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아무 생각없이 대공분실 몇호실이 유명했더라 싶어서 찾아보다가... 참나 어이가 없어서;;
목적지: 남영역 옆에 있다는 곳 http://goo.gl/8Nh36
다음 지도
지도 눌러서 위성사진 한번 보세요. 확대도 해보시고.
구글 지도
↑이 지도 Sat 틀어서 오른쪽 빈칸에 뭐 있는지 함 보세요.
...하여간 도대체 위성지도라는 걸 볼 때마다, 이 나라는 대체 뭐가 그렇게 무섭고 아쉬운 걸까 싶다. 예전에도 한번 이런 계기로 찾아가본 곳이 있었더랬지 내가 워낙 단칸방 생활을 해와서 그런지, 내 개인도 그렇고 이 사회도 그렇고 남의 눈을 피할 일(privacy)이라는 게 실상 따지고 보면 그리 많지 않다고 난 생각한다. 오히려 떳떳해져야 한다는 차원에선 되도 않게 뭘 지나치게 숨기려 드는 태도는 고쳐주고 싶을 정도.
하여 내일 가봅니다. 농협도 한꺼번에 몰아서 내일 갈까(...)
+ 페이스북 계정이 있으신분들은 사진을 올린게 있으니 보시길. 아무래도 조만간 몇명 더 꼬셔서 한번 더 가게되지 싶습니다. 특히 건축, 도시계획 전공자 위주로
간단한 메모형 개괄보고. 준거를 대자면 너무 방대해지는 바람에 일단 통찰된 핵심 내용만 씁니다. 캐릭터페어는 가면서도 SICAF는 안 갔었는데, 여태 느껴왔던 것이 이번에 정리가 됩니다.
들을 귀 있는 사람은 들으라.
# 최근 문화산업계의 추세를 보면, 점차 오리지널(원작, 원형, 원조)을 생산해내는 순환 주기가 짧아지고 있다. 생산 수단과 생산양식은 더욱 간편화되고 있으며, 그래서 상품(작품)의 치밀성, 예술성, 내적 완결성 등의 완성도와 그로부터 도출되는 기대수명이 점점 떨어지고 있는 반면, 오리지널을 유통하는 마케팅은 실물 경제에 비해 지나치게 비대칭적으로 팽창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이윤 추구와 규모의 경제의 차원에서 오리지널의 생산 주기를 단축하고 있다.
# 오리지널 자체가 빠른 주기로 속속 생산되는 현상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다. 과거 (특히 우리나라의) 문화산업 시장 자체가 '물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구조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논의의 마지막은 항상 오리지널의 더 많은 공급과 생산, 이를 뒷받침할 제반 여건과 풍토와 제도와 분위기 조성을 요구하고 끝났다.
# 이는 비단 문화산업뿐 아니라 지식정보 경제로 체제가 전환되면서 사회에 전반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으로 해석된다. 요컨대 '오랜 시간 세련/정제/검토/함축하는 과정이 압축/생략/간편화된, 결과적으로 감각적이고 극단적이며 다소 개념형에 가깝고 일회적이며 소모성인' 떡밥들이 각처에서 투척되는데 이것이 점점 더 심해지는 추세에 있다.
# 이는 내용의 빈곤을 야기하며, 현대의 창조 능력의 빈곤을 반증하는 것 외의 역사적 성과를 이루기 어렵게 만들고, 무엇보다 '창조/창작/참여/기타행위에 의한 발언/상투성극복/발견/표현/가능성제시' 등 오리지널 생산에서 발현되는 인도주의적, 고차원적 목적과 성과를 단순한 생산/유통/소비/폐기로 전락시킬 위험이 크다. 요컨대 창작이란 근본적인 의미에서는 무슨 재미가 있기 때문에 하는 것인데, 그 창작이 철저히 계산된 기획과 R&D 아래 진행되거나 곧 질려(혹은 미래가 보이지 않아서) 포기하게 되는 그 '반감기'가, 요즘 들어 단축되고 있고, 앞으로도 더욱 단축되어, 아무 재미도 없는 (그래서 상품 액면상으로는 더욱더 무조건 재미있을 것 같은 무언가를 찾아다니는 듯한) 창조가 양산되리라는 것이다.
