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가사출처 / 원곡 / 번안은 제가 했습니다.

         Am  F      C   G      Am         F
1. 선하신 주 아름다움 놀라우신 주 지혜
      C        C/G     F
찬양해 내 영아 찬양해
       Am  F      C   G     Am         F
주의 권능 주의 영광 찬란하신 여호와
      C        C/G     F
찬양해 내 영아 찬양해
      C        C/G     F
찬양해 내 영아 찬양해

        C    Dm
* 경배하리라
       C           Gm7
그 이름 늘 송축하라
      C    Dm
경배하리라
      C        C/G     F
송축해 내 영아 송축해
      C        C/G     F
송축해 내 영아 송축해

         Am  F      C   G       Am         F
2. 어지신 주 자비하심 크신 긍휼 주 은혜
      C        C/G     F
감사해 내 영아 감사해
       Am  F      C   G     Am         F
주의 불꽃 주의 시험 거룩하신 주 성령
      C        C/G     F
감사해 내 영아 감사해
      C        C/G     F
감사해 내 영아 감사해

         Am Fmaj7 C G/B    Am         F
3. 고난받은 주의 고뇌 겸손하게 우신 왕
      C        C/G     F
송축해 내 영아 송축해
       Am Fmaj7 C G/B    Am        F
주의 승리 주의 떨침 다시 오실 메시아
      C        C/G     F
송축해 내 영아 송축해
      C        C/G     F
송축해 내 영아 송축해

Posted by 엽토군
:
生徒会役員共 #16(c)氏家ト全/講談社
0123

번역소감
"절망했다! 절망선생 3기 결정에 절망했다!
그것도 나 군대 가기 전에 12회를 다 보고 갈 수 있게 9월에 개시한다니!"

...뭐, 그 기념으로 뭐라도 하나 번역해서 올립니다. 3기 자막 잘 부탁해요. 그냥 이쪽의 자의식과잉적 희망사항입니다만 일이 크게 잘못되면 엔딩자막에 제 이름 나갈 수도 있습니다. (←근거 없음)

P.s 이 만화 이래봬도 오는 15일에 단행본 2권(아마도 #30까지)을 찍는 인기만화라능.
절망선생 3기 스타트 전까지 이거랑 나루에를 디벼볼까.
Posted by 엽토군
:

