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잠드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은데 깨는 것이 어렵다. 매일 아침 눈을 뜨는 일이 매우 '우연적인' 것으로 느껴진다. 아침잠이 늘어난 정도의 문제가 아니다. 내겐 어렸을 때부터 가진 한 가지 이유 없는 공포가 있다. 죽어서 영원한 어둠에 처해지는 것에 대한 무서움. 정말로 영원히 영원히 어둡고 아무 감각이 없는 것. 내겐 그것이 공포였고 지금도 아주 해결된 것은 아니다. 이 공포가 어디서 유래한 것인지 나는 모른다. 하여튼 그래서 지금까지는 어두컴컴한 밤이 무서웠다. 그런데 요즘 내가 아침에 우연하게 눈을 떠 휴대폰을 들어 각종 알림을 제거하면서 소스라치게 놀라는 것은, 내가 어젯밤에 잠들 때는 "내일 아침에 이러저러한 알림들이 올 테지, 그걸 꺼야지" 하고 잠들었는데, 지금 일어난 나는 전혀 그걸 기억하지도 대비하지도 못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냥 습관으로 행동한다.) 이러다가 어느 날부터인가는 "내가 왜 일어났는지" 알 수 없는 때가 오겠구나, 그러다가 어느 날 아침부터는 그냥 안 일어나겠구나, 싶다. 그렇다면 그때부터는 화창한 아침이 무서울지도 모르지.
- 내가 현대인이 되었다고 느낀다. 미칠 듯이 바쁘다. 무엇보다 마음이 바쁘다. 마음심 변에 없을 망 자를 써서 바쁠 망이라고 읽는데, 마음이 없어진다는 기분이다. 닳는다. 소모가 된다. 오늘 희정과 이정 씨가 수뇌부를 은퇴했고, 그래서 잊고 있었던 캠퍼스워십을 가는 날이라는 것을 기억했을 때는 정말 예배를 기다렸는데, 정작 예배때 나는 반 이상 잘 잤다. 사람들에게 다가가자는, 우리의 사마리아에 머무르지 말고 성령의 충만과 인도에 전적으로 의지해서 광야 길로 나가자는 도전을 받아, 그리고 희정에게 정말 무슨 말이든 따로 긴히 한 마디 해 주고 싶어서 예배 끝나고 뒷정리도 나몰라라하고 성령의 취기를 빌어 간신히 한 통 보냈다. 읽었는데 답장이 없다. 고맙다. 여튼, 현대인이 돼 가고 있다. 여러 사람에게 고백했는데, 내가 이렇게 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좋은 점도 있다. 그전까지 이해하지 못했던 종류의 삶―어떤 모임에 대해서도 선뜻 가겠다는 말을 하지 않고 항상 미안하다는 표정부터 짓는―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어렵고 괴롭다. 요즘 현대인들은 낮을 빼앗겼기 때문에 밤을 지새우는 듯하고, 나도 점점 그리 되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잘 자고 싶다. 그런데 이제 그것은 돈이 많은 사람 혹은 돈이 전혀 없는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복락이 되었다.
- 바로그찌라시가 나의 삶의 상당 부분이 되었다. 연필로서의 나의 고정적 쓰임새 중 하나를 찾은 기분이다. 그러나 다시 한 번 not a fan.을 대출받아 읽으며 되새긴다. 하나님은 나의 컨설턴트가 아니시다. 그분의 일에 내가 어떻게 가담할 수 있는지를 따져야 한다―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것'은 사실 백점짜리 제자도는 아니다. 일의 주체는 언제나 내가 아니다. 바로그찌라시는 내 삶의 최우선순위는 아니다. 그러나 스케줄의 상당 부분인 것은 사실이다. 이렇게 따지고 보니 명확해지면서도 심란하다.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일이 가장 중요하지 않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충실하지 않겠다는 것은 천에도 만에도 아니다. 다만 이런 삶―대다수 직장인들이 겪는 삶이겠지―을 잘 모르겠다는 것뿐이다.
