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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밤에 씻으면서 생각을 하다가 문득 받은 결론은 이거였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남보다 낫고자 한다.

어떤 일을 하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고, 서로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십시오. (빌2:3)

숱한 학문들 중 심리학과 경제학이 인간을 이기적이고 아주 본능적으로 세상적인 것을 추구하려 하는 존재로 그린다. 그것은 왜 그러한가... 하는 것이 지난 며칠 동안의 물음이었는데 이제 답을 좀 알 것 같다. 다른 학문은 남보다 더 낫고자 하는 그 본성에 대해 심각하게 논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사리 추구를 전제하고 사적 의사를 탐구하는 학문들은 어쩔 수 없이 그 사회성의 본성, 남보다 더 낫고자 하는 마음을 바탕에 두게 되는 것이다.
바울 사도가(그리고 주님께서) 굳이 권면한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사실은 우리가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지 못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우리는 실로 그렇다. 남보다 더 갖고 싶어하고, 남보다 더 잘나고 싶어하고, 남보다 더 힘있고 싶어하고 남보다 더 사랑받고 싶어한다. 남보다 더 나쁜 것은 갖기 싫어하고, 남의 밑에 있는 것을 싫어하고 남보다 더 미움받기는 싫어한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역시 이것을 가지고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갓난 사내아이가 보는 바 이 세상에서 가장 힘센 남자는 아버지고, 가장 아름다운 여자는 어머니다. 그리고 그는 비록 아기일지라도 본성적으로 남보다 낫고자 하며 남보다 나은 것을 갖고 싶어한다... 그러므로 아버지에 대한 적대관계와 어머니에 대한 (프로이트적 표현을 빌면) 성적 추구로까지 이어진다고 설명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다만 거듭난 사람들이라면 끊임없이 버려야 할 본성이다. 남을 낫게 여기고 끝내는 것은 정말이지 하기 힘든 일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하셨으므로, 친히 구유에 나시는 것을 징표 삼으셨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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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

영화 해운대를 봤다.
지금 나는 오후 세 시다. 뭘 하기엔 너무 늦은 듯도 하고 그렇다고 그냥 지나가기엔 너무 아쉽다.

지금껏 못본 하루히 2기를 최신 방영분까지 몰아봤다.
지금 이 이야기는 11시 45분에 멈춰 있다. 무려 네 편에 걸쳐서 데자뷰를 보여주리라고는 예상치 못한 바람에 결국 6화분은 휙휙 돌려버렸다. 원작을 전혀 모르지만, 내가 생각하는 아웃 루트는 이런 거다: 쿈이 마침내 하루히를 불러세워 방학숙제 벼락치기 모임을 하자고 한다. 31일 예비일은 방학숙제일이 되고, 드디어 다카포는 풀리며 유키는 따분해하는 표정을 뜯어 버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뭐, 원작에서는 그렇게 결말이 난다는 거 같은데, 잘은 모르겠고, 쿄토 애니메이션 측은 하루히즘이 뭔지[각주:1] 한 번 더 보여주겠다는 일념으로 이젠 몇 화가 몇 화인지 모르기 시작했다, 나가토의 심정이 이해된다는 글까지 올려가면서 근성으로 가고 있는 거 같다, 아무튼,
지금 세상이 오후 세 시에 멈춰 있다.
데자뷰가 계속된다.
"내일이 오든 안 오든, 이 일상이 다시 반복된다면, 그 땐 그 때의 나로서 어떻게든 하면 되겠지."

그건 아냐.

여기서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다시 1만 몇천 번을 반복한 그 2주간으로 돌아가게 돼. 저놈이 했던 말 가운데에 힌트는 있었을 거다. 그런데 그게 뭐지? 쟤가 뭐랬더라? 난 무슨 말을 해야 하는 거지? 제길, 모르겠다. 도무지 짐작이 서지 않는다...



미디어법을 가지고 한바탕 쓰나미가 있었다.

