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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방위고등학교

Earth Defence Force Highschool

© Studio Animal, 2003~ / yuptogun, 2011~

필자의 변

앞으로 웬만해선 계속해서 다음 이야기를 보실 수 있을 것 같다. 써 보려고 한다.

이번 화에서는 연주 장면이 있다. 일설에 따르면 이 작품에 쓰려고 만든 데모 부틀렉이 스튜디오애니멀 본사 창고에 있다는 모양인데 실제로는 접해 보지도 못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일단은 필자가 상정한 이미지에 맞는 곡들을 가지고 억지로 묘사를 해 보기로 한다.

분량이 갑자기 길어졌다고 생각하실지 모르겠다. 13회 안에 구겨 넣으려다 보니 안배가 안 되기 시작하면서 좀 조급해진다. 원래 시나리오를 전부 하나가 되게 써 놓은 덕분에 토막을 내기가 어렵다.  발상을 바꾸어 읽을거리가 많아졌다고 생각해 주시면 감사하겠다.

말이 너무 길어졌다. 나머지는 이제부터 재개할 서사로 말하겠다.


세팅이 끝났다.

사방이 콘크리트로 조악하게 마감되어 음악을 연습하기에는 한없이 부적절한 그 격납고 안에, 세미한 하울링이 무슨 환청 혹은 백색 소음처럼 울리고 있다.

소희가 마이크 스탠드를 붙잡고 앞으로 기대는 자세를 하고 있다가, 그녀의 뒤에 자리한 세 명을 한 번 쭉 둘러보고 물었다.

“준비됐지?”

잠시 후 형준이 스틱을 네 번 치고, 4인조 플래닛셰이커의 역사적인 첫 연습이 시작됐다.

지구방위고등학교

#2 우리는 지방고 플래닛셰이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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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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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3일에 폭발하여 인기 해쉬태그로 떠올랐던 트위터의 Trending Topic은 #InOurGeneration (우리세대는)이었습니다.
많은 것을 시사하는 듯하여 몇 가지 번역을 올립니다.



#우리세대는 아직도 인종차별철폐 투쟁중
#우리세대는 해리 포터와 함께 웃고 울고 싸웠던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는 해리포터 세대다.
#우리세대는 이딴 걸 음악이라고 듣는다. 아놔...

#우리세대는 더 이상 문간에서 노크하질 않아. 전화나 문자로 불러서 밖에 있다고 알리지.
#우리세대는 열여섯 살에 애를 가지면 칭찬하고 마약하는 것은 예쁘게 말해요. 사회가 인정한다고 해서 옳은 말일 수는 없습니다.
#우리세대는 카우보이를 하기엔 너무 늦고 로봇이랑 싸우기엔 너무 이른 시절에 태어났다. 이뭐병
#우리세대는 한마디로 지트페! 지식iN 트위터 페이스북
#우리세대는 살아야 된다고 얘기하는 방식대로 살았다. 90년대에 소년소녀였던 너이자식들 화이팅

#우리세대는 무슨 짓을 해놓고도 #YOLO(※You Only Live Once, 인생은한번뿐) 라고 둘러대지
#우리세대는 채식주의자 뱀파이어랑 그에게 죽자고 덤벼드는 여친 얘기가 인기다. 안 멋지다.
#우리세대는 피자 배달이 경찰 출동보다 빠르다.
#우리세대는 사람들이 당신에게...

#우리세대는 너무나 많은 이들이 똑같은 성공은 하고 싶어하면서 그와 똑같은 과정은 거치기 싫어한다.
사람들이 관계는 원하면서 친교는 원치 않는다... 하필 #우리세대는!
#우리세대는 사람 좋은 사람이 되면 갈 곳이 없다
#우리세대는 스마트폰을 스투피드피플이 쓰죠.
#우리세대는 예쁘거나 사망 직전인 것에만 관심을 보인다.
#우리세대는 이런 인간관계는 본 적이 없겠지!

#우리세대는 하나님의 길을 떠나 사회의 법도로 자꾸 탈선하고 있습니다
#우리세대는 하느님의 판단보다 사람의 판단을 더 무서워한다.
#우리세대는 레이디가가를 구세주로 떠받들 만하다. 예수님이 물 위를 걷는마냥 가가는 10인치 넘는 힐을 신고 완벽한 퍼포먼스를 하지 않나.
#우리세대는 대부분 예수님 얘기보다 드레이크(※YOLO라는 말을 유행시켰다) 얘기를 들으려고 한다. 왜냐면 예수님 말씀에 우리 인생은 한번뿐이 아니라서...