- 필기구를 쥐고 종이에 글을 쓰는 것을 동경만 하고 있고 실제로는 전혀 하지 못하고 있다. 내 안의 무언가가 "제발 이렇게 중량감 없는 글과 그림은 그만 만들어"라고 외치는 것 같다. 사실 나뿐 아니라 거의 대부분 현대의 창작물들이 뭔가 전혀 무게가 없다는 기분이다. 속이 비어 있는 것 같다. 분명히 거대한 물체를 표현한 것인데 3D CG로 잘 만들어진 그 모든 거대한 것들이 그렇게나 빠르고 가볍게 여기저기로 날아다닌다. 분명히 미소녀 일러스트인데 상반신과 하반신은 이질감이 극심하고(마치 바스트 샷까지만 연습하고 그 이하는 상상으로 그려낸 것 같다) 전체적으로 '저런 몸과 복장으로 저런 자세를 한 걸 그리면 정말 저렇게 나올까' 싶은 그림들 투성이다. 모두가 상상으로, 컴퓨터로, 깔부림을 한다. 아무 기본기도 찾아볼 수 없다. 소녀를 제대로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미소녀 그림을 그리고, 공룡이나 거대 비행기가 빌딩에 부딪치는 걸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대충 컴퓨터가 렌더링해 주는 시뮬레이션 결과대로 최종판을 작업하고, 자기가 뭘 패러디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오만 잡다하게 아무 데나 고객감사를 갖다 붙여 맹랑함을 넘어선 허무맹랑함을 작성한다. 그런 글은 공책에 연필로 썼더라면 결코 쓸 수 없는 종류의 글이다. 마구 잡다하게 튀어나오는 생각들이 분무기로 물 뿌리듯이 뿌려져서 화면 위에 널브러진 모양이 글이나 그림 따위에서 너무 자주 목격된다. 그리고 그것들을 참아주기가 어렵다. 이건 아닌데, 이게 정공법이 아닌데 싶다.
- 사람들이 재미있는 일에 목이 말라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생각해 보면 자연스럽게 자명하다. 인구통계학을 배워 보라. 세상이 얼마나 재미없는지 아는가? 당신이 지극히 평균임을 알고 나면 세상이 그렇게 허무하게 재미없다. 이걸 어렴풋하게나마 눈치챈 사람들이 바로그찌라시 모집공고에 그토록 반응하고 달려들었다. 재미. 대체 재미란 무엇일까. 모름지기 사람은 사는 재미가 없으면 죽어 버리는 것이다, 자살이든 자연사든, 라고 나는 생각한다. 재미란 좀더 큰 차원이다. motivation이다. 재미가 있어야 뭔가를 한다는 말은 일반적인 통찰이다. 하지만 여기까지는 누구나 다 알고 있고 말하는 이야기고, 그 다음이 문제다. 그렇다면 재미를 일상화할 방법은 없을까? 롤러스케이트가 유행하던 시절 그때의 10대들은 롤러장에서 댄스음악에 맞추어 연애와 낭만을 즐겼고 그분들은 지금 30~40대가 되어 아이들을 영어 유치원에 몰아넣고 있다. 롤러스케이트와 같은 것, 새로운 스포츠, 한 장짜리 잡지를 만드는 매커니즘 등, 재미있게 살 수 있는 또 하나의 해볼만한 일, 그런 것을 만들고 싶다.
요즘 API라는 개념에 꽂혀 있다. 스크립트는 중앙 서버에 있고 여기에 입력값을 제출하여 출력값을 되돌려받아 나름대로 이용할 수 있게 해 주는 (맞겠지?) 규격, 개발자가 제공하겠다고 맘먹고 개발해서 공개하면 되는 것. 기존의 재미 개발자들은 API를 공개하지 않았다. 그냥 통짜 콘텐츠를 갖다주었다. 이제 그건 좀 아닌 것 같다. 앤디 워홀은 스크린톤이라는 API를 개발했다. 이렇게 이렇게 색을 고쳐 넣으면 그럴싸하다는, 뭐 그런. 용어는 자의적이라 문제가 있겠지만 여튼 그런 걸 요즘 깊이 생각하고 있다. - 여전히 싫은 것이 세상에 너무 많아 견딜 수 없다. 학교 후문 쪽 사거리 모퉁이에서 운영하던 돈까스 집이 홀랑 망하고 파리바게트가 들어왔다. 오늘 오후에 보아하니 신장개업을 했다고 이벤트 도우미 불러다가 시끄럽게 떠들면서 홍보를 하는 꼴을 보이고 있었다. 가뜩이나 기분 안 좋고 섭섭한 일 있던 차에 굉장히 기분이 나빠서 화를 낼 뻔했다. 하지만 화를 내지는 않았다. 화를 내면 내 입만 더러워질 것 같다.
