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모르기 운동

2007. 11. 29. 13:48
여러분, 우리 모두 모릅시다. 모르는 사람이 됩시다. 참으로 모르는 사람은 또한 참으로 알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르는 사람은 자기 분수를 아는 사람이요, 모르는 사람은 자기가 알지 못하는 바를 아는 사람이요, 모르는 사람은 스스럼없이 세상에, 사물에, 아(我)와 타(他)에게 물어볼 수 있기 때문이요, 모르는 사람은 아는 체한 사람보다 입장이 나음입니다.
서양에서는 대체로 모른다는 말을 알지 못한다(do not know 따위), 혹은 알지 않는다고 표현하는 듯합니다만 이것으로는 부족합니다. 이는 모르는 척할 뿐이요 또한 아는 척할 뿐입니다. 몰라야 합니다. 아주 몰라야 합니다.
언제부터인지 사람들은, 퍽이나 많이 알기 시작했습니다. 그렇지만 무엇인가를 좀 알아 가면서 사람들은 어느 새인지 모르는 법을 잊은 듯합니다. 대신 겉멋만 들어, 아는 체하는 법을 배우고 익혔습니다. 이에 따라 이른바 '앎'이라는 것이 갈사 상태에 치닫게 되었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온갖 매체와 각양 사람들이 끝없이 많은 정보와 지식을 주는데, 이것이 '앎'이라면 오죽 좋겠습니까마는 그렇지가 않게 되었습니다.
옛적 톨스토이라는 현자가 있어서, 어떤 이야기를 남기고 그 이야기를 '지옥의 붕괴와 그 부흥'이라 이름하였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한 귀신이 말합니다. 닭이 기장낟알을 못 먹게 하려면 그 위에 다른 곡식을 한까득 부어놓으면 된다고 말입니다. 우리는 이른바 지식과 정보라는 것에 푹 파묻힌 '앎'을 쪼아먹지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뿐이면 다행입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알고 싶다고 진심으로 여기는 마음, 바로 '모름'이 또한 한까득 얹힌 지식과 정보 속에서 앎과 함께 덮여 버린 것입니다.
톨스토이보다 앞선 시대 그러니까 기원전 2년쯤부터 기원후 30년 정도까지 살다 간 분께서는, 온갖 수수께끼를 잔뜩 던졌더랬습니다. 그의 가르침을 곁에서 듣던 열두 사람이 물었을 때에 그분이 이렇게 이르셨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이 비밀을 알까 하여 내가 비유로 말했다. 옛날 선견자들도 너희가 지금 보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러니 너희들은 복이 있다." 이 열두 사람은 몰랐던 사람들이어서, 또한 수수께끼 속의 앎을 받아먹을 수 있었다 합니다. 이분보다 더 옛날 사람인 세네카라는 철학자는, '나는 모른다고 말하는 것이 전혀 부끄럽지 않다, 오히려 모른다고 말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야말로 부끄러워해야 한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여러분, 모릅시다. 모르는 사람이 됩시다. 물론 모두를 알 수 있다면 그건 거짓말입니다. 그렇지만, 진정 모를 줄 아는 사람이야말로 참된 앎을 얻어 좀더 풍요롭고 아름답고 빛깔 있는 삶을 얻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P.s: 형이상학 강의 듣는데 이런 얘기가 나오더라. "인간은 질문하는 존재이다. 질문으로서의 질문이야말로 형이상학을 가능하게 하는 단서이며 인간의 초월적(형이상학적) 사고를 가능하게 한다."[각주:1]
  1. 형이상학의 가능성에 대한 E. 코레트의 논증. [본문으로]

'1 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려운 말의 권력  (2) 2007.12.01
UCC에 던지는 물음표  (4) 2007.12.01
지식의 옥, 지식의 공원  (0) 2007.11.29
국기에 대한 경배  (0) 2007.11.29
커뮤니티의 생태계라고?  (2) 2007.11.28
Posted by 엽토군
:

칠판에 낙서를 하다 말고 황급히 시침을 본다. 낙서를 지우는 것도 잊고 부리나케 뒷문으로 빠져나간다. 탈옥이다.
다행이다. 문은 열려 있었다. 나는 공원으로 성공적으로 진입했다. 평화롭다. 햇살이 비친다. 옆에는 사서 교사를 대신하는 친구놈이 얌전히 앉아 책을 보다 말고 "왔냐?" 인사한다.
책이 꽂혀 있다. 소파가 사람을 기다린다. 모니터 열두 개가 빛을 발한다. 점심 나절의 일광(日光)은 썩 좋다. 잡지들이 앉아 있다.
이곳은 본디 지식과 정보의 공원이로되, 사람들이 그런 이름을 별로 즐기지 않아 '도서실'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추억해 본다.
내가 라이브러리란 곳을 처음 겪었던 게 그 언제던가?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그 때의 문화적 충격은 이루 말로 하기가 어려운 것이었다.
의자들이 높았다. 그러나 거기 앉아 내가 보고 싶은 것 보는 데 아무도 잔소리하지 않는다. 시간이 좀 빠르게 간다. 만화와 학습만화, 어린이 과학도서를 읽노라면 길거리에서, 운동장에서 공이나 차고 있을 동년배가 전혀 부럽다거나 내가 초라하다던가 느끼지 않았다.
내 발로 찾아가서 손수 고른 책을 종류에 상관없이 언제까지고 보고 읽고 즐기다가 시간이 되면 아쉬워하던 그 때. 그때부터 나는 도서관과 도서실을 예찬하는 이가 된 게다.

