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인배가 되기 싫다.
도량이 좁은 사람이 되기 싫다. 30원 할인과 마일리지 적립율과 버스 도착 예정시간에 목 매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남이 비판해 놓은 글의 문맥을 뚝뚝뚝 끊어 가며 구구절절 반박하고 나중에는 태도로 꼬투리 잡는 행태가 짜증스럽다. 사람을 앞에서 서글서글 대하고 뒤에서 있는 대로 욕할 바엔 차라리 시종 침묵으로 일관하고 싶다. 줄을 서서 기다릴 때 묵묵히 잘 기다리는 인간이 되고 싶지, 눈치 보고 눈치 주고 그러기는 싫다. 속좁은 인간, 작은 놈이 되기 싫다.
소인배들이 양산되고 있다.
그것은 포인트카드와 제휴사 정책, 최장 노동시간, 세계 최고의 인터넷 사용률, 좁아터진 개미굴처럼 생긴 도시공간적 구조, 총점 500점의 수능시험을 지나면 싸워야 하는 최고 4.3의 상대평가 학점, 애당초 궁금하지도 않았던 온갖 숫자와 할인율과 편리들에 대한 과대 선전 등에 그 핑계를 돌릴 수도 있을 것이지만, 무엇보다... 포부를 가지고 도량을 키우는 삶을 살아볼 수 없도록 모든 생활양식이 체제적으로 규격화, 표준화되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을 것이다. 모험하고 싶고 도전하고 싶어 죽겠는데 탐험이고 도전이고 누가 다 해 놔서 모험하러 갈 곳이 없다. 광야를 말달리던 사람들의 야망을 갖고 싶은데 고작해야 초국적기업 CEO 아니면 정치판 거물 정도가 한계여서 실망스럽다. 1 시대정신을 바꾸는 위대한 영혼이 되고 싶은데 그러려면 우선 100분 토론에서 생방송으로 짧고 정확하고 조리 있게 말하는 법부터 연습해야 한다. 2 3
어쩌면 이런 글조차도 소인배적인 것인지도 모른다. 너무 구차하다...
니체가 말한 건 이런 것이다. 닭장 속의 육계가 될 것이냐, 슈퍼맨이 될 것이냐. 닭장의 하느님인 모이통만 쳐다보며 살 것이냐, 닭 몇 마리 잡아먹는 좀 야만적인 놈이 될지언정 거기서 뛰쳐나와 슈퍼맨으로 살아볼 것이냐? 나는 니체를 좋아하지 않지만, 그가 느낀 문제의식은 대단히 미래지향적인 것이었다. 소인배가 되지 마라. 너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큰 크기로 지어져 있다...
P.s 추천태그에 '위대한 유산'이 나오더라. 아, 디킨즈. leveled reader로 읽어두길 잘한 작품이었다. 요즘 이 내러티브가 적잖이 회자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생각있는 몇몇 사람들은 이미 반작용적으로 느끼기 시작하고 있는 것 같다. 우린 좀더 많은 것을 받았으리라는, 다만 누가 줬는지 그리고 뭘 받은 건지 모를 뿐이라는 그런 걸...
P.s2 RT @oisoo 잘난 척 하기 좋아하는 파리 한 마리가 하늘에 떠 있는 독수리를 보고 빈정거렸다. 저 큰 덩치로 날개를 저리도 느리게 움직이다니, 봐라, 저놈은 곧 추락하고 말거다.
- "트루먼 쇼"에서 내가 명장면 중 하나로 꼽는 이런 장면이 있다. 어린 트루먼 버뱅크가 교실에서 발표한다. "전 모험가가 될래요." 교사 역할의 엑스트라는, 그가 섬 밖을 나가고 싶어하지 않도록 하려고 당장 세계지도를 펼쳐보여준다. "미안한데 이미 다 모험돼 있어." [본문으로]
- 오늘날 규격화 제도화 표준화돼 버린 가장 안타까운 것 중 하나가 바로 야망이다. 사람들이 뭘 야심차게 꿈꾸지 않는다. [본문으로]
- 간디 할아버지가 토론프로그램에 나갔다면... 당연히 참패했을 거다, 그리고 그의 영혼은 아주 초라해 보였을 것이다, 안 그런가?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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