일베충들에 대해서 내가 느끼는 것도 그렇다. 그냥 싫은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이 우리 학교부터 적지 않은 듯하다. 자기를 심리학과라고 소개하는 멀쩡하게 생긴 남자가 '거리로 나온 넷우익'이란 책을 쓴 저자에게 질문을 하다가 "그러면 당신은 다양성이 존중돼야 한다고 생각합니까?"라고 되물어보는 질문에 "그거는, 배제가, 돼야 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대답하는 걸 보며 혀를 끌끌 차는 수밖에 없었다. 정말 많구나, 세상에는 자기가 본 것만이 세상에 존재한다고 철석같이 믿는 사람들이 많구나, 그들에게 세상은 그저 자기 눈앞에 우연하게 전시되어 있던 일부의 존재들뿐이었음에도, 그게 그 사람들의 사고를 구성해 버렸고, 그 이상의 다른 생각은 시도조차 되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 그렇게 이 세상에는 싫은 것들이 차고 넘친다. 다들 너무 나르시스트들이다. 자기밖에 모른다. 자기가 모든 걸 다 보여주고 설명하고 해결하고 있으면서 "내 프라이버시는" 운운하고 "왜 저 인간은 저러고 사는지" 운운한다. 싫은 것들을 배양하는 무관심과 자아 과잉에 금방이라도 까무러칠 것 같은 혐오를 느낀다. - 돈이 없지는 않은데 쓰질 못하고 있다. 항상 현금이 조금씩 나갈 일이 생긴다. 주로 카드값을 막기 위한 것이다. 소니 넥스5 중고가 35만원으로 나온 게 있는데 충동구매 한번 못해보고 죽을 성싶다. 내가 자주 하는 말 '돈 많이 벌어 성공하면'이란 말에는, 사실은 돈에 대해 완전히 자유로워지면 이라는 의미가 깔려 있다. 그런 날이 안 올 성싶다. 아이고 주여
- 보시다시피 학업이 가장 내 관심사 밖이다. (...) 그래도 금융경제학이나 국제정치경제학 같은 것은 꽤 유용하다. 논리학은 더 이상 이런 식으로 배우고 싶지 않다...
- 떠오르는 생각들은 그때그때 많지만 일일이 적지 않으려고 한다. 어떤 생각들은 내면에서만 process되어야 한다.
가장 최근에 듣는 노래는 6월 전국 모의고사 세트, 철이와 미애의 "너는 왜", 문명4 주제곡이라는 바바예투, '박명수의 어떤가요' 노래들, 삼성전자가 갤럭시 시리즈에 넣어놓는 Over the Horizon 시리즈 등이다. 난 이 음악들이 재미있다거나 우습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노래들은 네타성으로 소비되는 그 이상의 내재적 의미와 더 큰 시공간적 맥락이 확실히 있다고 느끼고, 실제로도 더 진지하게 듣게 된다.
사실 엽기송이라고 통칭되는, 소리바다가 유효하던 시절 사람들이 주고받던 뻘한 리믹스 음악들 같은 것들이 다 그렇다. 음악 파일 제작 작업은 어쨌든 시간이 걸리고 어려운 일이다. 그걸 굳이 해낸 결과는, 아무리 우스꽝스럽고 네타성이 짙다 하더라도, 언제나 그 이상의 존재이다. 내가 열심히 그런 음악 파일들을 끌어모아 왔던 것은, 지금 가능한 설명 방식으로 설명하자면 언제나 그런 이유였다.- 굉장히 늦거나 아예 따라가질 못한다. 진격거를 3분도 안 봤다. Only My Railgun과 Sisters' Noise를 이제 받아 듣는다. 이제 좀 좋다고 느낀달까. 최근에 경동케이블이 방학 시즌을 맞아 얼마 전의 신작애니들을 무료로 풀었는데, 덕분에 바시소 2기를 다시 보며 누가 뭐래도 히메지가 모에한 캐릭터라는 것과 츠치야 코타가 의외로 매력있는 인물임을 새삼 깨닫는다. 마리아홀릭2기 와 이국미로의크로와제 는 교양필수고. 아무튼지간에 '최근', '최신' 이런건 예전에도 못따라잡았지만 지금은 더더욱 어렵다. 무엇보다, 그렇게 하려면 돈과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컴퓨터 전문가 분야에는 트러블슈팅이라는 것이 있다. 문제의 해결이 핵심으로, 주요 관심사로는 크게 원인 찾기와 문제 없애기(또는 Plan B 만들기)의 두 가지가 있다. 무슨 프로그램을 쓰면 된다든가 레지스트리를 건드려야 한다든가 explorer 프로세스를 종료한 뒤에 새로 실행시켜준다든가 하는 것을 주로 연구하고, 근본적인 원리나 고차원적 스킬―바이오스 조작 등―에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없다.
