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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터, 우유팩
(C)2005, 김어진


안복진은 남학생이었다. 그는 1cm도 되지 않는 머리카락 때문에 짱구임이 잘 보이는 두상이었고 비쩍 마른 팔다리에 눈만 유난히 컸으며 이는 고르지 못했다. 그의 말로는 매일 아침 열심히 이를 닦고 온다고 했지만, 자주 그의 머리카락 위에서 비듬을 볼 수 있었다. 그의 행동은 언제나 어눌했다. 어휘력은 초등학교 6학년 수준에 머물러 있었고 교실마다 누군가는 그렇듯이 급식 먹는 속도도 늘 느렸다. 선착순 줄서기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체육경기도 늘 꽝이었다. 무슨 행동의 이유를 말해보라고 하면, 그는 늘 알아들을 수 없는, 또는 잘 이해가 가지 않는 이유 때문에 그랬노라고 대답했다. 심부름을 시키면 고분고분 하기는 하는데,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는 일이 흔했다. 안복진은, 그를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칠삭둥이란 저런 것이려나? 하고 한 번쯤 생각하게 했다. 게다가 그의 가정에 문제가 있는 것인지 뭔지는 몰라도 그는 수업에 별 흥미가 없었다. 학기 초에는 아무도 모르는 이유로 무단결석을 하도 심하게 해서 선생님들이 골치를 앓은 바가 있다. 중학교 교실의 어디에서나 이런 학생은 꼭 한둘 있게 마련이다. 안복진, 그야말로 꼭 그런 꼴통집단의 견본이었다. 그런 그였기에 그는 이것저것 교실의 궂은일이라면 자연히 도맡게 되었다. 다행히 본인도 그다지 싫어하지 않았으므로 우리는 그냥 그저 그런 녀석이려니 하고 보아 넘겼다. 따지고 보면 안복진 그가 우리에게, 또는 사회에, 또는 인류에 무슨 죄지은 바가 있는가. 다만 좀 졸고, 학교 가끔 빠지고, 행동거지 엉뚱하고, 위생 조금 불량하고, 그 정도. 그만하면 중학교 정도의 사회에서는 참아줄 만한 정도다. 그래서 그냥 모두가 암묵적으로 그런 놈이려니 했다.
그리고 또 하나 중학교 교실마다 한둘 떠맡아야 하는 필요악적 존재가 2학년 5반에 하나 더 있었다면, 그건 아마 이지호와 그 패거리였을 것이다. 이런 무리들에 대하여 몇 마디 짚고 넘어가자. 어느 누구라도 중학교 생활에 있어 이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런 것.
“야, 배복!”
하루는 그들이 점심을 다 까먹고 나서(사실 이런 패거리들은 점심밥도 절반 이상을 남긴 뒤 학교 밖으로 빠져나가 무엇이든 돈을 주고 사먹어야 직성이 풀리거니와), 아직도 식판을 기울이고 있는 안복진(일명 배복이지만 왜 이런 별명인지는 알려진 바 없다)을 불렀다. 그는 국에 푹 담근 윗입술을 식판에서 떼고, 눈을 치켜뜨며 자신의 앞쪽에 앉은 목소리의 주인공에게 갔다. ‘반삭’ 즉 절반만 삭발한 헤어스타일 뒤통수에는 구멍(이른바 ‘땜빵’)이 성냥개비 모양으로 찍 못나게 박혀 있고, 작으나마 또릿또릿한 눈, 콧잔등에는 상처가 아직도 아물지 않은 이지호는 두 다리를 책상에 똑바로 올려놓고 자기와 뜻이 맞는 놈들 몇과 함께 뭐라고 지껄이다가, 뒤돌아도 보지 않으며 안복진을 부른 것이다. 그가 거기까지 갔을 때, 그는
“야, 배복”
“왜 불러?”
“이 개자식, 너 말투 재수 없다?”
‘개자식’은 싸움꾼 이지호의 전형적인 욕이었다. 그건 그렇다 칠 수 있는데 아니꼽게 말투라니 뭔가.
“왜? 뭐?”
이것이 안복진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의사 표시라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말투 고쳐, 이 개자식아. 그건 그렇고, 야. 너 먹을 거 있냐?”
“먹을 건 왜?”
“아, 이 개자식이 진짜 말투 고치라면 고치지!”
“알았어.”
“먹을 거 있냐니까? 대답해 짜샤.”
“없어.”
“껌도 없냐?”
“없어.”
“아우, 이 개자식이 그냥...”
하면서 그는 천천히 다리를 내려 일어났다. 그의 주변에 둘러선 서넛은 짠 것처럼 다들 외투 주머니에 손을 깊숙이 찔러 넣고 있었다. 이지호는 일어나, ‘배복’의 하복부를 좀 때렸다.
“이게 진짜. 말투 너 고치랬지?”
안복진이 이지호에게 맞는 것은, 마치 교장선생님이 훈화를 할 때마다 주제와는 아무 상관도 없이 그냥 생각나는 대로 옳지도, 적절하지도 않은 일화를 막 이야기하는 것과 흡사한, ‘당연한 문제’였다. 그러니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잠시 후 안복진은 다시 제자리에 앉아, 식사를 마쳤고, 급식차는 잠시 후 왔던 길로 돌아갔다. 이지호 패거리도 어디론가 나가버렸다. 안복진에게는 그걸로 고만이었다. 다만 하루빨리 3학년이 되어 이지호와 결별했으면 하는 것이 그의 바람이었을 수 있겠다.
그렇다. 이것이 학교에 포진해 있는 불량배들의 전형 또는 모범이요, 교실마다 독버섯처럼 자리 잡은 한인들의 작태다. 그렇지 않은가? 공부를 잘 하길 하나, 끼가 있기를 하나, 그렇다고 (뭐가 됐든지)자기 소신과 가치관이 뚜렷하길 하나. 기껏 할 수 있는 일이라야 고작 진종일 듣는 가요를 똑같이 흉내 내며 음높이 못 맞출 때마다 저들끼리 시시덕거리고, 되는 대로 욕설하고, 인기 연예인을 생각 없이 모방하고, 맘에 안 들면 부모고 뭣이고 뒤돌아서서 단체로 그냥 병신 취급하고, 줏대도 없이 (그나마도 백주대낮에는 결코 이러지 않으나)그저 떼거리로 몰려다니며 어떻게 구한 것인지 계속해서 돈과 술과 담배를 꺼내며 겉멋 꾸미기에만 전연 미친 집단들. 어떻게 하면 TV와 인터넷 소설에서 보았던 것처럼 놀아볼 수 있을까, ‘우와 XX, X나게 폼 난다’ 따위 한심한 망동과 지독한 사상뿐인 왈패들. 그래도 어떻게든 고등학교는 들어가는 놈들인데, 그나마도 오래 못 가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자취를 감추기 시작한다. 둘 중 하나다. 퇴학(또는 자퇴), 아니면 공중해체. 사회에서는 더욱 찾아볼 수 없다. 그나마 학창시절을 아니꼬워하며 견뎌 온 인걸들이 제몫을 할 뿐, 뭔가 깨우쳐야 할 때 아무것도 모르고 겉멋들이기에 눈멀어서 동분서주 돌아다니다가 결국 어디론가 그렇게 사라지는 게 그들이다. 어찌 보면 불쌍한 족속들이다. 생각해 보면 구제받아야 할 중생들인 셈이다. 그들이 한 마흔다섯 살쯤 되면, 쉰여덟 살쯤 되면 뭐라고 말하겠는가? 왜 그런 우화가 있지 않은가? 망나니 자식이 사형장에 끌려가기 전에 어머니 귀를 이로 꽉 깨물며 이르기를 ‘어째서 날 이 지경이 되도록 내버려뒀느냐’ 했다더라. 참 그 우화가 지금 마음 아프게 회상되는 이유는 뭘까? 그런 이야기는 이쯤 하자.
또한 안복진은 5반의 물 당번이었다. 물 당번. 주전자에 식수를 채워오는 직책. 주전자에 물이 있느냐 없느냐는 안복진의 존재여부를 확인하는 유일하다시피 한 요소였다. 여름날만 되면 물주전자의 필요성은 절실해진다. 특히 안복진 없는 날에는, 주전자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누군가 양심 있는 이가 대신 물을 받아와주기를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물 당번이란, 참 귀찮은 일이어서 누가 시켜야만 하는 일이었지 결코 누군가가 자발적으로 도맡는 일은 거의 없는 것이다. 그런 일을 안복진이 아닌들 누가 해내랴.
그러다 보니 이런 일도 생기나 보다. 하루는 꽤 무더운 날 체육시간 직후였는데, 안복진은 잽싸게 자기 직책을 다하고자 교실에 가장 먼저 후다닥 들어가 옷도 안 갈아입고 주전자를 들고 식수대로 달려갔다. 그날따라 더위로 인해 수도관에 붙어 있던 중금속 성분이 좀 많이 녹았던 모양이다. 제일 먼저 안복진의 주전자에 손을 벌린 것도 이지호였고,
“야, 배복!”
