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吉昌悳 (1930-2010)








우연히 네이버캐스트 들어갔다가 새삼 다시 만났다. 조석 개념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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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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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じょしらく』二十九日目「狩るなら今」(C)2012, 久米田康治・ヤス/講談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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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소감
갑자기 삘받아서 식자 해서 올립니다. 이게 착한 쿠메타라고 생각해 주세요.
최근 연재분은, 애니가 된다는 기대가 반영돼서 그런가 좀 재밌습니다. (각 5분짜리면 재밌겠다.)
근데 아무리 구해 봐도 14~22화는 raw 파일이 안 구해진다는 게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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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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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아침 잠결에 엄마가 내 머리맡에서 뭐라고 말씀하셨다.
아마도 "너 번역한 거 번역료 여기 두고 간다" 였을 것이다.
꿈에서 깨어 머리맡의 봉투를 열어 보니 25만원이 있었다.
이렇게 말하면 굉장히 횡재했다는 식으로 들리겠지만, 사실 을의 입장인 나로서는 불쾌에 부당함을 거듭하여 결국 떨어진 돈이었다.

원래대로라면 번역 원고를 넘겼던 지난 8월 말에 계산이 끝났어야 할 일이었다. 엉터리 비문이 가득한 인도-스리랑카식 영어를 적당한 우리말로 바꿔 주느라, 그나마도 역자로서의 미학적 자존심은 있어서 보기 좋게 만들어주느라 얼마나 머리가 아팠는지 모른다. 하루에도 열몇 번씩 원문 서류를 집어던졌다.
그러다가도 '에이씨 이것 번역하면 장당 만 원이랬는데' 하며 이 악물고 다시 샤프를 집어들었었다. 그 장당 만 원이란 것마저도 내가 엄마를 중개로 놓고 협상을 요구한 끝에 얻은 결과였지, 내가 엄마 말마따나 "엄마 아는 사람이 부탁하는 건데 걍 공부한다 셈치고" 넙죽 봉사활동을 해줬더라면 장당 오천 원으로 더러운 헐값에 내 노동력을 팔아치웠을 것이다.
사실 난 클라이언트가 정확히 누군지도 모른다. 말해주질 않는다. 서면으로 된 계약서가 없는 것은 물론이고 얼굴도 이름도 모른다. 청탁한 서류도, 무슨 아유르베다 리조트니 정부 DB 클라이언트 구축이니 아주 수상쩍은 사업 내용들뿐이었다. 작업하는 내내 불안하고 의심스럽기 짝이 없었다. 도망가면 그만 아닌가? 아버지가 일하는 건설현장이 매번 이런 식이었던 건 아닐까? 모든 일은 하청의 하청의 부탁의 하청으로 내려간다 그리고 일을 하는 사람은 오로지 일에 대한 자존심 하나로 일하는 건지도 모른다. 아주 기분이 더러웠다. 내가 뭣 때문에 이 일을 하는 걸까? 방학이라 할 일이 없었다는 것은 논점이 아니다.

살면서 이렇게 번역을 하기가 싫은 적이 없었는데 하여간 어찌어찌 그것도 기일에 맞춰서 타이핑까지 쳐서 엄마 손에 들려 보내줬다. 그랬더니 묵묵부답이다가 어느 날 엄마가 날 조용히 불렀다.
"니 원고료를, 그 사람이 잘 모르고 엄마 적금통장에 보내 버려서 빼질 못해, 좀만 기다려 봐"
씨바 이게 말이 되는 소리냐? 내가 분명히 납품한 원고에 내 계좌번호를 적어서 줬단 말이다. 값을 얼마 치르면 되는지 그 계산 내역도 적어줬었다.
하도 화가 나서 내가 무례를 무릅쓰고 엄마한테 버럭버럭 소리를 질러 가면서 그 사람 연락처 내놓으라고 했는데 엄마도 눈 부릅떠 가며 "나도 할 만큼 했다" 하기에 그만뒀다 뿐이지, 그 일만 생각하면 지금도 없던 화가 치민다. 학생이면, 애면, 시팔 그 따위로 하대를 해도 되는 거냐?

