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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이 글은 다음 팀블로그 게시물에 대한 첨언 내지 주제 넘은 오지랖이다.
[아무키 대잔치-트럼프①] 정치는 도덕이 아니다. 선악도 아니다. (이찬우의 엔터 더 보이드 @ 팀 블로그 아무키)


1.

물어보니, 이 글의 필자는 사람들이 안희정을 지나치게 싫어하는 상황이 견디기 어렵다고 했다. 트럼프(의 지지자)를 극렬하게 싫어하고 꺼리는 장면 역시 낯설다고 했다. 그래서 쓴 글이라는 취지다. 이해 못 하는 바 아니다.

"그러면 차라리 제목을 '안희정이 뭘 그렇게 잘못했습니까?' 같은 걸로 저돌적으로 뽑고 전개에서 '미국 같은 극단적 사회로 나가고 싶은 거냐, 토론 좀 하자' 하는 쪽으로 가면 어떠니" 했는데, 말만 알겠다 하고 그만이었다.

그리고 ppss에 이 글이 팔리자마자 가차 없이 달려온 베댓 두 개가 이런 류의 논지의 구멍을 완벽하게 가리켜 주어서 달리 더 붙일 말이 없다. "전제가 틀렸습니다. 우린 지금 진보와 보수의 싸움이 아니라 상식과 몰상식의 싸움을 하고 있는 거에요." "누가 보면 우리가 배제해서 일베 생긴 줄 알겠네."


2.

전제 얘기가 나온 김에 몇 개 전제를 정돈하고 지나가자. 한국의 진보-보수는 형식적으로 지나치게 경도되고 내용적으로 비표준적인 것이 사실이다. 냉철하게 분석하면 '자유주의 정당'이 되는 민주당과 '자유주의+사회민주주의 언론' 정도로 분류 가능한 한겨레가 각각 "대중 진보정당"과 "빨갱이 신문"으로 불리고 있고, 사실상 민족주의적 세미파시즘에 가까운 것이 "애국보수"로 참칭되고 있으며, 중간적 진보라 부를 만한 플레이어는 별로 없고, 있느니 저 왼쪽 내지 아래쪽(어딘지 모르겠다는 점에서 사용하는 비유)으로 가고 있는 극소수 좌파가 있다. 자세한 건 김규항 선생께 여쭤보자.

아무튼, 그런가 하면, 누구의 워딩에서 시작되었는지 알 수 없으나 흥미롭게도 적절하게, '상식'과 '비상식'의 이념 대립이 존재한다. 아마도 이것은 현실정치의 층위가 아니라 정치학, 정치철학의 차원일 것인데, 한국에서는 이 상부구조가 하부구조에 대단히 영향을 끼치는 감이 있다. 쉽게 말하자면, "사람이 죽었는데 어떻게 저런 말(생각)을 할 수가 있나", "사람이 저러고도 부끄럽지가 않을까", "자기 친족이 당해도 저럴까"로 대표되는 상식의 진영이 있고, 그것조차 알지 못하는 파렴치의 진영이 있어 그들을 상식 진영에서는 몰상식, 비상식이라 부른다.

여기서 이 글의 진짜 핵심 문제 그리고 원본글에 대한 나의 오지랖의 핵심 논제를 꺼내 본다. 자기를 상식의 편이라 부르는 사람들은 있는데, 자기를 비상식의 편이라 말하는 사람은 없다. 어떻게 이게 가능하지? 이건 좀 이상하지 않은가?


3.

힐러리 진영이라고 쉽게 부르자면, 그들이 트럼프 진영을 대차게 까고 조롱하며 승리를 확신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스스로를 상식의 편으로 두었기 때문이다. 설마 사람이 이걸 모르려고? 아니 어떻게 "자박꼼"(내게 전권이 있다면 그의 막말 'grab by one's pussy'는 이렇게 번역시킬 것이다)을 입으로 내뱉을 수가 있지? 국경에 장벽이라니 저 사람 미쳤어?

그런데 그게 정말 그야말로 몰상식이었다면, 그걸 듣는 이들, 그걸 말하는 이들, 그걸 말하는 이를 지지하는 이들이 사람으로써 과연 얼굴을 들고 눈을 뜨고 그걸 기억이나 하려고 했을까? 정말 몰상식한 일은 그렇게까지 화제가 되지 않는데 말이다―깊은 밤 지하철이나 버스 좌석에 앉은 채로 구토하는 사람에 대해 우리가 그렇게 하지 않듯이. 하지만 트럼프는 주목되었고 논의되었으며 심지어 누군가에게는 환영을 받았다. 이 현상의 성립 자체를 이상하다고 생각해본 적은 혹시 없는가?

이게 어떻게 가능했을까? 간단하다. 트럼프가 누군가에게는 몹시도 상식이었다는 점이다. 그게 진보든 보수든 파시즘이든 뭐든 그건 정말 아무래도 좋고, 상식이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들은 리버럴에게 공격받아서 더욱더 트럼프의 세계로 몰두한 것이 아니다. 자기의 상식을 몰상식으로 공격받다 못해 비빌 언덕을 찾다 보니, 자기가 상식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한계선에서 가장 강력한 무엇을 찾은 것뿐이다. 아무 내용도 없는 구호 "다시 위대한 미국을"이란 바로 단 하나 이 심정을 성문화한 것이다.
윗글에서 인용해 온 뉴욕타임즈조차도 이 층위까지는 다루지 않았지만(적절한 처사였다, 이런 뇌피셜 잡소리보다는 물증이 있으니), 나는 이 차원이 더 맞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뭐 트럼프나 힐러리를 공약 하나 발언 하나 논란 하나 일일이 팩트 체크해 가면서 지지하고 반대할 턱이 있나? 하물며 실질 문맹률 얘기가 나오는 이 나라에서는 더군다나.

