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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드프레스를 약간 할 줄 알게 되면서 느끼는 건데 이게 살짝 조립PC 느낌이다.


  1. 2000년대 초반에 “PC를 삼보컴퓨터에 가서 사지 않아도 조립해서 쓸 수 있다!!!”라는 사실이, 우선은 너드들을 중심으로 굉장한 충격을 안겨주면서 퍼져나갔었더랬다. 아직은 그런 게 가능하긴 하냐는 분위기였다.
  2. 이후 막 너도나도 조립을 해보았다드니, 실패했다느니 성공했다느니 하는 이야기들이 막 오고갔다. 여기까지는 뭐 그냥 신기한 이야기.
  3. 그런 시절이 지나고 나니까 부품들이, 부품 생산 업체들이, 조립이 가능하게, 아니 조립에 좀더 최적화된 부품들과 옵션들을 내놓기 시작을 했다. 여기서부터 일반인들이 ‘어? 그럼 나도 이거 이거 사서 후기글 보고 여차저차 하면 되나?’ 하고 괜히 도전해 보기 시작한다.
  4. 그러더니 저렴하게 PC를 조립해 주는 회사들이 브랜드를 달고 나타났다. (주연컴퓨터라느니 여우와늑대라느니… 맞나? ㅋ 나중에 다시 조사해보기로) 이 단계쯤 오면 이제 “컴퓨터 좀 아는 형”들이 등장해서 동생들 컴퓨터 구매에 충고를 해 주고 그런다.
  5. 메이커 업체들은 AS가 잘 된다는 것과 품질을 보증해 준다는 메리트를 가지고 승부를 했고, 이런 대응이 있을 때쯤 용산과 강변에서는 뭐 그냥 PC 조립해주는 것이 핵심 사업이 되고 있었다. 여기서부터는 PC를 조립해서 쓸 수 있다는 건 상식인데 이제 그 구체적인 내용이 대중화되지는 않는 단계.
  6. 그 다음 수순이 되니까 이제 메이커들은 아예 다른 시장(노트북, 휴대폰…)을 개척해서 나가 버리거나, 아주 약간의 데스크톱 PC 시장 지분만 운용하는 정도고 이제 PC 구매만큼은 메이커와 조립PC 사이에서 충분히 잘 알아봤느냐 안 알아봤느냐, 내가 직접 하느냐 남한테 돈을 주고 시키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 그 선택의 결과만 놓고 보면 그 모든 옵션들이 서로 아무 차이가 없게 되었다. 이 시기쯤 되었을 땐 이미 486 586 같은 단위는 사라진 지 오래고 부품을 끼우면 끼운 부품 값을 컴퓨터가 그대로 하는 아키텍쳐가 다 돼 있고 웬만해서는 누가 어떻게 해도 큰 문제 안 일어나게 기술 튜닝이 돼 있는 때였으니까…
  7. 그리고 한참 잠잠히 있다가 슬슬 다음 파도가 밀려오는데 이번에는 아무래도 라즈베리 파이, 아두이노 같은 툴킷 컴퓨터가 아니겠는가 추정됨. 이제 관건은 이 대상의 얼마나 깊숙한 잠재력을 끌어내서 얼마나 대중적으로 만드느냐에 달리게 된다. 이거 잘 하면 위대해지는 거고 못 하면 뭐 그냥 팔로워 되는 거지.


뭐 대충 이 수순을 대입해 보건대, 앞으로 워드프레스 기반 웹 빌딩 전망은:


  1. 2010년대 초반에 “이 모든 사이트가 워드프레스 기반이다!!!”라는 게 업계 뉴스였다.
  2. 전반적으로 영어 거부감이 적어진 시대 덕분에 codex를 더듬더듬 읽어서 설치를 해 보고 “와 이거 정말 되네!”라며 운영 시작한 파워 워드프레서러 등장. 이때 대다수 일반인들은 뭐 그런 게 있는지 어떤지도 모른다.
  3. 이런 시기를 지나고 워드프레스가 안정화를 하니까 플러그인들과 각종 유무료 테마들이 갖다 쓰기 좋게 막 쏟아지기 시작한다. 이제 워드프레스 관련 책이 나와서 이거 보고 자기 블로그 제작에 도전하는 일반인들이 나오기 시작.
  4. 이제 워드프레스 홈페이지 구축 대행업자들과 각종 빌더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워드프레스 좀 쓸 줄 아는 형 오빠가 등장하기 시작한다 ←지금 여기!
  5. 이제 슬슬 더 많은 영세 컴퓨터 관련 업자들이 워드프레스 홈피 기본 구축을 부업 삼기 시작할 거다. 그리고 각종 유수 업체들은 프리미엄 관리니 뭐니 하는 것 갖다붙이거나 아예 다른 툴을 도입하거나 할 것이다. 적당한 장래에 다들 워드프레스 필수 플러그인 목록을 모르지는 않는데 그게 왜 필수인지는 잘 모르는 때가 올 거다.
  6. 좀더 시간이 지나면 업자(여기서는 뉴스 사이트, 쇼핑몰 등)들은 파이선이나 ror나 노드js 기반 웹애플리케이션으로 아예 넘어가 버리고, 다들 도메인부터 테마/플러그인 편집기까지 매뉴얼대로, (주로 돈 받고 대행해 주는) 누가 어디서 골라주는 대로, 시키는 대로 깔아서 고만고만하게 꾸려 운영하게 될 것 같음. 다들 큰 문제 없이 잘 굴러가지만, 그 사이트들이 크게 고급화되거나 확실하게 기술적으로 진보하는 일은 더 이상 안 일어나지 않을까.
  7. 그리고 지금은 웹애플리케이션 관련해서 이렇달 시동이 안 걸려 있는데 이제 슬슬 걸린다. 예를 들어서 다음 네이버 같은 데서 갑자기 파이선 무료호스팅을 해준다거나… php가 소개됐을 때 제로보드가 만들어졌듯이 이 시즌에도 무슨 프레임워크가 만들어질 거다. 그리고 그게 다음 시대의 워드프레스가 될 것임.