지금 나는 오후 세 시다. 뭔가 말하기엔 늦은 듯도 하고 그렇다고 마냥 다물고 있기엔 너무 아쉽다.

아니다. 지금 여기서 불러세우지 않으면, 다시 영겁의 회귀로 돌아가게 돼. 이 여름방학을 끝내고 싶지 않아하는 저들을 불러세우지 않으면. 불러세우지 않으면, 불러세우지 않으면... 불러세우지 않으면! 불러세우지 않으면!!!

  1. '스즈미야 하루히적 이념', '하루히스러움'으로 번역할 만한 신조어. 내가 이해하는 바 하루히즘은, 순수한 자기중심적 의도를 위해 말도 안 되는 기획과 발상을 말 되게 하는 것이며 니체와 카뮈를 빌어 말하건대 초인적 반항이라 할 만한 것이다. 현재까지의 하루히 애니판이 보여주고 있는 것들은 '하루히즘'에 대한 원작자적 해석과 실현이라고 해야지, 지겹다거나 전파가 아깝다는 식으로 매도해 버리고 끝낼 만한 것은 좀 아니다. [본문으로]
Posted by 엽토군
:

매트 레드먼 선생님의 곡들은 무지무지하게 진중하다. 심지어 신나게 흔들어보자고 지은 곡임에 분명한 곡에서도 '왜?'에 대한 질문을 치밀하게 붙잡고 늘어진다. 사실 이분 곡 중에 예배곡이 많아서 거의 반 의무감으로 넣어놓고 듣고 있었는데, 자꾸 듣다 보니 가사가 너무 단순하고도 깊어서 이어폰 꽂고 있는 사람마저 압도돼 버린다(Facedown은 어두운 곡일 거란 생각에 늘 지나가 버렸고 Take It to the Streets은 그렇게 강력한 hook가 있을 줄 몰랐지만). 오늘 매트 레드먼을 들으면서 일하는데, 무려 세 곡이나 번안하고 싶은 마음 간절해지더라... 해서 일단 초벌 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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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

아무 생각없이 블로그 유입 경로를 보다가 발견.

7월 18일 내 블로그 유입경로에서

mail16.korea.kr에서도 내 블로그를 링크한 페이지가 있는 모양이더라.

이런 특이한 링크는 눌러봐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므로 이건 뭘까, 하고 아무 생각없이 눌러봤는데

링크를 누르면 이렇게 나옵니다.

공직자 통합메일? korea.kr은 국가정책포털인데?? 그러면 국가정책포털 내부 메일에서 내 블로그를 링크했단 말인가???

아니 이게 무슨 귀신 들쥐 구워먹는 소리야? 공직자 여러분께서 내 블로그를 지켜보고 계시단 말씀이신가? 이게 무슨 영광, 아니 쪽팔림, 아니 변괴람? 여보 나으리들, 저 그런 사람 아녜요!!!



후기.
mail.korea.kr에 들어가 봤다. 기왕에 메일계정을 써 볼 요량으로 가입까지 하고 액티브X 다 깔았다.
공직자 통합메일 FAQ에서

혹시나 했지만 GPKI와 EPKI만 로그인이 된다. 일반 ID/PW 로그인은 택도 없다.

무슨 뜻이냐면, 내 블로그를 뒤져본 사람은 절대 민간인이 아니고 분명히 공무원이라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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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

안녕? 엽토군 형이야.
저번에 글짓기 대회에 관한 얘기 한 이후로 처음이네.
형이 요새 블로그에 '길게 쓰는 글'을 영 안 썼거든. 그래서 한 번 쓸께.
여러분에 대해서는 그냥 친구들이라고 해도 되겠지?

친구들 학원차 타고 학원 다녀 봤니?
형도 학원 네댓 군데를 다녀 봤는데[각주:1], 학원차라는 게 참 편리해.
제때 제 자리에 가 있으면 차가 와서 자기 같은 학원 원생들을 태워 학원까지 가 주잖아.

