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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TS 성적표

2011. 7. 18. 06:00

졸업사.
오늘 나는 ADTS를 졸업한다. 정말 길고 지루한 나날이었다. 하나님은 과연 말씀으로 약속하신 대로 내게 베드로의 하나님으로 오셨다. 나는 도망쳤고, 그분은 못박히고 계셨고, 지금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겠다고 간 곳에서, 두 번이고 세 번이고, 인격체가 인격체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어려운 질문에 힘들게, 구구히, 뻔뻔스럽게 답하였다. 세상은 광야였고, 과연 아무것도 없어, 있느니 황무지와 영원하신 광명의 하나님 그리고 그 아래에 어느 날인가 허리를 굽혀 엎드려 순종할 한 사람 애늙은이뿐이었다. 군대에서 시간이 빨리 간다는 건 거짓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기억해선 안 된다. 그건 시간이 안 가서 괴로워하던 입소장정, 훈련병, 이등병, 일병, 상병, 병장 시절의 자신에게 미안한 일이지 않나. 이제 문화가 있는 곳에서 교양인답게 살 수 있게 됐다. 그래서 이제 시작이다. 두 번 다시 아침점호니 식사집합이니 취침소등이니 이동병력 통제니 보안성 검토니 따위와 불화하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 이제 돌아간다. 이제 시작인 거다.

하고 싶은 일에 대해.
군대 가서 '하기 싫은 일을 하는 법'을, 숙달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몸에 익혔다고 생각한다. 그 덕에 예전 같았으면 아이팟 관리하고 픽시브 돌아다니느라 제대로 하지 못했을 실천이라는 것을, 하기 싫은 일과집합 나가 하기 싫은 온갖 작업 해치우는 듯한 그런 기분으로나마 할 수 있기 시작했다. 무슨 일인가를 이루려면 일정 수준 이상의 고통을 투입해야 한다. 그 임계점을 넘느냐 넘지 못하느냐가 개고생과 성취의 한끗 차이였다. 손글씨 서체 원도는 의외로 진척이 있어서 전역 전에 대강 마무리를 짓지 않으면 안 된다. 지방고 시나리오는 마음같아서는 앞만 보고 달리고 싶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숱한 B급 스토리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낮은 포복으로 끝까지 기어서 가야겠다. 진들레 민달래 이야기는... 한 달은 너무 늦으니까 두 달 내지는 50일 전쯤부터 준비해서, 어차피 공모전이니까, 개활지에서 신속한 전술이동을 실시하는 기분으로 그때 가서 해야겠다. 3인조 밴드를 한다는 이야기는 잊고 있었는데 일단 나머지 둘이 전역을 하면 그때 얘기하자.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시대착오진흥원을 위해서라는 생각으로 가야 한다. 그리고 시대착오진흥원은 생전 전도의 사명을 딱 한 명에게밖에 실천하지 못했던 내 자신과 그래서 서운해하시는 그분을 위해서라는 생각으로 가야 한다. 군대가 힘들었던 건 오직 그것이었다. 내가 무엇에 충성하고 있는지 모르게 되어 있었던데다가, 실상 아무도 무엇에도 충성하고 있지 않아서였다.