그래 결국 1월이 다 끝나가는 마당에나 그 요를 받았다. 내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댓가를 받는다는 게 대체 왜 이렇게 힘든 거냐? 싶다가, 지갑에 만 2천 원밖에 없던 나에게 25만원, 이라고 생각하니 갑자기 기분이 묘해지더라. 배추잎 25장을 다 빼서 지갑에 통으로 넣고 교보문고로 가서 한 세 시간을 돌아다녔다. '내가 지금은 뭐든지 사려고 하면 살 수 있다. 무려 현찰로.' 그 기분을 즐기다가, 습관대로 '그래도 다음에 사자.' 하는 생각으로 돌이키게 되면서 내 자신이 참 한심했다. 돈을 줘도 못 쓰는 촌놈 같으니. 그래 결국 예전부터 자꾸 눈이 가던 웬 건축 관련 미니북을 하나 샀다. 생각해 보면 책이란 참 터무니없이 싼 것이다. 몇백 페이지에 몇만 원이라 치면, 페이지당 백 원이란 소리 아닌가.

내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댓가를 받았는데 왜 그렇게 감사했을까? 왜 그렇게 기분이 좋았을까?
'더 받아야 되는 건데' 하는 생각이 왜 그 현찰이란 걸 받는 순간에 싸그리 날아가버리는 것일까? 어제의 경험을 잊지 말아야겠다. 갑을관계란 그런 것이다. 개 같은 자본가들. 돈이 조건 내지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고 가치인 개병신들. 시팔 절대 잊지 말아야지. 내가 다음부턴 어디서 일하든 무조건 서면계약서부터 쓰고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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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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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호출벨

2012. 1. 19. 20:10

타이완의 어느 빌딩 교회 화장실에서 무심결에 '누름' 단추를 눌렀다가 5분간 시끄럽게 울리는 사이렌 때문에 죄송스럽고 민망해 굉장히 혼난 일이 있었다. 교회 어른들은 괜찮다고 했지만 괜찮은 일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변기 오른쪽 옆, 정말 누르기 쉽고 좋은 위치에 그렇게 큰 소리를 내는 버튼이 별다른 표지 없이 태연하게 붙어 있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정말 아무 설명도 없이 단추에 일본어 흰 글씨로 '누르시오'라고만 써 있길래 나는 무슨 환풍기 작동 버튼인 줄 알았다...

그게 나흘 전이었고, 오늘 나는 또 다른 비상벨을 발견했다.


이 비상벨은 강변CGV 상영관 출구 통로 내 남자 화장실에 붙어 있었다.

저 벨소리에 노이로제가 걸린 어떤 하청 노동자 한 분이 이번엔 또 뭐냐며 느릿느릿 나가 보는 사이에, 누군가는 영화관 옆에서 영화의 한 장면보다 더 아찔한 피습을 당해 너무 늦어버릴지도 모른다. 물론 이게 심한 비약이란 걸 알지만, 어쩌면 이것이 위급상황의 본질일지도 모른다. 언제나 안전한 것은 아니지만 또한 언제나 불안할 까닭도 없다. 그리고 누군가는 불안을 매입하고 안전을 하청한다. 그렇게 일상적 돌발상황은 위급으로 둔갑하고, 촌각을 다투는 진짜 비상 상황은 이해되지 못하고 만다. 성추행범이 나타났을 때 울려야 할 비상벨은 물비누가 없을 때 울리고, 기기가 고장나서 짜증을 부리며 눌러대는 비상벨은 정작 두 발이 비정상적으로 칸막이 밖으로 비집어 나온 칸막이문을 발견했을 때는 울리지 않게 되는 것이다. 도대체 휴지통이 가득찬 것이 위급상황 발생과 어떻게 동급이 되는 것일까? 둘 다 사람 한 명 불러 주는 일이라는 점에서는 진배없다는 것일까?

나는 이제 비상벨은, 천재지변이 나거나 사람이 쓰러져 있지 않은 이상 안 누르려고 한다. 비상벨이 원하는 비상상황이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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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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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 첫 해외여행. 밑에 쓴 기간 동안 블로그 관리 안해도 된다 야 씡난다!!!(…)

약속의 말씀 (전체)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 물이 동쪽으로 향하여 흘러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에 이르리니 이 흘러 내리는 물로 그 바다의 물이 되살아나리라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 들어가므로 바닷물이 되살아나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 (겔47:8-9)

약속의 말씀 (개인)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강퍅케 됨을 면하라 (히3:13)


Guys, I'm taking off!
Dec 26, 2011 ~ Jan 18,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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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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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해보고 싶어서...; 3

