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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개의 뮤직비디오

2013. 7. 14. 17:48
1. 고등학교 학예회 수준에 가까운 기량 부족과 예산 부족을 어설픈 병맛과 잔꾀로 슬쩍 덮으려 했다는 혐의를 받는 어떤 뮤비



2. 몇 달에 걸친 철저한 연습으로 허벅지까지 다쳐 가면서 훈련한 끝에 플레이타임 내내 열정적으로 기량을 뽐낼 수 있게 된, 오랫동안의 기획과 연출과 예산 지원으로 만들어진 다른 뮤비




3. 12명의 미청년들을 모아다가 그들이 늑대라는 것 한 가지를 각인시키기 위해 음향과 조명과 세트와 안무와 복장 등을 총동원해 프로듀싱한 대기업 보이그룹의 또 다른 뮤비




돈과 시간과 정성은 분명히 1보다 2와 3에 압도적으로 많이 투입됐을 터다. 그들의 소속사나 그와 관련된 각종 지표의 규모를 보자면, 1은 2나 3과 비교가 불가할 정도로 작은 스케일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2는 에로틱하고 '뜨거운' 안무와 서정적이고 차가운 노래가 끔찍한 괴리를 일으키면서 이도저도 아닌 것이 되었고[각주:1], 3이야말로 노래라기보다 chant와 SFX에 가까운 것의 끔찍함을 열두 남자의 남성미와 '있어 보이는' 세트로 슬쩍 덮어두는 배임(背任)을 저지르고 있다[각주:2]1은 저예산일지는 모르되 유효하며, 실력이 부족하다고 판독하기 쉽지 않을 만큼 간단하고 원초적인 군무를 계획적으로 선택했고, 그래서 차라리 2와 3보다 덜 끔찍하다[각주:3]요컨대 3이 공허하게 공격적이고 2가 무의미하게 혼란스럽다면 1은 추측 가능한 선에서 어설프다. 1을 덮어놓고 비난할 수 없는 이유이다. 어쩌면 그 5인조 여성댄스그룹이 갖지 못한 것은 규모뿐인지도 모른다.

규모는 필요를 보장해주지 않는다. 어떤 존재의 스케일이, 독립적으로, 그 존재가 만족시킬 수 있는 사람의 수를 선형 증가시키지 못한다는 말이다. 속지 말아야 한다. 모든 부가적인 것을 다 제한 뒤의 콘텐츠 자체를 즐기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그 기획사니까, 그 작곡가니까, 이렇게 세련된 비디오로 보니까 멋지다/예쁘다"라고 '조건반사'를 하고 있는 것인지 점검해 보라. 크레용팝은 그 점검의 척도가 될 것이다. 당신이 크레용팝을 그냥 별 이유 없이 꺼린다면, 당신이 당신의 아이돌을 '파는/핥는' 근거 역시 별 이유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그리고 우리는, 색색의 조명과 대규모 무대장치가 빙빙 돌아가는 방송3사의 생방송 가요 쇼를 보면서, 조건반사가 없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다.



4. 대략 33% 정도 동의할 수 있는 어떤 과격파의 의견





P.S. 이 글은 최신유행도 배우고 하면서 좀 스스로를 변화시켜야겠다고 맘먹은 뒤 처음으로 블로그에 쓰는 글입니다. 길면 2년 반, 정말 달라지고 싶습니다. 이건 그냥 잡설

P.S.2 여러분께서 이 글을 읽고 "헐 님 정말 어이없네요ㅡㅡ 존1나근거없이ㅡㅡ 우리오빠들 뭘안다고 잘난척이세요?"라고 절 욕하는 것은 매우 쉬울 겁니다. 그러나, 다시 말씀드리지만, 그것이 여러분의 팬심이 '화면빨', '말빨' 등의 능숙한 테크닉을 동원해서 계획적으로 조성된 외생(外生)의 것이 아님을 완전히 반증해 주지는 못할 겁니다. 사실은 그것 역시 또 하나의 조건반사일지 모르거든요.


  1. 낮에는 봉춤을 보며 흐뭇해하고 밤에는 노래로만 들으며 수심에 젖으라는 것인가? 일반 대중은 이 곡에 대한 '소비 경험'의 혼란을 겪고 있을 것임에 틀림없다. [본문으로]
  2. 사실 이것은 요즘 쏟아져나오는 남성댄스그룹들이 하나같이 클리셰처럼 답습하는 흉상(凶狀)이다. 막말로, '늑대'가 컨셉인 춤을 왜 야산에서 추지 않고 이딴 철강 재질의 인공물 속에서 으르렁거리는 건가? [본문으로]
  3. 더 좋다고는 절대 말할 수 없다. 모든 것을 감안하고라도, 거기서 조금 더 잘 할 수 있는 것들이 있음에도 하지 않았다는 채무불이행의 혐의가 남아 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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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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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에이티브 단상

2013. 6. 25. 0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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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진짜 어떻게 이런 그림을 잡았지?