해야 하는 일에 대해.
복학은 제때 하지만, 이제부터 전공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지난 3학기 동안 지나치게 허송세월하였다. 그렇게 쾌적한 곳에서 그렇게 좋은 여건이었는데 나는 왜 공부하는 시늉만 무려 1년 반을 하다가 이제서야 5학기만을 남겨놓고 이러고 있는 건지? 고등학생 때처럼, 내게 주어진 주특기와 일과가 정치와 경제와 철학인 양 투쟁처럼 학업하지 않으면 안 된다. 돈도 문제다. 400여만원의 학자금 대출은, 아직도 단 몇만 원이 없어 각자 이리저리 돈을 꾸기 급한 우리 가족들의 발목을 조른다. 아이패드를 약정해서 공부하는 데 쓰겠다는 내 소박한 꿈조차 불안한 지경이다. 과외를 알아봐야 한다는 것 같은데, 그렇게 될 것 같으면 정말 큰일이다. 과외의 핵심 기간은 9~11월, 대학생들도 한창 학기중인 시절 아닌가. 이 기간에 kocca 공모전이 있고 내 학점도 관리해야 하고 누군가의 공부도 봐 줘야 하는 지경인 것이다. 여기에 지방고와 연필 시리즈가 겹쳐 있다. 더 힘들게 살아야 할 줄은 알지만, 이렇게나 힘들게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에는, 좀 몸서리가 쳐진다. 각오하고 살아야 할 것이다, 적어도 400만원이라는 너무 큰 값을 치르고 들어가는 것이고 보면, 첫째 가정 경제에 어떻게든 보탬이 되는 것이 급선무다. 그것과 학업이 지상과제다. 이제 최신애니 챙겨 볼 시간은 없어질지도 모른다. 주일을 어떻게 보내게 될까? 적어도 지금처럼 어질러진 컴퓨터책상으로는 아무것도 못 할 테니, 일단 집안부터 말끔하게 치우고 봐야겠다.

개인 신상과 정신에 대해.
납득할 수 없는 일이 너무나 많이 벌어졌던고로, 지난 1년 10개월의 나날을 온전히 '납득하는 법'을 터득하는 데 보냈다. 거기에 소모된 내 정신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보고 싶은 만화 못 보고, 하던 블로그질 못 하고, 듣던 음악 못 듣고, 가고 싶을 때 가던 교회 못 가고 오로지 일어나기 싫을 때 일어나 가기 싫은 곳에 가서 모이기 싫은 모임을 모여 하기 싫은 일을 하고 나면 즐기고 싶지 않은 것을 즐기라며 틀어대던 TV, 하기 곤란한 대답을 하라는 그 온갖 눈치, 헛소리, 쌍소리. 그 모든 것들에 그래도 무슨 이유가 있으려니, 하고, 나름 적극적으로 이해하려고 애썼다. 이제 나는 군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않으려 한다. 나는 다만 진짜 군병다운 군병, 십자가 군병으로 살 일이나 기대하고 걱정해야겠다.
한 가지 더 군대생활이 내게 가져다 준 변화는, 죄책으로부터 조금은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는 점이라 하겠다. 모니터 앞에 혹은 강의실 책걸상 앞에 쪼그리고 앉아 살아가는 인간이 느끼는 죄책감과, 매일매일 닥치는 거지 같은 일에 거지같이 대처하며 살아가는 시궁창의 인생이 느끼는 죄책감은 다르다. 나는 어느 날 깨달았다―득죄가 문제가 아니고 다만 그분을 사랑하지 아니함, 스스로를 유기방치함, 밤새껏 그토록 내리갈굼을 먹었을지라도 다음날 아침이면 표정을 바꾸지 않고 일어나 다시 멀쩡한 것처럼 살아가려고 애써서 이미지를 바꾸는 노력을 하지 아니함, 그게 문제가 된다. 과연 그렇게 살아야 한다. 깨끗한 방 안에 틀어박히려 하지 말라! 밖에 나가 나뒹굴며 할 일을 하고 돌아와 철저하게 다시 씻으라! 물론 그 얼마나 고된 일이냐마는, 그것이 사는 방법이다, 라고!