# 두 가지 방향의 해결을 제시하고자 한다. 먼저 오리지널의 '물리적' 총량 공급 확장이 아닌, 오히려 소수의 오리지널이라 할지라도 그 '화학적' 총량, 내적 충만을 더욱 강조해서 생산케 할 것을 제안한다. 그리고 생산되는 떡밥들로부터 일정량 이상의 '칼로리'를 먹어야만 만족하는 '고등 오타쿠'를 대거 양산하여 오리지널들의 질을 상향 평준화하고 생산자들을 재삼 자극할 만한 집단을 형성해야 한다. 현 실태는 완전히 정반대로 가고 있다. 아주 과장해서 비유하면, 지금 생산되고 있는 문화 소비재들은 속빈 강정과 같고, 그 바삭거리는 맛에만 몰두해 밥 먹을 생각을 하지 않는 어린이 같은 오타쿠들만이 자꾸 생겨나고 있으며, 그 어린이들을 보는 어른들은 뭔가 먹을 것도 많이 생겼고 많이 먹고 있기도 하니까 앞으로 이 어린이들이 무럭무럭 자랄 것으로 낙관하고 있다 하겠다.
바야흐로 '스마트폰 자격검정'이라는 것이 생기고 만 세상입니다. 잘은 모르지만 대략 2세대[각주:1]에서 3세대[각주:2]로 옮겨갈 때 통신사를 바꾸는 게 나으냐 안 나으냐, 어떤 단말기가 어떤 류의 사람에게 맞으냐를 한 시간 안에 간파하여 분석해내는 기술을 연마하는 모양입니다. 저도 전역 기념으로 단말기를 하나 맞추려 하고 통신사 공식 판매 사이트를 몇 날 며칠을 헤매었습니다만 아무도 뭐가 어떻게 된다는 걸 시원스럽게 대답해 주는 이 없다는 생각에 그만 아연해집니다. 요금제가 이렇게 어려운데 하물며 기계의 사용은 또 어떻습니까? 전망에 따르면 아이폰의 4세대[각주:3]와 5세대[각주:4]가 앞으로의 대세가 되면서 3세대[각주:5]는 완전히 떨이로 뿌려 버리는 '할아버지 폰'이 될 거라고 합니다. 요컨대 몇 달 뒤면 웬 아가씨 말에 혹해 웬 명함만한 화면을 이리저리 만지며 이게 뭐냐고 꼬부랑 들여다보고 있는 할아버님들을 도처에서 보실 수 있게 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합니다. 이 민족, 이 영장류에게는 과연 평균적으로 4인치 쯤 되는 그 작디작은 네모 화면을 고개 푹 수그리고 그저 쳐다보고 있을 뿐인, 문화인류학적으로 극히 부자연스러운 이 모습이 스마트하다 할 만한 것입니까? 사실 그래서 저는 처음에 화면이 크고 전화가 안 된다는 '타블렛PC'[각주:6]를 알아보려 했다가... 스마트해질 대로 스마트해진 세상에 지금 막 복귀한 내가 굳이 싸울 필요가 있겠는가, 싶어 그쪽 경로는 철수한 바지요만.
군에 있을 땐 몰랐는데 사회에 나와 보니, 이건 뭐 굳이 자격증 공부 안 해도 팔도의 절반 가량이 스마트폰과 관련 계약과 요금제에 정통해 있습니다. 요금제를 얼마 이상으로 하는 게 좋더라, 무제한은 생각보다 별로더라, 제일 먼저 무엇무엇[각주:7]부터 깔아야 한다, 아이폰 제5세대는 언제쯤 나온다더라, 입 가진 사람마다 한 마디씩 합니다. 그런데 스마트폰 가지고 있는 사람이 지금 몇 시냐는 질문은 손목시계를 찬 사람에게 물어봅니다. 자기 스마트폰이 편리하네 어떻네 손에 들고 자랑 혹은 험담을 실컷 하고 있다가도, 정작 이천시장 자리에 3선한 그 사람 이름이 뭐였는지 몰라서는, 인터넷 접속을 할 수 없는 환경에 있는 옆 사람에게 물어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사람의 스마트폰을 빼앗아 인터넷 검색에 '3선 이천시장'이라고 말했고 유승우 씨 아니냐고 되물어주는 지경입니다. 누가 영리한 것입니까? 스마트폰을 가진 사람이 영리한 것입니까, 오늘이 며칠이고 지금 시간이 언제쯤인지 무엇을 어떻게 검색하면 되는지의 대강을 파악하고 있는 사람이 영리한 것입니까?
아십니까? 사실 우리는 스마트하지 않습니다.
