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함과 정직함은 다르다.
나는 본능과 욕심에 떳떳해지는 대신, 양심과 진실 앞에 떳떳하려 한다.
한때 멋지게 살려고 노력했었다. 적어도 환상과 꿈이 가득한 1024*768의 픽셀들 속에서만큼은 친구도 별로 없고 이렇다 할 자랑거리도 없는 인생이 되기 싫었다. 그래서 아는 체를 했고, 실제로 열심히 배우려고 했고, 배운 티를 내려고 했고, 쿨한 척하려고 노력했다. 스스로에게 솔직하지도 못했고 정직하지도 못했다. koj89는 그렇게 엽토군이라는 필명을 얻었지만, 그것만으로 만족을 못 해 ┃엽토군┃으로 표기하고, 거기다가 나의 신앙을 표현하고 싶어서 †┃엽토군┃으로 적고 다녔었다. 지금은 이 시절이 일차적으로는 부끄럽고, 이차적으로는 담담하다.
어느 날 그것이 부질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아마도 온갖 모에 미소녀물(과 거기서 선을 넘어버린 성인만화들)을 본격적으로 보게 되면서였던 것 같다. 내가 원하는 나는 이토록 쿨하고 적절하고 크리스천하며 건전하다고 믿었다. 그런데 나는 뒤에서 혼자 이게 뭐 하는 취미생활이야? 스스로에게 솔직해지고 보니 그렇게 못난 나 자신을 납득할 수 없어서, 차라리 납득을 그만두기로 했다. 그때쯤부터는 ISCARIOT으로 활동했다. 숨을 필요가 있었다. 나의 부끄러움을 죄인의 대명사 뒤에 숨겨서 나는 부끄러울 만한 놈이라는 변명을 할 수 있게 보험을 들었던 것이다.
그러다 어느 날인가는 또 문득 '김어진'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아마도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내 기억은 실제와 많이 어긋나지만, 여기서 사용하는 기억들은 어디까지나 일종의 서사적 심상으로서 기능한다고 봐 달라.) 남녀공학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나에 대해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었다, 아니 부끄러워하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었다. 야한 만화를 겉으로는 참는 척하면서 표정 풀고 쳐다보던 것도 나고, 적절한 통신어체와 관념어를 의뭉스럽게 섞어쓰는 말빨로 평택 사는 88년생 여학생 하나에게 환상을 심어주고 있었던 것도 나고(이 여학생은 지금 연대 법대생인데 사시 공부중이란다), 입 꼭 다물고 공부만 하느라 '어사마' 팬클럽이 생기는 줄도 모르고 있던 순진한 수컷 고삐리도 나였다(돌이켜 생각해 보면 몹쓸 놈이었다, 이렇게 빈곤한 내면을 알았더라면 아무도 나를 그렇게까지 좋아해주지 않았겠지). 이래서는 안 되겠는 것이다. 그래서 그 모든 것을 내게로 다시 수렴하는 과정이 필요해서, 어느 누구든 나를 내 본명으로 다시 부르기를 바라는 마음에, 그렇게 활동했었다.
지금 엽토군이라는 필명을 쓰면서는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다. 사람들은 나를 김어진이나 ISCARIOT보다는 엽토군으로 더 잘 기억해주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그리고 그때의 풋풋함과 쿨하려 노력하는, 어쨌든 그러므로 '노력하는' 모습, 노가다와 초짜 정신으로 무장한 어찌할 도리가 없는 그 젊음―그것이 그리워져서인 것 같다. 앞으로 필명은 바꾸지 않을 계획이다. 엽토군(본명 김어진) 정도면 이제 누구든지, 당신도 친구들도 나 자신도, 나를 나로 봐줄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그렇게 꿋꿋이 나의 역사를 수렴시켜 나가는 하나의 이름으로만 살아가다 보면, 돌이켜볼 때 스스로에게 정직했노라고 떳떳해할 수 있을까.
이 글도 나와 하나님과 저들 앞에서 정직하게 살겠다는 내 의지의 한 방편이다. 저들이 솔직히 말하라며 본능과 욕심에 충실하라 할 때 나는 양심과 진실 앞에 떳떳하려 한다.
