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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심 구긴 가시내들


1. jTBC는 MBC를 보고 웃지




2. SBS는 m.net을 보고 웃지




요즘 너무 글만 쓰고 그림판만 만지느라 가시내를 안 올린 것 같아 올려봤습니다.

Posted by 엽토군
:

길게 쓸 수도 있는 글인데 그냥 짧고 굵게 쓰고 넘어가는 자리입니다. 아쉬우시다면 코멘트로 썰 풀어달라고 요청해 주세요. 수시로 위로 올라오는 (최신글로서 갱신되는) 글입니다.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수요일 아침에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영화관람권을 들고 강동CGV로 갔다. 조조 가격 5000원을 할인받은 셈이 되었다. 약간 아까웠다. 하지만 영화는 정말 좋았다. 히말라야라는 다소 클리셰적인 공간은 아쉬웠으나, 뉴욕, <LIFE> 사옥, 헬베티카, 그린란드와 아이슬란드의 청정하고 생생한 장면들은 정말 볼만했다. 이 영화는 코미디이기도 하다. 특히 애덤 스콧이 분한 구조조정 담당자 캐릭터는 "한 직장에서 16년간 수백만 장의 네거티브 필름을 관리했어도 단 한 컷도 잃어버린 적 없는" 묵묵한 모범사원이 항상 막연한 질투와 분노의 대상으로 삼고 있을 '방금 굴러들어온 개뼉다귀' 바로 그것이었다(쉽게 말하면, 내가 다 때려주고 싶었다). 월터의 상상 장면들 또한 내게는 굉장히 직설적인 코미디로 보였는데, 왜냐하면 그것이 각자 할리우드 장르 클리셰의 한 가지씩을 담당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신은 로맨스, 어떤 신은 스릴러, 어떤 신은 무식한 블록버스터. ㅋㅋㅋㅋㅋ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월터에게는 상상이 사라지기 시작한다. 그에게 꿈만 같은(혹은 악몽과도 같은) 순간들이 실제로 일어나기 때문이다. 부디 해외여행이라는 요소가 그런 순간들을 도와 줄 한 가지 방편으로서만 읽히기를 바랄 뿐이다. 국내전도여행 세 번, 해외전도여행 두 번, 혼자 다니는 여행을 두어 번 해 본 내게도, 그때의 전진하는 감각이 때때로 추억거리 내지는 삶의 다이나믹이 되어 돌아오곤 한다. 학원에서 받은 첫 월급으로 여기저기 돈을 쓰고 다닌 다음 다시 나답게(?) 공짜 조조표로 본 영화는, 뜻밖에도 내게 직장인으로서의 공감을 가져다줬고, 간만에 극장을 나오며 먹먹했다. 간만에 본 좋은 판타지였다. 좋은 판타지는 시청자의 가슴에 대고 이렇게 말하기 때문이다. "너의 삶도 이것만큼은 생생할 수 있지 않니?"


라바

GbusTV로 보면서 재밌게 본다는 의견이 많은데, 이게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 분명하다면 이 만화는 진짜 못된 만화다. 이 애니메이션 특유의 미친 fps와 속도감은, 각 장면들을 시각으로 받아들이는 데서 감상자의 사고를 딱 그치게 만든다. 전체 줄거리를 말로 다시 설명하려면 그게 더 오래 걸린다. 그냥 보고 웃으면 되는 것이지, 누가 뭘 해서 어떤 마음이 들었는지, 그래서 뭘 했는지 일일이 살피고 인식하고 납득하고 공감할 여지가 없게 되어 있다. 심지어 옐로와 레드라는 등장인물 이름조차도 가르쳐 주지 않는다. 라바를 보고 자라는 어린이는 분명히, 적어도 그 이전 세대보다는 더 심한 TV 바보가 된다. 웃었지만, 왜 웃었는지 자기 입으로 설명하지 못해 그걸 다시 틀어서 보여주고 상대가 웃기를 기다리는 것밖에 하지 못하는 바보 말이다.


도로명주소

한국인의 위치 인식은 철저하게 지역군 단위이지 경로 단위가 아니다. 그러다 보니 일상생활 자체가 '동네' 위주로 편제되어 있다. 그러니 어떤 원주민도 자기가 어느 도로 위에(on which street) 사는지에 아무 관심이 없고, 그게 삶에 아무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그런 한국에서 "무슨 로 몇번 길 몇-몇"이란 주소는, 길 찾는 할머니에게는 물론이요 그걸 가르쳐줘야 하는 원주민에게도, 한국인 누구에게도 아무 의미도 전달하지 못하는 공허한 코드에 불과하다. 필요한 것은 새로운 주소가 아니라 기존 지번주소와 우편번호와 각종 지도 어플리케이션의 합리적 개선일 뿐이다. 글쎄, 전국이 신도시 or 깡촌으로 완전 재개편된다면 모르겠지만, 신장로 218이라는 짧고 편리한 주소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도로명주소는 희대의 실패 정책으로 남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연극 <불가능한 동화>

지인이 동명의 소설을 연극으로 각색해서 아마추어 공연을 연다기에 마지막 무대를 일부 보았다. 1시간이 넘는 전반부의 연극 동안 연출진은 관객에게 느릿느릿한 템포를 즐겨 달라는 (또는 견뎌 달라는) 주문을 암묵적으로 계속하고 있었고, 관객들은 숨죽여 그걸 즐겨(또는 견뎌) 주었다. 15분의 인터미션 중 연극 진행팀은 관객을 전부 퇴장시키고(!!!) 극장 입구를 잠갔다. 뭔가를 열심히 준비한다는 모양이었다. 그 시간 동안 관객들은 멀거니 서서 또는 대기자 좌석에 앉아서 지금까지의 연극이 얼마나 길었는지에 대해 의견을 나누기 바빴다. 이 연극은 한 소설에 대한 예술적 문법으로서의 지극한 찬사는 될 수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명백히, 안타깝게도 내지 괘씸하게도 "엔터테인먼트"는 되지 못했다. 말은 그렇게 해도, 사실 티켓 값이 아까운 연극은 아니었다. 불가능한 연극일 뿐이었다.


