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그럴 일이 있어서 저녁 6시 반경에 신촌 유플렉스 앞에 있었다. 흰 티에 민트색 하의로 깔맞춰 입고 나온 20대가 한 스무 명 정도 모여들고 있었다. 그러더니, 스피커가 설치되고, 그들 중 여자 다섯 명이 가운데로 나와 레드벨벳 최신곡에 맞춰 커버댄스를 정말 능숙하게 선보이지 않겠는가? 민트색 치마는 치어리더 스타일이어서 있는 대로 나풀거리고, 표정은 어쩜 저렇게 프로페셔널하게 미소를 유지할 수 있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고정돼 있는 광경을 봤다. 적잖은 남성 행인들이, 흐뭇한 미소를 띠고 그 공연을 구경하고 있었는데,
왠지 우리가, 그들이, 모두가 조금 가엾다고 생각했다.
그 5명의 훈련된 웃음과 배운 대로 추는 춤에, 아니 정확히 말하면 큰 의미 없이 웃는 시선 처리와 사람 홀리는 치마의 비주얼 단지 그 둘 때문에 이런 무대에, 여성 아이돌에 홀리는 사람들이 있겠다 싶었다. 사람들의 주목과 카메라의 포착 없이는 성립이 되지 않는 그 ‘섹시도발’을, 한순간 진실한 것으로 믿어버리고 욕망하게 되는 것 말이다.
하지만 동아리방을 드나들 때마다 춤동아리의 연습을 봐 온 나는 안다. 군무라는 건 심각하고 따분하고 진지한 과업이다. 저 민트색 치마는, 지금이야 길거리 깜짝 공연에서 최고로 주목받는 주인공일지 모르지만, 그 직전까지는 그냥 딱 한두 번 입어보고 어디 박스에 다시 개켜두었을 물건이고, 아마도 저 다섯이 저 “섹시 댄스”를 연습하던 대부분의 시간에 그들은, 내가 봐 온 게 일반적이라면, 아마 헐렁한 츄리닝 바지 차림으로, 전혀 섹시하지도 도발적이지도 않게 마냥 고생하고 있었을 거다.
다만 그들이 배운 대로 따라했을 그 춤, 그들이 수도 없이 들었을 “Give me that give me that icecream cake!” 따위 가사가 포함된 음악을 제공한 자들의 저의에 대해서는, 다시 한 번 크게 의심하게 된다. 뭐 하자는 것일까. 더 많은 5인조 여성팀이 더 확실하게 이 춤과 음악을 따라하게 만들면, 더 나은 세상이 온다고 믿는 것일까?
하! 그럴 리가 어딨어? 이번 “시즌”에 “애들”을 “굴릴” 때 쓸 “최신곡”이 뭐든 하나 필요하니까 팔아치우려고 즉석 떡볶이로 볶아내 놨겠지! 육체노동과 감정노동의 복합을 본 사람들이 괜히 성욕이나 일으키는 거대한 오해와 허위와 가공의 세상이 되든 말든, 음원 수입에 행사 출연료만 두둑히 받아 챙기면 그만일 테지?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떼놈이 챙긴다더니!
선비질을 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춤을 추거나 보는 것을 진심으로 좋아한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춤은 필요하다. 문제는 그게 허구화되고 우상화되어 소외될 때다. 약 4분간 숨가쁘게 공연된 그 춤에서, 정말 이 동작이 필요한가? 싶은 순간이 적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딱 하나 목적이 있긴 했던 것 같다. 관객에게, ‘지금 내가 당신에게 진심으로 애교를 부리고 있다고 믿어 주세요’의 신호를 보낸다는 그 한 가지 목적. 하마터면 나조차도 그 목적을 달성시켜 줄 뻔했으니, 그 자리의 많은 사람들은, 우리는, 뭐 오죽하겠는가. 이런 식의 것들이 밤낮 없이 유통되는 세상에서 성추행, 성폭력, “맞다 개같은년” 운운하는 방송이 없기를 기대할 수 있을까.
5인조 무대가 끝나자 주변에서 대기하던 20여명의 동료들이 합류해 다음 공연을 시작했다. 이제 그만 이동을 해야 해서 자리를 뜨다가, 문득 그들의 가방으로 추정되는 가방의 더미가 쌓여 있는 것을 보았다. 어제 그 저녁 시간 게릴라 공연의 자리에서, 그들의 춤이 뭘 의미하는지를 맨 처음부터 지켜봐서 아는 것은 오직 저 맥없이 널브러져 있는 가방들뿐이었다. 그리고, 천만 당연하게도, 아무도 그 가방 더미에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이제부터 그들이 딱 한 번 보여줄 잠깐의 쇼로만 사태 전체를 받아들이고 싶은 사람들과, 그렇게 하라고 설계된 “둠칫둠칫”만이 가득히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