거야.
웃으면서 대답해. “아 그럼요, 이게 21세기를 즐기는 방법이거든요, 전 산업역군이 될 생각은 없어요.” 1
절대 자포자기하라는 말이 아니야!
실제로 일을 찾아야 해, 그리고 열심히 일해야 해!
하지만 그 일이 꿈을 이루거나 소질을 살리는 것이어야만 할 필요는 없다는 게 중요해!
왜? 불가능하거나 불필요하거나 비윤리적이니까!
이 얘기만 하고 그만할게.
형은 고등학교 수학을 풍산자라는 책으로 했어.
짱이지. 바람산 선생님은 수포자가 될 뻔했던 형을 곁에서 응원해 줬고, 형은 그 책을 리뷰한 글로 이벤트에 응모해서 PMP를 선물받았었어.
그 책에서 풍산자 님은 말씀하셨지.
“벗들에게 한 가지 제안. 꿈이 없는 벗들은 선형 계획만 열나게 파라. 선형 계획만 잘 해도 밥 먹고 살 수 있다. 대학교는 산업공학과.”
선형 계획은 정말 재미없는 부등식 계산이야.
근데 풍산자님은 (한 번도 하지 않던 ‘제안’이란 걸 하셨다는 점에서) 진지하게 제안하셨어.
이걸 열나게 해라.
이거만 해도 밥 먹고 살 수 있다.
그거 아냐? 산업공학과라는 전공은 지방 전문대에 있거나 서울대에 있어.
꿈이 없는 친구가 정말 선형 계획만 열나게 해서 밥 먹고 살려고 해도, 서울대라는 도전 과제가 있더라는 거지.
풍산자 님은 꿈 없이 대충 살 수 있는 법을 제안하신 게 아니야. 우리가 실제로는 꿈이 없다는 걸 일깨워주신 거야. 그리고 그게 나쁜 게 아니니까, 차라리 선형 계획 같은 거라도 열나게 해 보면 어떠냐고, 형이 위에서 제안한 것과 비슷한 제안을 해 주셨던 거야. 이게 고1때의 형에게 얼마나 큰 가르침과 위로가 됐는지 몰라. 수학책이 줄 수 있는 최고의 통찰이 아닐까?
진로나 직업에 대해 너무 걱정하지 마.
살아 있는 사람은 입에 거미줄을 치지 않아. 때 되면 다 하게 되어 있어.
세상엔 여러분 같은 사람들이 많아. 다들 비슷비슷하게 먹고살게 되어 있거든? 너무 걱정하지 마.
그렇잖아도 생존을 위해 모든 걸 내던져 노동해야 하는 이 인간소외의 시장주의 사회에서 생계 해결과 자아 실현을 한번에 다 해내는 것만이 행복이라고 공갈 협박하는 이 사회의 패러다임 앞에, 웃으면서, 보란 듯이 일할때 팍 일하고 쉴때 푹 쉬면서 살면 될 뿐이야.
@madhyuk 그 신화가 우리 사회에 ‘복지’에 대한 총체적 몰이해를 가져다주었다고 생각해요. 모든 직업이 최소수입 보장하고 한 달에 7일 이상 놀게 해 준다면 지금같은 왜곡된 업종 선호나 불평등은 급감할 거고, 그런 게 복지일 텐데 말이죠
— Eojin Kim (@yuptogun) October 30, 2013
P.S.