알 수 있는 것들

- 정조 관념이 몹시 희박해지고 있다. 이 세대가 특히 빠른 성장을 요구받았던 세대여서 성적 성숙 역시 속성으로 이루어졌다는 변명이 제기되고 있다.
- 인간관계에 대한 회의감이 위험 수준에 있다. 친구와 적을 구별해 말하기 어렵다고 한다. 성관계 대상으로서의 주체 hoe(섹파, 상년놈)와 그로 인해 제대로 형성되지 못하는 깊은 관계의 문제를 무시할 수가 없다.
- 외관으로 사람이 평가되고 있다. 자아형성이나 자존감 확보는 하지 않고 항상 겉치장을 한다고 자조하고 한탄한다.
- 뭔가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 대신 발달된 초고속 통신 기술로 자기가 원하는 정보만을 취하거나 송신하고 이 과정이 철저하게 자기중심적인 반면 세부적이지는 못하다. 따라서 축약어와 통신어를 남발하면서 정작 중요한 문법적 차이는 놓치고 만다.
- (이들이 기억하는) 과거의 단순 명료하고 '말끔한' 유머로서의 옛 오락거리들을 그리워하는 정서가 팽배하다. 반면 지금의 서사와 오락은 자극적이며 뭔가 잘못된 것 같은데 아닌 척을 하고 있고 무엇보다 솔직히 쿨하지 않다고 말한다.
- 그럼에도 여전히 이 모든 것이 문제이고 싫은 현상임을 인지하고 있다. 오히려 이 모든 것의 해결을구식이라 할 만한 기독교 복음 등에서부터 찾으려는 시도가 힘겹게 이루어지고 있지만 역시 미미하다.
Posted by 엽토군
:
(C) 한신학보, 김진솔 http://him.hs.ac.kr/news/articleView.html?idxno=2908

굵게 친 문장은 통화하면서 내가 말해준 표현, 엷은 색 괄호 문장은 내가 이 맥락에서 생각해 보았거나 얘기해 보았는데 하여간 생략되어, 지금에 와서 괜히 추가해 보고 싶어지는 나의 생각.