제일 먼저 불평한 이도 이지호였다. 안복진은 벗던 윗도리도 내려놓지 못하고 그에게로 갔다.
“야, 물맛이 왜 이래?”
“어떤데?”
“이게 진짜. 야, 장난해? 너 왜 수돗물을 떠 왔냐? 너 일부러 수돗물 떠왔지?”
“아니, 전혀.”
안복진은 ‘전혀.’를 내뱉은 직후에 고개를 떨어뜨리고 미간은 잔뜩 찌푸렸다. 입맛도 다시는 것 같았다. 즉시 그 두 글자에 대한 응대가 되돌아왔다.
“전혀? 그래? 전혀? 누가 뭐랬냐? 웃기고 있어. 암튼 니 또 이딴 물 같지도 않은 물 떠 오면 그 땐 아주 죽는다. 알았냐, 어?”
안복진은 고개를 숙인 채 작은 소리로
“어.”
대답했다.
“크게 못 해?”
“알았어.”
그 대화를 대부분의 학생들이 지켜보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런 일방적 의사소통에 의아함을 갖는 이는 없었다. 그래, 없기야 없었다. 이지호를 빼고도 5반에는 이지호같은 왈패들이 더 있었으나 그들은 별 말이 없었다. 하여간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어보이던 학생 하나가 멀뚱히 서 있는 안복진의 옆을 지나갔다.
다른 어느 하루였다. 안복진은 밥을 먹은 뒤 주전자에 물을 잔뜩 채워놓고 컵을 씻으러 수돗가로 갔다. 수돗가는, 각층마다 있는 식수대와는 판이하게 본 교사(校舍) 왼편으로 왕래가 적은 그늘진 곳에 있었다. 쓰레기를 모아놓는 쓰레기장이 수돗가 바로 옆에 있었다. 자연히 그곳은 외따로 된 곳이었고, 거기에 오는 이는 성실히 청소당번 직책을 수행하는 모범생 아니면 끽연하러 오는 불량학생, 둘 중 하나였다. 그리고 그 날도 으레 그랬다. 마지막 컵을 다 씻어가는 무렵 안복진은 인기척을 느꼈는지 슬그머니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이지호를 포함한 여럿이 그의 뒤에 서 있었다. 그러나 안복진은 별 말이 없었다. 누구라도 조금은 당황했을 순간이었는데도 말이다. 결국 어떤 촐랑이같이 생긴 녀석이
“야, 돈 있냐?”
“응?”
“아우 이게 진짜. 너 돈 있냐구?”
“없어.”
“백 원도 없냐?”
“......”
안복진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안복진은 뜬금없이 몸을 조금 추슬렀다. 그 촐랑이 같은 녀석이 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막 내리치려는 순간 안복진은 눈을 질끈 감았는데
“야, 냅둬.”
이지호가 뒤에서 한 마디 쏘았다. 그 녀석은 손을 내리고 뒤를 돌아보며
“왜?”
“아, 돈 없다잖아. 니만 팔 아프니까 냅둬라.”
하였다. 그제 녀석은 피, 콧방귀를 뀌고 뒤돌아서서 교문을 향해 걸어갔다. 나머지도 슬슬 뒤돌아섰다. 안복진도 어느 정도 몸을 다시 펴려고 했다. 그랬더니 그 때 다른 아이들은 앞으로 가고 있었고 이지호만 뒤로 휙 돌아서서 안복진을 음흉하게 노려보곤
“재수 없는 새끼.”
안복진을 향해 이 사이로 침을 틱 뱉었다. 안복진은 아무 말도 없었다. 그저 거기에 ‘쫄아서’ 뒤로 조금 물러났을 뿐이고, 조금 뒤에 그들이 눈앞에 보이지 않게 되자 조심조심 컵을 정리해서 교실로 들어간 것뿐이었다.
이런 사건도 있었다. 방학이 다가오면서 학생들은 자연 풀어지기 시작했다. 학기 초에 잡혀 있던 남학교 특유의 군기는 사라져버린 지 오래였지만, 이건 통제가 어려워지는 수준이었다. 수업은 정상적으로 진행되지 못했다. 선생이 떠드는 사람 지적하고, 사제간에 말장난이며 잡담 따위를 하느라 매 45분은 얼음 녹듯 흐물흐물 지나갔다. 그 시간의 흐름은 기분 나쁜 것이었다. 적어도 언제부턴가 그저 잠만 자는 몇 명에게는. 그리고 많게는, 교직원을 포함해서, 학교에 밥 먹으러 오는 왈패들을 뺀 거의 모두가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4교시가 끝났다. 선생은 살았다는 표정을 짓고 뛰쳐나갔다. 안복진은 물당번이기 때문에 원칙적으로는 급식당번에서 제외되어 있었고, 원칙으로만 말하자면 직책이 있기에 엄연히 남보다 더 먼저 밥을 먹을 권리가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늘 뒤로 밀려나 있었다. 이유는 모른다. 학기 초가 조금 지나서였는데, 그 때는 이유를 알 것 같았으나 점점 모두가 묵인만 하고 있었지 이유는 기억하지 못했다. 안복진도 그랬다. 자연스럽게 스스로 급식차와 멀찍이 떨어져 얌전히 서 있었으니까.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이지호가 책상에 두 발을 올려놓고 인상을 찌푸리다가 끝내
“아 진짜. 당번 꼭 해야 되나? XX. 야, 배복!”
‘배복’은 이번에도 얌전히 그 앞에 가서 고개를 조용히 숙이고 들을 준비를 하였다.
“니가 오늘 내 대신 당번 좀 해. XX 귀찮으니까.”
“......”
“안 할 거야?”
안복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단지 고개만 살짝 들어서 그를 올려다보았는데, 그게 이지호의 눈에는 반항의 침묵으로 보였나 보다.
퍽!
안복진이 뒤로 나동그라졌다. 이지호가 왼발로 그의 가슴께를 밀친 것이었다. 안복진이 찌푸린 눈을 뜨기도 전에 이지호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안복진 위에 올라타서는 그의 뺨을 연거푸 딱딱 치면서
“해, 말어?”
“......”
“해, 말어!”
이지호는 안복진 뺨 때리는 것을 조금 더 세게 했다. 표정은 대단히 불만스럽다는 모양이었다. 안복진은 두 팔로 뒤에 버티고 일어났다. 이지호도 비켰다. 그는 재빠르게 손을 씻고 와서 말없이 주걱을 집었다. 이지호가 물론 배급 줄의 맨 처음에 섰다.
“야, 새꺄. 왜 밥이 이거밖에 안 돼?”
안복진은 다시 올려다보려고도 하지 않고 조금 더 밥을 집어 그에게 덜었다. 그는 한 번 안복진을 째려보고는 돌아서서, 자기 친구라는 것들과 함께 실컷 웃었다. 그 날 밥이 모자랐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안복진은 그 날 진종일 아무 말이 없었다.
그리고 그는 그 날 자진해서 집에 가장 늦게 갔다. 사실 주번들은, 기다리기 귀찮아서, 안복진을 자주 마지막으로 내몰고는 자물쇠를 아무 데나 팽개치고 내빼곤 했다. 선생이 청소검사를 거의 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다들 그렇게 내빼고 나면 안복진은 어느 때인가는 그 교실 문단속을 하고 열쇠를 교무실에 보관해 놓고 집으로 가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날 안복진은 이지호의 자리에 앉아 턱을 괴고 몇몇이 교복차림으로 축구를 하는 운동장을 바라보았다. 문득 그는 교실 천장을 살펴보았다. 못 보던 것이 천장에 성기게 붙어있었다. 안복진은 꽤 오래 그것들을 유심히 살펴보면서, 뭔가 생각하는 듯했다.
어쨌든 시간은 흘렀다. 그리고 어쨌든 모두는 살아간다.
그리하여, 하계방학이 시작하기 아흐레 전날이 되었다. 그 날 식단에는 3첩 외에 우유가 40팩 정도 나왔다. 남자 중학교의 식사 풍경은(그렇다고 여중이라 하여 별 수가 있지는 않으나) 소란하다. 아수라가 이런 곳일까. 뚜껑도 열지 못한 급식차 앞의 엄청난 인파 속에 파묻힌 안복진은 뒤에서 이지호가 무어라고 소리치는 것을 듣지 못했고, 그 대가는 의례 그렇듯 또 손찌검이었다. 또 의례 그렇듯, 어찌 항변하기가 어려운 사항이 구실이었다.
“야, 내가 내 것도 가져오랬잖아!”
