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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이 에 게시

그런데 여기서 이상한 사실을 발견했다. 나는 분명히 맛있는 갈치를 위해 갈치 값을 지불한 것인데, 정작 내 돈을 받아 간 건 갈치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란 말이다.

그렇다. 나는 갈치를 맛있게 먹었지만 정작 갈치한테는 아무것도 해준 게 없다. 갈치는 아무런 죄도 없이, 나한테 잘못한 것도 없는데 아무런 대가조차 받지 못하고 뜨거운 프라이팬 위에서 몸통을 지지고 또 자신의 고소한 살을 나에게 뜯껴야만 했다.

왜 사람들은 ‘갈치 값이 비싸다’라고 얘기하는가? 갈치는 억울하다. 갈치는 자신을 사간 사람들에게서 돈 한 푼 받은 적이 없는데 왜 ‘비싸다’란 얘기를 들어야 하는 것인가? 갈치를 산 사람이 낸 돈은 갈치에게는 한 푼도 가지 않았다. 그 돈은 전부 바다에서 놀고 있는 그 갈치를 내가 살 수 있게 노력했던‘사람’들에게만 나눠진 것이다.

억울한 갈치는 강변하고 싶을 것이다. ‘비싼 것은 나, 갈치가 아니라 바로 나를 잡아간 사람들’ 이라고...


더 읽어보고 싶으신 분들은 <김빙삼의 내 멋대로 경제학 강의>로. 참고로 이 블로그에는 목차가 없다. 맨 밑으로 내린 다음에 스크롤의 압박을 거슬러 올라야 할 것이다. 읽는 중인데, "경제에 관한 수필쯤" 된다고 자수한 시점에서 꽤 괜찮음. 그리고 읽어보면 알겠지만 사실은 맑스 자본론 요ㅋ약ㅋ본ㅋ

이분은 트위터가 본계고 구글플러스나 블로그스팟은 부계인듯.

Posted by 엽토군
:

빠빠야 빠빠야 빠바 Babbaya babbaya bah-ba


불신자들 by Achime on Grooveshark


믿음이 타고 있다 Faith on fire, it's burning faith;

그곳에 고기를 구워 먹자 Let's make a barbecue over the flame!

믿음이 Faith on fire

타고 있다 it's burning faith

믿음이 Faith on fire

아아 Whoa




EBS 스페이스 공감에서 말한 '불신자들'의 의미그래서 전반의 길고 긴 연주까지도 합쳐서 이 곡이 유난히 마음에 드는가 보다. 다들 Pathetic Sight로 아침을 듣기 시작한다지만 난 이 노래로 듣기 시작했음.

Posted by 엽토군
:

신자의_일생.txt

2013. 2. 3. 17:20

오늘 송파교회 강진수 목사님 설교에서 기억나는 대로 옮김.

믿는다는 말도 너무 쉽게 합니다. "당신 죄인입니까?" 물어봐도 너무 자연스럽게 "네, 저 죄인입니다, 예수님이 저 구원하시려고 죽으신 거 압니다"라고 너무 편이하게 말하고 있단 말입니다. 전도를 할 때는 그 믿는다는 고백을 받아내고 싶어서 막 추궁을 하지요. 자꾸 "믿습니까?", "당신이 죄인인 것을 믿습니까?" 묻는데 그 사람이 또 착한 사람이어서 싫다고 거절은 못 하겠고 계속해서 "어차피 밑져야 본전인데 그냥 믿는다고 하십쇼" 하면 '천국이 있는지 내가 죄인이라는 게 뭔지 잘은 모르겠지만 뭐 그렇다고 하니까 그런가 보다'하고서 얼떨결에 "예 예 믿습니다 네" 대답 한번 해 주지요. 그러면 그 자리에서 "우리에게 새신자가 왔습니다, 당신 구원 받았습니다" 하면서 좋아하고 환영하고 그러죠. 그러니까 아 이게 좋은가보다 하고 주일날 하루 이틀 오는데 복음은 잘 몰라도 '아 말씀이 좀 좋은 것 같다' 하면서 한 해 두 해 있다 보면 집사도 하고 권사도 하고 장로도 합니다. 교회에선 집사고 장로고 목사인데 죽어서 천국 문 앞에 섰을 때 주님이 모른다 하시면 어쩌려고 그러십니까? 정말 자기가 죄인인 줄 아는 사람이 되느냐 말입니다.