스마트폰은 스마트라는 말을 보급했습니다. 그리고 이 시대는 일컬어지는 바 소비주의의 사회입니다. 여러분이 소비하는 것이 곧 여러분인 세상입니다. 스마트폰은 통신 3사의 영업 전략대로 날개 돋친 듯 우리에게 뿜어져 나왔고, 그걸 사들인 우리는 급작스럽게 스마트해진 것 같았습니다. 아닌게아니라 각종 유형의 코드[각주:8]를 카메라로 찍어 온갖 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되었고, 다음 버스가 언제 오는지 옆 사람에게 물어보지 않아도 되게 되었으며[각주:9], 언제 어디서나 싸이월드와 지식iN과 페이스북을 쓸 수 있게 됐습니다[각주:10]. 그런데 이렇게 되새기고 보니, 저는, 궁금해집니다. 이것은 스마트한 사람의 수많은 요령과 방편들 중 하나이지 스마트 그 자체는 아니지 않은가? 이렇게 되묻고 보니 앞서 보여드린 '눈뜬 스마트폰 장님들'의 사례가 얼추 이해가 됩니다. 정말 스마트한 사람은 스마트폰이 없어도 대강을 파악하고 살아가며, 통찰하고, 나중에 한꺼번에 몰아서 공유할지언정 무엇을 공유하고 '트윗'[각주:11]해야 할지를 곰곰이 따지고 있을 것임에 틀림없기 때문입니다.
스마트하다는 말은 영리하다, 똑똑하다, 요령이 좋고 머리가 잘 돌아간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사실은, 동의하실지 모르지만, 기계의 덕목이지, 사람의 덕목은 아니올시다. 불러 주는 대로 정확히 알아듣고 정확히 음성검색어를 분석하는 건[각주:12] 기계의 일이고, 위성방송을 보다가도 문자를 주고받을 수 있도록 병렬 연산[각주:13]과 다중 작업[각주:14]을 지원하는 것 역시 기계의 일입니다. 사람의 일은 무엇이냐? "그래도 가끔씩은 동영상을 잠시 끊고 그녀만을 끝.없.이 바라"[각주:15]본다든지 "세상에 없던 세상이 기다리는 쇼를 하"[각주:16]는 것쯤 될 겁니다.[각주:17] 우리가 지금껏 최신 유행이라는 스마트폰을 탐내고 동경한 바람에 그리고 저들이 스마트라는 작위적인 어휘를 탈근대를 살아가는 단백질로서의 우리에게 마구 공급한 바람에 헷갈리고 있었습니다만, 스마트는 스마트폰에게나 어울리지, 우리 같이 그 이상을 할 수 있고 또 그래야 하는 21세기형 멋쟁이들에게는, 폄하가 되고 실례가 되고 어쩐지 꺼려지게 되는 어휘에 다름없습니다.
사실 우리가 원하는 건 스마트함이 아니라 지혜로움과 성실함일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제 글을 다시 잘 읽어보시면, 눈치채셨을지 모르겠는데, 요즘 사용하는 외국어 전문용어는 가능한 따옴표로 묶어놓고 대신 최대한 우리말 표현으로 쓰려 한 것을 아실 수 있을 겁니다. 스마트라는 말에 염증이 있고 각종 용어의 의미를 추리하기가 싫어진 분들을 위해 굳이 그렇게 썼습니다. 제가 용어들을 몰라서 그렇게 풀어 쓰고 안 쓰고 달리 쓰고 했겠습니까?[각주:18] 검색하면 다 나오는 세상―스마트해진 세상―에서, 용어를 불러주는 대로 받아적는 것은 스마트함이 아닙니다. 정말 '영리하고(smart)' 똑똑하고 지혜롭고 성실한 것은, 전국에서 터지는 4세대 장기진화 통신망[각주:19]과 지식맨의 인스턴트 정보와 무시무시하게 빠른 연산처리 속도에 있지 않고, 그 이상의 세련미와 정성과 인간적 배려, 모든 것을 뒷받침하면서도 개성 있도록 스스로 만들어내는 문맥과 분위기 등에서 나오는 법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24개월의 할부계약으로 성취되는 게 아니라 일평생을 공들여 이룩할 경지입니다. 우리가 진정 바라는 우리의 모습이 이런 거라면, 그리고 이렇게 듣고 보니까 스마트폰은 정말 그런 인간이 다루는 한 연장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게 맞는 겁니다. 그렇게 살 수 있어야 합니다. 요금제를 당장 최저가 유형으로 바꿔버리고 세 번 접속할 사이트를 한 번만 접속하며 지내 보십시다. (그렇게 살기 힘든 세상이 조만간 올 거 같아 저는 몹시 두렵습니다.) 언젠가부터 전혀 쓰지 않게 된 저가형 디지털 카메라[각주:20]를 서랍에서 꺼내 들고 다니십시다. 그렇다고 해서 영영 그 편리하고 많은 응용 프로그램들과 작별하시자는 논조가 아니올시다. 요컨대 우리가 스마트폰 하나만으로 정말 스마트해질 거라고 믿는다면 그것처럼 멍청한 게 없다는 말씀입니다. 오히려 지갑에 가지고 다니던 휴대용 지하철 노선도와 휴대전화에 깔린 노선도 검색 어플이 동격이어야 하고, 그 정도 수준까지 양방을 능수능란하게 활용하는 참으로 머리 좋은 사람이 되시자는 말씀입니다.
