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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스크린샷들에 나와야 할 등장인물은 다 나온 듯(두더지 강도단과 박쥐들과 시장 빼고)

  • 내일 휴가복귀해야 되는구나, 하는 참담한 심정으로 혼자 수요일 낮 네 시에 강변CGV 8관 D05에 앉아서 봤습니다. 민간인일 땐 그렇게 서글픈 일이 아니었는데, 군인이고 솔로고 휴가복귀고 하니 이거 참 씁쓸하네요(...) 리뷰가 늦는 이유는 예약글을 해놓고 휴가복귀했기 때문이죠.(...)
  • 솔직히 좀 기대를 했었습니다. 토요일에 틀어주는 영화소개 프로그램에서 아주 잠깐 보고 국방일보에서 잠깐 봤을 뿐인데도 기대를 하게 만들었습니다. 예고편도 그다지 허풍을 떨지 않고 그냥 평범하게 보여주는 정도였는데도 이상하게 기대가 됐었습니다. 픽사가 아닌 곳에서 캐리비안의 해적 팀이 모여 만드는 조니 뎁 주연의 이야기는 대체 뭘까?
  • 그래서 영화의 시작 역시 다름아니라 기대에 부풀어 있는 관객들의 물음에 대답합니다. 올빼미 악단이 "랭고~ 랭고~"할 때 직감적으로, 아 이 이야기는 설명을 잘 해 주겠구나, 보기에 따라서 아주 유치하게 볼 수도 있겠는데, 하고 불안 반 안심 반이었습니다.
  • 주인들이 던져 준 장난감을 가지고 혼자 어항 속에서 수많은 촌극을 만들어 놀며 지루해하던 한 마리 카멜레온. 그래서 그는 '내가 누구냐고? 나는 아무나(anyone)다'라며 자랑스러워하다가도 왜 이렇게 액션이 없어? 하고 불평하다가... 사고로 미 대륙 황야의 고속도로 한복판에 내동댕이쳐집니다. 액션 시작.
  • 일단 영화 자체는 서부극에 대한 tribute로 느껴집니다. 일대일 권총 대결, 각종 소품과 복장과 건물들, "그럼 이제 달려야지"라며 황야를 말달리는 장면도 두세 번이나 나옵니다. 여기에 대수층 탐험, 비행 장면, 인간들의 세계와 무시무시한 속도의 불빛들이 횡행하는 고속도로와 그 너머 다른 세상(the another side)에 대한 묘사까지, 배경 설정 담당자는 이 모든 것을 그때그때에 충실하게 건설하고 있습니다.
  • 스토리는 생각하기에 따라서 대단히 상투적일 수도 있는 영웅의 탄생을 아주 모범적으로, 혹은 아주 독자적인 줄거리로 따라가게 합니다.
    처음 이 카멜레온에겐 이름도 없었습니다. 누굴 만나도 '당신 누구야?'라는 질문에 답할 말이 없어 그저 얼버무리지요. 마을에 도착해 멋모르고 처음 들어간 선술집에서 세 보이려고 '나는 아무나 될 수 있다'라는 생각에 술병을 흘깃 보는데, 'Durango'라는 이름이 적혀 있어서 그는 'Rango'가 됩니다. 그래서 스스로 허풍을 친 대로, 또 마을 사람들이 알아서 착각하고 소문을 부풀려주는 대로 그는 순순히 영웅, 보안관이 되어 갑니다. 처음 그는 실제로는 영웅이 아니었고 사실 뭣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하나의 막연함입니다. "Anything means nothing"이라는 말도 있는데 과연 그렇습니다.
    그러나 진짜 힘있는 독사가 나타나자 그는 무릎꿇는 자세로 내동댕이쳐지고, 보안관 뱃지는 떨어지고, 뒤도 돌아보지 못한 채 다시 황야를 걸어나가야만 합니다. 이제 그는 고속도로 건너편 저 세상으로 체념의 발걸음을 옮기며 스스로 대답합니다. "내가 누구냐고? 나는 아무도 아니다(nobody)." 이제 그 막연함은 정면으로 맞대면이 되고, 이 카멜레온은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이 고속도로 저편으로 건너가자마자 쓰러집니다. 그리고 거기서 서부의 수호신을 만나고, 해야 할 일을 깨닫고, 왜 그걸 굳이 또 하려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합니다. "이게 제 팔자니까요(that's what I'm gonna be)." 영웅이 되려는 자 아니 누군가가 되고 싶어하는 자는 반드시 이 질문에 대답하라는 감독의 메시지는 여기서 들립니다.