 
"내 교육방송이 이렇게 재밌을 리가 없어"
공개 타이밍이 좀 미묘하지만 뭐... 그리고 좃쭝똥 가시내는 제가 대만으로 먹튀할 계획인고로 한동안 좀 기다리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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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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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워서 그냥 올린다. 
손호철 교수님한테 낸 문서에는 아무 글자효과도 안 돼 있었는데 여기선 걍 bold치겠음


특강 소감문: 홍세화, 정동영, 정몽준
한때 기자였던 세 명의 어른들은 이제 저마다 다른 행보로 정치계의 길을 걷고 있다가 한국정치를 개괄하는 수업 시간에 특강 강사로 초빙을 받았다. 그들은 지면과 모니터로 보는 것보다 더 ‘대두’였고, 더 인기 있었으며, 경우에 따라서 보좌진과 카메라를 동원하기도 했고 강연이 끝나면 당연하다는 듯 익숙한 미소로 휴대전화 카메라를 바라보는 능숙함도 갖추고 있었다. 나는 기본적으로 이런 명성과 동경으로 덧칠된 풍경을 꺼린다. 아무리 대단한 사람이든 다들 밥 먹고 잠자고 뒷간 가는 사람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나는 누구든지 어디까지든지 이러한 기초에서부터 시작하는 겸손함에 근거해야 한다고 굳게 믿는다. 그러나 “나도 사람이라” 라고 말하는 것 같은 인상은 그나마 홍세화 씨가 약간 보여주었고, 정동영 씨는 그것이 거의 없어져 있었고, 정몽준 씨는 말할 나위도 없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것은 그들이 초대받은 순서요, 준비물을 적게 들고 들어온 수요, 그들이 이념 스펙트럼에서 위치한 좌우 순서이기도 했으며 내가 들은 특강 내용의 알찬 것부터 뒤진 것까지의 순서이기도 하다.
홍세화 씨는 위치와 몸을 지니는 인간론을 인간의 사회적 속성으로 이어가면서 우리가 왜 사회와 자본의 이해관계와 노동의 문제를 직시해야 하는지의 논리를 펼쳤다. 그 가운데 어휘는 필연적으로 마르크스의 어감으로 활용됐고 문제들은 아무래도 갈등론적 시각으로 분석됐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인간’의 문제로부터 시작하여 과연 모두가 합의할 만한 최소한의 교양을 갖춘 시각을 강의실 내에서나마 확보할 수 있기를―사실 이것이 내가 기대했던 것이기도 하다―바랐던 내 기대는 갈수록 아쉬움과 혼란으로 바뀌어 갔다. 그래서 질문했다. 여기서의 인간론도 마치 그 자체로 이견이 없을 것 같지만 또 다른 인간관에서는 효용이니 행복 추구 따위를 말하는 그 자체로 완결된 듯한 인간관이 있다, 이 두 진영 사이의 용어 합의는 가능하겠는가. 나는 이렇게 질문하려고 애를 썼고, 그도 (적어도 내가 듣기로는) ‘그렇다고는 하나 나는 기본적으로 인간이 사회적 존재라는 것을 믿고 실제로 또 그렇기 때문에 이런 평행선은 언젠가 극복될 것으로 본다’라는, 결국에는 합의되지 않고 다만 한쪽이 다른 쪽을 압도하게 되는 것이라는 입장을 비쳤다. 과연 그것뿐일까. 우리는 과연 사회문제 이전에 인간에 대해 합의하지 못한다는 것일까. 철학도로서 받은 화두가 그나마 가장 많은 강의였다.