결론: 이 사이클은 항상 있어 왔던 관계로 항상 두어 스텝쯤 빨리 있지 않으면 파도타기는 절대로 불가능하게 된다. 그러니까 올라운더가 되고 싶다면 파이선을, 웹만 죽어라 팔 거라면 노드js를, 너드 프로그래머가 되고 싶으면 루비를 (그리고 더 심각한 너드가 되고 싶으면 LISP를) 지금 당장 배우기 시작합시다. php는 이를테면 프로그래밍 업계의 복사실 같은 곳이라 여기서 탈출 못하면 향후 20년 이 업계에서 밥 빌어먹기 힘들 것. 난 자바스크립트 이상은 도저히 익숙해지지가 않는 관계로 node.js로 갈 예정.


PS: 난 스페이스보다 탭. 1타에 되는 걸 2~4타로 하라는 것은 인류에 대한 죄악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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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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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범죄

2015. 4. 6. 23:15

1. 죄라는 말을 한자로 罪라고 쓴다. 사람이 안될[非] 짓을 해서 포박[罒]에 잡힌 모습을 형상화한 것인데, 옛날에 辠라고 썼던 것을 사연이 있어 바꿔 쓴 것이기도 하다. 처음으로 중국 역사상의 황제[皇]가 된 진시황이, 그 글자 모양이 흡사 자신만의 1인칭 재귀대명사가 된 皇과 모양이 너무 흡사하다 하여, 금지시키고, 대신 쓰게 한 글자가 바로 罪란다. 그렇게 많은 사람을 죽이고 그렇게 크나큰 불행을 초래했던, 그야말로 죄받을 짓을 하고 산 인간 진시황 덕에, 우리는 스스로[自] 쓴맛[辛]을 보러 들어간다는 의미의 글자 辠를 거의 쓰지 않게 됐다.


2. 스스로 쓴맛을 보러 들어간다? 사실 이 파자는 내가 한 것인데, 그 글자가 가진 뜻이 너무도 명백하고 쉽고도 심오한 덕이다. 죄를 지어 본 사람은 안다. 자기가 저지른 것이 죄임을 깨닫는 순간 그 사람이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이 파자에 관련된 것뿐이고 다른 것이 있을 수 없다. 아 내가 도대체 왜 그랬을까? 지금 내가 이렇게 후회하고 있으리라는 걸 그때의 나는 무슨 넋빠진 생각에 짐작을 못 했지? 아니 그 이전에, 도대체 나는 어떻게 이렇게까지 추잡하고 음흉하고 사악할 수 있었단 말인가? 이 마음은 나쁜 짓을 해서 오라를 받기만 하면 바로 갖게 되는 마음이 아니다. 그 죄의식(辠意識)은, 오직, 자기가 열심히 핥던 그 맛이 독극물의 쓴맛이었음을 뒤늦게 알아차린 사람에게서만 찾아볼 수 있는 의식이다.


3. 진시황 이래로, 드디어 오늘의 현대에 이르러서는, 인류에게 죄란 한 번도 辠였던 적이 없고 그저 정도의 차이만 더욱 맹렬히 편차를 보이는 罪로만 전락하고 말았다. 무슨 구체적인 예시를 대려 해도 차마 잔혹하여 뭘 댈 수가 없다. 유치원 선생이 애를 바늘로 찔렀다더라, 아파트 주민이 아파트 경비를 드잡이했다더라, 연예인들이 카메라 뒤에서 서로 반말을 주고받으며 싸웠다더라, 거진 300명 가까이가 영해상에서 수장되는 꼴을 그냥 쳐다만 보고 있었다더라, 무슨 SNS에서 바른말 잘 하던 아무개가 헛소리를 굽히지 않는다더라… 누군가가 안될 짓을 저지르고, 누군가가 그걸 목격하고, 어떤 사람들이 그 자를 포박해 데려오고, 수많은 비슷비슷한 사람들이 포박된 자를 네거리 광장에 무릎 꿇려 놓고 돌을 던진다. 오직 이 육체적이고 제도적인 순환만이 있을 뿐, 아무도 뉘우치지 않으며, 아무도 그 죄에 깔린 쓴맛의 맹독성에 관심이 없다.