어젯밤 천호역 계단을 오르면서였다. 매일 오르는 계단이지만 너무 멀었다. 나도 모르게 '멀다!'라고 새삼스럽게 외쳐 버렸는데, 생각해 보니 정말 먼 거리를 매일 아무렇지도 않게 다니고 있더라. 따져본 결과 편도로만 37km를 다니는 데 1300원을 내고 있다. 1300원! 이 싼지 비싼지 애매한 요금으로 불과 100년 전만 하더라도 하루 안에 갈 엄두도 못 내던 거리를 가만히 앉아서 혹은 서서 가끔 자습까지 하면서 익숙하게 다닌다. 교통의 발달이란 대단하다. 사실을 놓고 말하건대 37km는 짧지 않다. 일직선 도로를 시속 100km로 달려도 20분 넘게 달려야 37km를 간다. 그런데 이 현실적인 거리, 심리적 거리를 점점 희미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바로 교통수단인 것이다.
천호역에서 버스를 타고 자리를 잡으니까 생각나는 또 하나는 GS마트다. 한때 하남시 신장동 일대를 평정했고, 심지어 개점 당시엔 신장시장에서 보이콧 운동 비슷한 결사 조짐까지 보였던 LG마트인데, 요즘은 어째 예전같지 않게 사람이 뜸해졌다. 왜? 풍산지구가 들어서면서 하남시에 드디어 이마트가 들어온 것이다. 얼마 전에 드디어 구길(온조로)에도 이마트 가는 마을버스가 생겨서 한창 재미를 보고 있는 모양이다. 중심지 이론에 따르면 고위 중심지는 상대적으로 그 수가 적고, 다른 저위 중심지들을 수렴할 만큼 큰 구역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제 이 이론은 아주 알기 쉽게 현장에서 학습된다. 이마트 가는 버스가 생기면 생겼지, 이마트가 주거지역에서 좀 떨어져 있다고 금세 망해버리는 일은 없는 것이다. 망하는 것이 있다면, 들어가자마자 인기척 없는 냉랭함이 확 끼쳐오르는 신장시장 공판장과 점점 어둑어둑해지는 시장 골목뿐이겠지.
내가 느끼는 것은 이것이다. 그 모든 중심지―쇼핑몰, 공연시설, 대학...은 어쩔 수 없다, 학교가 내게 올 수는 없으니까―는 사실상 대단히 먼데, 우리는 그게 먼 줄 모르고 다닌다. 아무리 이 이론이 실제 생활을 잘 설명해 준다 할지라도, 이 현상의 방치는 경제적 불균형, 근본적 위험, 그리고 정치적 불온함만을 낳을 것이다. 경기도에 사는 대학생들 대부분이 서울 혹 강원도 소재 학교에 다니기 위해 편도로만 한 시간 반 가량을 길바닥에 버리고 있다. 하남시 사람들은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려면 반드시 버스를 타야 한다. 심지어 지하철 한 정거장을 가려 해도 버스를 타고 강동구로 들어가야 한다. 모든 것은 내가 사는 동네에 없다. 그래, 서울이라는 초고위 중심지는 그만한 수용량이 되는 모양이다. 문제는 자유방임의 차후 결과다. 전국이 서울로 수렴되는 광경을 상상해 본 일이 있는가? 한반도대운하를 파든 지하철의 전국화를 진행하든 이는 정치적으로 불온하며 근본적으로 위험한 생각이다. 무엇보다 상식적으로 불합리해 보일 정도로 많은 것이 희생된다. 일단 너무 멀지 않은가? 중심지와 주변지가 기술적으로 가까워지면, 그래서 중심지는 중심지 본연의 역할을 위대하게 해내면 그것은 정말 잘 된 일인가? 만약 그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우리 집 앞에서 가능하다면, 내가 왜 이 시간, 이 돈, 이 발품 다 들여 가면서 그곳까지 가야 하는가?
나는 이제 신장사거리 정류장에서 내려서 집으로 간다. 집 코앞에 농협이 있는데, 간혹 보면 시민들을 위해 재개봉관 수준의 영화 무료상영을 하는 모양이다. 아직 한 번도 가 보지 못했지만, 조만간 기필코 가 봐야겠다. 어느 날 문득 깨달아지는 것인데, 영화를 보기 위해 버스에 타고, 버스에서 내려서 극장으로 이어지는 10층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영화를 보고 나와서 다시 에스컬레이터로 내려와 버스를 타고 꼬박 40분을 달려갈 생각을 하면... 영화관 처음 다니던 시절의 감동은 이제 잊혀지고 다만 피로감이 몰려오는 것이다. 그래, 좀 후지겠지. 근데 집 앞에서 공짜로 영화 한 편 보고 아이스크림 하나 입에 물고 집으로 걸어가는 경험도 나쁘지는 않을 거 같다.
로컬리제이션? 지방의 세계화? 분권자치? 탈서울화? 대형할인점 보이콧 및 지역 경제 활성화? 골치 아픈 말 백 마디로 말장난을 하느니 이 몇 마디를 물어보자. 너무 멀지 않나? 꼭 거기까지 가야만 하나? 왜 우리 동네에선 이걸 할 수 없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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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
더 생각해 보자

내가 한 낙서 보고 내가 뿜겼음ㅋㅋ 참고로 이 캐릭터는 웹에는 처음 공개하는 바 내 (희망사항) 자화상 캐릭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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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
(전략)
그리고 토론이나 일상회화는 단어와 숙어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질문(혹은 제시)과 대답(혹은 반응)으로 이루어지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더욱이 전공과목 토론이라면 단어 몇 자, 표현 몇 줄 틀리는 건 정말이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가, 지금 이 토론장에서 어떤 용어(혹은 개념)들이 어떤 어감(혹은 관점)으로 사용되는가, 나는 얼마나 그것들을 잘 이해하고 있으며 또 쉽고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가를 진짜로 걱정해야 되는 것입니다. 대화에서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하고 싶은 말을 알아들을 수 있게 열심히 하면 되고, 들어야 하는 최소한의 내용을 성의 있게 들어 주려고 노력하면 됐지, 거기에 3300개의 어휘집이 필요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중략)
국제선 타 본 적도 없는 사람이 건방지게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닙니다. 우리말, 아니 말을 배우시기 바랍니다. '나는 이 말을 어떻게 하고 싶은가?', '사람들은 무엇을 이야기할 때 어떻게 이야기하는가?' 등등의 고민, 즉 말하기와 듣기라는 것은 언어를 막론하고 다 비슷비슷한 것입니다. 외국어로 많이 말해 보고, 외국어를 많이 들어 보는 것도 물론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 최적의 환경이 외국인 것도 물론 맞습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엔, 모국어로 경청하지 못하고 발언하지 못하는 사람이 외국 말을 배워서 유창하게 리스닝을 하고 스피킹을 한다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 것입니다. 상식적으로 그렇지 않은가요?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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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

