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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괴

2014. 4. 23. 16:40

※ 텍스트로 스압이 있습니다.



얼마 전부터 wordpress로 홈페이지를 짜고 있다. 이걸 좀 빨리 만들어야 할 사정이 생겨서, 코덱스 페이지를 번갯불에 구워먹을 기세로 테마 고치고 플러그인 추가하고 세팅이며 수정을 하고 있다. 새로 플러그인을 활성화할 때마다, php 파일들을 열고 수정하고 새로고침해 볼 때마다 항상 조금씩 떨리지만 의외로 별 문제가 없어 신기해하고 있다. 하긴 그렇게 빠르고 간단하게 때깔 나는 웹 출판을 실현하고 싶어서 만든 게 워드프레스였다고 하니까. 지금은 CSS도 나름 꽤 세련되게 만들어 놓았고, 모바일 뷰는 전체를 한방에 만들어주는 플러그인이 있어서 일거에 해결했다. 이제 오픈만 하면 될 것 같았다.


어제 저녁까지는 그랬다.


상황은 이랬다. 원래 가지고 있던 무료호스팅 폴더에 워드프레스 설치 및 커스터마이징 작업을 다 해 놓았고, 막판에 도메인 문제 때문에 새로 무료호스팅을 하나 더 받아서 거기로 이주시켜야 할 상황이 되었다. 밤 11시부터 4시까지 꼬박 다섯 시간 동안 잘 모르는 영어 참조 사이트며 별로 없는 기술 가지고 끙끙 앓아 가면서 잘은 모르지만 따라하다 보면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심정으로 간신히, DB와 테마와 플러그인을 유지하면서 이러구러 옮겨 놓았다. 자고 일어나 한두 시간 더 만지니 도메인도 원활하게 적용되고 드디어 내가 원했던 사이트의 90% 정도가 완성되어서(어떤 기능들은 심지어 개선되기도 했다!), 아 이제 다 됐구나 내심 기뻐했다.

그러다가 알바 출근 시간이 되어서 출근을 했고, 무의미하게 반복되는 타이핑과 문서 제작 작업을 하다가 잠시 자율 휴식 시간에 숨이나 돌릴 생각으로 /wp-admin을 입력했다. 로그인하고, 관리자 화면에서 플러그인 에디터로 들어가, '모바일뷰의 카테고리별 보기 페이지에 카테고리 설명문만 추가하고 다시 일해야지' 하는 생각으로 /wp-content 폴더 속의 어떤 php 아래쪽에 이런 코드를 하나 넣었다. 코덱스에서 생각없이 긁은 것에 괄호 안만 고쳐 붙여넣으면서 생각했다. 분명 여기일 거야. 이거 집어넣으면 카테고리 설명문이 딱 뜨겠지? 빨리 이거 적용시키고 남는 시간에 딴 거 하고 놀아야지. 어디 보자...


<?php echo category_description( %s ); ?>


그리고 새로고침한 화면은 순백 그 자체였다.
내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F12 눌러 확인한 태그라인은 가관이었다. body 태그 이하의 아무것도 로드되지 않은 상태였다. 데스크톱 뷰도, 모바일뷰도 통째로 코드가 꼬여 '폭파해체'된 것이었다.

문제가 거기서 끝이면 다행이었을 거다. 다시 관리자 화면의 에디터를 열고 방금 넣었던 걸 빼면 되니까! 근데 그게 되지 않았다. 에디터는 고사하고 관리자 화면 자체가 들어가지지 않았다. 아뿔싸, 방금 내가 (정확히는 모르지만) /wp-admin 쪽 코드까지 뒤섞어 버렸구나! 머릿속에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내가 최악의 경우 어느 스텝까지 뒤로 돌아가서 다시 와야 하지? 모바일뷰 플러그인 자체를 지우고 새로 세팅해야 하나? 일단 기존 설치본은 유지되고 있으니까 무료호스팅 전체를 지우고 다시 해야 하나?
나는 알바하는 곳 사무실 한복판에 덩그러니 혼자 앉아, 고요와 정적 속에서, 지난 몇 주간의 고생의 결과가 백색 화면으로 리턴되는 패닉을 겪고 있었다. 정말 흔치 않게 '멘탈의 붕괴'를 제대로 경험했다. 무의미한 질문이 종결 조건 없이 순환하기 시작했다. 아니 왜? 그 코드가 몇 바이트나 된다고 사이트 구조 전체를 비틀어 무너뜨리는가? 이렇게 짧고 간단한 코드의 어디가 잘못될 수가 있다는 거지? 근데 내가 그걸 정확히 어디에 붙여넣었더라?


이성의 두꺼비집이 다시 올라갈 즈음 마지막 질문이 실낱 같은 희망이 되었다. 그래! 아무튼 일단 그 빌어먹을 코드만 다시 뽑아내면 수습된다! 그런데 지금 원래 사용하던 플러그인 에디터는 전혀 가용하지 않은데, 어떡해야 하나? FTP? 이 컴퓨터에는 FTP 프로그램이 없다. 지금 그걸 깔 시간도 없고 정신적 여유도 없다. 웹 FTP? 쓰고 있던 호스팅 사이트의 웹 FTP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net2ftp.com에 들어갔지만 이렇게 잘 알려진 곳의 AJAX가 원활할 리 없었다. 속이 타들어갔다. 결국 아주 예전에 쓰던 무명 호스팅 사이트의 웹 FTP 신세를 다시 져야 했다. 그마저도 대책 없이 느렸다. 그리고 폴더 안에 웬 놈의 php 파일은 또 그렇게 많은지, 그리고 아까는 그렇게 쉽고 명확하게 찾을 수 있었던 라인이 왜 지금은 눈에 불을 켜도 안 보이는지 납득할 수가 없었다.

기억을 더듬어보려고 했다. 하지만 멘탈이 웹사이트 body와 함께 일시에 와르르 무너진 상태라, 게다가 다른 동료나 상사 어른들이 드나들기 시작할 즈음이 되자 침착할 수가 없었다. 보는 눈이 있을 땐 크롬 내리고 hwp 올려서 작업하는 시늉을 하면서도 머릿속은 양편에 다 집중하지 못하고 있었다. 집에 가서 몇 시간이나 더 이걸 붙잡고 있어야 수습이 될지 생각하니 울고 싶어졌다. 내가 뭘 한 거지? 역시 일할 때 딴짓을 하면 안 되는 거였는데! 지금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람? 이제 어떡하지? 이거 수습할 수 있긴 할까? 최악의 경우엔 뭘 해야 하지?


병크를 터뜨린 지 꼬박 두 시간이 지나서야 나는 내가 고친 소스가 fdn_archieve 함수에 연관된다는 걸 알았고, root-function.php를 열어서 그 저주스러운 코드를 삭제해 원상복구 시킬 수 있었다. 다시 한 번 거짓말처럼, 그전까지 작업했던 모든 것이 완벽하게 정상으로 돌아오는 것을 보면서, 나는 마냥 안심하지만은 못했다. 여전히 나는 경악을 그만둘 수 없었다.


세월호 참사 때문에, 그리고 이 참사가 보여준 이 나라의 붕괴상 때문에 그랬다.


굳이 하인리히 법칙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우리는 어마어마한 재변이 일어나는 것을 볼 때 직관적으로 깨닫는다. 뭔가 잘못되어 왔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적어도 대참사에 우리가 대처하는 자세나 경위를 보고 있으면 알 수 있다. 모든 것이 일사불란했더라면 이 정도의 난리는 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어제 내가 몇 주간 만들어 온 사이트를 무너뜨려 본 뒤 오늘 느끼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가? 그 사이트는 언제든지 무너질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플러그인 제작자의 의도와 그의 설계 구조를 정확히 모른 채 모양만 내가 원하는 대로 바꿔서 슬쩍 가져다 쓰려고 하던 그 시점, 뭐가 어떻게 사용되는지도 잘 모른 채 온갖 플러그인을 깔고 지우고를 반복하던 그 시점, 플러그인의 소스 코드 자체를 내 입맛대로 고치겠다는 심정으로 플러그인 에디터 플러그인을 깔던 그 시점, 테마 CSS의 미디어쿼리쪽이 성가시다는 이유로 그 부분 전체를 주석 처리해 놓은 그 시점에서, 이미 사이트는 붕괴되고 있었던 것이다. 조금 있으면 여지없이 가라앉을 배의 객실에 구명조끼만 입고 가만히 있으라고 지시한 시점에서, 선원들이 해경과의 교신을 무시한 시점에서, 노후된 여객선에 층을 하나 더 얹은 시점에서, 선령이 지날 대로 지나 일본에서 버리는 배를 싸다고 좋다고 사서 인천에서 제주까지 돌린 시점에서, 그런 짓을 해도 되도록 규제를 풀어줄 대통령이 뽑힌 시점에서, 세월호는 침몰하고 있었던 것처럼.