4. '우리 안의 XX' 어쩌구를 논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밑에서 또 굳이 논하겠지만 일단 결론부터 논하자면, 본전도 못 찾을 소리 씨부리지 말라고 해라.) 문제는 바로 이것이다: 인간이 복잡하면 얼마나 복잡하다고, 도대체 지금 오늘 이 세상은 뭔 놈의 죄가 이렇게 많고 죄인이 이렇게도 많은가? 부연하자면, 그렇게도 많은 놈과 많은 일을 죄인과 범죄로 판결해 놨는데, 왜 세상은 여전히 갈수록 지옥도 일변인가? 왜긴 왜겠어, "범죄"가 너무 많은 바람에 죄가 죄로 발견되지 않아서지.


5. 범죄는 많을지 모르되 죄는 하나뿐이다. 이걸 어떻게 설명할까 고민하다가, 우연히 옥편의 뜻풀이가 마침 편을 들어주기에 한번 인용해 본다. 죄란: ④하나님의 계명(誡命)을 거역하고 그의 명령(命令)을 감수(甘受)하지 않는 인간(人間)의 행위(行爲). 조금 겸연쩍을 정도로 정통 기독교 신학의 이해를 명쾌하게 요약한 이 풀이는 그 ‘인간의 행위’의 명목(名目)을 전혀 제시하지 않는다. 그 내용이 뭔지, 형사법이 표현하는 죄명이 뭔지가 하나님에게는 정말이지 아무래도 좋은 것이다. 문제는 오직 거역과 감수하지 않음에 있을 뿐이다: 지키면 장차 선행의 보응이, 지키지 않으면 엄청난 형벌의 쓴맛이 너 자신에게 돌아올 줄을 알아라. 민수기 32장 23절에는 "죄가 당신들을 기어코 찾아낸다"라는 표현이 있다. 죄에 쫓겨본 적이 있는 사람만이 구사할 수 있는, 죄의 속성에 대한 절묘한 서술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리고 '죄인'이니 '범죄'니 하는 것에 응당 따라붙어야 할 것은 오직 이것뿐이지, 지금의 이른바 '조리돌림'이, '구알티'가, '신상털이' 같은 것이 무슨 죄를 주기나 준다는 말인지, 나는 도대체 알지 못하겠다.


6. 영어에는 sin과 crime의 두 단어가 있다. 우리말에서 전자는 흔히 '죄'로 번역되고 후자는 주로 '범죄'로 번역된다. 사전으로만 찾아 보면 둘 다 의미가 거의 비슷하므로 헷갈리기 쉬울까 봐 편집자들이 아주 친절하고 자상하게 nota bene를 달아놓기를, sin은 종교적/도덕적인 죄를, crime은 형사법상의 위법 행위를 주로 의미한단다. 이 구별, 이 사회과학적으로 실증적이고 정치적으로 올바르며 지적으로 상당히 진보한 개념적 구분이, 오늘의 결국에 와서는 좀 우습고 처량하다는 이야기다. 아주 간단히 말하자면, 요컨대 지금은 sin이 crime으로 둔갑하는데, 아주, 아주, 아주 많은 경우에 그렇고, 갈수록 더 자주 그렇고, 날이면 날마다 더 노골적으로 그런 세상이다 이 말이다. 사람은 오로지 그 지은 죄의 결과에 따라 처벌받고 배상 책임을 진다! 얼마나 알기 쉬운가! 말단 노동자 엎드려뻗쳐를 시키든 파업한 새끼들 혼구녕을 내 주든 원인 규명하고 선체 인양하라는 유가족의 요구에 대해서든 적당히 일금을 치러 주면 그만이다! 크으 앞으로 한 세기쯤 지나면 자기가 비고의적으로 저지른 죄의 값을 대신 치르기 위한 보석금 보험 같은 것이 나올지도 모르는 것이다…! 와 상상해 보니 좋나좋군? 그 날이 오면 교도소에 출입하는 종교인들은 다들 그 보험만 특별히 판매하는 라이센스를 얻어 다닐 성싶다!


