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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부터 농담으로 써먹던 레파토리. 이 나라 돈은 다 어디로 갔느냐? 크게 3군데, 부동산에 묶여 있고 주식에 묶여 있고 4대강에 쏟아져 있다.
이 소릴 하면 너도 나도 그저 잘 웃었다. 굉장히 과장한 일반론이거든.

근데 최순실 스캔들 이후로는 이게 죄다 실상인 것으로 드러나 버려서, 이 소릴 생각할 적마다 다만 아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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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없던 7년간의 언론





7년 그들이 없는 언론 포스터드디어 개봉한다. 7년 그들이 없는 언론



새삼 끔찍한 계절이었지 싶다. 7년 전이면 2010년인데 그렇게 먼 과거가 아니다. 이명박근혜라는 워딩 말곤 쓸 게 없는 잃어버린 세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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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개편 좀 하고 가실게요


요즘 내껄 너무 안한다 싶어서 한번 해봄. 아닌게아니라 종편가시내들은 초기 디자인이 너무 구렸던 것이 사실입니다.

네모토끼 페이지에 자극받아서 업데이트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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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S25를 순전히 도시락 때문에 간다.

학교에 편의점이 GS25밖에 없어서이기도 했지만, 김혜자의 MOM 도시락 브랜드가 런칭되기 전에도 GS25는 원래 도시락을 잘 하는 업체였다. 내가 ‘아 이제 가급적 GS25로 가야겠다’라고 생각하게 되었을 무렵, 편의점 도시락은 대체로 2500~3500원 선이었다. 싸게 먹으면 2800원, 큰맘먹고 좋은 것 집으면 3500원, 혹은 싼 것에 음료수 할인구매를 붙여서 3700원 하는 식이었다.

그리고 지금 GS25의 ‘갓혜자’ 도시락들은 전부 3000원이 넘는다.

개인적으로 이 어찌된 귀신 곡할 노릇인지 지금도 그 영문을 모른다. 도시락 하나를 삼천 원 넘게 받고 주는 게 무슨 ‘갓혜자’인가? 누구 말마따나 어디 가서 밥버거 두 개를 배부르게 먹을 돈일 뿐더러, 삼각김밥 3개를 사도, 아직은, 삼천 원이 넘지 않는다. 그런데 부르기로는 여전히, 도시락 하나가 3000원에 좀더 푸짐해졌다는 이유로 ‘혜자스럽다’라는 말을 만들던 그 시절의 감각 그대로, “갓(god)혜자 상품”이라 부르고 있다.

아니, 사실은 무슨 영문인지 잘 안다. 사실은 이것 비슷한 사태가 나라처럼 생긴 이 지옥 반도 사방에서 가열차게 일어나는 중이다. 지금 우리는 공급자에게서, 기업에게서, 자본에게서 상품과 서비스와 인간적 규모의 합리성을 구하지 않는다. 일어나고 있는 일들만 둘러보면, 도대체 그럴 리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저들에게 구하고 있는 것은 ‘은혜’다. 그것도, 거의 자선에 가까운 은혜.

잠시 은혜라는 개념을 설명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기독교적 용어의 은혜란, 창조주적 존재가 피조물적 존재에게 별 이유 없이 베푸는 호의 또는 그 결과의 소득을 의미한다. 두 가지 핵심은 영향력 관계의 절대적 일방성, 그리고 타당성 확인 없이 임의적으로 (arbitrarily) 주어진다는 점이다. ‘선물’에 자주 비유되는데, 그러므로 받는 쪽은 주는 쪽에게 원칙적으로 요구를 할 수 없으며, 주는 쪽의 호의에 감사하는 것이 받는 쪽의 할 일이고, 주어지지 않거나 다소 엉뚱해 보이게 주어지더라도 혼자 꿍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은혜 관련 교리의 핵심이다.

이 교리는 그야말로 교리, 신앙, 종교의 차원이기에 성립한다. 다시 말하자면, 영향력 관계가 절대적으로 일방적이기 때문에 그 선물은 ‘은혜’가 되는 것이며, 그 선물을 주는 이는 천지 만물의 창조주이신 ‘주’로, 우리는 토기장이의 손 안의 진흙으로 인정된다. 일상적 차원의 ‘선물’이 은혜와는 엄연히 실천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생각해 보자. 선물이란 때로는 받는 쪽으로부터 요구되기도 하고, 주는 쪽이 일종의 책무를 가지는 경우가 상황 맥락에 따라 있을 수도 있잖은가. 그것은 사람 대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다. 감히 사람이 베풀 수 없어 보이는 크나큰 호의가 베풀어질 때, 우리는 비로소 그것을 신의 은총으로 받아들인다. (참고로 은총은 은혜의 다른 말이다.)

이 시점에서 잠시 편의점 도시락이란 게 뭔가를 생각해 보자. 우리는 편의점 도시락을 GS25로부터 선물받는가?

아니. 돈 주고 산다. 바싹불고기도시락을 진열장에서 꺼내서 계산대에 올려놓을 때, 누구도 ‘구하옵나니 제게 이것을 내려 주옵소서’ 빌지 않으며, 바코드가 두어 번 찍힌 다음 “봉투에 담아드릴까요?” 질문을 받았을 때 황송해하는 사람은 없다. 내 돈 주고 내가 사 먹는데 무슨 놈의 선물이야? 우리는 오히려 포장지에 쬐끄맣게 붙어 있는 “음료 무료 제공” 광고를 귀신같이 확인하고 “이거 사면 OOO 주시죠? OO맛 있어요?” 너무나 당당하게 묻는다. 굳이 다시 한 번 반복하여 그 당연함을 조금 벗겨내자. 우리의 구매 행위는 단 한 번도 선물을 받거나 은혜를 입는 과정이었던 적이 없다. 거기에는 지불, 제공, 그리고 그 거래 바깥의 사회적 합의라는 지극히 세속적인 요소만이 있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면, 왜 값싼 도시락을 파는 (것으로 선전되는) 이를 일종의 ‘신(god)’으로, 그 도시락을 은혜로 받아들이는가? 뭐 간단하다. 돈이 신이거든.

굳이 물신(物神, mammon)이 뭔지를 백과사전 뒤져서 설명할 것도 없다. 그 설명들은 밥값 몇천 원과 보증금 몇천만 원을 겪어 보지 못한 형이상학적 서술이기 때문에 별로 설명력이 없다. 물신은, 배금주의나 수전노적 행태의 숭배 대상이어서가 아니라, 허구적으로 부여받은 신적 권위를 실제적으로 행사하는 가치 저장 체제라는 차원에서 신이라 불릴 따름이다. 초고도로 발달한 신고전적 시장 경제 체제에서, 이 허구적 권위는 정말 그럴듯하게 부여된다.

돈님께옵서는 자기의 권능을 내보일 때는 저 멀리 무슨 기업의 시가총액이나 강남 어디의 전세집 같은 곳에서 자신을 한없이 높여 감히 사람이 거역치 못할 온갖 위력을 떨치다가도, 가끔은 낮고 천한 편의점 같은 곳에 임하셔서 우리의 몇천 원 푼돈의 노력으로도 한 끼 밥을 배부르게 먹게 해 주신다. 개념이 오락가락하는 것 같지만, 큰 의미에서 보면 물신이 관통하는 현상이라는 점에서 같은 상황이다. 적어도, 돈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일어날 리 없는 일이라는 점은 확실하니까.