사회생활과 사람들에 대해.
나는 여태껏 사람들을 겁냈다. 나를 순식간에 기억하고는 온갖 관심과 호기심으로 나를 지켜보는 그들을, 나는, 그들이 하는 것처럼 재빨리 기억해내지 못했다. 외적으로 딱 보아서 잘난 것도 없었다. '머리가 좋다'라는 말은 내게 칭찬이 아니라 내가 그런 캐릭터라는 의미의 정언 명령이었고, 김어진이란 이름에 대답하기가 싫었던 시절도 있었다. 그래서 항상 불안하고 겁이 났고 피하게 되었다. 메시지 수신 신호음이 딩동 울릴 때마다 진심으로 덜컥덜컥 놀랐고, (비록 이메일로였지만) 내게 날아온 러브레터 같은 것에 대해서도 (물론 중학생이었지만) 전혀 남자답게 대처하지 못했고, 그래서 지금까지도 날 만나주겠다는 동년배 여자애들 앞에서 한없이 쑥스럽고 작아지는 것을 느낀다. (이것은 동년배 남자애들 앞에서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을 겁내지 않아야 한다. 알고 보면 누구나 다 후달리는 것인데 다만 그러므로 자신감이 미덕이 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떠밀려서 자신있어할 따름인 것 같다. 나는 내 자신에게 정직하고 다른 이들에게도 정직하겠다―라는, 변명치고는 구차한 논리를 말해 왔는데, 그것만도 아니다. 정말 고마운 사람들이 있었다. 만약 내가 저들이었다면 나 같은 걸 만나 주고 뭔가를 대접해 주었을까, 은혜를 입고 있다는 감사뿐이다. 특히, 적어도 내 눈에는 상당히 귀엽고 보기 좋은 개성이 차고 넘치는데 내게 아는 척을 하고 연락을 해 주는 동년배 여자애들이, 고마움을 넘어 신기하다. 이런 몰골을 무슨 기분으로 만나주고 있는 거지? 그래서 거기에 보답하고자 나도 최선을 다해서 웃기려 하고 웃어 보고 때로 진지하게 말해 주고, 할 수 있는 데까지 갚아주려고 갖은 애를 쓴다. 그게 눈에 보이는지는 모르겠지만.
부대 울타리 안에 갇혀 매일 보는 풍경만 매일 보는 시절이 1년 반을 넘으니, 사회에서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연락을 취할 수 있고 가서 닿을 수 있고 내 얼굴을 보여줄 수 있었던 그 사람들이라는 게 지독하게 그리워진다. 이제는 나도 아무 이유 없이 만나서 술 마시자, 밥 먹자, 좋은 연극이 있는데 같이 보러 가자, 뭐 그렇게 먼저 다가가고 노력하고 누군가를 만나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게 내가 깨달은 바를 실천하는 길이요 보은(報恩)이고 지난날 내 군생활과 그 이전의 갑갑하기 짝이 없는 소극적인 처세술을 청산하는 방편이다. 다들 초조해하지 않아도 된다는데, 당사자는 한시가 급하다. 이 간단한 것 하나를 배우는 데 스무 몇 해를 탕진했었으니까.

끝으로,
기도하지 않고 들어간 군대였고 스스로 아무 걱정도 하지 않고 들어간 군대였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걱정해야 할 일을 이만큼 보급해 주셨고 기도할 이유를 이만큼 할당해 주셨다. 나는 어느 쪽이냐 하면 아무래도 모든 것을 방치했다는 느낌이다. 제때제때 남들의 말에 대답하지 못한 것도 있거니와 심지어 하나님 앞에서 그러했다. 그런데도 다시 묻고 계시는 질문―김씨네 아들 어진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앞에서, 나는 허물어진다. 이등병 때, 무엇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게 압박하고 눈치를 주던 그들에게 반항한다는 기분으로 배짱 좋게 들고 들어왔던 8만 9천원짜리 아이팟 셔플에도 'Eojin,/do you love Me?'가 각인되어 있었다. 이걸 들킨 후로 폐급 취급이 확정되었던 나지만, 최후의 오늘에는 최소한의 품위를 유지하며 전역한다(고 생각한다). 이 2GB도 되지 않는 mp3p는, 앞으로 오디오 팟캐스트 전용으로 사용하면서, 흙빛 안개 부옇게 끼었던, 1년 10개월 동안 구부러진 산길과 오르막, 내리막, 목적지가 바라다보이는 마지막 구간으로 이어져 온 이 야간행군을 다시 되새기고 또 되새길 군번줄 같은 것이 되어, 앞으로도 내 두 귀에 걸릴 것이다. 그 차림으로, 나는, 더 고되지만 그래도 남이 시켜서 가지는 않고 그러므로 정말로 이번엔 내 주 예수님과 진짜로 교제하며 나갈 수 있을 것 같은, 더 긴 행군길에 나선다. 잘 있어라, 109대대.


