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기획이라는 걸 하고 있다 보니, 몇 년 전 어렴풋하게 생각했던 것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본격적인 'concept/idea development'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TxS라고 하는 행사에도 다녀 왔고, 여기저기 인터뷰도 다니고 벼룩시장에도 참석하고 처음 보는 사람들과 기획회의를 하기도 하고 어떡하면 찌라시를 재밌게 뿌릴까를 고민하고 뭐 그러고 산다. 단체로 명함을 팔 때 creative director라는 직책명이 너무 부담스러워서 feature director로 바꿔 달라고 했었는데, 바꾸지 않았을 때의 직책명이 내 진짜 일을 더 잘 설명해 주는 것 같아 약간 후회된다. 그건 뭐 사소한 이야기고, 오랜만에 영적인 얘기를 몇 자 적어 보려고 한다. 읽는 사람에 따라서는 이게 무슨 개소리일까 싶을 만한 이야기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아이디어는 그 자체로 선한가.
아이디어를 내고 그 아이디어의 기발함을 즐기고 그것을 구체화하고 눈앞에서 해나가는 것, 발상과 그에 수반되는 일련의 행위들은 마냥 좋고 바람직한 것인가.
아닌 것 같다. 그 분명한 예로 두 개의 빌딩 사진을 보여 드리겠다. 사진만 보고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어할지 예상하실 수 있는 분들은 아래의 "더 보기"를 누르지 않으셔도 좋겠다.
이 세상에는, 아무 가능성도 없어 보이는 이 재미없는 세상에서 뭔가 거창한 아이디어를 내어 뭐가 됐든 굉장한 것을 해보자는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진영이 존재한다. 그들은 생각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고, 따라서 세상에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자원이나 더 많은 노동[각주:1]이 아니라 더 신선하고 더 재미있는(entertaining) 아이디어의 제시와 설계(design)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아니면 그 아이디어를 발현할 '하위 아이디어'로서의 기술(technology)이 더 필요하거나. 오늘날 이 진영의 베이스캠프 같은 것이 되고 있는 TED가 "Technology", "Entertainment" 그리고 "Design"의 첫머리를 딴 것이라는 데는 이런 이유가 있다.[각주:2]
나는 이런 사람들의 그룹이 프리메이슨이니 무슨 기사단이니 하는 식으로 존재한다는 음모론을 말하고 싶은 게 아니다. 이것은 하나의 이념 체계이다. 게다가 이것을 기술지상주의라 부를지 혁신주의라 부를지조차도 사실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내가 최근 우려하기 시작하고 대단히 조심스럽게 접근하기 시작한 이 이념의 함정은 이런 것이다: "생각만 있으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그리고 그 생각은 다름아닌 우리가 한다."
먼저는 이것이다. 생각만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 대답은 다음과 같다. 하나,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둘, 생각도 생각 나름이다.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나는 지금 순환론적 역사관을 주창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기술과 예술과 계몽과 새로운 생각과 신문물이 정말로 무엇인가를 바꾼 사례는 역사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설명이 더 타당할 것이다: 세상은 생리와 구조는 그대로 둔 채 외양만 변동된 것이며 그에 맞추어서 기술이 고안된 것이지, 결코 기술이 세상을 먼저 바꾼 사례는 없다. 아니면, 그저 한때는 세상의 이런 면이 부각되고 한때는 다른 면이 부각되고 할 뿐이다. 요컨대 이 사회는 옷을 점점 좋은 것으로 갈아입고 있을 뿐, 여전히 털 없는 원숭이의 세계일 뿐인 것이다. 지구촌이 페이스북으로 하나가 되고[각주:3] 아시아인들의 페이스북 점유율이 엄청나게 되자 페이스북 안에서 인류 평등이 달성됐는가? 천만에. 지금 페이스북 세상은 미국 유머를 번역해 전세계가 구독하고 있는 실정이다. 왜? 미국이 더 굉장한 개그 센스를 가지고 있어서인가? 그저 미국으로부터 외국에 전파된 천편일률의 생활양식(월요일에 출근한다거나 대다수가 대학에 간다거나 사건사고를 트윗한다거나...) 덕분에 그 유머가 외국인들에게 소화될 수 있게 되었는데 그 때 마침 페이스북이란 것이 나타났기 때문일 따름이다. 그런가 하면 지금처럼 성의 문란이 심각한 적이 없었다고 하는데, 사실 맘먹고 찾아보면 과거 숱한 문명들이 망해 가던 시절에서 이보다 더 심한 시절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그 시대의 기술보다 지금의 기술이 더 우월하고, 그 시대의 아이디어보다 지금의 아이디어가 더 우월할까? 전자의 대답은 예스이다. 그러나 후자의 답은 not sure가 된다. 기술이 세상을 바꾼 적은 없었으며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그렇게 수월하고 평화로우며 합리적으로 바뀔 세상이었다면 진작에 바뀌었지 않았겠는가?
