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 엽토군이야. 본명은 김어진이구. 지금은 그냥 형이라고 할게.
형이 글짓기 대회를 좀 많이 나가본 경험이 있거든.
그래서 그 경험 살려서, 너네들 앞으루 글짓기 대회 나갈 때 어떻게 글을 쓰면 상을 탈 수 있는지 좀 말해볼게.
이건 진짜야. 믿어도 돼.
형은 고리타분한 충고라면 딱 질색이야. 진짜 필요한 거만 말해줄 테니까 들어봐.
먼저, 글짓기 대회의 기본은 시와 산문(수필이라고도 하지만)이야.
이상하지 않니? 왜 설명문이나 논술이나 소설 같은 건 안 될까?
별로 큰 이유는 없어. 어른들이 복잡한 걸 싫어하거든.
대회 여는 어른들이 얼마나 피곤한 사람들인데. 너네들이 쓰는 글을 몇백 편 보는 게 그분들이 할 일이야. 그러니까 너무 대단한 거 쓰려고 하지 말고 시나 산문 둘 중에 하나 골라서 쓰도록 해. 괜히 새로운 거나 편한 거 쓰려고 하지 말고. 근데 이건 다들 알지?
아, 그리고 자기가 글을 못 쓴다고 생각하는 친구도 있을 거야.
겁 먹지 마. 너보다 평가는 잘 해 주시는데 글은 너보다 더 못 쓰는 심사위원 어른도 있어.
중요한 건 재주가 아니야. 얼마나 상을 타기 좋게 쓰느냐 하는 거지. 그걸 명심해.
그럼 시부터 말해볼까?
너희들은 시가 쉽니, 산문이 쉽니? 사실 창작하기로는 산문이 훨씬 쉽단다. 하지만 상을 받는 건 시가 훨씬 쉬워. 왜냐면 어른들이 좋아할 확률이 높거든.
왜 그렇잖아? 시는 야리꼬리하게 쓰잖니. 그게 심사위원들의 이목을 끄는 거야. 이상하지? 나도 그래.
구체적으로 어떻게 쓰면 될까? 간단해. 평범하게 쓰면 돼. 그러니까 평범하다는 건, 너네들이 스스로 생각해 보기에도 낯간지럽고 고상한 척하는 이상한 말들을 지어내가지고 주어진 소재를 그럴듯하게 꾸미되, 너무 오버하지 않는 거야.
왜 그걸 평범하다고 하느냐면, 사람들은 이상하게 시라는 걸 고상하고 세련된 은빛 고차원예술로 생각하거든.
사실은 절대 아냐. 시야말로 가장 얼굴이 다양한 문학이야. 하지만 평범한 심사위원 어른들이 갖고 있는 평범한 시(詩) 세계에 맞춰서 작품을 써야 상을 타니까, 그래서 평범하게 쓰라는 거야.
예를 들어 소재가 '단풍'이라면, 별거 없어.
'붉은 단풍이 어머니처럼 우아하게 떨어진다' 하는 식으로 써.
어머니가 우아하게 떨어지는지 둥실둥실 뜨는지 내가 알 게 뭐람? 닭살 돋아. 하지만 이런 식으로 쓰다 보면 어느 순간 심사위원들도 혹하는 표현을 한두 개쯤은 쓸 수 있게 돼. 정말이야.
그리고 '상투적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어디서 많이 본 거 같은 뻔한 걸 상투적이라고 해. '누울 수 있을 거 같은 구름' 같은 건 누구나 하는 생각이잖아? 그런 표현을 시를 쓸 때 쓰는 거야.
근데 주의할 점. 떠오른 생각 중 상투적인 생각만 골라서 쓰려고 하지는 마. 그건 오히려 더 실패하니까.
내 친구 중에 글짓기 나갔다 하면 시만 쓰고 오는 애가 있었어. 근데 상 탈 건 다 타더라고.
걔가 평소에 말하는 거랑 글쓰는 거랑 완전 다른 애거든.
써논 거만 보면 조선시대 사람인데 친구랑 떠들고 노는 거 보면 21세기 소년이야.
어떤 느낌인지 알겠니?
산문은 어떻게 쓰면 될까?
결론부터 말할게. 착하게 써.
