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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이 카테고리를 채울 일이 별로 없었는데, 따로 저장해두고 싶은 명문이 있어 긁어옴.

이미지는 보기만 해도 빡치는 것들뿐인 관계로 조금 작게 삽입합니다.






[성명] 여러분들의 행위를 성찰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 일베와 자대련에 대한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 입장

일간베스트(일베) 회원여러분, 그리고 자유대학생연합(자대련) 여러분!


9월 6일 광화문 광장에서 행사를 계획하셨다죠? 광화문 농성장에서 라면이나 치킨 등을 먹는 행사더군요. 맞습니다. 여러분들이 이야기 하는 대로 광화문 광장은 시민들의 것입니다. 지금도 광화문 천막 뒤편에는 바닥분수가 시원하게 올라오고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민’들이 그 앞에서 특별법 제정을 소원하고 있습니다. 그 광장은 여러분들의 것이기도 합니다. 오셔서 마음껏 드십시오. 여러분들을 위해서 식탁도 마련하겠습니다.



그 식탁에서 음식을 드시면서 여러분들의 행사가 과연 어떤 의미인지 진지하게 성찰해보시기를 요청합니다. 아마도 그곳에서 음식을 드시겠다는 것은 유가족과 마음을 나누는 이들의 ‘단식’을 비웃는 것이겠지요.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고통 받는 이들을 조롱하고 괴롭히는 행사를 단지 재미로 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고, 유가족들의 싸움이 ‘돈’ 때문이며, ‘정치적인 이유’ 때문이라고 믿기 때문에 그런 일을 하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오로지 돈이 인생의 최고 가치이며 모든 행동의 바탕에는 자기 이익이 깔려있다’고 믿는 이들은, 유가족과 연대하는 이들의 마음을 헤아리기 어려울 것입니다. 마음에 깊은 슬픔을 담고서도 다른 이들에게 이런 슬픔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서 진실을 규명하고자 하는 그 작은 몸짓과, 그 마음에 공명하여 아무 이익도 바라지 않고 함께하는 이들이 있음을 믿기 어려울 것입니다. 유가족을 조롱하는 행위가 결국 진실을 두려워하는 이들에게 이용당하는 정치적 행위라는 것도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무엇이 여러분들을 그렇게 불신과 자기 이익에 대한 집착과 포용력 없는 마음의 상태로 만들었는지 알 수 없으나, 여러분들이 그 광장에서 함께하시는 분들의 눈을 들여다보고, 그 마음을 읽게 된다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돈보다 진실이 더 중요하다고 믿고, 우리 사회가 안전해지기를 바라는 그 마음들을 말입니다. 세월호 특별법 요구는 바로 그런 마음입니다.그러니 조용히 식사를 하시면서 귀를 기울이시고 보십시오. 단, 물리적인 폭력을 행사하거나 농성하시는 분들을 단체로 위협하는 행위는 용납하지 않겠습니다.



시민 여러분!


광화문 농성장에서 유가족들을 비웃고 함께하는 이들을 조롱하는 이들에게 분노의 마음이 일어날 것입니다. 이들의 행위는 상처 입은 이들에 대한 폭력이며, 공동체의 선한 의지를 할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돈이 최고라고 가르치는 사회에서 인간다움을 잃어버리고 거짓 언론만 보고 들은 채 성찰할 기회를 갖지 못한 이들입니다. 그러니 분노하더라도, 욕을 하거나 상처를 입히기보다는 그저 조용히 지켜봐주시기를 요청 드립니다. 이들 중 일부가 분란을 일으키고 폭력적인 상황을 만들더라도 인내심을 갖고 지켜봐주십시오. 평화롭게 우리의 자리를 지키는 것도 이들에게 보내는 우리의 경고가 될 것입니다.


2014년 9월 5일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




 




저열함과 무식함이 극단으로 치달을 때 그 앞에서 이렇게 정중하고 떳떳할 수 있다니.

다른 곳에서 점심 도시락을 먹고 방문한 탓에 죄스러워서 밥값을 하려고 강남 피켓 시위로 동조단식을 대신했던 나는 왜 이 지옥도가 이다지도 부끄럽고 민망한지.