그리고 그것은 무지, 무관심, 무성의, 바쁘다는 핑계와 당장 뭔가 보여줘야 한다는 성과주의 그리고 별 문제가 없으면 그걸로 괜찮다는 무사안일주의의 산물이다. 절대 한 개발자나 한 선장이나 한 대통령이나 한 교감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세월호 참사는 몇 사람에 대한 징벌로 끝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당장 내가 소스 코드만 몇 메가바이트가 되는 웹사이트 하나를 어떻게 무너뜨렸는가 말이다. 이 기능? 잘 모르겠으니까 생략하고 걍 주석 처리해야지. 이 마진에 이 패딩? 내 취향 아니야. 없던 코드? 넣어서 돌아가면 되는 거 아냐? 구조적 안정성? 내일모레가 오픈하기로 약속한 날인데 지금 꼭 그런 거 신경 쓰고 있어야 해?


워드프레스를 쓰기 전에는 더 심했지만, 지금도 여전히 내 웹 개발 취향은 <!doctype html>부터 시작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메모장과 개발자 도구만 가지고 하드코딩하는 쪽이다. 코드에 색깔 넣어주는 메모장 유틸도 안 쓰는 편이다. 나보고 CSS를 짜라고 하면 엘리먼트 하나에 라인 하나라는 원칙을 적용하고 {} 괄호 안에서 엔터나 탭은 절대로 안 친다. 문과인 내 눈에는 괄호 앞의 요소 이름이 주어로 보이고 괄호 안이 서술어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CSS를 다뤄 본 사람이라면 의심할 것이다. "그렇게 짜놓으면 나중에 수정하면서 소스 찾아볼 때 골치 아프지 않나요?" 그런데 그렇지가 않다. 내가 짠 코드는 내가 원했던 그림 그대로 돌아가거나, 적어도 어디의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깨끗하게 파악할 수 있다. 그런데 정작 남들이 '미려하게' 짜 놓은 훌륭한 소스들을 보면, 분명히 최대한 알기 쉽고 논리 정연하게 짠 것일 텐데도 불구하고, 이해하는 데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린다.

그것은 고유하고 일관된 논리 구조의 문제이다. 명제를 추가할 때마다 출력 가능해지는 논리값이 제곱해서 증가하는 게 논리 체계이다. IFELSE 함수 짜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하다못해 이 div를 먼저 입력하느냐 저 div를 먼저 입력하느냐에 따라 요소의 부모와 자식이 뒤바뀌는 게 웹 개발이지 않은가. 진짜로 실력 있는 웹 개발자는 CSS 트릭으로 인테리어 장난을 쳐서 인정받으려고 하지 않는다. 어떤 환경에서 접속하든, 확대 축소를 어떻게 하든, 어떤 글꼴이 기본글꼴이 되든, 나중에 무엇을 넣거나 빼더라도 일체의 논리값이 갑자기 붕괴하지 않게 하는 기술, 거기에 진짜 웹 개발자의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의 소스 코드는 어떤가? 일관된 논리대로 작성되기는커녕 그때그때 필요한 요소 붙여넣고 업데이트해서 유지 보수하기 바빴던, 그래서 기트헙에서 포크요청은커녕 레포 업로드하기도 부끄러울 코드임에 틀림없다. 일단 서양에서 추천해 주는 대로 저사양 리버럴리즘 서버를 하나 얻기는 했는데, "일단 사이트를 대박 터뜨려야 할 것 아니냐"라는 미명하에 어설프게 자유게시판 CGI 작성해서 죽어라 돌리고 트래픽 유입은 오는 대로 다 받고, 어디서 신자유 BGM 플레이어 주워다가 정지 불가능한 소스로 때려박고, 파이선인지 뭔지에 제이쿼리인지 뭔지를 접목한 커뮤니티가 유행한다니까 과거 CGI 게시판에 플러그인 갖다 끼우면서 "왜 이거 안 되냐, 우리도 쟤네들처럼 팍팍 돌아가는 것 좀 못 만드냐, 이러니까 랭키 순위가 그 모양이지" 헛소리나 하고, 발견되는 버그는 안 잡고, 허술한 게시판에는 광고 배너만 넘쳐나게 많고, 그러니 올라오는 게시물은 사이트 수준 따라 허접하기 짝이 없는데 운영진이 하는 일이라곤 그저 불량유저 차단, 강퇴, '굵은 빨간색 글씨'로 무섭게 번쩍이는 경고 공지 올리기뿐인 이런 역사를 한 50년쯤 지속했으면, 이젠 슬슬 최신 사양 소셜데모크라시 서버 하나 구해서 거기서 잘 돌아간다는 DB 관리툴이며 웹프로그램을 좀 깔아다가 적극적으로 테스트를 해 보고 체계를 세워서 이주할 계획을 세워야 하는데 그건 고사하고 최근에 게시판 컬러 테마만 빨간색으로 고친 다음 "새 시대를 맞아 새 색깔로 거듭난 새 사이트입니다"라고 몇주째 공지 팝업을 띄우는 뭐 그런 꼴, 그게 이 나라 꼴 아닌가? 이런 사이트에 뭐가 아쉬워서 누가 접속을 해 준단 말인가? "탈퇴하고 싶다", "이 사이트에서 활동하기 싫다" 같은 소리가 나오는 게 뭐가 이상한가? 우리는 정녕 우리의 나라가 '다음 카페' 혹은 '싸이월드 클럽'의 전철을 밟기를 원하는가?


경향신문이 꾸준히 밀고 있는 슬로건 "사회계약 다시 쓰자"는 그렇게 이해돼야 한다. 내가 만들고 있는 사이트가 두 번 다시 어제 저녁처럼 허망하게 무너지지 않으려면 우선 내가 워드프레스의 파일 연결 구조와 php와 db 돌아가는 원리며 CSS 하나하나까지 철저히 안 상태에서 내가 알아볼 수 있는 형태의 코드로 작성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제 2의 세월호, 제 3의 성수대교, 제 4의 삼풍백화점을 만들지 않으려면 재난 관리 체제부터 하급 말단 공직자의 태도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조금의 허술함도 없이 빠릿빠릿해야 할 것이다. 이 나라가 진정한 의미에서 발전을 하려면 체제부터 그 체제를 살아갈 사람 한 명까지 고유하고 일관된 논리에 따라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해야 하는 것이다. 더 큰 건물 한 채 더 짓고 더 큰 행사 더 유치한다고 해서 국가 경제가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보았으며, 배 안에 구명정 구명조끼 비치했다고 해서 승객 전원이 비상시에 안전 탈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보았고, 잘 이해하지도 못한 플러그인 소스를 눈치껏 살금살금 고친다고 해서 근본적으로 위태했던 워드프레스 사이트의 구조 붕괴가 원천 방지될 수는 없다는 것을 나는 보았다.


붕괴란 그렇게 필연적이고 느리게, 논리 정연하고 체계적으로 복잡하게 들이닥친다.

더 큰 붕괴는, "더욱 '구조적으로 불가피했고'", "더욱 '무지 무관심 무성의 무사안일에 기인한'" 붕괴일 뿐이다.

더 많은 것이 붕괴하고 있다. 내 웹사이트는 소스 코드 하나 넣었다 뺀 것으로 해결했지만, 세월호 참사는, 이 나라의 "병크"를 완전히 디버그하기까지는 도대체 얼마나 많은 라인을 지우고 빼고 넣고 고쳐야 할까? 까무러칠 것 같다.




우리는 그 엄마가 느낀 절망감을 15년이 지나서야 느끼고 있다. 미처 몰랐다는 듯한 얼굴로, 나와는 무관한 특별한 불행인 줄 알았다는 얼굴로 말이다. 우리는 박근혜씨의 대통령직 하야를 요구한다. 하야의 이유는 충분하다. 그러나 박근혜의 하야는 나의 하야와 병행되어야 한다.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 말하며, 나와 내 새끼의 구명보트를 기대하며 이 살인 체제를 외면해온, 그래서 결국 99%에 해당하는 누구도 빠져나갈 수 없는 지옥을 만들어버린 내 삶으로부터 즉각 하야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박근혜는 다른 박근혜로 교대될 뿐이다. 아, 우리는 이 지옥을 빠져나갈 수 있을까.