다시 안복진은 자리에 앉았고, 그러면 또 고만이었다. 이지호는, 결국 아쉬우면 아쉬운 대로 자기가 직접 가져올 것이었으면서 꼭 가만히 앉아 모든 걸 누릴 수 있다는 양으로 뻗질러본 것이었다. 거기까지는 고만이었다. 그러나 그 다음부터가 고만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반 이상을 남긴 이지호가, 아직 모두가 식사를 하느라고 조용한 복도로 나갔다. 그러고 보면 왈패들은 밥 먹는 시간이 아까운 것일 수도 있다. 복도는 참 조용했다. 안복진은 복도 쪽에 귀를 기울였다. 역시 패거리들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들려왔다. 안복진은 여전한 동작으로 밥을 펐다. 소리의 수가 점점 더 가세하더니, 떠드는 소리, 웃는 소리, 욕설, 벽 때리는 소리 같은 것이 복도 전체에 퍼졌다. 여기서 한 가지 참 이상한 것은, 암묵적 인정인지 아니면 무언의 항변인지 열다섯 개쯤 되는 괄괄한 목소리들에 대해 이렇다 할 제재가 없었다. 모두가 고개를 숙이고 식사에 바빴다. 그렇게 잠시 동안, 즐거운 침묵 그리고 이단아들의 소란이 그 복도 전체에 퍼졌다.
그 때 문제가 터졌다. 떠드는 소리들 중 둘의 억양이 변했다. 꼭 표제음악의 2악장으로 막 넘어온 느낌이었다. 욕설의 개수가 많아졌고 완력에 의한 효과음도 점차 커지기 시작했다. 갑자기 여기저기서 말소리가 더 끼어들었다. 그 소리의 광경을 보려고 일부러 밥을 쏟아 붓고 밖으로 나가버리는 놈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광경은 어찌 생각하면 당연한 것이었다. 싸움이 붙었다. 두 명이 주축이 되어 전체적으로 두 패로 나뉘었는데, 듣자하니 암만해도 어떤 권리의 분배 때문에, 또는 거기에 어떤 ‘특수이익의 충돌’이 겹쳐서―아무튼 한 번 대판 싸울 분위기였다. 주변에 구경꾼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모든 선생님들은 1층의 급식실에 있었다. 그 와중에 누군가가 이지호의 가방을 뒤지고 있었다. 그러나 거기에 눈을 돌리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드디어 XX새꺄! 한 마디가 일인의 왼뺨을 질렀다.
옛날 이상이라는 시인도 읊었다시피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구경 세 가지는 불구경, 운 좋은 공짜티켓 그리고 싸움 구경이다. 다른 건 다 몰라도 세 번째만큼은 시커먼 놈들만 모아놓은 학교에서는 확실했다. 비명이 나와야 할 것인데 자연스러운 환호성이 터졌다. 놈들은 싸우려면 얼마든지 싸울 수 있는 놈들이었다. 뒤이어 맨 처음 완력을 사용한 놈의 뒤통수를 어떤 누군가가 다시 갈겼다. 이윽고 그 꼴은 ‘재미있어지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입으로 돈 없는 내기를 하기 시작했다. 누가 잘 싸운다, 누가 지겠다……. 몇 분 뒤에는 누구의 것이었든 교복이 찢어지기 시작했고, 잠시 후에는 피가 떨어졌다. 열다섯 막무가내들의 싸움을 말리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것도 아까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밥만 먹던 태도와 뿌리를 같이하는 모습일까? 복도 한가운데가 제정신이 아니었다. 물고, 뜯고, 잡히지도 않는 머리채를 쥐고, 거기에는 이지호도 섞여 있었다. 계속해서 누구 이겨라, 누구 져라, 이기는 편 우리 편……. 소란했다. 소란하되 상당했다. 말리는 사람이 없지 않은가. 고함은 여기서 저기로 섞여 반사되고 또 콘크리트 벽을 차올라 저기서 여기로, 그 좁은 복도 길쭉이 거기로, 천장으로, 저 너머로, 유리창으로, 주먹이 치고, 다리는 채이고, 크게 뜨인 눈, 욕지거리, 원시적인 비명, 치고 치이는, 맞고 때리는, 뭔가 바닥에 떨어지고 공중에 날고, 넘어지고, 자빠지고, 벌어진 입에서 끊임없이 욕과 타액이 번갈아 튀기고, 일으키고, 다시 쓰러지고, 찢어지고, 패고, 눕히고, 퍽, 철썩, 그악스런 소리, 다시 고함, 비명, 환호성, 비속어, 괴성, 난동…….
바로 그 때였다.
천장 여기저기에서 물이 샤워기 모양으로 터졌다. 최근 천장에 설치된 스프링클러가 갑자기 물을 쏟아내는 것이었다. 그 소리에 맞추어 그 다음부터는 으악! 하는 비명소리도 들리기 시작했다. 잠시 후 그 광경에서 참 놀랍고도 재밌는 것은, 그 시끄럽던 곳이 조금 있자니까 물 떨어지는 소리만이 고요하게 들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싸움은 일시에 진압되었다. 구경꾼이고 시정잡배고 간에 너나없이 저마다 팔을 머리 위로 올리고 고개를 수그리기에 바빴다. 구경꾼들은 속히 흩어졌다. 난데없는 비를 맞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남은 자리에는, 건달들―그나마도 네댓 명 정도나 아무렇게나 엉킨 채 남아있었다. 이지호도 거기 있었다.
한참이나 모두가 넋을 놓고, 또는 어리벙벙해서, 또는 스프링클러를 멍하니 바라보며 잠자코 있자니까 드디어 물이 잦아들었다. 바닥은 흥건했다. 피해는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예고되지 않은 소나기는 기계, 종이, 교과서, 가방, 식판, 아직도 리모델링하지 못한 마룻바닥―아무튼 말 그대로 온통 막심한 수해가 나서, 온 4층이 모두 도탄지고에 빠졌다. 이지호는 교실로 돌아왔다. 안복진은 보이지 않았다. 이지호는 교실의 한 스프링클러가 조금 특이한 것을 발견했다. 연기에 그을린 흔적이 스프링클러 주변에 짙게 얼룩져 있었다. 그리고 알아두라. 습기를 머금은 물체는 불완전연소를 하게 마련이므로 탈 때 연기를 많이 낸다는 사실을.
그리고 얼마 뒤 안복진은 손에 그 타다 만 우유팩을 쥐고 학생부실에서 나왔다. 이지호의 싸구려 지포라이터는 학생부실 책상서랍으로 들어갔다. 처벌은 의외로 약해서 안복진 5일 정학, 이지호와 및 서너 사람 반성문과 3일 사회봉사 정도였다. 그나마 배상을 하라는 말이 없었으니 약한 것이었다. 담임선생이 어떻게든 참작을 한 모양이었다. 뭘 참작했는지는 알려진 바가 없거니와 그렇지 않고서야 증거물인 우유팩을 왜 안 뺏었으랴. 안복진은 수업 중이던 자기 반으로 슬그머니 들어와, 제 가방을 주섬주섬 챙겨 둘러멨다. 사실 수업이라기보다는―앞서 말하지 않았는가마는―사제간에 피차 한담이 오고가고 있었다. 안복진이 신발가방을 옆구리에 끼고 뒷문으로 나가려니까 선생이 가만히 있다 갑자기,
“얘, 너 어디 가니?”
불러 세워서는 물었다. 일시에 80개 정도의 눈동자가 그에게 집중했다. 조용해졌다. 안복진은 그 조용한 풍경을 눈으로만 슥 둘러보곤 잠시 뜸을 들였다가, 끝내는 엉뚱하게 픽 웃으며
“혼나러 가요.”
닫는 문 뒤로 고요를 조금 더 남겨 놓고 거길 나갔다.
그리고 당장 일대 소동이 벌어졌다. 아니 저 녀석, 지금껏 학생부실 가서 혼나고 온 놈이 또 혼나러 어딜 간다는 거야? 각종 루머가 또 급조되기 시작했다. 보나마나 이럴 거야, 아냐……. 그렇다니까 저 녀석 병이 있는데, 어쩌면……. 그리고 그날따라 유난히 널따란 그리고 아무도 체육수업을 하러 나오지 않은 텅 빈 운동장에는 뜨뜻한 바람이 기분 좋게 불었고, 안복진은 오른손에 신발가방을 들고 눈을 지그시 감고, 자연히 늘어진 두 팔을 편히 벌려 중앙현관으로부터 정문으로, 운동장을 느릿느릿 가로질렀다. 시계는 중양현관 옆에 있으되 그 순간에만은 잠시 멈췄을 것이다. 운동장 언저리마다 심긴 나무들도 팔을 느긋하게 벌리고 사락사락, 바람을 즐기고 있었다. 깨끗한 띠구름, 뭉게구름은 역시 깨끗한 하늘 밑으로 빠르게 흘렀다. 여전히 안복진의 입에는 아까 웃었던 그 기분이 묻어 있었다. 감긴 눈가로, 팔로, 다리로 그 기분은 흥겹게 흘러내렸다. 문제의 바로 그 우유팩은 그리고, 아니 그러나 최후에 어디로 갔는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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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면 그냥 컴퓨터 앞에 앉은 '사람들'인가?