7. 그러면 이쯤에서 '우리 안의 XX'론 일체가 왜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그래서 본전도 못 뽑을 이야기인지 간단히 짚고 넘어가 보자. XX의 자리에 "일베"라느니 "파시즘"이라느니 하는 것을 넣어 쓰는 모양이니, 아마도 그 XX에는 죄목 내지 그 죄목으로 불리는 신분의 호칭이 들어갈 것이다. 그래서 뭐? 우리 모두에게 그 죄목의 혐의가 있으니 대마불사론을 적용하여 그냥 crime의 범주에서 빼자는 건가? 그게 "빼박캔트"의 sin인데? 뉘우침이 필요하고 참회가 요구되고 그 쓴맛을 스스로 다 맛보아 먹어삼키고 앓고 낫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한, 절대 외부적일 수 없고 절대 물리적일 수 없는 죗값 치르기가 반드시 요구되는 허물이 그 XX인데, 그걸 그저 사회 구성원 일반이 완전히 결별하지 못하는 사안이란 이유만으로 마냥 용인하거나 이해해 주자 뭐 그런 건가? 야훼 하나님은 우리더러 죄를 여하간에 이해라도 해 보라고 하신 적이 있나? 부정 타니까 멀리 떨어져서 짱돌을 던져 으깨 죽이라고 하시지 않았던가?


8. 사실 현대의 가장 큰 사회악 중 하나는 회개 개념을 완전히 고사시켰다는 데 있다. 죄를 뉘우치고 거듭나는 방편들 중 반드시 필요한 내면적 방편으로서의 회개를 아주 세속과 동떨어진 신선 놀음으로 만들어놓은 감이 있다. 회개? 너 지금 나 보고 회개라고 했냐?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을 내고 나왔더니 이젠 뭐? 날더러 회개를 하라고? 왜, 그 다음에는 뭐 간디 비슷한 게 되어서 아프리카 애들한테 국수라도 나눠주라고 하지? 성인군자는 너나 많이 하세요, 나는 악착같이 벌어먹어도 살아남기 어려운 한 세상 내딴에 열심히 살다 이 모양 이 꼴로 갈 거니까! 내 인생에 뭐 보태줄 거 아니면 저리 꺼져!


9. crime은 sin으로부터 온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罪는 포박에 묶이는 것이기 이전에 辠, 스스로 그 죗값의 쓴맛을 감당하는 것이다. Criminal이 그렇게 많고 악성 범죄는 끊이지 않지만, 갈수록 자기를 'sinner'로 신앙 고백하는 자는 찾기 어렵고, 정말로 그 쓴맛을 뉘우치는 사람 역시 점점 찾아보기 어렵다. (아직토 트위터를 자중하고 있는 최규석 작가님 정도나 보일 뿐이다.) 범죄는 많은데 죄가 없고, 속죄는 더 없고, '죄'라는 단어와 개념의 사용 빈도는 더더욱 하락일로를 달린다. 다들 매일 똥 싸고 뒤를 안 닦는 재주가 있는 모양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인간이라면 밥 먹듯이 저지르는 후회와 탄식의 원흉으로서의 범죄를 처치하고 청산할 생각을 어찌 이리도 안 하고 살 수 있는지. 그러면서 어쩜 또 그렇게 옆 사람 인생 근처에서 구린내 난다고 면박은 그리도 잘들 주고받는지. 근데 왜 세상이 이렇게 미쳐돌아가는지 이해가 안 된다는 무식한 소리들은 또 어쩜 그리들 쉽게 하는지.




0. 어떻게 풀어야 좋을지 모르겠다가 네이버 사전 한 번 보고 정말 간만에 삘받아서 마구 써내려간 글이다. 몇 번 윤독하고 수정할 여지가 있음을 미리 밝혀 둔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표현의 세밀화에 관한 것일 뿐, 줄거리 자체는 거의 안 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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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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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다 팔아야 비로소 가처분소득/재산이 되는” 아파트 부동산을 왜 다들 팔지는 않으면서 그 집값을 떠받치려고들 하는가 이해가 안 돼서 혼자 끙끙 앓기를 어언 몇 년, 오늘 아침 어렴풋이 지하철 타고 뚝섬역 지나다가 떠오른 생각인데…

1) 100가구 사는 지역에서 재개발 조합이 결성된다
2) 200가구 이상 수용 가능한 초고층 아파트단지를 계획하고 거기에 사람들이 다 들어와 산다고 가정하면서 대박을 꿈꾼다
3) 200가구짜리 아파트가 건설된다 (각종 업자들은 이미 볼장다보고 퇴갤)
4) 80~120가구가 입주한다
5) 200가구 분수의 아파트가 평가 절하된다
6) 아파트 하나 바라보고 몇년간 별꼴 다 본 80~100가구의 조합원들은 어떻게든 그 손해를 키우지 않으려고 또 별짓을 다 하기 시작한다

…뭐 이런 건가?
내가 정말 몰라서 그럽니다. 누가 설명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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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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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킨 이름은 아직 안 정해졌습니다. 일단 개인용입니다. 색은 뭐 그냥 랜덤하게 뽑다 보니 미묘한 금색이 뽑혔습니다.



LIVE DEMO 보기




기본 화면일단 기본적으로 이렇게 생겼습니다.


일반 메뉴팝업메뉴 버튼을 누르면 메뉴가 뽑혀 나옵니다.


코멘트 입력란코멘트나 트랙백 넣는 곳은 이렇게 생겼습니다. 크 누가 만들었는지 겁나 이쁘다.