(김규항님)

우리가 만든 것은 물질이 생명을 압도하는 나라였습니다. 사회의 주요한 시스템이 오직 물질적 이익에 의해 움직이고 그 시스템을 정부와 관료, 법령이 뒷받침하는 괴물, 그 괴물에게 우리 아이들이 희생당했습니다.

대한민국을 다시 세워야 합니다. 몇 몇 희생양을 찾아내고 그들을 엄단하여 사태를 마무리 짓는 것으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재난 시스템을 손질하는 것으로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만들어야 할 나라는 기본에 충실한 나라입니다.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것을 최우선을 삼는 나라, 성공보다는 안전을 중시하는 나라, 공공의 이익이 사적 이익에 우선하는 나라,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분들이 소명의식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나라입니다. 위험에 처한 국민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국가의 모든 자원을 지체 없이 쏟아 부을 수 있는 나라입니다.

(김상곤님)

이 나라는 그 어디도 망가지지 않았다. 부자부터 가난한 자 까지, 합심하여 전통을 지켜가고 있기 때문이다. 성수대교 붕괴에서 세월호 참사까지, 모두 그저 전통이 무사히 지켜지고 있다는 신호에 불과하다. 모든 참극은 성장주의 계획의 파편이며, 그 계획이야 말로 우리가 망가뜨려야 할 대상이다. 선거 때까지 기다리자고? 맙소사, 우리는 이윤보다 생명이 더 중요하다는 말을 하고 있을 뿐이다. 이것을 확인하는데 투표가 필요하단 말인가?

절벽으로 질주하는 고속도로를 우회하는 길은 거친 숲길 뿐이다. 생명의 대척점으로 가는 경로에서 과속을 주장하는 이 정권을 제거해야 한다. 그 후로 더 이상은, 이 경로를 폐기하려 하지 않는 그 어떤 정권도 진입을 용납하지 않아야 한다. (중략) 저 놈들을 당장 쫓아내자!

(청년좌파 공식 입장)

이번 사고가 정파의 문제인가. 이념의 문제인가. 국가 시스템의 근간에 관한 문제이다. 우리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에 관한 문제이다. 우리는 국가 시스템의 근간이 뿌리째 허물어져 있으며, 우리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국가가 절대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인식했다. 이 문제야말로 여야 가리지 않고 정당이 나서야 하며, 이념과 학문적 입장 가리지 않고 지식인과 전문가 그룹이 발언해야 하는 사안 아닌가. 이번 일을 당하고도 대한민국이 시스템을 바꾸지 못한다면 사람들은 깊은 절망과 냉소주의로 흐를 것이며, 이 나라는 어쩌면 퇴행을 거듭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형태는 남아 있되, 실제로는 망해버린 나라가 된다.

(선대인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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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

12월 28일 민주노총 총파업 포스터 4개, 故 이남종님 추모 포스터, 페북친구 사진 가지고 만든 visual joke, 그외 그냥 삘받아서 오밤중에 만들다가 잠들어 버린 그림들입니다.

이 블로그에 먼저 올렸어야 했던 것을 SNS에서 먼저 설레발 친 것이 조금 후회됩니다.




#총파업 #포스터 1. 28일 총파업 소식을 듣고 그냥 갑자기 영감이 샘솟아 넷북으로 뚝딱뚝딱 만들고 보니 마침 총파업포스터경진대회 가 자발적으로 열리려 하길래 1등으로 참가했다. 덕분에 트위터 시작한 이래 가장 많은 RT를 받았다.


#총파업 #포스터 2. '묵과하지 않겠다'라는 말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다 무서운 엄포인지도 모른다. 그 말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말대꾸를 하고 싶었다.


#총파업 #포스터 3. 이걸 올릴 때쯤 포스터 경진대회는 끝물을 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태평로라는 아이디어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고 있었고, 가로로 긴 것 세로로 긴 것만 만들었으니 이번엔 정사각형을 하나 내놓자 싶어서 굳이 하나 더 작업함.


#총파업 #포스터 4. 유머랍시고 써넣으면 RT를 막판 러쉬 받을 수 있을 줄 알았다. 이거 만든 뒤로 SNS 활동에 회의를 약간 가지게 되었다.


故 이남종 씨가 열사인지 어떤지는 모르겠다. 저 필적을 따면서 느낀 건 어째서인지 굉장히 급했다는 것이다. 어쩌면 그는 정말로 빚이 갚기 싫어서 죽으려던 차에 이렇게 된 거 내 죽음을 가지고 연출이나 해 보자는 심정으로 중도하차 직전 최후의 장면을 기획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든 어떻든 나는 그를 추모하고 싶었다. "우리는 좀더 자연스럽고 비정치적인 이유로 죽을 권리 내지 의무가 있다."


내 아는 페북친구의 셀카를 만진 것. (내 사진이 아니다;;;) 근로장학생 첫 출근 복장이 정장이어야 한다면서 셀카로 그걸 남긴 것인데, 그냥 지나가려다 보니 사진 각도라든가 색감이 여러모로 패션 화보 느낌이었다. 그래서 RGB 레벨 좀 수정하고 아무 브랜드 로고나 갖다넣었다. 좀더 진짜같이 할 수 있었는데, 능력이 없어 이 정도에서 그침 (원래는 WELLDONE을 넣으려고 했다는...)



M for Monarch #1. 롯데슈퍼타워 공사현장에 써 있던 표어를 거의 그대로 가져왔음.


M for Monarch #2. 영어듣기 공부에 여념이 없는 친구들에게 묘한 기분을 심어주고 싶었다.


M for Monarch #3. 이 시리즈의 핵심은 ‘게시되는’ 언어의 전제군주성을 드러내는 데 있음.


M for Monarch #4. 사실 이런 식으로 얼마든지 만들 수 있습니다. 맘에 드신다면 퍼가셔도 좋고 변형 자체제작하셔도 좋아요. 현수막으로 만들어 주시면 ^_^


M for Monarch #5. 나는 이 발언이 순수하게 싫다. 누가 누굴 묵과하지 않겠다는 말인가?


M for Monarch #6. 이런 식으로 가끔 SNS에 써먹어도 될거같다.


"안심하시고 생업에 종사하십시오". Keep Calm and Carry On 포스터의 탄생 비화를 알게 된 뒤 그게 만약 한국에서 먼저 나왔더라면 어땠을까 싶어서 2분만에 (직장 컴퓨터로!!!) 만들어봄.


아는 형이 제주에서 근황 사진이라고 찍은 것을 좀 만져봄. 소설 쓰러 갔다더니...


게임중독 관련 페이크 공익광고다소 불온한 게임중독 관련 인식 전환 촉구 포스터. 물론 kobaco 로고는 그냥 내가 붙인 것일 뿐이고 이건 절대 실제 공익광고는 아니다. 그냥 퇴근길에 문득 저 카피가 생각나서 만들어봄.




2017 사회적총파업 1 한자버전

2017 사회적총파업 2 영어버전

2017 사회적총파업 3 한국어버전올해도 총파업을 하긴 하는구나 싶기도 했고 싱잉앤츠 캘리그래피도 흥하고 해서 한번 심심풀이로 만들어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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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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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

쓸만한 한글웹폰트가 왤케 없나 (그래서 예전엔 내가 아예 하나 만들었지만... 이젠 웹환경이 달라져서 그딴걸로는 택도 없다. -_-;) 싶어서 둘러보며 소스 뜯어보다가 혹시나 이게 img 태그로 먹히나 해서 보니 먹힘. 그래서 올려봅니다.



1. 폰트클럽 (산돌)

ReturnFontTextImage.asp

fontclub.co.kr의 폰트샵에서 사용하는 폰트 미리보기 서비스 코드. 적절한 파라미터 값을 주면 이미지를 반환한다.


(현재까지 알려진) 파라미터

FontName
사용될 폰트 이름. EUC-KR 인코딩. 유효한 값은 폰트샵 각개 폰트 미리보기 이미지 URL을 복사해서 해당 파라미터 부분 보고 찾으면 됨.


FontImageText
출력할 문자열. EUC-KR 인코딩.


FontSize
출력될 문자열의 크기. 자연수. 기본값은 24. 픽셀 단위는 아닌 듯.
출력되는 문자열 위에 빈 공간이 붙기 때문에 이 변수가 ImageHeight 변수보다 20% 정도 더 작지 않을 경우 글자 아랫단이 잘린다.


ImageWidth, ImageHeight
각각 문자열을 출력할 이미지의 가로 및 세로 크기. 이 캔버스 안에 들어오지 않는 문자열은 잘린다.