Posted by 엽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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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나도 오디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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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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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나도 만년필이란 걸 갖고 있긴 갖고 있었다는 생각이 나서 꺼내봤다.


Parker 15 Jotter F.

엄마가 편지 한 통 인쇄해 끼워서 내게 주셨던 거다. 그땐 잘 몰랐는데, 다시 찾아보니 3만 원도 안 하는 물건이고 부담없는 선물용으로 아주 인기만점이라는 모양. 그래도 홀로그램, 인증서, 있을 거 다 있으니 파커 만년필이 맞긴 맞다. 그래서 찾아봤다. 어떤 물건일까, 파커란 건 어떤 메이커일까, 앞으로도 두고두고 써야 하는데 어떻게 하면 되나.


펜을 세척해 주는 곳과 관련 상품을 살 수 있는 대리점들을 살펴보니, 우연찮게도, 내가 부르조아적이라고 경멸하면서도 한편으로 사실은 동경해 마지않는 곳들이 종류별로 다 모여 있었다. 파커 병잉크 검정색 57ml가 대략 7000원에서 9000원, 무료각인을 받을 수 있는 펜이 3만원대부터 비싸면 50만원대까지. 잉크를 진하게 쓰려면 잉크병을 살짝 열어 휴지나 헝겊으로 덮어두고 하루쯤 기다려서 농도를 보아 말려서 쓰면 된다고.


통기타에 이어 또 하나의 문화상품 세계를 알아버렸다. 한동안은 이 싸구려 만년필에 정품보증서 하나 들고 대리점을 순회하면서 이 세계를 탐방해야겠다.
다음 만년필도 벌써 생각하고 있다―파커(내가 원래 메이커를 좀 외곬으로 씀) 래티튜드 GT 검정색. 이상하게 이런 게 자꾸 보인다. 필기구의 세계가 생각보다 넓다, 고시생 분들이 어느 만년필을 애용하는지, 제도샤프가 100% 국산이 아니고 베껴온 것이었다느니 생각도 못했던 범위(latitude)가 펼쳐지고 있어 신기하다. 진짜 만년필 써야겠다.



P.s 여담이지만 샤프펜슬은 뭐니뭐니해도 국민샤프 제도1000 0.5(1500도 2000도 다 싫다, 무조건 천)를 따라올 자가 없습니다ㅋㅋ 거의 8년째 클립 제거한 제도샤프에 모나미 0.5mm B심 넣어서 쓰는데 내가 적응해서 그런지 워낙 싸구려라 적응시키기 쉬워서인지 하여간 내 손엔 제일 꼭맞음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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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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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하 가톨릭 여류시인 홍윤숙(1925~)님의 <7월의 비극>(2002) 전문. ―


http://vimeo.com/26222164

하루 전부터 막아선 전경들

산도 들도 바다도 모두 다 불붙는 사막입니다



최루액 씻는중

저희는 지금 땀 펑펑 쏟으며 마른 입술 헉헉대며
 


최루액 발사

죽을 힘 다하여 삼복의 사막을 건너가고 있습니다
 


전경 진압

가라지도 밀도 한데 엉켜서 사막 끝에 닿을 오아시스를 향해



한진중공업 플랭카드

그러나 그때 뽑혀나갈 가라지 너무 불쌍합니다




경찰과 대치

다 함께 이 고난의 시절을 넘어 왔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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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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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함과 정직함은 다르다.
나는 본능과 욕심에 떳떳해지는 대신, 양심과 진실 앞에 떳떳하려 한다.