Posted by 엽토군
:

15.12.24 갱신:

구글이 노토산스 한국어 폰트 early access를 내놨습니다. google.com/fonts/earlyaccess 에서 Noto Sans KR을 찾으시면 됩니다.

구글답게 매우 잘 됩니다. 사설 CDN 굴릴 필요가 없어졌음.


고로 예전 텍스트는 닫아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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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

문의와 답변

2014. 7. 22. 21:26

1. 문의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방금 전에 브랜드 연필 2통 구입한 김어진입니다.

결제 과정에서 이메일 주소를 넣었고 계좌이체를 마쳤는데(21시 06분경 농협), 확인 메일이 오질 않네요.

주문이 제대로 처리되었는지 알고 싶습니다.

만약 이메일 주소에 오타가 나 있다면 yuptogun@gmail.com 으로 고쳐주시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PS. 와웸에 6년 정도밖에 안 있어 봤지만 CMK쪽에 상품 결제 관련 질문을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CMK가 브랜드를 운운하리라는 거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고 말이죠. 개인적으로 정직하게 말해서, 이 방향성에 대해 마음을 사기가 어렵네요. 우리는 단순히 티셔츠나 기도책자, 콜드컵 같은 걸 사고파는 사람들이 아니라 어딘가에 대해 누군가에 대해 "마음을 사는" 사역자들이라고 생각했는데요. 제가 너무 고리타분한가요? 휴학 중 학원 일을 하게 되면서 7개월째 캠모 캠워를 안 가서 그런 걸까요? 이번 MC를 참석했더라면 충분히 마음을 사고 동참할 수 있었을까요? 이게 우리가 말해 왔던 과격한 헌신인가요? 한 발 물러나서 보자니 잘 모르겠습니다.


2. 답변

김어진님 안녕하세요.  

예수전도단 한국대학사역입니다.   


주문하신 내역은 조회 결과 주문 처리(입금완료) 되었습니다. 입력하신 Gmail의 경우 주문 확인 메일이 스펨함으로 처리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스펨함에도 없는 경우엔 다시 답변주시면 저희도 이니시스 쪽에 대응하도록 하겠습니다^^ 

 

저희가 전문 쇼핑몰이 아니고, 현재 간사님들이 MC 마친 이후 잠깐의 숨고르기 시간과 전도여행 기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월요일에 배송드릴 예정입니다. 그때까지만 조금 더 기다려주시길, 양해를 구합니다^^ 

 

배송비까지 결제까지 잘 되신거 확인되면 바로 월요일에 배송하겠습니다. 

 

한국대학사역과 계속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연필로 사랑을 쓰윽쓰윽 적어내려 갈때마다 주님과 더 깊은 사랑이 쌓여가길, 부족하지만 기도할께요.  

  

그리고 추가로 의견 보내주신 것에 대해 짧지만 제 마음을 나눌께요. (공식적인 CMK의 답변이 아닌 것에 대해 먼저 양해를 구합니다.) 


참고로 저도 짧은 시간 이 몸에 있었네요. 04학번 학부때부터 간사로 섬긴지 만 5년의 시간이 지났네요^^ 

 

김어진 님의 질문이, CMK 브랜드를 런칭 준비를 할 때에 저의 마음과 비슷한거 같아요. '브랜드'는 단순히 무언가를 판매하는 것 이상에 '네임 벨류'를 부여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자랑하고 싶은 것, 그리고 자랑스럽게 여겨지게 하는 것, 그래서 누군가에게 더 많이 다가가도록 하는 것에도 사용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몸을 위한 것을 뛰어 넘어, 우리 몸 밖과도 소통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고 싶어요. 

 

그리고 이 몸에 있는 분들에게 (복음만으로도 자부심을 느낄 뿐만 아니라)이런 작은 물건으로도, 로고로도 마음을 전하고 싶어요.  고리타분하지 않구요, 충분히 그런 갈등을 느낄 수 있지요. 저도 그랬으니까요^^ 하지만 더 많은 채널과 방법으로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여 복음을 전하고 싶은 마음을 더 느낄 수 있도록 CMK도 노력하겠습니다.  

 

충분한 답변이 되셨는지요. 완벽하지는 않겠죠? ^^ 더 궁금한거 있다면 연락주세요!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3. 수긍은 했지만, 그럼에도 어쩐지 허허롭다고 느낀다.