그리고 우리는 무력하다. 백날 모으는 ‘포인트’가 티끌 모아 티끌인 것도 문제지만, 돈님의 진노 앞에 우리는 하룻밤 들꽃처럼 시들어 버릴 뿐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이 사회에서는, 돈님께서 그 은총을 거두시면 누구나 즉시 춥고 배고프고 정처 없는 신세가 된다. 도시가스 민영화에 따른 가격 합리화! 프리미엄 건강 혜리 도시락 4900원! 사람 세 명 누울 월세방 하나가 1000에 70! 정말이다! 모세가 노래한 하나님의 진노는 우리가 잘 모르겠지만, 당장 우리가 돈을 우리 통장에 모시지 않으면 무슨 참혹한 형벌이 주어질지는 넘나 명백한 것!

그리고 이 와중에 굳이 한 번 언급하고 지나가자면, 돈을 써야 쌓아서 쓸 수 있는 ‘포인트’는, 그리고 “합리적 소비”니 “절약”이니 하는 것은, 사실 모두 그저 ‘노오력’ 환원주의의 결과라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하등 다를 바 없으며, 그러므로 아무 희망도 대책도 되지 않는다. 그러니 여기서는 그냥 논의하지 말자. (절대로 방금 GS POINT로 펩시 하나 사먹고 왔더니 포인트가 확 줄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그럼 뭘 논의해야 하느냐고? 뭐긴 뭐야, 우리가 “갓혜자”로부터 은혜 대신 사회적으로 정당한 거래를 요구할 수 있어야 하지 않느냐를 논의해야지. 다시 말하자면, 물신을 거꾸러뜨려 돈이 단지 돈이기만 하도록 만들 방안을 찾아야지.

음, 그러니까 구체적으로 달리 말하자면, 시장 가격이 오르내린다는 이유로 그 대상 상품의 실제 가치가 쉽게 오르락내리락하지 않도록 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소리다. 난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도시락 하나가 몇십만 원을 호가할 이유는 하늘땅별땅 요만큼도 없다. 도시락에 금가루 뿌리고 영양제 섞으면, 한 사람 한 끼 밥이라는 본질이 갑자기 확 달라지는가? 그래서, 일반론의 차원에서야 천부당만부당하지만, 본질적 효용 총량의 jump가 일어나지 않는 일부 상품에 대해서는 최고가격제가 유효하다고 믿는다. 예컨대 도시락이 그렇고, 고위급 임원들의 연봉이 그렇다.

하지만 우리는 아무 생각 없이 ‘규제는→나쁘다’의 공식만을 가히 전체주의적으로 떠받들어 왔고, 그 덕분에 지난 몇십 년간 겉으로는 모두가 돈을 많이 벌게 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실제 생산-소비된 상품과 서비스들의 본질적 효용 총량에 비해 그 금액이 물신의 권능에 의해 굉장히 부풀려졌음에 틀림없다는 점에서, 결국 언젠가 꺼질 크나큰 거품이다. 그리고 이 버블샤워 속에서 누구도 “야 이건 아무리 그래도 다들 너무 비싸”, “왜 싸게 팔아주는 게 고마울 일이야? 전체적으로 깎아야 한다니까?”를 말하지 못한다. 뭐, 누굴 탓하기는 어렵다. 기업은 이윤을 창출하고 싶은 것뿐이고, 우리는 300원 더 오른 것 때문에 밥을 굶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통제권을 가져와야 한다. 우리가 통제권을 가졌다는 사실을 경험할 필요가 있다. 은혜를 입어야 할 것은 우리가 아니라, 우리의 통제를 받는 시장이어야 한다.

정말이지 모든 게 이런 식이다. 건물주가 1층에 값싼 카페를 취미생활로 운영하는 것을, 결국 공간주가 계획한 이용 방식대로 낼 돈 다 내 가면서 쓰는 공간인데 ‘누구나 오셔서 자유롭게 어울리는 복합 문화공간’ 운운 생색 내는 것을 최근 들어 좀 지나치게 자주 목격하다 보니 더욱 그렇게 느낀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손이 시장을 작동시킬 거라고 믿었지만, 그 이상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은 결과 우리가 얻은 것은 “갓혜자”다. 모든 게 시혜이고 은혜가 됐다. 저녁 늦게까지 돌아다니는 우리는 각종 가격 결정자들이, 석유 공급자들이, 부동산 소유주들이 착한 마음을 계속 가져 주기를 기도하며 조마조마 살아가는데, 맨큐는 우리가 합리적 경제인입네 수요가 감소하면 가격이 하락합네 물정 없는 소리를 한다.

많이는 바라지 않고, 일단은 갓혜자가 없이도 걱정 없이 도시락 한 끼를 먹는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핵심은 갓혜자가 없다는 데 있다. 편의점 도시락은 ‘혜자의 MOM’ 브랜드이기 때문에 값싸서는 안 되며, 지불 용의가 5천 원이 넘지 않는 배고픈 사람이 사는 것이기 때문에 값싸야 한다. 차라리 반찬 수를 줄일지언정 말이다. (양을 늘려주는 대신 가격을 올려 받는 것도 실제 소비자 입장에서는 사실 굉장히 위선적이라고 느낀다. 아 ㅅㅂ 그니까 양은 됐고 액수나 좀 맞추자고! 내가 정말 양이 부족해서 이러는 거면 두 끼 값을 모아다가 9900 고기뷔페를 가서 한번에 찢어지게 처먹겠지 여길 오겠냐 이 개자식들아!)

생각나는 방안이 최고가격제 뿐이긴 한데, 말고도 더 있을 것이다. 아무튼지간에 정리를 하자면 이렇다. 자본주의가 극도로 발전하니 모두가 우려하던 대로 자본의 신격화가 일어나고 그 결과는 무산자들이 자본으로부터 일방적이고 임의적인 신적 은혜를 구하게 된 지금의 상황인데, 그 단적인 사례가 ‘GS25 god혜자 도시락’인 것이다. 우리 이거보다는 좀 덜 상스럽게, 쪼끔만 더 성스럽게 살면 안 될까? 일단 김혜자 선생님 당사자 입장에서, 모두가 자기 이름 앞에 ‘god’을 붙여 부르면서 도시락이나 깨작거리는 꼴이 얼마나 씁쓸하고 부담스러우시겠느냐 말이다. 진열대에 뻔뻔스럽게 자화자찬하듯 붙어 있는 “갓혜자, 다 아시잖아요” 공식 POP를 보고 있는 내가 이다지도 거북한데.

Posted by 엽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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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나의 “여혐” 이력을 이야기해야겠다.

한창 논술 실력이 인문계 대입을 좌우한다고 난리를 치던 고3 때였다. 학교에서 단체로 인하대인지 어딘지로 모의논술 시험을 보냈다. 시험 문제를 딱 받아봤는데, 결국 엄청나게 스트레이트한 질문 하나였다. “교사임용시험에서 여성들에게 가산점을 줘야 하는가?”

