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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TV조선쨩의 상태가 조금 이상한 것 같다만?













크 백만년만에 방송국 가시내
집에 와봤더니 TV조선이 켜져있길래 잠깐봤다 15분 동안 저 병크가 실제로 다 터지는걸 보는데 뭔가 알수없는 방송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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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

주어진 임무:

10팀의 아티스트가 만든 10개의 전시물에 대해 국문/영문 소개문, 사진, 아티스트 소개 등을 보여주는 그럴듯한 모바일 브로셔를 만들어라.


실제 돌아가는 결과물: upcyclingtree.dothome.co.kr


전체 소스:

github.com/yuptogun/Upcycling-Tree-Mobile-Flyer




Day 1

  • 백엔드가 의외로 고민거리였다. 아무 생각없이 정적 페이지 10*n개를 만들면 머리는 편하겠지만 손이 고생할 거다. 10개의 팀과 10개의 작업물과 각 작업물에 들어가는 n개의 사진을 그렇게 매뉴얼하게 관리하다 보면 분명 어딘가 하나쯤 꼬일 테니까.
  • 요컨대 데이터에 최소한의 체계성을 부여해야 한다. 그렇다고 DB 스키마 짜고 CI 같은 본격적인 프레임워크를 깔고 싶지도 않다. 너무 일이 된다. phpSlim 같은 간단한 라이브러리는 아직 건드려도 못 봤고... 음 어떡한다?
  • 일단 MVC 자체는 매뉴얼하게 가기로 결정하고 array.php를 작성. 내가 알아보고 관리할 수 있는 선에서 가장 원초적인 정적 데이터배열을 만든다. 이걸 include한 다음 get파라미터에 담긴 변수 따라서 원소 출력시키지 뭐. 어차피 모바일로 잠깐 보고 끌 페이지이기 때문에 URL prettify는 안 해도 된다고 판단.
  • 프론트엔드가 그 다음 골칫거리였다. 아무 생각없이 Bootstrap이나 PureCSS를 쓰면 손은 편하겠지만 눈이 고생할 거다. 애초에 모바일 브로셔로서 갖춰야 할 최소한의 미적 감각을 담보할 수가 없을 것이다. 뭐 괜찮은 프론트엔드 프레임워크 없나? 막 뒤져봄.
  • 예전에 한번 보고 지나갔던 Framework 7이라는 놈을 다시 찾아냄. 안드로이드/iOS 앱개발자들이 웹개발도 비슷한 느낌으로 해낼 수 있도록 만든 (것으로 생각되는) 소스이다. 지원하는 컴포넌트를 살펴보니 이건뭐 거의 아이폰 네이티브 앱 와꾸가 나오는 게 구상 및 설계상의 문제가 일거에 해결됨. CDN이 있나? 살펴보니 있었다! 오케이 너로 정했다.
  • index.php를 짜면서 CSS 클래스와 컴포넌트, js에 익숙해지는 데 하루의 나머지를 다 보냄. 아직은 전체 틀만 잡고 있었으므로 근본 원리는 파악하지 못한 (몰라도 괜찮았던) 단계. 이때는 $data[i][9](index에서 띄울 섬네일 url) 같은 것이 없었다.
  • 메뉴 구현은 다음과 같다. navbar사이드패널 여는 버튼을 넣고, 그 안에 사이드패널 닫는 버튼을 하나 만들어 넣기. 별문제없이 작동.
  • 이미지 호스팅은 비공개 텀블러를 사용하기로 함. 되는 거 확인하고 퇴근.



Day 2

  • 출근하자마자 원래 index.php에 통째로 들어 있던 header.php 부분과 footer.php 부분을 분리. 잘 작동하는 것 확인. (개인적으로 뷰를 아예 새로 작성할 때 !doctype html로 시작해서 전체를 다 짜둔 다음 header, footer 등으로 오려내는 습관이 있다. 좋은 습관이 아니다.)
  • 최소한의 그리드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어 pureCSS의 base.css만 따로 로딩함.
  • 사이드패널에 뿌려놓은 메뉴 링크들을 눌렀는데, 404나 에러페이지로 넘어가지 않고 그냥 깜박이고 마는 것이 너무 신기했다. 이개모지? 나중에 쓰겠지만, 프레임워크7의 핵심 작동 원리인 "AJAX 프리로딩" 덕분에 가능한 것이었음.
  • framework 7의 기본 CSS는 사이드패널에 리스트로 띄운 메뉴 텍스트를 죄다 자동으로 ellipsis로 줄여버리더라. 작품들의 이름이 좀 길고, 모바일에서 그걸 다 볼 필요가 있기 때문에, 걍 CSS를 뜯어고쳐 다 띄우게 만들어둠.
  • 이제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detail.php를 작성하기 시작. 원래 구상은 이랬다.
    - 적당한 GET파라미터가 지정이 안돼있으면 홈 주소로 리디렉션시킨다. 최소한의 url 에러처리.
    - tree 파라미터가 지정돼 있을 경우 "작품소개" 탭을 활성화시켜 작품 소개를 바로 띄운다.
    - team 파라미터가 지정돼 있을 경우 "작가소개" 탭을 활성화시켜 작가 소개를 바로 띄운다.
    - 작품소개 탭 페이지에서는 "한국어"를 누르면 국문 설명이, "English"를 누르면 영문 설명이 나오게 한다.
    - 사진 쪽을 누르면 갤러리를 띄운다. 갤러리에 들어갈 사진들은 array.php에서 하위배열 하나 넣어서 foreach로 뿌리기로.
    뭐 더 설명할 것 없이 무쟈게 기초적인(≒무식한) 네비게이션이다.
  • 작품소개-사진-작가소개는 탭바를 이용하기로 했고, 한국어/English 전환은 을 쓰기로 했다. (이름은 비슷한데 영 달라서 되게 헷갈림.) 사진 갤러리는 포토브라우저로 처리.
  • 갤러리에 넣을 사진은 곧 받기로 했었으므로 일단 lorempixel을 채워넣음. "Close"를 "닫기"로 고칠 순 없을까? 생각했지만 일단 넘어감. 작가 소개문은 따로 제공받지 않았었으므로 일일이 웹사이트나 SNS를 찾아가서 소개문 및 로고를 찾아 array.php를 보강함. 페이지별로 멀쩡하게 뜨는 것 확인.
  • 쫙쫙 잘 뜨길래 야 신난다! 하고 이것저것 눌러보다가… 버그 발견. 사이드메뉴로 detail 뷰에 진입했다가 다른 detail 뷰를 보려고 하면 탭바가 동작을 하지 않는다. 그냥 흰 화면이 뜨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음. 읭??? 이거 뭐냐??? 모바일 사용자는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다 눌러보는 법인지라, 이건 무시할 수 없는 문제상황이라는 판단이 서서 패닉에 걸림.
  • 세 시간 동안 스택오버플로를 ㅈ나게 뒤지고 Framework 7 공식 문서를 눈 빠지게 읽음. "해결법"은 못찾음. 설마 싶은 것들은 한두 개 눈에 띄었지만, 이리저리 코드를 고치고 뒤집다 보니 이젠 뭐가 뭔지 모르겠다 싶어서 그만두기로 하고 퇴근. (진짜 뇌도 스택으로 돌아간다면 이런 게 오버플로일까 싶은 걸 경험했다. undo redo를 아무리 눌러봐도 기억이 돌아오질 않았다…)