커뮤니티의 생태계를 연구하고 있다고?

그저 그런 반응만 보여주다가 결국 한마디 적는데, 적어도 관념적인 인터넷 세상에서 '통치 구조'는 실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망망대해 혹은 정글이라는 해묵은 비유가 적절하다.
마치 사이트에 이런저런 환경을 조성해 주면 회원들이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할 것처럼 생각하지 마라. 그냥 필요한 걸 짓고 불필요한 걸 수렴해서 치우면 된다. 거기에 어떤 제2차 의도도 개입시키지 말라. 그리고 관리자가 아닌 관리권을 가진 회원으로 내려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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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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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표

2007. 11. 28. 18:25
성적표 - 김어진

이것은 푸른빛의 흑백논리.
저 멀리 높은 대학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표준편차의 사양길.
만감은 물결같이 소수점에 나부끼고
오로지 맑고 곧은 백지의 구석 끝에
석차는 송곳처럼 꼿꼿이 서다.
아아 누구던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을
맨 처음 엄마에게 보일 줄을 안 그는.

유치환의 <깃발> 패러디인 건 다 아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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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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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으로 답을 내겠소 - 김어진

3으로 답을 내겠소.
시험이 하루어치
매직으로 쓰고
붓으로 마킹을 하지요.

정답이 꼬인다 갈 리 있소.
찍은 건 공으로 맞으랴오.
만점지가 나오면
햄버거 자셔도 좋소.

왜 자냐건
웃지요.

1학년 첫 사설모의고사 보고서 썼던 시입니다. 다시 봐도 3연은 괜찮습니다. 3, 4행에서 고민을 가장 많이 했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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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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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pio DMG는 이렇게 생겼습니다. 제 평생 첫 mp3p.
사용자 삽입 이미지


















 뭘더: ...그러니까, 이 DMG가 그렇게 생명력이 세다는 뜻인가요, 쑥거리?
쑥거리: 그렇지요. 한 번은 엽토군에게 이런 일이 있었다는군요. 버스에서 내리려는데, 버스가 정지하기 전 문이 열린 틈새로 엽토군이 점프해서 하차했었다는군요.
 뭘더: 저런, 다치지 않았을까요?
쑥거리: 누구, 엽토군이요?
 뭘더: 아니, DMG 말이오. 그 연구대상이 다친다는 것은 비극이오.
쑥거리: 엽토군은 바닥에 나동그라졌지요. 길거리 한복판에서. 전봇대에 머리를 박을 때까지.
 뭘더: 그래서 어떻게 됐지요?
쑥거리: 그래서 그 어떻게 됐냐고요?
 뭘더: 중앙정보부의 분석에 따르면 그 기계, 3년 전의 모델이라 상당히 외관이 무성의하다고 들었는데...
쑥거리: 천만에요. 그 기계는 멀쩡했지요. 엽토군이 무릎이 까지고 얼굴에는 길바닥의 흙가루를 다 뒤집어쓰는 동안에도 말이죠.
 뭘더: 다행이군요.
쑥거리: 그렇죠. 엽토군이 다치지 않았다는 건 참 다행이에요. 그 버스, 정차도 하기 전에 문을...
 뭘더: 아니 그러니까 그 DMG가 멀쩡하다니 다행이오.
쑥거리: ...;;;
 뭘더: 그래도 전원은 나갔겠지요.
쑥거리: 그렇죠. 헌데 그것으로 그만이었어요. 전원은 나갔고, 건전지를 뺐다가 다시 끼우니 전원이 들어오더라고 목격자가 전해 주었지요.
 뭘더: 아니, 도대체 3년 전의 모델이 이렇게 강할 수가 있나?
쑥거리: 게다가 이 DMG는 또 다른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있어요.
 뭘더: 그게 뭐죠?
쑥거리: 바로 방수죠.
 뭘더: 디지털웨이도 발표했지만, 이 모델에 방수케이스 따위는 없을 텐데.
쑥거리: 그렇지요.
 뭘더: 그러면 물에 굉장히 약할 텐데요.
쑥거리: 다른 기계라면 작은 물방울에도 흠이 갔겠지요. 그렇지만...
 뭘더: 그렇지만 뭐요?
쑥거리: DMG는 비에도 견딜 수 있는 내구력을 지니고 있어요.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날이었다지요. 엽토군이 그것을 들고 도서관에를 가려는데 곡을 선곡하던 도중 그만 본체가 빗방울에 노출되었다는군요. 물론 수습했지만, 심각한 상태였어요. 전원이 아무 말 없이 나가버린데다가, 건전지를 교체하는 과정에서 본체가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지요.
 뭘더: 슬프군요.
쑥거리: 그래서 엽토군은 건전지를 바꿔 끼우고, 겉의 물방울을 옷으로 닦았지요.
 뭘더: 설마,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원이 들어왔었다고 말하지는 않겠죠.
쑥거리: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DMG는 유유하게 곡을 재생했죠. 그것도 경쾌한 곡을.
 뭘더: 최첨단 하이테크로군요.
쑥거리: 요새가 여름이라, 주머니에 넣고 있으면 액정에 수증기가 맺히는 현상이 비일비재함에도 불구하고 끄떡 없다는군요. 오로지 기스만이 날 뿐...
 뭘더: 천연기념물로 지정해야겠군요.
쑥거리: 그리고 최근 매우 놀라운 기능이 탑재되어 있음을 알았어요.
 뭘더: 그게 뭐죠?
쑥거리: 수동전원오프 기능이지요.
 뭘더: 뭐라구요? 자동전원오프라면 또 몰라도 수동전원오프는 모르겠군요.
쑥거리: 그게 포인트죠. 수많은 사람들이 자동전원오프 기능을 가진 MP3를 찾지만, 이 DMG는 간편한 조작으로 전원을 신속히 끌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지요.
 뭘더: 하지만, 어떻게? 전원 버튼을 누르면 되는 거 아닌가요?
쑥거리: 전원 버튼을 누르면, 꺼질 때 로고를 띄우게 되지요. 그러나 이건 그렇지 않아요. 오히려, 꺼질 때의 상황을 캡쳐해서 액정에 남겨놓죠.
 뭘더: 최첨단이군요. 어떻게 끄는 거죠?
쑥거리: 간단해요. 약간의 충격을 주면 돼요. 예를 들면, 손목끈을 건 뒤 마구 흔든다거나.
 뭘더: 음, 이 기능은 한시라도 빨리 전원을 꺼야 할 때 쓰겠군요.
쑥거리: 그렇죠. 역학조사 결과, 건전지 연결부분의 놋쇠가 약간 어긋나는 원리가 적용됨을 알았지요.
 뭘더: 도대체 어떻게 그런 것까지... 그러면, 순간 상황캡쳐는 어떻게 하는 거죠?
쑥거리: DIGITALWAY만의 기술이라서 그건 현재 아무도 모릅니다. 아무튼, 건전지를 기기에서 분리하면 캡쳐가 사라져요.
 뭘더: 정말 보면 볼수록 경탄이 절로 나오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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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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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디