Beautiful Life

iOS 7 이상이 깔린 아이폰이나 아이패드에서 Apple ID를 미국 계정으로 로그인시켜 놓고 음악 기본앱을 열면 iTunes Radio를 들을 수 있다. 여러 방송국이 있고, 다음 곡 스킵 횟수와 이전 곡 다시듣기가 제한된 온라인 라디오가 장르별로 제공된다. 가요를 전혀 안 듣는 나로서는 미국 앱등이들의 아이튠즈 구매목록 위주로 생성되는 K-POP Station이라도 들어야지 하는 심정으로 타이머 걸어 놓고 자기 전 재생시켜 머리맡에 두고 자곤 한다. 지금껏 그렇게 잠결에 이 방송국이 들려 주는 요즘(?) 노래들을 듣다가 귀가 솔깃했던 곡이 딱 두 곡 있었다. 우습게도 하나는 Block B의 닐리리맘보였다. instrumental이 괜찮더라. 그런데 다른 하나가 바로 이 곡이었다. 이 방송국이 용케도 최신곡을 틀어주었다 싶더니, 다시 찾아서 들어보았을 땐 잠결에 미처 다 듣지 못했던 감동과 눈물겨움이 속속이 배어 있었다.

지금 드렁큰타이거 서정권은 쉽지 않은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의 삶 자체도 파란만장하였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다 지나온 한 마리의 ‘술 취한 호랑이’는, 문득, 요즘 유행하는 힙합의 유행 조류 일체를 굳이 거절하고 그 대신 차분히 빛나는, 위로하는 듯한 음색을 선택한다. 자살률 1위의 이 나라 사람들을 위로하는 그 이전에, 우선 자기 자신이 위로받고 싶다는 듯이. 가사도 rhyme이 어떻고 플로우가 어떻고 하는 차원에서 완전히 초탈한 채 그저 이 한 마디를 두어 번 할 뿐이다. "니 맘을 조금 알아." MC스나이퍼가 컨트롤 대란의 풍파에서 자유롭지 못한 뒤 내놓은 신곡에서 "할 수 있어"를 아직도 그렇게나 힘에 부치는 라임과 특유의 냄새만 풍기는 소울로 억척스럽게 버티듯 외치고 있다면, JK는 전혀 힘을 주지 않는다. 'Monster'를 하던 그의 모습은 없다. 한 집안의 가장이고 누군가의 아들로 그렇게 살아가게 된 그는, 그냥 찬란한, 그래서 오히려 더 강하게 눈물겨운 노래를 부르고 있다.

이상하게도, 그들을 비웃을 의도는 없지만, 삶이 너무 고단해서 기운을 굳이 내고 싶지 않을 때 정작 힘을 발휘하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무명 래퍼'로 치부되는 이들이 생애를 쥐어짜서 토해낸 그 몇분짜리 무명곡들이다. 그들의 괴로움, 희망, 결연한 의지와 자부심 그리고 진실, 그런 것들이 먹먹하게 스피커 너머로 들리면서 숙연해지고, 위로가 된다. 거기에 후크와 샘플링과 믹싱이 좋아서 음악으로 흥을 얻기까지 하니 진정한 cheering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드렁큰타이거는 진심어린 cheering의 진수를 내놓았다. 개인적으로 타이틀곡 "살자 the Cure"보다 이 곡이 좋다. 니 맘을 조금 알아, 이 짧디짧은 괴로움과 진실의 응축 그것 때문에.


세븐갤

"세븐갤이 털리고 있다"는, "제대로 된 설명을 제공하지 않는 어떤 비논리가 발생했다"를 뜻하는 사회적 신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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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

트위터로 펜팔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트친들이_못해봤을_경험을_얘기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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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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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밤에 블로그에 글쓴다고 좋은 글 나오는거 아닌데, 이런걸 여기 안 쓰면 언제 이 블로그를 써먹나 싶어서 올립니다.


현대인은 확인받고 싶어합니다. 서로가 서로 그렇게나 똑같아 자기를 확신하지 못하는 21세기 인간들은 결국 '좋아요'와 리트윗 버튼을 만들어내었습니다. 은유가 한없이 넓은 그 실없는 단추가 얼마나 큰 폭발을 일으켰는지를 생각해 보세요. 카카오스토리에는 하트 버튼이 있습니다. 대체 그게 무슨 뜻인데요? 긍정해 주겠다는 뜻인 거지요. 우리는 확인받고 싶어합니다. 누군가가 내가 옳다는 말을 해 주었으면 좋겠다. 아니면 차라리 내가 틀렸다는 것을 일깨워줬으면 좋겠다, 그렇게 나의 위치와 색채와 수준을 측정하고 인증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불안에 기인한 욕구가 있다는 말이지요.


어느샌가부터 좋은 것을 만들었다 또는 생각해 냈다고 자랑하고 싶어서, 좋아요나 리트윗을 다만 한 명에게서라도 더 얻어내고 싶어서 SNS를 악착같이 사용하고 구차하게 댓글 드립에 열중하는 제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총파업 포스터 4탄을 만들던 도중 그 발견이 정점에 달했습니다. 참 못났더군요. 뭐 이딴 볼품없고 비루한 인간이 있나, 싶어서 요즘은 길쭉한 글을 쭉 썼다가 쭉 지우고 그만두기를 여러 번 합니다. 삭제되든 말든 상관없는 것이라면 어떤 것도 함부로 올리지 않겠다고 생각했던 2000년대 초반의 저는 어디로 가고 없는 걸까요.


인터넷이라는 광장이 워낙 넓은 탓에 오히려 사람들이 조곤조곤 말하는 법을 잊어버리게 되는 것 같습니다. 울림 없는 텅 빈 곳에서 군중들이 만드는 뜻 모를 소음에 휩쓸리다 못해 왈칵 성이 나서 소리를 지르고 싶었던 적이 없으신가요? SNS에서는 하루에도 수백 명이 그런 식으로 소리를 지릅니다. 그게 하도 확인하기 쉽다 보니 세상이 온통 미쳐 돌아가는 것 같은 착시가 일어납니다. 사실 그렇지 않아요. 당신은 조곤조곤 말할 수 있고, 말이라는 게 처음부터 큰 소리로 호령하라고 만든 것뿐만은 아니니까요. 존재증명은 귀류법이 훨씬 쉽습니다. 굳이 유난 떨 것 없이 남들이 안 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누군가는 그런 이야기를 한다는 명제의 예시로서 자기 존재가 증명되는 것 아니겠는가 하는, 전공을 살린 드립을 시전해 봅니다.