Day 3

  • 출근해서 서브라임 텍스트를 딱 켰는데 생각해 보니 해결된 게 아무것도 없었다. 최악의 경우 이 조치를 단행하면 되겠지… 라고 짐작하고 있던 조치를 단행했다. 모든 링크에 .external 클래스를 부여한 것. 해놓고서 다시 열어보니, 프레임워크7 특유의 스무스한 페이지 움직임(써보면 안다. 진짜 앱 사용하는 것처럼 움직인다)은 없어졌는데 내용 출력 자체는 멀쩡하게 잘 되었다. 허탈.
  • 차차 원인을 이해할 수 있었다. 프레임워크7은 기본적으로 모바일앱이 갖는 페이지 개념 아래 개발돼 있어서, 하나의 "페이지(URL 엔드포인트)"가 경우에 따라서 여러 데이터를 가진다는 개념을 이해하지 못함. 그런데 나는 index 아래의 모든 뷰가 detail.php?team=foo 아니면 detail.php?tree=bar 꼴이었던 것이다.
  • JS 입장에서는 할 말을 잃고 동작을 중단할 수밖에 없다. 아까 detail 페이지 안에 들어 있는 #tab_tree 하나를 active 걸었는데, (사용자 입장에서는 별개의) detail 페이지 안에 있는 #tab_tree에 active를 또 걸라니 뭔 소리냐 싶겠지.
  • 이런 일이 있을까봐, 그리고 Framework 7의 기술적 특성상 준비돼 있던 것이 a태그에 붙일 수있는 .external 클래스였다. 프레임워크7은 페이지를 쫙 읽어본 다음 href 붙은 모든 url을 미리 ajax로 읽어놓는다. 그 다음 스마트하게 동작한다. 예컨대 A라는 링크를 요청했을 때 서버가 404를 외쳤다면, JS는 A를 기억해 놨다가, 사용자가 A를 누를 때 아무 일도 안 일어나게 만든다. 이게 그야말로 모든 링크에 대해 작동할 경우 외부 사이트 DOM까지 읽게 되면 보통 큰일이 아니게 되므로, 구분자를 제공하는 것.
  • 이 구분자의 기능은 DOM7 편입을 안 시키는 것. 그러면 ajax 프리로딩 없이 그냥 매번 요청된 URL을 새롭게 요청하게 된다. 당연히 "문제"는 해결된다. 하지만 더 좋은 사용(스무스한 이동 등 진정한 framework 7 사용경험 구현)으로서의 진정한 해결은 안된 상태. (미숙…)
  • 그리고 어제의 패닉 리서치 과정에서 한 가지 더 알게 된 사실은, 탭바는 DOM7 전체에서 항상 나오는 메뉴로서 쓰는 것이 best practice라는 것. 생각해 보면 메인화면에 안 나오던 탭바가 세부사항 페이지에서는 나오는 일은 거의 없다. 이것도 아마 스크립트 충돌에 일조한 사항일 것.
  • 전날 뒤집어엎으면서 엉망진창 만들어놓은 코드를 재정리. 공식 문서에 따르면 Framework 7의 전형적인 페이지는 다음 구조를 따른다.
    body
    - panel (상단 전체메뉴. 싫으면 넣지마슈~)
    - views (상단을 뺀 나머지 화면 전체 wrapper. 전체DOM에서 유일)
    -- view .view-main (기본화면, 전체DOM에서 유일)
    --- navbar
    --- pages
    ---- page (data-page=home)
    ----- page-content
    ------ content-block
    --- toolbar
    ---- tabbar 등등
    -- view .foobar (만약 이 웹페이지가 아이패드 메모앱처럼 split된 화면을 가져야 할 경우 추가해서 사용함)
  • 그렇게 허탈하게 버그를 때려잡고 나니 힘이 빠져서, index.php의 대표이미지들 위에 그라데이션을 뿌린다든가 하는 세부적인 스타일링을 트윅하며 기운을 되찾음.
  • 2일째에 정신없이 문서 읽고 깃헙 레포 뒤지다가 문득 발견한 것이 있어 "음 그럼 해볼까?" 하고 footer.php에 넣어둔 포토뷰어 JS 변수를 건드려봄. 'Close'를 '닫기'로 고치는 게 생각보다 너무 간단하게 되었다. photos 배열 넣는 배열 자리에 원하는 변수명의 값을 새로 지정해준 것만으로 적용이 됨. (이걸 간단한 일로 만들어준 개발자가 대단한 거다…)
  • 최종 점검 마치고, 아이패드/아이폰 뷰 체크한 다음 최종본으로 발행.




교훈

  • Framework 7은 앱 개발을 하는 기분으로 모바일웹을 개발하는 도구이다. 단순 컴포넌트 CSS를 묶어서 이쁘게 만들어주는 정도가 아니라, 각 개별 페이지들이 웹앱으로 작동하도록 AJAX로 처리한다.
  • 따라서 Framework 7을 쓰려면 get 파라미터 대신 URL 라우팅과 data-page에 신경을 쓸 것이며, 막무가내로 아무데나 컴포넌트를 끌어다 쓰면 안 된다(요소들 위치 정해져 있는 정도가 꽤 까다롭다). 가급적 문서를 처음부터 천천히 읽고 제대로 개념을 이해한 다음 쓰기. 나처럼 실전 case위주로 막덤비면 공부도 안되고 효율도 떨어진다.
  • 모바일 브로셔는 무료호스팅으로도 유지 가능한 트래픽을 자랑한다. (…) 여러분 올해가 가기 전에 코엑스 B홀 앞에 가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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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

생산성의 덫

2015. 12. 9. 10:00

0.
미리 전제를 깔고 시작합니다. 이것은 "저격글"이 아닙니다. 다만 습관대로 해 왔던 일반론 펼치기의 일환이며, 그래서 언제나 그래 왔듯 이 글(과 글 속의 오만함) 역시 오로지 필자의 정보 부족에 기인해 있습니다. 반론 받습니다.


1.
멸치볶음을 팔려고 합니다. 무엇이 필요할까요? 마케팅? 유통망? ICT 솔루션? 페이스북 페이지와 '멸치삼촌' 관리자? 엔젤투자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5분 피칭과 그것을 위해 미끈하게 잘 만들어진 애플식 키노트? "모두의 멸치"라든가 "iMyeolchi" 같은 뭔가 잇한 브랜딩? 아뇨! 멸치볶음을 팔려면 멸치볶음이랑 비닐봉지만 있으면 됩니다! 왜? 멸치볶음은 그냥 더도 덜도 말고 딱 멸치볶음이니까! 시장통에서 20년 넘게 멸치볶음을 팔고 있는 아무나 붙잡고 내 말이 맞는가 틀린가 물어보세요!


2.
머리 꼬리 다 자르고 보면 결국엔 한마디로 멸치 사 와서 멸치볶음 만들어 파는 장사에 불과한 것이, 무슨 솔루션과 브랜딩과 각종 슬라이드쇼와 웹/앱 애플리케이션으로 뒤범벅된 iMyeolchi 같은 것이 되어 (실은 전혀 안) 팔리고 있는 광경을 최근 굉장히 많이 보고 있습니다. 무슨 창업지원센터 투자대회, 무슨 스타트업 대상 특강, 무슨 네트워킹 파티, 강남구 종로구 중구 일대의 무슨무슨 스타벅스와 무슨무슨 임대 오피스를 돌아다니다 보면, 그 위대하시고 거창하신 야망과 포부의 빅 플랜을 우스울 정도로 손쉽게 엿듣게 됩니다.