그래서, 나는 윗글이 그런 차원을 좀더 말해주기를 바랬다. 이건 좌우 진보 보수의 문제가 아니라 서로 다른 상식 클러스터(다발)의 조우(encounter)고 충돌이라는 점을 말이다. 어떤 상식 다발은 주목되고 논의되고 발언권을 얻을 기회를 못 얻었고(원글에서는 그걸 "배제"라고 불렀다), 그러니 일베도 탄생하고 뭐도 탄생하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걸 한국에서 엄청나게 모호하고 틀리게 사용되고 있는 '진보', '보수'의 워딩에 넣어 버리니, 페이스북 댓글 두 개와 맞다이를 뜨는 초라한 행색이 됐다.


4.

자 그러면 상식 다발이라는 말까지 나왔으니 여기서부터는 내 패를 꺼내야겠지. 그러면 지금 유효하게 작동하는 정치철학 및 사회이념 대립각은 구체적으로 무엇 대 무엇으로 갈라서고 있는가? 제목에 쓴 이상한 단어들을 여기서 드디어 꺼낸다. '논리적 이득'이라는 상식의 세계와 '인간적 숭고'라는 상식의 세계가, 일단 이 나라에서는, 지독하게 부딪혀 피 튀기는 중이다.

논리적 이득이라는 가치 체계란 무엇인가? 그것은 우선 우리에게 냉철하고 논리적인 사람이 될 것을 요구한다. 그런 사람이라면 응당 논리적 계산을 통해 가장 공리주의적으로 선한 선택을 이해하고 동의할 수 있어야 한다. 그걸 해내는 것이야말로 가장 잘 배운 인간의 덕목이다. 그리고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가 인간이 뭔가를 누리고 즐거워할 수 있다면, 그 논리와 계산과 선택의 과정에서 '개이득'을 보는 것이다.

인간적 숭고라는 가치 체계는 무엇인가? 그것은 무엇보다 우리에게 사람다운 사람이기를 요구한다. 그런 사람이라면 응당 인본 도덕과 사회의 정의를 이해하고 깨우쳐 모든 선택과 행동에서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걸 해내는 것이야말로 가장 떳떳한 인간의 덕목이다. 그리고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가 인간이 뭔가를 누리고 즐거워할 수 있다면, 바로 그 떳떳함, 쪽팔리지 않음, 요컨대 숭고하고 멋진 삶 자체인 것이다.

무기질적으로 병치해 놓고 보니 뭐 둘 다 뭐 아주 이상하거나 괴랄하지는 않지 않나? 하지만 우습게도, 이게 한국 정치경제 이념의 대립각의 기반이 되는 순간부터는 이런 가치 체계가 서로에게 정말 괴이하고 끔찍하게 보인다. 한쪽은 다른 쪽이 "보상금 받았으면 조용히 계시고 순수한 유가족 아니면 빠져라" 운운하는 벌레로 보이고, 한쪽은 다른 쪽이 빨갱이 선전선동에 놀아나서 '우덜식 ~주의'에 빠져 사람 쥐어패는 참교육이나 시전하는 "씹선비"로 보이는 것이다.


5.

사실 사람이 좌뇌가 있는가 하면 우뇌도 있어서, 이 둘 중 한 쪽 가치체계만을 이해하고 살아가기란 쉽지도 않으며 올바르지도 않다. 그리고 뻔하나마 굳이 언급하자면, 딱 이 두 가지 상식 다발만이 성립 가능한 것은 아니다. 더 많은 상식의 연쇄들이 상호 연관하며 가치체계를 구성할 수 있을 것이며, 그런 가치체계가 더 다채롭게 구성될수록 다원화된 사회라고 볼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그래서 우리는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 개이득을 찾으며 논리적 실속을 찾으면서도, 어느 정도는 졸렬한 소인배가 되지 않으려 애쓰기도 한다. 거칠게 사례를 들자면, 일베 유저들 중에 어디 후원금 내거나 무슨 활동을 착실하게 하는 사람도 많고, 오유인들 중에도 악덕 알바생이나 "꽃뱀"(!!!)에게 당할 뻔해 혼났다는 사람도 꽤 있잖나. 평범한 사회적 존재들은 다들 으레 그렇게 유기적이고 총체적인 상식의 세계를 구성하고 거기 맞춰서 살아간다. 자기의 상식이 세상의 상식과 좀더 많이 겹치기를 바라면서.

그런데, 모두가 점점 익명화되어가는 요즈음에 특히 더 두드러지는 바, 더 많은 사람들이 몇몇 특정한 상식적 발상들만을 지나치게 선택하여 기능적이고 불완전한 인격을 형성한 채 전적으로 횡행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 문제가 된다. 자 이 타이밍에 내가 혹시 여러분께 예를 들어 Social Justice Warrior나 "넷페미"에 대해 어떻게들 생각하시냐고 물으면 어떨까?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이해했다면, 답하지 않아도 좋다.


6.