  • '물'이 절대적으로 모자라지만 예전엔 '물'이 넘쳐났다던 황야 마을을 바라보며 거북이 시장은 랭고에 말합니다.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려면 뭔가를 믿게 해야 하고 그래서 '물'을 통제하는 것이 곧 모든 통제를 뜻한다... 뚫린 수도관 아래서 마을 사람들은 다시 한 번 '물'이 콸콸 쏟아지길 바라며 종교의식 같은 것을 치릅니다. 시장이 뭔가 숨기고 있다고 의심하는 노처녀 콩스 양의 말을 듣고 다시 시장을 찾아갔을 때, 그는 쥐며느리 골프를 치며 마을 근처의 한 재개발 지역을 가리킵니다. "저게 미래라는 거야, 랭고. 따라오려면 따라오고 아니면 남들처럼 뒤처지게." 랭고가 고속도로 너머에서 보았던 것은 인간들이 만든 레저타운. 그 귀한 '물'을 스프링클러로 탁탁 뿌려 가며 광활하게 길러 놓은 그린 사이로 카트를 몰고 다니는 골퍼들, 그 너머로 재개발 지역과 똑같은 인상의 거대한 빌딩의 숲.
    이 영화에서 물은 '자본(자연자원이든 통화든 그때그때마다 의미를 겸임하는데)'을 의미합니다. 그렇게 읽으면 딱 들어맞습니다. 보면서 전율에 몸서리를 쳤습니다. 아, 이게 니켈로디언의 힘이고 미국이라는 문화강국의 힘이다, 전체이용가 작품에서 이런 이야기를 이렇게 쉽고 중심적으로 풀어줄 수 있나? 나는 왜 이런 걸 못 하지? 스토리텔링을 배워야지 않을까? 하고 제 눈이 저한테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것뿐 아니라도 수시로 보이는 전통극 같은 연기와 이따금 튀어나오는 상징적인 대사들이 '우리도 배울만큼 배웠어'라고 투덜거리는 각본팀의 불평을 그대로 전달해주고 있습니다.
  • 생쥐 소녀 진짜 귀여워요. 좀더 출연이 많았다거나 랭고와 관계가 더 깊었더라면, 솔직히 콩스 양은 별로였음. ㅋㅋ 로맨틱한 장면은 간혹 있지만, 전체이용가라 그런가 로맨스는 거의 없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 올빼미 악단은 생각보다 별로 안 웃겼음. 너무 극에 개입해버렸어요;; 초반부에 매를 피해 숨는 두 신이 있는데 그게 제일 재밌었던듯. 뒤로 갈수록 아주 진지한 영웅담이 되어버립니다. 아닌게아니라 나중에는 진짜로 총알 한 발로 건수를 해결하기도 하고요.
  • 별점 다섯 개 만점에 다섯 개. 월-E 이후로 적당히 진지하고 적당히 재밌고 적당히 부담없는, 좋은 전체이용가 3D 애니메이션 영화. 이런 걸 아무렇지도 않게 해내는 미국이 참말 부럽습니다. 고어 바빈스키, 기억해 둬야겠다.
Posted by 엽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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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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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bernardwerber.com/