대학교 운동장 09.04.08


아침
저기 한구석
유치원생 여덟 명과 남선생
7호선 색의 대학교 앞치마
파마머리에 고무장갑
머리 두 개는 더 큰 선생과의 체조
이윽고 2열 종대로
웃으며 앞뒷사람의 어깨 안마
안타깝도록 화창한 4월 대학교 운동장에서
미화노동자들이
웃는 웃음

나의 초라한 젊음이여
수고하십니다 그 한 마디를 하지 못하고
무표정히 그 피고용인들을 구경하며 지나친 걸 후회하는
너는 그리고 나는 놀이동산의 일회용품 쓰레기도 아닌 것이
안타깝도록 화창한 4월 대학교 운동장을 도대체 무슨 젊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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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

여기서의 <딴지일보>란 옛날 딴지일보를 말한다.

딴지일보가 오프라인 및 모바일로 진출한다는 것 같다. 배포된 날, 역설적이게도 대의제의 본질을 배우고 있던 현대민주주의론 수업 시간에 다른 학우들이 이것을 읽고 집어던져 두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 수업 끝나자마자 바로 집어왔다. 그리고 브리핑한 결과는... 반갑지 않다. <딴지일보>의 초창기를 초딩 때 만났던 사람으로서, 그리고 즐겨찾기에 넣어두고 잊을 만하면 한번씩 들어가 보면서 왜 기사 업뎃이 안 돼, 불평했던 사람으로서, 반갑지가 않다. 이제 딴지일보는 <딴지일보>가 아니다. 흔하디 흔한 극소수 진보정당 기관지 같은 것으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다. 물론 발행인이자 그 정당의 총수는 이름도 비슷한 김어준 씨고.
<딴지일보>는 딴지일보와 뭐가 달랐는가? <딴지일보>는 언론이 아니었다. 하나의 분출구였고, 요컨대 지금의 DC가 담당했던 역할을 <딴지일보>가 하고 있었다. 누가 허경영을 제일 먼저 주목했는가? <딴지일보>였다. 누가 독수리 5형제를 인터뷰해 386세대를 비꼴 생각을 했는가? <딴지일보>였다. 그 시절 누가 응급실 인턴 르포(에 가까운 체험기)를 생생하게 적었던가? <딴지일보>였다. 내가 논하고 싶은 핵심은 이것이다. 그것들은 단순한 엽기 우스개가 아니었고 어떤 아젠다(의제)들이었다.
우스개는 본질적으로 정치적이며 특히 진보적이다. 저번에 썼지만 웃음이라는 건 권위의 몰락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니까(아직 이 주제에 대해 이 이상 정연한 논리를 구하지 못했다). 무언가를 우습게 하는 것은 무언가에 대한 권위 부정을 의미하며 이것이 좋게 웃기다는 긍정성을 확보할 때 우스개는 농담 따먹기가 아닌 재치가 되어 그 무언가에 대한 다른 논의를 촉구한다. <딴지일보>는 그 전형을 잘 보여줬다. 초딩 때 멋모르고 (그때 누런국물 등의 안 좋은 엽기들이 유행하던 터라 난 딴지일보가 좋은 엽기 축인 줄로 생각하고서) "야 웃기는 것들이 있다" 하고 <딴지일보> 기사를 따라 읽던 기억이 난다. 단순한 사람들에게 <딴지일보>는 그렇게 읽어진다. 그러나 함 맘 잡고 정치적으로 읽자면 한없이 복잡다단한 논의들이 얼키고설켜 백날 토론해도 졸라 끝이 안 날 거 같은 난장판이 바로 <딴지일보>였다. 절대로 진중하게 쓰지 않고 '씨바', '졸라'를 남발하며 거침없이 적어내려간 글들은 얼핏 보아서는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아 보이고, 아니 그 이전에 자격이 없는 듯하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중요한 주목점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딴지일보>가 다루었던 주제다. 그것은 기성 언론들이 절대로 주목하지도 않고 취급조차 해 주지 않는 논의들이었다. 기사 일부를 하나 읽어보자.