생각해 보면 나의 창작 활동은 트러블슈팅인 경우가 많았다. 해결해야 할 문제와 해명해야 할 의문 그리고 표현해야 할 재밌는 생각이 있었고, 그걸 어떻게든 해내는 과정으로서의 창작을 해 왔다. 백수의 하루는 플래시 애니메이션을 잘 하지 못해서 사인펜으로 공책에 그렸고, 인쇄용 폰트를 만들지 못해 직사각형의 조합으로 웹폰트를 대충 만들었었고 얼마 전에도 이런 문장들을 표현할 픽토그램이 필요하다는 것 같아서 그걸 어떻게 해낼 수 있는가 하는 트러블을 슈팅해 보려고 했었다.
1. Fundraising should not be based on exploiting stereotypes.
Most of us just get tired if all we see is sad pictures of what is happening in the world, instead of real changes.
2. We want better information about what is going on in the world, in schools, in TV and media.
We want to see more nuances. We want to know about positive developments in Africa and developing countries, not only about crises, poverty and AIDS. We need more attention on how western countries have a negative impact on developing countries.
3. Media: Show respect.
Media should become more ethical in their reporting. Would you print a photo of a starving white baby without permission? The same rules must apply when journalists are covering the rest of the world as it does when they are in their home country.
4. Aid must be based on real needs, not “good” intentions.
Aid is just one part of a bigger picture; we must have cooperation and investments, and change other structures that hold back development in poorer countries. Aid is not the only answer.
문장들을 보는 순간 '이걸 픽토그램으로 표현해야 하는 TTL 디자인팀도 고생이겠구나' 싶었다. 얼마나 민감하고 디테일한 의미 전달인가! 지금껏 보았던 명랑만화와 '이원복'류 교양만화들을 생각했다. 그들이라면 이걸 어떻게 그려낼까? 먼나라 이웃나라, 어릴 적 보았던 각종 학습만화 등에서의 만화적 표현들이 생각났고 그걸 좀 유용(流用)했다. 물론 세 번째와 네 번째에 대한 그림 표현은 좀 어렵긴 했다. 첫번째를 표현한 것 역시 사실 100점짜리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뭐, 디자이너 분들이 보시고 "내가 이거보단 더 잘하겠다"라는 자극을 받으면 그걸로 족하다 싶었다.
그래 난 그걸 스캔해서 팀 드롭박스에 올려놓고 세상모르고 자는 동안 디자이너들은 그걸 보고 극찬을 했다고 하더라. 문제가 일거에 해결이 됐다고, 천재인 것 같다면서.
난 절대 천재가 아니다. 그냥 트러블슈터일 뿐이지. 그리고 이번 일은 내가 유용할 수 있었던 몇 안 되는 재료와 스킬이 딱 적시에 크리를 터뜨려 준 희귀한 케이스일 뿐이다. 나는 내 스킬이 부족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기본적으로 넓지 못하다. 최소한만 하면 된다는 안이하고 무례한 자기과신 아래 오랫동안 남들이 갖은 고생 들여 쌓는 스킬을 가지고 제대로 된 설계와 구축을 하는 게 아니라, 문제가 있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할 줄 아는 것 몇 가지를 가지고 냉큼 해결해 버리는 것으로써 나의 역할을 몰래 어필하려는 속셈이 없잖아 있다. 예컨대 포토샵을 할 줄 모르는 채 paint.net이란 프로그램의 간단한 플러그인 가지고 눈속임을 하려는 것이다. 나도 스스로 알고 있다. 그렇다면 이것은 트러블슈팅이라기보다 차라리 자기 자리/밥그릇 지키기의 일환이라 해야 하며, 천재성 발휘 따위는 더더욱 아니다. (히트맨이라는 칭호는 혹시 여기에 어울릴까?) 다들 "어진이 니가 가진 것을 충분히 발휘하게 해주고 싶다"라고들 하는데, 가진 게 없어서 발휘할 것이 없다, 라고 말하면 무안을 주는 것밖에 안 되기 때문에 그저 무안하게 웃을 뿐이다.