주님의 학교

The school of Tirano 
0
감독
전상진
출연
전상진, 주명건
정보
다큐멘터리 | 한국 | 90 분 | -



아직은 공동체상영만 돌고 있는 모양이다. 다음 상영 어디서 언제 하지!

정말 간만에 볼 만한 인디다큐 하나 더 나온듯.



P.S. 이런걸 알게 해 준 무키 만수씨에게 감사 감사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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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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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처구니

2013. 6. 14. 01:37

1. 맷돌의 손잡이를 어처구니라고 부른다. '어처구니가 없다'라는 표현은, 손잡이가 없는 맷돌을 낑낑 돌리는 사람의 기분을 묘사하는 표현이다.


2. 멘탈이 붕괴된다는 표현은, 원래는 '힘듦', '지침', '소진됨', '자포자기함'을 일컫는 말이 아니었다. 전혀 납득할 수 없는 일련의 비논리 앞에서 어처구니 없음을 느낄 때 사용하는 표현이었다. 처음에는 모두가 '논리의 실종' 앞에서 멘붕했다는 말이다. 그렇게 따지면 실은 mentality라기보다 reason의 붕괴라고 해야 옳았을 것이지만, 어쨌든 대략 정신이 멍해진다는 의미가 통한다 뭐 그런 비슷한 이유로 언중은 '멘탈'을 선택했고 '붕괴'를 선택했다. 그리고 그렇게 우리는 가열차게 '멘붕'의 시절을 지나고 있다.


3. 기억하는가? 우리는 한때 '버닝'의 시절을 보냈다. "버닝한다!!"와 같이 주로 썼다. 아직 개인홈페이지가 유효하고 블로그 관리가 흥하던 시절, 트위터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던 2010년대 이전이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아무것에나 흥미를 붙였고 열심을 '불태웠다'. 흥미로운 것은, 지금의 '멘붕'에 해당하는 어감―넉아웃됨, 힘이 빠짐, 완전히 소진함―을 '버닝'이라는 다의어가 동시에 함의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뭔가에 흥미가 붙어도 버닝한다고 했고, 열심히 하고 있는 모습도 버닝한다고 했고, 자기가 새하얗게 불태웠을 때는 목적어 없이 버닝(burning)했다고 처연히 적곤 했다. 사실 이 표현이 공교롭게도 문법적으로도 몹시 적절하는 점은 주목할 가치가 있다.


5. 멘붕은 지치고 다치고 소진된 상태가 아니라 그저 어처구니가 잠시 빠져 있는 상태일 뿐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이 많은 청춘들의 어처구니를 뽑았을까? 당신이 뽑았는가? 아니다. 내가 뽑았는가? 아니다. 김난도 교수가 뽑았는가? 아니다. "제가 사회를 이렇게 만들었나요?" 우리는 '맷돌이란 원래 어처구니가 없는 것이다'라는 말을 책 제목으로 뽑아 베스트셀러로 팔아치운 한 교수에게 돌을 던질 수는 있었지만, 어처구니를 하나 구해서 꽂을 생각도, 누가 어처구니를 없앴는가 하는 반성도 하지 않았다. 어처구니 없이 지금껏 돌려 온 맷돌이 너무 무거웠던 탓이다.


6. 뭐가 불붙어 타려면 (즉 '버닝'하려면) 연료와 산소와 열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들의 문화와 정신세계에선 이 셋 중 무엇도 무한하지 못했다. 버닝할 대상(연료)도 노멀라이즈되어 별로 없어져 버렸고(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예를 들자면, 혹시 아직도 플래시 애니메이션을 만드시는 분이 있는가?) 버닝을 할 공기(분위기)도 없어져 버렸고 사회 전체가 금융위기의 한파를 꽝 맞고 나자 아무것에도 열기를 일으키지 못하게 되었다. <호기심 천국>은 끝났다. 우리의 <스펀지>는 초고속 카메라 영상을 빨아들일 만큼 빨아들였다. 버닝은 지속되지 못했고, 남은 것은 잿더미뿐이었다. 우리는 정말로 힐링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필연적이다.


7. 어처구니 없는 일이 너무 많이 일어났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KorUS FTA를 추진한다고 한 그때부터, 대한민국 사회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어처구니가 없어졌다. 교양은 사라지고 층간소음은 심해지고 강간 뉴스는 정권 비리 뉴스보다 더 신나게 방송되고 비난과 분노와 조롱과 무례와 몰상식과 폭력과 공갈과 불법과 천박함이, 다이내믹스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조차 피로감을 안겨줄 정도로, 그야말로 폭주하였다. 이제 이 나라는 멘붕을 하지 않는 것이 이상한 곳이 되었다.