요즘 사람들 스마트폰 많이 쓰지요.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이런 사람들에게는) 마치 스마트폰 속 수많은 앱 프로그램 중의 하나인 '기독교'라는 앱 하나 받아서 쓰는 것 같다 이 말입니다. '문제 있으십니까? 작정기도 좀 해 보십시오, 이 앱 써 보십시오. 사업 잘 안 됩니까? 이거 실행해서 쓰십시오. 다른 거 뭐 '가톨릭'이나 '불교' 앱보다 이게 훨씬 좋습니다!' 그러는 것 같단 말입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OS를 바꾸는 것입니다. 오퍼레이팅 시스템 아시죠, 체제를 바꾸는 거란 말입니다. 윈도우 쓰던 사람이 맥킨토시 쓰면 처음에 버벅거리고 잘 못 다룹니다. 지금껏 써 왔던 것들을 쓸 수가 없게 되지요. '이 프로그램은 호환이 안 돼서 못 써요, 현실이 이래요', 그렇게 다른 OS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해서 포기해야 할 게 많아집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건 그런 것입니다. 체제가 바뀌어 있느냐 말입니다.


체제 정도가 아니라 사실은 저장장치만 뽑아서 아예 하드웨어 기계까지 통째로 바꾸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을 했지만 그건 신학적으로 문제가 있는 관점 같으니 패스. 여하간 오랜만에 블로그에 말씀 본문 포스팅은 오랜만인 거 같다.




(이쯤에서 그렇게 잘 나간다는 싱가폴의 뉴크리에이션 처치 담임목사 조셉 프린스 님의 설교를 들어 보자. 그는 히브리어에 숨겨진 번영의 진짜 의미를 알려줄 수 있다고 말하는데, 이제는 그 비밀을 알려면 싱가폴달러 10불을 내야 되는 모양이다. 아니면 내가 뉴크리에이션처치 갔을 때 마침 직접 들었던 아래 같은 설교 따위로 대신해도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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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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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한 사람의 고충 중에는 이런 게 있는데, '쟤는 뭔가 다르게 살 것이다'라고 기대를 잔뜩 받는다는 것이다.


기대'만' 잔뜩 받는다.


지원도 못 받고 격려도 못 받고 이해도 받지 못한 채 그냥 온갖가지 기대만 받으며 살아야 했을 그 특이한 사람에게는 평범한 인생이 되는 것만이 최선이 된다. 그런데 그렇게 그가 평범한 인간을 달성하면 또 그때에 와서는 다들 몰려나와 혀를 차고 고개를 젓고 한숨을 쉰다. 어쩌다 쟤가 저렇게 됐을까, 저럴 애가 아니었는데, 난 쟤 진짜 '잘 될 줄' 알았는데 하면서.

그러면 그 특이한 사람은 말이 막힌다. 욕도 하려다 접는다. 그리고 그저 지금 누리게 된 평범한 삶이 주는 아주 약간의 유익을 쓸쓸히 바라보며 입을 닫고 고개 숙인다.



이번 학기 휴학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꼬박 한 달 동안 희망했던 것을 가족들과의 대화 한 시간에 다 그만두었다.

사실 개인적으론 처음에 되게 실망스러운 결말이구나 싶었는데, 주변에서는 잘 했다고들 한다. 이건 정말 잘 된 일일까. 정답을 고르는 것만이 정답일까. 역시 내게는 일탈이랄까 예외적 생활이 별로 처절하게 필요하지는 않은 걸까. 나도 어쩌면 재미없는 삶을 살게 될지도 모르지만, YWAM 리더생활이라든가 바로그찌라시라든가 기타 여러 생활을 하면서, 내가 휴학하지 않는다는 것이 여러 사람에게 잘된 결말이라는 것이 의외였다... 그럴 수도 있구나. 아직은 잘 모르겠다. 사실 오늘도 늦게까지 잠들지 않고 있는 매우 안 좋은 생활습관 가운데 있다. 슬슬 이거 고치고 제공기록지도 제대로 만들고 사무실도 찾아가 보고 수강신청 준비를 해야 할 텐데. 나는 여전히 방학을 보내고 싶어한다. 하긴 휴학하면 어 이것도 방학인가본데? 하고 놀다가 어영부영 12주가 가 버리겠거니 싶어지기도 했다.


쑥부쟁이 by 스토니스컹크 on Groovesh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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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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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랑이들!

2013. 1. 28. 22:59

노랑이.

한 예닐곱 달을 이거만 생각했는데 어느 날 답이 나왔다. 답은 "노랑이"다.


대한민국의 진보진영, 사민주의자들 및 상식적이고 자유롭게 행동하고 싶어하는 무릇 모든 이 나라 사람들에게 차꼬가 되고 걸림돌이 되고 주홍글씨가 되는 칭호가 있었다. '빨갱이'가 그것이다. 단순히 지난날의 공산 정권이 적색을 많이 사용했다는 이유로 그리고 북한이 적색을 주로 사용하며 그래서 국군이 '적'이란 글자를 표기할 때 반드시 그 글자만 빨간색으로 표기한다는 원인으로 인해, 빨갱이란 이름은 과연 그 누구의 자유와 인권과 발언권도 깡그리 소멸시켜 버리는 무시무시한 낙인이곤 했다. 발음도 무섭고 연상되는 이미지도 너무나 괴기한 그 이름, 빨갱이.