정동영 씨는 현역 핵심 정치인답게 최대 현안인 한미자유무역협정과 그의 최근의 정치적 입장을 발표하는 자리로 강의 시간을 채웠다. 그가 들고 올라간 태블릿 PC 안에 들어있는 내용이었는지 어떤지는 모르지만 하여간 그는 우선은 자기가 괴담을 유포하는 국회의원이 된 신세에 대해 ‘세상을 잘못 읽고 있었다’라는 후회를 학생들 앞에서 변명하고, 이어서는 에콰도르 전 경제정책장관과의 대담을 지겹게도 인용하며 이것이 자유무역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차라리 미국의 제도를 이식하는 경제통합 협정에 다름없음을, 특유의 강약이 존재하는 정치 연설 분위기로 내내 힘주어 외쳤다. 그가 참여정부 때는 이것이 오직 자유무역 협정일 뿐이고 ‘금융허브’는 허황되지 않은 구상이며 이행법이라는 것이 맺어져 있는 줄을 몰랐다고 변명할 때의 어조는 매우 낮고 조금은 우물거렸지만 반성의 기미는 분명히 보이는 기색이었는데, 그러다가도 다시금 “그러나 헌법 119조와 경제민주화를 적시한 헌법 123조를 어기는 이 협정은 헌법소원을 거쳐서라도 맺어서는 안 된다”라고 연설할 때는 앞에서 무슨 사죄의 변이 있었느냐는 듯이 전혀 망설임이 없고 맹렬했다. 나는 그가, 자기 트위터에 올렸었고 이후 <주간경향>에서 다시 한 번 인터뷰로 말한 “사람, 사람, 사람!”을 뭔가를 광고하는 사람처럼 강조하는 것을 보면서, 어쩌면 내가 아주 오래 전부터 어렴풋하게 의문시해 왔던 문제의식을 그에게 물어보면 어떨까, 일말의 도움을 주거나 받을 수 있을까 하고 대뜸 질문했다. 서민이라는 어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느냐고. 설마 했지만 역시나 그 역시 ‘서민’이 갖는 정치적 의미가 뭔지 모르고 있는 눈치였다. 자기도 이따금 연설 등에서 친서민이란 말을 하긴 했었노라고 털어놓는 등 전혀 준비된 대답이 없었다.
서민. 베드로 사도가 “나도 사람이라”라고 했을 때의 ‘사람(영어성경에서는 mankind, “인류”라고 나온다)’이란 단어가 갖는 자아의식은, 적어도 “나도 서민이라”는 아니었을 것이라고 본다. 사인회가 끝난 후 손호철 교수님과 학우 몇 명과 함께 간단히 서민 개념을 토론할 수 있었는데(이 시간이 짧았던 것이 못내 아쉽다) 여전히 나는 그가 이 문제의식을 정확히 읽었는지도 모르겠고 그뿐 아니라 그나마 개중 건전하게 본격적으로 대의정치를 한다는 ‘어른들’ 중 과연 몇이나 서민이라는 프레임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내가 알고 있는 게 맞다면 서민이란 ‘서얼(庶孼) 출신’ 할 때의 그 무리 서(庶) 자를 써서 people을 표현하는 일본산 한자어다. 그리고 우리가 국민이나 시민 혹은 베드로 사도가 스스로를 지칭한 어휘로서의 사람이 되지 못하게 하는 원흉의 하나로 나는 복수 1인칭 재귀명사로 쓰이는 바로 이 서민이라는 단어를 지목하고 싶다. 내가 왜 서민인가? 우리 가족이 소득 5분위의 최하위권에 들어간다거나 내 정치적 행보와 취향과 영향력이 거의 전무하다거나 하는 것과 관계없이, 내가 불쌍한가? 서민은 없다. 없어야 한다. 돈을 얼마나 벌건 얼마나 쪼들리고 살건 실제 삶의 규모가 얼마나 작건 크건, 1표를 행사하고 인터넷에 글을 쓸 수 있고 어떤 행동이든 실천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누구도 결코 서민이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자기기만이 아니다. 분명한 현실 인식과 그것을 초극하겠다는 의지와 ‘등장’의 차원인 것이다. 요컨대 서민이라는 단어는 우리의 규모를 딱 ‘MB 물가 바구니’ 수준으로 축소시킨다는 점에서 타도해야 할 개념이다. ‘빨갱이’라는 단어가 정치적 인간 자체를 말살한 낙인이라면 ‘서민’은 경제적 인간 자체를 말살해 버리는 무서운 계급장이고 그 자체로 잘못된 계급 구분이다.