3.
왜 그렇게 되는 것일까요? 수많은 멸치볶음 장사 스타트업들이 브랜딩이며 애플리케이션 따위를 마구 도입하는 이유는 뭘까요? 저는 그게, 특히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더욱 만연해 있는 "생산성의 덫" 때문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풀어서 말하자면, 찔끔찔끔 생산하는 재미에 빠져서 일정 임계치 이상의 생산(과 그에 상응하는 필요악적 고통)에까지는 도달하지 않는 생산 집단이, 최근 급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말입니다.
이는 비단 스타트업 업계뿐 아니라 현대 사회 각처에 만연해 있는 현상입니다만, 그렇다고 이걸 병리 내지 암적 징후 덜컥 진단하고 싹둑 잘라내려 하는 것 역시 쉽지 않아 보이기 때문에 문제가 됩니다. 미리 짧게 말하면, 어쩌면 생산성의 덫이란 최후의 인류에게 허락되는 최후의 처지인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4.
일단 범위를 좁혀서 스타트업 위주로 이야기해 봅시다. "도대체 쟤네들은 밥 먹고 하는 일이 뭘까" 싶은 사업체들이 있습니다. ".kr" 도메인 붙여서 예쁘게 (하지만 알고 보면 부트스트랩 기반으로 좀 황량하게) 만들어 놓은 홈페이지만 보면 어떤 편견들이 생기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 사람들은 임대오피스 하나 빌려서 인테리어만 예쁘게 해 놓고 정작 하는 일이라곤 시시콜콜한 회의나 페이스북 돌아다니기 정도뿐이지 않을까,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몇 주 몇 달 동안 이렇게 공식 홈페이지에 업데이트 하나가 없을까, 등등 말이죠.
문제는 그게 아닙니다. 진짜 문제는, 겉으로 보기에는 홈페이지 공지사항 하나 바꿀 일도 없는 한가해 보이는 사람들이, 정작 내부로 들어가서 보면 홈페이지 공지사항 하나 끄적일 여유도 없이 눈코 못 떠 가면서 데바쁘게 일하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무슨 기획안을 작성하고, 견적을 내고, 미팅을 다니고, 수많은 대행업자들에게 하루에도 오십 건씩 전화를 돌려 가면서 말이죠. 매일이 아침 열 시에 출근 저녁 8시 퇴근의 연속이지만,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는 그들 중의 누구도 알지 못합니다. 오직 근무일지, 이메일과 영수증만이 파악하고 있죠.


5.
"뭐야? 그럼 잘된 것 아니냐?"라고 생각하실 수 있겠습니다. 그게 그렇지가 않습니다. 그 바쁨, 그 분주함의 내역이 실속 없고 사소하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예컨대 경쟁입찰용 PPT의 일곱 번째 슬라이드에 저 단어를 쓰는 것이 맞느냐, 최종보고서 제목에 연도를 넣느냐 마느냐 같은, 사업 자체에 그다지 크리티컬하지 않고 부차적인 것들, 아무래도 좋은 것들에 상대적으로 생산성이 과도하게 집중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다시 짧게 말씀드릴까요? 본질이 바쁘게 생산되는 게 아니라, 곁가지가 바쁘게 생산되고 있는 겁니다.
그러므로 어정쩡한 스타트업 쪽에서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사실이 납득 가능하게 됩니다.
뭔가 하고는 싶은데, 자기들이 하고 싶은 것의 실상이 정확히 무엇인지, 세상이 이것 없어도 잘 굴러가는 이유는 뭔지, 세상을 이것 없이 굴러가지 않게 만들려면 뭘 해야 하는지, 도대체 하필 내가 이걸 하고 싶게 된 이유는 뭔지 등등 근본적인 고민은 접어두고 ‘글쎄~~ 그냥 우리 하던거 사업화하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ㅎ’ 하고 덤비시는 최고경영자 분들이 너무 많아서 그런 것이죠.


6.
본질이 없는 존재자는 그 존재의 우연적 요소에 집착하게 됩니다. 우연적이라는 말은 “사실은 없어도 그만인데 우연히 있는”이라는 뜻입니다. 예컨대 디자인이 바로 그렇지요. ‘좋소기업’들이 그토록 디자이너 구인에 매달리는 데는 이런 이유가 있습니다. 상품 자체의 본질이 기깔나게 좋으면 그냥 흰 배경에 수직 수평 맞춰 틱 찍어 올려도 아이폰처럼 와르르 팔려나갑니다. 하지만 생산성의 덫에 빠져 있는 생산자들은 그렇지 못하므로―그들의 상품의 본질이 너무 많거나 조잡하거나 흔들리고 있으므로―어쩔 수 없이 디자이너들이 투입됩니다.
사실 그들이 하고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없는 본질을 시각적으로 가설(假設)하는 일일 따름이죠. ‘[클라이언트]_[상품명]_진짜최종3-fontbreak.ai’ 만들고 있을 때 그들이 혼잣말로 욕하는 내용은 이런 겁니다. “아니 이런 건 애초부터 지들이 다 ‘그림’을 갖고 있어야 할 거 아냐? 이걸 왜 내가 다 ‘만들어’?”


7.
그런데 사실, 이게 비단 영세한 ‘클라이언트’와 영세한 ‘에이전시’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이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이 짓을 “본질을 만들 시간은 갖지 않고 우연적 요소에 생산성을 과다 투입하기”로 정의한다면, 대한민국 전체가 이 짓 이 놀음에 한바탕 미쳐돌아가고 있다고 보는 것이 좀더 정직하다 하겠습니다.


8.
조금 엉뚱한 예를 들어 볼까요. 요즘 대학가는 학생회 선거와 운영상의 문제가 너도나도 워낙 많아서 어느 대학이 어떻다더라고 수군거리기 민망할 정도라 합니다. 왜 그러겠어요? 학생회가 뭐 하는 곳인지는 인수인계된 적이 없고 지난 몇 년 간 “작년 축제 때 연예인 섭외한 업체 연락처와 본판 무대 일정표” 따위에만 모두의 관심이 쏠려 있었으니 그런 것이지요.
물론 투표나 선거운동상의 문제들은 모두 우연히 겹쳐 일어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건 생산성의 덫이 부르는 필연입니다. 학생들을 대표하는 자치기구라는 더 큰 차원의 본질이 사라지고 그저 축제 주관기관 정도로 전락하는 일이 만연해지자, 학생회는 학생회대로 매 학기 쓸데없이 바쁘고, 학생들은 “이번 학생회는 어떻게 된 게 예산 집행 내역 하나를 안 올리죠? 일 안 해요?” 불만인 거지요.


9.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는 온갖 법안들은 어떻습니까? 내수 진작이다, 부동산 위기 해결이다 하면서 정부가 내놓는 정책 방안들은 또 어떻고요? 각종 운동, 정당, 단체의 지도부라는 분들은 또 어떻습디까? 되도 않는 전략으로 빈축을 사는 B급 C급 아이돌들과 그들의 기획자들은 어떨까요? 그들이 과연 놀고 먹을까요? 천만에! 눈코 뜰 새 없이 일합니다! 이 나라는 OECD 회원국 중 제일 많이 일하는 숫소 같은 국민들의 나라인걸요!
그런데 왜 이 모양 이 꼴이냐? 생산성의 덫 때문입니다. “우리는 열심히 하고 있다, 이 일은 열심히 하면 될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뭐가 어떻게 돌아갈지는 몰라도 하여튼 잘 될 거라 믿고 열심히 한다”의 악순환 때문이라고요!


10.
20세기의 근대적 대기획은 양차 대전으로 개발살이 났고, 본질만 좋으면 뭔 짓을 해도 좋으니 추진하자는 생각은 아무래도 현대에 들어와서 좀 시들해진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역전이 일어나 있지 않은가 합니다. 본질 따위 아무래도 좋으니, 우연히 획득된 부가적 요소들이 좋고 재밌으면 그만인 거지요. 왜 그런가를 생각해봤을 때, 20세기의 기획 중 포드주의가 신자유주의적 경제 기획으로 옹졸하게 대물림된 이후 오늘날 유일하게 판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짐작됩니다. 말하자면 ‘최대 이윤 추구’가 만사의 잠정적 본질로 전제돼 버린 것이죠. 뭐든지 돈이 되면 그만인 겁니다.
SNS가 그렇게 하나둘 망해 갑니다. SNS는 친구 사귀는 서비스지 광고를 보여주는 서비스가 아닙니다. 하지만 장사꾼들이 마케팅을 한답시고 들어와서 별로 친해지고 싶지도 않은 사용자들의 ‘Like’와 ‘팔로우’를 받아내려고 이 성화 이 난리입니다. 그것도 (광고주로부터) 정해진 기한 내에 최대 성과를 달성하라는 식으로요. 이들 덕분에 실제 SNS 사용자들은 ‘친구는 없고 광고계정만 많다’라는 본질적 배반감을 느끼고 하나둘 떠납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는 걸 보면서 느낍니다. 그러면, ‘친구를 사귄다’, ‘좋은 물건을 필요한 사람에게만 정확하게 공급한다’ 등등의 본질을 결여하고 이윤 추구 따위 되도 않는 가짜 본질과 부차적인 모든 것에만 몰두하는 이 생산성의 덫은, 그럼 대체 누구 좋으라고 있는 생산성인가?