2007. 11. 28. 18:06

쌀밥 그 이상의 감동
CGV
수       제      비

Posted by 엽토군
:
예, 그렇습니다. 전 지금 옛날 블로그를 다시 들추어가며 백업을 하는 중이지요. 재밌게 읽으세요.

꿈은 엄청나게 웃긴 전쟁놀이물이었다. -_-; 홈CGV에서 틀어준 아유레디? 의 압박이랄까.

꿈은 먼동이 트는 새벽으로 시작한다. 저 멀리 큰 호수가 보이는 평범한 산골짜기 어중간한 곳에 2층짜리 엉성한 목조건물이 있고 나와 비슷한 연령대의 남성들이 아무렇게나 엉켜서 내무반에서 자고 있었다. 나도 거기 끼어서 군복도 아니고 무슨 평상복을 입고 mp3를 들으며-_-; 자고 있었는데 밖에서 보초서던 놈인지 '적군이다!' 하고 외치는 소리에 모두 깨고 조교인지 병장인지 "집합해!" 외치기에 어떤 놈은 아이 씨 뭐야... 하면서 마시던 코카콜라 내려놓고 철모 쓰고 옆구리에 성경책과 찬송가를 끼고-_-;;; 나가지 않겠는가? 그러고 보니 옷 입고 철모 쓰고 나간다는 놈들이 총은 안 들고 다들 손에 손에 성경책과 찬송가였다(무슨 십자군인가-_-?;;;).
나도 이상하다 이상하다 하면서 2층 내무반에서 내려와가지고설랑(2층에 내무반이 대략 열 개 정도였다-_- 크기는 중학교 교실만한데-_-) 대략 50명 정도가 집합(그럼 정말 교실 사이즈군-_- 로얄배틀인가)했는데 뭐 잘못 보고한 거라나 뭐라나 해서 내려와라 올라와라 훈련이다 어쩌다 하면서 오전 시간이 훌렁훌렁 지나갔는데 무슨 예비군 훈련 같았다(내가 그걸 해 본 적은 없지만 너무나 대충대충 진행되었다. 여전히 손에 손에 성경책을 들고)-_-;; 그렇게 오전 시간 휙 지나가고 다들 올라가는데 전쟁중인 내무반 계단 앞에 음료수 자판기가 있었다-_- 그걸 뽑아먹는 놈들도 몇 패 있더라-_-;;;
그렇게 다시 새벽 때처럼 아무렇게나 다들 누워서 쉬고 있는데 오후 3시쯤(전쟁중인 내무반에 시계도 깔끔한 게 걸려 있더라=_=)에 다시 창문 밑에서 "적군이다!" 하는 소리가 들리길래 창밖을 보니까 정말 얼어붙은 호수를 달려 달려 어떤 놈은 말-_-; 타고 어떤 놈은 뛰어오고 하면서 대략 우리랑 맞먹는 숫자가 저 서쪽으로부터 이쪽으로 덤비고 있는 것이었다. 이거 뭐냐... 하면서 다시 듣던 mp3 내려놓고 철모 쓰고 성경책 들고 연병장에 4열 종대로 집합했다.
놈들도 우리 연병장까지 와서 우리랑 대진(對陣)했는데 사단장이란 놈이 날더러 말 탄 놈(쉽게 말해 보스)이랑 붙으란다-_-;;; 말 그대로 두사부일체의 그 장면이었는데 나는 암만해도 죽는 게 무서우니까 바닥에 성경책 내려놓고 웬일인지 따로 들고 왔던 베개-_-; 손에 들어 방패 삼고 눈 비벼가며 그 보스랑 맞짱을 떴다(아마 점심밥 먹고 나서 진탕 잤던 모양이다=_=;;;;). 놈은 창으로 찌르려 들고 나는 베개로 막고 근데 놈이 웬일인지 힘을 못 쓰더라-_- 그러는 동안에 어찌어찌 놈의 뒤가 비어서 보니까 적군 졸개들도 손에 성경책을 들고 있지 않겠는가=_=;;; 보스가 내 등 뒤에서 뭘 하는 건지 아무튼 정신없는 틈을 타 도대체 무슨 정신 무슨 배짱 무슨 남성적 포부였는지 거기로 가서 무릎을 꿇고 "자, 여러분 우리 이러면 안 됩니다. 우리 회개합시다."하고 내가 단체기도회를 진행하기 시작했다-_-;;;;;
작전상 후퇴인지 뭔지 어찌어찌 끝나고 다시 내무반으로 집합했는데 아까 그 사단장이 모두를 주목시키고서 윽박지른다는 소리가 "야! 아까 적진 들어가서 회개기도 시킨 놈 누구야!"=_=;;;;; 다행히도 아까 보스가 난리를 쳐서 사단장이 내 쪽에 신경을 못 썼던 모양이다-_-;;; 난 역시 죽는 것이 무서워서 입 꾹 다물고 있었고 꿈은 그렇게 끝났다-_-;;;;;;;;;;

해몽은? 진실은 저 너머에. 일단 웃자.

Posted by 엽토군
:
한컴사전과 아래한글에 대해 제가 아는 팁을 늘어놓겠습니다.
참고로 한글2002 기준으로 작성되어 있네요.

1. 나만의 사전 만들기

준비물: 한컴사전
등록하기 원하는 단어들을 일단 순서대로 쭉 검색합니다. 가나다순으로 하면 더욱 좋습니다.
그 다음 [복습창] 탭을 엽니다. 단어목록에서 오른쪽 버튼을 눌러 "모두 지우기"를 누릅니다.
뜨는 경고창에서 "예"를 누르면 *.his 형식으로 지금껏 검색해 온 단어들이 복습단어장으로 저장됩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유용한 우리말만 골라서 '고운우리말.his'로 저장해 놓고 불러와서 씁니다.

2. 아무개 문자 적극 활용

준비물: 한컴사전
쿵쿵따를 하기 위해 두 글자 또는 세 글자로 되고 끝에 '름'이 들어오는 글자를 알고 싶으면
검색창에 이렇게 입력하면 됩니다.
??름
이 검색결과는 세 글자이고 세 번째 글자가 '름'인 등록단어를 모두 찾습니다. 100개가 넘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로써 여러분은 쿵쿵따 최강이 되실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예로, '쉐'자가 들어가는 모든 단어를 알고 싶거든 이렇게 입력하면 됩니다.
*쉐*
이 검색결과는 '쉐'의 앞으로 몇 글자든, 뒤로 몇 글자든 얼마든지 있되, '쉐'라는 글자를 포함하는 결과를 출력합니다. 해 보시면 아시겠지만, 대략 15개 정도의 단어를 보여줍니다.
그러면 orthography라는 단어에서 중간의 tho와 끝의 phy 외에 5개의 철자가 더 있었던 것밖에 기억나지 않을 때는 어떻게 빨리 찾을까요? 이렇게 입력하면 됩니다.
??tho???phy
이 검색결과는 11글자짜리 단어 중 중간에 tho, 끝에 phy를 포함하는 모든 단어를 찾습니다. 검색하면 대략 일곱 개 정도 나옵니다. 아주 찾기 쉽습니다.