정몽준 씨는, 아예 그런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아니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전혀 잘못된 허위의식으로 완전히 무장한 세계관 위에서 그 많은 학생들을 교육하고 바로잡아주려 한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일단 내용이 완전히 갈팡질팡했을 뿐만 아니라 그 내용도 빈약하고 설득력이 느껴지지 않았다. 가장 유의미한 내용이 “민주주의의 종착은 순한 전제주의다”라는 토크빌의 인용이라고 느꼈을 정도니 다른 학우들은 오죽할까. 미국이 세계의 1인자 체제로 가는 것이 당연한 대세인 것처럼 말하다가도 다시 동북아시아와 핵보유국 문제 등이 복잡함을 거론하더니 이렇게 파란만장하지만 기적의 역사라 할 만한 시대와 지정학적 위치 속에 사는 우리는, 방심하고 있다가 습격당한 대목인데, 이런 위기를 기회로 바꿀 ‘창업 기대주’로 순식간에 둔갑했다. 그는 요 몇 달 동안 급부상한 2040 세대에 대해서도 “그들이 대한민국 사회를 대표하진 않겠지만 내가 그 세대와 소외되고 있다는 것은 인정한다”라며 자신의 시대착오적 위치와 입지를 시인함으로써 그대로 이 강의실에 가장 어울리지 않는 연사로서 초빙받았음을 승인한 듯했다. 그에 대해서는 질문할 생각조차 나지 않았다. 무엇을 질문하든 그에 대한 대답이 아닌 한강의 기적을 주문하는 눈치를 되돌려줄 것이 예상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실제로는 서민보다 더 서민이라 할 만한 대학생들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자기 아버지 재단의 청년사업지원책의 도움을 힘입어 이 경제체제의 승리자로 올라올 수 있고 당연히 그래야 할 대상으로 보고 있었다. 아마 그런 사람들이 대다수의 국민들을 대하는 기분이 또한 그럴 것이다. 가장 큰 시장 지배자가 나머지 공급자의 한계비용곡선을 전부 흡입하는 이 체제에서 마치 모두가 747의 사회로 진입할 수 있을 것이라고―마치 자기가 그런 것처럼―굳게 믿는 그런 기분.
개인적으로 세 사람 다 아주 만족스럽지는 못했다. 5년쯤 전이었더라면 이 세 사람의 화두가 전부 내 삶에 폭풍처럼 몰아닥쳐 완전히 내 정치적 방향을 어지럽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떤 정치체제도 베드로 사도가 알고 속하고 따르던 국가 곧 천국에 비견하면 전혀 하급의 것임을 잘 알게 된 지금의 나로서는, 그보다 열등할 수밖에 없는 체제와 세계관과 그 속의 인간됨에 충실하고 있는 세 노선의 대표자들이, 모두 마뜩치 않았다. 그나마 굳이 고르라면 맨 처음 말했던 그 우연치 않은 순서대로 먼저 마음에 들었다 할 것이다. 우리는 인간이고 사람이다. 홍세화 씨가 말한 것처럼 오직 이 사회 속의 인간으로만 있는 것도 아니요 2013년 체제를 살게 될 평범한 일반 서민도 아니고 (기존의 생산체제와 규칙을 위해 뼈 빠지게 일하겠다는) 꿈과 열정이 가득하기만 한 젊음으로서만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세 사람 다 그것을 말하는 시늉만 하다가 그만 끝나고 말았다. (끝)