11.
이쯤에서 가장 받아들이기 힘들 만한 제 생각을 적어 보죠. 이 쳇바퀴 도는 생산성은, 사실은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바꿔 말해 볼까요? 현대인들은 이런 류의 생산성이라도 자기 삶에 주어지지 않으면, 그 실존적 공허를 견딜 길이 없습니다.


12.

예를 들어 봅시다. 당신이 어제 어떤 일을 인수인계 받았습니다. 왜 하는지 듣긴 들었고 이해는 했는데 별로 동의는 되지 않았죠. 그래서 그걸 오늘 착수하는데, 오늘 요일이 목요일입니다. 내일도 똑같이 출근해서 별로 동의되지 않는 이 일을 끝내놔야 하게 생겼습니다. 동의가 안 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 실상이 분명하지 않거나, 실상은 뚜렷하지만 자기에게 좋아 보이지 않거나 한 거죠. 예컨대 ‘이걸 세모로 바꾸면 귀여울 거야’라거나 ‘이게 70세 이상 노인들한테는 없어서 못 파는 거야’ 같은 본질(?)들 말입니다.
당신은 어떻게 할까요? 전임자를 쫓아가서 총책임자 이름이랑 기획자 연락처를 요구할까요? 아뇨, 당신은 웹툰을 보기 시작합니다. 어차피 이 일에 자기를 투신할 본질이 없는데 뭣 하러 열심히 합니까? 대충 요구되는 선까지만 하자는 생각으로 만화보기 페이지 스크롤을 굴리며 꾀를 부리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뭐 어떻게든 끝내 놓겠지요. 특근이든 야근이든 박카스든 해서요.
자 이제 물어봅시다. 이런 일이 당신의 근무 시간에 빈번하게 일어납니까? 만약 YES라면, 네 그렇습니다, 당신의 직장은 생산성의 늪에 빠져 있습니다. 당신이, 당신 동료가, 당신 회사가 아무리 열심히 일한들, 아무리 생산성을 올리고 얼마나 오랜 시간 얼마나 쎄빠지게 노동을 하든, 당신도 당신 동료도 당신 회사도 그다지 행복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냥 위에서 정해 준 목표에 자신이 동의하는 체하며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불행한 성실함을 끝없이 발휘해야 할 거예요. ‘페이지 좋아요 수’ 따위나 매일 우러러보면서.


13.
해결책을 제시하고 싶은데 그 해결책이 너무 허무맹랑한 것이라서 말하기가 부끄럽습니다. 제 블로그니까 뭐 엄청나게 책임성 있는 발언만 구비하고 싶지는 않고 그냥 제 망상을 간단히 적고 끝내겠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이 경제, 이 미친 생산체제를 다만 한 달이라도 좋으니 일시정지 아니면 리셋을 좀 시켜볼 수는 없을까? 생각합니다. 생산성의 악순환을 강제로 잠시 끊고 나면, 정신이 좀 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입니다. “야 우리 지금 허벌나게 일해서 ㅈ나게 돈을 벌고는 있는데 이게 대체 뭔데 이걸로 누구 입에 뭘 넣자고 이러는 거냐?”
독일은 양차대전으로 그걸 겪었고 스웨덴은 원체 빈곤국가였다고 하지요. 미국은 대공황을 겪고 나서 케인즈주의를 들여왔습니다. 사실 신자유주의-외적인 경제 체제들이 항상 묻는 것은 이윤 추구라는 본질의 본질입니다. “대체 그렇게 벌어서 누구 입에 뭘 넣자는 거냐?”의 문제가 맑스주의적으로든 러스킨주의적으로든 헨리주의적으로든 다루어졌던 거고요.
우리는 어떤 기회를 얻게 될까요? 글쎄 잘 모르겠습니다. 특정 임계값(그게 얼마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까지의 최저임금 상승도 방법일 수 있겠습니다만 기본소득도 요즘 많이 논의가 되고 있지요. ‘돈이야 어차피 국가에서 굶어죽지 않을 만큼 주는데, 그럼 내 성실성은 대체 어떤 일을 위해 팔아 줘야 할 것인가?’를 다함께 고민할 좋은 제도적 근거가 될 테니까요.


14.
이 글은 제가 관여하고 있는 각종 홍보대행 업무와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저는 이 일을 매우 성실히 하고 있습니다. 제 자신이 성실성의 덫에 빠지지 않으려고, 이 일이 세상에 어떻게 기여할 것인가를 하루에 네 번씩 생각하려고 애쓰는데 너무 바빠서 이틀에 한 번 정도밖에 생각하지 못합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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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

간만에, 용감하게, 무식을 자랑하는 글줄을 써 본다. 이 글은 트웬티스 타임라인의 편집 방침과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인사이드 아웃>을 개봉일에 보고 왔다. 영화관 홍보물 선반에 꽂혀 있던 브로셔는 각종 영화제와 해외 영화광들의 극찬만을 싣고 그 이상 아무 호들갑도 떨지 않고 있었다. 수입사와 홍보대행사가 얼마나 자신만만했던 걸까. 나 같은 일반 관객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게 감탄감탄 열매를 먹이고 내보낼 수 있다고 자신감 충만했던 모양이다.



일단 총평을 아주 간단히 말하자면, 이것은 상업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한에서 가장 학제적이고 구체적인 아동심리학 시청각 교재 같은 느낌을 주는데, 좋은 의미에서 그리고 나쁜 의미에서 그렇다.

영화는 수시로 곳곳에서 장기 기억, 단기 기억, 관심사 형성, 잠재의식과 상상된 대상의 문제, 아동이 복합적인 감정을 이해하고 소화하는 매커니즘, 사고의 추상화 과정 등을 아무렇지도 않게 시각화 드라마화하여 제시한다. 물론 그것은 디즈니+픽사라고 하는, 인류의 현 단계에서 가장 탁월한 시각화 집단 중 하나가 보여줄 수 있는 모든 성의를 다한 결과였기에, 그 시각적 서술의 테크닉과 문법 자체는 배울 점이 많고 탁월했다.

그러나 <인사이드 아웃>을 읽는 사이비 철학도의 입장이 마냥 그렇게 편안하고 흡족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몇 가지 설명되지 않은 요소들이 나를 불편케 했다. 그리고 그것들의 불편함이 무엇을 향하는지를 요약해 보니, 대강 이런 게 나왔다. “그런데 왜 여기서 인간은 오직 저 다섯 감정의 조종을 받는 존재이기만 한가? 정말 그런가? 그래야 하는가?”