고딩의 눈으로 보기에도 출제의도가 뻔한 것이었다. 순순히 “아 네 그럼요 당근이죠”라고 써냈다간 0점을 받을 판이었다. 왠지 다들 그렇게 적고 있을 게 너무 뻔하게 보였고. 그래서 다른 생각을 적었다. 아니다, 어쩌면 그것은 남성들에게 역차별이 될 수 있다, 교사라는 직군에서는 여성이 더 많고 다수이기 때문이다, 운운.

그리고 그 답안은 그 모의시험 전체 1등 답안이 되었다는 소문이 있다. 소문이라서, 진위는 아무도 모른다. 그런데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것은 분명 요즘 말로 “여혐”을 해서 이득을 취한 이력이다.


여성혐오라는 표현은 잘못되었다.

잘못 던진 질문에 알맞은 답이 안 돌아오듯, 여성혐오라는 잘못된 워딩 때문에 ‘난 여성혐오 안하는데’ 따위 무의미한 리액션이 되돌아온다고 본다. 혐오라, 과연 여자(여성) 그 자체를 음식물 쓰레기나 썩은 고양이 시체 취급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그건 좀 아니라고 생각된다. 남성들이 점차 더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부정적 감정, 호의적이지 않은 태도들이 선호의 차원이 아닐 거라는 말이다. 그 반대말이 “여성사랑” 같은 게 돼 버리기 때문이다.

여성혐오라는 표현은 “된장녀” 비난과 “개념녀” 칭송의 이중적 행태를 아울러 설명하지 못한다. 장동민 같은 인간 말종에게, 기타 숱한 김치남들에게 어떻게 애인이 애인이 있는지 역시 ‘혐오’의 차원에서만 보면 설명되기 어렵다. 코르셋론이 빙빙 맴도는 이유는, “난 코르셋이 좋아, 허리 날씬해지고 싶어”와 “코르셋은 나빠, 넌 건강을 해치고 있어”가 접점 없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은, 여성에의 억압이다.

억압의 차원에서 된장녀-개념녀 드립을 살펴보면, 된장녀 비난은 개념녀를 더욱 억압하는, 개념녀 찬탄은 된장녀가 되지 말라고 억압하는 정치적 행위이다. 장동민의 애인 역시, 그 남자의 미개하리만치 전근대적인 억압적 여성관이 승인하고 허용한 여성으로서, 그러므로 이 여성관이 존속 가능하다는 피동적 증명 수단으로 존재하지, ‘나비’라는 한 개인으로서 누군가의 애인인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장동민은 비로소 위자료만 받아가는 이혼녀를 개그 무대에서 비꼴 수 있다—그의 여자는 이혼녀이기는커녕 세상에 둘도 없는 예쁜이이므로!

요컨대 혐오하는 방식은 한 가지일지언정 억압하는 방법은 두 가지일 수 있다. 말 잘 들으면 칭찬해 주고, 말 안 들으면 때리는 거다. 비슷하게, 최근 몇 년간 특정 여자 연예인들이 “여신”으로 떠받들리는 것도 실은 칭찬하는 억압이고 그런 의미에서 “여성혐오”의 한 축이다. 나는, 설현이 아름다운 것과는 전혀 별개로, 설현이 절대적 추앙을 받는 작태가 그런 차원에서 추악하다고 생각한다. 세상에 예쁨받기 합당한 여자가 설현 정도밖에 없다니 이 무슨 집단 이지메인가?

억압이 혐오만을 이용한다면 지속할 수 없는 아수라의 군상은, 그것이 칭찬을 이용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개그맨들의 “여혐 개그” 역시 비슷한 방식으로 조립 생산된다. 웃긴 분장을 하고 소리를 빽 지르면 그 내용이 무엇이든 그냥 웃긴 법이다. 그 내용에 농담 명목의 실질적 여성억압을 넣고 소리를 빽 지르면 뭐가 돌아올까? 일단 터진 웃음과 “난 장동민 웃기고 좋은데? 진지충들​​” 하는 쉴드가 돌아온다. 그렇게 억압 행위가 칭찬을 받으면, 왠지 또 하고 싶어지는 법이다. 엄청나게 정당해 보이거든.

나만 봐도 그렇다. 모두가 YES 할 때 혼자 NO를 외치면 상까지는 아니더라도 전략적으로 득볼 수 있다는 게 제도적으로 보장을 받으니, 봐라, 대놓고 역차별이 어쩌니 괴상하게 조립된 논리로 비열한 여혐을 서슴지 않았잖나.


억압은 자동적, 피동적으로 작동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대항은 수동적, 능동적이어야 한다.


참 묘하지? 말 몇 마디가 사람을 옥죈다. 그러면 안 되는 거야, 여길 벗어나지 마, 내가 하지 말라고 했잖아. 이게 뭐라고 처음엔 괜히 신경이 쓰이고, 그 다음엔 내가 뭘 잘못했나 싶고, 점점 ‘아 내가 뭘 잘못했나보다’ 느끼게 만든다. 그러다가 잠시 후엔 자기가 자기도 느끼지 못할 만큼 새삼스럽게 이 억압에 가담하게 된다. 그러면 안 되는 거래, 여길 벗어나면 안 돼, 누가 그러던데.

인스타그램 속 설리가 각광받는 것은 그런 이유이다. 누가 그랬는데, 좆까 정신이라고. 실로 그렇다. 그러면 안 된다, 동생 같아서 그러는데 결혼 어쩌려고 그러냐 따위의 내면화된 억압 앞에 “읭? 왜안됨? 니들 븅신” 픽 비웃고 더 자기답고 싶은 사진을 공중에 뿌린다. 굉장히 행복해 보이지 않는가? 그럴 테지, ‘설리가진리’니까, 누가 뭐라고 압박을 주건 말건 스스로 직접 온전히 자기이고 있으니까. 장동민의 (레알)여혐 발언에서 파생된 구호는 그래서 의미가 있다. 설치고 말하고 생각하고. 딱 그대로 억압의 방향과 정반대로 뻗는, manually active한 해방 투쟁 방식 말이다.


이것은 통제, 억압, 소유, 승인, 기득권, 그러므로 제도의 문제이다. ‘혐오’라는 워딩이 불안한 이유다. ‘억압’ 내지 ‘통제’라고, 사태의 실상을 정확하게 드러내어 말할 필요가 있다.

“날 혐오하지 마세요”라는 말은 달리 말하면 “날 사랑해 주세요”가 된다. 그래서 이 말을 듣고 김치남들이 만들어낸 허수아비가 바로 ‘메퇘지’인 것이다. 더 쨍하게 말하자. “날 억압하지 마세요”, “날 통제하지 마세요”라고 말하자. 이건 달리 말하면 “당신이 어떤 종류의 나를 원하는지는 내 알 바 아니고, 내가 나답다는 이유로 당신에게서 무슨 허락이나 비난을 받을 이유는 하등 없으니, 내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마세요”가 되니까. 훨씬 정확하고 명쾌하지 않은가?