아니오, 우리는 현명해져야 할 일이지, 스마트해질 이유는 없습니다. 애당초 스마트하지 않으므로.
P.s 1.
근데 확실히 불편하긴 합니다. 아직 전화기를 안 바꿨는데, 조금 있다가 갈 국립중앙박물관 찾아가는 길을 (이촌역에 내리면 어떻게든 된다는 식으로 어렴풋이는 기억해 두고서도 혹시 몰라 굳이) 디카로 촬영해서 들고 갑니다. 그놈의 스마트폰이라는 것만 있으면 그냥 일단 버스부터 타고 로드뷰 찾아서 가면 그만인데... 그런데 또 그렇게 손쉽게 찾아갔다 오고 나면 국립중앙박물관이 어디 있었는지 기억을 못 할 것 같습니다. 옛날에 어느 영어선생님이 가르치시길 영단어를 공부하려면 전자사전 쓰지 말랍니다. 철자를 '입력'하는 대신 입으로 되뇌이면서 책장을 뒤적이면 더 잘 외워진다고요. 위에 쓴 이야기는 다 이런 맥락입니다.
P.s 2.
여기서부터는 흰 아이폰 4세대 사고 나서 하는 잡소리~ 보시라 놀라시라 이거슨 iEojin
P.s 3.
그건 그렇고 LG가 오랜만에 광고로 사람 한번 혹하게 했다. 전체화면 열어서 함 보시라. 그들의 야망대로 4G부터는 정말로 역사가 확 바뀌어버렸으면 싶다. 볼만하겠지?
방송사는 저작권을, 연예인은 초상권을 걸고넘어질 거고,
그 동안 방송 맛집으로 소개돼 영화를 누리던 식당들은
오직 <트루맛쇼>에서 찍은 식당만 돈 내고 출연했다고 주장할 거고,
맛집 방송 제작진들은 <트루맛쇼>에서 촬영했던 프로그램들만 조작된 건데
다 그런 것처럼 보이게 했다는 이유로 명예훼손이라 펄쩍 뛸 거고,
방송 브로커 수첩에 적힌 수십 명의 작가들은
이승복 어린이처럼 “우린 그 브로커 몰라요~” 소리칠 거고,
인터넷에서 가짜 손님 동원한 것도 손님들이 워낙 밥 먹다 인터뷰하는 거 싫어하시니까
증거가 제시된 딱 300개 정도의 방송 프로그램에서만
손님들 식사하시다가 체하시지 않도록 마음 약한 제작진이 배려해서 세팅한 거고,
방송사들은 자신들이 충분한 제작비를 지급하고 있는데
무식한 제작사가 돈 더 벌겠다고 오버해서 영업 뛴 거라고 다 뒤집어씌울 거고,
제대로 저널리즘 공부가 안 된 외주제작사 PD와 작가들이
잠시 뭐에 홀려 방송의 본질을 망각한 거라 해명할 거고,
외주제작국 회의실에 모든 제작사 대표 불러 모아서
“이러다 공멸한다” 협박하고 말 맞춘 다음에
역사적으로 늘 착취와 증오의 관계인 갑과 을, 방송사와 제작사들은 대동단결해서
나와 <트루맛쇼>를 물어뜯을 거다.
아~ 큰 일 났다.
다른 건 읽으면서도 별 감흥 없는데 이건 화가 불끈 솟는다.
아무도 맛 얘기는 하지 않는다. 초상권 저작권 그따위 게 문제야? 어쩌면 다들 이렇게나 정말 중요한 이야기로부터는 이렇게까지 그럴싸하게 철저하게 눈을 돌린단 말인가? 왜 그걸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지? 왜? 뭐가 그리 아쉬워서?
대명사를 혐오하기로 했다. 우리는 좀더 노골적으로 말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