정상인이라면 이런 나라의 이런 지옥도에 적응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중요한 사실이다. 어처구니가 없어진 대부분의 경우는 개인적이지 않다. 멘붕의 원인은 당신에게 있지 않다. 논리를 가지고 비논리를 상대하려다 겪는 증상이 멘탈 붕괴이다. 그리고 원래 '다이다이'로 까 보면, 논리와 비논리가 맞서면 논리가 이겨야 한다. 그렇다면 멘붕을 겪는다는 것, 비논리와 맞선 논리가 무너져 버리는 것, 은 완전히 비정상적인 일이고 철저하게 사회구조적인 요인에 의해서만 벌어지는 사태이다.


8. 지금의 '힐링 열풍'(아이고 주여...)은 결코 멘붕에 이어진 것이 아니다. 오히려 버닝에 이어진 것이다. 멘붕은 노무현-이명박 시절을 지나고 스마트폰 약정노예 시절을 지나며, 버닝의 시절과 별개로 찾아온, 거대한 '어처구니 도난 사건'에 불과하다. 멘붕을 힐링한다는 개소리는, 요컨대 뺨 때리고 보약 주겠다는 격이다. 그래서 이 말이 그토록 꼴사나운 것인지도 모른다. 멘붕은 우리가 당한 것이고, 힐링은 우리가 스스로에게 베풀거나 받아야 하는 것이다. 멘붕은 비논리의 물량 공세로 논리를 무릎 꿇리는 거대 담론의 일이고 버닝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미시적인 차원이다. 보다시피 매우 명백하게, 멘붕과 힐링은 상관 관계가 있을 수 없다.


9. 힐링 유행이 끝나면 그 다음부터 사람들은 다시 건실하게 뭔가를 해나가기 시작할까? 그러지 않을 것이다. 아직 어처구니를 찾아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멘붕'은 힐링 유행이 끝나고도 한동안 계속될 것이다. 미래창조과학부를 보라. 한국어로 구성된 트위터 타임라인을 보라. 일베를 보라. 우리는 건전한 논리와 그것을 가지고 하고 싶어하는 건강한 욕구를 잃어버렸다. 그리고 비논리를 융단 폭격하면 그 어떤 논리의 빨치산도 집어삼킬 수 있음을 깨달은 저들은, 십년을 못 갈 그깟 권세와 재물 좀 얻어 보겠다고 별 말도 안 되는 억지들을 마구 쏟아부어 우리의 얼마 남지도 않은 멘탈을 붕괴시키려 들 것이다. 당장 남양유업 대리라는 사람들이 어떤 이유를 들어 밀어내기를 해냈는가 되돌이켜 생각해 보라. 일말의 납득 가능한 논리가 있었느냐 말이다. 우리가 분노하는 지점은 이런 것들이다: 어떤 정책에도, 어떤 판매전략에도, 어떤 범죄에도, 어떤 오락에도 논리가 없어 나의 멘탈을 지킬 수가 없다는 것, 거기서 오는 좌절감. 이 좌절감을 공급할 필요가 있다고 느끼는 작자들이 멸종하지 않는 한, 여러분이 멘붕할 일은 아직 한참 더 많이 남아 있다.


10. 어처구니를 꽂으면 맷돌은 즉시 돌려볼 만한 것이 된다. 물론 맷돌질은 힘들다. 그러나 어처구니가 있어야 맷돌을 돌리든 말든 할 수 있음은 자명하다. 맷돌을 돌리다 허리가 아프면 잠깐 쉬면 되지만, 어처구니가 있느냐 없느냐는 정말이지 전혀 별개의 문제인 것이다. 그렇다면 멘붕을 힐링한다는 말은 맷돌에 어처구니가 없으니 허리 펴고 숨 좀 돌리자는 이야기일 것이다.

멘붕에 대처하는 것은 힐링이 아니라 우리의 멘탈이 건실하게 세워졌었고 또 다시 재건될 수 있음을 확인하는 냉정하고 지겹고 명징한 재확인이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구체적인 과정은 일련의 논리 바르게 세우기와 교양 되찾기에서 시작될 것이다. 남한비판=빨갱이 따위의 아무 논리가 없는 공식 앞에서 우리는 멘붕하며, 아무 매너도 배우지 못한 무례한 인간 앞에서 우리는 어처구니 없음을 느끼는 것 아닌가. 저 논리 없는 도식들, 무례를 쏟아내고도 뻔뻔하게 잘 살 수 있었던 인간들, 이것들이 발붙이지 못하는 나라를 만들어야 어처구니가 찾아질 것이고 멘붕도 잦아들 것이다. 우리가 지난 십몇 년 간 지겹게 느껴온 그 기절낙담은, "멘붕"은, 사실은 어처구니 없음일 뿐이며, 하루빨리 그만두어야 할 소모성의 백해무익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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