어떤 인간도 억압받아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께서 아무도 억압하지 않으시므로. 어떤 여자도 억압받아서는 안 된다. 모든 여자는 인간이므로. 어떤 여자도 혐오되어서는 안 된다. 혐오는 억압의 한 형태이므로. 그러나 어떤 여자도 어떤 몇몇 이유 때문에 무조건적으로 추앙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이야말로 여성 억압을 승인하고 공고히 하는 주요한 메커니즘의 하나이므로.


하루라도 좋으니까 좀 사람이 생각을 하고 사는 것 같은 세상에서 살고 싶다. 그때 논술 선생이 ‘우리 학교에서 인하대 모의논술 전체1등이 나왔다’ 떠들고 다니던 게 그렇게 부끄러웠던 이유에 대해, 나조차도 이제야 좀 생각이 드는 마당이다. 갈 길이 멀고 밤은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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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해명의 필요성
    2017.09.25 10:36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가장 시급한 것은 여성혐오가 이 사회의 주류를 이루는 것을 막아야 할 것이고, 동시에 여성억압 역시 해결해야하는면이 있지만, 이를 개인적인 선호로 전가하는 면이 있어 굉장히 풀기 어려운 면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님이 언어설정을 적절히 할것을 지적한 취지에 대해 적극 공감합니다.

    다만, 님께서는 장동민을 여혐의 대표주자로 생각하고 계신듯 합니다. 이에 대해 저는 생각을 달리합니다. 저는 장동민이 여혐과 관하여 논란이 된 내용 중에 상당수가 오해받은 것임을 알고 있고, 논리적인 증거도 가지고 있습니다. 혹시 님께서 궁금하시다면 추가로 답변해 드릴 수 있습니다.(그러나 제가 알고 있는 증거들이 장동민의 모든 여혐논란을 설명하지는 못할가능성도 항상 염두해두고 있습니다. 따라서 님이 제 의견을 지적하신다면, 열린 마음으로 수용하겠습니다.)

    메일: wonhuijeong97@gmail.com
    • 2017.09.29 19:47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안녕하세요. 답변 달아주셔서 감사드리고요. 이 글이 장동민을 여러 차례 언급하고는 있습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제가 별도로 장동민의 개별 사례에 대한 해명을 여쭈어보아야 할 이유가 되는지 어떤지는 대단히 헷갈립니다.

      1. 사실관계를 바로 댓글로 적어주시면, 제가 읽어보고, 만약 그 때문에 뭔가 부끄러워진다면 글을 수정할 수도 있겠죠. 이메일로 여쭤봐야 될 이유가 있는지 모르겠네요. 혹시라도 귀하께서 관계자이시거나 본인이시거나 하여 "장동민에 얽힌 오해의 사실관계"를 이 글이 해명해야 한다고 보신다면, 이 글 끝에 원하시는 내용을 전부 첨부해 드릴 테니 이메일로 보내주세요. yuptogun@gmail.com
      2. 설령 그렇게 해서 장동민이라는 1인에 대한 "오해"가 해소된다고 해도, 글 전체의 포인트는 물론, 장동민의 "설치고 떠들고 생각하고" 발언에 대한 견해가 번복될 일은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장동민은 대표 여성혐오자 따위가 아니라, 다만 가장 선명하고 알기 쉬운 여성혐오의 결과이며, 여성혐오에 얽힌 인과관계를 추정하게 하는 단서라고 생각합니다. 이 글에서 장동민을 주요 예시로 호출하는 이유는 거기에 있습니다.
      3. 내친김에 한 말씀만 더 드리자면, 장동민이 받고 있다는 그 "오해"조차도 냉정히 따져서는 만연한 여성혐오의 작동 원리로서 복무하고 있습니다. 가해자 남성들이, 작위적으로든 부작위적으로든,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굳이 하고, 받지 말아야 할 오해를 굳이 받음으로써, 여성을 억압하고 있다는 것이죠. 왜냐하면, 이 사회에서 남자들은 그래도 되는 위치에 있으며, 그 사실에 눈감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외 기타 문의사항은 언제든지 답글 주세요. 감사합니다.

척수반사

2016.04.04 14:05

1.


일로 만났다가 이래저래 안면을 튼 친구가 그 일을 끝내고 본격적으로 프로페셔널 프리랜서가 되어 다른 일들을 받아서 하더니, 문득 블로그에 이런 글을 올렸더라.

중복기고한 글들과 글이 모자라 실리지 않게 된 것들까지 포함하면 족히 스물 다섯 개 쯤은 되는 것 같다. 그런데 도통 쓸모 있는 글을 써내지 못하고 있다. 크게 사랑스러운 글은 없었던 것 같다. 오랜 기간 생각하고, 오랜 기간 고민하고, 나름 정제해 내놓은 글들은 읽히지 않거나, 쉽게 무시당한다. (출처)


삶이 피폐하고 워낙 바빠 치이다 보니 자기 삶으로 시작해서 자기 애정을 잘 담아 멋지게 내놓는 글이 쉽게 나오지 않고, “시류에 밀려 큰 고민 없이 금방 금방 써내려가게 된 글들이 '더 많이 팔린다'는 사실”에 마음이 아프다는 거다.



2.


이 친구 심정 나도 공감하는 바이다. 그런데 음, 다만 나는 생각이 좀 다르다. 적어도 프로라고 한다면, 그렇게 큰 고민 없이 떠밀리듯 이어져서 쓰게 되는 글이 잘 나와야 하고, 그걸 부끄러워하거나 이상하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 그걸 자연스럽게 할 수 있어야 하고, 그것 역시 자기 작업 방식의 일부가 돼야 한다. 내가 요즘 기회만 되면 외치는 ‘척수반사’ 이야기다.


나도 절실하게 느끼는 바다. 매일 적당히 쳐야 할 드립이 있고 충분히 채워야 할 지면이 있다. 달성해야 하는 일정량의 생산성과 내놓아야 하는 최소한의 크리에이티브 기준선이 주어져 있다. 요즘 그걸 어떻게 하고 있느냐 하면, 나도 못 믿을 정도로 해내고 있다. 정말이지, 반사적으로 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3.


콧속이 가려우면 재채기를 한다. 허벅지에 뜨거운 기름이 튀면 벌떡 일어나게 된다. 이걸 오랜 시간 생각하고 고민해서 정제한 다음 해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는 이게 이런 몇 가지 특수한 경우에만 해당되는 과학 상식 정도인 줄 알았다. 그래서 척수반사라는 개념을 잊고 살았다.


그런데 요즘 들어 사무실에 앉아 듀얼모니터를 바라보며 소제목을 짓고 변수명을 정하고 회의록을 작성하고 각종 자잘한 일들을 하다가 농담을 치다 보면, 내 뇌가 문득 놀라는 일이 왕왕 있다. 손발이 먼저 어떤 일에 대해 반사적으로 조치를 해 놓은 것을, 뇌가 제정신이 들어서 살펴보고 외치는 거다. ‘야 너 미쳤어?’ 근데 또 결과물을 볼작시면 그리 썩 못나지 않아서, 이성과 뇌가 데꿀멍을 먹기를 반복하고 있다. (최근 점점 심해지고 있다.)