세상의 천재들에게 미안해지는 날이었다. 트러블슈팅. 그거 잘 하기 위해서라도 더 쌓아야 할 최소 스킬의 범위가 확장을 자극받고 있다는 느낌은 있다. 예를 들어, DSLR 카메라는 못 사더라도 국비지원 앱 개발 교육 같은 건 받아야 되지 않을까 싶다. 나에게 부족한 건 물자가 아니라 기술이라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 최근에는 서태지를 리뷰해보고 있다. 문화대통령은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울트라맨이야>는 그 예전에 뭣모르고 들었을 때보다 더 강한 곡이었다. 울트라맨은 일본의 슈퍼맨이다. 외국에도 서태지의 위치에 있는 존재가 나라마다 있을까? 저작권 개념 확립과 힙합, 뉴메탈의 국내 도입에 공헌했다는 그다. 그의 스타덤이 쇠해 가는 지금 우리는 누구에게 기대를 거는가? 그는 "솔직한 해답을 갖자 영웅이란 존잰 없어 이미 죽은 지 오래 영웅은 바로 너야"라며 바톤을 넘겨버렸다.
------------- 이상 13.06.07까지 ------------- - 웹 애플리케이션 개발을 할 줄 알았으면 좋겠다(이젠 한층 더 진지한 이야기). tailer 홈페이지 때문에 php를 알아보다가 알게 됐는데 DB와 페이지가 어떻게 연동하는지만 알면 나머지는 다 함수와 알고리즘의 문제인 듯. 여기까진 허세고, 실제로는 폼메일 php 하나를 성공시키지 못해 끙끙 앓고 있는 코드맹 신세. ㅋㅋㅋㅋ
- <사이비>를 봤다. 연상호 감독은 영화에 대한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 언짢음을 무릅쓰고 자신 역시 "교회를 다닌다"는 것을 밝혀 주었다. 그걸 알고 나서 본 터인지 더욱더 작품에 몰입할 수 있었고 이런 걸 만들어 개봉해 준 다다쇼에게 고마웠다. 저토록 리얼하게 혐오스럽고 패악한 아버지, 항상 기겁하는 어머니, 도망갈 길을 찾는 나약한 여자아이. 장로와 목사 캐릭터는 약간 덜 익었지만, 김민철 가족만큼은 제작진들이 알고 있는 이 땅의 가족들 그대로였다. 그리고 다다쇼 특유의 일그러진 표정은 전체를 추에서 미로 넘길 만큼 충분한 끔찍함을 보여줬다.
- 원고 작성 관련 교육을 받는 중이다. 문장이나 착상 그 자체, 문장들의 구조적 긴밀도, 단락들이 있어야 할 이유, 글이 전체 매체에서 갖는 맥락과 '톤', 점점 시야를 확대하는 중이다. 잘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두세 번 생각하고 쓸 수 있는 글도 이 모양인데 즉흥적으로 인터뷰어가 묻는 질문에까지 말로 차분히 답해야 하는 인터뷰 같은 건 오죽할까? 시니어 피처의 역할을 못 하고 있다. 이러다 한 방에 훅 가지. 결국 이번주는 휴가를 받아 버렸다.