예전에 읽은 한 기타리스트의 인터뷰에서 이런 대목이 있었다.
질문 : 실드(그러니까 기타에 꽂힌 그 전선)를 쓰시다가 와이어리스(즉 무선)로 바꾸셨는데, 연주에 어떤 영향은 없나요?
답 : 음.. 와이어리스를 쓰니 약간 음이 컴프레스가 걸린듯한(머, 좀 복잡한 얘기니깐 그냥 넘어가자. 그래도 상관엄따) 느낌이 있더군요.
현재 우리나라에서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잘 나가는 가수(!) 중, 이런 인터뷰가 가능한 가수가 과연 한 명이라도 있을까? 마이크가 유선에서 무선을 바뀐것에 대해서 그 음의 차이를 느낄 정도로 자신의 목소리를 파악하고 있는 가수가 과연 있겠느냔 말이다. 이 정도까지는 안 되어도 좋다. 하지만 적어도 가수들이 무대에서 노래의 분위기와 감정에 따라 마이크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 입과의 거리는 어떻게 조절해야 하는지, 자신의 목소리가 청중들에게 어떻게 들리고 있는지를 조금이라도 신경 써야하는 분위기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출처)
<딴지일보>의 기자들은 거의 대부분의 기사를 이런 느낌으로 썼다. 사람들이 몰라준다는 것이다. 그들은 자기 체험담을 썼으며 특히 외국에 있던 사람들이 특파원이라고 나서는 경우가 많았고, 아니면 나름 한 분야에서는 졸라 전문가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의 알찬 그리고 가감 없는 필체의 기사를 올려 줬었다. 그것은 기성 정치판과 언론플레이가 처음부터 상정하지 않았던 제3세계였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딴지일보>는 차라리 그 시대의 '대안지'라고 부를 만한 것인지도 모른다. 아예 근본부터 다른, 그러나 절대로 산으로 가지 않고 분명히 심각한 문제일 수 있는 현실을 생생하게(엽기적으로) 끄집어내어 똥침을 날렸다(아젠다를 형성했다).
이제 그런 <딴지일보>는 사라진 지 오래다. 사람들이 입을 모아 평하되 대체로 딴지 기업화 선언과 노무현 적극 지지 천명 이후부터 딴지는 쇠락일로를 내달았다고들 하거니와 사실을 보건대 딱 그렇다. 가장 최근의 딴지일보는... 대안지가 아니라, <오마이뉴스>나 <프레시안>의 발끝도 못 따라가는, 김어준이라는 총수 이름만 팔아먹고 있고 사원 몇이서는 밤이면 밤마다 뭘 하는지 알 수 없는 3류 유령 진보언론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세상은 바뀌었다. 사람들은 황우석으로부터 시작하여 박 터지게 싸우는 법을 배웠다. 박 터지게 싸운다 함은 이런 것이다. 이치에 맞게, 조리 있게, 상대가 공격을 못 하게, 사실에 근거해서, 그리고 무엇보다 논의하는 주제만 논의하는 것이다! 이제 사건을 터뜨리는 일은 <딴지일보> 등의 비주류 매체에서 방송사와 언론사들의 몫으로 다시 돌아갔다. 어쩌면 누리꾼이 견인하는 담론 형성이 가능할지 모른다는 일말의 희망이 자멸해 버렸다. 그리고 딴지일보는 논의하는 주제에 대해서만 졸라게 논의했다. 마치 다른 블로거기자들이, 아고리언들이, <오마이뉴스> 기자들이 심지어 한겨레 같은 제도권 일간지 기자들이 훨씬 뛰어나게 해내었듯이.
결론을 써야겠다. 딴지일보가 정말 <딴지일보>가 되고자 한다면 지금의 노선(지면을 읽어봤는데 4면에 걸쳐 온통 이명박이다. 논의하는 주제만 논의하는 거다. 망했어요!)은 무조건 포기하라. 그리고 다시 한 번 썬데이서울(<오마이뉴스> 말고)과 경쟁하겠다는 자세를 되새기기 바란다. 딴지일보의 역할은 기존 담론에 한 마디 거드는 것이 아니고 정치 풍자 전문지도 아니며 그렇다고 김어준 총수의 가족신문도 아닌 것이다. 그런 역할 하는 언론들은 각각 쌔고 쌨다. 남들이 하지 않는 이야기를 해 달라. 발견해 달라. 전기장판의 두 가지 종류를 분해 분석한 과학 소논문, 야채의 해악성을 주장하는 막말 기사, 원고료 투쟁하는 창작노동자 르포를 써 달라. 아니지, 아니다. 딴지일보에 갇히지 말자. 우리가 해야 한다. 더 많은 아젠다가 필요하다. 우리에겐 더 많은 입이 필요하고, 더 많은 우스개가 필요하며, 더 상스럽게 그러면서도 장황하게 기록한 졸라 열 받는 이야기가 필요하다. 그렇다. 나는 딴지일보(와 그 오프라인 확장 등등)를 바라지 않으며 다만 더 많은 <딴지일보>를 요구한다. 최규석 선생 말마따나 "총알보다 과녁이 많다." 2MB 포크레인 부대가 몰려온다! 엄호 바란다! 총알은 애진작에 다 떨어졌는데 <딴지> 보급은 아직 멀었나? 졸라!