연필은 예쁘고 좋다. 잘 샀다. 여전히 이 몸에 있을 테고 의탁할 테지만, 글쎄 나는 YWAM CMK라는 네임을 자랑스러워하게 될까 예수님을 자랑스러워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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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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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황) 성실에 대하여

2014. 7. 21. 11:48

지난 금요일 예비군 3년차 동미참 훈련 사흗날 오후 3시 반쯤이었을까, "전원 조기퇴소라매?" "집에 좀 가자!" 툴툴거리는 예비군 아저씨들 틈에 끼어 야전 교육장에서 부대로 복귀하던 도중에 실수로 폰을 떨궜다. 군용 시멘트는 특별히 더 단단한 것인지 정말 어이없게 앞면 유리가 바스락 깨졌다. 조금 난감했다. 어떤 사람들은 박살나다시피한 폰을 그냥저냥 쓴다지만, 내가 가진 몇 안 되는 사적이고 활용도 높은 액정 화면이 이렇게 금이 가 있어서는 곤란해서, 그리고 돈이 마침 얼마간 있어서, 오늘 당장 수리 가능한 곳을 찾아보기로 했다.

찾다가 생각해 보니 강동역과 천호역 사이에 애플 공인서비스센터가 있는 것이 생각나 전화를 걸었다. 처음엔 안 받더니 두 번째에는 받았다. "7시까지 하는 것 맞나요?" "일단 내방은 상관없으신데 부품 재고가 있어야 수리를 해 드려요." 시세를 알아 보니 공인대리점 수리비는 22만원 정도라고 한다. 한숨을 푹 쉬고 시간 계산을 했다. 여기서 강변역 가는 빨간 버스를 타고 강동까지 가는 데 1시간 반, 수리하는 데 최대 1시간, 그러고서 강동에서 학원까지 출근하는 데 30분. 넉넉잡고 7시에 간다고 봐야겠구나. 한숨을 한 번 더 쉬었다.

첫째 날부터 발뒤꿈치에 물집을 잔뜩 만들어 준 "A급 전투화"를 아예 집에 던져두고 운동화만 신고 왔기에, 위병소에서 대여받은 예비군용 전투화를 가는 길에 반납하고 그곳에 숨겨둔 우산을 챙겨 나왔다. 내가 우산을 숨긴 곳에는 누구 것인지 알 수 없는 라이트노벨 몇 권이 먼저 숨겨져 있었다. 15분 가량 내가 타야 할 광역버스를 기다려 탑승하고, 강동에 내려, 애플 공인서비스센터로 가려다가, 그 건물 그 공인대리점 바로 아래층에 사설 수리업체가 하나 있는 것을 발견하고 거기로 경로를 바꿨다. 도착하니 6시가 조금 못 되었다. 그 사람은 12만원을 부르고는 유리를 갈아끼우는가 싶더니 전화 테스트를 몇 번 하고는 고개를 갸웃거리는 것이다. "왜 그러세요?" "아니 딴 게 아니고요, 전화를 받으면 화면이 어두워져야 되거든요?" 다른 유리를 갈아끼우고 또 테스트를 자꾸 하길래, 치명적인 거 아니면 상관없으니 그냥 놔두라 하고 대금을 결제했다. 놀랍게도 이곳은 계좌이체로도 요금을 받더라. 방금 수리받은 폰으로 기분 좋게 이체를 실행해 주었고, 20분쯤 걸려서 그곳을 나왔다.