시청각자료 소감문: 거창 양민 학살 사건
부끄럽다. 거창 학살 사건이라는 끔찍한 일을 이번 수업 시청각 자료로 처음 알았다.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일을 과연 내가 고등학교 근현대사 시간에 배운 일이 없었던가? 다른 학우들이 80년대 색조가 충만한 상황 재연 장면의 연기하는 배우들을 보면서 쉬지 않고 웃을 동안, 난 정말 어색한 한두 장면을 제외하고는, 사안 자체가 워낙에 웃음을 허용하지 않았기에, 거의 예절의 차원에서 웃지 않고 보려고 노력했다. 맨 처음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사람들을 정교하게 세워 놓고 바닥에 깐 레일을 따라 무표정의 시골 사람들을 몇십 초 동안 빙빙 돌다가 멈추면 눈치를 보다 못해 앞으로 뛰쳐나와 외치는 한 사람, “왜 이런 짓을 하는지나 좀 알자”는 그의 외침은, 당시의 TV 프로그램 제작 기술의 열악함과는 무관하게 너무나 시끄럽게 쏟아지는 소총 소음으로 사라져 버렸다. 이게 뭐지, 이렇게 처음에는 당황스러웠고 그 다음에 경악했고 그 다음에는 그 비극이 내 삶에 엷게나마 겹쳐 들어오면서 먹먹해졌다.
이따금 빨치산이 잠시 내려갔다 올라올 뿐이었다는 아무것도 없는 산골 마을이었다. 어느 날 군인들이 학교에 진을 치더니 집합하라고 하고, 한참을 기다렸더니 면장이 와서는 고개 몇 번 끄덕이고는 뒤돌아 가 버리고, 하필 그 때 몸을 풀게 된 한 산모의 가족이 있어 그들만이 그 생지옥을 빠져나왔다가 되돌아와 보니 남아 있는 것이라곤 빨갱이 혐의를 뒤집어쓰고 깡그리 몰살당한 동네 사람들의 시체 무더기였다. 시청각 자료의 조잡함과는 별개로 어마어마하게 전해져 오는 끔찍한 정황과 중간에 소개되는 관련 정보들을 보고 듣는데 머리털이 곤두서는 것 같았다. 군이 주장하는 사건의 경위는 마지막 3일에 전말이 있었지만 민간 피해자 협의회 측은 6일 전부터 간헐적으로 부당 대우와 집단 수용 그리고 2차에 걸친 학살이 분명히 있었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 보통은 ‘당한 사람들’, 곧 피해자의 말이 맞을 때가 많고 아마 실제로도 그랬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을 기리는 1951년의 위령비는 쓰러졌고 정부는 이승만 대통령 이후에는 사건에 대해 언급조차 하지 않으며 그들의 신분에는 빨간 줄이 그어졌다. 나중에 알아보니 지금은 보도연맹 사건, 국민방위군 사건과 함께 한국전쟁 기간에 있었던 ‘어처구니없는’ 사건의 하나로 기억되고 있는 일이었다. 다시 돌이켜 생각해 보아도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웬만해서는 놀라거나 감정적으로 분노하려 하지 않는 나도 이와 같은 몰상식한 부조리 앞에서는 화가 난다.
그런데 우리는 어쩌면 이보다 많은 학살을 겪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지금 겪고 있는지도 모른다. 국군이 거창에서만 빨치산과 양민을 혼동했겠는가. 다만 잊어버릴 따름이고 외면할 따름이고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거나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둥,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인 일이 있었다는 둥 어물어물 매몰했을 뿐이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지금도 반복된다. 예컨대 수능 직후 수험생 자살 뉴스는 이제 새롭지 않고 그래서 뉴스가 되지 않고 심각한 충격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거창 양민 학살 사건은 ‘한국전쟁이라는 부조리한 시대상’,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무성의와 압제로 점철한 군사 권력’의 횡포 그리고 그에 힘없이 ‘당할 수밖에 없었던’ 양민들의 처지로 인해 발생한 사건이라고 우리는 이제 기억한다. 그런데 과연 수능 직후 수험생들의 연쇄 자살은, ‘입시전쟁이라는 부조리한 시대상’에서 ‘압제로 점철한 수능 체제’의 횡포에 힘없이 ‘당할 수밖에 없었던’ 청소년의 처지로 인해 발생한 어처구니없는 자살방조였다고 기억될까? 슬프게도 그렇지 못할 것 같다. 신자유주의는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 돌리는 정치, 경제, 사회 전반을 아우르는 패러다임으로서 이와 같은 역사적 평가를 하지 못하게 할뿐더러 사실 지금도 그것은 나타나고 있다. 우리는 그 수험생들이 단지 조금 더 견디지 못한 가엾은 영혼들이라고 치부하여 문제를 덮어 버리고 있다. 훗날 언젠가 수능이라는 말도 안 되는 전쟁을 치르던 시기를 근현대사 시간에 배우던 어떤 학생이 교과서에도 실려 있지 않던 ‘수능 자살방조’ 항목을 조사하다가 놀라지 않을까? 마치 내가 이 시청각 자료를 보고 이렇다 할 이차적 판단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넋이 나가 버렸듯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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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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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짜사회학 출간 기념회에서 대담을 나누는 김규항 씨