<인사이드 아웃>을 보면, 문득문득, 자기들의 그 수려한 시각적/서사적 설명 능력을 발휘하지 않는, 그냥 어물어물 덮어놓고 묻어가려는 시도를 하는 컷과 대사들이 있다. 예컨대 슬픔이가 ‘처음으로’ 기쁨의 기억을 만지는 장면이 있다. 영화는, 그 앞에서도 뒤에서도, 왜 슬픔이가 드디어 그걸 만지려고 들게 되었는지를 전혀 제시하지 않는다. 물론 기쁨이가 슬픔의 필요를 이해하는 장면은 있다. 중요한 부분이다. 근데 그 설명이, 이를테면 주인공의 엄마와 아빠가 샌프란시스코 첫날 저녁 식탁에서 어떻게 행동하게 되는지를 시각적/서사적으로 설명하는 설명만큼의 정합성과 직관성이 없다. 아니 애당초 왜 슬픔이가 그걸 만졌는지 그 자체에 대한 계기가 제대로 재고되긴 했는가? 아동심리학 책에 나올 만한 거의 모든 내용을 이해시키려 하(는 것처럼 보이)는 거창하고 야심찬 전체이용가 애니메이션이, 왜 이런 부분에 대해 논란의 여지를 남기는가?

그걸 왜 독자에게 물어보느냐고? 아니 난 지금 몰라서 묻는 게 아니다. 좀 있다가 정리하겠지만, 시장에 내놓아 불편하지 않게 팔아치울 유물론 프로파간다를 제작하기 위해서는 그게 그들의 최선이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몇몇 설명되지 않는 불편한 기정사실들이 더 있다. 이를테면, 맨 처음, 주인공 라일리의 마음 속에서 가장 먼저 기쁨이가 등장하는데, 왜? 왜 하필 걔인가? 영화 어디에서도 ‘추상화의 방’처럼 알기 쉽고 깨끗한 설명은 나오지 않는다. 대신 영화는 전체 정황을 통해 시청자로 하여금 이런 걸 은근슬쩍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게 한다. “봤지? 맨 처음 나타나서 첫 버튼을 누른 감정이 그 사람의 주요 감정이야! 그런 게 있으니 그런 줄 알아!” 예컨대 주인공 아버지의 다섯 감정들은 모두 버럭이를 닮았고 개중 대빵도 버럭이인 식이다. 그런데 그게 왜? 거기에는 어떤 전후 사정의 개연성이 있는가? 적어도, <인사이드 아웃>이라는 텍스트만 펼쳐 놓고 뒤져 보면, 그런 건 없다.

봉봉과 그 일행이 생각 열차를 타고―이 “생각 열차”도 매우 논쟁을 벌이고 싶어지는 소재다. 이게 인지심리학적으로 과연 어디까지 옳은가?―가는 중에는 이런 대화가 오고간다. “이런, 생각 박스를 엎었더니 사실과 의견이 섞여 버렸어!” “구분이 안 되는걸?” “그냥 대충 넣어두면 돼, 어차피 구분 안 되니까!” 적어도 내 기억에, <인사이드 아웃>에서 사실과 의견에 대한 이 영화의 견해는 이게 전부이다. 그렇다면, 이 영화만 가지고 인간 심리학 공부를 끝내고 나면, 사실과 의견의 구별이란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현실적으로 매우 위험한 결론이 나오고 만다.


“이봐 엽토군 씨 진지 빨지 말라구, 이건 그냥 픽사가 애들 코 묻은 돈 뺏으려고 만든 오락 영화일 뿐이야”라고 말하고 싶은가? 미안한데, 먼저, 팩트 정리를 하나만 하자면, 이 영화는 코 묻은 돈을 받아내고 있지 않다. 사실은 애들에게 그 돈을 주는 어른들의 돈과 생각을 마구 빼앗아가고 있는 영화다. 아무 영화정보 사이트나 들어가서 주 관람객층 통계 그래프와 평점을 찾아 보시라.

그리고 더 중요한 포인트로서, 이 영화는 그리고 제작사인 디즈니와 픽사는, “애들 코 묻은 돈 뺏으려고 만든 오락 영화”라고만 보기에는 너무 치밀하게―그러니까, 과도하게―전체 정황을 이론의 여지가 없는 이론으로 만들어 설득하려고 한다. 그리고 기존의 여러 학술적 성과에 기반한 설정의 개연성과 탄탄한 구조적 완결성은 그 목표를 척척 달성해 냈다. 적지 않은 영화평이 ‘내 머릿속에는 아무래도 소심이(슬픔이, 까칠이 등등)가 있는 것 같다’라고, 유치하다 싶을 만큼 이 설득을 순순히 받아들이고 있는 걸 보면 그렇다. 심지어 나도 설득당할 뻔했으니.


그런데 철학도의 습관이란 ‘정말 그런가’, ‘왜 그런가/아닌가’의 두 질문을 반복하는 것이어서, 이 영화에 대해서도 그건 별수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회의와 반성을 시작하자마자 당장, 동서양의 고전적 감정관을 모두 정면으로 개무시하는 <인사이드 아웃>의 ‘5감정론’에 막혀,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동양에서는 <예기>의 칠정론(기쁨, 화냄, 슬퍼함, 무서워함, 사랑함, 싫어함, 욕망함)이 대표적이며, 서양에서는 헬레니즘 철학 때 모든 감정이 쾌-불쾌의 이원론으로 수렴된다는 발상이 나왔다. 핵심은, 양쪽 다 인간의 수많은 감정들을 만드는 임의적이지 않은 최소 개수의 감정이 있음을 인정했다는 점이다. 그런데 <인사이드 아웃>은, 도대체, 인간 머릿속의 감정이 왜 하필 그 임의의 5개여야 하는지에 대한 근거를 전혀 내놓지 않는다. 그냥 그들의 선험적 실존을 열심히 사후 설득해낼 뿐, 그 본질의 필연성을 논증하지 않는다. 그러니 기쁨이와 슬픔이가 없는 상황에서 버럭이, 소심이, 까칠이는 슬프지도 기쁘지도 않아야 하는데도, 전혀 그러지 않는다.

음, 그나저나 뭐? 까칠이? 지금 까칠이라는 감정이 주요 5감정에 속한다는 걸 받아들이란 말인가? 물론 이 캐릭터 자체는 매우 모에하다. 그런데 동서양 어느 인간학 연구자도 ‘disgust’가 필연적인 인간 감정에 속한다는 결론을 도출해 본 적이 없다. 왜냐면, 적어도 내가 믿기로, 까칠함/도도함이란 현대에 와서야 계발되어 보급된 ‘감성’이기 때문이다. 그 감정은 매우 선명하게 대도시의 풍경과 K-POP 걸그룹의 얼굴을 하고 있으며, 14세기 어느 나라 어떤 사람의 얼굴을 가지고도 상상하기 어려운, 역사적으로 출처가 없는 정서이다. 다시 정리 반복한다. <인사이드 아웃>의 다섯 감정은, 제작사가 흥행을 위해 임의로 선택했지, 필연적으로 선택되어야 하는 것들이 아니었다. 장담하는데, 이 영화의 자기 자랑 포인트와는 대조적으로, 적어도 이 다섯 감정의 구성에는 어떤 학문적 과학성도 없다. 반드시 그 다섯일 이유는 없었을 수도 있단 말이다. 예컨대, 흥행을 포기하고 이야기를 더 복잡하게 만들고 싶었다면, 어떤 다섯 ‘생각요정’들이 있어서, 그들의 다수결에 따라 이런저런 쾌와 이런저런 불쾌가 판결되는 형태일 수도 있었다. 다른 구성도 얼마든지 가능할 것이다.


라일리의 머릿속에 있는 다섯 감정이 그다지 ‘반드시 그들이어야만 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에 이르자, 희미했던 찝찝함 하나가 매우 분명하고 확실해졌다. 오직 이 임의의 다섯 감정이 라일리의 언행과 심사를 ‘제어판’을 가지고 주관한다는 것이, 그리고 그들이 라일리와 별개의 존재라는 것이, 교회 다니는 철학도 한 사람의 심기를 아주 불편하게 만들었다.