예제

http://shop.fontclub.co.kr/include/font/ReturnFontTextImage.asp?FontImageText=%C0%DF%B5%C7%B4%C2%C1%F6%BA%B8%B0%DA%BD%C0%B4%CF%B4%D9&FontSize=50&ImageWidth=720&ImageHeight=65&FontName=210%20%C4%DE%C7%BB%C5%B8%BC%BC%C5%B9%20B



2. font.co.kr (윤디자인)

preview.aspx

font.co.kr의 폰트샵에서 사용하는 폰트 미리보기 서비스 코드. 적절한 파라미터 값을 주면 이미지를 반환한다.


(현재까지 알려진) 파라미터

fontname
사용될 폰트 이름. 일반 URL 인코딩. 유효한 값은 폰트샵 각개 폰트 미리보기 이미지 URL을 복사해서 해당 파라미터 부분 보고 찾으면 됨.


text
출력할 문자열. 일반 URL 인코딩.


fontsize

출력될 문자열의 크기. 자연수. 기본값 없음, 0 이상의 자연수를 무조건 넣어야 함.
어떤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height 값의 0.85배(추측)보다 fontsize 값이 클 경우 출력 자체가 되지 않는다.


width, height
각각 문자열을 출력할 이미지의 가로 및
 세로 크기. 이 캔버스 안에 들어오지 않는 문자열은 잘린다.

예제

http://generatorutf8.font.co.kr/preview2/yoonfont/preview.aspx?text=%EC%9E%98%EB%90%98%EB%8A%94%EC%A7%80%EB%B3%B4%EA%B2%A0%EC%8A%B5%EB%8B%88%EB%8B%A4&fontname=Yoon%EC%9C%A4%EA%B3%A0%EB%94%95%20710&fontsize=40&width=350&height=47



뭐 고수분들은 이 정도 소스만 가지고도 이리저리 잘 활용하실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코드는 윤이 좀더 좋고 선택 범위는 산돌이 훨씬 넓네요. 어떻게 하면 잘 훔쳐쓸 수 있을까

Posted by 엽토군
:

자존심 구긴 가시내들


1. jTBC는 MBC를 보고 웃지




2. SBS는 m.net을 보고 웃지




요즘 너무 글만 쓰고 그림판만 만지느라 가시내를 안 올린 것 같아 올려봤습니다.

Posted by 엽토군
:

루시드 폴의 "평범한 사람" 가사 전문을 일본어로 번안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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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

(C) 2013, Kohji Kumeta and Kodansha Inc.

해냈다 해냈어! 드디어 쿠메타가 컬러를 받아냈어! (...)


012


1화 번역 및 식자를 하고 있습니다. 다 되는 대로 이 글 지우고 다시 올립니다.


제목 및 주요 개념에서 せっかち를 '성마른'으로 번역하도록 주장하고 싶어 일단 올립니다.

(성마르다=참을성이 없고 성질이 조급하다. 게다가 "생제르맹"이라는 이름과 뭔가 비슷한 발음이어서 가장 적절한 번역어로 대응한다고 생각합니다. 제발 이게 표준으로 채택되기를 ㅎㅅㅎ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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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

여러분 안녕? 엽토군 형이야.

잊을 만하면 이런 글을 써서 잘난 체하기 좋아하는 불쌍한 어른이지.

불쌍하니까 불쌍한 사람 얘기 좀 들어 줘.


형은 어제 오늘 어떤 청소년수련관의 진로박람회라는 곳에서 일했어.

하루 5만원 받고 9 to 6로 일했지.

어떤 국립과학관의 상담 부스에서 짐을 나르고, 여러분 같은 중고딩들을 자리에 앉히고,

출결과 상벌점에 반영되는 것 같던 '도장'이란 걸 찍어주는 일이었어.



정말 많은 친구들이 '도전! 나도 K팝스타', '△성SDS', '구강위생사', '수도방위사령부' 등 다양한 직업 및 진로 소개 부스를 돌아다니며 어디에서 도장을 받아야 할지 몰라 어려워하더라고.

물론 그건 단순히 "도장 4개까지는 벌점이고 5개부터 상점이다"라고 윽박지르던 여러분의 선생님들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더 크겠지만.

다들 고생했어.

그리고 여전히 여러분의 마음 속엔 진로가 결정되지 않았겠지.

대학생 멘토링도 해 보고 사회 각계 업종 현직 종사자들과의 1:1 상담 코너도 가 봤을 테지만 말이야.

형은 친구들의 표정을 봤어. 자기가 뭘 찾는지도 모른 채 뭔가 찾기는 찾는데 찾지 못해서 사방으로 흩어져 사라지는 그 힘없는 눈빛들. 그래서 치마라도 짧게 잘라 보고 귀에 뭐라도 달아 본 여러분의 겉모습들.


형도 고딩 때 ‘진로와 적성’이라는 과목이 제일 싫었어.

그게 왜 과목이고 일주일에 두 번 수업을 들어야 되는 건지 이해하지 못했어.

둘 중 한 타임은 아무도 좋아하지 않는 선생의 시간이었고 한 타임은 모두가 좋아하는 교목님의 시간이었지.

그야말로 “시험에도 안 나오는” 교과 내용과 실습들.

수많은 적성검사를 받으면서 코웃음쳤어.

이게 다 뭐람. 대학도 못 갔는데 업무니 적성이니 하는 게 다 무슨 소용이야.


그리고 그거 아니?

이 나이가 되어 보니까 느끼는 건데,

그때 형의 생각은 옳았어.

사람이 자기 적성을 살려서 살아갈 확률은 정말 극히 적어. 나도 그렇고 여러분도 그래.


그리고 형이 좀더 약을 팔아볼게.

형 말이 맞다 싶으면 카카오스토리나 페이스북에 퍼날라 줘.


첫째, 자기 적성을 살린 일을 하면서 살아간다고 치자. 그게 행복할까?

형은 지금 농담을 하자는 게 아니야.

여러분의 인생을 몇십 년 앞까지 시뮬레이션해 보자는 거야.


자, 여러분은 이제 마흔셋이 되었어. 월요일 아침 6시 40분에 알람을 끄겠지.

그 다음엔 “와, 오늘도 쩔어주는 아침이군, 내 적성에 딱 맞는 일을 하러 갈 시간이야! 퐈하하!”라고 웃으며 일어나겠지?

개뿔 그럴 리가 있냐? 월요일 아침 6시 40분에 어떤 사람이 웃으면서 일어날 수 있겠어?

그것도 가족의 생계가 달린 일을 시작하려고 일어나는 그 시간에?

그때 여러분은 문득 수십 년 전의 자기 자신의 꿈을 기억하게 되겠지.

이 일만 하고 살게 해 주면 밥 안 주고 돈 안 줘도 행복할 거라고 꿈꿨던 그 어린 시절 말이야.

그때 여러분의 감정은 무엇일까? 보람일까, 후회일까? 만족일까, 배반감일까?

후회는 몰라도 배반감은 크지 않을까?

‘너 지금 이 일이 싫다는 거야?’라고 자문하며 스스로에게 화를 내게 되지 않을까?


형이 말하고 싶은 것의 핵심은 이거야.

어쩌면 “적성” 개념이란 허구일지도 모른다는 거지.

있지도 않은 ‘적성’이라는 것이 사람마다 딱 꼬집어서 존재한다는 그런 개념 자체가 공갈일 수도 있다는 말이야.


솔직히 사람 전자제품이 아니잖아. 어떤 용도에 최적화해서 생산할 수가 없어.

설령 그 적성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하더라도, 모두가 그 적성에 맞게 살아간다는 건 불가능, 불필요 혹은 비윤리에 가까워.

최근의 인사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적성과 인성은 기본적으로 유전이라고 해.

그렇다면 지난 수백 년간 ‘가업’을 이어 왔던 옛날 사람들의 전통은 바보짓이 아니었다는 거야.

게다가 “적성”이 하나의 의무적인 생계 수단으로 전환되어 자발성과 자아실현성을 상실할 때,

적성의 허구성은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날 것이란 말이지.

“어떻게 내가 이 일을 지겨워하게 됐지? 나는 이거 말곤 할 줄 아는 게 없는데 그럼 이제 어떡하지?”

이런 생각에 이르러 멘붕에 빠지고 갑자기 사표 쓰는 어른들이 없을 것 같니?


둘째, 자기 적성과 전혀 안 맞는 일로 먹고산다고 치자. 그게 왜 불행할까?


너네 프란츠 카프카라는 소설가 아냐?

