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소감
참편 12화 자막 제작중에 짬을 내어 올려봅니다.
군대 들어가서 이 짓을 못할 걸 생각하니 그게 제일 깜깜하네요.
P.s 루리웹에서 우연히 링크됐는데 이후로 유입이 대단하네요. 역자로서 제 입장을 밝힙니다.
1. 일단 관련 키보드 배틀에 가담할 생각은 없습니다. 고로 제가 친일성향이니 뭐니 하는 의미 없는 논쟁도 거부합니다. 알 만큼 아시는 분들끼리 왜 그러세요? 저도 조선 사람인데 이런거 당연히 싫죠.
2. 쿠메타가 꺼내는 수많은 소재 중에서 한국 몇 번 나온다고 쿠메타의 존재의의까지 완전히 제로로 만들 생각은 없습니다. 아까워요. 그래서 웬간하면 서로 불편할 소재는 건드리지 말고 만국 공통인 걸로 좀 해줬으면 하죠.
3.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보 감독의 의지가 개입되어 애니에서 혐한 표현이 나온다면, 저도 의도적으로 그 대목은 오역하여 최종 감상자인 여러분의 심기가 불편하지 않은 수준으로 만들어 놓을 겁니다. 과거 실천사례
만(萬)년 뒤에도 억(億)년 뒤에도
우린 그때 그렇게 있을 것이라 한다.
모두는 끝나고
바다와 하늘뿐인
뙤약볕 사막벌의 하얀 뼈의 너
희디 하얀 뼈로 나도 너의 곁에 누워
사랑해, 사랑해,
서로 오래 하늘 두고 맹서해 온 말
그 가슴의 말 되풀이해 파도 소리에 씻으며
영겁을 나란하게
바닷가에 살아
우린 그때 그렇게 있을 것이라 한다.
―― 박두진, <신약(新約)>
나는 너무나 많은 첨단의 노래만을 불러왔다
나는 정지의 미(美)에 너무나 등한하였다
나무여 영혼이여
가벼운 참새같이 나는 잠시 너의
흉하지 않은 가지 위에 피곤한 몸을 앉힌다
성장(成長)은 소크라테스 이후의 모든 현인들이 하여온 일
정리(整理)는
전란에 시달린 이십세기 시인들이 하여놓은 일
그래도 나무는 자라고 있다 영혼은
그리고 교훈은 명령은
나는
아직도 명령의 과잉(過剩)을 용서할 수 없는 시대(時代)이지만
이 시대는 아직도 명령의 과잉을 요구하는 밤이다
나는 그러한 밤에는 부엉이의 노래를 부를 줄도 안다
지지한 노래를
더러운 노래를 생기없는 노래를
아아 하나의 명령(命令)을
―― 김수영, <서시(序詩)>
이런 명문들을 읽노라면 뿡알이 쪼그라든다. 이정도는 써져야 어디 가서 시나부랭이 쓴다고 깝칠 수 있는거구나.
사람들도 만나야 하고, 뭣보다 마감 못 끝내고 미뤄 온 원고 두 편을 끝을 내고서 자막을 해도 해야겠습니다. 참 절망 11화 자막은 기다리지 마시고 다른 분들 껄로 보세요. 음 물론 실제로는 원고 하다가 자막 하다가 놀다가 놀다가 노는 바람에 셋 다 제대로 못 하는 상황이 오겠지만요;;;;;;; 무명 님께는 늘 죄송. 대신 다음 주 자막은 군입대 기념으로 신속 정확하게 월요일에 내 드리겠습니다.
아참 그리고 블로그 오른쪽 옆구리에 트위터 알림을 달아봤습니다. 물론 입대하면 갱신도 멎겠지만.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이 말씀을 읽고 벌렁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잠들었다
꿈에 흰 옷을 입은 사람이 나타나서 수많은 재앙을 보여주며 내일모레에 지구가 망한다고 하셨다
꿈을 꾸는데도 그만 보고 싶고 벌벌 떨리고 말 대신 터져나오는 눈물이 뺨에 느껴질 정도였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빨리 옷만 챙겨입고 나가서 하루종일 지구종말을 외칠 생각이었다
세수하러 화장실에 들어갔는데 거울을 보니 뒤에 처음 보는 사람이 한 분 서 있었다
나가긴 어딜 나가, 나도 모른다고 말 했잖아, 사람이 이렇게 맹해요, 허허참
그래서 난 기절했다 깨어난 후 그냥 아침밥만 일찍 먹었다 다음날도 오늘도 아무 일도 없었다
난 이것도 창피해서 어디 가서 얘기한 적도 없었는데 요새는 세상이 참 많이 달라졌다
아, 물론 이런 경험을 실제로 했던건 아닙니다. 詩니까요.
당신이 지구를 멸망시킬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보자. 언제 멸망시키는 것이 가장 좋겠는가? 대낮에? 전 지구가 한꺼번에 대낮일 때는 없는데, 그럼 당신 생일에? 내후년에? 백만 년 뒤에? 당신 스스로도 예상할 수 없을 만큼 뜬금없는 때, 아무도 종말이라는 걸 생각조차 하지 않을 때 확 멸망시켜야 뒤가 깨끗하지 않겠는가? 지금 사람들이 한창 2012년을 시끄럽게 떠들고 마야 달력을 운운하는 걸 보면 아직 주님 재림까지는 시간이 있는 모양이다.
ONE FACT. 날짜를 꼬집어서 말해주는 종말론은 모두 순도100% 공갈이다.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가 올 때에도 그러할 것이다. 홍수 이전 시대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는 날까지,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 가고 시집 가며 지냈다. 홍수가 나서 그들을 모두 휩쓸어 가기까지, 그들은 아무것도 알지 못하였다. 인자가 올 때에도 그러할 것이다." (마24:37-39)
진짜로 한시바삐 처리해야 되는 마감이 있는데 그건 안 하고 이러고 있습니다.4
(↑4라는건, 뭐야, 마감이 그럼 벌써 4주째 밀리고 있단 소리냐? 나도 막장이군.)
이번 자막은 A파트 원서도 없고 엔딩도 바뀌고 주간 절망선생 비평까지 들어가서 더 손이 많이 갔네요. 사실 작업중이던 찬집 서편 속 자막에서 절망선생 비평 부분을 아주 많이 참고하면서... 절망 중입니다. 이건 언제 몇날 밤을 새야 공개할 수 있을까?
참고로 저는 지금 약속 어떻게 지키냐는 잠꼬대를 하며 매일 9시간씩 꼬박꼬박 잔답니다. - v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