한 19대 국회의원 출마자가 케이블 오디션 프로그램에도 출마했다. 이 소식은 SNS를 통해 빠르게 전해졌다. 이 출마자는 본격적인 예선이 시작되는 7월 전에 선거 운동을 열심히 하겠다는 '망언'을 했다. 입으로 인해 화를 본 국회의원 출마자는 또 있다. 한 청년 비례대표가 자취집 전세를 빼서 받은 3천만 원만을 선거 자금으로 사용한다고 공약을 내세웠다. 이 공약은 그 후보가 공적인 자리에서 강조하고 자주 언급하는 공약이었다.
이 두 가지 사건은 조금 다른 듯 보이나 본질적으로는 같은 사건이다. 요즘 오디션 프로그램이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개인의 역량으로 모두 설명하고 이해시키고 이해하려는 태도와 맥락을 같이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태도는 정치가 지향해야 할 정상적인 방향과는 다르다.
정상적인 민주주의 사회는 대표의 자리에 누가 있던지 전혀 상관이 없어야 한다. (민주주의란 인민의 자기통치를 의미하며 여기에서 대리자가 누구인가는 궁극적으로는 대단히 사소한 문제이고 또 사소한 문제여야 한다는 뜻이다.) <나는 가수다>처럼 선거는 순위를 매기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이것이 순위를 매기는 작업인 것처럼 이야기되어 본래 의미가 대단히 무색해지는 일이 적지 않다.) 선거 출마자들의 입장에서는 그럴지도 모르지만 유권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출마자들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사람을 (하나만: 이 유일성 조건이 실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각종 경합 프로그램이 결국엔 중복투표를 허용하는 것은 우연도 꽁수도 허접함도 아니다. 유일 선택은 나머지 전부를 포기하더라도 그 하나를 제일로 삼겠다는 뜻이다. 따라서 선거 결과는 스펙트럼으로 이해되어야지 순위로 이해되어서는 절대로 안 된다.) 선택해서 투표하는 것이다. 지금은 이미 방영이 끝났지만 <나는 가수다>는 <나는 꼼수다>나 <나는 꼽사리다> 등 여러 패러디 작품을 남기며 하나의 트렌드가 되었다. 하지만 이런 제목은 '나' 즉, 개인적인 자질을 더욱 높이 평가하는 현대 한국 사회의 의식이 반영 된 것이다. (다른 게 아니라 이게 바로 신자유주의적 스탠스다. 그것은 구조와 체제와 계급 대신 개인으로 모든 것을 설명한다 그리고 이런 개인환원주의 기조는 뛰어난 역량을 지닌 개인이 나타나는 것 이상의 대안과 꿈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반드시 한계에 봉착한다. 임재범이 나왔을 때 프로그램 이름이 '나만 가수다'로 바뀐 줄 알았다던 출연진들의 인터뷰를 기억하는가? 쫄지 말라고 외치는 해적방송을 듣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전면에 내세우며 '쫄지 않'는 대신 출연진 4인방을 추종하다시피하게 되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그 이유야말로 <나는 꼼수다>가 근본적인 정답은 되지 못하는 이유다.)
오디션 프로그램은 ‘스타성’이 있는 몇몇 뛰어난 사람들이 그 프로그램을 이끌어 간다. 개인의 역량이 뛰어나면 뛰어날수록 그 ‘스타성’은 더욱 빛이 난다. 그리고 지금 시대의 정치는 국민과 국민의 생각을 중심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인 개인의 역량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런 점에 있어서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 하려는 국회의원 출마자는 선거를 하나의 영향력 있는 사람들의 구경거리로 만들고 있다. (사실 이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문제는 이것이 언론과 미디어와 연예오락 등으로부터 긍정적 원시관념을 확보했고, 정치활동과 경제산업 전반이 이것을직간접적으로 재생산하면서 언론과 미디어로 하여금 이런 은연중의 사상을 표현케 하는, 쿨해 보이는 사상이 악순환적 카르텔을 맺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요컨대 방송사는 좀더 '체계적'이고 '공정'해 보이는 '무한개인경쟁' 오락프로를 짤 것이고 이것이 리얼국민경선 캠페인 등으로 되먹여진다는 것이다. 국민의 역할이 날로날로 ARS 눌러주는 기계 혹은 '거수기(擧手機)'가 되어갈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보라. 이게 지금 잘 하는 짓인가?)
정치인은 본질적으로 스타성이 있는 사람이나 개인의 자질이나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다. 국민이 정치인을 통해 정치를 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바로 정치인의 본질일 것이다. 정치권이 오디션장으로 바뀌고 선거가 '나는 국회의원이다'가 되어 버리면 안 될 것이다.
Posted by 엽토군
:
출처
(전략)

우선 이능력 배틀물에는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순수하게 이능력 배틀을 위한 장르월드-아니 배틀 스토리 월드를 구상하는 것입니다. 격투게임의 스토리라던가 슈퍼 히어로, 또는 무협 등과 같이 배틀이 이야기 드라마의 중심으로 사용되는 것을 배틀 스토리 월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싸움이 이야기의 갈등이 되고, 싸움이 갈등을 푸는 해결책이며, 싸움이 주된 사건인 것이 배틀 스토리 월드입니다. 이능력은 이런 싸움을 주인공이나 적에게 각각 유리함을 주는 도구로서, 또는 싸움 자체의 수단으로서 활용됩니다. 그런 것이 이능력 배틀물이지요. 이처럼 순수하게 배틀 자체를 위해 존재하는 월드-배틀 스토리 월드를 작가님이 상상한 이능력을 중심적인 수단으로 하여 구상해내는 것이 첫 번째 방법입니다. 비쥬얼 노벨계에서 나왔던 [Fate/Stay Night]가 이러한 배틀 스토리 월드에 속합니다.

두 번째는 다른 장르의 서사에 이능력 배틀을 더하는 방법입니다. 이능력 배틀은 대부분 현대물입니다만, 현대라는 배경은 순수한 배틀 스토리만으로는 드라마가 자칫 단순해질 수 있습니다. 이를 보다 풍부한 드라마로 바꾸기 위해 현대를 배경으로 한 또 다른 장르 서사와 이능력 배틀 스토리를 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 때는 이러한 장르융합형의 이능력 배틀 스토리가 중심이 된 적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이능력 배틀이 더해지는 장르로 자주 쓰인 것은 미스테리나 스릴러, 또는 범죄소설 등과 같이 주로 현대를 이야기 배경으로 사용하는 장르가 많았습니다. 심지어는 청춘 소설 등에 이능력 배틀이 더해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경우는 다른 장르의 긴장감에 이능력이라는 소재를 긴장의 강화, 또는 하이라이트의 화려한 재미를 주는 요소로서 활용하는 것입니다. 두 가지 장르가 가진 드라마를 하나의 작품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이지요. 이 방법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두 개의 장르가 가진 각각의 재미를 분명히 아는 것과 이능력이라는 소재가 다른 장르의 어느 부분에 들어갈 수 있는가를 분명히 아는 것입니다. 