그리고 '생각'도 '생각' 나름이다. "돌로 건물을 만들지 말고 벽돌을 만들어서 건물을 만들자." 이것은 굉장한 technology가 아닌가? "도시를 세우고 그 안에 탑을 하나 크게 짓자." 이것은 꽤 매력적인 도시건축 design이 아닌가? "그 탑을 정말 크게 짓는 거죠. 그러면 모두가 그 탑을 보고 모일 수 있을 테니까, 얼마 전 있었던 그런 사건이 또 일어난다 해도 아무 걱정 없을 거에요! 그러면 우리는 세상에서 제일 유명해지는 거지!" 이 얼마나 흥미진진한 entertainment인가? 2700여 년 전의 TED 프로젝트는 그렇게 바벨탑을 쌓았다. 그리고 그 탑은 보기 좋게 공사가 중단됐고, 사람들은 "흩어짐을 면하려"고 했다가 천하 사방으로 흩어지게 되고 말았다. 건전한 발상 또는 생산적이고 건강한 아이디어만이 매력있는 것은 아니다. 사실을 말하자면 대부분의 "매력 있(다고 하)는" 아이디어들은 대단히 불손하고 불량하며 불건전하다. 그리고 그것은 차라리 '재미의 기본규칙' 같은 것이 되어 있다. 만화에서부터 시사 프로그램, 웹사이트, 동인지에서 농담에 이르기까지 생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분야에서 그렇다. 상스럽거나, 욕망에 충실하거나, 해도 너무하거나.[각주:4] 그렇다면 생각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을지는 모르되 그것이 과연 우리가 처음 어렴풋이 기대했던 의미의 변화이겠느냐는 것이다. 분명히 아닐 것이다. 더 선정적이고 더 천박하며 덜 건설적인 것을 위해서라도 얼마든지 기발한 아이디어를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그리고 이보다 더 중요하게, 신앙적 차원에서 우려를 표하고 싶은 지점은 바로 이것이다. '세상을 더 좋게 만들 수 있는 어떤 혁신적인 생각을 제시할 수 있다면, 그 주체와 주인은 바로 우리 자신들일 것이다'라는, ideation의 핵심 아이디어.