당신에게도 점잖게 권하고 싶다. 이 사실을 좀 불편해하시라고. 라일리가 (버스를 타고 고향으로 돌아갈)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거두는 것, 라일리가 갑자기 우는 것, 라일리가 말을 하고 행동을 하는 것이 죄다 기쁨이가 버튼을 누르고 버럭이가 레버를 올리기 때문이라는 작중 기정사실을, 그렇게 순순히 받아들이지 마시라고 말이다. 조금 섬뜩하게 과장해서 표현해 보자면, <인사이드 아웃>의 다섯 감정은 그렇게 귀여운 요정 캐릭터가 아니라 사실은 엔돌핀이니 아드레날린이니 하는 뇌내 화학물질 내지 그 분비샘에 불과할 뿐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서양철학이 불과 20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절대 무시한 바 없었던 ‘인간 이성’은, 이 영화의 당최 어디에 있는가? ‘어 이상하다, 이성에 해당하는 요소가 없다’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을 때부터 크레딧 다 올라갈 때까지 그걸 찾아 보려고 애써 봤지만 허사였다. <인사이드 아웃>에서는 오직 감정들만이 이성적이거나 감정적이다: 그리고 여러분은 이게 넌센스라는 걸 눈치채셔야 한다. 우리는, 라일리는, 그 아버지와 어머니는,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모든 사람과 개와 고양이는, 그저 머릿속에 다섯 감정을 넣어놓고 그들의 통제에 따르는 자동인형이라는 점에서 다 똑같다. 심지어 돌발적인 자유의지적 활동조차도, ‘제어판의 고장’이라는 도대체 무성의하다고 느껴져서 괘씸하기까지 한 작중 상황에 의한 것으로 그려진다. 고전철학을 진지하게 배운 입장에서는 불쾌하기까지 하다. 그간 니가 배운 건 다 희망사항과 논리 장난을 합쳐놓은 것일 뿐이고, 이게 니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진짜야, 꿈 깨 이 이성 충만하신 인간 님아, 라고 비웃는 것 같아서.

제어판의 존재도 솔직히 거북하긴 마찬가지다. 나이를 먹고 어떤 계기를 거치면서 성장하는 것이고, 감정들과 인간을 (하!) 상호 통신케 하는 중간자? 뭘 은유한 거지? 척수신경? 뇌간? 최소한의 기초적 이성 능력? 데카르트적 송과선(松果腺)? 아니, 시나리오 작가들은 그런 것까지 따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냥 그 감정들은 (현대인이 가장 이해하기 쉬운 은유로서) 거대한 TV 스크린을 통해 인간 내부에서 인간 외부를 들여다보는 스튜디오 안에 있을 뿐이고, 그 제어판은 그냥 “리모콘”이며(“그러니 제발 리모콘인 줄 알아보겠으면 그 이상 정체를 따져 묻지 마라! 리모콘 몰라? 리모콘?”) 스튜디오와 그 바깥 저장소까지가 인간 정신의 전부일 뿐이다. 만약 그 이상을 고려하려고 했었다면, <인사이드 아웃>은 첫째 흥행성 검토에 탈락했을 것이며, 둘째 이렇게 선형적으로 재미있지 못했을 것이고, 셋째 이렇게 일반 대중의 눈높이에 맞지 못했을 것이다.


뭐, 물론 이게 과학적 사고에 충실하신 적지 않은 합리주의자 분들께는 ‘Why not?’의 귀엽고 유쾌한 세계관일지도 모르겠다. 마치 작년의 <인터스텔라>가 그랬듯이.



이 영화의 리뷰를 지금 쓰는 것이 너무 늦은 감이 있는데 그래도 끌어오는 이유가 있다면, 그때 이 영화를 “성공적이고 치밀하며 엄청난 유물론 프로파간다”라고 이해했을 때는 내 이해가 너무 독자적이어서 말해도 되나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이번에 <인사이드 아웃>이 마찬가지 패턴으로 흥행하면서, 아무래도 얘기를 좀 해봐야겠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역시 결론부터 간단히 요약하자면, 이 영화는 천체물리학 포르노이지만, 그 이상으로 ‘이 세상에 오직 물질만이 존재한다’라는 사상을 주입하는 시각적 선동이다. 그리고 현대인들은 그 정도 사상은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고 스스로 믿고 있)으므로, 이 과학 판타지는 그토록 흥행가도를 달렸다.


공공연한 스포일러와 함께 몇 가지를 점검해 보자. 그래서, 결국 우주 바깥에는 외계인이 있었는가? 아니다. 있느니 오직 광활한 우주와 어떻게든 답을 찾으려는 인류뿐이었다. 주인공의 딸 머피는 아버지의 서재에 있는 듯한 비물직적 존재에 대한 믿음을 유지하는가? 아니다. 결국 잠시 다른 차원의 인류가 되었던 자기 아버지와 그가 남긴 물리적 영향에 불과했음을 진작에 알게 된다. 영화에서 신의 존재는 언급되는가? 아니다. 신에 대해서 <인터스텔라>는 아예 일언반구 없는데, 서양 영화치고는 놀라운 점이었다. 뭐 근데 영화 줄거리를 놓고 보면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신도 외계인도 뭣도 아니라, 중력(이라든가 기타 등등 우리가 아직 잘 모르는 어떤 물리적 여건들)을 매개로 소통하는 (언제 어디에서 오는 인류인지는 몰라도) 우리 인류만이, 그리고 우리가 아직 발견하지 못한 경이로운 각종 혹성과 행성이 세상에 있을 뿐인 것이다.


이런 관점을 철학에서는 유물론이라고 한다. Material은 물질이라는 단어지만, materialism은 물질주의라고 번역되지 않고 유물론(오직 유, 물건 물)이라고 번역한다. 유물론은 그 반대 개념을 가지고 이해하는 게 제일 적절한데, immaterialism이란 비물질주의 즉 ‘세상에 물질과 그 상호작용으로만 이해할 수 없는 존재가 있다’라는 관점이다. 유물론은 그 반대로서, ‘세상에는 오직 물질이나 물질간 상호작용만이 있을 뿐이다’라는 관점이다. 여기서의 유물론은 “마르크스적 유물론”이니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일반적인 의미의 유물론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느 쪽이 더 그럴듯하다고 생각하는가? 아무래도 유물론 쪽일 것이다. 비물질주의는 왠지 좀 합리적인 삶과 동떨어진, 종교적인, 신비주의적인 사상으로 보이고, 유물론은 미지의 존재를 상정하지 않으면서 세상을 설명하는 (것처럼 보이는) 관점이니까. 이 시점에서 당신에게 혼란을 주는 진실을 던져 보자면, 서양철학은 뇌과학이 제대로 발달하기 전 꽤 최근까지, ‘정신’의 문제와 인간의 독특성 문제 때문에, 비물질주의를 무시할 수 없었다. 영혼이라든가 하느님이라든가 천사 악마 등등의 존재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그것들이 없다고 쳤을 때도 사상적으로 설명이 안 되는 영역이 있었기 때문에 폐기할 수가 없었던 것이 바로 비물질주의이다. 핵심은 이것이다: 비물질주의는 그렇게 쉽게 폐기되거나 무시될 수 없는 사상이다. 인정까지는 못 하겠더라도 언급 내지 고려 정도는 해야 무식을 면하는 관점인 것이다.


그리고 <인터스텔라>는 비물질의 세계, 천체물리학 바깥의 미지의 영역을 언급도 고려도 하지 않는다. 적어도 쿠퍼 박사의 세계에 절대적인 미지란 없다. 있다고 한다면 어디로 어떻게 튈지 모르는 인간의 욕망, 이기심, 이타심, 용기, 부녀간의 사랑 따위이다. “그 문제라면 진작에 풀었다. 하지만 일부러 그걸 밝히지 않았어.” 그리고 그런 드라마적 요소를 옆으로 치워 놓고 보면, <인터스텔라>의 세계는 건조하고, 치밀하며, 어떻게든 인과를 찾으려는 물리학적 사고로 가득한, 그야말로 인듀어런스 호 같은 세상이다.