이 시대의 학생들이 매일 아침 지식의 옥으로 출근한다.

감옥. 자유는 없다. 뒤집기도 없고 변혁, 심지어 수정과 의지도 없다. 오로지 굴종의 내면화와 지식의 노화만이 착착 진행되는 곳이 있다.
옳고 뚜렷한 지식과 정보가 있어야 하지만, 소위 '절대불변의 진리'라는 것 아래 틀리고 뒤떨어진 것들도 정당해져서 바로잡히질 않는다. 앎의 기쁨 운운하는 것은 개소리다. 뭘 배우는 것이 하나도 즐겁지 않다. 사상과 정보를 억지로 넣어서 수치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과학 교과서의 실험 장면은 화석이 되었고, 미술 교과서의 그림들은 예술이 아니라 실기평가의 전형이다. 두꺼운 언어 교재에는 감상이 없는 대신 밑줄과 모범답안만이 복사되어 있다. 대화와 타협을 가르치는 교과서를 들고 있던 교사가 다음 날 가위와 자를 들고 돌아와서 젊은이들을 틀에 넣고 재고 째고 비튼다. 젊음은 늙어가고 지식엔 거미줄이 친다. 배움이며 생활이며 모든 게 무기력해질 즈음 출소하게 되지만, 지금껏 밀어넣은 지식은 모두 녹초가 되어 쓸모가 없고 갈 곳도 없고 기쁘지도 않다. 이 세상엔 지식의 옥이라는 곳이 있다.

그리고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지식의 공원으로 뛰어들어가고 싶다.

모두가 제 발로 찾아들어온다. 누구도 뭐라고 간섭하지 않는다. 정답과 자신의 생각을 끝없이 대조하며 왜 난 그르고 이건 옳을까 고민하다가 무릎꿇는 모습도 없다. 시키는 이도 없고, 부림받는 이도 없다. 저마다 고개는 다른 곳으로 돌리고 있지만, 결국 모두가 하나같이 앎을 바라보고 있다. 그것도 스스로! 최신 뉴스부터 고전명작까지가 총망라되어 있지만 교사용 지도서는 없다. 모두가 교사고 모두가 학생이다. 지식이 살아 숨쉬며 자유롭게 노닐고 마음껏 활개를 친다. 그래서 사람들의 눈과 손끝도 살아 있다. 학교가 지식의 감옥이라면 도서관은 지식의 공원이라고 할까?

나는 학교가 지식의 공원까지는 아니더라도, 감옥만은 되지 않기를 꿈꾼다. 사실, 몇천 명이 한꺼번에 들어가 지식을 누릴 수 있는 공간이 어떤 모습이 될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어쩌면 감옥밖에는 달리 수가 없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꿈꿔 본다. 지식이 어딘가에 갇혀서는 안 될 존재임을 깨달은 이상.

2006년 3월께에 썼던 글. 와, 꽤 됐네...

'1 내' 카테고리의 다른 글

UCC에 던지는 물음표  (4) 2007.12.01
모르기 운동  (0) 2007.11.29
국기에 대한 경배  (0) 2007.11.29
커뮤니티의 생태계라고?  (2) 2007.11.28
어느 날  (4) 2007.11.28
Posted by 엽토군
:

국기에 대한 경배

2007. 11. 29. 13:30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 현행 국기에 대한 맹세 (또는 국기에 대한 경례)


주의 진리 위해 십자가 군기 하늘 높이 쳐들고 주의 군사 되어 용맹스럽게 찬송하며 나가세
나가세 나가세 주 예수만을 위하여 목숨까지도 바치고 싸움터로 나가세
- 한국찬송가공회 지정 찬송가 400장 1절 (작시: D. W. Whittle)

남(아니 적이라고 하는 게 옳겠지?)들이 뭐라하든 무조건 옳으니까 몸과 마음을 바친다. 무조건 옳은 이유는 사실 잘 모른다. 그렇지만 그게 막연히 좋은 것 같다. 주변 동무들도 다 그렇게 한다. 과학적이고 확실한 증거는 없지만 아무튼 줏어듣기로는 우리네가 최고다. 이런 특권과 은총에 두고두고 감사 찬송을 하지 않으면 배신자다. 괴롭지 않은가? 이렇게 무지몽매한 종교는 종교도 아니고, 이것처럼 황당한 애국심이 있어선 안 된다.