이능력 배틀은 현대라는 배경을 보다 장대한 이야기로 바꿔줄 수 있는 장르입니다. 이능력 자체만으로 이루어진 월드의 디테일에서부터, 현대로 만들 수 있는 이야기를 좀 더 풍부하게 구비하신다면 더욱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후략)

Nardack
님이나 Anmi님 등의 일러스트 때문에 요즘 시드노벨을 기웃거리고 있는데 이런 걸 발견해서 함 진지하게 봐야지 싶어졌다.
라노베 작가 지망생들은 누군가가 이세계 배틀물 따위에 대해 저렇게나 진지하게 공부하고 독해하고 있는 전문가들이 이렇게나 있다는 걸 생각이나 할까? 진지하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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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

지구방위고등학교 공식 안내는 여기

한애갤에는 복사해서 붙여 올리고 여기선 주소 링크만 걸겠습니다.
오래간만에 큰 작업을 하나 해보게 됐네요.

현재 버전 v1.1, 원본은 여기


지구방위고등학교

Earth Defence Force Highschool

© Studio Animal, 2003~ / yuptogun, 2011~

머릿말

이 이야기는, 지구의 평화를 실제로는 누가 지키는가에 관한 거대한 농담이다.

원래 90분 내지 100분짜리 장편 극장용 시나리오로 짰던 이야기를 1쿨짜리 TVA 시나리오로 바꾸다 보니 스토리 전개에만 260분을 소요하는 좀 늘어지는 듯한 시나리오가 됐다. 이 이야기가 만약 재미없다면, 그것은 순전히 영화 제작을 염두에 두었던 원래의 엄청 재미있는 이야기를 어쩔 수 없이 TV판으로 수정했기 때문이거나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지 못한 채 글로만 표현되었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분명히 재미있었다.

나머지는 이제부터 시작되는 서사로 말하겠다. 미리 말해두는데, 이 농담은 아주 치밀하다.


원안

스튜디오 애니멀

그것이 다가오고 있었다.

거기서 카메라 줌을 아주 크게 당겨 잡으면, 저쪽에 조그맣게 창백한 푸른 점 하나가 보일 듯 말 듯한 거리에서부터, 어두컴컴한 무중력과 진공의 공간을 거의 일직선의 같은 속도로, 그리고 무엇보다 예전에도 그렇게 찾아왔듯이, 이번에도 지구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것이.

각본

엽토군

화창한 화요일이었다.

지구방위고등학교 1학년 시공B반 교실은 창문을 있는 대로 다 닫고 있던 탓에 그 교실이 얼마나 시끄러운지가 밖에서는 잘 들리지 않았다.

오른쪽 턱을 괴고 창 밖으로 눈을 고정한 시공생 표동철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 그야말로 아무 생각이 없는 표정이다. 햇빛이 사선으로 비쳐 들어오는 교실에서 혼자 무심하게 창 밖을 보고 있다니 마치 일본 애니메이션의 주인공 같다. 그리고 잠시 후 동철의 책상 서랍에서, 그가 바라보고 있는 창문 너머에서, 전학생이랍시고 교실 앞문을 열고 미소녀들이 등장할 것인가? 그런 일은 한국에서는 없다. 대신,

“조용히 안 해?”

수업시간과 쉬는시간을 혼동하고 미친 듯이 떠드는 3류 실업계 고등학생들을 조용히 시키려고 애꿎은 교탁만 매질하는 미묘한 미모의 여교사가 있을 뿐이다.

동철은 그때에야 표정을 무슨 생각 비슷한 것이 났다는 표정으로 조금 바꾸며 교실 앞을 본다.

“조용히 하고 있었는데.”

감수

전경진, 김진혁, 허희정, 고지영, 장선녀, 조은수

쿠구구구구구구구...

그것은 낮고 육중하게 울리며 직감적인 공포를 일으키는 소리를 내며 푸른 별 지구를 향해 가속도 서행도 하지 않고―음, 잠깐, 방금 내가 진공의 공간을 날아오고 있다고 했던가? 그러면 그것은 소리를 낼 수가 없겠군. 다시 말하겠다.