4.


예컨대 빠른년생들의 입장을 직설적으로 쓴 기사를 고칠 일이 있었다. 흩어진 문단들을 내용별로 모으고 손질하고 소제목을 달고… 하다가, 중간에 넣을 짤방이 모자라다는 생각을 머리가 했다. 그러고서 그 생각을 머리가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다음날 아침 내 손이랑 사무실 키보드가 막 뭔가를 찾아내고 있었다.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가 모두 빠른년생이라는 사실을.


당연히 뇌가 (그리고 이런 척수반사적 드립을 꿈에도 못 꾸었을 원문 작성자가) 기겁했다. “아니 다 좋은데 너무 과격하자나여;;;” 그 말을 듣고 뇌는 ‘어떡하지’ 생각하고 있는데, 손이 멋대로 위키백과 검색을 하고 있었다. 스티븐 호킹, 앤서니 기든스, 그레고리 맨큐.



5.


돌이켜 생각해 봐도 미친 것 같은 과정이다. 논리의 비약이 너무 많아서 삐약삐약 하고 싶은 심정이다. (봐라, 또 이런 식이다.)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정량적으로 통제가 안 된다는 거다. 생각을 하고 계산을 해야 견적이 나오고 ‘아 여기쯤에 뭐 넣으면 아귀가 맞는군’ 하는 “통빡”(“와꾸”라고도 한다)이 나오는데, 그게 아니라 원초적이랄지 무개념이랄지 하는 극단적인 직관에 그걸 맡겨버리는 짓이다. 무모한 도박에 불과하다.


그런데 요즘은 생각을 바꾸고 있다. 이건 무모한 갬블링이 아니며, 갬블이 되어서도 안 된다. 요컨대, 자기의 직관을 평소에 충분히 갈고닦아 뒀다가, 전문가적 수지타산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구멍이 있을 때 그 직관을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내가 ‘척수반사’라고 부르고 있는 이 짓도 어떻게 잘 살려 볼 문제일 따름인 것이다.



6.


항상 홈런을 치는 타자는 없다. 항상 탐험대로부터 탈출하는 타잔은 없듯이. (음 이쯤되면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 사실 사람인 이상 항상 best output이 나와서도 안 된다. 모름지기 개연성(verisimilitude)이란 자연분포를 따르는 묘한 비율의 예외와 부족분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이기 때문에 뇌의 사용에 한계가 있어서, 항상 베스트를 찍을 수도 없는 게 사실이다.


그런데 프로들에게는 항상 the best output 내지는 the second best one이 요구된다. 항상 자기가 맡은 업무 분야에서 최고를 내놓지는 못해도 일정 수준 이상의 훌륭함은 갖추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 업무분야에 대한 두뇌 사고 이외의 매커니즘, 이를테면 척수반사적인 직관적 드립 같은 것이 필요해진다. 중급 이상의 프로페셔널이 되려면, 이제는 이걸 할 줄 알아야 한다.



7.


일상툰은 사실 굉장히 심도 깊은 분야라고 한다. 누구나 자기 삶에 재미있던 일 대여섯 가지는 있게 마련이므로 일단 덤벼는 보는데, 어떤 벽에 다다르면 다들 나가떨어진다고. 그 벽은 다름아닌 장기연재의 벽이다. 이제 털어먹을 자기 삶이 없다는 거지.


글쎄, 과연 이 변명이, 생활툰 분야에만 한정한다고 했을 때, 조석이나 스노우캣, 난다, 마조앤새디(심지어 그 이전에 마린블루스도 했던)의 정철연 등등 앞에서도 통할까? 안 통할 거다. 이 사람들이 매주 어느 요일을 채우는 방식은 절대 자기 일상을 열심히 궁리해서 머리로 그리는 게 아니라, 누구는 발로, 누구는 망상으로, 누구는 곁다리 이야기로, 하여튼 각자의 전략으로 돌파해서 머리 바깥의 것으로 그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8.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믿는 바다. 평생의 공을 들여서 딱 하나의 좋은 것을 내놓는 일, 그까짓 것쯤은 사실 디씨인사이드 아무 갤러리에서나 한 명씩은 다 하는 일이다. 그러니까 힛갤로 가겠지. 하지만 그렇게 자기 안에 과포화돼 있어서 못견디고 ‘토해지는’ 것이 있는가 하면, 자기 안에 있거나 없거나 재료를 받아다 처리 작업을 해서 완성품으로 ‘제조되는’ 것도 있다.


둘은 완전히 취급 방식이 다르다. 이 사실에 대한 자각과 각오가 얼마나 있느냐, 그게 프로와 아마추어를 가르는 한 가지 척도일 것이다. 생활툰 도전자들이 자기 생활을 몇번 토해내다가 연재를 중단하는 것과, <마음의 소리>가 연재 1000회를 넘는 것은 아주 다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9.


뭐 이러니저러니 해도 힘든 일인 건 사실이다. 말이 25편이지, 하루에 두 꼭지 써도 보름이 넘게 걸리는 분량인 건 사실이니. 그래서 응원해 주고 싶은 마음에 좀 길게 설명조(아마 실제로는 훈계조)로 써 봤다. 어떤 시점이 되면 프로들은 척수반사로 일을 하게 된다. 그걸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을 만큼 자기의 직관과 ‘쪼’ 그리고 인성을 평소에 갈고닦아 놨다가 여차하면 휘두를 수 있으면, 그게 진짜 프로가 아닐까 싶다. 중국사에 남은 어느 시인은 술에 절어 떡이 되어서도 궁중 예악에 필요한 가사를 지어냈다지 않던가.


그러니, 그 친구나 나나 좀 파이팅하자는 얘길 좀 하고 싶다. 이런 고민을 하고 있다는 거 자체가 이제 아마추어 시절은 끝났다는 얘기니까. 다만, 이제 업으로, 커리어로, 포트폴리오로 하는 일이라면 지금부터는 조건이 갖춰져야 뭘 해내는 단계에서 벗어나야 하는 것 같다. 무조건반사에 가까운 창작, 척수반사 같은 크리에이티브, 해 놓고 나서 다시 봤을 때 자기 머리와 보스와 클라이언트가 함께 놀라는 그런 지경, 자기가 어느 정도쯤인지를 아는 그것을 추구해야 되는 것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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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Make Nothing Happen

2016.03.02 22:47




이 나라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아무 것도, 어떤 해프닝도 일어나지 않는다.


가장 진부한 수준의 유쾌함과 흥미도를 갖춘 드라마가 최신 특별기획 드라마랍시고 찾아온다. 어디서 너무나 많이 본 억양과 자료화면의 뉴스가 매일 새 뉴스라고 보도된다. 또 한국인 연구진이 세계 최초의 중요한 발견을 했다. 또 외국 새댁이 시월드에 적응하느라 애를 먹는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50년 전에도 화제였던 화제의 맛집이 다시 화제가 된다. 다시 강남이 핫하다. 다시 복고가 유행이다. 다시 야당에 희망이 보인다. 이번에야말로 삼성이 애플을 제칠지도 모른다. 이번에야말로 청년들에게서 희망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새 웹툰, 새 페이스북 페이지, 새 애플리케이션, 새 신도시, 새 정책, 새 패드립, 새 옷, 새롭게 급부상하는 트렌드, 새 쇼핑몰, 새 이슈, 새 프로모션, 새 프로그램.