사실 "just"에 대한 압박이 있다. 진짜배기 정기간행물을 만들게 되면 그땐 장타 안타 도루 가릴 것 없이 지면을 채우며 분초를 다투는 생활이 되겠지. 그걸 하기 전에 각자의 스윙으로 홈런을 한 번씩 쳐 보고 선수입장하자는 계산인데, 아직은 조금만 변화구가 들어와도 볼을 내 주는 상황이다. 이러다 포볼되면 아웃인데. - 안목의 문제. 취향이랄 만한 것을 가진 지 오래 되지 않았다. 그 좋다는 일본 애니메이션조차 고등학교 들어와서 PMP를 가진 뒤 차근차근, 그것도 처음엔 숫제 을뀨라는 네임드의 공신력에만 기대어 쌓아 왔던 것이니까. (따지고 보니 군대 빼면 기껏해야 7년!) 어찌 보면 나의 애니메이션 라이프 큐레이팅은 을뀨 님의 것이었다. 그 이후로 각종 괴작으로 빠지면서 이 지경이 됐지만. 애니가 이 정도니 연예계, 음주가무, 스포틱 아웃도어 따위에 조예가 있을 리가 없다. 큐레이터도 없었고 그런 것들을 알 이유나 의지도 없었다. 그쪽으로 엮어 써먹을 일이 있든 없든 일단 아는 것은 중요한데, 얕고 좁게 파 온 나날이다. 말씀, 상식, 메타논리 등을 가지고 호오양악을 이론적으로 분간하는 수밖에 없는 지금이다. 이제 와서 막 여기저기 들쑤신다고 알아질 것도 아닌 줄 알지만, 곱게 늙지 못한 이의 성마른 초조함 같은 것이 대책 없이 몰아칠 때가 있다.
------ 이상 13.11.23까지, 이하 13.12.13부터 ------
12월 첫 주부터 동네 학원 알바를 시작했다. 월~금 5시부터 10시까지, 주로 문제집 작업을 한다. 하루하루 언제 잘릴지 몰라 괜히 혼자 속으로 벌벌 떠는 나날이다(계약서까지 썼는데). 오전에는 좀있다 일하러 간다는 스트레스에 뭘 해도 손에 안 잡히고 오후에는 일하고 오고가고 쉬느라 다른 걸 손에 잡지 못하고 있다. 정말 되도 않는 변명이지만, 사실은 그래서 글이 안 풀린다. 1주 넘겨서 theveryepics를 썼는데 두 번 생각하던 것을 한 번 생각하고 허겁지겁 작업해 올렸더니 웬걸 당장에 형편없는 바이럴이 되돌아온다. 뭐 한번쯤 그럴 수도 있는거지 싶으면서도 속이 쓰리다. 이번에 확실히 배웠다. 어떤 일은 마감 늦는 것보다 질 낮은 것이 더 나쁠 수도 있다. 홈런이 불확실한데 승부수를 내야 한다면 차라리 데드볼을 맞아라. 적어도 에픽스 시리즈는 터진다는 확신이 있기 전까진 시작도 하지 말아야겠다. 뭐야 이 쓸데없는 장인정신- 진은진현(眞隱眞顯)이라는 말을 배웠다. 군자란 모름지기 치세에는 나서서 뜻을 펼치고 난세에는 숨어서 때를 기다린다더라. 그런데 누가 보아도 명백하게 지금은 난세다. 관상이 유행하고 고리대금업이 판을 치고 젊은이들이 맥이 없고 정치 경제 사회에 일말의 기강이 없달까 하여튼 국운이 기울 대로 기울어 있다. 그렇다면 지금의 군자는 숨어야 된다는 얘기가 되는데, 대체 뭘 어째야 하는 걸까. 하필 이런 시기에 마치 트위터 따위의 SNS가 우리를 구원할 것처럼 짹짹거리는데 말이다.