학원에 도착하니 생각보다 늦어져서 정말로 7시에 도착했다. 학원 선생이 오늘 내게 준 긴급업무는 방학 특강용 교재로 쓸 기존 어법 교재 한 권의 특정 구간을 통째로 베끼는 것이었다. 왜 OCR 스캔을 안 해 주지, 야속하다고 생각하며 3시간 가량 보람차게 타이핑을 했다. 한 5/7쯤 했을까, 지금껏 그래 왔듯이 Ctrl+S를 눌러 저장을 하려고 했는데 "오류가 있어 종료해야 합니다" 창이 떴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보내지 않음"을 눌렀다. 그리고 다시 파일을 열었는데, "문서를 읽는 데 오류가 발생했습니다"만 뜨고 아무것도 안 되는 것이 아닌가? 이제 퇴근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졌다. 복구 방법을 백방으로 알아보았지만 답이 없었다. 이대로 꼼짝없이 헛짓한 걸로 쳐야 하나 싶었는데, 선생에게 다음메일로 보내 놓은 첨부파일을 미리보기로 열었더니 웬걸 멀쩡하게 보이는 것이다. 선생이 불러서 본관으로 가 보니 "야 내가 네이버 오피스로 열어보니까 되는데 너 이거 몰랐지, 좀 똑바로 좀 해라" 생색을 내는 것이다. 예 예 하고 뒤돌아서서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기 바빴다. 원래 생각했던 퇴근 시간보다 30분 늦게 퇴근하는 김에, 엄마가 투잡을 뛰고 있는 홈플러스에나 들러 같이 귀가할까 싶어 발걸음을 돌렸다. 그래 그 금요일 밤에 학원에서 홈플러스로 걸어가는데, 사흘 연속 예비군, 이틀 연속 긴급작업, 발뒤꿈치의 물집과 빌려 신은 전투화, 엄마의 투잡 알바, 바스러지는 아이폰 강화유리를 생각하며,


문득, '성실(誠實, faithfulness)'을 생각했다.


인류가 적어도 근대 초기까지는 전승해 왔던 '가치'들 중 현대와 탈근대를 거치면서 거지반 화석화된 것들이 몇 가지 있는데, "착한 사람"이라는 가치가 그렇고 친절이 그렇고 성실함이라는 가치가 그렇다. 전통 사회에서 성실함이란 무엇인가? 매일 아침 닭 홰치는 소리에 일어나 어제 하던 대로 밭 갈고 나무하고 모이 주고 그물 내리다가 밥때 되면 참 먹고 한잠 자고 다시 해 떨어질 때까지 밭 갈고 나무하고 우리 치우고 그물 걷어 집에 돌아와 저녁 먹고 자는 것, 꾀부리지 않고 다른 것 신경쓰지 않고 주어진 삶과 그 조건을 몸으로 받아내며 자기 몫을 해내는 모습이 성실함의 형태가 아니었던가? 이제는 그런 종류의 성실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매일 각자 조금도 겹치지 않는 빽빽한 스케줄이 있고, 그걸 소화시켜 줄 각종 탈것들이 교통 체증이라는 변수 속에서 매번 힘겹게 돌아다닌다. 퇴근해서 장 보는 사람들 때문에 마트는 11시까지 영업을 하며, 다음 주까지 만들어야 하는 교재 작업이 아무 예고 없이 갑자기 쏟아진다. 나의 의지나 예상과 상관없이 여객선과 열차가 어처구니없이 전복되고 환율은 떨어지고 대통령은 불의의 죽음을 맞는다. 예비군 갔다 온 사람을 출근시켜야 하는 긴급 상황이 생기고, 상사는 기껏 열심히 일한 사람의 속도 모르고 "아무개 씨는 왜 일을 꼭 그 따위로 해요?" 면박을 주고, 휴대폰 액정은 말도 안 되게 순순히 깨어진다.

상황이 이러니 현대인들은 조금 덜 성실해도 될 방편을 마련하기 시작한다. 훈련부대 지휘관은 맨몸으로 입소하는 예비군을 위한 전투복 세트를 위병소에 구비하도록 지시하고, 요즘 나오는 웬만한 문서 작성 프로그램은 백업 체계와 클라우드 저장소를 거의 기본 사양으로 세팅해 준다. 공인서비스센터 밑에는 약속이라도 된 듯 사설 수리업체가 들어서 있고, 대다수 편의점이 부의(賻儀) 봉투와 붓펜과 ATM을 구비한 지는 오래되었고, 비료와 조미료와 화장품은 더 교묘해져서 누가 어떻게 쓰더라도 그럭저럭 괜찮게 되었다. 딱히 '코리안 타임' 같은 게 아닌데도 그냥 정시보다 약간 늦는 것이 용서되는 분위기가 되었고, 그래서 심지어 이제는 극장 영화조차도 제 시간에 칼같이 상영되지 않는다. 특강을 들으러 온 학생들이 지급받는 몇백 쪽의 교재와 몇백 문제의 답안지는 사실 OCR 스캔과 "복사-붙여넣기"로 며칠 만에 양산된 것이며, 부서진 기계를 위한 어떤 초거대기업의 정책은 해당 제품 수리 보수가 아니라 '묻지마 교환'이 되었다. 어느 정도의 돈과 어느 정도의 요령이 있으면 성실성이 상당 수준 보장되는 세상, 그래서 사실상 '성실'이 흉내만 내어지고 있는 세상, '전화 연결시 화면 밝기 자동조정' 같은 걸 반복 검사하는 성실함이 어쩐지 '뻘하다고' 느껴지는 세상을, 우리는 지금 살고 있다.


