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두 달 뒤[각주:1]면 전역 1주년이 됩니다. 참 보람차고 빽빽하게 지낸 한 해였습니다.
머리 꼬리 자르고 통보하자면, 제가 지금 잉여가 아닙니다.
주로 @SYWAM과 @theveryflier(그리고 애니메타 기록갱신)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는데, 이거 하고 나니 다른 거 할 여력이 안 남아버리는 반도의 흔한 고자라니! 내가 고자라니! 이십대 미청년. ㄳ
자연히 블로그 관리가 소홀해지고 있습니다.
방송국 가시내라든가 폰트 제작이라든가 번역질이라든가 영 못하고 있습니다. 그 점에 대해서는 몹시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죠시라쿠가 출동하면 어떨까? 여! 자! 락![각주:2]
하여간 좀 창조적인 일과 결과물로 여러분을 맞지 못하는 점 대단히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최근 현안들에 대해서 간단히 적겠습니다.
1. 레이디가가로부터 촉발된 교리와 성관념 갈등 문제: 나는 이것조차도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라고 봅니다. 이것은 관념적, 피상적, 추상적 인본주의와 근본적, 교조적, 부차적 신본주의의 대결구도입니다. 내 생각, 내 몸, 내 성별과 내 목숨이 내 것이라는 생각과 그렇지 않은 거라는 생각의 부딪침 말이죠. 보시는 바와 같이 여기선 논리적 타협점이 없습니다. 그리고 저는 동성애를 싫어하고 사람을 사랑하려고 합니다.
2. 총선 이후 진보진영 낙착 문제: 그들이 국민은 대변하지 않고 자기들을 대변하는데 당연히 스스로 걸려 넘어지게 돼 있었던거죠. 물론 과대평가된 진보신당의 지지도 문제였습니다. 이제 문제는 이명박을 반대한다고 모든 게 해결되는 건 아니라는 걸 얼마나 빨리 깨우치고 오답노트를 만들어 내느냐는 문제인데, 여전히 딴지일보는 정신 못차리고 모두가 병신인 줄 아는 정권을 병신이라 부르는 에너지 소모를 하고 있습니다.
기획이란 없던 일을 만들어내는 짓이다. 따라서 태반은 되지 않는다. 그게 현실이다. 바로 그것, 무로의 회귀, 보통은 실현되지 않는다는 현실과의 사투가 바로 기획이다. 그 싸움에서 이겼을 때, 이 세상에 꼭 필요했던 무엇이 하나 탄생하는 순간을 상상하며 전율과 경외감 속에서 기획하라.
제1강령: 혹해야 한다. 치명적인 매력이 있어야 한다. 보통은 재미와 우스움이지만 그 밖에도 오리지널함, 아름다움, 기본 욕구를 해소시켜 줌, 공감 등의 기본적인 인간의 선호가 존재하는데, 이것을 그 기획만의 별다른 모습으로 충족시켜 주는 능력이 필요하다. 이런 능력을 갖춘 것을 보고 혹한다고 한다. 절대 당신의 이름을 드높일 생각으로 기획해선 안 된다. 그런 사심이 투입된 것치고 근본적으로 혹하는 것을 나는 아직 찾지 못하였다.
제2강령: 될 것 같아야 한다. 될성싶지 않은 것에 투자할 바보는 없다. '되면 한다'라는 말은 결코 농담이 아니다. 그 기획에 투자하거나 투신할 사람들이 좋은 뜻으로든 나쁜 뜻으로든 기본적으로 취하는 태도가 바로 될성싶으니까 까짓 한 번 해 본다는 심정인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안 될 것 같으면 바로 어조를 바꾼다. 명심해야 한다. 만약 될 것 같지 않겠으면 될 것 같은 정도와 방향과 방법과 대상으로 바꾸어서라도, 될 것 같게, 그럴듯하게, 하려면 할 수는 있게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기획이 통과된다.