어떤 사람이 자고 일어났더니 거대 벌레 괴물이 되어 버려서 가족한테 버림받았더라는 소설을 써서 현대 소설계의 10대 유명 작가가 된 사람이야.

이 사람이 평소 직업이 뭐였는지 아니?

우체국 직원이었어.

상대성이론 만들어낸 아인슈타인은 특허청에서 꼬붕으로 일했고 스피노자라는 철학자는 안경 가게에서 유리 깎아서 안경알 만들던 사람이었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알겠니?

한 사람의 탁월성이 결코 직업을 통해서만 실현되는 것은 아니다 이거야.

오히려 고도화, 분업화, 파편화, 단순화된 현대 산업 노동 사회에서는 직업 외의 생활 요소가 자아 실현의 결정적 장소가 될 확률이 높고, 시대를 앞서갔던 사람들은 이미 그렇게 살았더라는 거야.


그리고 어쩌면 그게 정답인지도 몰라.

일이라는 건 어원상 ‘하기 싫은데 해야 하는 것’이거든.

적성이라는 건 ‘이 사람이 하기만 하면 제일 잘 할 수 있는 것’이고 말이지.

그렇다면, 일에 적성을 살린다는 건 ‘하기 싫은 것을 꼭 해야 한다고 하니까 자기가 제일 잘 하는 방법으로 하는 것’이 된단 말이야.

전혀 낭만적이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잖아.

차라리 이런 게 어떠냐는 거야.

“하기 싫은데 해야 하는 것은 어떻게든 후딱 해치우고, 남는 시간에 제일 잘 하는 걸 하고 싶은 방식대로 하기”.

이게 우리가 살고 싶은 인생 아닐까?


그래서 형이 하는 말인데,

차라리 진로 선택을 그냥 아무거나 해 버리자는 거야.

어른들의 기대를 맛깔나게 저버리는 거지.

‘다 돈 때문에 하는 거지’를 외치면서 그냥 아무거나 닥치는 대로 결정해서 일단 먹고사는 거야.

서해에 있는 대교(大橋) 관리소에서 일하면 뭐 어때? 군바리가 되면 뭐 어때? 노가다를 하면 뭐 어때? 어차피 직업으로 할 일이라면 ‘정말 지겨워 죽지 않을 만한 걸로’ 아무거나 골라서 대충 하고,

일 자체 대신에 일과 여가의 틈새 이곳저곳에서 너의 적성과 성격과 취향을 드러내면서 살 수 있다면, 그게 대체 뭐가 나빠?


이제부터 여러분의 진로 적성 고민 해결법을 말해 줄게.

꿈이 없다고 말해.

그 꿈이 이루어져 버리고 나면 곤란하니까 일부러 꿈을 안 꾼다고 대답해.

가족 먹여 살릴 수 있고 한 달에 7일 이상 놀 수 있는 직업이면 아무거나 할 거라고 얘기해.

어차피 일이란 건 내 소질 같은 거랑 상관없는 거니까 진짜 “일 같은 일”을 골라서 빡세게 일하고,

일 안 할 때는 완전히 내 맘대로 살 거라고 말씀드려.

어른들은 아마 기가 막혀서 ‘너 생각이 있는 거니?’라고 역정내실 거야.

웃으면서 대답해. “아 그럼요, 이게 21세기를 즐기는 방법이거든요, 전 산업역군[각주:1]이 될 생각은 없어요.”


절대 자포자기하라는 말이 아니야!

실제로 일을 찾아야 해, 그리고 열심히 일해야 해!

하지만 그 일이 꿈을 이루거나 소질을 살리는 것이어야만 할 필요는 없다는 게 중요해!

왜? 불가능하거나 불필요하거나 비윤리적이니까!


이 얘기만 하고 그만할게.

형은 고등학교 수학을 풍산자라는 책으로 했어.

짱이지. 바람산 선생님은 수포자가 될 뻔했던 형을 곁에서 응원해 줬고, 형은 그 책을 리뷰한 글로 이벤트에 응모해서 PMP를 선물받았었어.

그 책에서 풍산자 님은 말씀하셨지.

“벗들에게 한 가지 제안. 꿈이 없는 벗들은 선형 계획만 열나게 파라. 선형 계획만 잘 해도 밥 먹고 살 수 있다. 대학교는 산업공학과.”

선형 계획은 정말 재미없는 부등식 계산이야.

근데 풍산자님은 (한 번도 하지 않던 ‘제안’이란 걸 하셨다는 점에서) 진지하게 제안하셨어.

이걸 열나게 해라.

이거만 해도 밥 먹고 살 수 있다.

그거 아냐? 산업공학과라는 전공은 지방 전문대에 있거나 서울대에 있어.

꿈이 없는 친구가 정말 선형 계획만 열나게 해서 밥 먹고 살려고 해도, 서울대라는 도전 과제가 있더라는 거지.

풍산자 님은 꿈 없이 대충 살 수 있는 법을 제안하신 게 아니야. 우리가 실제로는 꿈이 없다는 걸 일깨워주신 거야. 그리고 그게 나쁜 게 아니니까, 차라리 선형 계획 같은 거라도 열나게 해 보면 어떠냐고, 형이 위에서 제안한 것과 비슷한 제안을 해 주셨던 거야. 이게 고1때의 형에게 얼마나 큰 가르침과 위로가 됐는지 몰라. 수학책이 줄 수 있는 최고의 통찰이 아닐까?


진로나 직업에 대해 너무 걱정하지 마.

살아 있는 사람은 입에 거미줄을 치지 않아. 때 되면 다 하게 되어 있어.

세상엔 여러분 같은 사람들이 많아. 다들 비슷비슷하게 먹고살게 되어 있거든? 너무 걱정하지 마.

그렇잖아도 생존을 위해 모든 걸 내던져 노동해야 하는 이 인간소외의 시장주의 사회에서 생계 해결과 자아 실현을 한번에 다 해내는 것만이 행복이라고 공갈 협박하는 이 사회의 패러다임 앞에, 웃으면서, 보란 듯이 일할때 팍 일하고 쉴때 푹 쉬면서 살면 될 뿐이야.






P.S.

Re: 

가장 큰 문제는 '꿈', '적성', '성취'와 같은 단어는(혹은 개념은)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 정상임에도 불구하고, 사회 혹은 시대의 수요를 섣불리 대입시키는데 있다고 봐요 당장 서점가서 '꿈을 이룬 사람들'에 대한 책을 살펴보면, 스티브 잡스같은 대기업 CEO라든가, 국내에서 공부한 끝에 스탠퍼드, 하버드 같은 명문대에 합격한 학생의 이야기라든가(솔직히 어릴 때부터 그래 이 사람이 뭔가 이룬 것은 알겠는데, '성공 신화'로까지 미화될 만한 것인지 정말 의문이었습니다.. 당장 세계적 수준의 명문대라고 해도 다니는 학생 수만 만단위인데다가, 입학 자체로 보장될 수 있는 것은 그 무엇도 없으니까요)..그야말로 뻔한 성공의 자화상만 가득한 것이 현실이죠 밥을 굶어 가며 등단한 시인의 시집을 찬양할 망정, 진심으로 그의 일생을 동경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또.. 실제로 적성을 살려 직업을 구하는 사람은 흔치 않습니다 본인이 '가장 잘 하는 것'이 실제 직업 상황에서도 '특출난'재능인지는 부딪혀 봐야 아는 것이고, 실제로 그렇다고 하더라도 '잘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은 엄연히 다른 범주니까요.. 될 수 있으면 '하고 싶은 일'을 찾아 갈 수 있도록 무한한 기회를 제공하는 사회가 바람직한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또, 설령 해당 분야에서 실패했다고 하더라도 빠르게 재기할 수 있도록 돕는 것, 나아가 지극히 이상적인 발상으로 비춰질 수 있겠습니다만.. 직업적 여건이 갖춰지지 않은 상황 속에서도 최소한의 생계는 해결할 수 있는 사회 구조가 갖춰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연금 제도의 확장이라고 할까요? 그런 여건이 갖춰진다면, 최소한 입에 풀칠할 일이 걱정되서 꿈을 놓아버리는 사례는 많이 줄지 않을까 싶어요 '입에 풀칠한다'는 말의 정의가 실제로는 단순히 생계만을 놓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면 또 다른 문제가 되겠지만요. 자원 분배의 문제가 효율적으로 해결된다면 그저 이상론에 그칠 담론만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인류 전체에 진정한 풍요를 가져올 가능성이 높은 제안이라는 점에서 시도할 가치도 있어 보이구요.