Re:
가장 큰 문제는 '꿈', '적성', '성취'와 같은 단어는(혹은 개념은)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 정상임에도 불구하고, 사회 혹은 시대의 수요를 섣불리 대입시키는데 있다고 봐요 당장 서점가서 '꿈을 이룬 사람들'에 대한 책을 살펴보면, 스티브 잡스같은 대기업 CEO라든가, 국내에서 공부한 끝에 스탠퍼드, 하버드 같은 명문대에 합격한 학생의 이야기라든가(솔직히 어릴 때부터 그래 이 사람이 뭔가 이룬 것은 알겠는데, '성공 신화'로까지 미화될 만한 것인지 정말 의문이었습니다.. 당장 세계적 수준의 명문대라고 해도 다니는 학생 수만 만단위인데다가, 입학 자체로 보장될 수 있는 것은 그 무엇도 없으니까요)..그야말로 뻔한 성공의 자화상만 가득한 것이 현실이죠 밥을 굶어 가며 등단한 시인의 시집을 찬양할 망정, 진심으로 그의 일생을 동경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또.. 실제로 적성을 살려 직업을 구하는 사람은 흔치 않습니다 본인이 '가장 잘 하는 것'이 실제 직업 상황에서도 '특출난'재능인지는 부딪혀 봐야 아는 것이고, 실제로 그렇다고 하더라도 '잘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은 엄연히 다른 범주니까요.. 될 수 있으면 '하고 싶은 일'을 찾아 갈 수 있도록 무한한 기회를 제공하는 사회가 바람직한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또, 설령 해당 분야에서 실패했다고 하더라도 빠르게 재기할 수 있도록 돕는 것, 나아가 지극히 이상적인 발상으로 비춰질 수 있겠습니다만.. 직업적 여건이 갖춰지지 않은 상황 속에서도 최소한의 생계는 해결할 수 있는 사회 구조가 갖춰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연금 제도의 확장이라고 할까요? 그런 여건이 갖춰진다면, 최소한 입에 풀칠할 일이 걱정되서 꿈을 놓아버리는 사례는 많이 줄지 않을까 싶어요 '입에 풀칠한다'는 말의 정의가 실제로는 단순히 생계만을 놓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면 또 다른 문제가 되겠지만요. 자원 분배의 문제가 효율적으로 해결된다면 그저 이상론에 그칠 담론만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인류 전체에 진정한 풍요를 가져올 가능성이 높은 제안이라는 점에서 시도할 가치도 있어 보이구요.
- 산업역군 패러다임에 대해 간단히만 설명해 줄게. 압축적 고도성장이라는 방식밖에 못 겪어본 한국 사회에서 특히 심한 집단 고정관념 중에 '산업화에 대한 강박'이 있어. 번듯한 직장에서 연봉을 받아 사회에 쓸모있는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지. 60~70년대에는 “중고교에서 소양을 갖추고 대학에 가서 고급 인력으로 전환되어 직장에서 후임자로서의 최고 생산성을 달성하고 사회에 기여할 사람들”이 아주아주 많이 필요했어. 그런 사람들을 산업역군이라고 불렀지. 오직 이 사람들이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냈으며, 그러므로 이런 인생이 우리가 살아야 할 삶이고, 그렇기 때문에 닭장 같은 공장이나 무섭게 도외시되는 농어촌에서 묵묵히 노동하는 사람들은 뒤떨어졌거나 능력이 없는 것이라는 아주 반사회적이고 싸가지없고 역사의존적인 집단의식이 생겨났지. 그리고 더 이상 회사에 가는 것이 사회에의 기여도 되지 않고 자아 실현도 안 되고 집안 자랑거리도 안 되고 고도성장을 가져다주지도 않는 이 시대에까지도 먹혀들어가는 사고방식이 바로 이 산업역군 패러다임이야. 여기서 이 패러다임을 결정적으로 시중들고 있는 것이 ‘소질’, ‘적성’ 개념이라는 게 형의 생각이야. 요즘의 대다수 직업적성검사가 단순노무를 결과로 추천해주지 않고 대신 3차 직종 위주로 추천해 준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야. 그건 어쩌면 1만 가지 이상의 직업만큼이나 다양할 것 같고 또 그래야만 하는 ‘인간 적성’이라는 것이 사실은 그렇게까지 면밀하게 분석되어 제안될 필요가 없이 그저 21세기형 산업역군 양산에 수단적으로 동원만 되면 되기 때문에 잔존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거야. 이해 안 되지? 미안.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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