처음 개미를 읽었던 것은 중학교 3학년 때다. 절대로 지하에 내려가지 말라는 이야기는 나를 이 책 아래로 내려가게 만들었고, 성냥개비 여섯 개로 삼각형 네 개 드립은 처음으로 내게 책의 결론을 엿보기 위해 읽지도 않은 지면을 훑는 못된 짓을 하게 만들었다. 그는 분명 왕성하고, 많이 배웠고, 열심히 쓰고, 낭만 있는 작가다. 게다가 우리나라엔 그의 팬이자 전속 번역가라 할 만한 사람까지 있고 보면, 그가 우리나라에서 대히트를 기록하고 있다는 데는 전혀 이상할 게 없다.



베르베르를 읽고 있으면 세계는 매우 신비스럽고 깊어지고 지적이고 신적인 세상이 된다. 그는 절대자/조화옹과 그에 대한 이해에서 파생되는 동물(세계/우주)과 인간의 관계, 어떤 단순한 가정의 극단적인 시뮬레이션, 죽음과 삶, 범신론/자연주의, 인간 철학의 허무성 등등을 계속해서 이리 뒤섞고 저리 뒤섞으며 과학적 사실과 상상이 우리의 세계관과 생활양식 그리고 그 기저에 깔려 있는 보이지 않는 얕은 선입견들이 얼마나 '상대적이고 절대적인'가를 목도하게 만든다. 뇌만 남은 인간이 뇌파를 받아 명령을 수행하는 기계에 의탁하여 살다 마침내 한 천재 체스 선수에게 약간의 쾌감을 물리적으로 제공하여 복상살한다는 이야기는, 혹은 17이란 수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 데 평생을 바친 수도자가 뿔 달린 동물처럼 생긴 667700996이나 그 이상의 수도 얼마든지 있음을 너무 급작스럽게 알아버린 바람에 반군에 합류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면 요한계시록의 14만 4천이라는 천국 백성의 수를 그대로 인용하여 거대한 우주선에 태우다가도 '근데 인간이라는 유해종이 이 세계에서 번식할 이유가 있나' 하는 물음을 주고받는 이야기는, 우리를 예상 가능한 수준에서 경탄하게 한다. 역시 베르베르는 상상력이 대단해, 하고.



문제는 그게 다라는 데 있다.
그의 작품구도부터, 장편의 경우, 한 천재의 의문의 죽음에서 대체로 시작되거니와 그 과정을 쫓아가는 주인공이 있고 그와 전혀 무관해 보이는 다른 이들의 이야기가 흐르고, 작가의 백과사전이 인용되고, 다시 무의미해 보이는 서술이 이어지다가 이 모든 것이 다시 겹친다. 그리고 나서는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줄줄 늘어놓다가 어정쩡하게 신기한 이야기로 라스트 신이 그려진다.
게다가 그의 주제의식도 대체로 상이하다. <뇌>를 읽은 뒤 <나무>의 수록작 <완전한 은둔자>를 읽어 보면, 장 루이 마르탱은 귀스타브가 되었는가 하는 착각이 일고, <나무>의 수록작 <어린 신들의 세계>는 결국 <신>의 선행방송이 아니냐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카산드라의 거울>을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그가 드디어 지금껏 영 다뤄본 적이 없던 '시간과 과거'라는 주제를 생각한 모양인데, 그나마 이것마저 없었더라면 그는 점점 뒤처지고 있다는 평밖에 듣지 못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효용성, 문학성의 문제가 강하게 제기되는데, 그는 그저 자신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몇 가지 주제에 대하여 이렇게도 얘기해 보고 저렇게도 얘기해 보는 데서 그만 그치고 있고, 그래서 재미있는 과학적 상상 이상의 도전적인 가치 제시나 기존의 자신과 세계를 해체 재구성해 보는 등의 쇄신 없이, 마치 자판으로 사고실험을 하고 있을 뿐인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그의 문학이 당대에 재미있었다는 이유로 많이 팔릴지는 모르겠는데, 그가 세기를 넘어 두고두고 기억되지는 못하리라는 것은 아무래도 점점 기정사실이 되어간다(그의 작품 중 하나를 대표작으로 골라 그것을 두고두고 기억할 수는 있겠다)―본받는 문제는 물론이고.


이제 그에 대한 평가에서 거품을 뺄 때가 됐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는 그야말로 과학소설계의 댄 브라운이다. 댄 브라운이 '음모론 소설계의 베르나르 베르베르'로 군림하고 있듯이 그렇다. 내가 중학생 때는 모든 것이 희미하게 보여 그의 작품이 개미굴처럼 광대하고 웅장하고 그래서 더욱 끝없을 줄 알았는데, 음, 이제 군바리를 넘어 복학생이 될 준비를 하는 지금, 점점 자기표절을 보여주고 있는 그에 대해서는, 다시 재평가를 실시해서 클래스를 낮추어야 하지 않나 하는 의문이 자꾸만 든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는 여전히 베스트셀러 작가다. 어느 서적가판대에서나 그를 볼 수 있다. 싫으면 말고... 난 여러분께 그냥 고민하지 말고 최신간을 사서 읽으시라고 권해드리고 싶다. 어쨌든 한두 달 정도 심심풀이로는 그만한 작가가 또 없다.



P.s 그를 전담하다시피하는 이세욱 님께 경의를 표한다. 이분 때문에 번역이라는 짓을 우러러보게 되었고 급기야 좋은 자막 잘 봤다는 분에 넘치는 칭찬을 받는 내공까지 스스로 올라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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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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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Thinking, New Possibilities(새 생각, 새 가능성)이라지만...
그냥 무편집 사운드가 듣고싶었는데 없네. 공식홈피에도 정보가 별로없고

이 컨셉 처음 생각해낸 인간은 누굴까.
오선지의 콩나물 대가리를 자동차로 이해할 수 있었던 그 사람을 찾고 싶다.

Posted by 엽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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