  1. 산업역군 패러다임에 대해 간단히만 설명해 줄게. 압축적 고도성장이라는 방식밖에 못 겪어본 한국 사회에서 특히 심한 집단 고정관념 중에 '산업화에 대한 강박'이 있어. 번듯한 직장에서 연봉을 받아 사회에 쓸모있는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지. 60~70년대에는 “중고교에서 소양을 갖추고 대학에 가서 고급 인력으로 전환되어 직장에서 후임자로서의 최고 생산성을 달성하고 사회에 기여할 사람들”이 아주아주 많이 필요했어. 그런 사람들을 산업역군이라고 불렀지. 오직 이 사람들이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냈으며, 그러므로 이런 인생이 우리가 살아야 할 삶이고, 그렇기 때문에 닭장 같은 공장이나 무섭게 도외시되는 농어촌에서 묵묵히 노동하는 사람들은 뒤떨어졌거나 능력이 없는 것이라는 아주 반사회적이고 싸가지없고 역사의존적인 집단의식이 생겨났지. 그리고 더 이상 회사에 가는 것이 사회에의 기여도 되지 않고 자아 실현도 안 되고 집안 자랑거리도 안 되고 고도성장을 가져다주지도 않는 이 시대에까지도 먹혀들어가는 사고방식이 바로 이 산업역군 패러다임이야. 여기서 이 패러다임을 결정적으로 시중들고 있는 것이 ‘소질’, ‘적성’ 개념이라는 게 형의 생각이야. 요즘의 대다수 직업적성검사가 단순노무를 결과로 추천해주지 않고 대신 3차 직종 위주로 추천해 준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야. 그건 어쩌면 1만 가지 이상의 직업만큼이나 다양할 것 같고 또 그래야만 하는 ‘인간 적성’이라는 것이 사실은 그렇게까지 면밀하게 분석되어 제안될 필요가 없이 그저 21세기형 산업역군 양산에 수단적으로 동원만 되면 되기 때문에 잔존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거야. 이해 안 되지? 미안.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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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

권리금

2013. 9. 13. 22:01
  1. 잠실 장미아파트는 엘리베이터가 참 걸작인데, 짝수 층 버튼을 누를 수 없게 되어 있다. 대신 자기가 가고 싶은 층±1층을 누른 뒤 내려서 계단을 타고 올라가거나 내려가야 한다. 이것 참 생활건강 아파트가 아닌가? "이거 때문에 (택배) 아저씨들 죽으려고 해요."
  2. 8동 303호라든가 306동 2204호라든가 오피스텔102동A 204호 같은 곳을 가다 보면 죽는소리가 절로 나온다. 하루 40세대 이상의 아파트와 빌라에 "추석 선물세트"를 들고 뛰고 나르고 갖다주고 하면서 오만가지 생각이 다 솟아나지만, 크게 세 가지로 정리된다. 다들 이렇게 사는구나, 이렇게 살 수 있는 것일까, 이게 이 사람들에게는 당연할까.
  3. 아침 7시에서 7시 반 사이에 창모루마을 끝자락에 임시로 마련한 '강동센터'에 가서, 출근 카드를 찍고, 배차를 왜 당신들 마음대로 받느냐는 '데스크'와 기사님의 한바탕 실랑이를 거친 뒤, 유니폼 조끼와 각종 장비를 지급받고 '취급주의'가 태반인 화물들을 휙휙 던져 다마스에 구겨넣고 올림픽대로를 타면, 대략 8시 반이 된다.


  4. 이때부터 "이사님", "교수님", "부회장님", "장로님"들의 하루 일과는 대략 짐작할 만하다. 아직 9시가 안 되었을 때는 차라리 통화가 더 잘 되지만, 일단 9시가 되면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는다. 10시쯤부터 그들은 전화를 받을 태세가 되어 있고, "아마 집사람은 집에 있을 거"다. 오전에 그 '집사람' 혹 '사모님'들은 장을 보러 가거나 친구들과 놀러 가거나 어떤 문화센터에 가느라고 대부분 집을 비운다. 점심을 먹은 뒤에는 전화를 받거나 안 받거나 응대하는 확률이 좋아지지만 여전히 예측 불가능하다가, 정말 거짓말같이 4시 반쯤부터, 유치원과 초등학교와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아이들을 뱉어낼 때쯤부터 자택 직접배달 성공률이 급증한다. 하다못해 집 보는 아줌마라도 있어서 초인종을 누르고 "신세계백화점입니다"라고 외치면 다들 달려나오는 것이다. 이런 풍경을 5일째 보고 있는데 정말 절실하게 느낀다. 아, 이게 이 사람들의 삶이구나. 아파트 주민들이란 이렇게 사는 사람들이구나.
  5. 아파트 단지 택배 배달의 애처로운 점은, 몇 동이 어디 있는지 몰라 동선 짜고 좌회전 우회전 유턴 피턴을 반복하면서 시간을 버려야 한다는 데 있다. (시간이 아까워 미칠 것 같다. 도대체 왜 아파트 설계자들은 stranger의 입장을 개무시하고 왼쪽 위부터 "뒤로번호"로 아파트 동 수를 책정하는가? 내가 가 본 중에는, 아시아선수촌아파트 이외의 어느 아파트도, 처음 온 사람이 용달차 타고 돌아다녀서는 절대 목적지를 찾을 수 없는 구조로 되어 있더라.) 자기 집이 어디 있는지는 귀신같이 알지만, 그 외의 무엇이 어디 있는지, 지금 여기가 어디인지부터는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평당 몇백 몇천의 울타리 안에서 자기 갈 길은 잘도 알고 돌아다닌다.
  6. 그 다음으로 애처로운 일은 경비실과 투닥거려야 할 때이다. 오늘은 나와 휴대폰 번호가 매우 흡사한 우체국 택배 정지용이란 사람 덕에 생전 모르는 물건을 놓고 경비와 푸닥거리를 했다. (참치 세트라니 몰라 뭐야 그거... 무서워...) 그냥 두고 가라는 경비원, 이것저것 다 쓰라는 보안실 등을 다니다 보면 정말 불안하다. 저 사람들이 오리발을 내밀면 난 어떻게 되지? 생각도 하기 싫다.
  7. 그 다음으로 애처로운 일은 그 집에 어떻게 찾아가는지를 알아내서 문 앞까지 가는 일이다. 문 앞에 가서 초인종을 누르는 일이다. 행여나 오배송(엉뚱한 물건을 갖다주는 일)이 아닌가 그 문간에서의 찰나에 재차 확인하는 일이다. 응답하지 않는 문 너머를 상상하며 괴로워하는 일이다. 전표에 적혀 있는 유일한 전화번호가 응답이 없을 때이다. 그 부재중 전화를 보고 한참 뒤에야 콜백하는 수신 내역을 보고 경비실 보관처리된 전표를 뒤져서 "혹시 경비실에 맡겨드려도 될까요?"라며 시치미 뚝 떼고 질문을 덮어쓰는 일이다. (이 대목은 이해가 안 된다면 이해하지 말라.)
  8. 문득 궁금해진다. 우리 중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사는 게 당연한 걸까?