그른 것은 그르다고 말할 수 있고, 옳은 것은 옳다고 여겨 의심치 않을 만큼 판단력이 충분한 사람의 진심어린 충성이야말로 종교생활의 발전이나 나라의 앞날을 위해 절실히 필요한 것이다. 반대로, '나의 충성은 가치가 있는가' 하는 질문을 안 하게, 혹은 못 하게 하는 집단일수록 불행하고 잘못된 길로 빠지는 법이다.

하인스 워드에게 지나치게 많은 렌즈를 들이대는 언론과, 경쟁력 강화를 지적받고 있는 '한류'에 대한 우리네 맹목적인 신용 그리고 우리가 초딩 때부터 멋모르고 읊었던 국기에 대한 '경배'에서―기형적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애국심, 아니 파시즘을 본다.

P.s
초등 모교에 가 보니까 국기에 대한 '맹세'라고도 하더라. 맹세! 초등학교에서 그런 어휘를 쓰다니. 그냥 웃음만 나온다.

'1 내' 카테고리의 다른 글

UCC에 던지는 물음표  (4) 2007.12.01
모르기 운동  (0) 2007.11.29
지식의 옥, 지식의 공원  (0) 2007.11.29
커뮤니티의 생태계라고?  (2) 2007.11.28
어느 날  (4) 2007.11.28
Posted by 엽토군
:

대략 감동

2007. 11. 29. 13:23
Q. 과학자가 꿈인데요, 부산영재고를 지원했었는데 부산영재고가 좋을까요, 아니면 서울에 있는 과학고가 좋을까요? 고민하는 이유가 가서 수업을 따라갈수 있을까 하는것하고...(소문은 들을수록 너무 무서워서....) 게다가 인문계로 가는게 이번 내신 등급제때문에 어떨까 하고 그래서.... tigger10 님이 8/4 3:12 am 에 올린 질문

이 질문에 한때 이런 친절한 답변이 올라왔었다.


5)
부산영재고, 시험 본다는것 자체가 좋은 경험이 될것 같네요..... -- tigger10 8/5 1:48am



그리고


6)
(잠깐.... 이거 내글이었지!) -- tigger10 8/5 1:48am


7)
(..) ....[조용히 엄지손가락 세운다.] -- 향은 8/5 7:05pm





날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모습을 웃어넘겼다. 그렇지만 저 격려는, 그뿐으로 끝나지 않았다.


14)
결국엔 시험을 봤었다는..... 떨어질 확률이 30%가 넘는다는 압박 -- tigger10 8/11 11:36pm


22)
붙으면 아무데도 더이상 시험을 못쳐요... -- tigger10 8/31 12:45am



싸움과 걱정의 시간을 지나 드디어


23)
붙었습니다.. 고맙습니다. -- tigger10 9/23 2:17am




...그렇다.

자신을 격려하는 일은 참으로 중요함을 알 수 있다.

'2 다른 이들의'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비를 가리키는 우리말들  (0) 2007.12.01
2006년 7월 '인권' 특집2 中  (2) 2007.12.01
어떤 외국어영역 지문  (2) 2007.11.29
내가 나를 위로하는 날  (2) 2007.11.29
생리병결에 관한 어떤 의견  (2) 2007.11.29
Posted by 엽토군
:
Not a single year passes in Korea without confusion of one kind or another exam for college entrance. Even by this Korean standard, however, this year's College Scholastic Aptitude Test seems to be more messed up than usual. Even though there was rumor that there would be cheating, the government didn't take any practical measures to stop it. In addition, after cheating, in fact, did take place, the government haven't said what it would do next year to prevent this kind of cheating.
To make matters worse, major differences in the degree of difficulty among some electives have resulted in controversy over fairness levels. In one extreme example, differences of up to 37 points in standard scores existed between two students with full marks in to different electives. So much has come to depend on which electives to choose rather than the effort in study or the level of performance. Little wonder many are now asking whether this is a state exam or a lottery.
The government should no longer treat the nation's youth as guinea pigs in educational experiments. It's imperative to improve the College Scholastic Aptitude Test system, which will remain the mainstay of the college admission system for the time being. A state test more than once a year and use of a "question bank" with accumulated experience could be included among some options for improvement.


2005년 3월 중앙모의고사 외국어영역 지문이었다고 함.

'2 다른 이들의'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06년 7월 '인권' 특집2 中  (2) 2007.12.01
대략 감동  (2) 2007.11.29
내가 나를 위로하는 날  (2) 2007.11.29
생리병결에 관한 어떤 의견  (2) 2007.11.29
이어령 교수의 강좌 중  (2) 2007.11.29
Posted by 엽토군
: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799)
0 주니어 PHP 개발자 (6)
1 내 (326)
2 다른 이들의 (252)
3 늘어놓은 (37)
4 생각을 놓은 (71)
5 외치는 (76)
9 도저히 분류못함 (30)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달력

«   2024/0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