나는 사람들이 자기의 상식 다발의 명세를 좀 스스로 알았으면 좋겠다. 아 나는 무엇은 옳다고 믿고 무엇은 안 된다고 믿는구나. 아 내가 지지하는 것은 전체 사회에서 어느 정도 지지를 받는구나. 아 이러이러한 생각은 입 밖에 꺼내면 안 되는 거구나. 그리고 이걸 가능하게 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몇몇 선진 사회가 수 세대에 걸쳐 끈질기게 훈련시킨 토론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윗글에서도 잘 말했듯이 우리에게도 그게 필요한데, 우리에겐 그게 없다. 그걸 가질 시간과 차비와 여유와 사고력이 없다. 우리가 가진 것은 '좌표'뿐이다. 내가 원하기만 하면 LTE의 속도로 욘나게 달려와 나의 불쾌한 인지부조화를 해소해 줄 준비가 돼 있는 선택적 정보들만이 온 사방에 가득 둘러쳐져 있을 따름이다. 여기서 가장 유약하고 우스운 것은 평화 협정 제안이다. "당신의 생각을 상식의 한 축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하겠어요!"라는 시그널, 그것처럼 모두에게 코웃음을 살 만한 행태는 없을 듯하다.

나는 여기서 멸망의 유황불 냄새를 맡고 있다. 다음 토론이란 영영 없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 애초에 사람들이 뭐에 대해 뭘 생각하는 누가 나와 어떻게 토론해야 되는지조차 몰라서 온라인에서 하던 행태 그대로를 오프라인에 옮겨 놓으리라는 예상, 모두의 상식이 모두의 그럴싸한 논리로 정당화될 수 있기에 오히려 더더욱 모두가 모두의 비상식에 찔리고 다쳐 으르렁거리는 광경, 뭐 그런 것들만이 머릿속에 가득하다.

그래서, 원글의 술에 물 탄 듯한 결문 주장이 그토록 싱겁다. 민주주의를 다시 시작할 때라고? 난 지금 한 집안이 갈라져서 서로 맞서는 남북전쟁 같은 꼴을 보고 있는데 말이다.

Posted by 엽토군
:

#AnimeRight

2017. 2. 11. 13:32

아무도 정리를 안 해 줘서 빡쳐서 내가 정리함. 틀린 거 있으면 제보 바래요. namu.wiki를 제외한 모든 대상에 대해 CC BY-NC-ND 4.0의 저작권을 적용하며, 남우위키 자체에 대해서는 어떤 형태의 언급이나 공유, 인용도 불허합니다. 참고를 해서 공부를 한 다음에 직접 작성하시길.



개요: 도대체 #AnimeRight이 뭐 하는 건가?

미국 SNS에서 트럼프 정권 수립을 전후해 난데없이 떠오르고 있는 트렌딩 해시태그. 주로 트럼프가 나온 사진에 “Make America Great Again” 모자를 쓴 토시노 쿄코, 타냐 데그레챠프 등이 합성되어 돌아다님.


현황: 무슨 일이 얼마나 심각하게 일어나고 있는 건가?

애니메이션 및 그 속의 캐릭터들이 자기 권익을 찾으려고 언동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짤이 대부분. 결정적 영향력은 없으나 사고의 빈틈을 선제적으로 공격하는 meme인 것은 확실해 보임.

실시간 실물은 트위터 해시태그 #AnimeRight에서 확인 가능.


전개: 어쩌다 이렇게 아스트랄한 사달이 났나?

  1. 힐러리 지지자인 어느 피자집 사장님의 이메일이 위키리크스에 유출됨
  2. 미국의 트롤밭 커뮤니티 4chan에서 개드립 시전. “이메일 본문 추신의 cheese pizza는 child pornography의 은어다, 앞글자가 같지 않냐” 등
  3. 이를 기반으로 힐러리 캠프를 소아성애자 집단과 연관시키는 가짜 뉴스가 생산됨
  4. 이 가짜 뉴스가 트럼프 지지자들 위주로 확산됨
  5. “그 피자집 지하실에 있을지 모르는 어린이 납치 이동용 지하 통로를 수색할 목적”으로 괴한이 이 피자집에 총기를 난사함
  6. 이로 인해 “Pizzagate”(피자게이트) 공론화,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소리로 일축됨(애당초 피자집 건물에 지하실이 없음)
  7. 그러나 힐러리 캠프를 어떤 식으로든 매도하고 싶었던 트럼프 지지자들은 음모론을 확장하며 그들을 의심할 ‘대안적 권리’를 주장함
  8. 여기까지의 전개가 4chan의 트롤들에게 “가짜 정보가 현실 사회정치 상황을 우습게 만들 수 있다”라는 신호로 작동함
  9. ‘애니메이션 권리’라는 해시태그를 만들고 애니메이션 캐릭터들이 트럼프를 지지하는 듯한 합성 짤방 양산 ←지금 여기!


해석: 그럼 이제 웃어넘기면 되는 건가?

  • 결론부터 말하자면 = NO, 위험한 징후이다

  • 이유 1: 결국 파시즘의 징후인 alternative something의 연장에 불과
    • “대안적 무엇무엇”은 허구적 허위관념을 언어화해 공고히 하는 체계. 미국 극보수층을 중심으로 유행하고 현 정부 백악관도 언급한 바 있는 alternative facts(대안적 진실)이 대표적
    • 이는 파시즘 체제 유지 구성 요소로서 다양하게 경고되고 있다. 조지 오웰의 «1984» 속 ‘신어’라는 개념이 대표적
    • 방식이나 형식의 문제가 아님, 아젠다와 사실관계의 치명적 왜곡이 문제

  • 이유 2: 희화의 겉포장에 감추어진 메시지 자체가 파괴적임
    • 외관상으로는 아니메 소재를 활용한 무해한 패러디 밈으로 보임. 일상 코미디만 말할 것 같던 애니 등장인물들이 정치 얘기를 하는 것이 일견 우스워 보이는 면이 있음
    • 그러나 내용상은 국경장벽 정책 찬동, 아베 정권과의 밀착 등 미국제일주의적이고 반동적/퇴행적인 메시지들로 구성
    • 유사하게 확산된 #AltFurry(동물들도 트럼프에 반대한다는 식의 뉴스를 희화한 트렌딩 해시태그)와 전개 방식이 매우 흡사