한순간 바른생활 교과서의 인수나 수영이가 되어서 세상과 글감, 그리고 심사위원 어른들을 바라보면서 쓰면 돼. 세상을 조금이라도 부정적으로 보거나, 기분 나쁜 단어 하나라도 잘못 넣었다간 그대로 탈락이야. 얌전하고 예의바른 글을 써 줘야 해.
왜냐고? 산문은 모든 글 종류 중에서 글쓴이가 가장 잘 드러나는 종류야.
근데 대회를 개최하는 어른들은 너네들이 아주 순수하고 올바르길 바라거든.
(솔직히 자기들은 안 그러면서 말야, 그지?)
그리고 그걸 자기네들이 벌인 재롱잔치에서 확인하고 싶어해.
아직 이 땅엔 컴퓨터 오락과 TV, 만화, 폭력물 등등(어른들은 이게 뭐가 그렇게 무서울까? 사실 이런 거 안 좋아. 근데 어른들이 좀 오바한다, 그지? 그런거 만들어주는 것도 다 어른들이면서)에 물들지 않은 아이들이 있고, 그 아이들이 써 준 글을 통해 자신들이 옳다고 믿는 거나 몸바쳐 일하고 있는 일의 미래가 밝다고 믿고 싶어해.
형이 하는 말 알겠니?
맞어, 그거야. 어른들이 너희들의 글을 봤을 때 평범하고 착하고 그래서 예뻐 보이면, 어른들은 그 글이 곧 너희들일 거라고 믿어. 그리고 기분 좋게 너희들에게 상과 기념품, 상품권을 주는 거지.
그리고 혹시 이 중에 세상엔 잘못된 일이 많다고 생각하거나, 왜 그런지 혹은 꼭 그래야 되는 건지 궁금한 게 많은 친구 있니? 혹시나 있다면 이런 말 해서 미안하지만, 차라리 시로 승부해라.
어른들이 제일 좋아하는 글은 귀엽고 재롱부리는 글이야.
그럼 제일 싫어하는 글은 뭐게? 기어오르는 글.
어른처럼 생각하고 어른들한테 말대꾸하는 글을 어른들은 제일 싫어해.
대견하다고 해주진 못할망정 '버릇없다', '반항적이다' 등등으로 혼을 내.
(자긴 절대 안 그런데 말이지.)
그러니까, 아무리 산문이 자유로운 글이라지만 절대 자유롭게 쓸 수 없어.
물론 쓸 수는 있지. 아무도 혼내지 않아.
다만, 친구의 그 멋진 글은 혼자 쓰고 혼자 좋아하고 쓰레기통으로 곧장 들어가는 신세가 돼.
그리고 절대 아는 척하지 마.
너희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아이야. 적어도 너희의 글에선 그게 물씬물씬 느껴져야 해. "이건 이렇고 저건 저러니까 이런 건 옳고 저런 건 그르다! 잘못됐다!"라고 쓰면 채점도 안 해주실 거야. 왜? 싫으니까. 마음 편하고 기분 좋은 글이 얼마나 많은데!
형은 대회 나가서 주로 산문을 썼는데, 생각해 보면 그 하고많은 산문 중 제대로 상을 타 본 경험은 없었던 거 같아. 주로 논설문을 썼거든.
왜냐면 다른 애들이 입에 발린 글만 붕어빵 찍어내듯이 쓰는 게 보였으니까.
그래서 난 남들관 다르게 나 자신에게 충실하고 솔직하게 글을 쓰면 되지 않을까 했는데,
웬걸, 아니더라고.
솔직히 말해서 나 고등학교 들어와서 글로 상을 타 본 일이 거의 없어. 항상 그렇게 썼거든.
남의 비위를 맞추기가 너무 싫었어. 하지만 그래서는 상을 탈 수가 없더라고.
형이 잘난척을 하고 아는 체했기 때문에 상이 돌아오지 않았던 거야. 무슨 말인지 알겠지?
혹시 수기(주제와 관련하여 겪은 일을 적어가는 수필의 일종)에 응모하려는 친구 있니?