뭔가가 정말 새롭다면, 우리는 그게 당최 뭔지 모르겠다며 어리둥절해하며 생소해할 텐데, 우리는 도대체 그래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정말로 새로운 것을 만나 본 적이 없으므로, 어떤 “새”것 앞에서도 어리둥절해하지 않고, 생소해하지 않았다. 익숙하게, 너무도 익숙하게 새것들을 집어삼켜 소멸하고 ‘어 좋다’ 트림하고 드러누워 왔다. 개그콘서트의 새 코너는 익숙하게 비웃을 만한 것이고, tvN의 새 예능은 익숙하게 경탄할 만한 것이며, 디즈니 픽사의 새 영화는 익숙하게 재미있으면서 유익하고, 백종원의 새 밥집은 익숙하게 맛있으면서 익숙한 정도의 거리낌을 갖고 있고, 새 어그로꾼은 익숙하게 욕을 먹으며, 새 정치인의 새 사상은 익숙하게 재단된다. 이역만리 외국에서 왔다는 (자국에서는 분명히 엘리트일) 사람들은 “아버지의 할아버지는 뭐라고 부르는지 알아요?” 따위 질문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져 있으며, 버라이어티 예능 쇼의 새 게스트는 너무나 익숙한 통과의례를 너무나 뻔하게 기대되는 수순대로 따라 준다.


이 나라는 통째로 촌구석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까지 아는 것만을 계속 알고 싶어하고, 모르는 것들을 기어코 모르고 싶어하며, 생소함 그 자체를 즐기거나 누리지 않으려고 용을 쓸 턱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어떤 도시 어떤 시장 어떤 가게에 대해서든 ‘OO국의 자갈치시장’ 따위로밖에 설명하지 못하고, 어떤 풍습 어떤 생활 어떤 사고방식에 대해서든 ‘그럼 ~할 때는 ~겠네요?’ 따위의 무례한 어림짐작에 기어코 “YES (민망)(민망)”를 받아내며, 어떤 문화 어떤 정치 어떤 경제에 대해서도 굳이 외국인 억양이 팍팍 묻어나는 더빙을 덧씌워 완전한 남의 나라 코쟁이 외계인들의 이야기로 뭉개 버린다. 생소한 것을 즐길 줄 모르고 받아들일 줄 모르고 생소한 대로 누릴 줄 모르는 두메산골 촌놈들이, 그저 이해하고 있는 유머와 웃음과 비판과 사고방식 속에서 끝없이 자기소멸 중이다. “마! 쓰까무라!”가 그렇게 웃기고, 또 웃기기만 한 데는 이런 이유가 있다. 사실은 처음부터 끝까지 불쾌해야 할 이 스테레오타입 덩어리 유머는, 그러나 이 깡통 촌구석 반도에서 가장 대단한 해학이고 재치이다.




그래서 이 나라에서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완전히 생소한 어떤 것이 곧 죽어도 나오질 않는, 촌뜨기 동이족의 나라이다.


“레퍼런스”가 없으면 아무 기획도 읽거나 쓰지 못하는, 누가 드립 하나 만들면 기어코 다 닳아빠지고 문드러져서 일간지 신문지면 부제에 찍혀 나올 때까지 우려먹어야 직성이 풀리는, 한 번도 결코 자기 눈을 감고 자기 머릿속에 불을 켜서 자기 환등기를 돌려 본 적이 없는, 그저 미국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만 쳐다보다가 값싸고 맛있어 보이는 것 위주로 도떼기 수입해오기 바쁜, 번역이 없으면 제아무리 유익한 콘텐츠라도 거들떠볼 생각을 하지 않는, 누가 꼭 옆에서 “이것은 마치~” 운운 설명해줘야만 뭔가가 아름답다는 생각을 해볼 수 있는, 그래서 자기의 사고 범주에 포섭되지 않는 객체와 대상 앞에서 애처럼 화내며 칭얼대기 바쁜, “김정일 카섹스” 같은 데카당트하고 무의미한 농담 앞에서 질색 팔색을 하며 압수수색 영장을 기어코 인쇄해야만 하는, 스스로 어떤 것도 탐색해본 적 없지만 어떤 뉴스에든 완벽하게 반응할 만반의 준비를 갖춘, 그런 사람들의 나라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하여, 공공연한 공작이 일어나고 있다. 그리하여, 이 나라는 또한 촌뜨기 자영업자들의 나라이다.


뭐야, 무슨 생태보호구역 지정이라고? 그럼 우리 집값 떨어지는 거 아냐? 우버? 우리 택시하는 50대 가부장들 다 죽으라는 거야? 손님들이 TV조선 틀지 말래? 그럼 신문은 어디 좌파 신문 아무거나 하나 구독해두면 되는 거 아냐? 아 요즘 젊은이들은 저런 그림 쓰는 게 유행이야? 그럼 우리도 간판에 저거 넣을까? 이번에 만드는 게임은 좀 애니팡같이 못 해? 보니까 손님들이 무슨 성서 구절 써 있는 거 걸어놓으면 좋아하더라고? 청년배당 저거 땜에 애들이 야간근무 안 하겠다고 다 나가는데 지금 제정신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우리도 좀 한국민속촌 같은 거 못 하나? 아니 서울시장은 진짜 미친놈인 게, 메르스 그거 뭐 죽으면 얼마나 죽는다고 하던 단체행사를 다 취소를 시켜 버렸어? 우리 같은 사람들은 뭐 먹고 살라고?


그럼에도 어떤 사람들은 태생적으로, 또는 훈련되어서, 또는 배워서, 또는 바다 밖에서 보고 익힌 바가 있어서, 다소나마 생소한 어떤 것을 새롭게 내놓으려고 갖은 애를 쓰고 있다.


굳이 부른다면 비정치적 진보주의자 내지 자유주의자라고 할 수 있는가보다. 아니지. 그런 분류는 옳지 않다. 이 나라는 무시무시한 촌구석이기에, 이곳의 모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게 하는 사람들, 뭔가 완전히 다르고 생소한 어떤 것을 일으키는 사람들, 아니면 그 중간 어딘가에 속한다. 반드시 그렇다. 이 스펙트럼은 흔히 부르는 좌우 진영, 보수-진보의 구도 안에 있지 않다. 기어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게 하려고 ‘익숙하고 안락한 진보’를 꾀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그래도 뭔가가 일어나는 것을 보고 싶어서 ‘낯설고 이론적인 보수’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있다. 진보=좌파=민주당=홍어 운운하는 1차원적 도식화는 그야말로 벌레 정도의 사회지능에 머무르는 촌놈들에게나 가능한 것이고, 세상은 그 이상으로 얽혀 있지만, 일단 이 나라의 인습적 고착성과 배타적 폐쇄성을 생각할 때, 유일한 진보는 오직 더 많은 낯선 것들에 있으며, 유일한 수구보수는 낯선 것들의 말살이다. 그래서 이 나라는 좌도 우도 없고, 그저 자영업자적 수구보수의 이데올로기 하나만이 수십 년에 걸쳐 유구히 이어져 오는 중이다.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어떤 급진(radicalness)도 용납되지 않아 왔다.