제3강령: 되어야 될 일이어야 한다. 보통 기획이란 아주 단순한 개인적 일차적 욕망 또는 갈구에서 시작한다. 그 일들의 태반은 굳이 이루어질 필요가 없거나 이루어져선 안 되거나 이루어졌을 때 별로 좋지 않았던 일이다. 그 기획이 실현되어야 하는 이유를 찾아라. 내 기준으로는, 인류 보편의 가치를 들먹일 수 있을 때까지 찾아야 한다. 듣기 좋은 말로 둘러대라는 뜻이 아니라 스스로가 납득하고 평범한 사람들이 납득할 만한 진짜 이유를 탐험해서 발견하라는 뜻이다.
제4강령: 내재적인 지구력이 있어야 한다. 지구력이란 대단한 힘이다. 무슨 일이든 똑같이 30년간 하면 TV에 출연할 수 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기획을 이끌어가는 근본적인 힘은 재력도 인력도 아니다. 기획 그 자체의 지구력과 치명적인 매력이 그 기획을 끝까지 끌고 가는 법이다. 1주 전에 꺼냈던 기획이 오늘 막막하다면, 당신은 기획을 한 게 아니라 개꿈을 꾼 것이다. 어떡하면 이것을 계속하여 이끌고 갈 수 있게 할까를 최우선 해결 과제로 올려놓고 풀어라. 여기엔 인력과 재원의 문제가 포함된다. 투자금이 없어 기획하지 못한다는 것은 틀린 표현이다. 기획에 장기적 생존 능력이 없어 보이니까 투자하지 못하는 것이다.
제5강령: 그 기획의 설명을 아주 길게도 아주 짧게도 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경험에서 나온 노하우. 요컨대 스스로 뭘 기획하고 있는 것인지 더 명확하고 철저하게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기획들은 반드시 거쳐야 하는 사전 전제 설정 설명이 있다. 이게 많으면 많을수록 설득력이 떨어진다. 딱 세 문장으로, 딱 두 문장으로, 딱 한 문장으로 그 기획을 설명해본 뒤 1000자 이상의 글로, 3000자 이상의 글로 다시 설명해 보자. 할 수 없다면, 지금까지 당신은 그냥 망상을 한 것이다.
제6강령: 혼자만 재밌어하는 것인지 끊임없이 점검하라. 이것 역시 아주 중요한 문제다. 여기서의 '혼자'란 기획자 본인만 뜻하지 않는다. 기획자 주변, 기획자의 근친, 기획자에 대해 다소나마 알고 있어서 객관이라 할 수 없는 모든 시선을 뜻한다. 객관적인 감상을 찾아라. 누군가가 욕에 가까운 비판을 하고 있다면 이는 매우 좋은 징조이므로 꼼꼼히 살펴 읽고 그 욕한 사람이 다시 더 욱할 만한 패치 버전으로 혹은 그 사람이 팬으로 변할 만한 어떤 반응으로 보답해 주어라. 그런 것이 없었다면, 당신은 학예회를 개최하고 있었을 뿐이다.
제7강령: 맨 처음 생각했던 것에 매달리고 또 매달려라. 당신은 그 맨 처음 아이디어 때문에 나머지 아이디어를 생각한 것이다. 절대 나머지 아이디어 중 일부 때문에 그 맨 처음 아이디어가 괜찮았던 것이 아니다. 수많은 망상 중 하나로 치부할 수 있었던 그 발상을 그렇게나 부풀리게 만들었던 그 최초의 아이디어를 잊지 마라. 또 기억하고 또 고집하라. 여건이 안 돼서 맨 처음 것은 실현하지 못하게 된다 할지라도, 하여튼 절대 잊지 말고 어떻게든 그것을 실현시켜 소원 성취해줄 것인지를 고민하라. 10년 이상 유지되는 기획에는 항상 초심이 지켜지고 있다.