태환어 크루가 간만에 모여 차이나팩토리에서 런치코스를 처묵처묵할 일이 있어 거기서 좀 거들먹거려 볼 셈으로 이 얘기를 꺼냈다가 뜻밖의 대답을 들었다. 소위 21세기의 진은이라 할 것이 있다면, 그저 남들 하는 일 똑같이 하며 숨죽여 지내는 것 아니겠느냐며. 같으면서도 다르다는 말을 하려다가 생각이 꼬여 말하지 못했다. 지금도 생각이 헷갈린다. 형가는 푸줏간에서 개를 잡았고 고점리는 축을 숨긴 채 일당 알바로 먹고살았다 한다. 백이와 숙제는 수양산에서 주려 죽었고 장량은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이 뭔가? 이게 진은인가? 그들의 시대로부터 좀 지난 때의 죽림칠현도 결과적으론 진은이 못 되었는데, 하물며 "요즘 시대에 그럼 진짜 산에 가서 숨어 사는 게 되겠냐"라던 친구 말이 생각난다. 글쎄? 그럼 요즘 시대에는 어디에 가야 숨어 사는 것인가? 1
하여튼 지금이 몸을 사려야 할 난세라는 것 하나는 확실하다. 그러나 한 가지 더 확실한 것은 형가의 칼, 고점리의 축, 백이와 숙제의 군신지의는 그 숨어사는 삶 동안 낡아빠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시퍼렇게 팽팽해졌다는 것이다. 대체 뭣 때문에 사마천을 위시한 중국의 대학자들은 이딴 이야기를 굳이 기록해 놓았나? 대체 이게 지금 우리에게, 나에게 말하고 있는 게 뭔가? 고우영 십팔사략을 처음 읽었을 땐 그저 그림에 취해 훌훌 넘겼는데, 이번에 읽었을 땐 반고부터 시황제까지의 이야기가 얼마나 차원 높은 레토릭한가 하는 그것 때문에 나머지 대여섯 권의 그 잡졸한 역사가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애당초 난세 치세의 개념이 안 먹히는, 세(世)가 성립하지 않는 시절 아닌가! 일개 학원 알바생으로 웅크리고 있으면서 촛불집회 하나 못 나가보고 있는 나로서 생각이 몹시도 헷갈린다. - 액션펌프라는 것이 엎어질 위기에 있다. 생각을 좀 가다듬을 시간을 달라고 해야겠다.
- 최근 또 한 가지 문득문득 떠오르는 화두가 바로 후삼국 시대다. 생각거리가 없어지거나 사람들의 정치 성향을 가만 지켜보다 보면 정말이지 없던 바퀴벌레 튀어나오듯 튀어나오는 생각이다. 꽤 예전에 자칭 레이니걸 이모 씨는 천상 백제 사람, 친한 형 김모 씨는 천상 신라 사람이라는 직관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 이후로 이 직관이 수시로 떫게 떠오른다.
현대한국사에서 그다지 오랜 전통도 못 가진 그놈의 지역감정이라는 것은 왜 하필 전라도와 경상도로 나뉘었을까? 난 그것이 행정구역의 문제라고 보지 않는다. 그것은 훈요십조에서부터 내려오는 바 이것은 백제와 신라의 싸움이다. 나는 후삼국시대 자체를 믿지 않는데, 이렇다 할 역사적 근거는 전혀 없으며, 다만 지금의 한나라당-민주당 구도를 보며 저것이 다만 10세기 한반도에서 꼭같이 일어났던 것뿐은 아닐까, 그리고 당시 민초들의 눈에는 그게 나라 싸움으로 보였던 것뿐 아닐까, 뭐 그런 되도 않는 억측을 할 뿐이다.
백제는 문화 감각이 있고 온순한 듯하면서도 할 땐 하는 기질이고 자기를 드러내기보다 자기의 성과로 인심을 사고 싶어한다. 신라는 무엇보다 자기 사람들과 좋게 좋게 가는 것에 최대 관심이 있으며 문화는 다소 떨어져도 풍요와 권력을 잘 다룬다. 고구려는 천하를 상대하겠다는 기백과 과감함이 큰 대신 가장 문화적으로 척박하며 경제적 여유나 싹싹함도 부족하다. 나는 내가 천상 탐라인이라고 생각하는데, 삼별초와 4.3의 섬 제주는 오래 전부터 나라 아닌 나라로 육지와 서먹한 관계를 애써 지속해온 귀양살이 섬이었다. 탐라는 육지 어디와도 근본적으로 시야가 다르고 언어가 남다르며 나름 자족할 줄 아는 대신 어리숙해 보이거나 고지식해 보인다. 그밖에도 삼국에 속하지 못한 사람들이 나는 있다고 보는데, 가야, 옥저, 동예 등이 그렇다. 이런 지역들은 오늘날 선거를 해 보면 항상 예측 불가 지역으로 뜨고, 역사를 살펴보자면 항상 이 나라였다 저 나라였다 하면서 심경 복잡하게 소속이 바뀌어 왔다.