  • 이유 3: 미국 내 애니메이션 문화 애호가들을 과다 대표함
    • 상당수의 일본 애니메이션 캐릭터들을 트럼프 지지자로 둔갑시킴
    • 이것이 ‘아니메의 권리’라는 이름을 빌어 유행한다는 점에서, 미국의 일본 애니메이션 애호가들은 대체로 도널드 트럼프 지지자일 것으로 추측하게 하는 역효과 있음
    • 비슷한 한국 사례: “애니프사”로 일반화되는 정체성

  • 이유 4: 북미 보수 백인 애니메이션 팬들이 사실은 잠재적 위험을 지닌 ‘샤이 트럼프’가 아닌가 하는 가능성을 암시하는 징후임
    • 이유 3에서 제시한 위험과 별개 문제
    • “애니를 좋아하는 사람들 중 ‘알고 보니’ 트럼프적 극우 민족주의적 성향의 소유자가 다수였을 수 있다는 것”
    • 이들은 어떤 식으로 트롤링을 할지 모르는 사람들이므로 사회정치적 합의선을 지나치게 쉽게 붕괴시킬 수 있다
    • 비슷한 한국 사례: 일베로부터 파생된 네오아니메, 수용소 등의 이용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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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

예전부터 농담으로 써먹던 레파토리. 이 나라 돈은 다 어디로 갔느냐? 크게 3군데, 부동산에 묶여 있고 주식에 묶여 있고 4대강에 쏟아져 있다.
이 소릴 하면 너도 나도 그저 잘 웃었다. 굉장히 과장한 일반론이거든.

근데 최순실 스캔들 이후로는 이게 죄다 실상인 것으로 드러나 버려서, 이 소릴 생각할 적마다 다만 아찔하다.

Posted by 엽토군
:

텍스트

2017. 1. 10. 21:49

최근 읽고 있는 텍스트는 위키문헌에 올라와 있는 각종 연설과 선언, 문학 작품들이다. 위키인용 랜덤도 가끔 돌리고 있다. 한국어 위키인용집은 좀 빈약해서… ㅋ 그리고 팟캐스트로 KBS 라디오 시사고전을 틈틈이 조금씩 듣고 있다.

사실 알은 지는 3년쯤 됐는데 중간중간 구독을 쉴 때가 있었다. 그래서 그건 요즘 꾸준히 들을 계기가 있어 다시 듣고 있고, 또 뭐 있더라… 아 그래, <아수라>, <라라랜드>, <너의 이름은.>, <아가씨>처럼 모두가 다 넋놓고 텍스트로 읽고 있는 작품들은 가급적 안 읽을 작정이다.



여기에는 뭐 우열의 차원이 아니라 원초적인 것이냐 부차적인 것이냐의 문제가 있다.


위키문헌 랜덤을 돌리다 보면 원초적인 무엇들과 마주치곤 한다. 김명순이라는 역사상의 여성주의자를 만나기도 하고, 환단고기 본문을 읽게 되기도 하고, 이명박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시위 때의 기자회견문이나 박근혜의 개헌 제안 국회 연설 원문을 접하기도 한다. 그것들은 분명 오늘날 숱한 트윗과 카드뉴스와 소리 소문으로 가공 각색되어 전해지는 것들이지만, 따지고 보면 그 원문을 내가 직접 정독한 적은 없지 싶어서, 전혀 새롭고 경이적인 경험이 되고 있다.


라디오 시사고전도 마찬가지다. 3분이라는 시간이 짧은 편이고, 그걸 대다수 청취자들에게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려다 보니 좀 안 맞는 예시나 대수롭지 않은 군말들도 왕왕 들어가곤 한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이 절대적으로 지키고 있는 한 가지 원칙, 동양 고전 속의 원래 한문을 제대로 된 방식으로 새겨 읽고 뜻을 푸는 것만으로도 이 기획은 충분히 훌륭한 데가 있다. 덕분에 나 같은 사람도 “불학자는 수존이나 행시주육이라” 같은 문자를 쓰고 산다.


방금 잠깐 밝혔지만, 요즘은 모든 텍스트가 아무 컨텍스트에 집어넣어도 쭉쭉 흡수되도록 굉장히 잘 커팅되고 소화되고 표백되어 다른 뭔가의 재료로만 쓰이고 있다. 흡사 식자재 가공육과 같다고나 할까. 요즘 시절에 좋은 제작자, 훌륭한 크리에이티브란 바로 이 식자재 가공육에 무슨 양념을 치고 어떤 조리법으로 끓여서 어느 국물에 담가 내놓느냐에 달린 것이다. 그걸 잘 한 것이 그 무슨 영화니 극장용 애니메이션이니 하는 것들인 모양이다.


마침 우연찮게도 신카이 마코토 감독 역시 이르기를 <너의 이름은.>을 짓기 꽤 오래전에 한동안 일본 고전 문학을 탐독하면서 서로의 몸이 바뀌는 설정을 접할 일이 있었다고 털어놓은 바 있다. 그렇다면 그 고전 문학은 바로 그 당대 시절의 일본 대중에게 <너의 이름은.>만큼의 감동을 주던 무엇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과연 이게 우연일까. 난 아니라고 본다. 요즘 사람들이 굉장한 영화라고 칭송하고 있는 작품들이 다들 이런 식이다. 고전 텍스트라는 이름의 몇 가지 식재료를 가장 현대적으로 버무린, 어쩌면 그뿐일 수도 있는 결과들.