이거 하나 반드시 기억해. 엄마 졸라서 담당기관(대회를 개최하는 곳)을 찾아가서 잘 보면, '우수작 사례집'이라는 게 반드시 있어. 그걸 야릇하게 베끼면 단박에 붙어.
좀 오래된 글을 베껴야 해. 눈치챌지도 모르거든. 한 4년쯤 지난 글부터가 베끼기 좋아.
그래도 되냐고? 돼.
베끼든 안 베끼든 상을 타는 수기들은 어차피 그게 그거야. 결국 '그분들(아니면 그것)이 우릴 행복하게 해 주었다'라는 얘기일 거 아냐. 솔직히 안 그래?
정 마음에 켕기면 베끼진 않더라도 한번 쫙 읽어보기만 해도 좋아.
그러고 나면 아마 친구가 처음 쓰려고 했던 건 절대 쓸 수 없다는 걸 알게 될 거야.
중학교 2학년 때 형을 가르쳐주시던 국어선생님이 계셨어.
내가 글재주가 있다면서 온갖 대회에 다 데리구 다시니더라고. 솔직히 그땐 창피했지. 상도 잘 못 타오는데 왜 이러시나 하고.
근데 그게 다 이런 경험이 되어서 이렇게 말해줄 수 있는 밑거름이 됐나 봐.
난 상을 하도 못 타서, 고민했고, 그 결론이 이거야. 형은 항상 형 주관대로 글을 썼고, 그래서 상을 타는 데 실패했어. 그렇다면 그 반대로 하면 되지 않을까?
꼭 좀 당부할게.
형이 이렇게까지 말해 줬으니까, 꼭 글짓기 대회에 나가 줘.
글짓기 대회는 학교에 나가는 청소년의 특권이야. 어른이 되면 하고 싶어도 못 해. 잘 생각해 봐. 어른이 글짓기하는 거 본 적 있나.
그러니까, 꼭 부탁한다. 대회 나가서, 형이 말해준 대로 한번 좀 써 주라. 그리고 상을 타나 못 타나 봐서, 형한테 좀 알려줘라.
형은 진짜 궁금하다. 만약에 형이 쓰라는 대로 써도 아무도 상을 받아올 수 없다면 형은 이제 전국적으로 난무하는 글짓기 대회를 제재하자는 법안을 청구할 생각이야.
근데 아마 잘 될 거야. 너희들은 훌륭하니까. 꼭 좀 부탁해.
그리고 상 많이 타라. 남는 건 자격증이랑 성적이랑 상밖에 없단다.
특히 고등학교 때 상 많이 타야 해. 그래야 대학교 가.
내가 이렇게 짜증날 정도로 길게 쓴 것도 결국 너네들 상 타라는 마음 때문에 그래.
글 많이 쓰고, 그래서 상 많이 받아라. 그래서 훌륭한 미래 대한민국의 주역이 되어다오. 물론 이런 방법이 먹히는 글짓기 대회에서 너희들이 쓴 원고지와 받아 온 상장과 상품들을 쌓으면, 권위적 위선과 온갖 허구적 고정관념 그리고 평가지상주의가 꽃피는 재롱잔치가 되어 있겠지만 말야.
P.s 1
아 맞다. 그리고 이거 딱 하나만 기억해. 다른 거 다 몰라도.
어른들은 말야, 상장을 주고 너희들의 글을 '사 간다'. 형도 몰랐거든? 근데 너희가 상을 받는 순간 너희들은 너희의 글을 그 어른들한테 상장 하나 받고 '파는' 거야.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
예를 들어 너네가 한국수자원공사 물사랑 글짓기 나가서 시 쓰고 상 타잖아?
그러면 한국수자원공사에서 너네가 쓴 싯귀를 광고에 쓰든,
무슨 예술작품의 한 부분으로 당당히 채택하든,
심지어는 그 지은이 이름을 한국수자원공사 사장님 이름으로 바꾸든(이건 좀 심했나?!) 너희들한텐 돈 한 푼 돌아오지 않는다는 거야. 사실은 돈을 상당히 많이 줘야 되는데도.
왜냐구? 그 대회 포스터를 보면 조그만 글씨로 이렇게 써 있을 테니까.
"…단, 채택시 해당 작품의 저작권은 주최측에 귀속되며…"
P.s 2
저도 길게 썼으니 답도 진지하게 들어왔으면 좋겠어요. 트랙백 많이 쏴 주세요.