나는 아이디어의 주체 내지 소유자가 우리 인간들일 수 있다는 발상을 경계한다. 그런 식의 사고방식을 이용하여 원수 마귀가 취할 수 있는 전략 노선은 이런 것이 될 게 뻔하기 때문이다: "바로 그렇다. 너희가 생각해서 만들어낸 것만이 이 세상의 변화로 남을 것이다. 왜냐하면 너희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전지전능하다는 하느님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 세계는 어차피 아무 의미도 없이 그저 주어져 있을 뿐이다. 너희들 또한 진화가 잘 된 동물일 뿐 그 이상의 특별한 의미는 없다. 다만 당신들이 당신들 생각에 옳은 대로 행할 수 있다는 것만 빼고 말이지. 그러니 당신들이 지금 욕망하는 바로 그 멋진 아이디어를 실행으로 옮겨라. 그렇게 해서 너희들의 이름을 사방에 널리 떨쳐라. 왜냐하면 어차피 한 번 살고 죽으면 그만이니까. 당신들의 아이디어만으로 이룩해내는 세계가 바로 당신들이 입성할 유일한 지상 낙원이 될 수 있지 않겠는가? 당신들의 아이디어는 당신들의 빼어난 생각 능력과 운으로 만들어낸 오로지 당신들만의 것이다. 그러니 그 아이디어의 생존권을 철저하게 주장해야 한다. 그 아이디어들이 존재 자체로 옳고 무조건 아름다우며 다양성을 위해 존중받아야 함을 끝까지 외치고 우겨라."
이것은 결코―단 하나도!―진리가 아니다. 문제는 이것이 현대의 과학, 학문, 예술, 산업, 경제, 종교(각종 정신적 활동들을 포함) 등에 널리 퍼져 있는, 사실은 바벨탑의 때로부터―아니, 하나님과 같이 되리라고 하와가 선악 열매를 따먹은 그 날부터―매우 구구하게 전해져 내려오는 거짓말 선물세트라는 데 있다. 그리고 인류는 시대의 연말연시가 찾아올 때마다 그걸 넙죽 받아들고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그렇게 로마 제국이 세워졌고 십자군이 나타났고 히틀러가 설쳤고 북한 정권과 팍스 아메리카나와 롯데슈퍼타워123의 세상이 왔다. 이것들이 전부 다 악의 세력에 들어 있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이 모든 것들이 가능했던 이유―우리 인간이 주체이다―가 다분히 사탄적인 것이고 결코 진리가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한 시대의 주인이 되려고 애쓰던 역사상의 모든 군주들은 하나같이 뭔가 절대로 무너지지 않거나 절대적으로 높은 어떤 것(주로 돌비석)을 세우고 싶어했다.
대안(또는 내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방향성)에 대해 말하자면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길게 말하자면, 아이디어란 무조건 옳고 선하지 않으며 따라서 아이디어와 그것을 건전하고 생산적이며 도덕적/윤리적으로 나쁘지 않은 것이 되도록 아주 세밀하게 검사하고 도정(搗精)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아주 간단히 말하자면, 아이디어의 주는 하나님이심을 인정해야 한다. 누가, 누구의 발상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보다 더 세상을 크게 바꿀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그 사건으로 휘장은 찢어지고[각주:5] 잠자던 성도들이 많이 일어났으며[각주:6] 율법과 선지자의 예언이 "다 이루었다". 아이디어를 내려면 이 정도는 해야 한다(그리고 아무도 사실 이렇게는 할 수 없다). 그렇게 못 하겠으면, 그저 입을 다물고 온 천하를 말씀으로 지으신 만군의 야훼 앞에 조아리고 있어야 마땅할 터이다.
"거짓을 예언하는 선지자들이 언제까지 이 마음을 품겠느냐? 그들은 그 마음의 간교한 것을 예언하느니라. 그들이 서로 몽사를 말하니, 그 생각인즉, 그들의 열조가 바알로 인하여 내 이름을 잊어버린 것 같이, 내 백성으로 내 이름을 잊게 하려 함이로다(렘23:26-27)"
P.S. 황당함을 가득 담아 "기승전신(아마도 '神')"이라고 평해 주신 분이 있다. 일단 읽어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그거 아세요? 저도 쓰면서 아 이거 어그로가 될텐데 쓸까 말까 고민했더랍니다. 현재까지는 제가 이 '비약적인' 전개를 어떻게 더 촘촘하게 풀어나갈 필력이 안 되네요!
