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해운대를 봤다.
지금 나는 오후 세 시다. 뭘 하기엔 너무 늦은 듯도 하고 그렇다고 그냥 지나가기엔 너무 아쉽다.
지금껏 못본 하루히 2기를 최신 방영분까지 몰아봤다.
지금 이 이야기는 11시 45분에 멈춰 있다. 무려 네 편에 걸쳐서 데자뷰를 보여주리라고는 예상치 못한 바람에 결국 6화분은 휙휙 돌려버렸다. 원작을 전혀 모르지만, 내가 생각하는 아웃 루트는 이런 거다: 쿈이 마침내 하루히를 불러세워 방학숙제 벼락치기 모임을 하자고 한다. 31일 예비일은 방학숙제일이 되고, 드디어 다카포는 풀리며 유키는 따분해하는 표정을 뜯어 버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뭐, 원작에서는 그렇게 결말이 난다는 거 같은데, 잘은 모르겠고, 쿄토 애니메이션 측은 하루히즘이 뭔지 한 번 더 보여주겠다는 일념으로 1이젠 몇 화가 몇 화인지 모르기 시작했다, 나가토의 심정이 이해된다는 글까지 올려가면서 근성으로 가고 있는 거 같다, 아무튼,
지금 세상이 오후 세 시에 멈춰 있다.
데자뷰가 계속된다.
"내일이 오든 안 오든, 이 일상이 다시 반복된다면, 그 땐 그 때의 나로서 어떻게든 하면 되겠지."
그건 아냐.
여기서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다시 1만 몇천 번을 반복한 그 2주간으로 돌아가게 돼. 저놈이 했던 말 가운데에 힌트는 있었을 거다. 그런데 그게 뭐지? 쟤가 뭐랬더라? 난 무슨 말을 해야 하는 거지? 제길, 모르겠다. 도무지 짐작이 서지 않는다...
미디어법을 가지고 한바탕 쓰나미가 있었다.
지금 나는 오후 세 시다. 뭔가 말하기엔 늦은 듯도 하고 그렇다고 마냥 다물고 있기엔 너무 아쉽다.
아니다. 지금 여기서 불러세우지 않으면, 다시 영겁의 회귀로 돌아가게 돼. 이 여름방학을 끝내고 싶지 않아하는 저들을 불러세우지 않으면. 불러세우지 않으면, 불러세우지 않으면... 불러세우지 않으면! 불러세우지 않으면!!!
- '스즈미야 하루히적 이념', '하루히스러움'으로 번역할 만한 신조어. 내가 이해하는 바 하루히즘은, 순수한 자기중심적 의도를 위해 말도 안 되는 기획과 발상을 말 되게 하는 것이며 니체와 카뮈를 빌어 말하건대 초인적 반항이라 할 만한 것이다. 현재까지의 하루히 애니판이 보여주고 있는 것들은 '하루히즘'에 대한 원작자적 해석과 실현이라고 해야지, 지겹다거나 전파가 아깝다는 식으로 매도해 버리고 끝낼 만한 것은 좀 아니다. [본문으로]
'4 생각을 놓은' 카테고리의 다른 글
500만명이 보는 Animation은 어때야 하는가 (0) | 2010.05.01 |
---|---|
소인배가 되기 싫다 (11) | 2009.08.13 |
하라는 셤공부는 안 하고 답안지처럼 열심히 쓰는 답글... orz (6) | 2009.06.15 |
클럽이란 곳에 처음으로 가보다 (6) | 2009.06.04 |
죽는 꿈을 꿨다 (0) | 2009.05.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