3. 획수로 한자 찾아 입력하기

綠이라는 한자는 '선 선' 자인지, '기록할 록' 자인지, '푸를 록' 자인지 헷갈립니다. 이 때는 아래한글의 부수로 입력 기능을 쓰면 됩니다.
아래한글에서 Ctrl+F9(또는 입력>한자 부수/총획수)를 눌렀을 때 뜨는 창은 한자 부수/총획수 검색입니다. 일단 실사변(絲)이 있으니 6획으로 갑니다. 다음 나머지 획수가 몇 개인지 셉니다. 8획이군요. 나머지 획수 검색에 8획을 찾아 나오는 한자 중 맨 끄트머리에 나오는 푸를 록(綠) 자를 선택, 확인을 누르면 되는 겁니다.

4. 아래한글로 글 쓰던 도중 즉각 단어의 의미 확인하기

준비물: 설정이 조작된 한컴사전 (이하에 기록)
아래한글로 글을 쓰다 보면 자기가 쓰고 있는 단어가 어떤 뜻인지 궁금해질 때가 있지요. 이럴 때를 대비해 즉각 단어의 의미를 보는 방법을 알려드립니다.
우선 한컴사전의 환경설정에서, '단어 자동 인식'에 체크해주세요. 이것이 설정 조작입니다.
그 다음에는, 아래한글에서 글을 쓰다가 모르는 단어의 중간 정도나 끝쪽으로 커서를 옮겨(방향키를 쓰면 되겠죠?) F12를 누릅니다. 그러면 그 단어를 자동으로 인식해서 의미를 보여 줍니다.
예를 들어 '재판을 속개했다'라는 문장에서 '속개'의 의미를 알고 싶다면 '속'과 '개' 사이로 커서를 옮기세요. 그리고 F12를 누르면 '잠시 중단되었던 회의 따위를 다시 계속하여 엶.'이라는 풀이가 시원스럽게 나오지요.

5. 한글에 매치되는 한자 찾기

준비물: 한영사전, 영중사전이 설치된 한컴사전
아래한글을 잘 구하셨다면 영중사전과 중영사전도 포함됩니다. 이걸 이용하는 방법입니다.
예를 들어 '깨지다'라는 말에 매치되는 한자어는 무엇이 있을까요? 먼저 '깨지다' 로 한영사전에서 찾습니다. 적절한 단어 'break'를 선정해, 다시 break로 검색합니다. (또는 그냥 더블클릭) 그 뒤 영중사전을 보면 '깨뜨릴 파(破)'자가 보일 겁니다.
※ 영중사전을 구하기 힘드신 분들은 그냥 일한사전으로도 어느 정도 커버됩니다. 단 어려운 한자어의 경우에는 직접 쳐서 알아봐야 하니 그건 나중에 설명드립죠.

6. 요미가나(한자 위에 읽는소리를 쓴 가나) 달기

준비물: 아래한글
먼저 설정이 좀 필요합니다. 입력>글자판>글자판 바꾸기(또는 Alt+F2) 로 들어가셔서 일본어 키보드를 하나만 설정해주세요. 단축키는 여러분 재량으로 하시고... 그 다음 일본어 입력으로 전환하신 뒤(설명 생략합니다. 설마 이렇게 쉬운 것도 못 할 리가!), 다시 입력>글자판>언어 선택 사항(또는 Shift+F3)에서 확정 탭>요미가나를 위 덧말로 를 선택하시고 확인을 누르세요. 그러면 이제부터 일본어 입력 시 한자어의 위에 읽는 법이 입력됩니다. 단 한자어를 어떻게 읽는지 모르고 계시다면 낭패!
그리고 이제부터는 일본어 입력 방법입니다. 기본적인 설정이라면 로마자 입력 시스템이 적용됩니다. watasi라고 입력하면 わたし가출력되는 거죠(실제로 이 시스템이 우리에겐 훨씬 쉽습니다). 그러면 '빠가야로'를 요미가나까지 달아서 써 볼까요? bakayarou라고 입력하고 스페이스를 누르면 馬鹿野郎라고 변환되나요? 이제 엔터를 쳐 주시면 이렇게 뜹니다. 

() 鹿 () () (ろう)

이것이 요미가나 달기의 완성!

7. 영단어 발음기호 사용하기

준비물: 한컴사전, 아래한글
한컴사전이 깔려 있다면 자동으로 설치되는 서체가 2종 있습니다. '한컴돋움'과 '한컴바탕'이 그것입니다. 이 2종의 서체는 발음기호를 지원합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은 단지 여러분이 찾고자 하시는 영단어를 찾아 그 발음기호를 쭉 복사하시고, 한글 편집창 본문에 붙여넣은 뒤 폰트를 '한컴돋움'이나 '한컴바탕'으로 바꾸어 주시면 되지요. 어떤 문서에서는 이미지를 사용하던데... 좋치 않습니다-_-;

Posted by 엽토군
:

어느 날

2007. 11. 28. 17:33

my.netian.com/~eojin도 어느 날 사라졌다.
koj89.hihome.com도 어느 날 사라졌다.
yuptoche.wo.to도 어느 날 사라졌다.
hanmir, lycos도 어느 날 사라졌다.
skysoft도 어느 날 사라졌다.

어느 날인가는, 여기도 사라지고, 그동안 해 왔던 온갖 뻘짓도 다 사라질 거다.
그런데 왜 이런 짓을 하고 있는가.

간단하다. 사라지는 건 사라지는 거고 일단 나는 살면 된다.
생은 사라지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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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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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대회 나가려고 썼던 논고입니다. 그냥 읽어보세요. 장려상조차 타지 못한 일반론입니다.

<경제현상 논고論告>
지름신은 어째서 젊은이들의 우상이 되었는가

하남고등학교 30536 김어진


가. 지름: 젊은이들의 새로운 소비문화

최근 젊은이들 사이에서 ‘지르다’라는 동사를 매우 희한한 용법으로 사용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용례는 다음과 같다.
― 근성으로 이겨내고 질러라!
― 연체가 문제냐… 있을 때 질러라…
― 지르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이 독특한 사회방언에 대한 나름의 정의에 따르면 지른다는 것은,
“어떤 물건을 사겠다고 결단을 내리고 마침내 여태 모아 온 돈을 들여 그것을 사 버린 것을 뜻한다. 이 말은 비싼 물건에 쓰는 경우가 많다. 물건을 지르게 하는 원인을 설명할 때에는 "지름신"이라는 것을 써서 설명한다.”
라고 하며, ‘지름신’은 다음과 같이 정의되어 있다.
“어떠한 물건에 대한 소유욕을 증폭시켜 사지 않고는 배기지 못하게 만들어 버리는 신.”
이외에도 지름(지르는 행위)에 관한 신조어는 몇 가지 더 있다. ‘뽐뿌’는 구매충동 또는 그것을 일으키는 요인을 의미하며, ‘뽐뿌 받는다’, ‘정말 뽐뿌지 않아요?’ 등으로 사용한다. ‘총알’은 무엇을 지르기 위한 자산을 의미하며, 단위는 ‘알’이고 1알은 1만원 정도를 상정한다. ‘이거 지르려는데 총알이 모자라요’, ‘넉넉한 총알을 항시 준비해 두어야 한다’ 등으로 쓴다.
이상을 종합해 보면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는다.

▲ 요즈음의 젊은이들은 몇 십만 원 규모의 구매행위를 그리 길지 않은 시간에 용케 해내며,
▲ 그 과정은 대체로 ‘지름신’, ‘뽐뿌’ 등의 비합리적인 요인에 의해 좌우되지만,
▲ 총알을 마련한다느니 연체를 두려워 말고 지르자는 등, 구매 시 지출에 대해서는 크게 고려하지 않는다.

여기서 우리는 심각한 문제 제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분명 기존 경제이론대로라면, 경제적 인간의 소비 행위 자체에는 ‘합리적’인 의사결정 과정이 있는 법이다. 그런데 이 이론은 도저히 지금의 ‘지름’ 문화를 설명할 수 없다.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발달한 현대 시장의 한복판에서, 소비의 최전선에 서 있다는 청장년층의 이러한 소비문화는 도대체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왜 그들은 지름신의 강림을 말하며 ‘돈이 없으면 카드로 질러라!’라고 소리 지르는 것일까? 지금부터 하나하나 짚어 본다.


