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규현의 현대미술강좌 중 가장 인상깊었던 대목에 대한 tribute로서 이 시리즈의 1번을 이걸로 선택했다. (그는 바로그찌라시의 양태가 다분히 현대미술에 가깝다고 골백번 강조했다.) 사실 위주에 각색만 더해서 쓰는 종류의 글이기 때문에 좀더 문학적인 표현과 감성팔이를 하지는 못했지만, 이 철판도 한 장이었고 찌라시도 한 장이었다는 사실을 좀더 부각하고 싶었다. 조사하다가 알게 된 건데 내후성강판이 생각보다 여러 장소에서 사용되더라. 아 그것들이 이거였구나 싶었다. 규자의 다음 강좌를 어서 듣고 싶다. 후후
금감원 카페 알바를 이틀만에 짤리고 규장각 가서 작업이나 하려고 버스 타고 신촌 가다가 떠올랐던 소재를, 골치 썩지 말고 그냥 막 화내면서 쓰자는 느낌으로 간단히 옮겼다. 뭘 써놓고 나서 그 후속 에피소드가 모락모락 생각나는 건 오랜만에 느끼는 즐거운 기분이지만, 일단 추세를 지켜볼 생각. 시드노벨은, 아무리 전체수준이 낮네 로리만 파네 왜색이 짙네 해도, 여전히 가장 한국적으로 라노베를 해석하고 있는 사회이다. 참고로 갑자기 혜화동9시반이 생각나서 용준이란 이름을 따왔다. ㅋ
자료조사를 하면서 예상보다 더 많이 쏟아져나오는 뒷이야기들에 놀랐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상당한 격려가 되었다. William Crotch, 오르간에 재능을 보였던 한 어린이가 전공자가 되어 어느 날 교수들이 시켜서 작곡한 한 장의 악보가 빅 벤이 되기까지, 그리고 그는 그의 음악이 캠브릿지 차임스에 사용되는 것 정도만 보다가 영면하였을 것이다. Epics에 해당하는 것으로 종결자라는 번역어를 생각해 봤는데 이건 좀더 생각해 보자. 여튼 참으로 epic이라 할 만한 얘깃거리였다.
백만년만에 로그인해서 글을 써 봅니다. 잉여는 아니지만... 이런 썰을 풀 곳이 여기밖에 없어요.
"일상물", 그것은 생산 및 소비가 과열 팽창해 있는 일본 서사 산업에서 등장한 장르입니다. 시청자의 경험, 미디어가 만들어낸 stereotypes 혹은 그에 준하는, 별다른 엄청난 사건의 기승전결이 없는, 소소한 신변잡기적 일화와 그 주인공으로서 각자의 개성이 잘 설계된 등장인물들의 일상을 즐기는 장르이지요. 이 장르의 대중화가 <아즈망가 대왕>으로부터 시작했다고 해도 큰 반론은 없을 겁니다. <미나미가>라는 명작, <러키☆스타>라는 시대의 총아, <A채널>이라는 극단주의 작품에서 <일상>이라는 제목의 변칙이 나오기까지 오랜 세월 주로 미소녀물의 대표 장르 중 하나로 일본 시장에서 정착해 왔고, 그 외의 외국에서는 거의 발견되지 않는 장르인 것 같습니다. ('아침드라마'는 일상물이 되지 못하지요. 기승전결이 있으니까요.)
그런데 최근 본인은 이런 견해를 갖게 되었습니다.
"일상물이란 '일상'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비일상이 배제된 상태'를 다루는 것뿐이다."
그것은 일본식 일상물 특유의 클리셰적인 전개 그 자체와, 거기에 일체의 잡음 내지 변수가 배제된다는 것이, 사실은 불가능하지 않은가 하는 의구에서 왔습니다. 1화는 신학기, 2화에서 5화까지 대충 캐릭터들의 특징을 보여주는 이야기, 6화에서 여름방학과 불꽃놀이와 바다, 7화쯤에서 새 캐릭터, 8화에서 마지막회 직전까지 다시 2학기와 일상과 '문화제', 마지막회에서 뭔가 결말을 내야 하는 이야기 및 대단원으로 이어지는 이 클리셰적인 프로그램 구성, 바로 이것이 어딘가 이상하다는 것입니다.