아이폰 가로모드 기본화면아이폰 가로모드 등의 환경도 완벽하게 지원(하려고 )합니다.


아이폰 가로모드 메뉴팝업메뉴 버튼을 누르면 상단 고정 메뉴가 쭈르륵 내려옵니다.




사용된 외부 리소스:

  • pureCSS (grids, buttons, forms)
  • jQuery + jQuery UI
  • FontAwesome


남은 작업:

  • 트랙백/코멘트 수 표시, 각종 로그페이지 구현(을 할 것인지 어떤지 결정하기)
  • 공유 버튼 추가
  • 기본 메뉴가 지나치게 길 경우에 대한 가로/세로 레이아웃 대책마련 (overflow: scroll 이란게 구체적으로 어떻게 먹히는건지 알아보고 구현할 필요)
  • footer에 이것저것 몰아넣기
  • 실제 태터툴즈 구조에 맞도록 id, class 조정 ← 서로 엉키지 말아야할텐데…
  • 최종적으로는 마크쿼리 스킨과의 차별성 확보. 사실 좀더 어그레시브하게 짜고 싶은 요소들이 많았는데 그렇게 하면 indication 내지 direction이 안될거같아 그냥 좀더 노멀하게 가고 있다. 아작스 로딩화면이니 첫화면 슬라이드니 하는 거창한 것들은, 이게 내 블로그를 위한 작업이지 남을 위한 것은 아직 아니므로, 일단은 구현하지 않을 생각.


이 블로그 스킨도 사실 꿰매고 기운 곳이 많아서... 이제 곧 싹 갈아엎은 이쁜 블로그 스킨으로 찾아뵐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기대하시라 ㅋㅋ

Posted by 엽토군
:

Synchronize by Singing Ants



물건도 정보도 장소도 존재하는 것도
Tons of things, infos and the places and all the existents,

좋은 노래 잘하는 사람도 이미 너무 많은데
Ten Millions of superior singers are already out there;


즐길 수 없었던 막다른 시절을 지나다가 문득
I was just on the way, through the difficult times when I just came to see:


어느 뜨거웠던 여름 아름다운 우릴 말하지 않으면
I better tell the story of how we were in beauty during that summertime,

사라지게 될까 봐
or it won't be there no more


사라지게 될까 봐…
Or it won't be there no more...



작년 크리스마스 직후쯤에 발매된 앨범인데 3분도 안 되는 곡 하나가 심금을 울린다. 인조이뜰 때도 좋았는데, 이번 앨범도 (거 참 이상한 일이지만 특히나) YWAMer 생활을 해 온 사람이라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다른 좋은 곡들이 정말 많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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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

출처: 루스터티스

우리의 벗이요 아이디어 창고이자 동료였던 Monty Oum씨가, 둘러앉은 친지들 곁에 누워 어제 오후 4시 34분경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열흘 전 Monty는 간단한 치료를 받다가 중증 알레르기 반응으로 혼수 상태에 빠졌었습니다. 병마와 열심히 싸웠지만, 결국 그의 몸이 회복을 하지 못했습니다. 병원에 있는 동안 그는 충분한 간호를 받았으며, 고통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Monty는 생전에 그의 반려자 Sheena 여사와 그의 부친 Mony님, 형제인 Woody님, Sey님, Chivy님과 Neat님 그리고 자매인 Thea님과 Theary님과 함께했습니다. 셀 수 없이 많은 그의 팬과 친구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의 삶에 우리가 포함돼 있었다는 것은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우리는 그를 기억할 것입니다.


금요일의 공식 발표 이후 시간 동안 여러분께서 베풀어 주신 부조는 유가족의 장례 절차에 쓰일 것입니다. 이 어려운 시기에 큰 변화를 만들어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Monty씨를 기리는 데 있어, 저희는 저희의 방식을 해 보고자 합니다. 조화(弔花)나 선물 대신, 뭔가 창조적인 것을 해 주십사 하는 요청을 드리는 바입니다. 상상력을 발휘하셔서 어떤 식으로든 세상을 좀더 좋은 곳으로 만들어 주십시오. 우리가 기억하는 만큼 Monty님을 기억하고 계신 분들은 이해하시겠지만, Monty는 할 수만 있었다면 분명히 그렇게 했을 겁니다.


그는 33세의 향년을 누리고 떠났습니다.


Monty씨, 사랑합니다.




Posted by 엽토군
:

자기만의 100점

2015. 2. 3. 20:01

누구나 자기만의 100점이 있다.


답안지에서 마지막으로 펜을 떼는 순간 "아 됐다"라는 탄성이 절로 튀어나오는 순간이 있는데, 그게 바로 자기만의 100점을 받는 순간이다.

사실 모든 원점수, 등급, 표준편차 따위는 그 성취감을 위한 계량적 보조적 지표에 불과하다.

자기만의 100점을 받는 기준은 자기만 알 수 있는 것이다. 남의 100점이 자기의 50점에 못 미칠 수 있고, 자기의 100점이 누군가에게는 200점일 수도 있다.