언제까지 빨갱이라고 불리기만 할 것인가. 정말 우리들의 머릿속은 빨간가?

색깔은 너무나 치명적이다. 적색은 위험하다는 인상을 아주 손쉽게 심어준다. 그러나 소위 '빨갱이'들이 주장하는 것이 그렇게나 원색적이고 노골적인 것이 아니기도 하다는 점에 좀 주목해줘야 할 텐데, 그러기 싫다는 의도를 가득 담아, 무슨 조금만 '덜 자유시장자본주의적인', '더 사회민주주의적인', 더 '급진적인' 생각만 갖고 있다 하면 바로 빨간 놈들, "빨갱이"라고 이름붙여 버림으로써 더 이상의 인격적 대화를 차단해 버린다. 사실은 그 생각들이 그다지 빨갛지만도 않은 생각들인데도 그렇다.


그렇다면 이쪽에서 반격을 하면 어떨까. 그러는 당신네들은 노랑이라고 말이다.

국어사전에서 노랑이를 찾아보면, 노란빛을 띠는 물건이라고도 하지만, 속이 좁고 인색한 사람을 가리킬 때 쓰는 말이기도 하다. 노랗다는 것은 무엇인가? 몇 날 며칠을 햇빛 받는 자리에 내내 고정시켜 두어 빛이 바래서 나오는 색깔이 아닌가? 마음씨 넓게 쓸 줄 모르고 그저 아무것도 새롭게 하려고 하지 않을 때의 색깔, 그러므로 돈의 노예가 물들어 버리는 색깔은, 과연 노란색이 맞을 것이다.


노랑이도 좋고 노랭이도 좋다(물론 표준어로는 틀렸다). 문제는 프레이밍이다.

그저 모든 판단 기준이 자기에게 이득이 되느냐, 지금의 기득권과 사회구조가 지켜지느냐, 내 돈 내 집 내 새끼가 피해를 안 볼 수 있겠느냐에만 관심이 있는 구두쇠들. 그래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국가유공자가 어떻게 굶고 지내든 영세한 사람들이 얼마나 불행하든 자기 집 대문 밖에서 헐벗고 갈데없어 쓰러져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든 관심이 없는 저 초고층 아파트와 빌라마을 속의 노인들, 아줌마들! 그들을 '기득권'이니 '일부 5060'이니 '1%' 등으로 부르는 것은 그들의 진짜 속성을 드러내지 못하는 너무나도 객관적이고 그래서 불공평한 호칭이다. 그들은 우리를 빨갱이라고 부르는데, 왜 우리는 저들을 노랭이라고 부르지 못하는가? 야 이 돈독 올라서 얼굴 노랗게 뜬 노랑이아! 왜 그렇게 부를 생각을 못 하고 살았을까? 누군 누구를 색칠놀이하는데 왜 누군 누구를 색칠놀이할 수 없단 말인가? 최상위 1%라는 이름은 절대 노랑이라는 이름이 갖는 엄청난 편견 선물세트를 제공할 수 없을 것이다. 아마 이 이상 그들에게 더 노골적이고 인신 비하가 되는 표현은 없지 않을까?


노랑이들! 그들의 색은 노란색이다. 수전노의 색깔이다, 스크루지 영감의 금전출납부의 색깔이다, 금괴의 색깔이다, 친일파들이 그토록 받고 싶어했던 무슨무슨 작위며 농토의 소유 증명서의 색깔이다, 주식과 어음과 은행 수표의 색깔이다 그리고 의 색깔이다! 빨갱이들 중에 정말 빨간 생각만 하는 사람들이 있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노란색밖에 모르는 놈들은 노랑이라고 불러 줘도 되지 않겠는가? 노란 놈을 노랗다고 부르는 게 뭐가 나쁘단 말인가? "노랭이, 노랭이" 놀려 주자! 돈밖에 모르는 놈들! 누리끼리한 놈들!

프레이밍을 시작하자. 지목하자! 이건희 회장은 노랑이다! 이완용은 노랑이다! 김재철은 노랑이다! 이동흡은 노랑이다! 이근안은 노랑이다! 전두환은 노랑이다! 이명박은 노랑이다! 너희 노랑이들아 빨갱이들의 색칠놀이를 받아라! 이 나라의 모든 돈밖에 모르는 거지같은 놈들에게 외치자, "노랑이들!"

Posted by 엽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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