나. 뽐뿌: 구매욕구의 적극적 표현

한국 경제는 1950년도의 한국전쟁을 이겨내고 세계 경제발전 역사에 남을 만큼 눈부시게 발전했다. 당시 경제를 부흥시키기 위해 피땀 흘려 일했던 세대(이하 기성세대라 함)의 경제관념은 지출보다는 생산과 저축 위주였다. 지금의 우리는 절대적으로 빈곤한 세계의 후진국이다, 그러므로 가능한 많은 소득을 올려야 하고 가능한 크게 성장해야 한다, 이것이 기성세대의 경제 패러다임이었다. 그들은 소비할 시간도 없었으며, 소비욕구를 감히 가져볼 수도 없었다. 자연히 그들은 검약을 미덕으로, 낭비와 충동구매는 죄악으로 보는 사람들이 되었다. 또, 그들은 자신들이 그래 왔던 것처럼 후대의 자손들 역시 물자와 돈을 절약하는 것이 바람직하리라고 믿었다. 이에 따라 경제 교육도 당연히 ‘꼭 필요한 것만 사서 아껴 쓰는’ 매우 합리적인(?) 관념을 심는 데 주력하였다.
그러나 1980년대에 즈음하여 대한민국은 절대빈곤에서 벗어났다. 이에 따라 우리의 전반적인 소비 의식은 바뀌게 되었다. 일단 경제 발전으로 인해 시장의 규모 자체가 커져, 다양한 소비재가 생겨났다. 그리고 국민의 절대다수가 일정 수준 이상의 경제활동을 할 수 있게 되면서, 구매력이 있는 누구든지 거의 모든 상품과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비록 IMF 사태 이후 경기가 위축되었다고는 하나, 그래도 우리는 ‘살 만한’ 나라에서 돈을 쓰는 사람 노릇을 하게 된 것이다.
이런 시대에서 살아 온 신세대는 적극적으로 경제적 욕구를 표현하고 있다. 그 이유는 이렇다.
첫째, 욕구를 자극하는 상품이 많으며 그에 대한 다양한 정보 접근도 매우 간단하다. 특히 90년대 후반 이후 급속도로 진전된 정보화와 대중 매체의 발전은, 신세대를 시장의 주 타깃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TV와 인터넷 등에서는 오락기와 취미생활용품부터 연예인의 패션에 이르기까지 온갖 상품들이 소개되고, 신세대는 이 정보들을 정면으로 접하며 구매 욕구를 가지고 적극적으로 상품에 대해 알아보는 것이다.
둘째, 그들은 욕구를 숨길 필요가 없다. 다시 말하면, 사고 싶은 것을 사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전술(前述)하였듯이 신세대는 빈곤하지 않은 시대만을 거쳐 온 사람들이다. 따라서 이들은 ‘빈곤의 공포’보다는 ‘풍요의 즐거움’을 더 잘 인식하고 있다. 기성세대가 가난해서는 안 된다는 두려움에 따라 소비생활을 하였다면, 신세대는 많이 가질수록 좋은 일이라는 관념을 가지고 소비를 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개념에서 가난을 물리쳐야 한다거나 만일을 위해 절약해야 한다는 등의 개념은 상대적으로 희박하다. 요약하자면, 시대의 소비 풍조와 그에 따른 잠재적 가치관이, 욕구를 줄이기보다는 적극 발현하라고 권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현대의 신세대들은 자신들의 소비심리를 적극 표현하고 있으며 소비생활에도 열심이다. 기성세대가 ‘뽐뿌 받는’ 물건 앞에서 감히 지갑을 열지 못했다면, 이제 신세대는 지름신의 강림으로 뽐뿌를 이기지 못하고 돈으로든 카드로든 지르고 보는 것이다.


다. 총알: 지불 능력과 의사가 있는 신세대

꼭 사고 싶다고 마음먹고 시장에 갔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좀 비싼 값에 팔리는 물건 앞에서 여러분은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만약 좀더 가격이 떨어지거나 요행이 있어 얻을 수 있기를 바라며 지갑을 닫는다면 당신의 소비관념은 기성세대와 같다. 그러나 신세대의 소비관념대로라면, 사기로 마음먹었으면 ‘총알을 모아서’ 질러야 한다. 이를 판매자 입장에서는 어떻게 설명할까? 그들은 말할 것이다. ‘신세대 소비자 고객들이 기성세대보다 훨씬 더 지불 능력이 있다’라고.
지불 능력이라고는 하지만, 단순히 신세대가 돈이 많다는 뜻은 아니다. 물론 과거의 또래들에 비해 현재의 신세대들이 월등하게 재력(?)이 큰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여기서 지불 능력이 있다는 것은, 시장가격이 다소 높더라도 이에 대해 반발하거나 수요를 줄이지 않고 오히려 소득을 축적해 이 가격에 맞추어 지불할 수 있다는 뜻으로서, 지불 의사가 매우 확고하다는 말로도 설명할 수 있다.
과거 기성세대는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다. 그들은 소득을 늘릴지언정 지출을 늘릴 수는 없는 시대를 살았다. 너무 비싸다고 생각되는 물건 앞에서 그들은 당연히 지갑을 닫았다. 그러나 신세대는 그렇지 않다. 그들은 소득 목표를 세우거나 만일을 대비해 저축하는 등 기성세대가 해 왔던 소비 습관을 굳이 따르지 않는다. 그보다 그들은 현재 자신의 욕구 그 자체에 충실을 다한다. 왜 그러한가를 나름대로 분석해 보자면 몇 가지를 생각할 수 있다.
그 첫째 원인은, 간단해진 구매 절차가 즉각적인 소비를 유발하기 때문이다. 신용카드와 홈쇼핑, 온라인 쇼핑 등의 이용이 크게 팽창하면서 ‘지르기 좋은’ 소비 환경이 조성되었다. 신용카드가 있으면, 지금은 긁고 월말에 월급 탈 때 내면 된다. 홈쇼핑에서는 무시로 ‘뽐뿌를 일으키는’ 상품들이 스쳐 지나가면서 ‘이제 몇 분밖에 안 남았습니다, 구매가 폭주하니 ARS를 이용해 주세요’ 등등의 말로 ‘지름신 강림’을 부추긴다. 인터넷 경매 사이트나 직거래 게시판들은, 보면 볼수록 지금 지르지 않으면 영영 없어질 것처럼 느껴지는 물건들만 있는 듯하다. 온라인 입금이나 신용카드로 값만 치르면 그것만으로 구매가 성사된다. 나도 최근 경매 사이트를 통해 디지털 캠코더를 ‘질렀는데’, 당시 통장 잔고는 내가 원하는 물품의 가격을 간신히 맞출 수 있을 정도뿐이었다. 만일 내가 통장을 들고 전자제품 매장에 들렀다면 과연 그 캠코더를 지를 수 있었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담당자가 다른 제품을 추천할 수도 있고, 원래 찜했던 것 외의 다른 것도 구경하다가 기가 죽어 그냥 나올 수도 있는 것이다. 당장 손쉽게 상품을 획득하라고 촉구하는 마케팅에 신세대는 노출되어 왔고, 간소화를 꾀하며 발달한 지금의 지불 방식에 힘입어 신세대는 ‘잘 지르는’ 고객이 된 것이다.
둘째는,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유행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휴대전화다. 새로운 휴대전화 모델이 나오면, 광고나 TV프로그램 속 협찬, 혹은 인터넷 사용자들의 입소문 등을 통해 그에 관한 정보들이 삽시간에 퍼져나가고 이것은 곧 유행 혹은 대세가 된다. 유행이라는 것이 본디 그렇지만 특히 상품 구매와 관련된 유행은, 이에 편승하지 않을 때 ‘뒤떨어진다’라는 느낌을 갖게 한다. 다른 이들이 하나둘 유행을 따르고 있는 것을 보며 느끼는 초조함이 지름을 부추기는 하나의 요인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요즈음의 유행은 예전처럼 느긋하지 않다. 자꾸만 새로운 상품이 출시되고 새로운 것이 유행이 되다 보니, 소비자는 실질적인 상품의 유효기간을 제대로 체감하지 못하게 된다. 쉽게 말해 산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구식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는 새로운 상품을 불필요하게 혹은 불가피하게 ‘지르는’ 데 한몫한다.
이상에서 살펴볼 때, 신세대의 지불 능력이 큰 이유들에는 한 가지 맥락이 있다. 그들의 지출은 ‘빠른 결정’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자원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 가장 신중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 바로 시간 자원이다. 왜냐하면 시간은 돈이나 능력 등과 달리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지므로, 그 시간을 어떻게 배분하고 소비하느냐에 따라 효율성이 천차만별로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세대의 소비 과정에서는 시간 자원과 재정 자원 중 시간 자원의 극소화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에 따라 재정에 조금 부담이 가더라도 ‘더 늦기 전에 빨리 사는’, 즉 지르는 소비풍토가 생겨난 것이다. 이런 신세대들에게 돈이란, 차곡차곡 모아 큰 목표를 이루는 데 쓰는 ‘벽돌’ 같은 것이 아니라 한바탕 지르기 위해 잘 장전해 두었다가 한순간에 쏴 버리는 ‘총알’로 인식되는 것이다.