엄마는 힘들 텐데 왜 왔어, 하면서도 반갑게 날 다른 알바 아주머니들에게 소개하며 좋아하셨다. 같이 장을 보다가 초밥과 삼각김밥이 떨이로 나왔길래 샀다. "김밥은 왜?" "나 내일 9시 반까지 양화진 가야 하니까 이건 내일 아침으로 먹으려고요." 집에 돌아와 단둘이 간장에 (아마도 기계로 개별 포장되었을) 초밥을 찍어먹으며 성실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고, 엄마도 회사에서 괜한 이유로 혼난다는 푸념을 하셨다. "일을 하다 보면 거 좀 늦을 수도 있고 약간씩 틀릴 수도 있잖아, 그걸 가지고 그렇게 생트집을 잡고 그 난리야." "그니까요, 사실 그게, 어떤 의미에서, 진짜 성실함은 그런 거인지도 모르는 거거든, 다들 참 너무 무심해" 주고받고 있는데 마침 어떤 초밥의 비닐 포장을 벗겼더니 생선살 밑의 밥이 세 동강으로 와르르 바스러지길래 벌컥 성을 냈다. "옘병 뭔 놈의 초밥이 이렇게 불성실해??" 엄마와 나는 그 꼴을 보고 웃었다. 각자가 한 주 내내 성실하려고 애썼던 어느 금요일 밤 열한 시 반이어서 그랬는지, 나와 엄마는 생각보다 오래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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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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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대하드라마 정도전 보다가 문득 생각난 것.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의 뜻에 맞는 대로 하였다.

(삿17:6, 21:25)


나는 이 말씀의 ‘왕이 없었다’라는 표현을 단순히 “왕 역할을 하는 사람이 옹립되지 않았었다”라고 읽지 않는다. 이것은 사사기라는 히브리 경전의 한가운데와 맨 끝에 등장한다는 점에서 가장 극적으로 상징적이고 함축적인 요약일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의 ‘왕이 없었다’는 말은 “왕정(王政)”, 나아가서 정체(政體, regime)가 없었음을 의미한다고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그 뒤의 “저마다 자기의 뜻에 맞는 대로 하였다”라는 서술이 상호 호응이 된다. 왕이 있든 없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은 자명하지 않은가. 문자 그대로 임금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의미 이상을 함축한다고 보는 것이 옳다.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라는 개념과 사사기의 ‘왕이 없어 저마다 자기 뜻대로 하더라’ 관점은 서로 모순되는 것만은 아니라고 본다. 이상적인 왕정은, 아니 이상적인 정체는 그것이 무엇이든 궁극적으로는 구성원 전체의 집단적 원망(願望)의 응축 및 실현일 것이라는 점에서 서로 공통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가능하게 하느냐에 따라 regime의 종류가 나뉘는 것일 테다. 왕정에서는 그것이 ‘성군’으로 응축되어 ‘태평성대’로 실현될 것이 기대되며, 일반 민주공화정 사회에서는 대의제, 삼권의 분립 및 적극적 활약을 통해서 각 사안별로 수시로 응축 및 실현될 것이 기대된다는 점만이 다르다. 그저 “지금으로 말하자면 지금 우리 대통령님이 왕과 같은 자리에 있는 셈이다” 운운하는 유치한 말씀 해석이 한탄스러울 뿐, 어쩌면 우리는 진정한 “왕”을 모셔 본 적이 없거나, 진정으로 이 나라의 주인으로 살아 본 적이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아마도 실제로는 둘 다일 것이다. 그때에 이 반도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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