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희망은 전체이용가에 있다.
세간에서는 휘두르고 내뱉고 벗기는 페이크 하드코어 스타일의 각종 '청소년 불가'들이 대세인 모양이지만, 그러나 희망은 전체이용가에 있다.
이른바 정제되지 않은 물건들, '날것'이 홍수를 이룬다.
춤이며 노래며 영화며 드라마, 쇼, 게임, 신문과 책, 만화, 블로그나 강연이나 공연, 심지어는 매일 저녁 아홉 시에 전국민에게 보여준다는 뉴스마저도 이 모양이다. 예전에는 분명 잔혹한 강력사건을 설명할 때 그림으로 그렸다. 그것도 생생한 성질의 것이 아니었고 대단히 정제하고 자중한 것이었다. 지금은 뉴스 내용이 보도되기도 전에 앵커의 오른편으로 뺑소니차량에 치인 사람이 공중을 날아가는 블랙박스 화면이 날것으로 재생된다. MC들은, 파워블로거들과 개그맨들은, 만화가들은, 편집 데스크는 이제 '아무렴 그렇고말고요.' 등 실상에서 쓰지 않지만 분명 쓸 만한 정제되고 바른 표현들을 금기시하고 입에 올리지 않는다. 그러니 생활관에서건 사회에서건 젊은이 어린이들이 욕부터 배운다. 비속어 그것이야말로 가장 도정하지 아니한 말, 날것으로서의 말이니 이러한 문화 밑에서 비속어 문화는 잔치를 맞는다.
필요한 것은 언제나 그러하였듯이 상한선이요, 요컨대 갈고닦는 정돈의 과정이다.
나도 날것을 추구하여 보았으며 극단(edge)이란 극단적이므로 곧 선이라고 본 일이 있다, 그러나, 다시 하드코어라는 개념에 대해 생각해 보건대, 그것은 극단이어야만 할 필요는 없으며 오히려 그렇게까지는 가지 않는 것이 옳다는 결론이다. 하드코어는 극단과 동의어가 아니다. 붉은색보다 붉은색에 검은색을 약간 섞은 것이 더 벌겋게 보이는데, 이것이 정제이고 정돈이며 극단을 하드코어로 바꾸는 그 무엇이다. 날것에는 한계가 존재한다. (0,255,255)보다 붉은 어떤 색을 컴퓨터는 알지 못한다. 곧 이 총체적인 날것 문화 역시 그러할 것이다. 더 센 욕은 없을까, 더 강한 모에 요소가 없을까, 더 쌔끈한 고딕폰트가 없을까, 어떤 헤드라인이 이 뉴스를 전하기에 더 혹할 것인가, 어떤 예고로 마케팅을 하면 이 이야기를 가지고 손익분기를 넘어볼까. 조만간 이러한 총체적 방황이 찾아온다. 아니 이것은 공황이다.
그리고 희망은 전체이용가, 혹은 12세 이용가에 있다. 말 그대로 남녀노소를 불문하는 것이거나, 혹은 초등학생들에게도 능히 열려 있을 만큼 느끼고 받아들이기에 무리가 없도록 잘 도정되었으면서 아주 기름지게 잘 지어진 어떤 것이 두고두고 벌어먹을 것이다.
무엇이 전체이용가가 되려면 대단히 정제해야 하고 절제해야 하고 고민해야 하고 그래서 참으로 하드코어한, 학적 용어로 '원형적인' 어떤 것이 되고 보아야 한다. 춘향전을 방자전으로 만들어 팔아치우기는 쉽다. 그러나 춘향전을 짓는 것은 무지무지하게 어려운 일이다. 대부분의 고전작품이 전체이용가라는 사실은 내 이야기가 잠꼬대에 그치지는 않음을 입증해 준다. 나중에 제대로 써 보겠지만, 'TV유치원 하나둘셋'은 솜인형과 조잡한 그래픽으로도 한국 어린이 교양프로그램의 전설이 되어 떠났고 이후 어떤 프로그램도 이 전설에 능히 도전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왜? 어린이들이 좋아할 만한 단맛만 잔뜩 집어넣은 요즘의 어린이 프로에서 찾아볼 수 없는 어떤 정돈됨과 높은 수준 그리고 따라가지 아니하고 끝까지 가지 아니하는 그 고집 때문이다.
7세나 15세, 19세도 아닌 하필 12세 이용가가 어째서 옹호되는가는, 그 각각의 성질만 보면 대강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7세는 너무 어린이를 위하여 극단적이고, 15세는 지나치게 젊은이들을 위해서만 극단적이며, 19세는 부담스러움 그 자체를 즐기는 어른들만을 위하여 극단적이다. 어릴 적 12세 혹 19세가 되지 못했다는 이유로 막연하게나마 '정말로 작품성 있고 좋을 것 같은' 영화들을 보지 못해 서운해했던 기억이 있다. 그때 나는 전체이용가는 무한히 유치하고 청소년 관람불가야말로 특색있고 진중하고 멋질 것, 즉 좋게 하드코어하리라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19세 금지작들은 어른스럽게 유치한 것이 대부분이다. <영웅호걸>, <무한도전>으로 대표되는 12세 이용가―그것은 나의 전체이용가에 대한 희망을 좀더 알기 쉽게, 다시 말하면 좀 덜 하드코어하게 보여준다. 더 말하려면 끝도 없다. 19세 이용가 영화가 판을 치고 15세 이상만 보라는 만화가 아니면 영 출판되지 않는 등 세상은 모든 것을 가공하지 않은 그대로 마구 쏟아낸다. 그러나,
인터넷 문화와 세계화 그리고 정보를 분석하는 능력의 상향평준화로 인해 우리가 날것 군것 구분할 줄 안다는 대전제가 깔려 있는 참으로 웃기고 자빠진 2011년, 아니 이 21세기 앞자락에서, 아니 앞으로의 인간들에게, 더욱 필요한 것은 생생하기만 한 무엇이 아니라 잘 가다듬은 무엇이다. 얼마나 잘 가다듬어야 하는가. 나는 그 기준을 전체이용가로까지 보기로 한다. 어린이가 못 볼 물건이라면 어른도 능히 못 볼 물건임에 틀림없다. 아무도 이것을 지적하지 않는다. 이러다간 어린이들의 하드코어한 사고와 세계관은 더욱 조숙한다. 세상이 위험하고 야만적이고 맹랑하며 낭자한 것들만을 자꾸 찾도록 서로 다그치는 아주 몹쓸 지경으로 치닫기 일보 직전의 지금,
희망은, 전체이용가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