제8강령: 말로 개괄할 시간이 있으면 실행해 본 다음 그것을 보라. 혼자 머릿속으로만 혹은 모두가 말로만 뭔가를 구상하는 회의실에서는 일이 될 것 같지만 사실은 될 일도 안 된다. '우리가 보고 싶어했던 그것'이 눈앞에 실물로 불완전하게나마 나타나면, 그전까지의 이러니저러니 하는 말장난은 아무 의미가 없어지고 논의는 바로 디테일로 넘어가게 되어 있다. 회의를 느닷없이 중단시키고 진척된 내용을 실현해 보라. 누워 있는 침대에서 일어나 앉아 불을 켜고 시작하라. 그것이 싫다면, 당신은 그냥 '나 이런 창의적인 사람이야' 운운 거들먹거리는 게으름뱅이에 불과하다.
제9강령: 일반 대중이 실제로 접할 분량의 최소 3배 이상을 제작하라. 한마디로 이것은 생각의 뿌리를 내리라는 의미이다. 식물의 잠재력은 뿌리에 있고 기획의 잠재력은, 나중에 따로 비하인드 설정이랍시고 공개하지 않으면 아무도 몰랐을, 표면에서는 보이지 않는 발상과 재료와 구상에 있다. 누가 알아줄 것을 기대하고 구상하지 말라. 당신이 혼자 재밌어할 만한 끝없는 비밀 이야기를 쓰지도 말라. 그 아이디어의 무의식을 만들라는 말이다. 프로그래머들 버그 잡는 심정으로 왜냐는 질문, 어떻게 그러냐는 질문을 천번만번 계속하라.
제10강령: 현실을 직시하고 인정하고 뛰어넘어라. 사실 하나. 현실에서, 당신의 기획을, 정말로 재밌게 지켜보는 사람은, 전혀 없다. 사실 둘. 현실은, 당신의 기획이, 없어도, 잘 굴러간다. 사실 셋. 현실에, 당신의 기획이 실현된다 하더라도, 변하는 건 없다.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한다. 당신은 천재가 아니다. 당신이 나타나서 이 모든 중원 무림을 평정할 수 있을 거라고 착각 좀 하지 말라. 비참하고 우스꽝스러운 진실이 있다면, 평범한 몇몇 인간이 아이디어 몇 개에 회까닥 돌아서 돈이니 평범한 가정이니 목숨이니 하는 것들을 팔아치워 그 발상에 죽자고 파고든 결과가 그 수많은 천재들이었다는 것이다.
It also goes on to say that he then would die and be buried in a rich man’s tomb. And that, then, he would resurrect from death and he would see the light of life and be satisfied. And he would be our humble, suffering servant through his life, death, burial and resurrection, bringing our gift of salvation.
그분이 죽은 후에 부자와 함께 있었도다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그는 사망에서 일어나시고 생명의 빛을 보고 만족하게 여기시겠다는 겁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겸손히 질고를 당하신 의로운 종으로 사시고 죽으시고 장사되시고 부활하셔서 우리에게 구원의 선물을 주신다는 거죠.
And then Jesus comes. And Jesus tells us that he is, in fact, a humble servant. And in this, I want you to see that Jesus was a rebel who was counter cultural. I know, in our day, rebel means sinner. But, everyone is sinning, so it’s no longer rebellious to sin, right? You’re just a conformist if you’re drunk, and naked, and driving around on a loud motorcycle, smoking cigarettes, and breaking commandments, and getting pregnant out of wedlock. Everyone’s done that. That’s so tired.
그리고 예수님이 딱 오셨습니다. 오셔가지고 하시는 말씀이, 자기는 겸손한 종이라시는 거에요. 그리고 여기서 여러분이 보셔야 할 것은 예수님이 반문화적인 반항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반항자라고 하면 죄인이라고 생각하죠. 근데 솔직히 다들 맨날 죄를 지으니까 이게 반항이 아니야. 안 그래요? 여러분이 술 먹고 밤에 놀고 폭주족 노릇하고 담배 피고 율법 어기고 혼외정사하고 사는 게 적당주의가 됐어요. 아주 지겨워, 개나 소나 다 하니까.