라. 지름신: 신비한 존재가 비합리성을 정당화하다

그러나 앞에서도 뜨문뜨문 언급해 두었듯이 이러한 신세대의 ‘지름’ 문화는 그다지 합리적이지 못하다. 건전한 재정 지출의 기본은 계획성과 합리성이다. 내키는 대로 무작정 돈을 쓰면 언젠가는 지출을 하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고, 요모조모 따지지 않으면 기회비용만 더 커지는 불상사를 부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적지 않은 돈을 지출하는 데 있어서는 계획에 따라 손익을 따져 최선의 결정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리고 이러한 관념이 신세대에게 없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어릴 적부터 가정과 학교 등으로부터 기성세대의 경제관념을 알고 배웠다. 그래서 이들은, 만일을 대비해 저축을 하는 것이 좋고, 동전은 함부로 하지 말고 모아야 하며, 사고 싶다고 당장 사는 버릇은 좋지 않다는 등의 가치관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 ‘다’에서 설명한 사회적 배경과 문화의 변동 등으로 인해 신세대는 자꾸만 뽐뿌를 받게 되고, 이는 그들이 배웠던 ‘모범적인 소비습관’과 정면으로 대치한다. 그들의 경제적 욕구가 강렬한 만큼, 자기의 소비 태도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식 역시 강력하게 그 욕구의 분출을 막고 있는 것이다. 또한 신세대들 스스로도 배운 것이 있기 때문에, 자신이 이것을 사 버리면 자신이 비합리적인 결정을 내린 것으로 평가되리라고 생각한다. 실제 인터넷에서 수집한 다음과 같은 글들은, 신세대라고 해서 앞뒤 가리지 않고 무조건 지른다기보다는 욕망과 가치관 사이에서 갈등하며 지르고 있음을 보여준다.
― 복무를 마치고 유럽일주를 하는 그날까지… 지름신이 강림하지 않기를…….
― 애플의 아이팟에 한번 마음을 빼앗기면 좀처럼 지름신의 유혹에서 벗어나기 힘들어진다.
― 울며 가로되 “이미 카드의 압박은 나를 숨통까지 죄여오나이다.”
그러나 제재와 강제성이 없는 한 경제적 인간은 공공의 도덕률이나 이상보다는 자신의 사익을 더 중시한다. 따라서 신세대의 판단도 비합리적이나마 구매를 해 버리는 쪽으로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여기에서 발생한다. 무엇을 지르는 순간, 자신의 소비 행위를 어떻게든 합리화․정당화해야만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소비의 정당성을 입증하지 못하면 기껏 고뇌하여 결정한 의사가 한낱 ‘돈 버린 짓’, ‘충동구매’등으로 치부될 것이고, 그나마 지름을 통해 얻은 편익마저도 심각하게 무시당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무엇인가를 지르는 데는 조리에 맞는 명분이 그다지 없다. 자신이 판단해서 계산한 (비용)-(편익)의 부족분을 소비 욕구로 채워 구매를 결정한 것이 지름이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뭔가를 지른 사람은 곧 ‘내가 이것을 왜 질렀을까’라는 애매모호한 질문에 답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러한 신세대 소비자의 고충이 만들어낸 우상이 바로 ‘지름신’이다. 우리는 흔히 ‘신이 내렸다’, ‘신이 지폈다’ 등의 말을 사용한다. 둘 다 사람이 비합리적이고 인간의 의지를 초월한 행위를 할 때 쓰는 말이다. ‘지름신’ 역시 ‘지름+신’의 형태로 이루어진 말로서 ‘지를 때 내리는 신’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지름신은 앞서 설명한 소비자들의 복잡 미묘한 소비심리와 소비상황을 알고 있어서, 그들의 지름 행위를 이치에 맞게 합리화하지 못하고 있던 ‘지른 자들’을 변호하는 존재인 것이다.
사람들은 지름신이라는 단어를 ‘지름신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지르다’, ‘지름신이 오셔서 잔뜩 사다’ 등으로 사용한다. 마치 지름신이라는 존재가 정말로 있어서 자신들이 지름신의 살(煞)을 맞았다는 것처럼 말이다. 그들은 스스로의 논리적․합리적 의사와는 별개로 강력하게 작용한 초의지적 존재 때문에 지른 것이다. 이 얼마나 동정할 만한 변명인가? ‘지른 자들’은 이런 논리로 자신의 비합리성을 옹호한다. 한 술 더 떠서 어떤 이들은 지름신이 친히 자신의 구매 욕구를 충동하여, 더 이상 번뇌에 얽매이지 않고 확 지를 수 있게 도와주기를 바라기도 한다.
요약하면 이렇다. 신세대들은 지른다는 것 자체가 비합리적임을 알면서도 결국 지르고 마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내세우는 우상이 바로 지름신인 셈이다.


마. 전망과 결론

21세기로 진입하면 구세대와 신세대 사이에는 가치관, 문화, 주도권 등에서 상당한 변화와 교체가 이루어진다고 한다. 우선 21세기로 들어서면 기술, 사회적 추세 등은 그전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급속도로 변화를 거듭할 것이며, 20세기까지의 사회가 이성과 논리를 중시하였다면, 21세기는 바야흐로 감각적이고 어느 정도는 비합리적이기도 한 문화가 사회 전반에 퍼질 것이라고 한다. 20세기까지의 경제가 성장과 생산을 외쳐 온 데 비해, 21세기에서는 소비와 분배가 세계 경제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리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19세기까지만 해도 국가주의에 충성했던 사람들은 이제 개인주의자로 변할 것이며, 신세대는 기성세대의 가르침과 가치관을 부정하며 구시대와 작별을 고하고, 자신들만의 이상과 목표를 내세우며 시대를 이끌어 가리라는 예측도 있다. 종합하면, 기존 질서의 해체라는 큰 경향 속에서 사회는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변혁과 교체 현상은 여기저기서 크고 작은 규모로 나타나고 있으며, 그 중의 하나로 꼽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지름 문화’다. 기존의 가치관이 아끼기, 필요한 것만 사기 등이었다면, 이제는 소비자 자신의 욕구를 중히 여기는 가치관이 구시대의 소비 가치에 대항하여 조금씩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지름 문화는 과연 바람직한 현상인가? 물론 권할 만하지는 않다. 가장 이상적인 소비활동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분명 지름은 ‘원하는 물건이 원하는 가격에 있어 기꺼이 값을 지불하고 만족을 얻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신세대는 기성세대처럼 소비 심리를 감추고 억누르지만은 않는다. 그들은 구매욕을 자극하는 상품에 대한 뽐뿌를 적극 표현하며, ‘지름신’으로 대표되는 소비욕구를 물건 구매 결정 과정에 반영하고, 값을 치르기 위해서 아껴 두었던 총알도 미련 없이 ‘지르기도’ 한다. 이처럼 21세기의 변화 양상을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 지름 문화가 좀더 학문적으로 자세하게 접근해 볼 필요가 있는 흥미로운 현상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경제현상 논고論告>
지름신은 어째서 젊은이들의 우상이 되었는가 <끝>

Posted by 엽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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