사실 그것은 등장인물 누구도 어느 순간에도 경제적 위기를 겪지 않고, 부모님 등의 어른이 시종일관 일체 관여하지 않으며, 아파 보아야 감기에 걸리는 정도이고, 뉴스라 할 만한 사건이 전혀 일어나지 않는 세계 속의 이야기란 말이지요. 물론 이런 '있을 법한 것이 없다'라는 반론은 매우 값싸게 제기되고 간단하게 반박되는 얘기일 겁니다. 그러나 사실 "일상물"의 일상과 우리의 '진짜 일상'이 같을 수 없는 결정적인 다른 이유가 따로 있는데, 그것은 일상물에 최소한의 세월(歲月)의 개념이 없다는 것입니다.
세월(times)이란 무엇인가? 세월이란 연쇄를 일으키며 지나가는 시간을 뜻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 인간 이성의 본능적 작용에 의한연관 찾기에 기초합니다. 우리가 실제로 살아가는 일상은, 반복이 되는 듯하면서도 최소한의 인과 혹은 전후가 인지되도록 재구성되고, 그와 동시에, 어떤 일관된 방향이 있는 'season'을 보내면서도 이런저런 돌발 이벤트가 발생하는 그런 것이란 말입니다.
당장 여러분이나 여러분 친구의 트위터(혹은 페이스북) 타임라인을 가만히, 월 단위로 보시기 바랍니다. 그 누구의 일상도 그저 지리멸렬하게 쳇바퀴를 돌고 있지는 않으며, 그러나 또한 동시에 그 누구의 일상도 할리우드 추격전 영화처럼 일직선으로 곧장 나아가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바로 그 두 가지 패턴 사이의 미묘한 배율, 거기에 일상이 있습니다. 그것이 일상을 살면서 우리가 우리 스스로에게 질려 버리지 않을 수 있는 근본 이유이기도 합니다. 매일이 같지만 매일이 다른 것입니다. (본인이 지금 어떤 '당위'와 윤리를 말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을 새삼스럽게 말씀드리는 바입니다. 지금 여기서는 일상이란 개념에 대한 존재론/인식론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약하자면, 실제 일상 생활이란 '세월을 보내는 것'입니다.
'일상물'의 일상은 바로 이 세월 개념이 완벽하게 배제된, 그래서 클리셰적으로만 운용 및 각색되는 하나의 뼈대로만 남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5월 히나마츠리와 여름방학 유카타 불꽃놀이와 문화제와 크리스마스와 신년참배는 그토록 이물감이 느껴지는 작위적인 장면으로 느껴지는 것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 행사들 중 하나는 거르지 않겠는가 하는 따위의 무성의한 의심 이전에, 왜 그렇게 일련의 이벤트들을 치르는 것이 그토록 맥락 없이 당연하게 떡떡 주어지느냔 말입니다.
2화니까 친해지려고 도시락을 같이 먹고 3화니까 꽃놀이를 가고 4화니까 하복으로 갈아입는 식인데, 그 과정에서 주인공이 지난 회차의 심경 변화를 이어받는 것도 없고, 새로 설정이 추가되는 일도 극히 드물고, 그 모든 것 이전에 그저 날씨에 맞추어 자동 인형처럼 너무나 전형적으로 움직일 뿐이라는 것, 바로 그 점이 그 숱한 일상물들의 위화감의 정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럼 대체 바보가 아닌 이상 일본의 그 똑똑한 서사 산업 관계자들은 왜 이렇게 일상이 아닌 일상을 뻥튀기 기계 돌리듯이 계속 돌리고 있느냐? 그래야만 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비일상들, 일상에 일정 비율 섞여있음으로서 더욱 일상을 일상답게 하는 변칙적 사건들을 배제하는 것이, 캐릭터들의 특징과 만담과 매력과 모에 포인트를 어필하는 데 조금이라도 여력을 더 투입하는 최선의 선택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고 있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실제로 일상물 장르는 초창기에 분명 "일상의 느긋함" 그 자체를 즐길 수 있도록 되어 있어 치유계의 범주에 속했던 것이, 점차 쓸모 없는 노출, 패러디, 새 캐릭터로 밀어붙이기 따위로 점철된 "미소녀 캐릭터물" 범주에 속하고 있는 추세입니다. (<미나미가>가 전형적인 사례입니다. 일반적인 범주의 세자매로 버틸 수 없게 되자 일반적이지 않은 범주의 주변 인물을 마구잡이로 동원하여 이제는 일상이라 부를 수 없는 특별한 세계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두 가지 장르 중 하나가 분명하게 시장에서 승리한 이래 "어쨌든 '미소녀'가 뭔가를 하기만 하면 된다, 그게 무엇이든 상관없다"라는 사고가 공급자들 측에 들어온 모양입니다. 그리고 미소녀 캐릭터를 개발한 다음 그들을 출연시킬 곳으로서 가장 안전하게 세울 수 있는 무대가 바로 일상물이 구축해 놓은, "세월이 배제된 춘하추동"의 원형극장이었던 것이지요.