(Laughter)
(웃음)
If you really wanna be a rebel, get a job. Cut your grass. Read your Bible. And shut up because no one’s doing that.
정말 반항아가 되고 싶으시면, 취직해서 집 앞 청소하면서 성경 읽으면서 입 다물고 사세요. 그렇게 사는 사람이 없거든요.
(Laughter)
(웃음)
That’s rebellion. That’s the only rebellion left, okay? And we’re gonna encourage you to be counter cultural rebels like Jesus. And Jesus rebelled against culture and religion by coming as a humble servant because both culture and religion tell you not to serve, but to be served. And not to be humble, but to be proud. And Jesus came, in humility, to serve. He says this in Matthew 20:28. He says it himself. “The Son of Man”, which is a title from Daniel about Jesus being God, “The Son of Man came not to be” what? “Served.” We live in a service based economy. Many of you have service jobs. You get paid to serve people who walk in and act like they’re God.
그게 반항이죠. 이제 마지막 남은 반항이 이거 아니에요? 예수님처럼 이 시대 문화에 반항하시기를 도전합니다. 예수님은 시대의 문화와 종교에 반항하실 때 겸손히 섬김으로 반항하셨죠. 세상 문화와 종교가 우리한테 섬기지 말고 섬김을 받으라고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겸허하지 말고 허세 부리라고. 예수님은 오셔서 멸시를 받으시고 섬기셨죠. 마태복음 20장 28절 말씀에 "인자는", 그니까 다니엘이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말할 때부터 찾던 그 "인자는 섬김을" 뭐라 돼 있죠? "받으려 함이 아니라." 우리는 섬김을 사고파는 경제 속에 삽니다. 여러분 중 서비스업 하시는 분도 많고, 여러분이 돈을 벌려면 가게에 들어와서 하나님 행세를 하는 손님들을 받아야 되기도 하고요.
We live in a culture where the goal is to make enough money that people will serve you and religion exists in that same way, to get into spiritual authority so that people will serve you. Jesus says, “I didn’t come, though I am God, to be served, but to” what? “But, to serve.” God came to serve? This is absolutely unbelievable. And Jesus says, “And to give my life as a ransom or the payment for sin for many.” Jesus went to the cross and he served us. And Jesus served others during his life. He fed people. He cared for people. He healed people. He even washed the feet of his own disciples, which was the job of a poor slave. He even washed the feet of Judas Iscariot, a man who betrayed him and murdered him. There is no one as humble as Jesus. And there is no one who has served us as well as Jesus. And Jesus is still alive today. He hears our prayers. He answers our prayers. “He lives to intercede for us”, Hebrews says, and Jesus is still, to this very day, though he is our great God and Savior in glory, he remains, likewise, a humble servant.
우리가 사는 세상 문화는 돈 많이 벌어서 사람들을 서비스로 부리는 게 목표에요. 종교도 똑같아요. 영적으로 권위 좀 얻어다가 사람들한테 대접이나 받으려고 하죠. 예수님 가라사대, "나는 하나님이긴 하지만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뭐라고요? "도리어 섬기려 하고." 하나님이 섬기려 하고? 진짜 언빌리버블하죠? 계속 말씀하십니다.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를 섬기셨죠. 살면서 다른 섬김도 많이 하셨구요. 먹이시고 돌보시고 고쳐 주시고. 천한 아랫것들이나 하던 제자들 발 씻기기도 하셨고요. 자기를 팔아넘겨 죽일 가룟 유다 발까지도 씻기셨습니다. 예수님처럼 겸손하신 분이 없어요. 예수님처럼 우릴 섬겨 주신 분도 없고요. 예수님 지금 살아 계십니다. 기도 듣고 계세요. 응답하시고요. "그가 항상 살아서 저들을 위하여 간구"하신다고 히브리서에 써 있죠. 예수님은 오늘 이 시점까지도, 비록 영광의 구주이시며 만군의 여호와시지만, 또한 더욱 겸손한 의의 종으로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