방금 전에도 뭔가를 잔뜩 썼다가 잔뜩 지우고 오는 길입니다. 나는 이런 고민을 했다, 이런 통찰이 있었다, 이래야 한다, 이러지 말아야 했다 운운하는 젠체하는 글이었는데 뭔가를 또 확인받고 싶다는 비뚤어진 욕심에 눈을 부릅뜨고 마지막 교열을 하다가 집어치웠어요. 문득 그런 생각에 미쳤던 거지요. 그래서 뭐 어쩔 건데? 너는 그 통찰대로 살고 있냐? 왜 너의 삶이 아닌 썰을 무슨 근자감으로 나불나불 풀어놓으려고 하지? 니가 좋아하지도 않고 먹을 생각도 없는 요리를 열심히 만드는 이유는 대체 뭐야? 그저 맛있다는 말, 열심히 했다는 격려, 좋아요 17개, 진심으로 그런 걸 바라고 있는 것일 뿐 아니야? 그게 그렇게 마냥 좋냐? 좋다 치고, 그래 그래서 니가 원했던 바로 그 반응들을 받으면, 그 다음엔? 왜 자꾸 그렇게 조급하게 널 판촉하려고 해? 사람들이 사 주지 않을까봐 겁나서 그래?


앞으로 다시 SNS에서 블로그로 무게중심을 옮겨 보려고 합니다.

열심히 했다는 것, 잘했다는 말, 좋은 것을 했다는 확인을 받고 싶은 것은 사실이지만, 여기서 코멘트 안 달리는 글은 어디 내놓아도 코멘트 달리지 않는다는 생각에 미쳐, '마이크로 블로그'들의 모르핀 투여량을 줄이려고 합니다. 새해 결심이라면 결심이 되겠죠.

코멘트 많이 달아달라는 호소문이 아닙니다. 조용히라도 읽어 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저도 조용히 있다가 조금 말하고 다시 조용히 있는 습관으로 돌아갈 때가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좋아요 사냥꾼이나 리트윗 걸인 같은 건 되지 맙시다. 애당초 누가 누굴 확인한단 말인가요. 마무리를 어떻게 지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안녕히 주무시고 내일 아침 만나요. 당신들 모두에게 신의 은총이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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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

개인메모. 이렇게 해놓으니까 원래 의도대로 작동함.

다음 모든 규칙과 일치: [미디어종류-다음과같음-음악, 재생-다음보다적게-5, 일부규칙과일치: {모든규칙과일치: 장르-다음을포함-크리스천, 선호도-다음보다크게-3}+{모든규칙과일치: 장르-다음을포함안함-크리스천, 선호도-다음보다크게-1}, 다음으로제한-300개항목, 선택기준-가장최근에추가한노래, 선택한항목에서만일치찾기, 즉시업데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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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