그게 사태였다.


당신이 이 고리타분한 촌구석을 내 조국 자랑스러운 KOREA로만 주워섬길 양이 아니라면, 당신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종교적 사상 성향 따위는 정말 아무래도 좋으니, 하나만 요청한다.


새롭자.

급진하자.

지나치게 새롭자.

듣도 보도 못한 잡것이 되자.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무엇을 일으키자.

이 나라의 촌놈들이 할 말을 찾지 못할 사태를 만들자.

다들 이게 뭐지, 저게 뭐냐, 어버버 어버버 하고 있을 동안에, 잽싸게, 한 마디를 외치고 사라지자.


당신도 그렇게 해 줄 수 있다면,

이 나라는 기어코 촌구석보다는 좀더 나은,

그래도 뭔가는 실제로 발생하고 벌어지고 일어나는

조금은 덜 부끄러운 배달의 민족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Shock and awe losers, THIS IS THE SITU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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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 그랬구나 많이 힘들었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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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TV조선쨩의 상태가 조금 이상한 것 같다만?













크 백만년만에 방송국 가시내
집에 와봤더니 TV조선이 켜져있길래 잠깐봤다 15분 동안 저 병크가 실제로 다 터지는걸 보는데 뭔가 알수없는 방송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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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어진 임무:

10팀의 아티스트가 만든 10개의 전시물에 대해 국문/영문 소개문, 사진, 아티스트 소개 등을 보여주는 그럴듯한 모바일 브로셔를 만들어라.


실제 돌아가는 결과물: upcyclingtree.dothome.co.kr


전체 소스:

github.com/yuptogun/Upcycling-Tree-Mobile-Flyer




Day 1

  • 백엔드가 의외로 고민거리였다. 아무 생각없이 정적 페이지 10*n개를 만들면 머리는 편하겠지만 손이 고생할 거다. 10개의 팀과 10개의 작업물과 각 작업물에 들어가는 n개의 사진을 그렇게 매뉴얼하게 관리하다 보면 분명 어딘가 하나쯤 꼬일 테니까.
  • 요컨대 데이터에 최소한의 체계성을 부여해야 한다. 그렇다고 DB 스키마 짜고 CI 같은 본격적인 프레임워크를 깔고 싶지도 않다. 너무 일이 된다. phpSlim 같은 간단한 라이브러리는 아직 건드려도 못 봤고... 음 어떡한다?
  • 일단 MVC 자체는 매뉴얼하게 가기로 결정하고 array.php를 작성. 내가 알아보고 관리할 수 있는 선에서 가장 원초적인 정적 데이터배열을 만든다. 이걸 include한 다음 get파라미터에 담긴 변수 따라서 원소 출력시키지 뭐. 어차피 모바일로 잠깐 보고 끌 페이지이기 때문에 URL prettify는 안 해도 된다고 판단.
  • 프론트엔드가 그 다음 골칫거리였다. 아무 생각없이 Bootstrap이나 PureCSS를 쓰면 손은 편하겠지만 눈이 고생할 거다. 애초에 모바일 브로셔로서 갖춰야 할 최소한의 미적 감각을 담보할 수가 없을 것이다. 뭐 괜찮은 프론트엔드 프레임워크 없나? 막 뒤져봄.
  • 예전에 한번 보고 지나갔던 Framework 7이라는 놈을 다시 찾아냄. 안드로이드/iOS 앱개발자들이 웹개발도 비슷한 느낌으로 해낼 수 있도록 만든 (것으로 생각되는) 소스이다. 지원하는 컴포넌트를 살펴보니 이건뭐 거의 아이폰 네이티브 앱 와꾸가 나오는 게 구상 및 설계상의 문제가 일거에 해결됨. CDN이 있나? 살펴보니 있었다! 오케이 너로 정했다.
  • index.php를 짜면서 CSS 클래스와 컴포넌트, js에 익숙해지는 데 하루의 나머지를 다 보냄. 아직은 전체 틀만 잡고 있었으므로 근본 원리는 파악하지 못한 (몰라도 괜찮았던) 단계. 이때는 $data[i][9](index에서 띄울 섬네일 url) 같은 것이 없었다.
  • 메뉴 구현은 다음과 같다. navbar사이드패널 여는 버튼을 넣고, 그 안에 사이드패널 닫는 버튼을 하나 만들어 넣기. 별문제없이 작동.
  • 이미지 호스팅은 비공개 텀블러를 사용하기로 함. 되는 거 확인하고 퇴근.



Day 2

  • 출근하자마자 원래 index.php에 통째로 들어 있던 header.php 부분과 footer.php 부분을 분리. 잘 작동하는 것 확인. (개인적으로 뷰를 아예 새로 작성할 때 !doctype html로 시작해서 전체를 다 짜둔 다음 header, footer 등으로 오려내는 습관이 있다. 좋은 습관이 아니다.)
  • 최소한의 그리드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어 pureCSS의 base.css만 따로 로딩함.
  • 사이드패널에 뿌려놓은 메뉴 링크들을 눌렀는데, 404나 에러페이지로 넘어가지 않고 그냥 깜박이고 마는 것이 너무 신기했다. 이개모지? 나중에 쓰겠지만, 프레임워크7의 핵심 작동 원리인 "AJAX 프리로딩" 덕분에 가능한 것이었음.
  • framework 7의 기본 CSS는 사이드패널에 리스트로 띄운 메뉴 텍스트를 죄다 자동으로 ellipsis로 줄여버리더라. 작품들의 이름이 좀 길고, 모바일에서 그걸 다 볼 필요가 있기 때문에, 걍 CSS를 뜯어고쳐 다 띄우게 만들어둠.
  • 이제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detail.php를 작성하기 시작. 원래 구상은 이랬다.
    - 적당한 GET파라미터가 지정이 안돼있으면 홈 주소로 리디렉션시킨다. 최소한의 url 에러처리.
    - tree 파라미터가 지정돼 있을 경우 "작품소개" 탭을 활성화시켜 작품 소개를 바로 띄운다.
    - team 파라미터가 지정돼 있을 경우 "작가소개" 탭을 활성화시켜 작가 소개를 바로 띄운다.
    - 작품소개 탭 페이지에서는 "한국어"를 누르면 국문 설명이, "English"를 누르면 영문 설명이 나오게 한다.
    - 사진 쪽을 누르면 갤러리를 띄운다. 갤러리에 들어갈 사진들은 array.php에서 하위배열 하나 넣어서 foreach로 뿌리기로.
    뭐 더 설명할 것 없이 무쟈게 기초적인(≒무식한) 네비게이션이다.
  • 작품소개-사진-작가소개는 탭바를 이용하기로 했고, 한국어/English 전환은 을 쓰기로 했다. (이름은 비슷한데 영 달라서 되게 헷갈림.) 사진 갤러리는 포토브라우저로 처리.
  • 갤러리에 넣을 사진은 곧 받기로 했었으므로 일단 lorempixel을 채워넣음. "Close"를 "닫기"로 고칠 순 없을까? 생각했지만 일단 넘어감. 작가 소개문은 따로 제공받지 않았었으므로 일일이 웹사이트나 SNS를 찾아가서 소개문 및 로고를 찾아 array.php를 보강함. 페이지별로 멀쩡하게 뜨는 것 확인.
  • 쫙쫙 잘 뜨길래 야 신난다! 하고 이것저것 눌러보다가… 버그 발견. 사이드메뉴로 detail 뷰에 진입했다가 다른 detail 뷰를 보려고 하면 탭바가 동작을 하지 않는다. 그냥 흰 화면이 뜨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음. 읭??? 이거 뭐냐??? 모바일 사용자는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다 눌러보는 법인지라, 이건 무시할 수 없는 문제상황이라는 판단이 서서 패닉에 걸림.
  • 세 시간 동안 스택오버플로를 ㅈ나게 뒤지고 Framework 7 공식 문서를 눈 빠지게 읽음. "해결법"은 못찾음. 설마 싶은 것들은 한두 개 눈에 띄었지만, 이리저리 코드를 고치고 뒤집다 보니 이젠 뭐가 뭔지 모르겠다 싶어서 그만두기로 하고 퇴근. (진짜 뇌도 스택으로 돌아간다면 이런 게 오버플로일까 싶은 걸 경험했다. undo redo를 아무리 눌러봐도 기억이 돌아오질 않았다…)