그런 스토리에 두 시간 반의 CG 비주얼을 끼얹자, 지금의 관객들은, 특히 한국의 관객들이, 열광했다. 적어도 <인터스텔라>를 보고 나온 직후에는 왠지 우주세계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전부 획득한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그럴 수밖에 없다. 영화는 앞뒤 이야기를 낭만적이고도 유물론적으로 잘 조립해 놓았고, 그게 재미있었으며, 그럴듯했으므로, 왠지 이 영화를 보고 이해한 것을 가지고 앞으로 천체물리학에 관심을 가져도 되겠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작품이 내적으로 제공하는 논리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럽기 때문에 그렇게 된다. <인사이드 아웃>도 마찬가지였다. 심리학이라는 토픽을 가지고 내적으로 모든 것을 들여다 본 것 같은 기분을 선사하고, 그 결과가 자기 어린 시절을 기억나게 하는 애틋하고도 소중한 삶의 한 장면에 대한 드라마이므로, 우리는 <인사이드 아웃>을 보고 나온 순간, 영화의 보너스 장면들처럼, 내 머릿속과 사람들의 머릿속에 어느 감정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을지를 생각하고, 그것으로 인간 심리의 문제는 그만이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된다.

죄송합니다. 그것은 유물론의 선동입니다.

유물론의 좋은 점이 바로 설득력이 강하다는 것이다. 설득하기 어려운 존재를, 그건 그 존재가 실제로 있는 게 아니라서 그렇다고 말한 다음, 없는 셈 치기 때문에 그렇다. 그리고 지금껏 다룬 두 흥행 영화는 다 바로 이 점을 가지고 (의도적이든 아니든) 유물론적 세계관을 채택하여 흥행을 얻어낸 다음 관객들로부터 전통 철학적 사고방식을 일괄 폐기한다. 우리에게 사실과 의견을 구분하는 능력이 있다는 생각, 우리가 단지 네댓 개 감정이 누르는 스위치에 따라 울고 웃는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 어쩌면 신의 계시나 귀신의 모르스 부호나 이 우주 밖의 저승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러므로 인간 존재의 한계 앞에서 “저무는 해를 바라보며 분개하고 분개”하는 대신 좀더 높은 차원에서 그걸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 따위는, <인사이드 아웃>과 <인터스텔라> 앞에서 순진하고 유치하며 이해력 떨어지는 아이디어로 치부된다.


그리고 그게 시장의 일반 대중의 지적 허영심과 오만을 만족시켜 주는 상당히 쉬운 타협점 중 하나라는 것에, 그걸 크리스토퍼 놀란이며 디즈니나 픽사 따위가 앞장서서 입증하고 있다는 사실에 나는 속이 쓰리다. 아까 사용한 “시장에 내놓아 불편하지 않게 팔아치운다”라는 표현을 기억하는가? 유감스럽게도 그게 작금의 서사 산업[각주:1]에서 벌어지고 있는 실제 상황이다. 현 대중들은 자신들을 불편하게 하는 어떤 사상도, 학술적 증거와 정황과 이론도 거절한다. 새 것이건 옛 것이건 상관이 없다. 차라리 ‘적당히 불편하게 만들어 줌’이라는 전략적 콘텐츠 상품[각주:2]은 있을지언정 정말로 우리를 불편케 하는 서사 상품은 시장에서 완벽하게 외면당한다. 사실 그것―굳이 안 물어봐도 되는 것을 물어봐서 불편케 함―이 인문학과 순수학문의 역할인데[각주:3], 모든 게 사느냐 파느냐 배달하느냐의 셋 중 하나일 뿐이 된 응용통섭학문의 세상에서, ‘정말 그런가요?’ ‘왜 그런가요/그렇지 않은가요?’라고 되풀이 묻는 것은 시간 낭비에 불과한 짓인 것이다.

그러니 순수학문이 타협을 하는 지점이 생기는데, 사람들의 이해에 맞춘 ‘놀이동산 XX 체험관’ 건설에 적극 협조하는 방식이 그것이다. 사람들이 듣고 “이야 신기하다! 멋있다!”라고 바로 감탄할 만한 소재를 정면에 배치하고, 딱히 결정적이지 않은 각종 드라마를 실제건 허구건 상관없이 끌어 와서 통로 전체에 걸쳐 깔아두어 길잡이로 삼으며, 논란의 여지가 있는 그러나 중요한 전시물은 정말 안 보이는 곳에 설명 판넬 없이 덩그러니 갖다 놓는 식이다. 이건 학문적 다양성의 문제가 아니라 학문 자체의 존립이 왔다갔다하는 문제를 낳는다. 모르겠다. 한 20년쯤 뒤에는, <인사이드 아웃>과 <인터스텔라>보다 더 엄청난 근자감으로 무장한 영화가 팥으로 메주를 쑬 때, “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메주를 팥으로 쑨다는 게 말이 되냐?”라고 문제 제기하는 관객이 남아 있을까? 그때쯤엔 영화가 팥으로 메주를 쑤면 그저 “이야 신기하다! 역시 팥이 짱이다!”라고 하고 말 것인가?


‘인터스텔라’는 “별과 별 사이의, 성간(星間)의”라는 뜻이고, ‘인사이드 아웃’은 “안팎을 뒤집어서, 아주 완전히”의 뜻이다. 이들은 왜 영화 제목으로 거만을 떨었을까? 간단하다. 그들이 쥐고 있는 설득의 패가 그만큼 강력하고 쉬웠기 때문이다. 의심과 재고와 반성과 논리적 검토를 원천 차단하는 작중 수단을 총동원하여, 두 영화는 관객이 만족스럽게 주저앉아 있을 ‘생각의 지정석’을 확보해 준다. 그 결과 <인사이드 아웃>과 <인터스텔라>의 관객들은 지정석 제도 자체에 의문을 품는 대신 맘 편하게 대규모로 만족했다. 그들이 이야기 속에서 사람 머릿속을 종횡무진하든, 블랙홀과 토성 근처를 활강하든, 지금껏 인류가 고뇌해 온 어떤 문제를 ‘쌩까든’ 아무 문제가 없다. 현대인들은 근대인에게 혁신적 사고방식이었던 근대적 유물론을 이제 어렵지 않게 수긍해 줄 수 있으니까. 그렇다면, 어쩌면 이 시대 순수학문 배우는 사람들의 소임이란 “꼭 그게 전부는 아닌데…”라고 소심하게 읊조려 막간의 여흥을 정리해 주는 정도뿐일지도 모른다. 뭐 그게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사태이기도 하고.

관객의 잘못도, 픽사나 놀란의 잘못도 아니다. 그냥 세상이 그런 원더풀한 학술적 세기말일 뿐이다. 초대형 메이저들이 모범 사례를 두 개나 제시해 주었으니, 이제 너도나도 유물론적 작중세계를 이용한 흥행을 시도하고 성공하고 실패하고 양산할 것이다. 그리하여, 초대형 스크린과 스포츠와 스마트폰과 섹스를 가진 21세기 인간은, 깃털 펜과 양피지 종이밖에 갖지 못했으면서도 신과 자연과 세계 전체를 광활하게 논했던 주후 몇 세기 스콜라 철학자들보다 가난하고 빈약한 영혼이 된다. 그리고 그 가난과 빈약을 인지할 방법도 없어졌다. 등 따시고, 배 부르고, 돈 남아서 들어간 영화관에는 매양 아무 의심의 여지도 없는 정제설탕 같은 ‘작품’이 걸려 있으므로. 이제 우리는, 그냥, 보장된 해피엔딩을 보고 방실방실 웃으면 된다. 머릿속의 기쁨이가 단추를 눌러주는 꼭 그만큼만. 그리고 나는 혼자 생각하지, 참 원더풀한 세상이 아닌가.[각주:4]




  1. 어떤 줄거리를 핵심 소비재로 하는 각종 산업을 일컫는 나만의 용어다. 가장 비슷한 기존 용어는 “콘텐츠 산업”이다. [본문으로]
  2. “멘토링”, 강신주 따위가 여기에 속한다 [본문으로]
  3. 이는 맛 칼럼니스트 “악식가” 황교익 씨의 지론이기도 하다. 나는 그 관점 하나 때문에 그의 모든 논지를 가급적 용납한다는 입장이다. [본문으로]
  4. “What A Wonderful World” by Louis Armstrong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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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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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사철은 괴롭다
Minor Humanities Majors
文史哲はツライ


(아름이가 홍일점이라는건 자기 학과 내 동기들 중에서 그렇다는뜻입니다.)