P.s 이시형(aoitoki) 어디 가서 뭐 하냐? 딴지는 정 아쉬우면 얘라도 채용해서 헛소리를 지껄이게 냅둬라. 세월 지나면 설사만 싸던 거 굳은 똥도 간혹 싸겠지.
P.s2 이런 질문이 가능하다. DC는 그럼 딴지처럼 대안언론의 역할이 가능한가? 절대 불가능하다는 게 내 입장이다. DC에서는 논의의 기본단위가 '떡밥'인데, 이것은 논리와 주장을 지독하게 원자화하는 데 일조했다. 요컨대 모든 주장은 떡밥들의 조합 연성으로 환원되는데 여기서 '기자'의 논조와 정체는 전혀 드러나지 않게 된다. 디씨에서 딴지처럼 글 쓰면 무플이거나 '그래서 어쩌라고' 등의 뻘플이나 받을 게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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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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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땐 시 읽는 낭만이라도 있었는데 지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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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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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철도운행 시뮬레이션 게임이 있듯 음악 콘서트도 그렇게 '제어'할 수 있지 않을까? 무대장치, 아티스트, 관객, 카메라 등등의 객체들을 직접 조작하고 통제해서, 결과물을 렌더하면 진짜 콘서트 영상 못지않은 그림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우선 제한시간이 있어서, 그 안에 정한 러닝타임을 어떻게 끌어갈 것인지를 그 타임라인에 여러 가지 이벤트를 생성해 넣어 가며 계획을 짜야 한다. 예를 들어 첫 시작은 관객석에 앉아 있던 보컬이 일어나 노래하는 것으로 끊고 싶다면, 타임라인 맨 처음 잠시 동안 아무 이벤트도 없다가 보컬의 노래와 반주가 들어가고, 그 직후에 그가 앉아 있을 좌석으로 조명을 집중시키는 식이다.
이렇게 타임라인을 완성하면 본격적으로 세 가지 방법의 플레이가 있다. 우선 프로듀서 시점으로 타임라인을 재생하면 아주 많은 모니터와 상황 제어 패널이 나타나서, 수시로 일어날 작은 문제를 해결하고 상황을 체크하며 콘서트를 성공리에 마쳐야 한다. 관객 시점으로도 재생할 수 있는데, 이렇게 하면 무작위로 지정받은 좌석에서 콘서트를 처음부터 끝까지 감상할 수 있다. 그리고 편집감독 시점으로 게임을 재생하게 되면 a, b, c 등등의 번호가 붙은 여러 모니터(디렉터 때보다는 적다, 주로 무대와 관객 위주의 화면들)가 나타나, 타임라인을 참고해 가며 가장 적절한 화면 전환을 구사하면 된다. 프로듀서 시점과 편집감독 시점은 얼마나 성공적으로 진행/편집했느냐에 따라 점수를 평가받으며, 관객 시점과 편집감독 시점은 렌더링을 해서 동영상으로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
원래는 캠퍼스워십을 정형화해서 영상 가공 내지는 시뮬레이션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봤다가, 예배를 시뮬레이션한다는 건 너무 불경해서 콘서트로 바꿔 봤다. 시도해 보았자 돈이 되지 않으므로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것이 개발되지 않고 있으리라고 본다.

Posted by 엽토군
:
獄・さよなら絶望先生 下巻
「暗中問答」「負けの草子」「一本昔ばなし
안녕 절망선생 옥편 하권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꺼질 것이 꺼진다", "이 거대한 거대한 패배에 비하면",
"나의선생님이나의곁에서조을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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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바쁘게 살려면 얼마든지 바쁘게 살 수 있는 나날이지만, 그러기 싫어서 발버둥치고 있습니다.
이 자막도 원래 토요일에 배포 가능했을 텐데, 동영상 싱크도 안 맞고 시간도 별로 안 나고 해서
결국 하루 지나고 배포합니다. 이미 너무 늦어버렸어... - v1.0

↓다운로드↓
번역은 니코니코 동화 flv 기준, 싱크는 다음tv팟 flv 기준 작업 (25분 12초짜리)

P.s 발행계획표로 소비자 기만하는 핡산은 자폭하라!
Posted by 엽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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