요즘

2013. 12. 14. 02:38
  • 잠드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은데 깨는 것이 어렵다. 매일 아침 눈을 뜨는 일이 매우 '우연적인' 것으로 느껴진다. 아침잠이 늘어난 정도의 문제가 아니다. 내겐 어렸을 때부터 가진 한 가지 이유 없는 공포가 있다. 죽어서 영원한 어둠에 처해지는 것에 대한 무서움. 정말로 영원히 영원히 어둡고 아무 감각이 없는 것. 내겐 그것이 공포였고 지금도 아주 해결된 것은 아니다. 이 공포가 어디서 유래한 것인지 나는 모른다. 하여튼 그래서 지금까지는 어두컴컴한 밤이 무서웠다. 그런데 요즘 내가 아침에 우연하게 눈을 떠 휴대폰을 들어 각종 알림을 제거하면서 소스라치게 놀라는 것은, 내가 어젯밤에 잠들 때는 "내일 아침에 이러저러한 알림들이 올 테지, 그걸 꺼야지" 하고 잠들었는데, 지금 일어난 나는 전혀 그걸 기억하지도 대비하지도 못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냥 습관으로 행동한다.) 이러다가 어느 날부터인가는 "내가 왜 일어났는지" 알 수 없는 때가 오겠구나, 그러다가 어느 날 아침부터는 그냥 안 일어나겠구나, 싶다. 그렇다면 그때부터는 화창한 아침이 무서울지도 모르지.
  • 내가 현대인이 되었다고 느낀다. 미칠 듯이 바쁘다. 무엇보다 마음이 바쁘다. 마음심 변에 없을 망 자를 써서 바쁠 망이라고 읽는데, 마음이 없어진다는 기분이다. 닳는다. 소모가 된다. 오늘 희정과 이정 씨가 수뇌부를 은퇴했고, 그래서 잊고 있었던 캠퍼스워십을 가는 날이라는 것을 기억했을 때는 정말 예배를 기다렸는데, 정작 예배때 나는 반 이상 잘 잤다. 사람들에게 다가가자는, 우리의 사마리아에 머무르지 말고 성령의 충만과 인도에 전적으로 의지해서 광야 길로 나가자는 도전을 받아, 그리고 희정에게 정말 무슨 말이든 따로 긴히 한 마디 해 주고 싶어서 예배 끝나고 뒷정리도 나몰라라하고 성령의 취기를 빌어 간신히 한 통 보냈다. 읽었는데 답장이 없다. 고맙다. 여튼, 현대인이 돼 가고 있다. 여러 사람에게 고백했는데, 내가 이렇게 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좋은 점도 있다. 그전까지 이해하지 못했던 종류의 삶―어떤 모임에 대해서도 선뜻 가겠다는 말을 하지 않고 항상 미안하다는 표정부터 짓는―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어렵고 괴롭다. 요즘 현대인들은 낮을 빼앗겼기 때문에 밤을 지새우는 듯하고, 나도 점점 그리 되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잘 자고 싶다. 그런데 이제 그것은 돈이 많은 사람 혹은 돈이 전혀 없는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복락이 되었다.
  • 바로그찌라시가 나의 삶의 상당 부분이 되었다. 연필로서의 나의 고정적 쓰임새 중 하나를 찾은 기분이다. 그러나 다시 한 번 not a fan.을 대출받아 읽으며 되새긴다. 하나님은 나의 컨설턴트가 아니시다. 그분의 일에 내가 어떻게 가담할 수 있는지를 따져야 한다―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것'은 사실 백점짜리 제자도는 아니다. 일의 주체는 언제나 내가 아니다. 바로그찌라시는 내 삶의 최우선순위는 아니다. 그러나 스케줄의 상당 부분인 것은 사실이다. 이렇게 따지고 보니 명확해지면서도 심란하다.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일이 가장 중요하지 않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충실하지 않겠다는 것은 천에도 만에도 아니다. 다만 이런 삶―대다수 직장인들이 겪는 삶이겠지―을 잘 모르겠다는 것뿐이다.
  • 필기구를 쥐고 종이에 글을 쓰는 것을 동경만 하고 있고 실제로는 전혀 하지 못하고 있다. 내 안의 무언가가 "제발 이렇게 중량감 없는 글과 그림은 그만 만들어"라고 외치는 것 같다. 사실 나뿐 아니라 거의 대부분 현대의 창작물들이 뭔가 전혀 무게가 없다는 기분이다. 속이 비어 있는 것 같다. 분명히 거대한 물체를 표현한 것인데 3D CG로 잘 만들어진 그 모든 거대한 것들이 그렇게나 빠르고 가볍게 여기저기로 날아다닌다. 분명히 미소녀 일러스트인데 상반신과 하반신은 이질감이 극심하고(마치 바스트 샷까지만 연습하고 그 이하는 상상으로 그려낸 것 같다) 전체적으로 '저런 몸과 복장으로 저런 자세를 한 걸 그리면 정말 저렇게 나올까' 싶은 그림들 투성이다. 모두가 상상으로, 컴퓨터로, 깔부림을 한다. 아무 기본기도 찾아볼 수 없다. 소녀를 제대로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미소녀 그림을 그리고, 공룡이나 거대 비행기가 빌딩에 부딪치는 걸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대충 컴퓨터가 렌더링해 주는 시뮬레이션 결과대로 최종판을 작업하고, 자기가 뭘 패러디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오만 잡다하게 아무 데나 고객감사를 갖다 붙여 맹랑함을 넘어선 허무맹랑함을 작성한다. 그런 글은 공책에 연필로 썼더라면 결코 쓸 수 없는 종류의 글이다. 마구 잡다하게 튀어나오는 생각들이 분무기로 물 뿌리듯이 뿌려져서 화면 위에 널브러진 모양이 글이나 그림 따위에서 너무 자주 목격된다. 그리고 그것들을 참아주기가 어렵다. 이건 아닌데, 이게 정공법이 아닌데 싶다.
  • 사람들이 재미있는 일에 목이 말라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생각해 보면 자연스럽게 자명하다. 인구통계학을 배워 보라. 세상이 얼마나 재미없는지 아는가? 당신이 지극히 평균임을 알고 나면 세상이 그렇게 허무하게 재미없다. 이걸 어렴풋하게나마 눈치챈 사람들이 바로그찌라시 모집공고에 그토록 반응하고 달려들었다. 재미. 대체 재미란 무엇일까. 모름지기 사람은 사는 재미가 없으면 죽어 버리는 것이다, 자살이든 자연사든, 라고 나는 생각한다. 재미란 좀더 큰 차원이다. motivation이다. 재미가 있어야 뭔가를 한다는 말은 일반적인 통찰이다. 하지만 여기까지는 누구나 다 알고 있고 말하는 이야기고, 그 다음이 문제다. 그렇다면 재미를 일상화할 방법은 없을까? 롤러스케이트가 유행하던 시절 그때의 10대들은 롤러장에서 댄스음악에 맞추어 연애와 낭만을 즐겼고 그분들은 지금 30~40대가 되어 아이들을 영어 유치원에 몰아넣고 있다. 롤러스케이트와 같은 것, 새로운 스포츠, 한 장짜리 잡지를 만드는 매커니즘 등, 재미있게 살 수 있는 또 하나의 해볼만한 일, 그런 것을 만들고 싶다.
    요즘 API라는 개념에 꽂혀 있다. 스크립트는 중앙 서버에 있고 여기에 입력값을 제출하여 출력값을 되돌려받아 나름대로 이용할 수 있게 해 주는 (맞겠지?) 규격, 개발자가 제공하겠다고 맘먹고 개발해서 공개하면 되는 것. 기존의 재미 개발자들은 API를 공개하지 않았다. 그냥 통짜 콘텐츠를 갖다주었다. 이제 그건 좀 아닌 것 같다. 앤디 워홀은 스크린톤이라는 API를 개발했다. 이렇게 이렇게 색을 고쳐 넣으면 그럴싸하다는, 뭐 그런. 용어는 자의적이라 문제가 있겠지만 여튼 그런 걸 요즘 깊이 생각하고 있다.
  • 여전히 싫은 것이 세상에 너무 많아 견딜 수 없다. 학교 후문 쪽 사거리 모퉁이에서 운영하던 돈까스 집이 홀랑 망하고 파리바게트가 들어왔다. 오늘 오후에 보아하니 신장개업을 했다고 이벤트 도우미 불러다가 시끄럽게 떠들면서 홍보를 하는 꼴을 보이고 있었다. 가뜩이나 기분 안 좋고 섭섭한 일 있던 차에 굉장히 기분이 나빠서 화를 낼 뻔했다. 하지만 화를 내지는 않았다. 화를 내면 내 입만 더러워질 것 같다.
    일베충들에 대해서 내가 느끼는 것도 그렇다. 그냥 싫은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이 우리 학교부터 적지 않은 듯하다. 자기를 심리학과라고 소개하는 멀쩡하게 생긴 남자가 '거리로 나온 넷우익'이란 책을 쓴 저자에게 질문을 하다가 "그러면 당신은 다양성이 존중돼야 한다고 생각합니까?"라고 되물어보는 질문에 "그거는, 배제가, 돼야 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대답하는 걸 보며 혀를 끌끌 차는 수밖에 없었다. 정말 많구나, 세상에는 자기가 본 것만이 세상에 존재한다고 철석같이 믿는 사람들이 많구나, 그들에게 세상은 그저 자기 눈앞에 우연하게 전시되어 있던 일부의 존재들뿐이었음에도, 그게 그 사람들의 사고를 구성해 버렸고, 그 이상의 다른 생각은 시도조차 되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 그렇게 이 세상에는 싫은 것들이 차고 넘친다. 다들 너무 나르시스트들이다. 자기밖에 모른다. 자기가 모든 걸 다 보여주고 설명하고 해결하고 있으면서 "내 프라이버시는" 운운하고 "왜 저 인간은 저러고 사는지" 운운한다. 싫은 것들을 배양하는 무관심과 자아 과잉에 금방이라도 까무러칠 것 같은 혐오를 느낀다.
  • 돈이 없지는 않은데 쓰질 못하고 있다. 항상 현금이 조금씩 나갈 일이 생긴다. 주로 카드값을 막기 위한 것이다. 소니 넥스5 중고가 35만원으로 나온 게 있는데 충동구매 한번 못해보고 죽을 성싶다. 내가 자주 하는 말 '돈 많이 벌어 성공하면'이란 말에는, 사실은 돈에 대해 완전히 자유로워지면 이라는 의미가 깔려 있다. 그런 날이 안 올 성싶다. 아이고 주여
  • 보시다시피 학업이 가장 내 관심사 밖이다. (...) 그래도 금융경제학이나 국제정치경제학 같은 것은 꽤 유용하다. 논리학은 더 이상 이런 식으로 배우고 싶지 않다...
  • 떠오르는 생각들은 그때그때 많지만 일일이 적지 않으려고 한다. 어떤 생각들은 내면에서만 process되어야 한다.