요즘 너무 만화를 안 그리(다 보니 사람이 재미가 없어지)는 것 같아서 일부러 구상하기 시작한 캐릭터들. 착상할 땐 몰랐는데… 짜놓고 생각해보니 아마도 ​인문계 Ver. 빅뱅이론을 만들고 싶은 것 같다! ㅋㅋㅋ

에피소드 일정수량 이상 구상이 되면 바로 시리즈 시작하겠습니다. ​기대하시라
이참에 방송국가시내도 자주 올리라고 악플을 달아 주시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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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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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편을 찾아보면, ‘경기도’라는 말은 정확히 ‘수도권도’를 뜻함을 알 수 있다. 경 은 서울 경 자고, 기라는 자는 애초부터 (아마도 주나라 시절부터!) 아예 ‘수도권’, ‘서울 주변’만을 지시하려고 일부러 만든 글자다.
이렇게 놓고 보면, “경기”라는 것은 단순히 서울 밖과 강원도/휴전선/충청도 사이의 어딘가를 지칭하는 개념이 아니다. 서울을 위해, 한양 주변이기 때문에 의미가 있는, 경성 둘레 오백 리로서만 규정되는 목적적 지역 개념이 바로 “경기”다.

이 나라의 수도권 인구 집중 문제는 바로 이 “경기” 개념이 살아 있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여타 국가가 멜버른, 워싱턴, 타이페이로만 인구가 몰려들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서울 옆이지만 서울과 상관없이 살아도 좋다는 인식과 여건이 돼 있으니까 그런 것 아닌가? 왜 일본인들은 도쿄로 몰리는가? 도쿄23구가 너무 커서 그렇다. 실제로 수도 역할을 하는 지역의 크기에 비해, 서울 근교이기를 희망하는 지역이 너무 넓고 가까운 탓이다. 우리나라는 뭐 말할 것이 더 있을까.

요즘 사람들이 서울에 가는 건 딱 네 가지 이유가 있다. 대학 가려고, 얼마 안 남은 오락실 가려고(이건 과장이 아니다!), 공연 보려고, 출근하려고. 이 네 가지만 일단 해결되면 애써 서울까지 만원버스 만원전철 올림픽대로 타고 다닐 이유는 하등 없다. 당장 나 사는 곳이 서울 바로 옆 동네인데 마을에 영화관 하나가 없어 서울로 가는 판국이다. 이 무슨 낭비, 이 무슨 허약한 의존인가? 이럴 거면 군에서 시로 승격한 이유가 뭐야?

수도권이니 경기도니 하는 의존적인 개념이 동작하는 한 경기도는 하나의 “도”로서 작동하지 못하고 점점 더 큰 베드타운, 점점 더 초라한 ‘역세권’이 되어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경기의 도가 아니라 어떤 자치 행정구역으로서의 경기도가 필요하다. 이재명 시장의 성남시가 좋은 사례다. 기업을 유치하고 자치가 가능함을 과시하면서 사람을 끌어다가 거슬리는 것 없게 해 주면 솔직히 그걸로 충분하다. (이미 제주도나 경상남도 같은 곳들은 그렇게들 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로컬 개념이 와르르 무너진 근대 초기의 한국인데, 통일 후에 이북 동포들까지 서울에서 뭐 해보겠다고 함경도에 전철 깔리기 전에 이 역할 분산, 아니 경기 개념의 해체를 좀 어떻게 해봐야 하지 않는가 말이다… 어휴 피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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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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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 ㄱㅅㄲ 해봐!








웹진 회의 중 잠깐 남는 시간에 그린 건데 내가 봐도 pointless하기가 노답이다… 이건뭐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고 웃기지도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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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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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잠은 자고 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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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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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킨 이름은 아직 안 정해졌습니다. 일단 개인용입니다. 색은 뭐 그냥 랜덤하게 뽑다 보니 미묘한 금색이 뽑혔습니다.



LIVE DEMO 보기




기본 화면일단 기본적으로 이렇게 생겼습니다.


일반 메뉴팝업메뉴 버튼을 누르면 메뉴가 뽑혀 나옵니다.


코멘트 입력란코멘트나 트랙백 넣는 곳은 이렇게 생겼습니다. 크 누가 만들었는지 겁나 이쁘다.


아이폰 가로모드 기본화면아이폰 가로모드 등의 환경도 완벽하게 지원(하려고 )합니다.


아이폰 가로모드 메뉴팝업메뉴 버튼을 누르면 상단 고정 메뉴가 쭈르륵 내려옵니다.




사용된 외부 리소스:

  • pureCSS (grids, buttons, forms)
  • jQuery + jQuery UI
  • FontAwesome


남은 작업:

  • 트랙백/코멘트 수 표시, 각종 로그페이지 구현(을 할 것인지 어떤지 결정하기)
  • 공유 버튼 추가
  • 기본 메뉴가 지나치게 길 경우에 대한 가로/세로 레이아웃 대책마련 (overflow: scroll 이란게 구체적으로 어떻게 먹히는건지 알아보고 구현할 필요)
  • footer에 이것저것 몰아넣기
  • 실제 태터툴즈 구조에 맞도록 id, class 조정 ← 서로 엉키지 말아야할텐데…
  • 최종적으로는 마크쿼리 스킨과의 차별성 확보. 사실 좀더 어그레시브하게 짜고 싶은 요소들이 많았는데 그렇게 하면 indication 내지 direction이 안될거같아 그냥 좀더 노멀하게 가고 있다. 아작스 로딩화면이니 첫화면 슬라이드니 하는 거창한 것들은, 이게 내 블로그를 위한 작업이지 남을 위한 것은 아직 아니므로, 일단은 구현하지 않을 생각.


이 블로그 스킨도 사실 꿰매고 기운 곳이 많아서... 이제 곧 싹 갈아엎은 이쁜 블로그 스킨으로 찾아뵐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기대하시라 ㅋㅋ

Posted by 엽토군
:

자기만의 100점

2015. 2. 3. 20:01

누구나 자기만의 100점이 있다.


답안지에서 마지막으로 펜을 떼는 순간 "아 됐다"라는 탄성이 절로 튀어나오는 순간이 있는데, 그게 바로 자기만의 100점을 받는 순간이다.

사실 모든 원점수, 등급, 표준편차 따위는 그 성취감을 위한 계량적 보조적 지표에 불과하다.

자기만의 100점을 받는 기준은 자기만 알 수 있는 것이다. 남의 100점이 자기의 50점에 못 미칠 수 있고, 자기의 100점이 누군가에게는 200점일 수도 있다.

잘 하느냐 못 하느냐의 낮은 차원에는 서로 비교 가능한 채점 결과로서의 점수가 있고, 그 점수와 아무 상관이 없이 내가 얼마나 스스로 잘 해냈느냐를 따지는 더 높은 차원에 바로 자기만의 100점이 있다.


자기만의 100점은 굉장히 따기 어렵다. 자기합리화를 하지 않으면서, 객관적으로도 잘 하는 수준에 있으면서 스스로 보기에도 잘 했다, 다 되었다는 것을 확인하기란 여간 드문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일단 그게 한 번 달성되면, 사람은 드디어 다음 수준으로 올라간다.


잘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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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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