그리고 그 결과는, "어쨌든 미소녀들 중 한두 명만 인기를 얻고 나면 어떻게든 된다"라는 안일함이 우후죽순으로 양산한 질 떨어지는 일상물들인 것입니다. <학생회의 일존>, <에비텐> 따위가 여기에 속합니다. 차라리 줄거리라도 있었으면 욕이라도 덜 먹었을 것을, 오로지 개성 있는 캐릭터가 매회 바다다 합숙이다 도전과제를 해내는 따위의 이야기로 때우면 어쨌든 재미있지 않을까 하는, 지극히 무책임하게 만들어진 작품들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상물에 대한 재정립이 반드시 필요한데, 그것은 지금까지의 와전된 개념―"비일상이 철저하게 배제되는 목가적 가능세계"―이 아니라, 세월이 존재하고 캐릭터가 그 세월에 반응하는 식으로 굴러가는, 상황과 인물 성격과 세계관 설정에 더 구체적인 현실성이 부여된 채 그런 세상의 별다를 바 없이 매일 흥미진진하고 잔잔하게 파도치듯 일렁이는 삶의 향연으로 재정립되어야 할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모르시겠다면, 잘 읽으신 것입니다. 그렇게 쓸 수 없다면 애당초 일상물이 아닌 다른 장르나 소재나 기승전결을 구상하기 위해 '딴 데 가서 알아봐야' 할 것이고, 그렇게 쓸 수 있는 사람만 일상물을 써낼 때에야 일상물은 소기의 목적 내지 온전한 존재 양태를 달성할 것입니다.
우리의 일상이 픽션과 서사를 통해 구제받고 부각되어야 할 중요한 소재의 하나라는 데는 이견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일상에 엄연히 존재하는 세월의 개념이 "일상물의 일상"에는 없게 되었기에, 그 개념을 일상물에 넣든지 아니면 일상물 장르를 폐기하든지 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저야 관계자가 아니니 속사정은 모릅니다. 하지만 적어도 소비자로서 이 한 가지는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다지 모에하지도 않은 미소녀들이 그 밥에 그 나물로 따분하게 보내는 사계절로 구성된 13화 분량의 산업 쓰레기가, 다시 또 양산되어 재고로 쌓일 뿐입니다.
이미 영화나 책으로도 여러 번 다뤄졌었고 야구 팬들이라면 대충 다 알지만, 소재 자체가 워낙 파워풀하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풀 수 있었다. 이런 류의 글을 쓰려고 일부러 관련 영화를 다운받아 본 건 처음인 듯. 그거랑, 초반 도입의 hook이 약하다는 이전 버전에 대한 피드백을 인정하고 과감하게 갈아엎은 게 잘한일. 공유를 해 주신 분이 "눈물도 살짝 날 뻔했다"라고 코멘트해 준 걸 봤는데 눈물이 살짝 날 뻔했다. 수많은 잡지들의 막대한 텍스트들을 보고 기가 죽으려고 하는 이 시기에 큰 힘이 되었다.
이 괜찮은 소재를 잘 살리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좀더 흥미진진하게 각색해서 쓸 걸 그랬나 싶다. 소창영이란 사람은 이후 SBS의 <세상에 이런일이> 취재진이 수소문했을 때 찾을 수 없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센세이션하다는 것만은 사실이다. 글에서도 언뜻 비쳤지만, 우리나라의 생방송 사고 역사가 음모론으로 시작했다는 것은 적어도 내게는 뜻깊다.
'바로그페북 페친들이 라즈베리 파이에 관심을 가질까?'라고 지레 겁먹고 들어갔던 글이었다. 그래서인지 유난히 어려웠다(내 기억이 맞다면 글을 처음부터 다시 쓰기를 세 번인가 했다). 특히 도입부가 어려웠다. 생소한 것을 소개할 땐 다른 무엇보다도 일단 익숙하게 만드는 것이 급선무라는 새삼스러운 교훈을 주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할 법한 소재를 쓰니까 바이럴이 알기 쉽게 터진 글이었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소재에 천착할 순 없는 법. 어떡하면 아즈망가 대왕이란 만화 자체의 대단함을 각인시킬 수 있을까를 고민해 보았지만, 결과적으로는 만화의 '구별됨'에 집중하게 됐다. 조사 과정에서 고바우 영감으로 소재를 바꿀까 고민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