이런 물질적인 것들이 모자라기 때문에 발생하지 않는 변화란 없다는 것이 그들의 주된 생각이다. [본문으로]
이것이 TED의 공식 입장일 리 없다는 것조차 예상하지 못하는 fact idiots들은 그냥 이 글을 이쯤에서 그만 읽어 달라. 말이 통할 것 같지가 않다. [본문으로]
이런 류의 사고 역시 대단히 허구적이고 허점이 많다. 페이스북이 있었기 때문에 세계가 더 가까워진 게 아니라, 세계가 더 가까워졌기 때문에 페이스북이 외국어를 지원하게 된 것뿐이다. [본문으로]
이런 것들을 가리켜 선정적(sensational)이라고 한다. "강남스타일"에 크리에이티브나 새로운 아이디어가 전혀 없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고, 이런 게 센세이션(선풍적 인기)이다. 선정성은 욕을 먹지만 선풍적 인기는 문화관광부 장관상을 탄다. 이 얼마나 우스운 현상인가? 그러나 사실 이런 현상은 아이디어라는 것의 본질에 관련된 것일 뿐이다. [본문으로]
역시 두 번 생각해 주는 문화가 없는 곳에서는 괜히 댓글 다는 게 아니다. 이걸 봤는데 정말 요만큼도 반응이 오지 않았다. 악플 받고 '이 뭔 개소리지' 하고 무시해 버렸다는 이야기를 간혹 듣긴 했는데, 이번에야 그 심정이 좀 이해된다. 정말 이 정도의 비논리와 몰이해와 열악함이면 차라리 무시를 하게 된다.
다만 이 512번 자유인[각주:1] 님을 위해 어떻게 그런 사고방식이 나왔는가는 한번 썰을 풀어보겠다.
나는 사실을 말했다. 그 사실은 해석되고 종합적으로 판단된 사실이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이 댓글은 "아이패드 미니 뜯어봤더니 국산부품 LGD 선명" 어쩌구저쩌구 하는 기사 내용 자체보다는, 이런 류의 '정말 아무래도 좋은' 뉴스가 다시 생산되어 재차 소비되는 전체적 사회현상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각주:2] 그 사회현상―내가 관찰하고 일반화한―이란 이렇다. 이 나라의 첨단 부가가치 생산 산업이라는 것은, 내가 TxS 행사에서 시찰한 바, 실제로 어떤 부가적 가치를 생산해내고 있다기보다는, 관행과 사적 방편으로 처리해선 안 될 일을 관행과 사적 편법으로 처리하고,[각주:3] 사람이나 사람의 입장이나 그 사람이 낸 아이디어 그 자체보다는 그것들을 투입한 결과로서 실제로 돈을 벌어다주고 겉으로 드러낼 수 있는 성과와 결과물만을 거의 집착에 가깝게 요구하며, 이 두 가지가 섞여서 나오는 초과야근이니 부당한 갑을관계니 하는 것들 때문에 일과 일이 함유하는 가치에 대한 열의와 성찰을 삭제한 채 결국 살가죽과 뼈만 남은 크리에이티브만 내놓거나 아니면 그냥 하청 납품만 죽어라고 좋게 만들어주고 있을 뿐이면서, 이 모든 실상을 기만하고 포장하기 위해 "세계에서 가장 잘 나가는 물건 중 하나가 우리의 부품 없이는 제작되지 못한다" 운운하는 주기적인 자기분석을 통해 정작 자기들이 "세계에서 가장 잘 나가는 물건" 그 자체를 만들어내지는 않고 있음을 드러내는 전혀 자랑이 안 되는 자랑을 하고 있는 자가당착의 생리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각주:4] 나는 이 현상 인식이 크게 비타당하거나 비논리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감정적이거나 주관적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으며, 실제로도 그렇지 않다. 일반적으로 나와 남의 여러 경우를 종합하여 내리고 있는 결론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사실을 제시하면 열등감을 드러낸다.