세상이 비인간적이기 짝이 없어져서, 우리 중 대다수는 2시간 정도 가만히 앉아 생각을 할 시간이 영화 볼 때 말고는 없는 지경에 왔다. 그래서 사람들은 라라랜드와 너의 이름은.에 지나친 의미 부여와 과대 해석을 수행한다는 감이 있다. 사실 그 패러디 포스터들은 벌써부터 질리고 언론 보도가 나가는 시점에서는 이미 식상하다는 감이 있다. 사람들의 일반 교양 수준이 지금보다 책 한 권 정도만 더 높았더라면 이 영화들은 그냥 잘 만든 영화, 논술용 영화 정도로 적당하게 언급되고 지나갔을 것들인데, 참, 싶다.


그래서 일부러 안 볼 생각이다. 사실은, 다들 하도 떠들어서 이젠 1도 보지 않았는데도 어느 정도 그 내용이 추측이 된다. <아수라>는 그냥 누가 착하네 나쁘네를 설명할 것 없이 내 눈에 거슬리는 새끼는 다 조져버린다는 이야기일 테고, <라라랜드>는 현실적이기만 한 현실에서 잠시나마 완전한 삶을 누리는 촌각에 대한 환상일 테고, 등등 말이다. 썩 틀리지 않지 않은가? 이렇게 잘 응용되고 가공 조리되어 무슨 맛일지 대충 짐작이 되면, 안 먹는 것이 나을 수도 있는 것이다.


쓸데없이 길게 썼는데 결국 요약하자면 난 응용 제작된 상업 콘텐츠들보다는 좀더 원초적인 텍스트들을 보려고 한다. 요즘 그게 내 취향이기도 하고, 그게 불편한 팝업을 두어 개 줄이는 원초적인 방법일 거라고 믿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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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

그들이 없던 7년간의 언론





7년 그들이 없는 언론 포스터드디어 개봉한다. 7년 그들이 없는 언론



새삼 끔찍한 계절이었지 싶다. 7년 전이면 2010년인데 그렇게 먼 과거가 아니다. 이명박근혜라는 워딩 말곤 쓸 게 없는 잃어버린 세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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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

 여기에 덧붙이는 글.


  1. 세상에 CIA보다 많은 것을 아는 집단이 존재하지 않는 오늘날, 사실은 예로부터 본질적으로, 지도란 정보가 아니라 데이터다. 그것도 개중 가장 단순하고 중립적이며 기계적인 축에 드는 데이터. 지도가 정보가 되는 순간은 둘 중 하나다. 거기에 정말 시시콜콜하게 누가 어디에서 뭘 한다가 다 적혀 있거나, 아예 전인미답의 땅의 지도이거나.

  2. 사실 이 나라에서는 지도라는 데이터로부터 정보를 뽑아내는 사고력을 발휘할 일이 퍽 드물다. 예를 들어 쉽게 말하자면, 한 동네의 사회지리적 정황을 가장 잘 파악하고 있는 사람이 그 동네 전담 택배 기사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소리.

  3. 초딩들의 휴대폰으로도 GPS를 잡는 오늘날 “기밀 군사지도”는 형용모순에 가깝다. 기밀 지도란 결국 정보 비대칭성으로 우위를 점하는 전략의 핵심 요소인데, 현대 전술에서 정보 비대칭이 뭐 얼마나 큰 변수인가? 핵미사일 개수가 진짜 변수지.

  4. 청와대가 어디 있는지(효자동 뒤에 있다), 국정원이 어디 있는지(헌인릉 뒤에 있다), 서울화력발전소가 어디 있는지(상수동 뒤에 있다)를 지도에서 숲 이미지 합성시켜 누락시키는 게―네이버는 진작부터 그렇게 했고 다음은 울며 겨자 먹기로 고치고 있다―과연 군사 안보일까?
    진짜 군사 안보란 건 지구상의 위도-경도 좌표로부터는 좀 자유로워야 하지 않을까? 예컨대 그라운드 제로 사방 5km를 쑥대밭으로 만들어도 핵심 정보와 지휘권과 전투력이 손망되지 않게끔 하는 일이 군사 안보 아닐까? 다른 예를 들자면, 누구나 청와대에 들어와서 관광하고 구경하고 다 하지만 국가 기밀은 기밀대로 잘 지켜지는 그런 것이―백악관이 그렇게 하는데―군사 안보가 아닐까?

  5. 지도 유출을 두려워하는 논리의 기저에는 특정 장소에 외부 유입이 들이닥치는 순간 모든 게 끝장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이건 보안도 아니고 전투도 아니고 그냥 농성이다. 산성 쌓고 들어가서 문 닫고 스텔스 위장막 쫙 펴다 놓고 그저 버티는 복지부동 말이다. 지도가 단지 데이터라는 점에서도 그렇지만, 이런 마인드셋이 정립돼 있는 게 너무 뻔히 보여서, 그 점이 우스울 따름이다.

  6. 그나마 오늘날 지도 데이터는 민간이 상업용으로 만드는 것이 태반이다. 그 지도에도, 버스 정류장들 이름 다 참고해서, 어느 군부대 앞인지 몇 사단 예비군 훈련장인지 대충 다 써 있다. 이래도 지도가 그렇게나 국가의 안보에 치명적으로 밀접하게 연관되는가? 솔직히 말해서, 지휘통제소 천막에 쪼그리고 앉아 아세테이트지에 소대 마크 중대 마크 그려넣기 바쁜 높으신 분들의 전쟁놀이를 위해 우리가 불편을 감수해야 할 이유가 뭔가?