    어느 2호선 지하철역 출구 두 개와 딱 맞닿아 있고 금색으로 찬란하게 빛나는 상가의 뒤편 큼직한 회전문을 지나 "입주민 전용 드링크바"가 있는 라운지의 안내데스크에 자기 집으로 온 택배가 있는지 확인한 후 화물 전용 회백색 승강기가 아닌 입주민 전용 금색 승강기에 카드를 대고 들어가는 것이, 정말 어떤 사람들에게는 당연한 것일까?
  9. 당연할 리 없다. 그들은 어마어마한 권리금을 내고 거기 들어갔다. 그들의 그렇게 살 "권리"는, 어떤 수준 이상의 금액으로 환산되어 구매된 것이다.
  10. 그 권리란 택배를 자기 집 문 앞으로 불러낼 권리이다. 동마다 "라인"마다 경비원을 24시간 대기시켜 놓을 권리이다. 자기 집이 복도 끝일 때 거기에 따로 덧문을 설치해서 자기들만의 현관 앞 화단을 만들 권리이다. 카드를 찍고 1층의 '자이젠토들러유치원' 따위에 자기 손녀를 보내 놓을 수 있는 권리이다. 문간과 건물 밖에 각종 백화점에서 보내 온 이렇고 저렇고 그런 각종 명목의 선물 보따리의 빈 껍데기를 잔뜩 쌓아둘 수 있는 권리이다. 가정부를 부를 권리이다. (이건 실제로 목격한 광경인데) 유모차에 타고 있는 젖먹이를 "미술학원"에 보낸다며 자랑할 권리이다.
  11. 그런데 그 권리는, 그 젖먹이에게, 자이젠토들러유치원에 가는 아이들에게, 잠실중 아이들의 상당수에게는 조금도 권리금 따위와 연결지어지지 않은 채, 그냥 울 아빠가 우리 집이 우리 동네가 그렇다는 식으로, 생의 초기조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나는 이 일을 하며 이것이 가장 애처롭다고 느낀다.
  12. 이것만큼은 정말로, 머리를 볶은 사모님들이 초대형 아파트단지의 놀이터에 자기 딸, 손녀, 손자들을 풀어 놓고 깔깔 웃으며 진심으로 흐뭇하게 지켜보는 모습을 보았을 때, 육성으로 한탄했던 것이다. "너희들은 이게 당연하니? 저 구역질 솟구치는 형광색의 폴리우레탄을 아무렇게나 떡칠해 놓은 저 역겨운 놀이터가 당연하니? 지면에서 한창 위로 떠 있는 곳을 집이라고 느끼고 바닥에 등 대고 편히 눕는 게 당연하니? 나 같은 택배 아저씨가 너희 집에 머슴처럼 꾸역꾸역 짐을 들고 가는 것이 당연하니? 유치원이 너희 집 11층 밑에 있는 게 당연하니? 해가 어느 쪽에서 뜨는지, 옆집 아저씨 이름이 뭔지, 보다 A상가 마트가 어디인지, marvelous라는 영단어 뜻이 뭔지 아는 게 더 중요한 게 당연하니?"
  13. 당연할 것이다. 뭐가 문제란 말인가. 집에 가려면 쭉쭉 가서 313동을 찾아서 카드를 대서 엘리베이터에 가서 8을 누르고 내려서 오른쪽으로 오면 되는데. 나는 정말 궁금하다. 그들은, 지구멸망은 고사하고, 어딘가에서 길을 잃어보거나 누군가를 위해 열심을 다해 시간을 버려 본 경험, 아니면 하다못해 노숙을 해 본 적은 있을까? 부모 세대가 대납한 권리금을 조금도 쓸 수 없는 순간에, 그들은 어떤 감정으로 어디로 가서 무엇을 하며 무슨 생떼를 쓸 것인가?
  14. 너무나 많은 것이 당연하게 주어진 세대가 오고 있다. '저장' 아이콘이 왜 저렇게 네모낳고 이상하게 생겼는지, 왜 어떤 화면은 터치가 안 되는지, 인터넷 쇼핑몰의 배송방식 선택 목록에 왜 '직접 찾아가서 받기'의 옵션이 있는지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는 세대가 오고 있다. 동시에 그 부모들이 대납한 권리금이 소진되는 시기가 오고 있다. 뭔가를 쌓아올려 본 적이 없는, 발로 뛰어본 적이 없는, 그래서 정작 모든 것이 망했을 때 자기에게 배달되기로 약속되었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 G-9 샤또와인 선물세트가 왜 안 오는지에 대해서만 길길이 분노할 줄 아는 세대, blank하고 ignorant하고 baseless한 세대, 지면에서 붕 떠서 살아본 적밖에 없는 세대가 들이닥치고 있다. 오유와 일베와 트위터와 네이트판은 시작에 불과하다. 이건 농담이 아니다. 5시 반까지 폭우와 찜통더위를 헤치고 죽자사자 뛰어다니다 돌아와서 한숨 잘 시간에 이런 분량의 글을 쓰는데 농담을 섞을 여력 같은 건 없다.
  15. 이 단기알바의 일당은 6만원이다. 그게 백화점이, 운송 아웃소싱 업체가 내게 대해 갖고 있는 권리금일 것이다. 나는 어디까지 책임을 지게 될까. 일단은 다행스럽게도 내가 맡은 물건들은 거의 모두 제자리를 찾아서 간다. 배송상 하자로 자비부담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죄송하지만 관계가 어떻게 되시죠?"라는 실례되는 질문까지 감행하고 있다.
  16. 액수는 전혀 문제가 아니다. 요점은 어떤 권리가 구매의 대상이라는 사실이다. 그게 당연해지는 것은 얼마나 무섭느냐는 말이다. 그게 당연한 젊은이들이 마구 들이닥치는데, 이제 그들에게 "너희가 당연하다고 생각한 것을 위해서는 사실 이만큼의 권리금이 필요하니 마련해 오세요"라고 청구하는 게 그들에게는 얼마나 낯설고 거대한 집단 패닉이겠느냐, 그 광경 자체는 얼마나 인류사적으로 얼척없는 사태가 되겠느냐 이 말이다.
  17. 택배 알바 1주일 해 놓고 하는 말이라 설득력이 없을지도 모르지만, 이거 하나만은 잊지 마라. 택배는 2500원을 냈으니까 당연히 오는 게 아니다. 당신은 지극정성으로 그 물건의 박스개봉기를 찍어 올리겠지만, 그 즐거움을 위해 박스를 일일이 체크해서 분류해서 실어 나르려고 밤낮없이 발로 뛴 최소 7명 이상의 지저분한 용달 아저씨들이 끝까지 일했기 때문에 택배가 배달되는 것이란 말이다.
  18. ㅅㅂ 말해놓고 보니 기분 더럽다. ㅈ나 당연한 거잖아. 하지만 이렇게 꼭 적어줘야 네이버에서 "추석택배알바시급"이나 검색하고 있을 그 세대의 귀에 들어갈 걸 생각하니 다시 애처롭다.
    (한마디 해 주지.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시점에서, 2013년 추석선물 배송 도우미 알바는 추가모집이 끝났을 확률이 높다. 다른 거 알아봐라.)


Posted by 엽토군
:

요즘 글쓰기 한 번에 힘을 주지 못하니까 자꾸 뱃살 처지듯이 글이 처진다. 무슨 운동을 해야 글에 근력이 붙을까? 퇴고를 하는 게 제일이겠지?





최신 일본 만화 몇 개를 추천받은 김에

天使のどろっぷ

이것저것 둘러보다가

기운이 빠지고 맥이 풀려서

もうすぐ死ぬひと

보지를 못하겠다.

危ノーマル系女子

아무도 모에하지 않고, 무엇도 나를 설레게 하지 않으며, 어느 작품도 정말 하고 싶은 것을 한다는 느낌을 주지 못하고 있다. fantasy의 씨가 마른 자리에 unreality의 기분 나쁜 검버섯만 자라고 있다는 기분이다.


Fantasy란 무엇인가? 판타지, 몽상, 환상곡을 말할 때 주로 사용되지만, 관용적 표현으로서 '기발한 생각'을 표현할 때도 판타지라는 어휘를 쓴다. 여기서의 의미는 그 뜻이다. Fantasy란 단순히 '판타지 소설' 따위에서나 사용될 만한 개념이 아니다. 더 대단한 개념이다. "일어날 법하지만 일어나지 않고 있는 일들이 적어도 작중에서만큼은 절대적이고 충만한 실존조건으로서 정교하고 총체적으로 일어나는 양상", 그것이 바로 fantasy다.

사실은, 어떤 서사이든 매력적인 서사라면 하나의 미덕으로서 반드시 판타지를 갖춘다. 아주 의외라고 생각될 만한 예를 하나 들어 보여주겠다.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언제나 점잖은 편 말이 없구나

관이 향기로운 너는

무척 높은 족속이었나 보다


물 속의 제 그림자를 들여다보고

잃었던 전설을 생각해 내고는

어찌할 수 없는 향수에

슬픈 모가지를 하고 먼 데 산을 쳐다본다

사슴 한 마리의 "향기로운 관"과 "물 속의 제 그림자"를 본 감동을 그린 노천명의 <사슴>에서조차, 사실은, 하나의 판타지가 존재한다. 당장 표층적으로만 보아도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 "무척 높은 족속", "잃었던 전설" 등 몹시 '환상적'인 시상들이 제시되고 있지만, 그보다는 이 모든 시적 장치들이 순수하게 시각적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이상으로 독자를 어떤 '실재하지 않지만 실재할 만한 어떤 장소'로 초청해 이끈다는 것이, 이 작품에 fantasy가 있다고 할 만한 이유이다. 이 시를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외로운 삶"[각주:1] 따위로 읽지 않고 제대로 읽는다면, 누구나 이 시를 감상할 때만큼은, 관을 쓰던 족속이 사슴이 되었구나, 하는 식의 허황되지만 아름답고 흥미로운 공상으로 이끌려 간다는 것이다. 시어 하나하나가 그런 공상으로의 안내판 역할을 충실하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제대로 된 (값어치를 하는) 어떤 서사에서나, 4컷만화부터 다큐멘터리에 이르기까지, 찾을 수 있는 격정이고 미덕이다. 단순히 지면과 화면에 그려진 대상 그 자체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대상이 총체적으로 실존해낸 결과로서 스스로 제시하고 증언하는 어떤 모형세계에 대한 가능성을 우리에게 들려주는 것이다. 그게 fantasy고, 그것이 잘 된 서사와 "대충 기승전결만 맞추면 재밌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무성의하게 작성하는" 서사의 결정적 등위를 가른다.