Day 3

  • 출근해서 서브라임 텍스트를 딱 켰는데 생각해 보니 해결된 게 아무것도 없었다. 최악의 경우 이 조치를 단행하면 되겠지… 라고 짐작하고 있던 조치를 단행했다. 모든 링크에 .external 클래스를 부여한 것. 해놓고서 다시 열어보니, 프레임워크7 특유의 스무스한 페이지 움직임(써보면 안다. 진짜 앱 사용하는 것처럼 움직인다)은 없어졌는데 내용 출력 자체는 멀쩡하게 잘 되었다. 허탈.
  • 차차 원인을 이해할 수 있었다. 프레임워크7은 기본적으로 모바일앱이 갖는 페이지 개념 아래 개발돼 있어서, 하나의 "페이지(URL 엔드포인트)"가 경우에 따라서 여러 데이터를 가진다는 개념을 이해하지 못함. 그런데 나는 index 아래의 모든 뷰가 detail.php?team=foo 아니면 detail.php?tree=bar 꼴이었던 것이다.
  • JS 입장에서는 할 말을 잃고 동작을 중단할 수밖에 없다. 아까 detail 페이지 안에 들어 있는 #tab_tree 하나를 active 걸었는데, (사용자 입장에서는 별개의) detail 페이지 안에 있는 #tab_tree에 active를 또 걸라니 뭔 소리냐 싶겠지.
  • 이런 일이 있을까봐, 그리고 Framework 7의 기술적 특성상 준비돼 있던 것이 a태그에 붙일 수있는 .external 클래스였다. 프레임워크7은 페이지를 쫙 읽어본 다음 href 붙은 모든 url을 미리 ajax로 읽어놓는다. 그 다음 스마트하게 동작한다. 예컨대 A라는 링크를 요청했을 때 서버가 404를 외쳤다면, JS는 A를 기억해 놨다가, 사용자가 A를 누를 때 아무 일도 안 일어나게 만든다. 이게 그야말로 모든 링크에 대해 작동할 경우 외부 사이트 DOM까지 읽게 되면 보통 큰일이 아니게 되므로, 구분자를 제공하는 것.
  • 이 구분자의 기능은 DOM7 편입을 안 시키는 것. 그러면 ajax 프리로딩 없이 그냥 매번 요청된 URL을 새롭게 요청하게 된다. 당연히 "문제"는 해결된다. 하지만 더 좋은 사용(스무스한 이동 등 진정한 framework 7 사용경험 구현)으로서의 진정한 해결은 안된 상태. (미숙…)
  • 그리고 어제의 패닉 리서치 과정에서 한 가지 더 알게 된 사실은, 탭바는 DOM7 전체에서 항상 나오는 메뉴로서 쓰는 것이 best practice라는 것. 생각해 보면 메인화면에 안 나오던 탭바가 세부사항 페이지에서는 나오는 일은 거의 없다. 이것도 아마 스크립트 충돌에 일조한 사항일 것.
  • 전날 뒤집어엎으면서 엉망진창 만들어놓은 코드를 재정리. 공식 문서에 따르면 Framework 7의 전형적인 페이지는 다음 구조를 따른다.
    body
    - panel (상단 전체메뉴. 싫으면 넣지마슈~)
    - views (상단을 뺀 나머지 화면 전체 wrapper. 전체DOM에서 유일)
    -- view .view-main (기본화면, 전체DOM에서 유일)
    --- navbar
    --- pages
    ---- page (data-page=home)
    ----- page-content
    ------ content-block
    --- toolbar
    ---- tabbar 등등
    -- view .foobar (만약 이 웹페이지가 아이패드 메모앱처럼 split된 화면을 가져야 할 경우 추가해서 사용함)
  • 그렇게 허탈하게 버그를 때려잡고 나니 힘이 빠져서, index.php의 대표이미지들 위에 그라데이션을 뿌린다든가 하는 세부적인 스타일링을 트윅하며 기운을 되찾음.
  • 2일째에 정신없이 문서 읽고 깃헙 레포 뒤지다가 문득 발견한 것이 있어 "음 그럼 해볼까?" 하고 footer.php에 넣어둔 포토뷰어 JS 변수를 건드려봄. 'Close'를 '닫기'로 고치는 게 생각보다 너무 간단하게 되었다. photos 배열 넣는 배열 자리에 원하는 변수명의 값을 새로 지정해준 것만으로 적용이 됨. (이걸 간단한 일로 만들어준 개발자가 대단한 거다…)
  • 최종 점검 마치고, 아이패드/아이폰 뷰 체크한 다음 최종본으로 발행.




교훈

  • Framework 7은 앱 개발을 하는 기분으로 모바일웹을 개발하는 도구이다. 단순 컴포넌트 CSS를 묶어서 이쁘게 만들어주는 정도가 아니라, 각 개별 페이지들이 웹앱으로 작동하도록 AJAX로 처리한다.
  • 따라서 Framework 7을 쓰려면 get 파라미터 대신 URL 라우팅과 data-page에 신경을 쓸 것이며, 막무가내로 아무데나 컴포넌트를 끌어다 쓰면 안 된다(요소들 위치 정해져 있는 정도가 꽤 까다롭다). 가급적 문서를 처음부터 천천히 읽고 제대로 개념을 이해한 다음 쓰기. 나처럼 실전 case위주로 막덤비면 공부도 안되고 효율도 떨어진다.
  • 모바일 브로셔는 무료호스팅으로도 유지 가능한 트래픽을 자랑한다. (…) 여러분 올해가 가기 전에 코엑스 B홀 앞에 가 보세요!


Posted by 엽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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