지각(해서 괜히 혼날) 걱정도 없고,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훈훈하고, 친구들 만나서 좋고.

그런데 이 좋은 학원차에 대해 형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어.
왜 그러냐고? 얼마 전에 이상한 풍경을 봤거든.
어떤 학원 가방을 멘 친구들 또래쯤 되어 보이는 어린이들이 있었는데,
버스 정류장 앞에 세워진 학원차 앞에서 심심해 어쩔 줄 몰라하는 거야.
그 안에 들락날락거리고, 차 안에서 뒹굴거리고 하면서.
도저히 이해를 못 하겠더라고. 그 시간에 버스를 타고 집에 가 버리면 되잖아.
그런데 왜 미련하게 학원차 움직이기를 기다리지?
형은 거기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지 못했던 질문을 얻게 되었어. 사실은 충격적인 장면이었거든.
그리고 드디어 이 글을 쓰는 거야.

바로 본론 얘기할께.
이런 의심을 해 볼 수 있어.
학원차란 학원 공부 일정을 어른들이 철저하게 감시하고 통제하려는 생각에서 나온 거야.
여러분이 제때 차에 타는가, 제때 학원에 갔는가,
집에 돌아가는 학원차 시간까지 잘 버텼는가 (그러니까, 중간에 토끼지 않았는가) 등등이
학원차 제도 하나로 전부 확인이 가능하거든.
한마디로, 학원차는 친구들 좋으라고 있는 게 아니라 어른들 좋으라고 있는 거야.
여러분은 어른들을 위해 학원차에 타고 내리는 거라, 이거지.

겉으로 드러나는 학원차의 운행 이유는 이런 거야.
"원생들이 학원까지 찾아오기에는 학원이 너무 머니까,
학원에서 아이들을 태워 주겠습니다.
그러면 제때제때 편리하게 학원에 오고 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건, 요즘에 와서는 잘 생각해 보면 대체로 대단한 이유가 아니야.

친구들이 다니고 있는 학원과 집(혹 학교)은 서로 얼마나 멀리 있니?
형이 처음 탔던 학원차는 제주도의 도평청소년수련관 차였어.
형이 제일 먼 곳에 살았었는데, 총주행 시간이 못 잡아도 40분은 걸렸을 거야.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 벽지 지역의 몇몇 원생들을 위해서라면 학원차가 정말 필요하지.
하지만 여러분은, 잘은 몰라도, 도시에 살고 있을 것이고,
거기서는 대중교통과 학원 밀집지역이 잘 갖추어져 있을 거야.
그러니까 마음만 먹으면 학원차 아니라도 학원에 제때 가는 방법은 당연히 있어.
아까 얘기한 심심해 하는 어린이들은 그걸 모른 거고.

물론 학원차라는 게 처음에는 그런 의도로 시작되었을 꺼야.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 의도보다는, 아무도 이야기해 주지 않지만,
아까 말한 '원생들의 움직임 감시/통제'의 쪽이 더 중요한 이유가 되고 있을 거 같아.

또 학원차 제도는, 가뜩이나 안 좋은 여러분의 자기통제력을 더 약화시킬 거야.
자기통제력이 뭐냐구?
스스로 '이것을 해야겠다', '하지 말아야겠다' 하고 마음먹고 그대로 옮기는 힘이야.
자기 스스로 공부할 줄 아는 친구들은 자기통제력이 강한 편이라고 할 수 있지.
그리고 형이 알기로는, 학원에 다니는 친구들의 적지 않은 수가
'저 알아서는 공부하지 않으니까' 부모님이 억지로 보내는 경우인 걸로 알고 있어.
그런데 이런 친구들이 학원차를 아무 생각 없이 타고 다니면 어떻게 될까?
숙제 안 한 걸로 혼나던 그 친구들은, 이제 학원차에 제때 안 탔다는 걸로 혼나겠지.
그러면서 점점 '혼나야 말을 듣는' 자기통제력 없는 사람으로 자라날지도 몰라.
물론 이건 과장이야.
그렇지만 걸어가거나 버스, 지하철 등을 타고 학원에 제 발로 가는 친구들이랑,
'학원차에 타기조차 귀찮아하는' 친구들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겠지.

