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덧붙이는 글.
- 세상에 CIA보다 많은 것을 아는 집단이 존재하지 않는 오늘날, 사실은 예로부터 본질적으로, 지도란 정보가 아니라 데이터다. 그것도 개중 가장 단순하고 중립적이며 기계적인 축에 드는 데이터. 지도가 정보가 되는 순간은 둘 중 하나다. 거기에 정말 시시콜콜하게 누가 어디에서 뭘 한다가 다 적혀 있거나, 아예 전인미답의 땅의 지도이거나.
- 사실 이 나라에서는 지도라는 데이터로부터 정보를 뽑아내는 사고력을 발휘할 일이 퍽 드물다. 예를 들어 쉽게 말하자면, 한 동네의 사회지리적 정황을 가장 잘 파악하고 있는 사람이 그 동네 전담 택배 기사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소리.
- 초딩들의 휴대폰으로도 GPS를 잡는 오늘날 “기밀 군사지도”는 형용모순에 가깝다. 기밀 지도란 결국 정보 비대칭성으로 우위를 점하는 전략의 핵심 요소인데, 현대 전술에서 정보 비대칭이 뭐 얼마나 큰 변수인가? 핵미사일 개수가 진짜 변수지.
- 청와대가 어디 있는지(효자동 뒤에 있다), 국정원이 어디 있는지(헌인릉 뒤에 있다), 서울화력발전소가 어디 있는지(상수동 뒤에 있다)를 지도에서 숲 이미지 합성시켜 누락시키는 게―네이버는 진작부터 그렇게 했고 다음은 울며 겨자 먹기로 고치고 있다―과연 군사 안보일까?
진짜 군사 안보란 건 지구상의 위도-경도 좌표로부터는 좀 자유로워야 하지 않을까? 예컨대 그라운드 제로 사방 5km를 쑥대밭으로 만들어도 핵심 정보와 지휘권과 전투력이 손망되지 않게끔 하는 일이 군사 안보 아닐까? 다른 예를 들자면, 누구나 청와대에 들어와서 관광하고 구경하고 다 하지만 국가 기밀은 기밀대로 잘 지켜지는 그런 것이―백악관이 그렇게 하는데―군사 안보가 아닐까? - 지도 유출을 두려워하는 논리의 기저에는 특정 장소에 외부 유입이 들이닥치는 순간 모든 게 끝장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이건 보안도 아니고 전투도 아니고 그냥 농성이다. 산성 쌓고 들어가서 문 닫고 스텔스 위장막 쫙 펴다 놓고 그저 버티는 복지부동 말이다. 지도가 단지 데이터라는 점에서도 그렇지만, 이런 마인드셋이 정립돼 있는 게 너무 뻔히 보여서, 그 점이 우스울 따름이다.
- 그나마 오늘날 지도 데이터는 민간이 상업용으로 만드는 것이 태반이다. 그 지도에도, 버스 정류장들 이름 다 참고해서, 어느 군부대 앞인지 몇 사단 예비군 훈련장인지 대충 다 써 있다. 이래도 지도가 그렇게나 국가의 안보에 치명적으로 밀접하게 연관되는가? 솔직히 말해서, 지휘통제소 천막에 쪼그리고 앉아 아세테이트지에 소대 마크 중대 마크 그려넣기 바쁜 높으신 분들의 전쟁놀이를 위해 우리가 불편을 감수해야 할 이유가 뭔가?
에효 모르겠다. 바닷가 마을이니까 물 포켓몬 등장 확률 UP 같은 게 데이터에서 정보 만들어내는 발상인 건데 우리나라에서 누가 이런 걸 하겠나. 구더기가 그렇게 무섭다는데 장은커녕 김치 한 포기도 담그지 말아야지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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