(무음)(무음)(무음)(무음)(무음)(무음)(무음)(무음)(무음)...

그것은 별다른 소리는 안 내며 한결같은 속도로 푸른 별 지구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협찬

디시인사이드 한국애니갤러리

동철이 고개를 반사적으로 앞으로 돌렸다가, 문득 오른편으로 시선을 옮겨 교실을 한 번 훑어본다.

국어 교과서를 구겨 판치기를 하는 놈들, 뛰어다니는 놈들, 불량식품 간식 먹는 놈들, 서로 낙서를 주고받는 놈들, 자는 놈들, 잠꼬대에 욕을 섞어 꽥 지르고 다시 자는 놈들.

음, 별일은 없다.

안심한 동철은 다시 앞을 본다. ‘교   훈’, ‘지구를 지켜라’가 걸린 액자 아래로 지구방위사를 가르치는 여교사 구지영이 서툰 솜씨로 몽둥이를 휘두르며 주의를 끈다.

“얘들아 집중 좀 해. 이제 끝났어. 정리해 줄 테니까.”

그 말을 듣고 집중을 하는 학생은 아무도 없었다. 물론 동철은 선생을 보고 있었지만, 그건 그냥 달리 볼 것도 없는데 그 쪽으로 고개를 돌려 두면 혼나지는 않으리라는 생각에서였을 뿐이니 무효라 하겠다.

교탁에 내려놓았던 분필을 급하게 집어들며 선생은 말한다.

“자 다시 정리해보자. 뭐랬지? 10여 년 전만 해도 외계인이나 UFO의 정체는,”

칠판으로 휙 돌아선 지영의 오른손이 칠판 가득 어지럽게 적힌 글자들 중의 ‘無’ 자에 닿자마자 분필은 그 글자를 동그라미 치고 선생이 말한다.

“없는 셈쳤다고 했지?”

교사의 말이 칠판에 적은 내용과 큰 차이 없이 겹치기 시작하면서 동철의 귀에 선생의 말은 점점 들리지 않았다. 칠판을 가만히 살펴 보니, 판서는 크게 3단으로 되어 있었다.

그것은 현대 인류가 직면한 가장 큰 고비에 관한 것이었다.

UFO. 외계인. 2017년까지만 하더라도 이것들은 이 세상에 ‘전면적이고 총체적으로 등장’한 일이 없었다는 이유로 과학계로부터 이미 귀납적 존재 증명을 하지 못했다는 최종 결론이 내려져 있었다. 그 해 12월 3일까지만 말이다.

미 국방부는 그 날 있었던 일을 공식적으로 Invasion by Monster’s Falldown이라고 부른다. 한국의 지구방위사 교과서에 따르면, 그 날 “거대 외계도약체”가 서울 테헤란로에 낙하하여 2시간 가량 “축소”한 후 “급팽창”해 다시 날아갔다. 불과 9시간 동안 지구에 닿았다가 사라진 외계 생물은 우리에게만 25조 원 규모의 막대한 참사를 일으켰다.

당장 다음 해에 UN 직속 지구방위회의가 신설되었고, 전세계적으로 군비가 증강되었으며, 한미연맹은 한국전쟁 이후로 가장 강력해졌다. 우리나라는 그 외계도약체의 피해를 가장 적나라하게 받은 나라로서 특히 이 문제에 모든 관심을 쏟았다. 국민들의 대처 역량을 강화하고 한미연합 및 지구방위회의를 위한 전력과 인재를 증강하는 목적의 특수 고등교육기관으로서의 ‘지구방위고등학교’가 설립된 것도 이 무렵이었다.

동철이 칠판의 세 번째 단쯤을 보고 있는데 마침 교사가 목청을 높인다. 아마 수업시간이 지났는데 종이 울리지 않아 마지막으로 속도를 높이는 모양이다.

“그래서 너네가 이 명문 지방고에 다니고 있는 거잖니? 어때, 알아야겠지? 시험에 나오겠지?”

누군가가 핀잔을 준다. “몰라요.”

명문이었던 건 정말 한때였다. 그때 훈련은 본격적이었고 장비는 최첨단이었으며 학생들은 전세계의 기대를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이듬해에 ‘거대 외계도약체’는 오지 않았다. 다음 해에도 오지 않았다. 사실은, 그렇게 지난 지 벌써 10년째다. 이젠 기억도 나지 않는다. 벌써 2027년인 것이다.