나는 본능과 욕심에 떳떳해지는 대신, 양심과 진실 앞에 떳떳하려 한다.
한때 멋지게 살려고 노력했었다. 적어도 환상과 꿈이 가득한 1024*768의 픽셀들 속에서만큼은 친구도 별로 없고 이렇다 할 자랑거리도 없는 인생이 되기 싫었다. 그래서 아는 체를 했고, 실제로 열심히 배우려고 했고, 배운 티를 내려고 했고, 쿨한 척하려고 노력했다. 스스로에게 솔직하지도 못했고 정직하지도 못했다. koj89는 그렇게 엽토군이라는 필명을 얻었지만, 그것만으로 만족을 못 해 ┃엽토군┃으로 표기하고, 거기다가 나의 신앙을 표현하고 싶어서 †┃엽토군┃으로 적고 다녔었다. 지금은 이 시절이 일차적으로는 부끄럽고, 이차적으로는 담담하다.
어느 날 그것이 부질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아마도 온갖 모에 미소녀물(과 거기서 선을 넘어버린 성인만화들)을 본격적으로 보게 되면서였던 것 같다. 내가 원하는 나는 이토록 쿨하고 적절하고 크리스천하며 건전하다고 믿었다. 그런데 나는 뒤에서 혼자 이게 뭐 하는 취미생활이야? 스스로에게 솔직해지고 보니 그렇게 못난 나 자신을 납득할 수 없어서, 차라리 납득을 그만두기로 했다. 그때쯤부터는 ISCARIOT으로 활동했다. 숨을 필요가 있었다. 나의 부끄러움을 죄인의 대명사 뒤에 숨겨서 나는 부끄러울 만한 놈이라는 변명을 할 수 있게 보험을 들었던 것이다.
그러다 어느 날인가는 또 문득 '김어진'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아마도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내 기억은 실제와 많이 어긋나지만, 여기서 사용하는 기억들은 어디까지나 일종의 서사적 심상으로서 기능한다고 봐 달라.) 남녀공학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나에 대해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었다, 아니 부끄러워하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었다. 야한 만화를 겉으로는 참는 척하면서 표정 풀고 쳐다보던 것도 나고, 적절한 통신어체와 관념어를 의뭉스럽게 섞어쓰는 말빨로 평택 사는 88년생 여학생 하나에게 환상을 심어주고 있었던 것도 나고(이 여학생은 지금 연대 법대생인데 사시 공부중이란다), 입 꼭 다물고 공부만 하느라 '어사마' 팬클럽이 생기는 줄도 모르고 있던 순진한 수컷 고삐리도 나였다(돌이켜 생각해 보면 몹쓸 놈이었다, 이렇게 빈곤한 내면을 알았더라면 아무도 나를 그렇게까지 좋아해주지 않았겠지). 이래서는 안 되겠는 것이다. 그래서 그 모든 것을 내게로 다시 수렴하는 과정이 필요해서, 어느 누구든 나를 내 본명으로 다시 부르기를 바라는 마음에, 그렇게 활동했었다.
지금 엽토군이라는 필명을 쓰면서는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다. 사람들은 나를 김어진이나 ISCARIOT보다는 엽토군으로 더 잘 기억해주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그리고 그때의 풋풋함과 쿨하려 노력하는, 어쨌든 그러므로 '노력하는' 모습, 노가다와 초짜 정신으로 무장한 어찌할 도리가 없는 그 젊음―그것이 그리워져서인 것 같다. 앞으로 필명은 바꾸지 않을 계획이다. 엽토군(본명 김어진) 정도면 이제 누구든지, 당신도 친구들도 나 자신도, 나를 나로 봐줄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그렇게 꿋꿋이 나의 역사를 수렴시켜 나가는 하나의 이름으로만 살아가다 보면, 돌이켜볼 때 스스로에게 정직했노라고 떳떳해할 수 있을까.
이 글도 나와 하나님과 저들 앞에서 정직하게 살겠다는 내 의지의 한 방편이다. 저들이 솔직히 말하라며 본능과 욕심에 충실하라 할 때 나는 양심과 진실 앞에 떳떳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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