자기가 그런 측면을 몰랐거나,[각주:5] 그런 걸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스스로가 불쌍해지거나, 왠지 그 사실이 옳다고 말하면 자기가 '쪽팔리게' 되거나 할 때 그들은 "세상을 그렇게 바라보고 싶나요? 그냥 뒤지세요"라고 열폭한다. 글쎄, 내가 뒤지는 건 내 팔자소관이지만, 상술한 현실에서 이 나라가 아이패드 같은 빌리언셀러를 절대 내놓지 못하리라는 종합판단은 그냥 연역의 결과로 도출된다. (실제로도 그렇지 않은가? 가격경쟁과 마케팅을 써서 굳이 팔지 않았는데도 세계의 사람들이 스스로 사고 싶어했던 '국산품'이 과연 존재하였는가?) 그런데 사실을 말했더니 다짜고짜 어떻게 그런 사고방식이 나올 수 있느냐고 묻는다. 내가 묻고 싶다. 어떻게 사실을 얘기한 사람한테 어떻게 그런 사고방식이 나오는지를 묻느냐고. 하도 심하게 틀린 질문을 받으니 얼척이 없어 대답을 못 하겠다. 뭐 자유인512님이 이 블로그 글을 보면 다행이요 못 보면 그만이다.
우리 사실관계 앞에서는 좀 태연해지자.
왜 이러이러하다는 얘길 하면 갑자기 사람 보고 나가 뒤지라고 하나? 자기 귀 어둡단 표를 그렇게 내면서 버럭하면 멋진 줄 아나? 하나도 안 멋지다. 가엾고 우습고 꼴사납다. 그게 진실이다. 일베충 여러분 보고 있나?
담대함, 혹은 당당함이라는 것은 원래 정직한 양심에서 나와야 진실된 것이고 그럴 때 진정한 힘을 갖추게 된다. 즉, 쫄지마라는 말의 근거는 자신이 바르고 정직한 길을 가고 있다는 “떳떳함”이어야 한다. 진실된 신앙의 위대한 힘은 여기서 나온다. 하지만, 이것을 망각하고,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자존심을 지키기위해, 혹은 자신이 지지하는 이념이나 사람들을 열정적으로 추종하면서 타인의 비판으로부터 이를 방어하기 위해 양심의 소리에 귀기울이기를 거부하는 당당함으로 바뀔 때, 사람들은 사이비 신앙적 사고를 하기 시작하고 이성적 판단이 결여되기 시작한다. [출처][각주:6]
'자유인'이라는 자가 굳이 그 이름 뒤에 일련번호의 혐의를 지닌 512라는 숫자를 달고 있는 이유가 문득 궁금하다. 음, 5월 12일생인가? [본문으로]
아니 근데 이걸 내가 굳이 이렇게 정밀하고 구차하게 설명을 해야 하나? 정상적인 국어 교육을 받았다면 이 정도 논리추론과 맥락 파악은 가능하지 않나? [본문으로]
이 나라 갑을관계의 문제점을 논하는 사람치고 열등의식에 사로잡힌 사람을 못 봤다. 그럴 수밖에 없다. 자기인식이 있으니 자기객관화를 시켜서 갑을관계 토론도 할 수 있는 것이고 남과 자기를 딱히 비교하지도 않는 것이다. 이런 형태의 현실인식을 열등의식이라고 거짓되이 이해하는 인식을 일컬어, 오래 전 맑스는 '허위의식'이라고 부른 바 있다. [본문으로]
삼성 직원들이 연습삼아 쓴 사직서를 받아 본 적이 있는가? 나는 있다. "우리의 열정이 반복되는 야근과 초과근무는 아닙니다." 이것은 그들의 육성이다. 대체 어떤 증언을 더 제시해야 내가 파악한 이 현실인식이 귀납적으로 강하게 타당하다고 인정받겠는가는 도무지 모르겠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