잘 하느냐 못 하느냐의 낮은 차원에는 서로 비교 가능한 채점 결과로서의 점수가 있고, 그 점수와 아무 상관이 없이 내가 얼마나 스스로 잘 해냈느냐를 따지는 더 높은 차원에 바로 자기만의 100점이 있다.


자기만의 100점은 굉장히 따기 어렵다. 자기합리화를 하지 않으면서, 객관적으로도 잘 하는 수준에 있으면서 스스로 보기에도 잘 했다, 다 되었다는 것을 확인하기란 여간 드문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일단 그게 한 번 달성되면, 사람은 드디어 다음 수준으로 올라간다.


잘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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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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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26장 25절

(개역한글)




‘sane’이라는 형용사에 꽂힌 지는 좀 오래되었다. 이 성구는, 다른 인상적인 말씀들이 그렇듯, 참되고 정신차린 말이라는 대단히 인상적이고 탁월한 표현이 그 자체로 갖는 힘 덕분에, 그 앞뒤의 “미치다” 같은 자극적 단어를 잊게 한다. 헬라어나 라틴어 원문들은 아무래도 sober(술에 취하지 않은, 깬)의 어감에 손을 들어주고 있는데, 유독 메시지 성경만큼은 sane이라는 유의어를 채택했고, 그 덕분에 insane이라는 단어가 무엇인가의 반대어라는 사실을 내게 확인해 주었다. sane을 사전에서 찾아 그 예문들을 읽어 보면, 유진 피터슨의 단어 선택이 ‘분별 있고’, ‘온당한’ 것이었음을 알게 된다. 정신이 또렷한, 미치지 않은, 사상이나 행동이 온건한.

sane, 맨정신일 때만 말할 수 있는 것이 몇 가지 있다.

적어도 바울 사도의 입장에서는, 정신을 차리지 못한 것은 그 자신이 아니라 나머지 사람들이었다. 왜냐하면 그에게 모든 일은 대낮에 햇빛 보는 것처럼 명석하고 판명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사형 판결에 넘긴 것은 동족 유대인들이었다. 예수님은 실제로 죽었다. 그러나 바울은 부활하여 나타난 예수님을 목도(目睹)하였다. 그것은 그가 기어코 유대인들, 그의 동족들, 온 누리 열방의 만민들에서 바리새 강경파 칠삭둥이 같은 자기에게까지 누구에게나 참된 메시아로 찾아가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눈을 비비고 다시 찬찬히 똑바로 읽어 보면, 지금껏 예언자들과 모세의 글에 기록된 바 장차 그렇게 되리라고 귀 따갑게 예언되어 왔던 것이 바로 이 일이었다. 그렇다면 그의 임무가 예수님의 부활을 전하는 사람들을 이단시하여 검거 추포하고 다니는 것에서, 반대로, 예수님의 부활을 알리고 입증하는 것으로 전환되리라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이 귀결은 그저 옳고 바르며 떳떳하기만 한 것이다.
실제 상황은, 바울 사도가 미친 것이 아니라 그를 둘러싼 버니게, 벨릭스(“아닌데요. 전 지금 지금 맨정신으로 맞는 말만 말씀드렸습니다.”), 아그립바(“임금님은 선지자는 믿으시죠? 믿으시잖아요.”)와 그를 핍박하고 고소 고발하는 동족 유대인들이 미친 것이었다. 그러니 형사법정 한가운데에서, 생사여탈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온통 둘러싸여, 로마 황제를 직접 보겠다고 상소한 사람이, 말실수나 헛소리는 고사하고 이렇게까지 태연자약할 수 있는 것이다. “제 말이 짧았는지 길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근데 전 임금님이나 여러분이 저처럼 예수님 믿는 사람이 되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저처럼 은팔찌까지 따라 차실 필요는 없구요.” 그 말을 듣고서 사람들이 폐정을 하고 일어나 나가는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라, 듣고 보니 그의 말이 맞는 말, ‘참되고’ ‘정신차린’ 말이었기 때문이다. “아 이 사람이 미친 건 아닌데.” “일단 형사사건이 아닌 건 확실하네요.” “근데 왜 괜히 로마 시민이랍시고 전하께 상소를 올리고 그러는지… 대충 훈방 조치 받고 끝내질 않구.”


그리고 지금은, 참되고 정신차린 말을 맨정신으로 할 수 없는 시대다.