형이 글짓기 대회를 좀 많이 나가본 경험이 있거든.
그래서 그 경험 살려서, 너네들 앞으루 글짓기 대회 나갈 때 어떻게 글을 쓰면 상을 탈 수 있는지 좀 말해볼게.
이건 진짜야. 믿어도 돼.
형은 고리타분한 충고라면 딱 질색이야. 진짜 필요한 거만 말해줄 테니까 들어봐.
먼저, 글짓기 대회의 기본은 시와 산문(수필이라고도 하지만)이야.
이상하지 않니? 왜 설명문이나 논술이나 소설 같은 건 안 될까?
별로 큰 이유는 없어. 어른들이 복잡한 걸 싫어하거든.
대회 여는 어른들이 얼마나 피곤한 사람들인데. 너네들이 쓰는 글을 몇백 편 보는 게 그분들이 할 일이야. 그러니까 너무 대단한 거 쓰려고 하지 말고 시나 산문 둘 중에 하나 골라서 쓰도록 해. 괜히 새로운 거나 편한 거 쓰려고 하지 말고. 근데 이건 다들 알지?
아, 그리고 자기가 글을 못 쓴다고 생각하는 친구도 있을 거야.
겁 먹지 마. 너보다 평가는 잘 해 주시는데 글은 너보다 더 못 쓰는 심사위원 어른도 있어.
중요한 건 재주가 아니야. 얼마나 상을 타기 좋게 쓰느냐 하는 거지. 그걸 명심해.
그럼 시부터 말해볼까?
너희들은 시가 쉽니, 산문이 쉽니? 사실 창작하기로는 산문이 훨씬 쉽단다. 하지만 상을 받는 건 시가 훨씬 쉬워. 왜냐면 어른들이 좋아할 확률이 높거든.
왜 그렇잖아? 시는 야리꼬리하게 쓰잖니. 그게 심사위원들의 이목을 끄는 거야. 이상하지? 나도 그래.
구체적으로 어떻게 쓰면 될까? 간단해. 평범하게 쓰면 돼. 그러니까 평범하다는 건, 너네들이 스스로 생각해 보기에도 낯간지럽고 고상한 척하는 이상한 말들을 지어내가지고 주어진 소재를 그럴듯하게 꾸미되, 너무 오버하지 않는 거야.
왜 그걸 평범하다고 하느냐면, 사람들은 이상하게 시라는 걸 고상하고 세련된 은빛 고차원예술로 생각하거든.
사실은 절대 아냐. 시야말로 가장 얼굴이 다양한 문학이야. 하지만 평범한 심사위원 어른들이 갖고 있는 평범한 시(詩) 세계에 맞춰서 작품을 써야 상을 타니까, 그래서 평범하게 쓰라는 거야.
예를 들어 소재가 '단풍'이라면, 별거 없어.
'붉은 단풍이 어머니처럼 우아하게 떨어진다' 하는 식으로 써.
어머니가 우아하게 떨어지는지 둥실둥실 뜨는지 내가 알 게 뭐람? 닭살 돋아. 하지만 이런 식으로 쓰다 보면 어느 순간 심사위원들도 혹하는 표현을 한두 개쯤은 쓸 수 있게 돼. 정말이야.
그리고 '상투적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어디서 많이 본 거 같은 뻔한 걸 상투적이라고 해. '누울 수 있을 거 같은 구름' 같은 건 누구나 하는 생각이잖아? 그런 표현을 시를 쓸 때 쓰는 거야.
근데 주의할 점. 떠오른 생각 중 상투적인 생각만 골라서 쓰려고 하지는 마. 그건 오히려 더 실패하니까.
내 친구 중에 글짓기 나갔다 하면 시만 쓰고 오는 애가 있었어. 근데 상 탈 건 다 타더라고.
걔가 평소에 말하는 거랑 글쓰는 거랑 완전 다른 애거든.
써논 거만 보면 조선시대 사람인데 친구랑 떠들고 노는 거 보면 21세기 소년이야.
어떤 느낌인지 알겠니?
산문은 어떻게 쓰면 될까?