에효 모르겠다. 바닷가 마을이니까 물 포켓몬 등장 확률 UP 같은 게 데이터에서 정보 만들어내는 발상인 건데 우리나라에서 누가 이런 걸 하겠나. 구더기가 그렇게 무섭다는데 장은커녕 김치 한 포기도 담그지 말아야지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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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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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개편 좀 하고 가실게요


요즘 내껄 너무 안한다 싶어서 한번 해봄. 아닌게아니라 종편가시내들은 초기 디자인이 너무 구렸던 것이 사실입니다.

네모토끼 페이지에 자극받아서 업데이트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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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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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혜자’를 넘어서

2016. 6. 17. 06:58

GS25를 순전히 도시락 때문에 간다.

학교에 편의점이 GS25밖에 없어서이기도 했지만, 김혜자의 MOM 도시락 브랜드가 런칭되기 전에도 GS25는 원래 도시락을 잘 하는 업체였다. 내가 ‘아 이제 가급적 GS25로 가야겠다’라고 생각하게 되었을 무렵, 편의점 도시락은 대체로 2500~3500원 선이었다. 싸게 먹으면 2800원, 큰맘먹고 좋은 것 집으면 3500원, 혹은 싼 것에 음료수 할인구매를 붙여서 3700원 하는 식이었다.

그리고 지금 GS25의 ‘갓혜자’ 도시락들은 전부 3000원이 넘는다.

개인적으로 이 어찌된 귀신 곡할 노릇인지 지금도 그 영문을 모른다. 도시락 하나를 삼천 원 넘게 받고 주는 게 무슨 ‘갓혜자’인가? 누구 말마따나 어디 가서 밥버거 두 개를 배부르게 먹을 돈일 뿐더러, 삼각김밥 3개를 사도, 아직은, 삼천 원이 넘지 않는다. 그런데 부르기로는 여전히, 도시락 하나가 3000원에 좀더 푸짐해졌다는 이유로 ‘혜자스럽다’라는 말을 만들던 그 시절의 감각 그대로, “갓(god)혜자 상품”이라 부르고 있다.

아니, 사실은 무슨 영문인지 잘 안다. 사실은 이것 비슷한 사태가 나라처럼 생긴 이 지옥 반도 사방에서 가열차게 일어나는 중이다. 지금 우리는 공급자에게서, 기업에게서, 자본에게서 상품과 서비스와 인간적 규모의 합리성을 구하지 않는다. 일어나고 있는 일들만 둘러보면, 도대체 그럴 리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저들에게 구하고 있는 것은 ‘은혜’다. 그것도, 거의 자선에 가까운 은혜.

잠시 은혜라는 개념을 설명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기독교적 용어의 은혜란, 창조주적 존재가 피조물적 존재에게 별 이유 없이 베푸는 호의 또는 그 결과의 소득을 의미한다. 두 가지 핵심은 영향력 관계의 절대적 일방성, 그리고 타당성 확인 없이 임의적으로 (arbitrarily) 주어진다는 점이다. ‘선물’에 자주 비유되는데, 그러므로 받는 쪽은 주는 쪽에게 원칙적으로 요구를 할 수 없으며, 주는 쪽의 호의에 감사하는 것이 받는 쪽의 할 일이고, 주어지지 않거나 다소 엉뚱해 보이게 주어지더라도 혼자 꿍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은혜 관련 교리의 핵심이다.

이 교리는 그야말로 교리, 신앙, 종교의 차원이기에 성립한다. 다시 말하자면, 영향력 관계가 절대적으로 일방적이기 때문에 그 선물은 ‘은혜’가 되는 것이며, 그 선물을 주는 이는 천지 만물의 창조주이신 ‘주’로, 우리는 토기장이의 손 안의 진흙으로 인정된다. 일상적 차원의 ‘선물’이 은혜와는 엄연히 실천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생각해 보자. 선물이란 때로는 받는 쪽으로부터 요구되기도 하고, 주는 쪽이 일종의 책무를 가지는 경우가 상황 맥락에 따라 있을 수도 있잖은가. 그것은 사람 대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다. 감히 사람이 베풀 수 없어 보이는 크나큰 호의가 베풀어질 때, 우리는 비로소 그것을 신의 은총으로 받아들인다. (참고로 은총은 은혜의 다른 말이다.)

이 시점에서 잠시 편의점 도시락이란 게 뭔가를 생각해 보자. 우리는 편의점 도시락을 GS25로부터 선물받는가?

아니. 돈 주고 산다. 바싹불고기도시락을 진열장에서 꺼내서 계산대에 올려놓을 때, 누구도 ‘구하옵나니 제게 이것을 내려 주옵소서’ 빌지 않으며, 바코드가 두어 번 찍힌 다음 “봉투에 담아드릴까요?” 질문을 받았을 때 황송해하는 사람은 없다. 내 돈 주고 내가 사 먹는데 무슨 놈의 선물이야? 우리는 오히려 포장지에 쬐끄맣게 붙어 있는 “음료 무료 제공” 광고를 귀신같이 확인하고 “이거 사면 OOO 주시죠? OO맛 있어요?” 너무나 당당하게 묻는다. 굳이 다시 한 번 반복하여 그 당연함을 조금 벗겨내자. 우리의 구매 행위는 단 한 번도 선물을 받거나 은혜를 입는 과정이었던 적이 없다. 거기에는 지불, 제공, 그리고 그 거래 바깥의 사회적 합의라는 지극히 세속적인 요소만이 있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면, 왜 값싼 도시락을 파는 (것으로 선전되는) 이를 일종의 ‘신(god)’으로, 그 도시락을 은혜로 받아들이는가? 뭐 간단하다. 돈이 신이거든.