  • 가장 최근에 듣는 노래는 6월 전국 모의고사 세트, 철이와 미애의 "너는 왜", 문명4 주제곡이라는 바바예투, '박명수의 어떤가요' 노래들, 삼성전자가 갤럭시 시리즈에 넣어놓는 Over the Horizon 시리즈 등이다. 난 이 음악들이 재미있다거나 우습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노래들은 네타성으로 소비되는 그 이상의 내재적 의미와 더 큰 시공간적 맥락이 확실히 있다고 느끼고, 실제로도 더 진지하게 듣게 된다.
    사실 엽기송이라고 통칭되는, 소리바다가 유효하던 시절 사람들이 주고받던 뻘한 리믹스 음악들 같은 것들이 다 그렇다. 음악 파일 제작 작업은 어쨌든 시간이 걸리고 어려운 일이다. 그걸 굳이 해낸 결과는, 아무리 우스꽝스럽고 네타성이 짙다 하더라도, 언제나 그 이상의 존재이다. 내가 열심히 그런 음악 파일들을 끌어모아 왔던 것은, 지금 가능한 설명 방식으로 설명하자면 언제나 그런 이유였다.
  • 굉장히 늦거나 아예 따라가질 못한다. 진격거를 3분도 안 봤다. Only My Railgun과 Sisters' Noise를 이제 받아 듣는다. 이제 좀 좋다고 느낀달까. 최근에 경동케이블이 방학 시즌을 맞아 얼마 전의 신작애니들을 무료로 풀었는데, 덕분에 바시소 2기를 다시 보며 누가 뭐래도 히메지가 모에한 캐릭터라는 것과 츠치야 코타가 의외로 매력있는 인물임을 새삼 깨닫는다. 마리아홀릭2기 와 이국미로의크로와제 는 교양필수고. 아무튼지간에 '최근', '최신' 이런건 예전에도 못따라잡았지만 지금은 더더욱 어렵다. 무엇보다, 그렇게 하려면 돈과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 컴퓨터 전문가 분야에는 트러블슈팅이라는 것이 있다. 문제의 해결이 핵심으로, 주요 관심사로는 크게 원인 찾기와 문제 없애기(또는 Plan B 만들기)의 두 가지가 있다. 무슨 프로그램을 쓰면 된다든가 레지스트리를 건드려야 한다든가 explorer 프로세스를 종료한 뒤에 새로 실행시켜준다든가 하는 것을 주로 연구하고, 근본적인 원리나 고차원적 스킬―바이오스 조작 등―에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없다.

    생각해 보면 나의 창작 활동은 트러블슈팅인 경우가 많았다. 해결해야 할 문제와 해명해야 할 의문 그리고 표현해야 할 재밌는 생각이 있었고, 그걸 어떻게든 해내는 과정으로서의 창작을 해 왔다. 백수의 하루는 플래시 애니메이션을 잘 하지 못해서 사인펜으로 공책에 그렸고, 인쇄용 폰트를 만들지 못해 직사각형의 조합으로 웹폰트를 대충 만들었었고 얼마 전에도 이런 문장들을 표현할 픽토그램이 필요하다는 것 같아서 그걸 어떻게 해낼 수 있는가 하는 트러블을 슈팅해 보려고 했었다.

    1. Fundraising should not be based on exploiting stereotypes.

    Most of us just get tired if all we see is sad pictures of what is happening in the world, instead of real changes.


    2. We want better information about what is going on in the world, in schools, in TV and media.

    We want to see more nuances. We want to know about positive developments in Africa and developing countries, not only about crises, poverty and AIDS. We need more attention on how western countries have a negative impact on developing countries.


    3. Media: Show respect.

    Media should become more ethical in their reporting. Would you print a photo of a starving white baby without permission? The same rules must apply when journalists are covering the rest of the world as it does when they are in their home country.


    4. Aid must be based on real needs, not “good” intentions.

    Aid is just one part of a bigger picture; we must have cooperation and investments, and change other structures that hold back development in poorer countries. Aid is not the only answer.

    [출처: 노르웨이에 난방기구를 원조하는 아프리카 단체 radi-aid]

    문장들을 보는 순간 '이걸 픽토그램으로 표현해야 하는 TTL 디자인팀도 고생이겠구나' 싶었다. 얼마나 민감하고 디테일한 의미 전달인가! 지금껏 보았던 명랑만화와 '이원복'류 교양만화들을 생각했다. 그들이라면 이걸 어떻게 그려낼까? 먼나라 이웃나라, 어릴 적 보았던 각종 학습만화 등에서의 만화적 표현들이 생각났고 그걸 좀 유용(流用)했다. 물론 세 번째와 네 번째에 대한 그림 표현은 좀 어렵긴 했다. 첫번째를 표현한 것 역시 사실 100점짜리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뭐, 디자이너 분들이 보시고 "내가 이거보단 더 잘하겠다"라는 자극을 받으면 그걸로 족하다 싶었다.

    그래 난 그걸 스캔해서 팀 드롭박스에 올려놓고 세상모르고 자는 동안 디자이너들은 그걸 보고 극찬을 했다고 하더라. 문제가 일거에 해결이 됐다고, 천재인 것 같다면서.

    난 절대 천재가 아니다. 그냥 트러블슈터일 뿐이지. 그리고 이번 일은 내가 유용할 수 있었던 몇 안 되는 재료와 스킬이 딱 적시에 크리를 터뜨려 준 희귀한 케이스일 뿐이다. 나는 내 스킬이 부족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기본적으로 넓지 못하다. 최소한만 하면 된다는 안이하고 무례한 자기과신 아래 오랫동안 남들이 갖은 고생 들여 쌓는 스킬을 가지고 제대로 된 설계와 구축을 하는 게 아니라, 문제가 있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할 줄 아는 것 몇 가지를 가지고 냉큼 해결해 버리는 것으로써 나의 역할을 몰래 어필하려는 속셈이 없잖아 있다. 예컨대 포토샵을 할 줄 모르는 채 paint.net이란 프로그램의 간단한 플러그인 가지고 눈속임을 하려는 것이다. 나도 스스로 알고 있다. 그렇다면 이것은 트러블슈팅이라기보다 차라리 자기 자리/밥그릇 지키기의 일환이라 해야 하며, 천재성 발휘 따위는 더더욱 아니다. (히트맨이라는 칭호는 혹시 여기에 어울릴까?) 다들 "어진이 니가 가진 것을 충분히 발휘하게 해주고 싶다"라고들 하는데, 가진 게 없어서 발휘할 것이 없다, 라고 말하면 무안을 주는 것밖에 안 되기 때문에 그저 무안하게 웃을 뿐이다.