이 셋이 땅따먹기를 했을 때, 첫 판을 이긴 건 신라였고 다음 판을 이긴 건 고구려 내지 동예였다. 이게 7차 교육과정의 중고교 국사 과정이 내게 가르쳐 준 삼국이다. 한국 정치인의, 한국인의 정치적 입장의 대강은 백제 사람인가 신라 사람인가, 혹은 고구려 사람인가로 나뉘는 것 같다는, 내가 생각해도 비상식적인 통찰이 현재까지의 결론이다. 어떤가, 각각을 민주당계열, 자유당계열, 북한정권으로 보면 그건 이제 슬슬 유사 역사학의 수준인가? - (글이 너무 길어져서 문단을 자름.) 여튼 그래서, 후삼국은 거대양당 및 양대체제의 권력투쟁이라는 외형을 빌어 한반도에서 여전히 진행되고 있고, 그것은 애당초 후삼국이라는 시기 자체가 허구이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것이 그냥 내가 막연히 하고 있는 생각이다. 역사를 고증과 사고와 견학 없이 암기식으로 배우면 이렇게 된다. 모르겠다. 그저 이게 나만 하고 있는 생각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누군가가 저도 왠지 그런 생각이 얼핏 들었는데 부끄러워서 말 못하고 있었어요, 라고 알려주기만 한다면 기쁘겠다. 이 정도로도 충분히 만족이 될 만큼 황당무계한 생각을 요즘은 안 하고 사는데, 그나마 이런 것 정도? 이것마저도 정치놀음에 동원되는 것 같아 입맛이 쓰다. 그저 백제 신라 고구려 캐릭터를 잘 연성하여 한바탕 백합 놀음으로 만들 수 있으면 그게 이 망상의 가장 좋은 용도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역사가 갑자기 이렇게 들이닥치는 건 나로서는 곤란하기도 하니까.
------ 이하 14.02.25부터 ------
수많은 오지랖퍼들의 추태를 보면서 간단히 오지랖이 넓다고 말하고 끝날 만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관심의 방향의 왜곡이고, 이는 훨씬 심각한 문제일 수 있다. 우리는 아주 집요하게, 구조적으로, 다층적으로, 자의와 타의의 혼합 속에서 관심을 뒤트는 법을 터득하고 있다. "관심을 가지지 않아야 할 대상"과 "관심을 가져도 되는 대상"을 구별하거나 임의로 지정하고, 거기에 충실하게 행동하는 능력을 기르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바닥에 저렇게 더럽게 널브러져 쏟아진 팝콘과 콜라를 보고도 어쩌면 이렇게도 다들 태평하게 지나치는가? 거기가 영화관 복도이기 때문이다. 도대체 어떻게 생판 남인 사람을 향해 "연아야 고마워", "저 러시아감독 샹놈의 가이스키" 운운할 수 있는가? 하루 온종일 TV와 네이버 뉴스에서 그들에 대해 집중해서 들려주기 때문이다. 특정 집단이나 권력을 들먹이고 싶지 않다. 이것은 그냥 우리가 동경하는 모델하우스식(式) 현 사회의 실체인 것이다. 순진한 사람이라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장면들을 지나쳐야, 사양지심이 있다면 마땅히 적정한 타이밍에 입다물고 지나쳐야 할 일에 쓸데없이 한껏 나서야 ‘촌티’를 벗고 쿨하고 냉철한 현대인의 삶이 되는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우리가 가만히 있기를 참지 말자고 말하고 싶지만, 그건 쉽지 않다. 아직은 결론이 나지 않는다. 이걸 쓰고 있는 곳이 학원이라서 그런가 보다. (...)- 보그 1월호를 다시 읽어 봤다. 크리틱 기사가 있다는 걸 몰랐는데 다시 보니 역시 하향 조정된 수준의 비평들이었다. 성형 광고가 성행하는 이유는 비단 광고 심의 기준의 변경 때문만은 아니다. 성형 광고를 포함하여 온갖 보기 싫은 광고가 얼마나 성행하느냐는, 기실 그 광고를 소비하는 사회 구성원의 내면적 허영심이 얼마나 크냐에 따른다. 자본주의란 요컨대 이론화의 탈을 쓴 허영심이고, 그렇기에 필연적으로 항상 침체해 있을 수밖에 없다. 그 빌어먹을 간극은 결국 숱한 머리와 손이 체제에 복속하며 생산하는 좀더 자극적이고 정교한 생산된 아름다움들인데, 마케팅이라든가 브랜딩이라든가 제품디자인 같은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 것들이 바로 그것이다.
- 앞으로는 고태사 이환희 김어진 이 셋을 내 맘대로 약칭해서 태환어 크루라고 부르겠다. 여러분이 앞으로 이 이름을 기억해 두셔야 할 것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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