한때 멋지게 살려고 노력했었다. 적어도 환상과 꿈이 가득한 1024*768의 픽셀들 속에서만큼은 친구도 별로 없고 이렇다 할 자랑거리도 없는 인생이 되기 싫었다. 그래서 아는 체를 했고, 실제로 열심히 배우려고 했고, 배운 티를 내려고 했고, 쿨한 척하려고 노력했다. 스스로에게 솔직하지도 못했고 정직하지도 못했다. koj89는 그렇게 엽토군이라는 필명을 얻었지만, 그것만으로 만족을 못 해 ┃엽토군┃으로 표기하고, 거기다가 나의 신앙을 표현하고 싶어서 †┃엽토군┃으로 적고 다녔었다. 지금은 이 시절이 일차적으로는 부끄럽고, 이차적으로는 담담하다.
어느 날 그것이 부질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아마도 온갖 모에 미소녀물(과 거기서 선을 넘어버린 성인만화들)을 본격적으로 보게 되면서였던 것 같다. 내가 원하는 나는 이토록 쿨하고 적절하고 크리스천하며 건전하다고 믿었다. 그런데 나는 뒤에서 혼자 이게 뭐 하는 취미생활이야? 스스로에게 솔직해지고 보니 그렇게 못난 나 자신을 납득할 수 없어서, 차라리 납득을 그만두기로 했다. 그때쯤부터는 ISCARIOT으로 활동했다. 숨을 필요가 있었다. 나의 부끄러움을 죄인의 대명사 뒤에 숨겨서 나는 부끄러울 만한 놈이라는 변명을 할 수 있게 보험을 들었던 것이다.
그러다 어느 날인가는 또 문득 '김어진'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아마도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내 기억은 실제와 많이 어긋나지만, 여기서 사용하는 기억들은 어디까지나 일종의 서사적 심상으로서 기능한다고 봐 달라.) 남녀공학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나에 대해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었다, 아니 부끄러워하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었다. 야한 만화를 겉으로는 참는 척하면서 표정 풀고 쳐다보던 것도 나고, 적절한 통신어체와 관념어를 의뭉스럽게 섞어쓰는 말빨로 평택 사는 88년생 여학생 하나에게 환상을 심어주고 있었던 것도 나고(이 여학생은 지금 연대 법대생인데 사시 공부중이란다), 입 꼭 다물고 공부만 하느라 '어사마' 팬클럽이 생기는 줄도 모르고 있던 순진한 수컷 고삐리도 나였다(돌이켜 생각해 보면 몹쓸 놈이었다, 이렇게 빈곤한 내면을 알았더라면 아무도 나를 그렇게까지 좋아해주지 않았겠지). 이래서는 안 되겠는 것이다. 그래서 그 모든 것을 내게로 다시 수렴하는 과정이 필요해서, 어느 누구든 나를 내 본명으로 다시 부르기를 바라는 마음에, 그렇게 활동했었다.
지금 엽토군이라는 필명을 쓰면서는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다. 사람들은 나를 김어진이나 ISCARIOT보다는 엽토군으로 더 잘 기억해주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그리고 그때의 풋풋함과 쿨하려 노력하는, 어쨌든 그러므로 '노력하는' 모습, 노가다와 초짜 정신으로 무장한 어찌할 도리가 없는 그 젊음―그것이 그리워져서인 것 같다. 앞으로 필명은 바꾸지 않을 계획이다. 엽토군(본명 김어진) 정도면 이제 누구든지, 당신도 친구들도 나 자신도, 나를 나로 봐줄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그렇게 꿋꿋이 나의 역사를 수렴시켜 나가는 하나의 이름으로만 살아가다 보면, 돌이켜볼 때 스스로에게 정직했노라고 떳떳해할 수 있을까.

이 글도 나와 하나님과 저들 앞에서 정직하게 살겠다는 내 의지의 한 방편이다. 저들이 솔직히 말하라며 본능과 욕심에 충실하라 할 때 나는 양심과 진실 앞에 떳떳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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