    세상의 천재들에게 미안해지는 날이었다. 트러블슈팅. 그거 잘 하기 위해서라도 더 쌓아야 할 최소 스킬의 범위가 확장을 자극받고 있다는 느낌은 있다. 예를 들어, DSLR 카메라는 못 사더라도 국비지원 앱 개발 교육 같은 건 받아야 되지 않을까 싶다. 나에게 부족한 건 물자가 아니라 기술이라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 최근에는 서태지를 리뷰해보고 있다. 문화대통령은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울트라맨이야>는 그 예전에 뭣모르고 들었을 때보다 더 강한 곡이었다. 울트라맨은 일본의 슈퍼맨이다. 외국에도 서태지의 위치에 있는 존재가 나라마다 있을까? 저작권 개념 확립과 힙합, 뉴메탈의 국내 도입에 공헌했다는 그다. 그의 스타덤이 쇠해 가는 지금 우리는 누구에게 기대를 거는가? 그는 "솔직한 해답을 갖자 영웅이란 존잰 없어 이미 죽은 지 오래 영웅은 바로 너야"라며 바톤을 넘겨버렸다.

    ------------- 이상 13.06.07까지 -------------

  • 웹 애플리케이션 개발을 할 줄 알았으면 좋겠다(이젠 한층 더 진지한 이야기). tailer 홈페이지 때문에 php를 알아보다가 알게 됐는데 DB와 페이지가 어떻게 연동하는지만 알면 나머지는 다 함수와 알고리즘의 문제인 듯. 여기까진 허세고, 실제로는 폼메일 php 하나를 성공시키지 못해 끙끙 앓고 있는 코드맹 신세. ㅋㅋㅋㅋ
  • <사이비>를 봤다. 연상호 감독은 영화에 대한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 언짢음을 무릅쓰고 자신 역시 "교회를 다닌다"는 것을 밝혀 주었다. 그걸 알고 나서 본 터인지 더욱더 작품에 몰입할 수 있었고 이런 걸 만들어 개봉해 준 다다쇼에게 고마웠다. 저토록 리얼하게 혐오스럽고 패악한 아버지, 항상 기겁하는 어머니, 도망갈 길을 찾는 나약한 여자아이. 장로와 목사 캐릭터는 약간 덜 익었지만, 김민철 가족만큼은 제작진들이 알고 있는 이 땅의 가족들 그대로였다. 그리고 다다쇼 특유의 일그러진 표정은 전체를 추에서 미로 넘길 만큼 충분한 끔찍함을 보여줬다.
  • 원고 작성 관련 교육을 받는 중이다. 문장이나 착상 그 자체, 문장들의 구조적 긴밀도, 단락들이 있어야 할 이유, 글이 전체 매체에서 갖는 맥락과 '톤', 점점 시야를 확대하는 중이다. 잘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두세 번 생각하고 쓸 수 있는 글도 이 모양인데 즉흥적으로 인터뷰어가 묻는 질문에까지 말로 차분히 답해야 하는 인터뷰 같은 건 오죽할까? 시니어 피처의 역할을 못 하고 있다. 이러다 한 방에 훅 가지. 결국 이번주는 휴가를 받아 버렸다.
    사실 "just"에 대한 압박이 있다. 진짜배기 정기간행물을 만들게 되면 그땐 장타 안타 도루 가릴 것 없이 지면을 채우며 분초를 다투는 생활이 되겠지. 그걸 하기 전에 각자의 스윙으로 홈런을 한 번씩 쳐 보고 선수입장하자는 계산인데, 아직은 조금만 변화구가 들어와도 볼을 내 주는 상황이다. 이러다 포볼되면 아웃인데.
  • 안목의 문제. 취향이랄 만한 것을 가진 지 오래 되지 않았다. 그 좋다는 일본 애니메이션조차 고등학교 들어와서 PMP를 가진 뒤 차근차근, 그것도 처음엔 숫제 을뀨라는 네임드의 공신력에만 기대어 쌓아 왔던 것이니까. (따지고 보니 군대 빼면 기껏해야 7년!) 어찌 보면 나의 애니메이션 라이프 큐레이팅은 을뀨 님의 것이었다. 그 이후로 각종 괴작으로 빠지면서 이 지경이 됐지만. 애니가 이 정도니 연예계, 음주가무, 스포틱 아웃도어 따위에 조예가 있을 리가 없다. 큐레이터도 없었고 그런 것들을 알 이유나 의지도 없었다. 그쪽으로 엮어 써먹을 일이 있든 없든 일단 아는 것은 중요한데, 얕고 좁게 파 온 나날이다. 말씀, 상식, 메타논리 등을 가지고 호오양악을 이론적으로 분간하는 수밖에 없는 지금이다. 이제 와서 막 여기저기 들쑤신다고 알아질 것도 아닌 줄 알지만, 곱게 늙지 못한 이의 성마른 초조함 같은 것이 대책 없이 몰아칠 때가 있다.