결론부터 말할게. 착하게 써.
한순간 바른생활 교과서의 인수나 수영이가 되어서 세상과 글감, 그리고 심사위원 어른들을 바라보면서 쓰면 돼. 세상을 조금이라도 부정적으로 보거나, 기분 나쁜 단어 하나라도 잘못 넣었다간 그대로 탈락이야. 얌전하고 예의바른 글을 써 줘야 해.
왜냐고? 산문은 모든 글 종류 중에서 글쓴이가 가장 잘 드러나는 종류야.
근데 대회를 개최하는 어른들은 너네들이 아주 순수하고 올바르길 바라거든.
(솔직히 자기들은 안 그러면서 말야, 그지?)
그리고 그걸 자기네들이 벌인 재롱잔치에서 확인하고 싶어해.
아직 이 땅엔 컴퓨터 오락과 TV, 만화, 폭력물 등등(어른들은 이게 뭐가 그렇게 무서울까? 사실 이런 거 안 좋아. 근데 어른들이 좀 오바한다, 그지? 그런거 만들어주는 것도 다 어른들이면서)에 물들지 않은 아이들이 있고, 그 아이들이 써 준 글을 통해 자신들이 옳다고 믿는 거나 몸바쳐 일하고 있는 일의 미래가 밝다고 믿고 싶어해.
형이 하는 말 알겠니?
맞어, 그거야. 어른들이 너희들의 글을 봤을 때 평범하고 착하고 그래서 예뻐 보이면, 어른들은 그 글이 곧 너희들일 거라고 믿어. 그리고 기분 좋게 너희들에게 상과 기념품, 상품권을 주는 거지.
그리고 혹시 이 중에 세상엔 잘못된 일이 많다고 생각하거나, 왜 그런지 혹은 꼭 그래야 되는 건지 궁금한 게 많은 친구 있니? 혹시나 있다면 이런 말 해서 미안하지만, 차라리 시로 승부해라.
어른들이 제일 좋아하는 글은 귀엽고 재롱부리는 글이야.
그럼 제일 싫어하는 글은 뭐게? 기어오르는 글.
어른처럼 생각하고 어른들한테 말대꾸하는 글을 어른들은 제일 싫어해.
대견하다고 해주진 못할망정 '버릇없다', '반항적이다' 등등으로 혼을 내.
(자긴 절대 안 그런데 말이지.)
그러니까, 아무리 산문이 자유로운 글이라지만 절대 자유롭게 쓸 수 없어.
물론 쓸 수는 있지. 아무도 혼내지 않아.
다만, 친구의 그 멋진 글은 혼자 쓰고 혼자 좋아하고 쓰레기통으로 곧장 들어가는 신세가 돼.
그리고 절대 아는 척하지 마.
너희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아이야. 적어도 너희의 글에선 그게 물씬물씬 느껴져야 해. "이건 이렇고 저건 저러니까 이런 건 옳고 저런 건 그르다! 잘못됐다!"라고 쓰면 채점도 안 해주실 거야. 왜? 싫으니까. 마음 편하고 기분 좋은 글이 얼마나 많은데!
형은 대회 나가서 주로 산문을 썼는데, 생각해 보면 그 하고많은 산문 중 제대로 상을 타 본 경험은 없었던 거 같아. 주로 논설문을 썼거든.
왜냐면 다른 애들이 입에 발린 글만 붕어빵 찍어내듯이 쓰는 게 보였으니까.
그래서 난 남들관 다르게 나 자신에게 충실하고 솔직하게 글을 쓰면 되지 않을까 했는데,
웬걸, 아니더라고.
솔직히 말해서 나 고등학교 들어와서 글로 상을 타 본 일이 거의 없어. 항상 그렇게 썼거든.
남의 비위를 맞추기가 너무 싫었어. 하지만 그래서는 상을 탈 수가 없더라고.
형이 잘난척을 하고 아는 체했기 때문에 상이 돌아오지 않았던 거야. 무슨 말인지 알겠지?
혹시 수기(주제와 관련하여 겪은 일을 적어가는 수필의 일종)에 응모하려는 친구 있니?