수십 명 제복 차림의 남녀가 “고객님”을 “사랑”한다고 웃으며 외치는 시대. “저는 열정과 패기와 비전이 있는 인재입니다” 운운하는 몇 겹의 모순으로 포장된 자기서술이 가능한 시대. “avc=mc=p일 때 최대 이윤이 달성된다” 따위의 유사-물리학이 강의되고 암기되고 복사되는 시대. 리비도가,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마케팅”이, to부정사의 이러저러한 용법이, 후삼국시대가 원래부터 거기 있어왔다는 양 전제되는 가정들, 그리고 실제를 대체하는 과정에서 전제를 가정하여 성립되는 명제들. 토대가 없는, 토대와의 결별을 숭배하는 아스팔트 문명. 카지노 타운 문화. 그냥 그렇게 될 줄 믿으시면 아멘 하시라는 말을 듣고 그냥 아멘 하는, 그래서 사실은 아무것도 믿는 바 없는 아멘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보고도 우리는 금융을 근본적으로 의심하지 못하고 있으며, 압박 면접 같은 것이 극소수의 경우에만 유효한 인사 선발 방식임이 명백하게 주장되고 있는데도 너도나도 그것을 따라하고 있고, 우리는 마치 이 모든 insanity에 발맞춰야 한다는 듯 매일같이 서점에 열다섯 겹으로 쌓이는 “주목받는 신간”의 제목의 요구에 충실히 부응(하는 시늉을 하기 위해 그 책을 열심히 구입)한다. 주목받는 신간이라고? 장난하냐? 그럼 열다섯 겹으로 쌓아서 복도 한가운데에 거추장스럽게 늘어놓는 책이 주목받지 않고 배겨?


맨정신을 되찾자. 맨정신으로 세상을 다시 보자. 그리고 충분히 경악(驚愕)하시라.


주목받는 신간이 사실은 주목받는 것이 아니라 주목을 창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압박 면접이란 참말이지 면접이고 뭐고를 떠나 사람 대 사람으로서 도저히 주고받을 만한 대화가 못 된다는 것을, avc니 mc니 하는 용어가 괜히 헷갈려서 그렇지 사실은 파는 만큼 본전을 뽑아야 장사가 된다는 것쯤 동네 점빵 할머니도 다 알고 있다는 사실을, 그들 중 누구도 “고객”이 아니며 저들 중 누구도 누군가를 정말로 “사랑”하고 있지는 않다는 것을 좀 까발릴 필요가 있다. 먼저는 자기 자신에게, 그 다음에는 주변에, 할 수 있다면 온 세상에. 맨정신으로 세상을 보면 정말 끔찍하다. 그곳은 거짓말이 횡행하고 자기기만이 사방에 뒹굴며 허위의식이 온 천지에 가득한 곳이다. 당신은 이 거짓을 견디는가? 도대체 어떻게? 그리고 왜? 내가 대답해 볼까? 당신이 이 지구상의 거짓말과 자기기만과 허위의식을 감내하거나 즐기거나 묵인하고 있다면, 그것은 오로지 당신이 제정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베스도의 말을 빌리자면, 그렇다, “니(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희)를 미치게 한다!”


필요한 것은 학문이 아니라 맨정신이다. 용어가 아니라 건전함이다. 공식이나 법칙이 아니라 조리와 분별이다. “어떻게”에 대한 맹목적 천착이 아니라, “왜”를 끊임없이 재점검하는 참되고 정신차린 말들이다. 그 결과는 어떤 믿음일 수 있겠지만, 맨정신이 된 사람들 중 누구도 믿으시면 아멘 하라는 말을 듣고 그냥 아멘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건 참된 말도 아니고, 정신차린 말도 아니기 때문이다. 정말 당신이 sane하다면 당신의 말을 듣고 누군가는 벌떡 일어나서 당신에게 미쳤다고 소리를 지르고 있어야 할 터이다. 당신 뭐야,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나, 정말 못 들어주겠군요, 어떻게 그런 소릴 감히 이런 자리에서, 당장 나가세요. 왜냐고? 이 세상은 정말이지 insane하기 때문이다.


문득 정신을 차려 보라. 눈을 감고, 잠시 당신의 머릿속의 그 많은 학문들이 주는 생각을 비우고, 다시 눈을 떠라. 아주 새삼스럽게, 목전의 세계를 다시 목격(目擊)하라. 그리고 ‘맨정신으로’ 당신이 두 눈으로 똑똑히 본 것이 무엇인지 증언하기 시작하라.

세상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크게 놀라고 분개할 것이다.




맨정신 인터뷰 프로젝트

맨정신 인터뷰 프로젝트

(codename sane_interview, project initialized by yuptog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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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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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Prologue


정말 끔찍한 일은 말이지, 하고 그가 새벽 세 시 오 분 경의 무거운 침묵을 조용히 들어올렸다. 나는 우선 그의 들어올리는 목소리와 여전히 키보드 위에서 탭댄스를 추는 열 손가락을 관전만 하고 있으려고 했다. 정말 끔찍한 일은 내일 일어나지 않을 거야. 잠시 후, 응, 그게 무슨 소리야, 하고 앗차, 나도 그만 그 침묵의 링 안으로 난입했다. 그럼 언제 일어난다는 건데, 내일 일은 별로 안 끔찍하단 소리냐, 무슨 말을 그렇게 모호하게 해, 나도 모르게 너무 자질구레하게 되물어친 다음에 들려오는 컴퓨터 본체 냉각 팬 소리는, 그래서 무슨 야유처럼 내 말이 끝나고서부터 38평형의 텅 빈 사무실에 붕붕 메아리친다. 탭댄스가 잠시 멈추었다. 그가 안경을 고쳐 썼다. 그리고 정규방송이 중단된다.