이거 하나는 꼭 기억해 주라.
여러분을 어엿한 사람으로 봐 주는 어른들은 거의 없어.
대부분의 어른들은 여러분을 자기들이 기르고 있는 나무 정도로 생각해.
 꿈이 열리는 꿈나무.

그래서 그 나무가 남들보다 뒤처지면 어떡하나 하는 쓸데없는 걱정 때문에
여러분을 학원에 보내고 계시고, 학원차까지 몰아서 데려가는 거야.
그러면서, 마치 아이들을 학원에 제때 보내 주는 건 우리들이라는 식의 자부심에 절어서
'어린이 보호차량'이라는 표지까지 붙여 가면서 난폭운전을 일삼지.
사실은 여러분이 학원에 갔나, 가면 언제 갔나, 끝까지 잘 있었나, 그런 거나 지켜보고 있으면서.

학원차는 당연히 움직이는 게 아니야.
어른들이 다 돈을 주고받고 했기 때문에 아저씨들이 여러분을 태워주는 거지,
마음이 착해서 여러분을 공짜로 태워준다든가 그런 건 전혀 없어.
(사실은 그래서 난폭운전을 하게 되는 거야. 그건 이해해 줘.)
거기엔 당연히 어떤 의도가 있고, 어른들이 원하는 게 있다는 게 형의 이야기야.
여러분 좋으라고 만든 제도가 절대 아니라는 거지.
그런 생각 해 본 적 있니? 형도 얼마 전에야 해 본 생각이었어.

이제부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해줄께.
먼저 집이나 학교에서 학원까지 가는 버스/지하철/걸어갈 길을 잘 찾아봐.
엄마한테 가서 "나 학원차 안 타고 학원 갈 테니까 학원 갈 교통비를 달라"라고 말씀을 드려.
그리고 학원 선생님한테 가서 "나 학원차 안 타고 학원 다닐 테니까
내 학원비에서 학원차 운행 요금만큼을 에누리해 달라"라고 말씀드려 봐.
그 다음엔 어떡하면 되냐고?
허락해 주면 뭐 학원차 타는 대신 알아서 학원 다니면 되고,
허락이 안 되면 아마 여러분은 어른들의 또 다른 모습을 확연히 볼 수 있을 거야.
대부분의 어른들은 이해를 못 하실 거야.
그래도 "어쨌든 지각 안 하고 땡땡이 안 치면 되잖아요?"라고 자신있게 말씀드려야 해.
그러면 허락이 떨어질 수도 있어.
물론 그 책임은 니들이 지는 거야! 형은 지금 그걸 실천해 보라고 말하고 있는 거고.
여기까지 글을 읽어준 친구들은 똑똑한 친구들임에 틀림없는 줄 형은 믿어.
그래서 이런 거까지 얘기해 주는 거야.

남은 학원 생활 멋있게 잘 해라.
기왕 다니는 곳이라면, 어떤 생각을 가슴에 품고 학원을 경험해 봐.
청소년의 자기통제에 전제적으로 개입하여 그 능력을 있는 대로 저하시키고, 기성 세대의 통제와 감시 욕구를 가장 개별적인 영역에까지 침투시키는 이 국제적 웃음거리 수준의 한국 사회 체제 안에서, 그래도 여러분은 부디 스스로 알아서 결정하고 행동하는 그루터기 친구들로 남아 있을 수 있기를.

  1. 이건 자랑인데, 형은 중학교 때 이후로 학원에 다녀 본 일이 없어. 그래서 요새는 학원차 제도가 어떻게 돼 있는지 잘 모르겠네. ㅋㅋㅋㅋㅋ [본문으로]
Posted by 엽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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