이거 하나 반드시 기억해. 엄마 졸라서 담당기관(대회를 개최하는 곳)을 찾아가서 잘 보면, '우수작 사례집'이라는 게 반드시 있어. 그걸 야릇하게 베끼면 단박에 붙어.
좀 오래된 글을 베껴야 해. 눈치챌지도 모르거든. 한 4년쯤 지난 글부터가 베끼기 좋아.
그래도 되냐고? 돼.
베끼든 안 베끼든 상을 타는 수기들은 어차피 그게 그거야. 결국 '그분들(아니면 그것)이 우릴 행복하게 해 주었다'라는 얘기일 거 아냐. 솔직히 안 그래?
정 마음에 켕기면 베끼진 않더라도 한번 쫙 읽어보기만 해도 좋아.
그러고 나면 아마 친구가 처음 쓰려고 했던 건 절대 쓸 수 없다는 걸 알게 될 거야.
중학교 2학년 때 형을 가르쳐주시던 국어선생님이 계셨어.
내가 글재주가 있다면서 온갖 대회에 다 데리구 다시니더라고. 솔직히 그땐 창피했지. 상도 잘 못 타오는데 왜 이러시나 하고.
근데 그게 다 이런 경험이 되어서 이렇게 말해줄 수 있는 밑거름이 됐나 봐.
난 상을 하도 못 타서, 고민했고, 그 결론이 이거야. 형은 항상 형 주관대로 글을 썼고, 그래서 상을 타는 데 실패했어. 그렇다면 그 반대로 하면 되지 않을까?
꼭 좀 당부할게.
형이 이렇게까지 말해 줬으니까, 꼭 글짓기 대회에 나가 줘.
글짓기 대회는 학교에 나가는 청소년의 특권이야. 어른이 되면 하고 싶어도 못 해. 잘 생각해 봐. 어른이 글짓기하는 거 본 적 있나.
그러니까, 꼭 부탁한다. 대회 나가서, 형이 말해준 대로 한번 좀 써 주라. 그리고 상을 타나 못 타나 봐서, 형한테 좀 알려줘라.
형은 진짜 궁금하다. 만약에 형이 쓰라는 대로 써도 아무도 상을 받아올 수 없다면 형은 이제 전국적으로 난무하는 글짓기 대회를 제재하자는 법안을 청구할 생각이야.
근데 아마 잘 될 거야. 너희들은 훌륭하니까. 꼭 좀 부탁해.
그리고 상 많이 타라. 남는 건 자격증이랑 성적이랑 상밖에 없단다.
특히 고등학교 때 상 많이 타야 해. 그래야 대학교 가.
내가 이렇게 짜증날 정도로 길게 쓴 것도 결국 너네들 상 타라는 마음 때문에 그래.
글 많이 쓰고, 그래서 상 많이 받아라. 그래서 훌륭한 미래 대한민국의 주역이 되어다오. 물론 이런 방법이 먹히는 글짓기 대회에서 너희들이 쓴 원고지와 받아 온 상장과 상품들을 쌓으면, 권위적 위선과 온갖 허구적 고정관념 그리고 평가지상주의가 꽃피는 재롱잔치가 되어 있겠지만 말야.
P.s 1
아 맞다. 그리고 이거 딱 하나만 기억해. 다른 거 다 몰라도.
어른들은 말야, 상장을 주고 너희들의 글을 '사 간다'. 형도 몰랐거든? 근데 너희가 상을 받는 순간 너희들은 너희의 글을 그 어른들한테 상장 하나 받고 '파는' 거야.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
예를 들어 너네가 한국수자원공사 물사랑 글짓기 나가서 시 쓰고 상 타잖아?
그러면 한국수자원공사에서 너네가 쓴 싯귀를 광고에 쓰든,
무슨 예술작품의 한 부분으로 당당히 채택하든,
심지어는 그 지은이 이름을 한국수자원공사 사장님 이름으로 바꾸든(이건 좀 심했나?!) 너희들한텐 돈 한 푼 돌아오지 않는다는 거야. 사실은 돈을 상당히 많이 줘야 되는데도.
왜냐구? 그 대회 포스터를 보면 조그만 글씨로 이렇게 써 있을 테니까.
"…단, 채택시 해당 작품의 저작권은 주최측에 귀속되며…"
P.s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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