굳이 물신(物神, mammon)이 뭔지를 백과사전 뒤져서 설명할 것도 없다. 그 설명들은 밥값 몇천 원과 보증금 몇천만 원을 겪어 보지 못한 형이상학적 서술이기 때문에 별로 설명력이 없다. 물신은, 배금주의나 수전노적 행태의 숭배 대상이어서가 아니라, 허구적으로 부여받은 신적 권위를 실제적으로 행사하는 가치 저장 체제라는 차원에서 신이라 불릴 따름이다. 초고도로 발달한 신고전적 시장 경제 체제에서, 이 허구적 권위는 정말 그럴듯하게 부여된다.

돈님께옵서는 자기의 권능을 내보일 때는 저 멀리 무슨 기업의 시가총액이나 강남 어디의 전세집 같은 곳에서 자신을 한없이 높여 감히 사람이 거역치 못할 온갖 위력을 떨치다가도, 가끔은 낮고 천한 편의점 같은 곳에 임하셔서 우리의 몇천 원 푼돈의 노력으로도 한 끼 밥을 배부르게 먹게 해 주신다. 개념이 오락가락하는 것 같지만, 큰 의미에서 보면 물신이 관통하는 현상이라는 점에서 같은 상황이다. 적어도, 돈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일어날 리 없는 일이라는 점은 확실하니까.

그리고 우리는 무력하다. 백날 모으는 ‘포인트’가 티끌 모아 티끌인 것도 문제지만, 돈님의 진노 앞에 우리는 하룻밤 들꽃처럼 시들어 버릴 뿐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이 사회에서는, 돈님께서 그 은총을 거두시면 누구나 즉시 춥고 배고프고 정처 없는 신세가 된다. 도시가스 민영화에 따른 가격 합리화! 프리미엄 건강 혜리 도시락 4900원! 사람 세 명 누울 월세방 하나가 1000에 70! 정말이다! 모세가 노래한 하나님의 진노는 우리가 잘 모르겠지만, 당장 우리가 돈을 우리 통장에 모시지 않으면 무슨 참혹한 형벌이 주어질지는 넘나 명백한 것!

그리고 이 와중에 굳이 한 번 언급하고 지나가자면, 돈을 써야 쌓아서 쓸 수 있는 ‘포인트’는, 그리고 “합리적 소비”니 “절약”이니 하는 것은, 사실 모두 그저 ‘노오력’ 환원주의의 결과라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하등 다를 바 없으며, 그러므로 아무 희망도 대책도 되지 않는다. 그러니 여기서는 그냥 논의하지 말자. (절대로 방금 GS POINT로 펩시 하나 사먹고 왔더니 포인트가 확 줄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그럼 뭘 논의해야 하느냐고? 뭐긴 뭐야, 우리가 “갓혜자”로부터 은혜 대신 사회적으로 정당한 거래를 요구할 수 있어야 하지 않느냐를 논의해야지. 다시 말하자면, 물신을 거꾸러뜨려 돈이 단지 돈이기만 하도록 만들 방안을 찾아야지.

음, 그러니까 구체적으로 달리 말하자면, 시장 가격이 오르내린다는 이유로 그 대상 상품의 실제 가치가 쉽게 오르락내리락하지 않도록 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소리다. 난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도시락 하나가 몇십만 원을 호가할 이유는 하늘땅별땅 요만큼도 없다. 도시락에 금가루 뿌리고 영양제 섞으면, 한 사람 한 끼 밥이라는 본질이 갑자기 확 달라지는가? 그래서, 일반론의 차원에서야 천부당만부당하지만, 본질적 효용 총량의 jump가 일어나지 않는 일부 상품에 대해서는 최고가격제가 유효하다고 믿는다. 예컨대 도시락이 그렇고, 고위급 임원들의 연봉이 그렇다.

하지만 우리는 아무 생각 없이 ‘규제는→나쁘다’의 공식만을 가히 전체주의적으로 떠받들어 왔고, 그 덕분에 지난 몇십 년간 겉으로는 모두가 돈을 많이 벌게 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실제 생산-소비된 상품과 서비스들의 본질적 효용 총량에 비해 그 금액이 물신의 권능에 의해 굉장히 부풀려졌음에 틀림없다는 점에서, 결국 언젠가 꺼질 크나큰 거품이다. 그리고 이 버블샤워 속에서 누구도 “야 이건 아무리 그래도 다들 너무 비싸”, “왜 싸게 팔아주는 게 고마울 일이야? 전체적으로 깎아야 한다니까?”를 말하지 못한다. 뭐, 누굴 탓하기는 어렵다. 기업은 이윤을 창출하고 싶은 것뿐이고, 우리는 300원 더 오른 것 때문에 밥을 굶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통제권을 가져와야 한다. 우리가 통제권을 가졌다는 사실을 경험할 필요가 있다. 은혜를 입어야 할 것은 우리가 아니라, 우리의 통제를 받는 시장이어야 한다.

정말이지 모든 게 이런 식이다. 건물주가 1층에 값싼 카페를 취미생활로 운영하는 것을, 결국 공간주가 계획한 이용 방식대로 낼 돈 다 내 가면서 쓰는 공간인데 ‘누구나 오셔서 자유롭게 어울리는 복합 문화공간’ 운운 생색 내는 것을 최근 들어 좀 지나치게 자주 목격하다 보니 더욱 그렇게 느낀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손이 시장을 작동시킬 거라고 믿었지만, 그 이상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은 결과 우리가 얻은 것은 “갓혜자”다. 모든 게 시혜이고 은혜가 됐다. 저녁 늦게까지 돌아다니는 우리는 각종 가격 결정자들이, 석유 공급자들이, 부동산 소유주들이 착한 마음을 계속 가져 주기를 기도하며 조마조마 살아가는데, 맨큐는 우리가 합리적 경제인입네 수요가 감소하면 가격이 하락합네 물정 없는 소리를 한다.