내일 끔찍한 일이 일어날 거야. 하지만 지금껏 날 곁에서 지켜본 너만은 내일 그렇게 많이 놀라지 않았으면 좋겠어. 정말 끔찍한 일은 내일 일어나는 일 같은 건 아닐 거니까. 내일 너무 놀라거나 끔찍해하지 마.

그럼 정말 끔찍한 일이란 건 뭔데.

음, 그가 잠시 그답지 않게 잠시 뜸을 들이더니, 수천 년 전 제 나라 임금의 죄상과 차후 멸망상을 예언하러 가는 선지자가 그렇게 했을 법한 억양과 분위기로 조심스럽게 표현의 2차 시기를 시도했다. 이런 거 생각해 본 적 있어? 천재지변이 일어나서 어느 공항의 모든 교통편과 운항 일정이 전부 끊겼어. 사람들은 갈 길이 멀고 바쁘지만 아무 방도가 없으니까 발만 동동 구르고 있지. 그런데, 이게 중요한데, 공항 측에서 자꾸 무슨 표를 발급해. 어떨 때는 공짜로, 어떨 때는 돈 있는 몇 사람에 한해서. 잠시 후 비행기가 도착하면 제일 먼저 타고 나가게 해 주겠다, 버스가 오면 순서대로 타고 나가라, 소포나 중요한 걸 따로 보낼 수 있게 해 주겠다 운운하면서 말이지. 밖은 위험하니까 절대 나가지 말고 교통편이 올 때까지 무조건 실내에 있으라면서 심심하지 않게 음악이나 DVD도 틀어 주고 말이지. 그런데 이 공항의 유리창엔 온통 선팅이 되어 있단 말야. 왜냐면 밖은 이미, 음, 공항 주변이 싸그리 원폭을 맞고 무슨 호수 한가운데 인공섬처럼 고립되어 버렸거든. 그리고 공항에 직원은 없어. 모든 건 방송과 기계에게 맡겨 놓고 폭격 직전에 참모부터 말단까지 모두 대피했으니까. 사람들은 내일이면, 모레면, 두 시간 되면 다시 원래대로 일정을 계속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면서 별 의미도 없는 순번표 수십 장을 지갑 속에 꽁꽁 숨겨놓고 웅크리고 있는데, 공항은 그 반경 5km 근방이 민간 절대 통제 구역으로 영구 지정되는 거야. 자, 그가 속사포같이 쏟아내던 등골 서린 괴담을 중단하고 날 보았다. 그가 고쳐 쓴 안경이 번득이며 내게 물었다. 며칠이 걸릴까, 공항 내 생존자 절멸까지는?

붕, 붕, 냉각 팬 회전하는 소리가, 붕, 붕, 38평형의 텅 빈 사무실에서 수도 없이 메아리쳐 울었다. 그는 다시 모니터로 그 안경을 돌리고, 몇 번의 거액의 주식거래를 대강 마쳐둔 뒤, 마지막으로 몇 개 은행의 개인 계좌 잔액을 확인하고는 망설임 없이 USB 메모리를 뽑고 드라이브 포맷 작업을 예약해 두고 일어났다.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까지는 대강 짐작했다.

이제 어떡할 거야?

글쎄, 신문배달을 할까 싶어. 나도 내집마련의 꿈을 좀 이뤄야지, 안 그래?

우리는 웃지 않았다. 그 그가 무슨 작은 종이를 두 장 내밀었다. 무슨 영수증이 한 장, 하와이주 어딘가를 가리키는 주소가 적힌 쪽지가 한 장이었다.

이게 뭐야?

천국으로 가는 주소랑, 그건...

조선일보 구독 신청 영수증을 왜 나한테 줘? 이거 우리 집 주손데?

지옥을 보여준다는 순번표야.

나는 영수증에서 떼지 못하던 나의 시선을 번쩍 들어 그를 보았다. 어딘가 대단히 자랑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 몹시 불쾌해하는, 흡사 지옥 문 앞까지 잠시 순찰을 나간 성 베드로 사도처럼 내게 말했다... 아니 웃어보였다. 드드득, 예약 작업이, 드드드드득, 시작되어, 드드득, C드라이브가 바스러지고 있었다.

너에게 지옥을 보여줄게.




군대에서 물려받아 쓰던 노트에 적혀 있던 초고. 김진혁님의 "너에게 지옥을 보여줄게" 한 문장에 꽂혀 있던 시절에 쓴 것이라 구체적인 시놉은 없고 프롤로그밖에 없다. 이걸 쓸 당시에는 그저 막연히 상상만 했을 뿐인데, 정말 이 그림에 대충 들어맞는 사건들이 한두 개가 아니라서 뭐라 할 말이 없달까 도리어 창작 의욕이 솟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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