내 사진 폴더에 있는 유일한 그의 사진이다. 사실 제대로 만나본 적도 없는 분이라 이런 글 쓰기가 좀 그렇다. 뭐 내가 개인적으로 품고 있는 마음을 풀어놓는 자리이니 크게 문제 없겠지?



오늘 나는 네 이념이 뭐냐는 질문에 “초보 좌파”라 답하곤 한다. 초보라 한정하는 건 내가 좌파가 뭔가를 제대로 안 지 얼마 안 되었다는 이유보다는, 아직은 내가 제대로 된 좌파로 살아갈 가망성이 그리 많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과연 나는 좌파로 살아갈 수 있을까. 과연 나는 (글이나 말로가 아니라) 일생에 걸쳐, 일상 속에서 좌파의 삶을 지속할 수 있는 인간적 소양을 가진 사람인가. 자신 없어 하는 내게, 한 어린 후배가 붙여준 새로운 별명이 위안을 준다. B급 좌파. 그래, B급이라도 좌파로 살 수 있다면. 출처

나는 평생에 걸쳐 좌파로 살 수 있겠는가? 그래서 그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예수전>을 기획하고 어린이 잡지를 창간한다. 대단히 옳은 방법이다. 민중해방신학이 이단으로 찍히기 전까지 그의 이 신앙적 자기성찰 방법론은 유효할 것이고, 더 이상 어린이가 태어나지 않고서야 이와 같은 실제적 실천 방법이 무의미해질 리 없기 때문이다. 2000년에 썼다는 글은 11년 후, 이렇게 하여 미래를 기대하게 하는 해피엔딩을 맺는다.

그가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그를 읽어야 하는 이유는, 마치 자세를 바로잡는 것이 귀찮고 싫지만 반드시 필요한 것과 비슷한 이치일 것이다. 사교육을 받든 안 받든 중요한 건 어린이 본인의 행복이다. 다음 대통령이 누가 되든 안 되든 진짜 싸움은 자본과의 싸움이다. 너무나 옳고 지극히 바른 말이기 때문에, 마치 '네 눈이 범죄케 하거든 찍어버리라'는 말씀을 읽는 것과 같이, 싫지만 계속하여 들어야 하는 말이 되고 있다. 그래서 그의 동어반복은, 현재까지는 허용치 수준이다.

그래서 그건 문제가 되지 않는데, 문제는 그의 두 자녀다. 아마도 일류대학에 들어가거나 아주 처절한 삶을 살 것이다. 적어도 평범한 삶은 살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 다들 그들의 삶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분석하고 비판하고 한마디 하겠지. 김건처럼 산다는 게 결국에는 쁘띠부르조아지적 자기기만의 결과가 아니냐, 김규항 딸 김단처럼 모두가 그렇게 살게 내버려두라는 거냐, 그렇게 못할 거 뭐 있느냐, 솔직히 김규항도 배신자라 해야 하지 않느냐 등등. 그때 김규항 당신은 과연 뭐라고 말할까. 나는 그게 가장 궁금하다. 그런 순간이 찾아올 때의 그의 변명 내지 입장을 들어 봐야 그의 속마음이 뭔지 좀 알 수 있을 것 같다.

이렇게 쓰기는 써도 사실 나는 그에게 감사하다. 첫째 그가 예수님 믿는 사람으로서 이념투쟁의 최전방에 있어 줘서 안심이 되고, 둘째 시시콜콜한 걸 안 좋아하는 내게 그런 거 안 따져도 된다고 말해 줘서 좋고, 셋째 어쨌든 일깨워주는 바가 있었다는 점에서 감사하다. 저 사진을 촬영하던 날 건국대에서 열린 괴짜사회학 출간 기념 대담회에서, 사람들은 모두 저마다 잘 멋을 내서 굉장히 쿨해 보였고, 한 칸씩 띄어 앉았고, 출입구 앞에서 고래가그랬어와 레프트21이 좌판을 차렸었고, 사람들은 내가 카메라를 꺼내기도 전에 그들을 촬영하기 바빴다. 아무도 그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는 제대로 듣고 있지 않은 것 같았고, 오고간 대담과 질답은 책의 내용과는 더더욱 관계가 없어 보였다. 그때 뭔가 느낌이 왔던 것 같다. 이건 아니라고. 아무리 대단한 책이 나오고 아무리 엄청난 주장이 나오더라도 다 이런 식으로 소비될 것 같다는 느낌, 그때 설명하지 못했던 느낌을 설명한다면 아마 이렇게 설명될 만한, 그런 실망감에 가까운 직관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고래삼촌이 돼야겠다. 그래야 이런 소리를 할 구실이 생기지... 일단 전도여행 다녀와서 명성교회 알바에 말뚝을 박아야겠다. 나도 결국 준정규직 자리 하나가 아쉬운 이 땅의 몹쓸 20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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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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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





















(후략)



웹툰은 이런 게 웹툰이지! 퀄리티나 개성에 비해 사람들이 반응이 너무 없는거같아 안구에 습기차서 홍보차 퍼왔음. 처음부터 정주행하실 분은 여기로

근데 생각해 보니 나 내일부터 시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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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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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은 하고 사냐?

 


Hi in illorum et illi in horum sermone surdi su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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