많이는 바라지 않고, 일단은 갓혜자가 없이도 걱정 없이 도시락 한 끼를 먹는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핵심은 갓혜자가 없다는 데 있다. 편의점 도시락은 ‘혜자의 MOM’ 브랜드이기 때문에 값싸서는 안 되며, 지불 용의가 5천 원이 넘지 않는 배고픈 사람이 사는 것이기 때문에 값싸야 한다. 차라리 반찬 수를 줄일지언정 말이다. (양을 늘려주는 대신 가격을 올려 받는 것도 실제 소비자 입장에서는 사실 굉장히 위선적이라고 느낀다. 아 ㅅㅂ 그니까 양은 됐고 액수나 좀 맞추자고! 내가 정말 양이 부족해서 이러는 거면 두 끼 값을 모아다가 9900 고기뷔페를 가서 한번에 찢어지게 처먹겠지 여길 오겠냐 이 개자식들아!)

생각나는 방안이 최고가격제 뿐이긴 한데, 말고도 더 있을 것이다. 아무튼지간에 정리를 하자면 이렇다. 자본주의가 극도로 발전하니 모두가 우려하던 대로 자본의 신격화가 일어나고 그 결과는 무산자들이 자본으로부터 일방적이고 임의적인 신적 은혜를 구하게 된 지금의 상황인데, 그 단적인 사례가 ‘GS25 god혜자 도시락’인 것이다. 우리 이거보다는 좀 덜 상스럽게, 쪼끔만 더 성스럽게 살면 안 될까? 일단 김혜자 선생님 당사자 입장에서, 모두가 자기 이름 앞에 ‘god’을 붙여 부르면서 도시락이나 깨작거리는 꼴이 얼마나 씁쓸하고 부담스러우시겠느냐 말이다. 진열대에 뻔뻔스럽게 자화자찬하듯 붙어 있는 “갓혜자, 다 아시잖아요” 공식 POP를 보고 있는 내가 이다지도 거북한데.

Posted by 엽토군
:

TV 속 연예인들의 못난 행태를 비판하고 욕하고 싶어질 때마다 한 가지를 잊지 말아야 한다.


그걸 당신의 눈앞에 보여주지 않을 수도 있었는데도 굳이 테이프에서 잘라 와 ‘살려서’ 내보내는 이들이 저기 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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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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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생활임금과 기본소득

급하고 추하게 고도산업화된 나라라서인지 이곳에서의 일〔勤務〕이란 일종의 속죄 내지 고행이 되어 있다. 다들 논다는 것, “숨만 쉬고 사는 것”을 끔찍하게 금기시하고 두려워한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공포와 금기시의 이유가 사후적—수입이 없어지거나 생활에 지장이 가거나 파산 상태가 되거나 등등—차원이 아닌 사전적 차원, 즉 사상적/이념적인 차원에 있다는 점이 슬프게 흥미롭다.
모두가 이미 아는 바, “취업 안 하면 어떡해?”의 발화에서 장래 일에 관한 구체적 논의는 의도되지 않는다. “취업을 안 할 수는 없다”라는 무의식적 규범을 스스로에게 돌려 말해 들려주는 것이 의도되어 있을 뿐이다. 일을 해도 좋고 안 해도 좋다고 믿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런 말이 나올 수가 없다. 그냥 넌 그럼 뭐 할 거냐고 묻겠지. 할 거 없으면 취업이나 하라는 식으로.
일해서 돈 벌어 식솔을 부양하는 것이 유일하게 허용된 긍정적 선택지인 마당에 실존이 들어갈 자리는 없다. 생활이라는 실존을, 인간 존엄을 위한 최소한의 수입을 보장하자는 것은 그래서 단순 생떼가 될 수 없다. “수입”으로 대표되는 자유자본시장경제를 포기하는 비용보다는, 그 수입의 최저선을 인격적 수준으로 합의하는 비용에 우리는 더 지불 용의가 있다.

2. 패션좌파와 진보적 정치문화의 의제

패션좌파의 등장은 필연적이었다. 결국 소비적 문명 자체의 문제로 귀결되는데, 어차피 똑같은 아메리카노 사 마실 바에는, 앉아서 돈백만원 벌자고 꼼지락거리는 구차한 삶보다는 자본권력이며 체게바라며 운운 꿈과 이상을 늘어놓는 것이 더 “쿨”한 것이다. 좌파성이 라이프스타일과 분리 가능한 별개체로 기능할 수 있는 이상, 윤서인이 맨날 두드려패는 헬조선 타령 깨시민들은 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 온전히 기성 좌파의 직무방기의 결과다. 세상에 싸울 의제가 몇이고 바꿔야 할 삶의 디테일이 몇인데 그저 닭그네 까는 법만 가르친 이유는 대체 뭐란 말인가? 진보적 정치는 지금의 삶과 세상에 만족하지 말자고, 좀 덜 불가능하게 살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구체적으로 꿈꾸는 정치여야 한다(잠 안 자고 깨어만 있어서 만사에 예민하게 구는 깨시민질이 아니라).
그렇기에 진보적 의제들은 ‘더 나은 세상’, 나와 동네와 법률과 습관과 전통의 변화라는 것을 구체화해 눈앞에 들이밀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이를테면 여기서 흡연을 금지한다, “병신”이라는 표현을 인격모독으로 간주한다, 청년 1인에게 매월 51만원 상당의 온누리상품권을 지급한다 같은, “어 그럼 난 뭘 해야 하지”가 튀어나오는 것이어야 한다. “크 이런거 되게 멋있지않냐 넌 몰랐지? 이게 진보야” 같은 거드름 대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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