  • ------ 이상 13.11.23까지, 이하 13.12.13부터 ------

    12월 첫 주부터 동네 학원 알바를 시작했다. 월~금 5시부터 10시까지, 주로 문제집 작업을 한다. 하루하루 언제 잘릴지 몰라 괜히 혼자 속으로 벌벌 떠는 나날이다(계약서까지 썼는데). 오전에는 좀있다 일하러 간다는 스트레스에 뭘 해도 손에 안 잡히고 오후에는 일하고 오고가고 쉬느라 다른 걸 손에 잡지 못하고 있다. 정말 되도 않는 변명이지만, 사실은 그래서 글이 안 풀린다. 1주 넘겨서 theveryepics를 썼는데 두 번 생각하던 것을 한 번 생각하고 허겁지겁 작업해 올렸더니 웬걸 당장에 형편없는 바이럴이 되돌아온다. 뭐 한번쯤 그럴 수도 있는거지 싶으면서도 속이 쓰리다. 이번에 확실히 배웠다. 어떤 일은 마감 늦는 것보다 질 낮은 것이 더 나쁠 수도 있다. 홈런이 불확실한데 승부수를 내야 한다면 차라리 데드볼을 맞아라. 적어도 에픽스 시리즈는 터진다는 확신이 있기 전까진 시작도 하지 말아야겠다. 뭐야 이 쓸데없는 장인정신
  • 진은진현(眞隱眞顯)이라는 말을 배웠다. 군자란 모름지기 치세에는 나서서 뜻을 펼치고 난세에는 숨어서 때를 기다린다더라. 그런데 누가 보아도 명백하게 지금은 난세다. 관상이 유행하고 고리대금업이 판을 치고 젊은이들이 맥이 없고 정치 경제 사회에 일말의 기강이 없달까 하여튼 국운이 기울 대로 기울어 있다. 그렇다면 지금의 군자는 숨어야 된다는 얘기가 되는데, 대체 뭘 어째야 하는 걸까. 하필 이런 시기에 마치 트위터 따위의 SNS가 우리를 구원할 것처럼 짹짹거리는데 말이다.
    태환어 크루[각주:1]가 간만에 모여 차이나팩토리에서 런치코스를 처묵처묵할 일이 있어 거기서 좀 거들먹거려 볼 셈으로 이 얘기를 꺼냈다가 뜻밖의 대답을 들었다. 소위 21세기의 진은이라 할 것이 있다면, 그저 남들 하는 일 똑같이 하며 숨죽여 지내는 것 아니겠느냐며. 같으면서도 다르다는 말을 하려다가 생각이 꼬여 말하지 못했다. 지금도 생각이 헷갈린다. 형가는 푸줏간에서 개를 잡았고 고점리는 축을 숨긴 채 일당 알바로 먹고살았다 한다. 백이와 숙제는 수양산에서 주려 죽었고 장량은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이 뭔가? 이게 진은인가? 그들의 시대로부터 좀 지난 때의 죽림칠현도 결과적으론 진은이 못 되었는데, 하물며 "요즘 시대에 그럼 진짜 산에 가서 숨어 사는 게 되겠냐"라던 친구 말이 생각난다. 글쎄? 그럼 요즘 시대에는 어디에 가야 숨어 사는 것인가?
    하여튼 지금이 몸을 사려야 할 난세라는 것 하나는 확실하다. 그러나 한 가지 더 확실한 것은 형가의 칼, 고점리의 축, 백이와 숙제의 군신지의는 그 숨어사는 삶 동안 낡아빠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시퍼렇게 팽팽해졌다는 것이다. 대체 뭣 때문에 사마천을 위시한 중국의 대학자들은 이딴 이야기를 굳이 기록해 놓았나? 대체 이게 지금 우리에게, 나에게 말하고 있는 게 뭔가? 고우영 십팔사략을 처음 읽었을 땐 그저 그림에 취해 훌훌 넘겼는데, 이번에 읽었을 땐 반고부터 시황제까지의 이야기가 얼마나 차원 높은 레토릭한가 하는 그것 때문에 나머지 대여섯 권의 그 잡졸한 역사가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애당초 난세 치세의 개념이 안 먹히는, 세(世)가 성립하지 않는 시절 아닌가! 일개 학원 알바생으로 웅크리고 있으면서 촛불집회 하나 못 나가보고 있는 나로서 생각이 몹시도 헷갈린다.
  • 액션펌프라는 것이 엎어질 위기에 있다. 생각을 좀 가다듬을 시간을 달라고 해야겠다.
  • 최근 또 한 가지 문득문득 떠오르는 화두가 바로 후삼국 시대다. 생각거리가 없어지거나 사람들의 정치 성향을 가만 지켜보다 보면 정말이지 없던 바퀴벌레 튀어나오듯 튀어나오는 생각이다. 꽤 예전에 자칭 레이니걸 이모 씨는 천상 백제 사람, 친한 형 김모 씨는 천상 신라 사람이라는 직관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 이후로 이 직관이 수시로 떫게 떠오른다.
    현대한국사에서 그다지 오랜 전통도 못 가진 그놈의 지역감정이라는 것은 왜 하필 전라도와 경상도로 나뉘었을까? 난 그것이 행정구역의 문제라고 보지 않는다. 그것은 훈요십조에서부터 내려오는 바 이것은 백제와 신라의 싸움이다. 나는 후삼국시대 자체를 믿지 않는데, 이렇다 할 역사적 근거는 전혀 없으며, 다만 지금의 한나라당-민주당 구도를 보며 저것이 다만 10세기 한반도에서 꼭같이 일어났던 것뿐은 아닐까, 그리고 당시 민초들의 눈에는 그게 나라 싸움으로 보였던 것뿐 아닐까, 뭐 그런 되도 않는 억측을 할 뿐이다.
    백제는 문화 감각이 있고 온순한 듯하면서도 할 땐 하는 기질이고 자기를 드러내기보다 자기의 성과로 인심을 사고 싶어한다. 신라는 무엇보다 자기 사람들과 좋게 좋게 가는 것에 최대 관심이 있으며 문화는 다소 떨어져도 풍요와 권력을 잘 다룬다. 고구려는 천하를 상대하겠다는 기백과 과감함이 큰 대신 가장 문화적으로 척박하며 경제적 여유나 싹싹함도 부족하다. 나는 내가 천상 탐라인이라고 생각하는데, 삼별초와 4.3의 섬 제주는 오래 전부터 나라 아닌 나라로 육지와 서먹한 관계를 애써 지속해온 귀양살이 섬이었다. 탐라는 육지 어디와도 근본적으로 시야가 다르고 언어가 남다르며 나름 자족할 줄 아는 대신 어리숙해 보이거나 고지식해 보인다. 그밖에도 삼국에 속하지 못한 사람들이 나는 있다고 보는데, 가야, 옥저, 동예 등이 그렇다. 이런 지역들은 오늘날 선거를 해 보면 항상 예측 불가 지역으로 뜨고, 역사를 살펴보자면 항상 이 나라였다 저 나라였다 하면서 심경 복잡하게 소속이 바뀌어 왔다.
    이 셋이 땅따먹기를 했을 때, 첫 판을 이긴 건 신라였고 다음 판을 이긴 건 고구려 내지 동예였다. 이게 7차 교육과정의 중고교 국사 과정이 내게 가르쳐 준 삼국이다. 한국 정치인의, 한국인의 정치적 입장의 대강은 백제 사람인가 신라 사람인가, 혹은 고구려 사람인가로 나뉘는 것 같다는, 내가 생각해도 비상식적인 통찰이 현재까지의 결론이다. 어떤가, 각각을 민주당계열, 자유당계열, 북한정권으로 보면 그건 이제 슬슬 유사 역사학의 수준인가?
  • (글이 너무 길어져서 문단을 자름.) 여튼 그래서, 후삼국은 거대양당 및 양대체제의 권력투쟁이라는 외형을 빌어 한반도에서 여전히 진행되고 있고, 그것은 애당초 후삼국이라는 시기 자체가 허구이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것이 그냥 내가 막연히 하고 있는 생각이다. 역사를 고증과 사고와 견학 없이 암기식으로 배우면 이렇게 된다. 모르겠다. 그저 이게 나만 하고 있는 생각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누군가가 저도 왠지 그런 생각이 얼핏 들었는데 부끄러워서 말 못하고 있었어요, 라고 알려주기만 한다면 기쁘겠다. 이 정도로도 충분히 만족이 될 만큼 황당무계한 생각을 요즘은 안 하고 사는데, 그나마 이런 것 정도? 이것마저도 정치놀음에 동원되는 것 같아 입맛이 쓰다. 그저 백제 신라 고구려 캐릭터를 잘 연성하여 한바탕 백합 놀음으로 만들 수 있으면 그게 이 망상의 가장 좋은 용도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역사가 갑자기 이렇게 들이닥치는 건 나로서는 곤란하기도 하니까.