나는, 정작 아키하바라의 오타쿠들이 들으면 코웃음을 치겠지만, 어떤 캐릭터의 '모에함' 역시 fantasy를 그 캐릭터에게 막대하게 부과한 결과물이라고 이해한다. 모에하다고 소문난 캐릭터들을 잘 살펴보라. 그들의 가정사, 개인적 취미, 말버릇, 왜 그 상황에서 그렇게 행동하는지 등 정말 아무래도 좋은 것들까지도 다른 '병풍 캐릭터'에 비해 훨씬 더 자세하고 요연하게 제시되고 있음에 틀림없을 것이다. 단순히 가슴이 크다든가 츤과 데레의 비율이 좋다든가 하는 차원이 아니라, 그 캐릭터가 살아가는 세계에서 충실하게 실존한 바로 그 캐릭터로서 독자적이고 fantasy적인 인간상을 획득했기 때문에 그 캐릭터는 모에로워지는 것이다. 모에는 속성에 있지 않고 fantasy에 있다. 캐릭터의 fantasy를 형성하는 주요 심상에 흔히 '모에 요소'라고 부르는 바로 그것들이 포함될지는 모르지만, 가능세계에 대한 해석과 process 없이 그것만 가지고는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모에 요소의 단순 가감승제가 모에 캐릭터를 만들어 흥행시키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리고 요즘은 사방에서 도무지 제대로 된 fantasy를 찾을 수 없다는 기분이다. 대신 unreality가 판을 친다.

Unreality 즉 비현실성이란, 허황됐다는 말이 아니라, "그럴 리가 없음", "와 닿지 않음"의 어감에 더 가깝다. Real이 '생생한, 생각한 그대로인'의 의미를 갖는다면, unreal이란 '허위, 부자연스러움, 어색함, 가공적인'의 의미를 갖는 어휘이기 때문이다. 정말이지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워서 견디지 못하겠다. 이 블로그에서 몇 번 '깐' 바 있는, 그 공허하고 가볍기 짝없는 3D 블록버스터 장면들이나 누구도 진짜 피가 튀기도록 진짜로 육체를 난도질하지 않고 있음을 알 법한 싸구려 슬래셔 신, 공장에서 방금 막 질소를 잔뜩 충전해서 내놓은 것 같은 실속 없는 모에 캐릭터들 따위가, "이런 스펙터클/폭력/캐릭터 따위가 있긴 어디 있다는 거야"와 같이 이성적으로 기초적인 거부 반응을 일으킨다. Unreal하니까 unreality로 인지할 뿐이다.

그런데 그거 아는가? 아무것도 아무 중력도 갖지 못하게 된 사이버스페이스 위주의 21세기가 되면서, 정말 거짓말처럼 놀라운 속도로, 서사 산업에서 그 unreality가 아무래도 좋은 것이 되어 버렸다. "중력(gravity)"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어떤 견고한 현실성의 물감(物感)이, 요즘의 서사에서는 우스울 정도로 간편히 무시되고 있고, 그래서 그저 '부유하는(floating)' 컨셉과 내러티브와 캐릭터와 펀과 프로덕트들만이 강냉이 뻥튀기 잔치라도 벌어진 양 사방에 가득하다. 예를 들자면, 10년 전에는 200발의 실탄만을 가지고 어떻게든 효과적으로 촬영을 강행해야 했던 총격전 영화를, 요즘은 2만 발이고 2억 발이고 쏘아댈 수 있는 컴퓨터 그래픽을 동원해서 제작해 버리는 셈이다. 이 경우 10년 전의 그 영화는 총격전을 위해 많은 '중력'을 감내해야 했을 것이고, 바로 여기에서 특유의 fantasy―대결의 긴장감, 총탄의 타격감, 총상의 생생함―이 만들어진다. 반면 모든 총알과 총상과 총격전 장소가 그린스크린과 애프터이펙트에서 제작되었을 때는 스토리와 캐릭터가 굳이 실존해야 할 세계의 실제성(이 바로 중력이라고 총칭될 수 있는지도 모른다)이 확보되지 않음에 따라 fantasy가 만들어지지 못하기에, 결과적으로 값싸고 빠르고 간편하고 가볍고 공허하고 unreal한, 그래서 관객이 굳이 그 세계로의 초청에 응할 이유가 전혀 없는 하찮은 서사가 만들어지고 마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어떤 작품에도 열광하지 못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영화는 최신 트렌드를 따라가기 바쁘고, 만화는 더 unreal한 쓰리사이즈와 더 괴랄한 성미의 어떤 정신이상자들[각주:2]로 채워지며, 음악이며 뮤직비디오와 소설과 게임 등등의 어느 서사 산업에서도 잠시잠깐 반짝 돈을 벌어볼 만한 unreality 찾기 이상의 fantasy 구축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

매크로와 단축키와 모에 속성 목록을 몰랐던 20세기 말에 판타지는 절정을 이루었다. 그리고 아닌게아니라 unreality는 그런 곳들―지면과 화면―에서밖에 감상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서 인류는 열광에 지쳤고, 판타지에 대한 일체의 기대를 버렸으며, 사이버스페이스와 기술주의적 접근법에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한 채 폭발 장면, 예쁜 엉덩이 등이 주는 unreality를 판타지인 줄로 오인하여 과다복용하고 있다. 그러니 <에반게리온>과 <매트릭스> 이후의 메가히트 작품이 나오지 않는대도 누굴 탓할 수 없는 노릇이다. 천사들이 과자를 배설(排泄)한다든가 각종 이상한 성격의 여자아이들이 여자에 관심 없는 남자애 주변에서 하렘을 만든다든가 어떤 소년이 반 식인종 반 인간의 운명을 짊어진 뒤 세상에 섞여들어 살 수 있는지 고뇌한다든가 하는, 기발한 듯 기괴하고 재밌는 척 힘없고 쌔끈한 척 클리셰적인 "최신작들"을 것을 보고 있으면, 솔직히 누군가를 탓하고 싶기는 하다. 도대체 일이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왜 아무도 "이거 뭔가 와 닿지 않는다"라고 소신 발언하지 않은 것인가?


Fantasy는 어려운 것이 아니다. 현실에서 한끗 차이로 일으켜낼 수 있는 것이다. 그 발견과 재해석과 끊임없는 자문자답의 반복과 중력을 이기려는 '솟아오름'이 없이, 나 공중에 떠 있소 하고 자랑할 수 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하늘을 날려면 무엇이든 예외 없이 양력을 일으켜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너무 많은 것들이 헬륨 가스를 잔뜩 마시는 등의 알 수 없고 변칙적인 원리로 unreal하게 공중에 떠서 나름 돈을 법네 유행합네 히트작입네 행세하는 걸 보고 있으면, 저것들이 언제 다시 이 지면으로 와르르 추락할 것인가를 생각할 때... 다만 아찔할 따름이다. 장담할 수 있는 것은, 지금처럼 아무도 솟아올라서 공중에 뜨려는 생각이 없는 지금에는, 제대로 된 날개짓과 최소한의 고도만 확보하면, 그 서사는 "정통파 기대주"로서 충분히 주목받을 수 있겠다는 사실이다. 예컨대, 돌이켜 생각해 보면, 쿠메타 코지나 우지이에 토젠의 작품들이 그러했다.




P.S. 몰랐는데 핍진성(逼眞性, verisimilitude)이라는 개념이 있더라.

  1. 실제로 이런 비평이 존재한다. 그것도 구글 검색결과 1순위 사이트에서 그렇게 썰을 푼다. Fantasy를 있는 그대로 즐기지 못하는 한국인의 천박함은 그 정도인가 싶다. [본문으로]
  2. 절대다수의 리액션들이 지나치게 비정상적이다. 2D 캐릭터니까 납득되는 수준이 아니다. 치명적으로 모에하지도 않고 일반적으로 자연스럽지도 않다면, 왜 그들은 굳이 그런 리액션을 해야 하는가? 정신이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수밖에 없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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