그리고 구지영이 무슨 핀잔인가를 더 주려는데 드디어 종이 울렸다. 선생은 급하게 교과서와 다른 소지품을 챙겨 나가며 마지막으로 잔소리를 한다. 사실은 잘 들리지 않는다. 그만큼 시끄러운 교실이었다.

“얘들아 제발 중간고사 준비 좀 해. 아무리 시공반이라지만, 응?”

누군가가 한 번 더 선생의 등을 떠민다.

“아, 어차피 또 시공반일 텐데요 뭐.”

이쯤 되면 그냥 빨리 나가는 게 상책임을 알고 있는 여교사는 앞문도 닫지 않고 1-시공B 교실에서 도망간다.

이제 이 학교에는 긍지도 없고 지구를 지킨다는 생색도 없다. 이제 지구방위고등학교, 줄여서 ‘지방고’는, 그냥 진학률 낮은 수많은 동네 골칫거리 3류 실업계 고등학교 중 하나일 뿐이었다.

말없이 지켜만 보던 동철은 입맛을 한 번 다시고는 머리를 벅벅 긁는다.

“아이씨, 공부를 하긴 해야 되네.”

혼잣말이 끝나려고 하는데 앞문이 세차게 탕탕거리며 옆 반에서 온 웬 놈이 “야 대박! 완전 대박!” 소리를 지른다.

동철도 그렇지만 웬만한 시공B반 학생들은 모두 다 그를 주목했다. 그가 뜸 들일 겨를도 없이 바로 결론을 말해 버린다.

“지금 신소희가 플래닛셰이커 얘기한대! 중대발표!”

교실이 순간 들썩이고 동철은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 있는데 눈치 빠른 몇 놈들이 창가로 뛰어왔다. 창가 자리에 앉은 동철이 그 주변 분위기를 한 발 늦게 파악하고 고개를 돌리려고 했을 때쯤, 이미 동철은 창 밖 운동장에서 무슨 일이 생기는가 하고 쳐다보려는 꼴통 시공생들 때문에 사방으로 우겨싸여 있었다.

간신히 밖을 확인하니, 세상에 무슨 싸구려 일본 드라마도 아니고 구령대 한가운데에 일렉기타를 멘 신소희가 마이크 하나 들고 위풍당당 서 있었고, 그 옆에는 생전 처음 보는 희한한 분위기의 동급생이 포커페이스를 하고 서 있었다.

소희가 학교 창문에다 대고 왼손으로 특유의 삿대질을 해 가며 외친다.

“야 잘 들어!”

가뜩이나 우렁찬 기차 화통 목청에 교장 전용 마이크 라인을 사용하니 안 들을래야 안 들을 수가 없었다.

“오늘부로 플래닛셰이커에 베이스가 생긴다!”

애먼 동급생들과 선배들을 삿대질하던 소희의 왼손이 그 포커페이스로 휙 돌아간다.

따라서 모두의 시선도 그에게로 휙 쏠린다.

“송형직이라고 한다!”

쿵!

“이번 기말고사 직후에 한 건 할 테니까,”

쿠웅!

“그런 줄 알고 있으라고!”

쿠구웅!

“이상!”

왠지 이리저리 카메라로 왔다갔다 해야 할 것 같은 강한 임팩트의 외마디 연설이 끝나고, 신소희가 “가자.”라며 형직의 어깨를 툭 치고 마이크 라인을 정리하고 있는데,

“헉, 헉, 헥헥...”

3층에서 한걸음에 뛰어나온 표동철과 하형준이 구령대와 정문 사이에서 헐떡거리며 신소희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 맞다.”

둘 중 누군가가 먼저 입을 떼긴 뗄 건데 숨이 차서 둘 다 말을 못 하고 있는 상황임을 파악한 소희가, 허리에 오른손을 얹으며 그들을 내려다보고 일러준다.

“내가 너네한테 먼저 말하는 걸 깜박했네.”

애니메이션 제작

스튜디오 애니멀

음, 방금 내가 아까 그것이 한결같은 속도로 다가오고 있다고 했던가?

정정해야 할 것 같다.

다시 보니, 그것은 신소희와 하형준과 송형직과 표동철의 머리 위로, 지구로, 10년 전에 지났던 그 궤적을 타고―점점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지구방위고등학교 #1 이것저것 다가오고 있었다

제작

지구방위고등학교 입학처

새틀라이트

스튜디오 애니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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