  • ------ 이하 14.02.25부터 ------

    수많은 오지랖퍼들의 추태를 보면서 간단히 오지랖이 넓다고 말하고 끝날 만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관심의 방향의 왜곡이고, 이는 훨씬 심각한 문제일 수 있다. 우리는 아주 집요하게, 구조적으로, 다층적으로, 자의와 타의의 혼합 속에서 관심을 뒤트는 법을 터득하고 있다. "관심을 가지지 않아야 할 대상"과 "관심을 가져도 되는 대상"을 구별하거나 임의로 지정하고, 거기에 충실하게 행동하는 능력을 기르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바닥에 저렇게 더럽게 널브러져 쏟아진 팝콘과 콜라를 보고도 어쩌면 이렇게도 다들 태평하게 지나치는가? 거기가 영화관 복도이기 때문이다. 도대체 어떻게 생판 남인 사람을 향해 "연아야 고마워", "저 러시아감독 샹놈의 가이스키" 운운할 수 있는가? 하루 온종일 TV와 네이버 뉴스에서 그들에 대해 집중해서 들려주기 때문이다. 특정 집단이나 권력을 들먹이고 싶지 않다. 이것은 그냥 우리가 동경하는 모델하우스식(式) 현 사회의 실체인 것이다. 순진한 사람이라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장면들을 지나쳐야, 사양지심이 있다면 마땅히 적정한 타이밍에 입다물고 지나쳐야 할 일에 쓸데없이 한껏 나서야 ‘촌티’를 벗고 쿨하고 냉철한 현대인의 삶이 되는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우리가 가만히 있기를 참지 말자고 말하고 싶지만, 그건 쉽지 않다. 아직은 결론이 나지 않는다. 이걸 쓰고 있는 곳이 학원이라서 그런가 보다. (...)
  • 보그 1월호를 다시 읽어 봤다. 크리틱 기사가 있다는 걸 몰랐는데 다시 보니 역시 하향 조정된 수준의 비평들이었다. 성형 광고가 성행하는 이유는 비단 광고 심의 기준의 변경 때문만은 아니다. 성형 광고를 포함하여 온갖 보기 싫은 광고가 얼마나 성행하느냐는, 기실 그 광고를 소비하는 사회 구성원의 내면적 허영심이 얼마나 크냐에 따른다. 자본주의란 요컨대 이론화의 탈을 쓴 허영심이고, 그렇기에 필연적으로 항상 침체해 있을 수밖에 없다. 그 빌어먹을 간극은 결국 숱한 머리와 손이 체제에 복속하며 생산하는 좀더 자극적이고 정교한 생산된 아름다움들인데, 마케팅이라든가 브랜딩이라든가 제품디자인 같은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 것들이 바로 그것이다.


  1. 앞으로는 고태사 이환희 김어진 이 셋을 내 맘대로 약칭해서 태환어 크루라고 부르겠다. 여러분이 앞으로 이 이름을 기억해 두셔야 할 것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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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드 폴의 "평범한 사람" 가사 전문을 일본어로 번안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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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2013, Kohji Kumeta and Kodansha Inc.

해냈다 해냈어! 드디어 쿠메타가 컬러를 받아냈어! (...)


012


1화 번역 및 식자를 하고 있습니다. 다 되는 대로 이 글 지우고 다시 올립니다.


제목 및 주요 개념에서 せっかち를 '성마른'으로 번역하도록 주장하고 싶어 일단 올립니다.

(성마르다=참을성이 없고 성질이 조급하다. 게다가 "생제르맹"이라는 이름과 뭔가 비슷한 발음이어서 가장 적절한 번역어로 대응한다고 생각합니다. 제발 이게 표준으로 채택되기를 ㅎㅅㅎ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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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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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사당에서 상일이랑 도현형이랑 얘기했던 것을 시작으로 좀 개인메모.

크리에이티브에 있어서, 무엇이 좋은가?


  • 안목이 없는 사람에겐 단순한 재미, 안목이 있는 사람에게는 세부적인 재미.
  • 최소한의 교양. 세계와 사회와 역사와 원리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와 존중.
  • 겉멋과 '깔부림'으로 승부하지 않는 태도.
  • 정공법으로 승부하기. ←내 취향
  • 제작의도의 선량함과 충실성. 2차 목적이 없는 크리에이티브는 욕먹지는 않는다.
  • Fantasy. 허구성을 지적하는 것이 무의미해지도록 하는 설득력.
  • Reality. '그럴 만하다'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것들.
  • '네타'와 감상자에 대한 분명한 관심.
  • 써야 하는 순간에 적절한 스킬과 트릭을 쓰는 것.
  • "타이밍"의 깔끔한 분배.
  • 감상자들을 토끼몰이하지 않는 열린 메시지.
  • 동종업계에 대한 존중. 독단과 독보는 한끗차이.
  • 전체이용가 아니면 12세 이용가. 중간점 혹은 전체집합을 찾으려고 애쓴 결과들.
  • 분명히 드러나는 특정한 취향과 일관된 개성. 무색무취는 소구하지 못한다.
  • "~는 척"하지 않는 그림들. CG를 떡칠할수록 보기 싫어지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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